☏성 경 자 료

성경기초연구2,

공 상희 2011. 11. 18. 15:31

성경기초연구 2,

 

제 10 과 인간의 죄와 타락

 

 

< 성 경 >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창세기 3:1-6).

 

 

1. 죄란 무엇인가?

 

 

죄가 무엇이냐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죄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소요리 문답에서도, “죄란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에 대하여,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해 줍니다.

 

창세기 3장에서는 인간 최초의 죄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죄의 결과가 나옵니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 곧 불순종을 말하는데, 그러면 인간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인간이 어겼을 때, 인간의 최초의 죄가 발생했으며, 이 죄가 곧 정죄함을 받아 죄 값인 사망이 인간에게 온 것입니다.

 

 

2. 인간에게 순종을 요구하신 이유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많은 피조물 중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1) 인간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인격적인 존재는 인간뿐인데, 인격적인 존재의 특징은 순종함에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순종을 통하여 복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순종의 조건으로 주신 약속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축복이었습니다.

 

불순종은 다음 두 가지 경우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1) 반항하는 심리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고 마귀가 속삭였을 때, 여기서 하와는 “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하는 반항심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2) 다음에 불순종은 권위를 업신여김에서 나옵니다. 명령을 어기는 일은 명령을 경히 여기는 증거요, 경히 여긴다 함은, 명령한 이 를 업신여김을 말하는 것입니다. 잠언 30:17에는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의 죄가 나옵니다. “아비를 조롱하고,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의 새끼에게 먹히리라.”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의 죄도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그 심판을 꼭 이루시는 것입니다.

 

 

3. 아담의 자유의지

 

 

최초의 아담과 하와는 죄가 전혀 없는 상태의 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인간들은 죄의 종들임으로 죄를 물리칠 능력이 없어서 순종에 대한 자유의지가 전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죄의 줄에 매어 끌려 다니고 죄가 시키는 대로 복종할 뿐입니다. 그러나 창조함을 받았을 당시의 아담은 죄에 아직 물들지 않은 완전한 인간이었으므로 그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들로 죄를 범하게 하였습니까? 선악과가 그렇게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대상이 되었을 뿐이지 그 선악과가 죄를 범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뱀이 했을까요? 마귀란 놈은 뱀 속에 들어가 미혹은 했지만, 뱀이 그것을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선악과를 먹겠다고 결정한 것은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게 한 근본 원인은 무엇입니까? 6절 말씀을 보면, “여자가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보였기 때문에 먹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와 마음속에서 욕심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사람이 소유한 것 중에서 욕심만큼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야고보서 1:14-1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반드시 욕심은 죄를 낳는 것입니다. 하와의 경우도 이런 욕심이 죄를 낳게 한 것입니다.

 

 

4. 죄의 결과

 

 

(1) 죄의 결과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졌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나? 첫째, 즉각적으로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옷을 벗으면 남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아담의 죄의 결과로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부끄러움은 수치심이나 죄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가 없었을 때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으므로 정욕이나 음란한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를 아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범하자 몸의 벗은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자 상대방의 벗은 몸이 아름답고 순전하게 보인 것이 아니라, 죄가 이미 그 마음에 들어가 정욕과 음란한 마음으로 쳐다보게 되었으므로 자연히 부끄럽게 여기게 된 것입니다.

 

아담은 벗은 몸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없으므로 동산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부끄러움을 감추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담이 입고 부끄러움을 감추었던 가죽옷을 입어야 우리의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습니다. 그 가죽옷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창세기 3:21, 마태복음 22:11-14, 요한계시록 3:18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2) 죄의 결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높은 담을 이루어 서로 간에 원수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골로새서 1:21 참조).

 

이 죄로 축복의 안식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화염검으로 지키신 것입니다. 하나님 성전의 지성소에 성소 휘장이 내려진 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단절된 관계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5:38, 히브리서 6:19-20, 10:20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3) 죄의 결과 그들은 죄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정녕 죽으리라”는 명령을 따라 그들은 죽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으리라 하신 말씀이 뜻은 무엇입니까? 왜 당시 그들은 당장에 죽지를 아니했습니까. 3:19 말씀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아담에게 내린 여러 가지 저주의 말씀 중 죽음 문제는 맨 나중에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선고는, 그가 저주받는 인생생활을 하다가 육신은 그 근본인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9:27, 전도서 12:7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아담은 그때부터 시한부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차매 흙으로 돌아가, 말씀대로 죽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곧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로마서 6:23 참조).

 

(4) 죄의 결과로 사람들은 그 영혼과 육체의 기능이 더러워졌습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는 타락 또는 ‘전적타락’이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는 구원의 소망이 전혀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가르친 것입니다. 인간은 이미 자유의지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도 없습니다(로마서 3:10-18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심에 있어서 인간의 지혜나 인간의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성령으로 하십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하셨고, 성령으로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시고,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고, 성령으로 기도하게 하시며,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성령을 주님께서는 그의 택함 받은 자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6~17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결론 : 죄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는 죄인이 아닌 자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자란 단 한 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지상에 사는 사람 치고 자기는 지옥형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사람은 하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죄의 값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무서운 죄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가지뿐입니다. 그것은 죄의 심판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방법을 따르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입혀 주셨던 가죽옷을 입고 부끄러움을 면하는 길입니다. 그 가죽옷은 내 죄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말합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참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참조).

 

 

 

 

제 11 과 인간의 원죄란 무엇인가?

 

 

< 성 경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1. 인간의 원죄란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인간을 죄인이라고 밝혀 놓고 있습니다. 죄인이라고 한 말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율법적인 죄를 범하였거나 양심적인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닙니다. 죄인이란 이름은 이미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붙여져 있습니다.

 

시편 51: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사람은 태어나는 그 시간부터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의 구주가 인생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신학에서는 ‘원죄’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이 말의 뜻은 아담의 죄가 우리 인류에게 유전된 그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상태에서 태어나든지, 어떤 환경에서 살든지 그 신분이 어떠하든지, 모든 인간은 모태에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성경은 분명 히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최초의 의인이었던 아벨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성모 마리아도, 석가도, 공자도 아니 더 가까이 ‘나’도, 다 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진리이며 성경 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원죄는 아무도 스스로 벗어버릴 수도 없고, 깨끗이 씻을 수도 없고 남에게 넘겨줄 수도 없으며, 더군다나 없애버릴 수는 더욱이 없습니다.

 

 

2. 인간이 죄인이라는 근거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아담의 죄 때문에 우리도 죄인이 되어 죽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믿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몇 가지 사실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어린아이들에게 죽음이 있다는 사실은 죄 값은 죽음이라고 하는 성경 말씀과 부합된다는 사실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유아는 선이나 악을 알지도 못하며, 악을 행한 사실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병에도 걸리고,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진리를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로마서 5:12).

 

사망은 오직 죄인들에게만 왕 노릇 하는 존재입니다.

 

(2) 또 한 가지 사실은 이 세상에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모세라든가 아브라함이던가 욥이라든가 하나님과 매우 가까웠던 위대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그들의 생애가 다 죄로 얼룩진 죄인 이였다고 성경은 증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10절 말씀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왜 인간 중에는 의인이 없는 것입니까?

 

인간은 아담의 원죄 중에 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 죄로 말미암아 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의 종의 신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15, 로마서 6:1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누가복음 7: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나니,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느니라.” 아담은 인류의 나무가 되었고, 아담의 후손은 그 나무에서 난 열매들인 것입니다. 아담은 죄로 타락하여 그 나무가 못된 나무가 되어 버렸으며, 그 나무에서 열매로 열린 그 자손들은 못된 열매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더 간단히 명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는 죄인이 되었다. …… 원죄

 

모든 인류는 다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다. …… 본죄

 

아담 안에서 온 인류는 다 죽게 되었다. …… 원죄로 인한 심판

 

세상에 태어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의로운 행실과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의 의로운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인류에게 양심을 주셨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양심이 바른 사람이요 율법의 참 뜻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인간은 다 죄인이다”, “인간에게는 의인이 없다”고 하는 진리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1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3. 죄가 없으신 예수그리스도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경우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왜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는가?

 

이 문제는 우리 인간의 구원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셨지만, 그는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후손이란 보통 생육 법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말합니다. 남녀가 결혼하여 혈통적인 관계에 의하여 출생하는 일이 보통 생육 법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아직 처녀일 때 잉태된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가 곧 한 아이를 가질 것을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1:34절에서 마리아는 천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니까.” 이 말에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그리고 마태복음 1:25절 말씀에서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분명히 보통 생육 법으로 태어난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아담 안에서 아담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분이 아니시며, 그의 생애에 범죄 하신 일이 없으신 것도 그에게 이 같은 원죄가 없으셨으므로 죄의 종이 아니셨기 때문에 가능하셨던 것입니다.

 

 

4. 인류의 두 대표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인류의 두 대표가 등장합니다. 첫 사람 아담과 둘째 사람 예수인 것입니다. 45-49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1) 아담의 경우 : 아담은 죄의 대표자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나님과의 계약은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를 대표로 한 계약이었던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자격으로 조약을 맺었다면 그 영향은 온 국민에게 미치는 이치와 동일합니다. 사도행전 17:26절 말씀에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한 혈통이란 죄인인 아담의 혈통으로, 인류는 다 아담 안에서 하나님과의 계약에 동참한 자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계약조건 … 창세기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멀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아담은 이 계약을 어겼으므로 죽게 되었고, 그 죄와 죽음을 자기 후손인 모든 인류에게 물려주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다고 했습니까?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결국 아담은 인간에게 죄의 대표자로 사망을 선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 있는 인류는 그가 누구이건 간에 아담의 이 같은 원죄로 인하여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경우 : 그러면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에게 어떤 대표자가 되셨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계약은 아담과 하나님과의 계약이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에게 책임이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안에서 그 효력을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계약 조건은 아담의 경우와 같이 순종에 있었습니다. 로마서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 순종의 조건은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 하나님 앞에 화목제물이 되시는 일이었습니다.

 

빌립보서 2:6~8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5.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두 가지 사역

 

 

주님은 십자가에서 두 가지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1) 그 하나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인 원죄를 소멸해 주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 값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죄 값이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의 원죄를 근본적으로 소멸해 주신 것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 이 죄 값을 주님이 갚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망이 왕 노릇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17~1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2)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다른 한가지는 하나님과 우리와 화목하게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죄로 원수가 되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죄를 소멸해 주심으로 화목 시켜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5:10 말씀에서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인류는 아담 안에서 실패하여 비참하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공하여 더 좋은 생명과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2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결론 : 아담은 그 후손들에게 자기의 죄를 넘겨주었습니다. 그 죄를 원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그를 믿는 자에게 원죄를 소멸해 주시고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다 이 놀라운 축복의 계약에 참여자가 됩니다. 요한복음 3:18 말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우리는 아담으로 물려받은 불명예스러운 유산인 원죄와 그로 말미암은 사망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소멸하여 생명과 축복의 새 언약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제 12 과 인간의 타락에서 온 비참은 무엇인가?

 

 

< 성 경 >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시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1-24).

 

 

1. 인류의 타락이란 무엇인가?

 

 

세상에서 우리는 타락이라는 말을 잘 씁니다. 무엇을 타락이라 하느냐? 타락이란 성경에서 풀이하기를 곧 죄를 말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원죄와 본죄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두 가지 죄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죄는 원죄의 연고로 누구나 세상에서 안 지을 수 없는 필연성을 띄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고, 본죄는 양심이나 율법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인간의 타락은 그 기원이 죄와 동일하기 때문에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했을 때, 이미 타락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담이 타락했을 때,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아담과 동일한 운명 으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성경은 증거 해 주기를 인간이 타락하여 결국 비참하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 같은 비참함을 알지 못하여 오히려 이 세상에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지금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비참한 자리에 놓여 있다고 하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은 죄로 인한 타락으로 비참하게 되었는데, 그 비참한 처지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라 증거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2. 인간의 타락이 가져온 비참함

 

 

인간의 타락이 가져온 가장 비참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끊어졌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여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며 사랑이시기 때문에 교제의 대상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과 같은 인격과 사랑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물을 다 창조하신 후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와 축복을 주셨고, 행복한 땅 에덴을 주셨고, 아름다운 가정을 주셨으며, 에덴에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한 결과 이 같은 축복이 일시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죄를 범한 결과 그들의 운명이 비참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창 3:24 말씀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했다고 했습니다. 설혹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해도 그들은 하나님과의 더 이상 교제를 계속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죄는 이처럼 사랑을 끊게 하고 교제를 단절시켜 버립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쫓겨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59:2 말씀을 보면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웠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과의 사이에 넘어갈 수 없는 사이를 내었고, 벗을 길 없는 죄의 보자기로 얼굴을 스스로 가리웠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나타낼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죄인 그 상태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도 될 수 없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이룰 수 없습니다. 회개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만 끊어져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아래 놓여져 있다고 성경은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8:22절 말씀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중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땅에 있는 모든 소산물과 땅 그 자체까지 저주를 받게 한 것입니다.

 

창세기 3:16-18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처럼 인간은 그의 타락으로 애초에 언약된 말할 수 없는 축복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왔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끊어져 버림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헛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7: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헛된 것을 위하여 헛되게 노력하다가 헛되게 최후를 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들은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된 것으로 끝을 맺으며, 허무하게 마치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 있다는데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비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그 안에서 이 사랑의 교제를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린도전서 1:9).

 

 

3. 타락의 결과

 

인간은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인생길에 아무라도 피할 수 없는 비참한 일들이 필연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욥기 5:7에서 밝히기를, “인생은 고난을 위해 났다”고 했습니다. 인생이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웃음만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서 7:6절 말씀은, 우매자의 웃음소리를 “솔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웃음소리는 기껏해야 재밖에 남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빨리 끝나 버린다는 뜻입니다. 아들을 낳았다고 좋아하던 기쁨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아들을 잃는 통곡으로 변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인간 때문에 저주를 받아서 질병이 횡행하게 되고, 기근이 닥쳐오고, 전쟁이 일어나고, 천재지변이 찾아오고, 언제 내가 웃었던가, 언제 내가 행복했던가, 언제 내가 건강했던가, 언제 내가 만족한 삶을 살았던가 이런 것들이 기억에조차 남는 것이 없이 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 12장에서 전도자는,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비참한 고난이 뒤따르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한 소망을 주심으로 이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4. 타락의 결과 찾아온 죽음

 

다음으로 인생이 타락하여 비참하게 되었다는 증거는 죽음이라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모든 인생은 죽음의 지배 아래 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죽음의 지배에서 벗어난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히브리서 9:27절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에게 명령하기를, “너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인생에게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고, 인생은 이 사망의 지배에서 태어날 길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이란,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죄로 인한 저주의 결과에서 부자연스럽게 온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이 이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는, 장차 이 죽음에서 부활로 승리할 수 있는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우리는 영화로운 몸으로 저 하늘의 영원한 천국에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55-58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5. 죄의 결과로 온 영원한 형벌

 

 

죄로 타락한 인생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에 우리 예수님도 확실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3:12절에는, 그곳을 가리켜 꺼지지 아니하는 불이 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48절에는,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0절에는 불과 유황불 가운데서 세세토록 고난을 받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0:11-1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결론 : 하나님은 이렇게 죄로 비참하게 된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보시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다시 이어지지 아니한다면 이 같은 영원한 불행가운데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여기서 인생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천하 어느 곳이든지 복음 전도자들을 보내어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그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계속되어 언약된 축복을 받게 되지만, 믿지 아니하면 영원한 멸망뿐입니다. (요한복음 3:1618 참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백성이요, 영원한 소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제 13 과 은혜언약이란 무엇인가?

 

 

< 성 경 >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3:21-22).

 

 

1.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언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우리 인간에게 가장 적은 순종의 조건을 주셨는데, 이것을 성경에서는 언약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언약이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행위 언약이고, 하나는 은혜언약입니다.

 

 

2. 행위 언약 또는 생명언약

 

 

① 언 약 자 : 아담(첫 사람)

 

② 언약내용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③ 언약조건 : 순종할 때 - 생명 얻고, 영생, 만물을 다스리는 축복, 불순종 할 때 - 사망

 

④ 계약의 범위 :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후손(로마서 5:12)

 

⑤ 결 과 : 불순종으로 저주와 사망을 받음.

 

에베소서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요한복음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 사망의 종류 :

 

① 첫 사망 : 육은 흙으로(창세기 3:19)

영혼은 지옥으로(히브리서 9:27, 누가복음 16:22-25).

영으로 지옥에 들어감

 

② 둘째 사망 : 하나님의 최후 심판 때, 심판의 부활로 영원한 명 망에 빠지는 지옥(요한계시록 21:8, 요한복음 5:29).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하나님의 행위 언약의 계약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 같은 운명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왜 이런 사실에 대하여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요? 로마서 1: 28절 말씀에서, “저희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셨기 때문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언 4:19).

 

그러면 하나님은 이것으로 끝마쳤습니까?

 

응당 멸망 받을 인간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제2차로 은혜 계약을 주신 것입니다.

 

 

3. 은혜계약

 

 

① 언약자 : 예수(하나님과의 계약자는 언제나 완전 무죄 자여야 합니다. 죄인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두절된 자이며, 하나님과 원수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언약을 맺을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동정녀의 몸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태어나신 예수님만이 무죄하신 둘째 사람이심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이 가능한 것입니다.)

 

② 언약내용 : 십자가에서 죄인의 죄를 대신 지시고 고난을 받으시는 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마시지 않겠느냐”(요한복음 18:11).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함이라” (마태복음 20:28).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대속제물이 되셔야 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첫 언약을 폐하시려면 아담의 죄를 소멸할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 인간은 죄 값으로 죽게 된 자요, 하나님과 원수인 관계로 이미 순종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 독생자를 보내셔서 그가 십자가를 지시고 인간의 죄 값을 갚아주심으로 우리를 아담과의 언약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③ 언약조건 : 독생자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요한복음 1:12-13).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오직 심판만이 있게 되며, 심판만을 기다려야 합니다(요한복음 3:18, 히브리서 10:27 참조).

 

그 이유는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랑을 베풀 것이 없는 것입니다.

 

④ 결과 : 다 이루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 주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십 자가 위에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효과 :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다 이 언약에 포함되어, 이 언약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에서는 한 사람 아담의 죄로 (우리가 아담 안에서 그의 행위 언약에 가담한 자로)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행동으로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 언약에 가담한 자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17-1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4. 은혜언약에 혜택을 받을 자는 누구인가?

 

 

누가 하나님의 이 은혜 언약에 혜택을 받을 것인가? 이 문제는 기독교 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성경은 어디서나 구원은 예수를 믿으면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이미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자들이요, 죄로 원수가 된 처지에 있는 자들이므로 우리에게는 예수를 믿을 힘도 지혜도 능력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를 믿을 수 있으며, 예수를 믿고 이 은혜 언약에 들어가 생명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에베소서 2:8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은혜언약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것이므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요한복음 1:14).

 

믿음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자기가 원한다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 나님은 누구에게 이 같은 믿음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까?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에베소서 1:3-5).

 

하나님은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 위한 사람들을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해 두셨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예정 교리입니다.

 

 

5. 은혜언약과 하나님의 예정교리

 

 

은혜언약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은혜언약을 말하면 예정교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① 예정교리의 요점

 

㉠ 하나님은 아담 안에서 죄로 버려진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구원하도록 선택하셨다.

 

㉡ 하나님이 이처럼 택하신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좋은 성품이나 인격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께 합당한 다른 조건이 있음도 아니다.

 

㉢ 하나님은 선택된 사람들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구원하도록 하셨다.

 

㉣ 그리고 이 같은 하나님의 선택은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을 신학적 말로 표현한다면 무조건적 선택이라고 합니다.

 

② 왜 어떤 사람은 택하지 않으셨을까?

 

왜 나는 택하시고, 저 사람은 버리셨는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편파적이신가? 아니면 불공평하신가? 그러나 이 같은 문제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항의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받을 것에 대하여 차별을 두셨다면 하나님께 항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께 당연히 받을 것이라고는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무한하신 지혜에 따라, 자기가 가지고 계시는 크신 자비와 사랑에 따라 마땅히 멸망 받아야 할 인류에게 이 같은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에 아무라도 항의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아무의 간섭 없이 자기의 뜻을 이루실 수 있는 권능이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17-2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③ 예정된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 구원의 역사를 하시나?

 

그러면 예정된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구원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함으로서 전도할 필요가 어디 있으며, 믿으려고 애쓸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명심할 일은 만약 누구이든 구원받을 그 사람은 반드시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과 자기 결심에 의하여 구원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스스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자동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예정된 사람들은 반드시 이 같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항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내가 구원받기를 원해도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니 내가 애써 믿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인간은 그의 죄악 때문에 그 생명이 이미 죽어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그리스도 앞으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셔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하시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17, 26, 15:2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결론 :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는 위대하십니다. 인간은 아무리 헤아려도 알 길이 없고, 죄인의 마음으로는 깨달아 알 수가 없도록 하심으로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 적인 역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를 거역하는 죄인들은 최후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진 후에 그곳에서, “나는 아담 안에서 범죄 했으며, 죄 가운데서 타락하고서도 예수를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배척했으니 마땅히 올 곳에 왔도다”하며 자기 자신을 원망하면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나는 아담 안에서 영원한 심판을 받을 마땅한 죄인이며, 나에게는 구원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의나 공로도 없는데도, 하나님은 나를 예정하사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택하시고, 지옥에서 구원하사 이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셨으니 이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감격하여 금 면류관을 하나님과 어린양 앞에 벗어 던져 하나님과 우리 주님만을 찬양할 것입니다”(요한계시록 4:10-11 참조).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의 귀한 사랑과 신비적인 은혜로 택함 받아 그리스도안에서 은혜 언약의 혜택자임을 믿고, 이 믿음을 굳게 하여 끝까지 승리해야 합니다.

 

 

제 14 과 예수는 왜 구세주가 되시는가?

 

< 성 경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헤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1. 최초로 주신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에서 ‘죄로 죽은 인생’에게 최초로 구세주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아담이 범죄 한 후,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을 때, 하나님 앞에 나온 존재는 셋이었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아담의 아내인 하와, 그리고 이 둘을 범죄케 한 뱀이 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셋에게 제각기 그들의 범죄에 대하여 합당한 저주를 내리셨는데, 뱀을 저주하는 말씀 중에 메시야의 언약이 들어 있습니다. 왜 사단의 저주에 구세주의 언약이 들어가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사단의 심판을 단행하실 분이 바로 언약하신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꾀어 범죄케한 마귀의 심판은, 둘째 사람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마귀는 이 투쟁에서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3:1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그러면 이 말씀에서 언약된 여자의 후손이 누구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분이 바로 죄로 타락한 인류의 구주가 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언약된 구세주이심을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어떤 근거로 구주가 되느냐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는, 그들이 예수가 메시야가 아니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다음과 같은 기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렇게도 당당하게 예수님을 메시야로 소개했던 세례요한도 예수님이 과연 메시야인가 하고 의심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1:2-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우리는 예수가 왜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가에 대하여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예수님을 인간 요셉의 아들로밖에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6:3-4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것을 모르면 예수를 자신에게 무익한 존재로 알아 물러가게 됩니다.

 

요한복음 6:6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2. 여자의 후손은 누구냐?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신 목적은 죄로 죽게된 인류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 3:15절에서 밝혀 주신 여자의 후손이 누구냐에 대하여 인류들에게 증거 해 주신 기록이 성경입니다. 이는 죄인들로 이 성경을 읽고 듣고 깨달아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신 것입니다. 구약은 오실 구세주(여자의 후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느냐에 대하여 증거 해 주고 있으며,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구세주이심을 믿게 하시려는 증거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가 오시기 전까지 구약시대는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이며, 신약 시대는 예수를 여자의 후손으로 믿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이십니다.

 

 

3. 구약에서 여인의 후손은 누구로 예언되었나?

 

 

⑴ 첫째로 인류의 구세주인 여인의 후손은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나온다는 말씀 하셨습니다.

 

창세기 22:18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은 모리아 산에 가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시험을 이기 고 난 후, 받은 축복 중에 언약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의는 이 언약의 말씀을 믿음으로 얻어졌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구약시대의 의는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으로 말미암아 태어날 여인의 후손이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언약하신 씨가 이삭이라고 믿은 것이 아니라 장차 이삭의 자손으로 태어날 여자의 후손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마태복음 1:1절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자손은 오늘날 육적 이스라엘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⑵ 다음에 여인의 후손은 유다 지파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아 이 야곱으로부터 열 두 지파가 형성된 것입니다. 오실 메시야는 이 열 두 지파 중, 오직 유다 지파에서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49: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유다는 야곱의 아내 레아에게서 낳은 넷째 아들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의미인데, 여인의 후손은 이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유다 지파에 속한 구주이심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14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계시록 5: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처럼 예수님은 언약하신 대로 유다 지파에서 태어나신 분입니다.

 

⑶ 그리고 여인의 후손은 유다 지파중에서도 다윗의 혈통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이사야 11:1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새는 다윗의 아비이며, 예수님은 바로 다윗의 뿌리에서 태어난 여인의 후손이심을 신약은 증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1-3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마태복음 1:1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예수님이 여인의 후손으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그의 왕권을 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신 분이시며, 지금도 우리의 왕으로 계시며, 장차 만 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⑷ 다음에 여인의 후손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했습니다.

 

미가서 5:2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의 태어남을 찾으러 예루살렘에 왔을 때, 온 성이 소동했습니다. 헤롯왕이 박사들을 만나보고 제사장들을 불러 메시야의 탄생지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베들레헴이라고 말해주어 박사들은 그곳으로 찾아가 만나 경배했습니다.

 

누가복음 2:1-7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예수님의 고향은 나사렛이란 곳이었지만, 그는 이 성경말씀에 따라 여인의 후손으로 증거 되기 위해 예언의 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⑸ 여인의 후손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야 했습니다.

 

이사야 7:14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은 이사야의 이 예언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1:22-2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란, 반드시 부부관계로 이루어짐이 법칙이나,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분을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으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⑹ 여인의 후손은 먼저 선지자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사야 40: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마태복음 3:1-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사야의 예언대로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⑺ 여인의 후손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곧 하나님이셔야 한다고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 9: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 세상에서 이런 신분을 가지고 태어날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인간은 모두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분이심을 신약은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 단 한 분만이 이에 합당한 여인의 후손임을 성경은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⑻ 여인의 후손은 뱀에게 발꿈치를 상하는 고난을 받고 죄를 위한 대속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사야 53:4-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신약이 증거 해 주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메시야이심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21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⑼ 여인의 후손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16:10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죄 값으로 죽어야할 인생 중에 누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나타낼 것입니까? 죽으셔서 무덤에 장사한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주님 외 이 땅에는 죽음을 이긴 어떤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1-32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결론 : 이상에 열거한 자격 중 단 한 가지라도 결격사유가 있으면, 여인의 후손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초림하셨던 예수님도 이 자격자이시며, 다시 오시는 예수님도 이 자격자이십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든지 이 자격이 없는 자가 나타나서 자신이 구주라고 하는 자가 있다면 이런 자는 다 거짓 메시야요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 예언하신 인류의 구세주요, 창세기에 언약된 여인의 후손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8절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가 아닌 다른 존재를 여인의 후손이라고 증거 하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는 다만 한 분 오직 예수 그 분만으로 우리의 신랑으로 삼았으며, 그 분만을 소망으로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분 예수를 정말로 사모하는 심령으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제 15 과, 그리스도의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

 

 

< 성 경 >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고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브리서 5:1-7).

 

 

1. 성경에서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직분

 

 

성경은 메시야가 오시기 이전의 구약과 메시야가 오신 이후의 신 약으로 구분되는데,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는 과정을 보여 주시고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된 왕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가 있었으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제단에서 일하는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제각기 맡겨 주신 분야에서 삼권분립 적인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창세기 20:7절 말씀을 보면, 성경에서 최초의 선지자의 이름이 아브라함에게 부쳐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세를 특별한 선지의 사명 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고,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행하였기 때문에 선지자라는 이름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른 위대한 선지자가 너희 중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언을 주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명기 18:1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그리고 제사장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맡기셨는데, 이 같은 직무가 그리스도가 그 사역을 마치셨을 때, 완전히 끝나버렸습니다.

 

히브리서 7:20-2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히브리서 9:11-12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다음에 하나님은 왕으로 다윗을 택하시고, 그 자손이 왕위를 계승 하리라고 약속하셨는데, 그리스도께서 그 영원한 계승자가 되신 것입니다.

 

에스겔 37:20-25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여기 기록된 다윗은 영원한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시대에 있었던 선지자의 직분이나, 제사장의 직분이나, 왕의 직분도 알고 보면,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만 존속할 것들이요, 신약 시대에 와서는 이 모든 지위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갔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분

 

 

소요리 문답에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십니까”란 물음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심은 우리를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그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란 예언자란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받은 비밀을 성령의 영감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영이심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심에 선지자를 세우시고, 그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한자도 빠트림이 없이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하였고, 하나님은 그 선지자의 말한 대로 반드시 이루어 주심으로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보장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레미야 18장을 보면 선지자의 사명이 뚜렷하게 나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레미아 18:5-11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의 백성 되기에 합당하게 하시려고 권면 하시고, 교훈 하시고, 견책하는 일을 담당한 사람이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왜 선지자가 되십니까? 히브리서 1:1-2절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감초인 계시가 그리스도의 입의 말을 통하여 이 세상에 전달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그는 우리에게 완벽한 선지자의 직분을 이루신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과 성령으로 이 직분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3.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

 

 

제사장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전문적으로 맡아 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직분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오직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들만이 그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어른으로 일하는 사람이 대제사장입니다. 그러면 이 대제사장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⑴ 매일 소제를 드리고 속죄제에 피를 뿌렸습니다.

 

⑵ 일년에 한 차례씩 베옷을 입고, 속죄일에 단독으로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 자기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리고, 백성의 속죄 제사로 염소의 피를 속죄소에 뿌렸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왜 대제사장이 되십니까?

 

히브리서 9:11-12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⑴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

 

다른 제사장은 황소나 염소의 피로 속죄제물을 삼았으나,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 속죄 제물을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알 것은 속죄 제물은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9: 22절에서,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그 죄 값을 갚으려면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런데 구약시대는 인간의 죄 값을 애매한 송아지나 염소나 어린양에게 씌워 대신 짊어지게 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죄 값을 갚기 위해 죽어줄 대상(속죄 제물이 될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제사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로는 사람을 거듭나게 못합니다. 이 제사로는 죄만 생각나게 합니다. 이 제사는 영원한 속죄가 되지 못합니다. 죄를 지으면 그때마다 또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제사는 대제사장이 죽기 때문에 드리는 사람도 자주 바뀌게 됩니다.

 

⑵ 그리스도의 피의 위대성과 그 능력

 

그리스도의 피는 인류의 죄를 속죄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26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히브리서 9:13-14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⑶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땅에 대제사장은 육신의 죽음을 인하여 수효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심으로 그의 직분이 영원히 갈리지 아니 하시고, 우리의 영원하신 대제사장으로 계시는 것입니다(히브리서 7:22-25 참조).

 

⑷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이루신 일

 

㉠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해 주셨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피를 흘려야 하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와는 다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으로 한번 흘리신 피로 우리의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는 것입니다(히브리서 9:12 참고).

 

㉡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습니다. 인간은 죄로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영원히 화목케 된 것입니다. (요한1서 4:10 참고).

 

㉢ 하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요한1서 5:13 참고). 지금도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심으로 그 직분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34 참고).

 

 

4. 그리스도의 왕의 직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팻말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행악 자들의 조롱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팻말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왕은 나라를 가진 통치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나라는 어느 것입니까? 한 강도는 그의 임종 직전에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간구 했을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골로새 1:3절 말씀에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 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속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의 나라를 두 곳으로 나타내셨는데, 한곳은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한 천국을 말하고, 다른 한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우리의 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왕의 직분을 어떻게 행하시나?

 

⑴ 그의 백성을 세상에서 불러내십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머리이시며 성도는 그의 지체로 거대한 몸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9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고린도전서 12:27, 에베소서 5:29-30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⑵ 그리스도는 교회에 세우신 종들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교회의 권면과 징계를 통하여 유형적으로 다스리시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3:17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⑶ 그리스도는 택한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순종하는 자에게 상을 주시고, 범죄 하는 자들을 징계하시고, 고난과 시험 중에 보호하시고, 자기 백성을 해하려는 원수들을 막으시고, 그들에게 원수를 갚아주시고,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기를 거절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으로 그의 왕권이 계속적으로 수행됩니다.

 

이 땅에 존속하는 왕은 죽으면 바뀌고, 혁명이 일어나면 죽임을 당하고, 선거에서 떨어지면 물러나고, 법이 개정되면 쫓겨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왕이시며, 모든 왕을 지배하시며, 주장하시며, 심판하시는 만 왕 중의 왕이십니다.

 

결론 :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주시고, 이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참 선지자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나의 죄 값을 완전히 갚으시고,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나를 위하여 하늘 지성소에서 간구 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으로 지금도 그 말씀으로 나를 지배하시며, 나에게 상을 주시며, 혹은 징계를 내리시며, 나로 왕의 영원한 백성이 되기에 합당하도록 나를 다스리고 계시는 나의 왕이십니다.

 

 

제 16 과, 하나님의 아들이 왜 사람이 되셔야 했나?

 

 

< 성 경 >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리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누가복음 1:26-35).

 

 

1. 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 의 선재(先在)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선재란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 이미 하늘에 계셨던 사실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1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여기서 말씀으로 나오신 그리스도는 태초로부터 계셨던 분이신 데, 그는 곧 하나님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서두에 태초라는 말이 두 곳에 나옵니다. 창세기 1:1절의 태초와 요한복음 1:1절의 태초가 그것인데, 창세기의 태초는 유한한 태초로 하나님께서 물질세계를 창조하셨을 때를 가리키지만, 요한복음 1:1절의 태초는 무한한 태초로 하나님의 기원을 말씀할 때 사용하는 태초입니다. 주님은 요한계시록 22:13절 말씀에서, 나는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셨는데, 여기 “처음”이란 말씀은 시작의 끝이 없다는 의미의 처음이란 뜻이고, “마지막”이란 말씀도 그 끝이 없는 영원성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 말씀이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여 세상에 태어나신 것을 성육신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14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이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세상에 태어나시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셨는가?

 

이 문제는 우리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초적인 교리가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한 바른 지식과 이해를 가지지 못한다면 구 원에 이르는 지식을 가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2. 그리스도는 죄인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다.

 

 

죄 값은 사망인데 (롬 6:23),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 값을 치르는 완전한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 중에는 이 완전한 제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흠 없는 양을 잡아 사람의 죄악을 속하는 대속 제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제물은 완전한 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완전한 제물이란 두 가지 조건이 따르는데, 그 하나는 그 제물이 반드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전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⑴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은 사람의 죄를 양이 대신 갚아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양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죄라고 말할 때는 우리는 먼저 내가 지은 죄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모든 죄의 뿌리는 아담의 죄에서 뻗어 나온 것입니다. 아담의 원죄가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고, 아담의 원죄가 이 세상에 사망을 불러왔고, 우리는 아담의 죄에 동참자로 그 사망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왕 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죄 값이 아니라, 이 아담이 지은 죄 값을 갚아야 합니다.

 

⑵ 죄가 없는 사람이 갚아야 한다는 말은, 빚진 자는 빚의 담보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 값은 사망인데, 죄인이 그 사망의 죄 값을 갚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다 아담의 혈통적 자손들임으로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은 태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 그는 최초로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이었지만, 그도 죄인이었음으로 아담의 죄 값을 갚을 자격자가 못되는 것입니다.

 

이삭 : 그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특별나게 태어난 인물이기는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아담의 혈통적 자손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아담의 혈통적 자손이란 부부관계로 말미암은 탄생을 의미합니다.

 

세례요한 : 그는 잉태하지 못할 여인의 몸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태어나긴 했지만 그도 역시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불가능한 사실 앞에 영원히 버림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는 아담의 후손인 인간 중에는 인간을 구원할 구세주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죄인인 인간에게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온 인류가 인종의 개량에 의하여 다 공자가 된다고 해도, 다 석가가 된다고 해도 다 아브라함이 된다고 해도 역시 죄는 우리에게 존재하며, 그 죄 값으로 오는 사망은 누구나 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그러므로 인간은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죄로 영원히 버림받게 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미 영원 전에, 한 완전한 제물을 예비해 두셨는데, 그 제물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사람이 되셨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일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사람이 되셨는가에 대하여 알아야 하겠습니다.

 

⑴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시려면 육신을 입으셔야 합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예수님은 영적인 존재이심으로, 육신을 가지고 계시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사람이 되시기 위해서는 육신을 입으셔야 했습니다. 육신이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야만 가능합니다. 영적 존재가 그냥 사람의 몸을 가지고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변신일 뿐, 사람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에 천사가 사람의 육체를 모양을 가지고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정말 사람이 되어 육체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변신에 지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뱃속에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잉태케 하신 것입니다(히브리서 2:14-15 참조).

 

⑵ 다음에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일은 우리 인간의 태어남과 다른 점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연 생식법에 의하여 아담의 후손으로 잉태되었지만, 예수님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의 결합으로 비로소 잉태된 되어 존재했지만,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여인의 몸에서 나셨음으로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우리와 조금도 다른바가 없으십니다. 그는 사람이시지만 아담의 원죄는 없으셨습니다. 아담의 원죄는 씨에서 연유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씨로 출생하신 분이 아니요, 하나님의 씨인 말씀이 잉태되어 육신이 되신 분이심으로 그 분에게는 죄가 전혀 없으십니다.

 

 

4.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의 죄 값을 갚으셨는가?

 

 

말씀이 육신이 되심으로 이제 죄가 없는 완전히 거룩하신 분이 태어나셨으며, 하나님의 완전한 의를 가지신 분이 출생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죄 값을 갚아 주실 완전한 대속 제물이 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하늘 위에나 하늘아래나 땅위에나 땅 아래나 우리의 죄 값을 갚아 주실 하나님의 속죄제물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사도행전 4:12 참조).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 합당한 속죄제물의 자격자라 하여도, 실질적으로 제물로 바쳐지기 전에는, 다시 말하면 죄 값으로 피를 흘리지 아니하시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속죄제물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짊어지셔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⑴ 그리스도는 먼저 우리 인간이 연약하여 지킬 수 없었던 율법을 완전히 지키셔야 했습니다.

 

그가 비록 죄 없는 몸으로 태어나셨다 할지라도, 만약에 율법을 범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도 죄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원죄가 없어도 자범죄 만으로도 죄인이 됩니다.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시험하고 올무를 놓았지만,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단 한 건도 책잡을 것을 찾아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요한복음8:46 참조).

 

결론 :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함에 있어서 우리를 보시지 아니하십니다. 나의 부족을 보심도 아니요, 나의 죄의 많고 적음을 보시지 않습니다. 나의 인물의 잘남과 못남에 장애를 받지도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오직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니다.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기 때문에 우리의 속죄는 확실하며 우리의 구원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의 의를 힙 입어 속죄함을 얻고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나를 바라보면, 나는 부족하여 도저히 가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염려가 없습니다. 내가 할 일을 그분이 해주셨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다만 예수를 믿는 일 뿐입니다 (요 1:12-13 참조).

 

 

제 17 과,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 성 경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5~11).

 

 

1. 우리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배우는 이유

 

 

우리는 우리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얼마나 자신을 낮추셨는가를 배움으로 우리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낮아져서 온유와 겸손함을 본 받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낮아지셨을 뿐 아니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그가 만물의 심판 주로 다시 오심을 우리가 배움으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소망을 가지며, 다시 오시는 재림 주를 기다리는 소망 가운데서, 현실적인 우리의 고난을 이기야 하는 것입니다.

 

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비천 또는 비하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낮아진 사례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월남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미국으로 망명가서 어느 도시에서 작은 음식점을 경영한다는 뉴스를 신문에서 그의 사진과 함께 본 기억이 있는데, 그 사람이 대통령의 자리에서 음식점 주인의 자리까지 내려왔다는 것은 비참할 정도로 낮아진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내려 오셨다는 사실보다 더 낮아진 사례를 우리는 인류 역사상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이 사실은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증거 해 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⑵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말해주는 일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어떤 권세를 취하시려는 뜻에서나 영광을 얻으시려는 의도에서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권세 있는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나라는 그 당시 로마의 식민지로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도 나사렛이라고 하는 적은 마을 의 목수로 생계를 꾸렸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에 태어나심도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사관의 말구유에 누우신 그런 출생이었습니다.

 

⑶ 율법의 창시자로서 스스로 그 율법의 순종자로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율법을 친히 제정하신 법의 제정 자이셨지만, 그는 인간이 되심으로 그 법에 스스로 복종하셨습니다. 이 율법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인들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법이었지만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할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그 율법을 지키셨던 것입니다.

 

그 분은 절대로 죄가 없으신 분이셨지만, 그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음으로, 인간들이 당하는 여러 가지 죄의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 같은 유혹을 이기시고, 육신을 가진 사람은 능히 아무라도 지킬 수 없는 완전한 의와 거룩함을 요구하는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아니하시고 다 지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대신하여 이 같은 일을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⑷ 주님은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비통과 인간의 비애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당하셨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울렸으며, 그가 아들이 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7-8 참조).

 

이사야 53:3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과 같이 죄가 있는 분이 아니심으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같은 죄책에 사로잡히거나 양심의 가책을 받으시는 일은 전연 없지만, 그러나 그는 육신을 가진 인간들이 경험하는 모든 쓰라린 비애를 겪으셨던 것입니다. 배고프신 슬픔도 당하셨습니다. 저녁도 못 드셨는지 이른 아침에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하여 찾아가셨지만, 잎만 무성하여 헛걸음을 치셨던 일도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40년간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 주셨던 분이었지만, 그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허기진 배를 움켜쥐는 쓰라림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굶주림을 보고, 나의 생활의 어려움을 참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의 어려움을, 스스로의 경험을 통하여 아시기 때문에 우리들을 능히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15~16 참조).

 

⑸ 주님은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셔서 당하신 고통과 비참함은 십자가 위에서 고난 받으실 때 잘 나타났습니다. 그는 고통 중에 외치시기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는 죄인으로서 심판을 받기 위해 십자가의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 부르짖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당해야 하는 애통의 부르짖음입니다. 모든 죄인들은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함을 받지 못하면 지옥에 가서 이 같은 비참한 고통을 영원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신 예수님의 공로로 죄의 심판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⑹ 주님은 죄의 최후적인 심판인 죽음에까지 이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인들에 대한 죄의 형벌을 완전히 지불하신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죄 값의 완전한 지불이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시고 죄의 결과에서 온 모든 죄인들의 고통과 굶주림과 슬픔을 몸소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곧 “그리스도의 비하”입니다.

 

2.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가장 비참한 죽음에서 하늘보다 더 높아지신 주님의 신분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그리스도의 승귀’라고도 합니다.

 

⑴ 그리스도의 부활

 

주님의 높아지심은 무엇보다도 비참한 자리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하신 부활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마귀도 몰랐고, 사람들도 몰랐으며, 천사도 몰랐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만이 알고 계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부활이 없으셨다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죄악가운데서 아무 소망이 없는 비참한 생애를 살아야만 했습니다(고전 15:14~19 참조).

 

주님의 부활은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하신 것 입니다(누가복음 24:38-39 참조).

 

⑵ 그리스도의 승천

 

다음에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그의 승천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후 40여 일 간 세상에 계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에 올리우심을 받으셨습니다.

 

사도행전 1:9-11 (반드시 찾아 읽으십시오).

 

⑶ 그리스도께서 하늘보좌에 앉으심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하늘보좌에 앉으심으로 결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말씀은 비유적인 묘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동등한 그의 놀라운 지위를 나타낸 표현입니다. 빌립보서에서는,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⑷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오심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그가 마지막 날에 심판 주로 내려오심으로, 자신의 높아지심을 세상에 들어내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낮아지심으로 오셨던 초림과는 너무나도 놀라운 차이가 있습니다.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재림 시에는 심판주의 장엄한 모습으로 오십니다. 만왕의 왕의 자격으로 오셔서 죄인들을 완전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결론 : 이처럼 그리스도는 낮아지심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지 만, 그의 높아지심으로 그는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장차 심판 주로 다시 내려오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고아처럼 세상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 주님은, 이처럼 영광스럽고 위대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분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이 분은 바로 나의 구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