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 원망에 관한 예화 모음
불평, 원망에 관한 예화 모음
▣ 불평
어느 왕의 이야기이다. 왕은 크나큰 돌을 길 한가운데 굴려다 놓고서 누가 이것을 옮기나 보려고 숨어 있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모두 불평만 할 뿐 그냥 지나쳤다. 얼마 후 한 농부가 수레에 채소를 싣고 시장에 팔러 가다가 돌을 보고서 말없이 치워 놓았다. 그런데 돌을 치운 자리에 돈주머니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돈주머니에는 많은 황금과 함께 '이 돈은 누구든지 이 돌을 치우는 자의 것'이라는 왕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어떤 일이 생길때 긍정적인 자세로 그러한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들보다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일을 도와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늘 어떤 일로 불평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메말라가지만 긍정적인 입장에서 문제해결을 돕는자들은 영적 성숙과 함께 영혼이 풍요로워지는것을 볼수있다. 우리모두 위에서 말하는 농부와 같은 자세를 갖는것이 좋을것 같다
▣ 장미의 불평
화단 구석에 장미가 한 송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불평이 많았는지 눈만 뜨면 불평을 털어 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장미는 밤이면 춥고 어두워서 못있겠으니 거실로 옮겨 달라고 주인을 졸랐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화분에 옮겨서 거실에 두었습니다. 얼마 후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여기는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니 창가에 옮겨 달
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창가에 옮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미는 창가에는 고양이가 지나다녀서 싫다며 화병에 넣어 방안으로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다시 장미를 화병으로 옮겨 방안에 두었습니다. 며칠 뒤 장미는 또 다시 주인에게 바깥 화단으로 옮겨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뿌리가 잘린 장미는 시들어버렸고 주인은 장미를 뽑아 쓰레기 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 일 못하는 사람이 불평은 많다
한 불평이 많은 청년이 왕을 찾아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왕은 잔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청년에게 주면서 말했다.
“포도주 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오면 성공비결을 가르쳐 주겠다. 단, 포도주를 엎지르면 네 목을 베리라”
청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시내를 한 바퀴 돌아왔다. 그러자 왕이 물었다.
“시내를 돌며 무엇을 보았느냐? 거리의 거지와 장사꾼들을 보았느냐? 혹시 술집에서 새어나오는 노래소리를 들었느냐?”
청년이 대답했다.
“포도주 잔에 신경을 쓰느라 아무것도 보고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바로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우고 일에 집중하면 주위의 유혹과 비난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일 못하는 사람은 불평이 많다. 분명한 인생관을 갖고 일에 몰입하는 사람은 불평할 틈이 없다.
▣ 감사를 불평으로 바꾸는 사람들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라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와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은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더운물과 찬물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사람의 마음 역시 감사와 불평이 솟아나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면 감사하는 일이 많아지고 불평하면 불평할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돌아와 감사했던 사마리아 한사람처럼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삶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한다.
▣ 불평 속에 담긴 불신앙
투덜댐은 어려운 상황이나 곤란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 비판적 불평이다. 그것은 자신 앞에서 느리게 진행하는 운전자에 대한 불평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허락하신 일들에 대한 불평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평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직접적인 위반이기도 하다. 내가 만났던 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이나 하나님이 쓰시는 지도자, 또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불평이 하나님의 가치기준과 계획,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반영이라는 것을 현명하게 알고 있었다. 한번 생각해보라! 어떤 아이가 그들 부모의 끊임없는 불평의 대상인 조직체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싶겠는가? 현명한 부모는 자녀들에게 사랑의 원리와 우리 주위의 불완전한 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가르친다. 불평은 항상 믿음 없는 가운데 행해지는 일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잠재적 능력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불평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환경이라도 다스리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최상의 일을 하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부정적 환경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 기도: 사랑의 주님, 내게 보내신 사람들과 공동체 때문에 내 맘이 상하고 어려운 형편에 처하는 때도 있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하소서. 내게 허락하신 구원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감사함으로 살게 하소서.
▣ 감사와 불평
영국 크랜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만 한 오막집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 감사와 겸손
2004년 5월 29일,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기념비 개막식이 있었다. 개막식에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참전 용사들이 초대되었다. 많은 이가 인터뷰에 응했으며, 훈장을 받은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리고 명예로운 훈장을 받은 참전 용사들은 한결같이 겸손했다. 교만한 태도나 자랑하는 마음, 특별 대우를 원하는 눈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전몰 장병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 눈물을 터뜨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원망하는 마음을 내비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막식 축하 행사가 진행되는 4일 내내, 그들은 감사와 겸손만을 드러냈다. 감사와 겸손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에게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45년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한 직후 “동료들의 피와 친구들의 희생 덕분에 찬사를 받는 사람은 항상 겸손한 미덕을 잃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전 용사들은 자신들의 곁에서 죽어간 전우들을 회상하며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처럼 겸손이란 감사가 충만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제 우리의 눈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로 돌려 보자.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해 고난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 잠시도 불평이나 교만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오늘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가 감당하신 십자가 고통의 공로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렇다면 어찌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일에 삶을 낭비할 수 있겠는가? 신자는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할 때에만 감사와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 천국가면 불평이 사라질까요?
두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다. 한 사람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게으를 뿐만 아니라 늘 불만불평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살이가 어떠했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부지런한 사람은 힘들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면서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불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서 자신은 단 한 번도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자기가 살던 집도 좁고 돈도 마음껏 써 보지 못하였고 또 자식들도 다 속을 썩이고 남편도 마음에 안 들고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었다며 계속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그 두 사람이 거처할 곳을 안내해 주셨다. 두 사람은 자신 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땅은 세상에서 보지 못한 아름다운 신천지였다. 부지런한 사람은 역시 하늘나라는 아름다운 곳이라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벌써부터 소매를 걷고 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이내 아름다운 집과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불만 많은 사람은 똑같은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무슨 하늘나라가 이러냐며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계속 투덜댔지만 소용이 없자 하는 수 없이 먹을 것을 구하고 잠잘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집은 이내 오물과 쓰레기로 가득차고 벌레들이 기어다녔으며 지붕에서는 비가 새고 벽은 금이 갔다. 그 사람의 불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차라리 세상이 더 좋았다며 한탄만 거듭했다. 얼마 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심판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난 너희 두 사람에게 똑같은 조건을 줘 보았다. 하지만 한 사람은 그 조건으로 천국을 건설했고 또 한 사람은 그 조건을 갖고서도 지옥을 만들었구나.” 그러자 불만 가득한 사람이 하나님께 따져 들었다. 천국은 무위도식하는 곳이지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곳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끝을 맺으셨다.
“천국을 오해하지 말아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심는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땅의 논리가 아니고 애초 천국의 논리였다. 천국의 논리로 살면 그 사람은 지옥에서도 천국을 건설하며 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국을 거저 주어도 지옥으로 만들 것이다. 너는 그와 같은 자이기에 결코 천국의 땅 한평이라도 내줄 수 없다. 네가 만든 지옥에서 영원토록 살아라.”
▣ 불평만 하는 사람
감옥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사람은 불평과 남을 탓하는 것이 체질화 돼, 한 순간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오랜 수형 생활을 마치고 출옥하게 되었을 때, 수도원으로 찾아가 수도원장에게 '나를 받아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은 이 사람에게 "좋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침묵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단, 5년 후에 한마디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5년이 흘렀습니다. 이 사람의 첫마디는 "잠자리가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5년이 흘렀습니다. 두 번째 말은 "음식이 나빠 못 먹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5년이 흘렀는데, 그 때는 "더 못살겠다"고 했습니다. 수도원장은 이 사람을 쫓아내며 말했습니다.
"그대가 여기 있는 동안 불평뿐이었으니, 나가 주기 바랍니다."
하루 동안 무슨 말을 많이 하며 살고 있나요? 거기에 감사가 빠져 있다면, 몹시 불행한 인생일 것입니다.
▣ 소 잃고 외양간 고치랴
본문: 시편 78;12∼17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가난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낡고 좁은 자신의 집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청년은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식자인 노인에게 찾아가 자신의 고충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청년에게 수탉 한 마리를 사서 집안에 풀어놓으라고 충고했습니다. 노인의 방법을 듣고 청년은 시키는 대로 했지만 사방에 날리는 닭 깃털과 흩어져 있는 닭모이와 똥 때문에 집안은 전보다 더 좁고 더러워지고 냄새까지 났습니다. 다시 청년이 노인을 찾아가자 이번엔 염소 한 마리를 수탉과 함께 집안에서 키우라고 했습니다.그렇게 하자 이젠 염소가 닭을 쫓아다니며 집은 더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노인은 이제 암소까지 키우라고 해서 그렇게 했지만 청년의 집은 온통 아수라장이 돼버렸고 그 집안에서는 자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잠조차 자지 못한 청년이 다시 노인에게 오자 노인은 집안의 동물들을 이제는 다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시켰습니다. 노인이 시킨 대로 하자 청년의 집안은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렇게 좁게만 느껴졌던 그 집이 한없이 넓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나님은 수많은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심을 확증하셨습니다.오늘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셨고 낮에는 구름으로,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반석을 쪼개어 물을 내셨고 그들의 죄악을 부단히 용서하셨습니다.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범죄하였고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시 78:17).‘원망’이란 단어가 모세오경에만 무려 21번이나 기록되고 있습니다.우리의 원망과 불평은 사실 절대적 빈곤이나 궁핍에서라기보다는 상대적 비교에 의한 박탈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은 때때로 나로 하여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도록 더 나쁜 조건을 주시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의 고마움을 경험케 하기 위함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이 더욱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이 말입니다.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적극적인 만족과 목표에 대한 대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 삶에 원망이 움트지 않기를 기도합시다. 미리 감사합시다.
* 기도: 오늘 하루도 내 앞에 펼쳐질 삶의 그림을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준비하시는 새로운 그림들을 목도하게 하시고 감사로 시작하게 하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학중 목사
▣ 여우의 불평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가다가 탐스러운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포도원을 보고는 군침을 흘렸다. 울타리의 틈을 찾다가 작은 구멍을 발견하고 들어가기를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 궁리 끝에 여우는 사흘동안 굶어서 몸을 여위게 한 다음에 간신히 울타리 구멍을 통과할 수 있었다. 포도원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여우는 배불리 포도를 따먹었다. 포만감을 느낀 여우는 이제 그만 나가야겠다고 울타리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지만 배가 너무 불러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여우는 굶어서 배를 홀쭉하게 만들고서야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때 여우는 이렇게 불평하였다. “결국 배 고프기는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마찬가지구나”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 6:7)
/이영무 목사(영신교회)
▣ 집 지은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글 중에 <집 지은 사람의 잘못일까?>라는 것이 있다. 톨스토이가 어렸을 때, 그의 집에는 매우 좋은 도자기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그 도자기들을 아끼며 소중히 여겼다. 톨스토이의 여동생은 그 도자기들 중에서도 가장 예쁜 것을 달라고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것을 선뜻 딸에게내어줄리가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이었다. 톨스토이의 여동생은 또다시 아버지에게 그 도자기를 달라고 강력히 졸라대기 시작했다. 눈물까지 주루주룩 흘리는 것이었다. 이쯤되자 아버지는 딸을 향해, "그래,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니 그것을 가지렴." 이라고 하였다. 여동생은 그 도자기를 손에 꼭 움켜쥐었다.오빠에게 보여주고 자랑도 하며 또 약을 올려주려고 오빠 방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빠 방을 향해서 뛰던 여동생은 그만 문턱에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 손에 들고있던 그 도자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났다! 여동생은 깨져 조각난도자기를 바라보면서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우리집을 지은 사람이 누구예요? 누가 우리집을 이렇게 지어서 저를 넘어지게 했단 말이예요?" 제 잘못, 제 실수는 탓하지 않고, 그렇게 좋은 집을 지은 건축자를 탓하고 원망하는 이 여동생을 기억하며 후일 톨스토이는<건축자의 잘못일까?> 라는 글을 썼다.
▣ 똑같은 돌부리에
어떤 사람이 집 앞 골목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다음날 또 그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 다음 날 조심한다고 했는데 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 다음 날 신경을 곤두세웠는데도 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 다음 날 돌부리를 비켜간다고 했는데도 또 넘어졌습니다. 그 다음 날 또 넘어져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돌부리를 방치한 행정당국을 욕했습니다.
그 다음 날 또 넘어져 이번에는 길 가운데 돌부리를 보고도 지나치는 무심한 국민의식을 한바탕 실랄하게 욕했습니다.
그 다음날 또 넘어져 노무현이는 뭐하냐고 한바탕 대통령을 씹었습니다.(대통령이 할 일이 없어서 너희 동네 골목길의 돌부리를 뽑냐?)
그 다음날 또 넘어져 '말세야 말세...'라며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오늘도 또 넘어질 것입니다.
넘어져서 온갖 핑계와 변명거리를 다 찾아내고 앉아 있을 것입니다.
아, 그냥 자기가 뽑아 버리면 다시는 안 넘어질 것을
/최용우
▣ 미련한 사람
다마스라는 사람은 사업을 하다가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빚을 갚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계속 망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사업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의 계획에서부터 결재를 받는 것까지 모두 주님께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은 주님께 맡기고 전도를 하러 다녔습니다. 그러자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망하고 있는 사업을 돌보지 않으니 더 망할 것이라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일어나기 시작했고, 날로 번창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빗나간 행동을 하고서 나중에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이중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뜻대로 행함으로써 자기 길을 굽게 하여 죄를 짓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원망함으로써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시므로 잘못된 일도, 원망할 일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 묵상: 당신은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있습니까?
▣ 불평과 원망
구약성경 가운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민수기이다. 민수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불평과 원망으로 얼룩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목이 마르다고,길이 나쁘다고,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원망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다베라에서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줘서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4∼5절)이라 하며 불평과 원망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불평과 원망의 속성은 점점 심해진다는 점이다. 즉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낳고 원망은 또 다른 원망을 낳는다. 마침내 불평은 습관이 되고 만다. 그러나 불평의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가 커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좁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불평은 비교에서 비롯된다. 비신자들의 형통은 비교하는 데서 오기도 하고 별로 믿음이 없는 다른 신자들이 잘사는 것을 보면서 불평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재판장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이 불만 바이러스가 독감보다 더 강하게 역사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불만 바이러스는 쉬지 않고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자기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 불평과 원망이 감사로 변한다. 필자도 지금까지 내가 원한 것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했으나 지난뒤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이뤘고 더 많이 받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불평과 원망은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보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불평과 원망의 병을 치유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다음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감사의 조건을 삼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내게 가장 좋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의 기준은 우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신성종 목사<대전 월평동산교회>
▣ 네탓이오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 보면 한결같이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 작은 도둑은 감옥에 있고 큰 도둑은 다 밖에 있다. 누구누구 때문에 감옥에 왔으니 나가면 가만 안 둔다' 하며 남에 대한 원망(怨望)으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도 누군가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다면서 자기의 불행이 남(他人)때문이라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너 때문에'를 청산하지 않는 한, 남에 대한 원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는 한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길은 없습니다.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야 내가 바뀌는 게 아니고,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빛이요 생명이신 하나님, 그분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내 속에 계십니다. 내 속에 계신 분을 발견하는 순간이 바로 '네탓이오'가 사라지는 순이 될 것입니다.
ⓒ최용우
▣ 원망과 불평은 마귀로부터 온다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원망과 불평은 사탄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탄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 입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의 종에게 불평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 써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를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하면서 소 떼, 양 떼 모두 다 도적맞고 불타 죽고, 자녀 10남매가 대풍에 집이 무너지면서 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입으로 원망의 말이나 불평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1장 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기1장 22절)고 했습니다. 마귀는 욥의 입에서 원망과 불평의 말이 나오게 하려고 온갖 고통과 불행을 갖다 주었지만 실패하고 도망갔습니다. 온몸에 악창이 나고 구더기가 버글버글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결코 그 입술로 범죄 치 않았습니다. 결국 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불평이 자꾸 나올 때는 내가 기도가 부족하고 은혜가 떨어져서 마귀가 나를 시험하는구나 하고 빨리 회개하고 정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http://comesee.wo.to)
▣ 어리석은 자의 원망
옛말에 "안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 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일이 뭔가 안되어 갈 성싶으면 곧바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탓합니다. 이러한 원망은 아담 때부터 있었습니다.(창3:12) 원망은 습관이며, 명백한 책임회피입니다. 그리고 원망의 말은 바로 바로 자신을 향해 쏘는 화살입니다.
옛날에 작전을 아주 잘 세우는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군이 세우는 작전은 늘 화창한 날에만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이었습니다. 그 날도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싸우기 전부터 승리를 확신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그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장군은 하늘을 욕하면서 일제히 하늘을 향해 활을 쏘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결국, 그 화살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렇듯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자신을 욕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http://je333.com)
▣ 욕심 때문에 원망
미국 어떤 마을의 제빵업자가 가까운 농장에서 버터를 사오곤 했는데 버터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사온 버터를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농장의 버터 무게가 많이 줄어 있었습니다. 화가 치민 제빵업자는 고발하였습니다. 그 버터 공장 주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판사가 "집에서 어떤 저울을 사용하고 있소?"라고 하자 "우리는 저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버터의 무게를 안다는 거요?" "네 그것은 간단하지요. 1파운드짜리 빵의 무게와 같게 만듭니다." "그럼 그 1파운드 짜리 빵은 어디에서 사오는 거요?"라고 묻자 그 낙농공장 주인은 고소인을 가리키며 "우리는 늘 저 제빵업자 한테서 사다 먹습니다." 결국 버터의 양이 줄어든 이유는 제빵업자의 빵이 줄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원망하기 전에 나라가 잘못됨이 나 때문임이 아닌지? 회사에 말썽이 생기는 것이 나 때문이 아닌지? 교회의 어떤 부서가 잘 안 되는 이유가 나 때문이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잘못은 내가 저질러 놓고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교인은 없는지? 가정에 화평이 없는 것이 나 때문이 아닌지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남을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4)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http://3049.wo.to)
▣ 원망, 불평은 축복을 가로막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애굽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할 때, 그들은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면 좋겠다”하는 말은 요사이 말로 “예수 안믿을 때가 더 좋았다. 천당이구 뭣이구 다 귀찮다. “에이, 교회 그만두자”하는 말과 같습니다. 마귀의 종노릇하고 죄의 종노릇하는 때가 더 좋았다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진노하실 말입니까.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의 말, 불평의 말을 다 들으시는 분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점치는 귀신을 쫓아낸 것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매를 맞고 쇠고랑을 찼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찬송하고 기도했더니 쇠고랑이 풀려져 나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옥사장과 그 가정을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불평할 수밖에 없을 때 오히려 찬송하고 감사하면 더 큰 기적이 일어나고 더 큰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이 밖에 있는 자유인들에게 권면하기를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더구나 저주받고 지옥에나 가야 마땅한 사람이 구원받고 엄청난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입으로 감사는 하지 않고 불평이나 하고 원망하는 말이나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섭섭해하시고 괘씸히 여기시겠습니까? 불평, 원망은 축복을 도망가게 하고, 마귀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http://je333.com)
▣ 원망과 불평은 모든 행복과 건강을 빼앗아 간다
불평마귀에 잡힌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의복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도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마귀를 끌어들이는데 행복합니까? N.V.Peale 박사의 글에 보면 어떤 여자가 좋은 옷을 입고 비싼 반지를 끼고 기차를 탓는데,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시켜놓고는 음식 맛이 없다느니 종업원이 불친절하다느니 기차는 왜 이렇게 더럽냐느니 등등 계속불평만 늘어놓더랍니다. N.Peale 박사는 그 여자를 “불평 만드는 공장”이라고 한 것을 읽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불평 원망하는 사람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고 교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자신도 결국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거나 죽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신경쇠약이나 노이로제나 위장병, 불면증 등에 걸려 건강한 생활을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했고,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10장 13절)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4장 6절)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 대신에 기도에 힘씁시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네가 불평거리를 광고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상품을 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했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나는 구두가 없는 것을 불평했다.”고 했습니다. 원망, 불평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시고, 사람들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민 14:27)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약5:9)
원망 불평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http://je333.com)
▣ 불평, 원망에 관한 성경 말씀
0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출15:24)
0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출16:2)
0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민14:2)
0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민 14:27)
0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21: 5- 9)
0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
0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불평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욥9:27)
0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욥10:1)
0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시37:1)
0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시37: 7, 8)
0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0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잠23:29)
0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마20:11)
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 10)
0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며(빌2:14-15)
0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약5:9)
0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벧전4:9)
0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유1:16)
▣ 불평에 관한 금언
0 불평은 습관이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악습이며 감사를 모르는 자의 넉두리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서는 감사 외에는 다른 말을 들을 수가 없다.
0 불평은 불평을 낳고, 그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낳는다. 불평으로 가득한 가정이나 사업장에 축복이 내린 것을 보지 못했다.(김경선)
0 우리가 불평을 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가 커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제레미 테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