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무소유의 행복

공 상희 2011. 7. 30. 19:18

무소유의 행복

행복의 조건 / 마지막 유서 / 누가 가장 행복한가 / 세상에 두고 가야 할 것 / 모든 것이 충족되었을 때 / 햇살 한줌의 행복 / 행복한 한스 / 돈보다 소중한 것 / 속옷 한 벌 / 가난한 사람은 / 편안한 인생 / 술지게미와 쌀겨 / 고쟁이 한 벌쯤은 / 공짜의 대가 / 가장 소중한 재산 / 가진 것이 근심이다 / 호숫가의 오두막집 / 무소유의 행복 / 내 것이란 없다 / 잃어 버리면 그만 / 무소유로 일관한 삶 / 머무는 곳 없이 / 따뜻한 나눔 / 은둔의 기쁨 / 나를 속박하지 말라 / 부의 덫에서 벗어나 / 이솝에게 배우는 무소유 / 거지 성자 / 돌아가련다 / 어머니의 가르침 / 뇌물을 받지 않는 이유 / 베를 짜는 까닭 / 어떻게 했기에 / 한 번의 실수 / 생존의 비결 / 이름도 남김없이 / 낮춤 / 아름다운 원칙 / 깨끗한 인생 / 집착의 괴로움 / 욕망에 관한 이야기 / 골치아픈 일들 / 빈손이 일손 / 재산이 없어도 / 혀끝의 집착 / 죽음에 대한 단상 / 붓다의 가르침

 

 

우리는 눈앞에 놓인 약간의 이익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어 버렸다. 행복한 삶이란 나 이외의 것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사소한 행복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몇 푼의 돈 때문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버리는 것은 불행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같다. 하루 한 시간의 행복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남은 인생을 계산하라. 그 중에서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날은 며칠인가. 만약 돈을 버는 데 들여야 할 시간이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시간보다 많다면, 당신의 삶은 불행한 것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이란 죽음 뒤에 얻어지는 것이다.

 

머리말

송나라 사람이 길을 가다가 넓적한 나무판을 주웠다. 그 나무판에는 어떤 부자의 재산목록이 상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나무판을 몰래 감추어두고 하루 종일 거기에 새겨진 재산목록을 계산하면서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본 이웃 사람이 물었다.

"나무판에 무엇이 씌어 있기에 그리 즐거워하시오?"
그러자 나무판을 주운 사람은 몹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부자가 되는 것도 이젠 시간 문제입니다." -<열자. 설부편>

결국 우리는 남의 재산목록이나 셈하면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며, 또 언젠가는 그들처럼 되리라는 환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정작 부자가 되는 사람은 남의 재산목록이나 세고 있는 당신이 아니라, 이미 당신의 속마음을 간파하고 당신에게 다른 사람의 재산목록을 읽도록 만든 사람들이다.

행복의 조건

하녀가 커다란 물그릇을 갖다 주었다. 그는 하녀가 가져온 물그릇에 손을 씻었다. 그러자 하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이 물은 마시라고 가져온 건데요."
   그는 민망한 표정을 짓고 나서 새로 물을 가져오게 한 다음 그 물을 마셨다.

그 다음날, 하녀가 똑같은 그릇에 물을 떠왔다. 그는 물그릇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녀는 손 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그 물은 발을 씻으라고 가져온 건데요."
   화들짝 놀란 그는 입안에 담긴 물을 뱉어내고 그 물에 발을 씻었다.

그 날 이후로도 하녀는 물그릇을 가져왔다. 하지만 똑같은 그릇에 물을 떠오니 어떤 물이 마실 물ㄹ이고, 어떤 물이 씻는 물인지 모두지 알 수가 없었다.
   참다 못한 그가 하녀를 꾸짖었다.
   "아무리 배우지 못했다해도 발 씻는 물그릇과 마실 물을 담는 그릇조차 구별할 수 없어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버린 하녀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선생님--. 물이 생길 때부터 발 씻는 물과 마실 물이 따로 생기나요? 저는 선생님이 목이 말라 보였을 때는 마실 물을 가져오고, 발에 땀이 찼을 때는 발 씻을 물을 가져왔을 뿐이예요."

하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커다란 몽둥이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전율을 느꼈다. 물은, 그대로 물인 것이다. 날 때부터 먹을 물과 씻을 물이 따로 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생님, 그것이 신이 섭리입니다. 그 분들이 전생에 얼마나 선한 업을 지었으면 오늘날 저렇게 행복하게 살겠습니까? 저도 지금부터 열심히 선한 업을 쌓으면 내세에는 저 분들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제 삶에 불만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다음 생에 행복하게 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니까요."

-나는 친구와 함께 배낭을 메고 인도로 떠났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인도의 모습은 참으로 참혹한 것이었다. 거리에는 퀭한 눈빛의 거지들이 우글거리고, 그들이 사는 거주지는 돼지우리처럼 불결했다. 밤이 되면 거리의 떠돌이들은 아무 데나 쓰러져 잠을 자고, 아침이면 소의 배설물과 시장에서 내다 버린 쓰레기로 인해 도시 전체가 시궁창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내가 머물던 호텔 앞에 아주 성실해 보이는 사이클 릭샤꾼이 있었다. 그는 따가운 햋볕이 내리쬐는 담벼락에 쪼그려 앉아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렸다. 그의 옆에는 항상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그의 아들인 듯했다. 굶주리고 헐벗은 어린아리를 데리고 담벼락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내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보였다.

 

마지막 유서

한 구두쇠가 드디어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부자가 되었다.
   "그 동안 나는 너무 고생만 하고 살았어. 이제부터는 돈을 모을 필요가 없으니 죽을 때까지 안락한 생활을 누려야지."
   하지만 그의 결심은 너무 늦고 말았다. 그의 결심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그만 죽음의 사자기 찾아왔던 것이다. 저승사자를 보자 구두쇠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두쇠는 저승사자를 붙들고 애원했다.
   "이 가련한 인생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 저는 지금껏 고생만해왔습니다. 저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저승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도 말고 사흘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가진 재산의 3분의 1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럼 이틀만 여유를 주십시오. 제가 가진 재산의 3분의 2를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저승사자는 구두쇠의 요구를 거절했다. 절망에 빠진 구두쇠는 눈물을 흘리며 저승사자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그럼 제가 가진 재산을 다 줄테니 단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하지만 저승사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결국 구두쇠는 저승사자를 바라보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럼 글 한 줄을 쓸 시간만이라도 주십시오."
   구두쇠는 다음과 같이 혈서를 썼다.
   "사람들아. 자신의 인생을 살라. 나는 300만 냥이나 갖고 있으면서 단 한 시간도 내 마음대로 살 수 없었다." <수피의 가르침에서>

남은 인생을 계산하라. 그 중에서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날은 며칠인가. 만약 돈을 버는 데 들여야 할 시간이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시간보다 많다면, 당신의 삶은 불행한 것이다.

가난은 일시적인 결함이지만 지나친 부는 영원한 질병이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참된 부는 존재하지 않는다.-칼릴 지브란<아홉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

 

누가 가장 행복한가

왕께서는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으며 수많은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께서 훌륭하게 생애를 마쳤다는 것을 알 때까지 저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죽기 전까지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훌륭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느 사람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들 속에는 늘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삶이 부유하다고 해서 자만할 것도 아니며, 가난하다고 해서 절망할 것도 아니다. 한때 수십 개의 기업을 소유하고도, 지금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나라 밖을 떠도는 가련한 인생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이란 죽음 뒤에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가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세상에 두고 가야 할 것

그들은 세상의 즐거움이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곳 사람들은 집 앞에 무덤을 파고 매일 참배를 하며, 먹는 것이라고는 땅에서 나는 야채뿐이었다.

"그대들은 왜 집 앞에 무덤을 파는가?"
추장이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것은 죽음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은 늘 죽음을 이야기하고, 내세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현세에 대한 집착과 번뇌도 사라지게 되지요."
"그럼 왜 채소만 억고사는가?"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우리의 내장을 산 짐승의 무덤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몸을 짐승의 무덤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육식을 하지 않습니다. 먹는 즐거움이란 결국 혀끝과 목구멍의 사치일 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추장은 사람의 두개골 두 개를 꺼내 그 중 한 개를 알렛사드로스 대왕에게 내밀며,
"이 해골은 누구의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전혀 모르겠다."
"이것은 옛날 최고의 영화를 누리던 왕의 해골입니다. 그는 백성을 학대하고, 속세의 쓰레기를 모아 자신으 것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끝내는 죽음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지옥을 자신의 영원한 집으로 삼았습니다."
"그럼 두 번째 해골은 누구의 것인가?"
"이 분은 가장 현명했던 왕의 해골입니다. 그는 신하와 백성을 공평하게 대우하고,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그 역시 죽음에서 영혼을 빼앗겼으나 천국을 영원한 집으로 삼았습니다. 두 개의 해골 중, 대왕의 것을 어느 것입니까?"

알렉산드로스는 추장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자신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가야 할 것은 해골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순간 그는 자신이 페르시아와 동방을 정복하고, 그 영토를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깨달았다.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물질적 부를 척도로 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문명인과 미개인의 차이는 아주 하찮은 것이다. 미개인들이 스스로의 몸에 문신을 새겨 넣은 사람들이라면 문명인은 금속으로 도금한 옷을 입고 화학적 입자 덩어리로 화장을 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단지 미개인들은 부족의 용맹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문명인들은 얼굴을 감추기위해서 몸을 치장할 분이다.
   누군가를 해치고, 무엇인가를 차지하려는 것만큼 악한 일은 없다. 이 세상에 정의로운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전쟁은 아무런 개인적 원한도 없는 타인을 죽이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애국을 부르짖는 자에게 속지 말라. 애국자란 자기가 무엇 때문에 소리 지르는지도 모르면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일 뿐이다.
   이 세상에 남겨야 할 것은 해골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했던 성자들이 남긴 것은 땅과 해골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아름다운 삶이었다.

 

모든 것이 충족되었을 때 지옥이 시작된다.

어떤 나라에 위대한 스승이 있었다. 스승은 늘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리라."
   드디어 스승과 제자가 모두 죽었다. 그들은 저승의 문을 두드렸다. 웅장하고 아름답고 호화로운 식탁을 확인한 스승이 제자들에게 말했다.
   "보라. 이것이 바로 내가 너희들에게 약속한 천국이다!"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 그들은 따분해 했다. 그래서 지상의 인간세계를 보여달라고 하여, 인간들과 비교하면서,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스스로 달랬다.
   그래도 따분한 생각이 들어 다시 안내인에게 부탁했다.
   "미안하지만 저기 보이는 지옥문을 열어 잠깐 보여줄 수 없소?"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인간들을 보면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옥아야말로 매일 노동에 시달리고, 혹독한 형벌에 고통받으며,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로 득실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안내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니. 당신들은 지금 어디에 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넓은 집과 안락한 생활, 굳이 땀 흘려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만큼의 재산,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식들---그러나 이러한 바램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만 충족되면 욕심 없이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때부터는 삶의 여유를 즐기고, 아는한 전원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관조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욕망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영원히 불행하다. 설령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햇살 한줌의 행복

기원전 5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는 호박으로 만든 그릇 하나와 누더기 한 벌이 전 재산이었다. 그는 낮이면 거리를 걸어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밥이 되면 썩은 나무 구멍이나 굴러다니는 나무통 속에서 잠들었다.

그는 환한 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이유를 불으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현자를 찾기 위해서네."

어느날 디오게네스가 구걸한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있을 때, 어린아이가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것을 보고는 무릎을 치며 외쳤다.
   "밥그릇도 필요 없잖아!"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밥그릇마저 던져 버렸다.

어느 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디오게네스에 대한 소문을 듣고 강가로 찾아왔다. 알렉산드로스가 찾아왔을 때 디오게네스는 윗도리를 벗고 강가에서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현자를 만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에게서 적지 않은 위안을 받았다. 그의 모습이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헐벗고 가난한 철학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대왕은 물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조금만 비켜 주시오. 당신이 햇살을 가로막고 있지 않소?"
   기가 막힌 대왕이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처럼 살고 싶소."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난 다시 태어나더라도 대왕처럼 살긴 싫소."

 

행복한 한스

커다란 금덩이를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바꾸다가 드디어는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시원해 하는 한스.

어떤 사람은 한스가 남의 것에 욕심을 부린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다. 분명 그는 눈앞의 고통을 감수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끼던 것을 일순간의 편안함고 바꾸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하지만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면, 그가 얼마나 현명한 인간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그의 목표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 당초 금덩이는 그의 것이 아니었으며, 그가 원하던 것도 아니었다. 만일 그가 금덩이를 말고 바꾸지 않았다면, 말을 소와 바꾸지 않았다면, 소를 돼지와 바꾸지 않았다면, 등등  결국 그는 무거운 금덩이를 품에 안은 채 지친 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긴 여행 동안 그는 한 번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짧은 순간의 행복을 위해가장 소중한 것들을 미련 없이 버렸다. 그리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했다.(무소유?)

행복이란 세상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다. 나를 속박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버려라.

필요 이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필요 이상의 필요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 이상의 소유는 소유자의 짐을 더욱 무겁게 할 뿐이다.

 

돈보다 소중한 것

구두 수선공이 대답했다.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지요. 그래서 돈을 모으거나 계산해본 일도 없습니다. 그날 벌어서 그날을 사니까요."
은행가는 구두 수선공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돈을 좀 주지. 앞으로 끼니를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새벽에 노래를 부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 내가 잠을 자야 하거든."
구두 수선공은 돈을 받아들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저녁부터 구두 수선공은 고민에 빠졌다. 은행가로부터 받은 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난감해진 것이다. 처음엔 벽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숨겨두었지만 도무지 안심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그의 입에서 노랫소리가 사라지고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며칠 후 구두 수선공은 바짝 마른 몸으로 은행가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돈을 은행가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저에게는 돈보다 노래와 잠이 더 소중합니다. 돈 때문에 그걸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는 약간의 이익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어 버렸다. 행복한 삶이란 나 이외의 것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은 식어 버린 불꽃이나 어둠 속에 응고된 돌멩이가 아니다. 별을 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발에 채인 돌멩이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때, 자신이 잃어 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행복은 시작된다.
   사소한 행복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몇 푼의 돈 때문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버리는 것은 불행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같다.

스스로 부유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사람의 재물이 그 생명을 구속할 수는 있으나, 가난한 자는 재물로 인하여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성서. 잠언13장>

 

속옷 한 벌

어느 왕이 몹쓸 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어떤 현자가 왕에게 기막힌 처방을 알려주었다. 세상에거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병이 낫는다는 것이었다. 신하들이 행복한 사람을 찾아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가진 땅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이고, 재물은 창고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저는 세상의 미인들을 모두 아내로 삼아보았지만 아직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모은 재산이 대대로 이어지고, 제가 영원히 죽지 않을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던 중 한 신하가 어느 한적한 시골에 이르렀다. 신하는 날이 저물자 농사를 짓는 부부에게 하룻밤 묵을 잠자리를 청했다. 농사꾼 부부는 나그네의 옷차림새가 범상치 않음을 알고, 그에게 무슨 일로 이런 산골에 왔느냐고 물었다.
   신하는 약간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농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하로부터 자초지종의 얘기를 들은 부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한 일이군요.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니요. 우리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데."
   그 말을 들은 신하는 부부를 비웃었다. 이런 보잘것없는 집에 살면서 간신히 끼니를 잇고 있는 농사꾼 부부가 행복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한 사람은 이 부부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신하는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 걱정되어 부부에게 속옷을 팔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농사꾼 부부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당신에게 팔 속옷이 없습니다. 우리 부부는 여태껏 속옷을 입어본 일이 없거든요."

행복한 삶이란 남이 평가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았다고 해서 불행한 삶은 아니다. 그것은 편견일 뿐이다.

 

가난한 사람은 잃을 것이 없다.

    두사람의 남자가 랍비에게 상담을 하러 찾아갔다. 한 사람은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뱅이었다. 두 사람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부자가 조금 일찍 도착했으므로 먼저 상담을 하게 되었다.
    그는 한 시간이 넘어서야 상담을 마치고 나왔다. 가난뱅이가 그 뒤를 이어 랍비를 만났다. 하지만 랍비의 상담은 5부노 안 되어 끝났다. 가난뱅이는 몹시 서운한 생각이 들어 랍비에게 항의했다.
   "선생님. 방금 전에 이곳을 찾아왔던 부자에게는 한 시간이나 상담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단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랍비님이 공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랍비는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자. 내 아들아, 부자는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한 시간이나 걸린 것일세."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면 걱정할 것도 없다. 오히려 근심에 쌓여 있는 쪽은 부자이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 돈을 갚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재산을 잃을까 근심한다. 아무 것도 갖지 않는 당신은 오늘 편안히 잠자리에 들어도 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 슬고 녹이 슬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을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슬지 아니하며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믿음이 적은 자들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성서. 마태복음 6장>

 

편안한 인생

노나라에 살던 검루 선생은 모든 사람들이 두루 존경하던 선비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증자가 제자들과 함께 문상을 갔다.
증자가 방에 들어가 선생의 시신을 보니 머리에는 기왓장을 베고, 시신은 짚으로 엮은 멍석 위에 누워 있었다. 선생은 헌 솜으로 지은 옷을 입고 누워 있었는데 안팎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남루했다. 시신을 덮은 이불조차 너무 짧아 선생의 손발을 다 가리지 못할 정도였다.

증자가 하도 딱해 선생의 부인에게 말했다.
"이불을 비스듬히 덮으면 시신을 전부 가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선생의 아내가 대답했다.
"선생이 곧은 것을 좋아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선생은 이불을 비스듬히 덮는 것조차 원치 않을 것입니다."
증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시호는 무엇으로 지어 드릴까요?"
"편안한 이름으로 지어 주십시오."
그 말을 들으니 증자는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증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선생은 살아 있을 때도 먹는 것이 입을 채우지 못하였고, 입는 것도 몸을 가리지 못하였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시신 곁에는 술 한 잔과 고기 한 점 놓여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찌 편안한 이름을 붙일 수 있겠습니까?"
증자의 부인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지난날 선생은 국상의 자리도 마다하였습니다. 한 나라의 재상이란 자리가 선생에게는 과분한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임금이 곡식 서른 가마를 하사했을 때도 선생은 끝내 받지 않았습니다. 선생에게는 필요 이상의 재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담담한 맛을 달 게 여겼고, 비천한 지위를 편안히 여겼으며,가난한 것을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걸림 없이 살아온 분에게 어찌 편안한 시호가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증자가 소리쳤다.
"진실로 그 사람의 그 아내로다!"<유향. 열녀전. 노검루처>

화엄경에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이 비참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편견일 뿐이다. 그 사람이 재물에 욕심부리지 않고, 스스로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

 술지게미와 쌀겨

"사람들은 신분이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집안이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오. 이는 사람의 본성이 다 그렇기 때문이 아니오?"
그러자 송홍이 대답했다.
"신이 듣기로는 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일수록 잊어서는 안 되며, 술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쫓아내지 않는다고 합니다."(조강지처)

술지게미란 술을 빚은 뒤에 남는 곡식의 찌꺼기다. 술지게미는 맛이 달콤하고 새콤해서 배가 곯은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술기운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술지게미를 먹는 것은 가난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난을 잊고 산다. 알량한 재산을 모으고,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궁리만 하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날의 행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조금 부유해졌다고 해서 옛친구를 잊고, 조강지처를 버리를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자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부를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주어진 것에 늘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부를 축적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려는 사람은 적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다. 부를 나누어 갖기는 어렵다. 부자일수록 그것을 누리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가 졸부가 되는 것을 경계하라. 그가 졸부가 되는 순간, 당신은 사랑을 잃을 수도 있다.

고쟁이 한 벌쯤은

 진나라 때의 범선은 학문이 뛰어나 벼슬에 오를 기회가 많았으나 한 번도 벼슬길에 아가지 않았다. 그는 품행이 청렴하고 결백했다. 이 소문을 들은 고을의 태수가 범선의 초가집이 무너져 간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고쳐주고자 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 또 흉년이 들어 범선이 굶주리게 되자 태수가 식량을 주려 했지만 이것 역시 받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고쟁이 한 법 장만해주지 못하는 사람은 무능하다. 하지만 그릇된 방법으로 아내를 사람도 천박하다.
무능함은 죄가 아니다. 더구나 구린내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진 가난은 더욱 그렇다. 그가 정말 행복한 것은 남편의 정직함을 믿고 기꺼이 가난을 감수한 아내를 가졌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는 사람은 많은 재산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군중이나 실력자 밑에서 노예 노릇을 하지 않고서는 재산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사람은 모든 것들을 지속적인 풍요 속에서 소유한다.<에피쿠로스.단장>

공짜의 대가

열자는 기원전 400년경 정나라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전설로 전해지듯 그는 세속의 삶을 버리고 도를 얻어 자재로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집안은 늘 가난했다.
열자가 몹시 가난하여 얼굴에 주린 기색이 완연했을 때였다. 어떤 손님이 열자의 군색한 살림살이를 알아차리고 정나라 군주인 자양에게 가서 말했다.
"열자는 도를 얻은 사람입니다. 그가 지금 이 나라에 살면서 매우 곤궁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을 예우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날 것입니다."
자양은 이 말을 듣고는 사람을 시며 역자에게 곡식을 갖다주도록 했다. 그러나 열자는 그 곡식을 받지 않았다.

"자양은 내가 도를 얻었음을 알고 곡식을 보낸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듣고 보낸 것이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남을 평가하는 사람은 남을 탓할 때도 반드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것이오. 그런 사람이라면 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때에도 분명 남의 말을 듣고 결정할 터이니 그 곡식을 받지 않은 것이오."
부인은 곡식을 받지 않은 것을 원망했으나 열자는 마냥 웃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백성들이 난을 일으켰다. 성난 백성들은 자양을 잡아죽이고, 그로부터 녹을 얻어먹은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그제야 부인은 남편의 현명한 판단을 고마워했다.<장자. 잡편/ 열자.설부편>

뚜렷한 이유 없이 베푸는 친절에는 독이 스며 있다. 누군가 공짜로 재물을 주거든, 먼저 그 사람이 올곧은 인물인지를 살펴라. 그가 올곧은 인물이 아니라면 그것은 공짜가 아니다.

 

가장 소중한 재산

도간이 고을의 물고기와 젓갈을 관리하는 말단 관리로 있을 때였다. 하루는 사람을 시켜 젓갈 단지를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러자 어머니는 젓갈 단지를 돌려보내면서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관리인 네가 사사로이 관청의 물건은 보낸 것은 나에게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네가 관청의 물건에 손을 댔으니 오히려 나에게는 근심만 더해갈 뿐이다."

사람만이 진정한 재산이다. 가치가 있는 사람은 내가 한순간의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나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잃었을 때는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만큼의 진정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가. 주위를 돌아 보라. 내 곁에 누가 있는가?

그 사람이 귀한 사람이면 그가 움직이는 것을 볼 것이요.
   그사람이 부자이면 그가 베푸는 것을 볼 것이요,
   그 사람이 궁한 사람이면 그가 받지 않는 것을 볼 것이요,
   그 사람이 천한 사람이면 그가 하지 않는 바를 볼 것이요,
   그 사람이 가난하면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보라. --<유안. 회남자. 범론훈>

 

가진 것이 근심이다.

부인이 불소시개로 청낭서를 태우고 있었다.
"이 무식한 사람아. 이게 무슨 책인지 알까나 천하의 명의 하타가 전해준 의서란 말이야."
"그런 걸 배워서 무엇해요?"
"그런 거라니! 내가 천하의 명의가 되어 우리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데!"
"그말을 들은 아내는 피식 코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천하의 명의였던 화타도 결국 옥에서 비참하게 죽지 않았소?"

부질없는 욕심, 뜻하지 않게 얻은 행운이 근심의 뿌리가 될 수도 있다.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재물을 얻는 것도 반드시 행복한 일은 아니다. 퐈타는 자신이 가진 재주 때문에 이른 나이에 죽었다. 청낭서를 태운 아내에게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더 소중했던 것은 남편의 목숨이었다.
가난이 항상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성자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호숫가의 오두막집

월든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헨리데이비드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지만 다른 친구들과 달리 출세의 길을 걷지 않았다. 다만 잠시 교편을 잡은 적이 있으며, 일생의 대부분은 육체노동을 하며 살았다. 그는 어떤 세속적인 일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원했고, 그대로 실천했다.

그는 월든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홀로 지냈다. 그는 이곳에서 삶의 정수를 맛보며 오직 자연과 대면한 채 살았다. 그는 삶에서 도피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19세기 고정의 하나인 <시민의 불복종>을 써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탄생시키고,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강연활동을 전개하는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는 최소한의 필수품만으로 전원생활을 하면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에게 자연과의 행복한 교감이라는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그는 집을 갖는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부질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농민들이 은행에서 빚을 얻어 집을 짓는 것을 보고 그들이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집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집이 그들을 소유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5년 이상을 순전히 육체노동만 하며 살았다. 그 결과 그는 한 해에 6주만 일하면 1년 동안의 생활비를 전부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을 때달았다. 그래서 여름과 겨울을 공부에 전념하는 데 쓸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웠다.

아마 사람들은 6주 동안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 최소한의 필요 비용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검소하게 살았고, 문명의 이기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정직한 사람은 셈을 할 때 열 손가락을 쓸 필요가 거의 없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발가락 열 개를 더 사용하면 된다. 그 이상은 하나로 묶으면 된다. 간소하게 살라. 계산은 엄지 손톱 위에다 쓸 수 있을 정도로만 하라."

더구나 그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필수품조차 줄였다. 그가 정의한 생활필수품이란 태초부터 존재해 왔거나, 너무도 중요한 나머지 미개인이나 극빈자나 철학자까지도 그것 없이는 살아볼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극소수뿐인 것을 의미한다. 대초원에서 사는 들소의 필수품은 마실 물과 약간의 풀이다. 그 외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편안히 누울 수 있는 그늘 뿐이다. 먹을 것과 숨을 곳 이상의 필수품이 필요한 동물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 <헨리 데이비드 Thoreau. 월든>

그는 불행했는가? 한적한 호숫가에 낡은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소로가 한 일은 농사를 짓고, 독서와 사색을 하고, 자연과 교감한 것뿐이었다. 그의 사색은 곧 이 오두막에서 출발했고, 그의 철학은 자연과의 대화 속에서 무르익었다. 그가 가난하게 살았다고 해서, 혹은 그가 최소한의 문명조차 누리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는 그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호사와 영화를 누리며 아름다운 옷으로 몸을 휘감고 주연을 베푸는 진짜 이유는 본래 가난하고 초라한 자신의 존재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 수많은 촛대와 보석, 춤추는 무희, 장식과 가면은 무엇 때문에 필요하겠는가? <쇼펜하우어 인생론>

 

무소유의 행복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아직 맛보지 않은 어떤 것을 찾아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하고, 소유하지 못한 것을 소유하려면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한다. 모든 것에서 모든 것에게로 가려면 모든 것을 떠나 모든 것에게로 가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이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류시화. 모든 것>

이 세상에 내 것이란 없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가장 위대한 행복론자였던 에피쿠로스(Epicurus)는 인간의 욕망을 다음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생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욕망이다. 이 욕망에는 생존에 필요한 먹을 것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입을 것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러한 욕망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고통이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둘째는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욕망이다. 즉 성적인 욕망이 여기에 속한다. 사람이 성행위를 통해 자손을 번식시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성적 쾌락을 위해 추구하는 욕망은 불필요한 것이다.

셋째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이다. 첫 번째 욕망을 제외한 대부분의 욕망이 여기에 속한다. 즉, 사치와 탐욕, 부에 대한 욕망이 그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끝이 없고, 영원히 충족되지도 않기 때문에 반드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첫 번째 욕망만 충복시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다. 하지만 첫 번째 욕망을 충족하는 것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인류가 첫 번째 욕망에 만족하며 살아 왔다면 이 지구상에는 어떠한 전쟁이나 폭력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시기와 질투, 권력에 대한 욕망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앞으로도 계속 전쟁을 일으키고, 남을 해치고, 자연을 파괴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파멸로 이끌 것이 분명하다.

행복에 이르는 길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자인이 원하는 만큼 소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하는 것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행복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은 원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무소유의 정신이 어떤 것이며, 그것이 왜 행복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일화가 있다.

 간디가 서둘러 기차를 타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너무 급히 서두는 바람에 간디의 신발 한쪽이 벗겨져 기차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수행원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플랫폼에 떨어진 한쪽 신발을 바라보며 발을 굴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간디가 나머지 신발 한쪽을 벗어 플랫폼으로 던졌다. 수행원이 깜짝 놀라 간디에게 물었다.

"선생님. 나머지 한쪽 신발마저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간디는 자신의 맨발을 바라보며 태연히 대답했다.
"한쪽 신발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두 쪽이 있어야 누가 줍더라도 쓸모가 있지 않겠나?"

만약 간디가 잃어 버린 한쪽 신발이 아까워 언젠가 그것을 찾겠노라고 결심했다면, 그는 늘 마음이 초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남은 신발 한 쪽을 버림으로써 어떠한 얽매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모든 사람들은 영원히 한쪽 신발을 신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광적으로 나머지 한 쪽 신발을 찾아 헤매야 한다. 한쪽 신발이 없다는 것에 항상 불만과 부족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것을 갈구하며 세월을 보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운명적인 탐욕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나머지 한 쪽 신발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면 된다. 얼마나 홀가분해질 것인가?

 

 잃어 버리면 그만이지

초나라 사람 중에 활을 잃어 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전혀 활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자네가 잃어 버린 화살은 천하의 명품인데 왜 찾지 않는가?"
그러자 활을 잃어 버린 사람이 대답했다.
"초나라 사람이 잃어 버리고 초나라 사람이 주우면 됏지 무엇 때문에 이를 다시 찾겠는가?"
공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그의 말 중에 '초나라'라는 말만 빼면 훌륭하구나! 즉 사람이 잃어 버리고 사람이 주우면 됐지 무엇 때문에 이를 다시 찾겠는가?"
노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공자의 말 중에서 '사람'이라는 말만 빼면 훌륭하구나! 즉 잃어 버리고 주우면 됐지 무엇 때문에 이를 다시 찾겠는가?" -<여씨춘추.12기>

  어떤 것을 잃게 되거든 그것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하라. 그것들은 그 분이 허락하신 동안만 잠시 맡아서 가지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다. 마치 길을 떠난 나그네가 잠시 여관에 머무는 것과 같다. --<에픽테토스. 단편>

 

 무소유로 일관한 삶

달마의 제자였던 혜만 선사는 늘 바늘 두 개만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는 겨울에는 걸식을 하며 누더기를 깁다가 여름에 와서야 바늘을 버렸다. 그런데도 몸에는 이가 들끓지 않았으며, 잘 때에는 꿈을 꾸지 않았다. 또한 그는 항상 걸식을 하고, 한자리에서 이틀 밤을 어물지 않으며, 가는 절마다 장작을 패거나 짚신을 삼았다.

전한 시대의 광형은 집에 촛불을 밝힐 돈이 없어서 벽에 구멍을 뚫고 옆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책을 읽었다. 손강은 등잔 기름을 살 수 없어 겨울이면 하얀 눈에 반사되는 눈빛에 책을 읽었고, 진나라 차윤은 여름철이면 명주 주머니에 수십마리의 반딧불을 잡아넣고 그 애래에서 글을 읽었다. 또 손경은 책을 읽다가 졸음이 오면 새끼줄을 목에 매서 이를 들보 위에 걸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손신이라는 사람은 겨울이면 덮을 것이 없어서 한 다발의 볏짚을 이불로 삼아 밤에는 그 짚을 깔고 누었다가 아침이면 그 짚을 거두었다.

증자가 위나라에 살 때 옷은 낡아서 모두 해지고, 얼굴은 종기로 얼룩졌으며, 손발에는 못이 배겨 있었다. 사흘 동안 굶을 때도 있고, 10년이 지나도 옷 한 벌 입지 못했다. 그래서 갓을 바로잡으면 갓끈이 끊어지고, 옷소매를 잡으면 팔꿈치가 드러나며, 신을 신으면 뒤축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구멍난 신발을 끌며 시를 읊조릴 때면 악기를 연주하듯이 고아한 소리를 냈다. 그러므로 임금도 그를 신하고 삼을 수 없고, 제후들도 함부로 교제할 수 없었다.

중국의 유마서사로 불리는 방거사는 출가를 결심한 후 살림을 정리하여 논과 밭읕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가재도구와 돈은 배에 실은 다음 동정호 한가운데로 가서 모두 물 속에 던져 버렸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그에게 물었다.
"아까운 것을 왜 호수에 버립니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될 것을---"
그러자 방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가진 것 때문에 괴로워했소. 내 재산을 남에게 나눠주면 그들도 나처럼 괴로워할 게 아니겠소?"

제사 때는 반드시 술을 사용한다. 쓰고난 술을 '개잔 술'이라고 한다. 우리집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어서 늘 술이 남아 돈다. 그렇다고 남에게 함부로 줄 수도 없다. 술을 준다는 것을 술을 마셔서 빨리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느낌 때문이다. 술과 담배를 처리하지 못하여 고민하는 마음?

철학자 스피노자는 렌즈공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침대 하나와 커튼 한 개를 물려받았다. 그래도 스피노자는 평생 렌즈공으로 살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한 학설에 자기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자신의 학설을 선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네델란드의 조용한 시골에 숨어 살았다. 그는 현자들의 전통에 따라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의했을 때도 이를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루이 14세를 위해 저서를 지어 헌정하면 연금을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했으며, 친구인 데 프리스가 2,000 굴덴의 후원금을 주려고 했을 때도 그만한 돈이 필요 없다며 거절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데 프리스 상속인이 500 굴덴을 주겠다고 했을 때에도 300 굴덴만 받았다.

인간은 태어날 때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손 바닥을 펴고 죽는다. 태어날 때 주먹을 쥐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움켜쥐려고 하기 때문이며, 죽을 때에 손 바닥을 펴는 것은 결국 빈 손으로 떠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 <마빈 토케이어. 탈무드>

 

머무는 곳 없이

머리를 깎고 설교자의 옷을 입었으되, 욕망을 털어 버리지 못한 자들을 경계하라. 그런 자들은 종교를 직업으로 삼는 자들일 뿐이다.

자신을 섬기라고 말한 성자는 한 사람도 없다. 석가나 예수도 자신의 상을 만들어 경배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엄청난 크기의 불상을 만들거나 십자가를 높이 세우는 사람들은 아직도 성자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경배해야 할 것은 성자의 조각상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이다.
성자는 집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머무는 곳 없이 방랑하면서 오직 진리를 전파하는 데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사람들이요. 이 집에서 그대들이 가진 것이 무엇인가? 문을 걸어 잠그고 그대들이 지키려는 것은 무엇인가? 진실로 안락한 삶을 향한 갈망은 영혼의 정열을 살해하는 것이며 마침내는 장례 행력 속으로 걸어가게 하는 것이어라.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가 만든 무덤 속에서 살지 말라.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집에 대하여>

 

따뜻한 나눔

그때 선사의 눈에 구리로 만든 부처님의 광배가 보였다. 선사는 그것을 떼어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다. 그러자 사찰 안의 스님들이 풀평을 쏟아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지만 어찌 부처님 머리 위에 있는 것까지 떼어주십니까?"
에사이 선사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만약 부처님이었다면 당신의 팔다리라도 베어 중생을 살리셨을 것이다." - <최성현 엮음 .다섯 줌의 쌀>

내세의 극락왕생을 원하는 사람은 된장을 넣은 항아리 하나조차도 소유해서는 안된다.

 

은둔의 기쁨

중국의 요 임금 시절에 허유와 소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아주 절친한 친구였다. 허유는 몸에 지닌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물을 마실 때도 손으로 떠 마시곤 했다. 이를 본 어떤 사람이 허유에게 표주박 하나를 주었다.

어느 날 허유는 나뭇가지에 표주박을 걸어둔 채 그늘에 누워 있었다. 마침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에 걸어둔 표주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표주박이 흔들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자 허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표주박을 던져 버렸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물었다.
"왜 멀쩡한 표주박을 버리시오?"
그러자 허유가 대답했다.
"내 것이 아니었을 때는 표주박이 흔들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았으나, 내 것이 된 후로는 자꾸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오."
"그럼 앞으로 무엇을 구걸을 할 것이며, 무엇으로 물을 떠먹으려 하오?"
"두 손 바닥이 있지 않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소리를 듣고 허유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있음으로 해서 지금까지 천하는 잘 다스려졌습니다. 이제 와서 내가 그대를 대신한다면 나보고 명예를 좇으라는 말이오? 뱁새가 깊은 숲을 찾아도 결국은 하나의 나뭇가지에 의지할 뿐이요. 두더지가 강물을 마셔도 그 작은 뱃속을 채우기 위해서는 몇 모금의 물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돌아가시오. 나에게는 천하가 아무런 쓸모도 없소."
그리고 나서 허유는 친구인 소부를 찾아갔다. 그때 소부는 나무 아래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서 자고 있었다. 허유는 자신이 요 임금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해 주었다. 그러자 소부가 몹시 불쾌하게 여기면서 허유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자네의 재주를 밖에까지 드러냈는가?"
"내가 가진 재주를 세상에 드러낸 일이 없네."
"쯧쯧, 그렇다면 요 임금이 어떻게 자네의 이름을 알았겠는가? 자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이제 그대는 내 친구가 아닐세."
그 소리를 들은 허유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허유가 물러가자 소부는 강으로 달려가 귀와 눈을 씻으며 탄식했다.
"탐욕스런 말을 듣는 바람에 친구 하나를 잃게 되었구나!"
그때 한 농부가 소를 끌고 강가에 와서 물을 먹이려다 귀를 씻고 있는 소부를 보았다. 농부가 소부에게 물었다.
"왜 귀를 씻고 계시오?"
"내 친구가 요 임금에게 왕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들었답니다. 그 친구가 와서 그 얘기를 하기에 지금 더러워진 귀를 씻고 있는 중입니다."
그 얘기를 들은 농부가 소의 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가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는 없지요."
그러면서 농부는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갔다. 이후 소부는 세상을 버리고 은거하여 허유와는 평생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장자. 소요유/ 황보밀, 고사전/ 이한. 몽구>

자연 속에서 대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늘이 곧 그의 이부자리요, 땅이 그의 안락한 침대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무엇을 더할 것인가. 옷은 추위를 가릴 정도면 충분하고, 먹을 것은 허기를 면할 정도면 된다. 굳이 구할 필요도 없다. 자연이 곧 그의 옷이며,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이에게 속세의 권력과 재물이란 그저 귀찮은 장애물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서 소유란 힘들 게 짊어져야 할 속박의 굴레에 불과하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황제의 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속세에 노출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를 원한다면 아무 것도 바라지 말라. 남에게 의존하지도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 <에픽테토스. 단편>

 

나를 속박하지 말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나의 인품이 아니라 나의 '쓸모 있음'이다.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 쓸모 있는 사람 치고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다간 사람은 벌로 없다. 대개는 남에게 부림을 당하다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나타날 때쯤 가차없이 버려지는 것이 그의 인생이다.

나는 제후의 지위를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이 보며 금이나 옥 같은 보배를 냇가의 자갈같이 보며, 하얗게 바랜 비단 못을 해진 헝겊과 같이 본다. - <42장경>

 

부의 덫에서 벗어나

<조화로운 삶 Living the Good Life>이란 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스콧 니어링은 1883년 미국 펜실바니아 주의 한 탄광도시에서 태어나 100세가 되던1993년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었다.

그는 원칙주의자였고, 자유주의자였으며, 엄격한 의미에서 진정한 사회주의자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 생애를 통하여 전쟁의 광기아 여성차별, 아동확대, 인종차별에 대항한 열정적인 사회개혁 운동가였다.

이러한 그의 활동 때문에 그는 첫 번째 아내로부터 이혼 당하고, 마흔 다섯 달에 스무 살 아래의 헬렝 노드와 재혼했다. 이후 부부는 문명생활을 포기한 채 버몬트 주의 숲 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농사를 짓거나 단풍나무 시럽을 만들면서 생활했다.

1920년대 그는 부의 유혹에 빠질 뻔한 적이 있었다. 뉴욕의 돈 많은 부인이 그에게 10만 달러 가량의 유산을 남기고 싶다는 유언장을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돈 많은 부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또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이 혹독한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그는 독일에서 약간의 공채를 구입했다. 그런데 독일의 재건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800달러였던 공채는 6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이 상황을 놓고 그는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결심했다. 이 돈은 전쟁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이득이며, 독일 국민의 노동을 착취한 대가라는 생각을 굳힌 것이다. 결국 그는 공채를 난로에 던져 넣고 태워 버렸다.

버몬트 주에 살 때 그는 임야와 농지를 갖게 되었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전쟁 특수로 인하여 임야의 땅값이 열배로 뛰었다. 그는 이 임야마저 마을의 공유지로 양도했다. 그로부터 14년 후 스키장의 개발 바람이 불면서 이 땅값은 천장부지로 치솟았다. 훗날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나는 다시 한 번 아슬아슬하게 부의 덫으로부터 벗어났다."

그의 태도를 두고 친구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 돈을 가지고 좋은 일에 쓰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그는 도움을 주는 것이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믿었다. - 그는 개인 차원의 자선 행위가 헛된 행위이며, 또 불로소득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경제적 불공정에 따른 죄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돈을 벌려고 애쓰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돈을 벌려고 애쓰는 대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1년을 지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은 얼마인가?"
그들은 필요한 액수를 정한 뒤 그 액수만큼의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목표액이 달성되면 생산을 중단했다. 이들 부부는 채식주의자라서 생선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네 가지 해악에서 벗어나는 데 꽤 성공한 편이었다. 네 가지 해악이란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물든 인간을 괴롭히는 권력, 출세하고 싶은 욕망과 관련한 조급함과 시끄러움.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 따라붙는 근심과 두려움. 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지역으로 몰려드는 데서 생기는 복잡함과 혼란을 말한다.

 버몬트 주에 개발 바람이 불자 그는 일흔 살에 그것을 떠나 바닷가의 외딴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솝에게 배우는 무소유

여우 한 마리가 포도밭 옆을 지나게 되었다. 흘낏 포도밭을 살펴보니 탐스럽고 먹음직스런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여우는 실컷 포도를 먹고 싶었지만 포도밭 주위에는 촘촘한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다. 울타리의 틈새를 가늠해 보니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며 여우는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살을 뺀 다음 포도밭으로 들어가 배가 터지도록 포도를 먹었다. 하지만 나오는 것이 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 여우는 다시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몸의 부피를 줄인 다음에야 포도밭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인생이란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만족이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무덤 속으로 돌아갈 때는 살아 있을 때의 만족조차 모두 버리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엿새 동안 굶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노새 한 마리는 돈이 가득 든 주머니를 싣고 또 한 마리는 보리자루를 싣고 여행을 떠났다. 돈 주머니를 실은 노새는 어깨에 달린 방울을 딸랑거리며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으스대며 걷고 있었다. 그러나 보리를 실을 노새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차분하고 조용하게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산길로 접어들었을 때 두 마리의 노새 앞에 산적들이 나타났다. 두 마리의 노새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무기를 든 산적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저 노새가 돈을 싣고 있어!"
결국 돈을 실은 노새는 돈주머니를 빼앗기고 날카로운 칼에 찔리기까지 했다.
"저 노새는 보리자루를 싣고 있어!"
산적들은 보리자루는 훔칠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산적들은 돈주머니만 챙겨 유유히 사라졌다. 산적들이 사라지자 돈을 실었던 노새가 피를 흘리며 신세를 한탄했다. 보리자루를 실었던 노새가 그 모습을 보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나는 아무 것도 빼앗기지 않고 몸도 무사하니까."

한 마리의 까마귀가 고기 한 점을 몰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수많은 까마귀 떼들이 고깃덩어리를 빼앗아 먹기 위해 모여들었다. 까마귀 떼는 고기를 물고 있는 까마귀를 뒤쫓아오며 부리로 마구 쪼아댔다. 견디다 못한 까마귀는 입에 물고 있던 고깃덩어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뒤쫓던 까마귀 떼가 부리를 세운채 일제히 땅으로 떨어진 고기 한 점을 향해 날아갔다. 뒤쫓던 까마귀들이 모두 땅으로 내려가자 결국 고기를 놓친 까마귀는 넓은 하늘에 혼자 남게 되었다. 까마귀는 고기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는 까마귀 떼를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휴. 살았군. 이제 온 하늘이 내 차지야."

가장 자유로운 자는 아무 것도 갖지 않는 사람이다. 고기 한 점을 차지하기 위해 달려드는 까마귀 떼가 될 것인지, 아니면 홀로 끝없는 창공을 날아다니는 까마귀가 될 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다.
어떤 부모들은 자식에게 고기 한 점을 버릴 줄 아는 까마귀가 아니라, 고기 한 점을 차지하려 달려드는 까마귀 떼와 어울리기를 원한다.

가난한 자에게는 교육이 필요 없다. 가난한 상태 그 자체가 그에게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 밖의 교육은 받아들여질 여지조차 없다. 가난한 자는 혼자서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장 자크 루소 : 에밀>

거지 성자

출가란 수건 한 장을 들고 갠지스 강으로 가서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성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지만, 지혜로써 무엇을 꾸미지는 않는다. 그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며, 생존의 욕망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숫타니파타>

 

청빈의 즐거움

우리간 흔히 소유한다고 하는 것은 당분간 맡아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잠시 빌려 온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돌려줄 때는 불평할 이유가 없다. 운명의 여신은 이 시간에 빌려준 것을 다음 시간에 돌려달라고 요구할지 모른다. -<세네카. 행복론>

돌아가련다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으나 장차 다가올 일을 바르게 할 수 있음을 안다면 이제까지 헤맨 길은 그리 멀지 않은 법. 어제 잘못을 오늘 바르게 하면 깨달음인 것을--. 그만 두어라 이승에 몸을 맡길 날이 얼마나 남았는고, 어찌 내 맘대로 오고가지 못하겠는가. 무엇을 위하여 허겁지럽 쫓아가겠는가. 부귀도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오, 신선이 되는 것도 기약할 수 없으니--.<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사람들이 관직에 나가려는 것은 나라에서 주는 몇 푼의 돈 때문이 아니다. 호적에 이름 석 자 올리는 일을 맡고 있는 말단 관리도 그것이 권력이라고 믿는다. 그건 사실인 것 같다. 만일 서기가 이름 석 자를 잘못 올리면 사람들은 관공서와 법원을 찾아다니며 며칠을 고생해야 한다.

알량한 권력에 맛을 들이면 사람은 추해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쌀 다섯 말 때문에 위사람에게 굽실거리고, 아랫 사람들에게는 상처입은 자존심을 보상받으려는 사람들이다. 어디에 간들 쌀 다섯 말쯤 마련하지 못할 것인가. 쌀 다섯 말에 자존심을 버릴 바에야 차라리 괭이를 들고 밭을 가는 것만 같지 못하다.

많은 재물을 쌓아서 자식에게 물려준들 자식이 반드시 잘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많은 책을 쌓아서 자식에게 물려준들 자식이 반드시 다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남 모르는 음덕을 쌓아서 자손을 위한 계책으로 삼아라.-<명심보감. 계선편>

 

어머니의 가르침

몸소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한 가르침은 없다. 큰 부자에게는 자녀가 없다. 오직 상속자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검소한 삶이다. 집안을 일으킬 자식은 똥도 황금처럼 여기지만, 집안을 망칠 자식은 황금도 똥처럼 써 버리는 법이다.

도리요키는 권력을 확립한 30세에 기꺼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물러설 때를 알고 뒤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권럭을 가진 자는 외롭다. 또한 권력을 가지 자는 최초로 소유를 만들어낸 자이기도 하다.

루소의 말을 빌면 다음과 같다.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것이다'라고 최초로 말한 자, 그리고 그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한 사람들을 찾아낸 자, 그가 바로 국가의 창시자였다."

일에서 물러나려거든 마땅히 그 전성기에 물러나야 하고, 몸을 처신하려거든 마땅히 홀로 뒤떨어진 곳에 두어야 한다. -<홍자성. 채근담>

 

뇌물을 받지 않는 이유

송나라의 농부 한 사람이 밭을 갈다가 커다란 옥을 발견했다. 농부는 이 옥을 들고 사성 벼슬을 하고 있는 자한에게 찾아갔다. 농부는 자한에게 옥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 옥은 보배입니다. 일찍이 이런 귀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와 같은 소인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니 마땅히 군자가 가져야 할 물건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자한은 농부에게 옥을 되돌려주며 말했다.
"그대는 이 옥을 보배로 여기지만, 나는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을 보배로 여기고 있소. 만일 내가 이 옥을 받는다면 그대와 나는 똑같이 보배를 잃는 셈이오."
그러면서 자한은 끝내 옥을 받지 않았다. -<한비자. 유노편 / 정약용. 목민심서>

눈앞에 놓인 고기는 물고기나 짐승의 시체이며, 훌륭한 포도주는 포도 알갱이를 으깬 즙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자줏빛 옷은 양털에 염료를 바른 것이며, 대리석은 흙이 굳은 것이고, 금과 은은 침전물이 굳은 것이며, 자줏빛 염료는 피로 만든 것일 뿐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내가 베를 짜는 까닭

노나라 경강이라는 부인이 타향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 문백에게 말했다.
"제나라 환공은 항상 주위에서 조언을 해주는 법이 세 사람이었고, 잘못을 충고해주는 신하가 다섯이었으며, 또 나날이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주는 이가 서른 명이었다. 그리하여 능히 천하를 평정할 수 있었다. 또 주공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세 번씩이나 입에 든 음식을 뱉어가면서 찾아오는 선비를 영접하였고, 머리를 감다가도 세 번씩이나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 손님을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능히 주나라 왕실을 튼튼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너는 나이도 어리고 지위도 낮으면서 친구를 하인 다루듯이 하는구나. 그러니 어찌 너를 군자라 하겠느냐!"
문백은 잘못을 깨닫고 사죄하였다.
훗날 문백은 노나라에서 벼슬을 얻었다. 어느 날, 문백이 어머니를 찾아뵈니 집안에서 베를 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문백이 어머니에게 달려가 말했다.
"어머니가 베를 짜고 계시다니요. 집안 어른들의 노여움을 살까 두렵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버럭 화를 내며 아들을 꾸짖었다.
"노나라가 망하려는 것인가? 내 아들 같은 놈에게 벼슬을 맡기다니."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머니는 자세를 바로잡고 아들을 꿇어앉힌 구 이렇게 말했다.
"듣거라. 왕후는 천을 짜며, 장수의 부인은 군복을 만들고, 선비의 아내는 관복을 짓고, 아녀자는 남편의 옷을 만드는 법이다. 나는 지금 과부이고, 너는 아직 낮은 지위에 있다. 하물며 내가 이까짓 베를 짜는 것으로 게으름을 면하고 있는데 어떻게 죄를 씻을 수가 있겠느냐!"
불행히도 문밸은 어머니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며느리가 걱정되었다. 남편이 죽으면 여자가 따라 죽는 것이 열녀로 여겨지던 때였다. 따라서 문백의 어머니는 며느리가 아들을 따라 죽지 않을까 걱정했다. 마침내 그녀는 모든 며느리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옛말에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다 죽으면 좋아하던 여자가 따라죽고, 현자를 좋아하다 죽으면 선비가 따라죽는다고 했다. 내 아들은 일찍 죽었다. 다행히도 나는 내 아들이 여자를 좋아하다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죽은 낭군을 따라 죽는 일이 없도록 하라. 수척한 모습도 보이지 말고, 눈물을 보이지도 말라. 슬퍼하지도 말고, 근심스런 모습을 보이지도 말라. 그것이 내 아들의 덕을 널리 드러내는 것이다." -<유향. 열녀전. 노계경강>

자식이 어렸을 때 자식 덕을 바라는 부모는 한 사람도 없다. 단지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 홀로 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자식이 성인이 되어 좋은 자리에 앉으면, 그 덕이 가족 전체에 미치기를 바라는 게 대부분 부모들의 심정이다.
자식이 얻은 부귀보다 자식의 성품이 떳떳함을 자랑하라. 부모가 바라는 것이 많으면, 자식은 청렴해질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선의 의미는 다른 이의 행복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나는 선의 습성이라 하고 천성의 선량함을 성향이라 부르고 싶다. 이는 마음의 모든 덕성과 위엄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다. 그것은 곧 신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으면 인간은 일종의 해충에 지나지 않으며 귀찮고 나쁜 짓을 일삼는 비참한 존재일 뿐이다. -<베이컨. 수상록>

어떻게 했기에(게시)

진나라의 사신으로 갔던 조상이라는 사람이 자기의 솜씨를 자랑했다.
"진나라의 임금을 깨우쳐 1백대의 수레를 얻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장자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진나라 임금이 엉덩이에 종기가 났을 때 그 종기를 째고 고름을 입으로 빠는 자는 수레를 한 대 얻었고, 치질을 핥는 자는 수레 다섯 대를 얻었다고 들었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많은 수레를 얻었는가?"-<장자. 잡편. 열어구>

내 몸에서 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내 몸이나 가진 것 중에 구린내를 풍기는 것이 있다면, 내가 더러운 짓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인간은 질병의 박물관이요, 불순물의 고향이다. 그는 오늘을 왔다가 내일이면 떠난다. 그는 먼지로 시작하여 고약한 냄새가 되어 떠나가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 Whichi is the dream?>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성공

안자는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오랫동안 재상으로 있으면서 세 임금을 섬겼다. 그는 재상의 신분이면서도 거친 베옷과 겨우 겉껍질을 벗겨낸 곡식으로 지은 밥을 먹었다. 또 반찬은 기껏해야 달걀과 나물이 고작이었다.
어떤 신하가 이를 알고 임금인 경공에게 알렸다. 그 소식을 들은 경공은 안자에게 땅을 내리고, 누대와 염전 두 곳을 하사했다. 그러나 안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공이 안자에게 물었다.
"옛날 환공께서도 재상에게 많은 상을 주셨는데 관중은 어진 선비인데도 이를 사양하지 않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왜 사양하십니까?"
안자가 대답했다.
"아무리 성인일지라도 한 번 실수를 할 때가 있고, 아무리 어리석은 자도 한 번 성공하는 때가 있습니다. 생각건대 관중이 상을 받은 것은 한 번 실수한 것이고, 제가 상을 받지 않는 것은 한 번 성공한 쪽입니다."
어느 날 결공이 안자의 집에 허물어져 간다는 것을 알고 넓은 들에 새 집을 지어 주고자 했다.
"선생의 집은 시장과 가까워 늘 시끄럽고 먼지가 많이 난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새 집으로 이사하지요."
그러자 안자는 이를 사양하며 말했다.
"제 집은 저자거리에 있으니 아침저녁으로 찬거리를 살 수 있습니다. 이사는 너무 번거로운 일입니다."
그 말을 듣고 경공이 웃으며 말했다.
"저자거리에 있으니 무엇이 비싸고 무엇이 싼 지 잘 알겠구려."
"물론입니다. 발꿈치가 잘린 죄인들이 신는 신발은 비싸고, 보통 사람들이 신는 신발은 쌉니다."
안자의 난데없는 대답에 경공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오?"
"뒤꿈치가 잘리는 형벌을 받는 사람이 많으니 그 신발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비싼 것입니다."
안자의 대답에 경공은 낯빛이 창백해졌다. 이후 경공은 필요 없는 형벌을 줄이고, 무고하게 감옥에 닫힌 사람들을 풀어주도록 명했다. <안자춘추>

후에 사마천은 사기를 쓰기 위해 안자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비록 내가 안자의 마부가 된다 해도 기쁨과 흠모로써 그를 모시리라."

재물과 돈은 남에게 꾸어온 빚일 뿐이니 이를 아까워하는 어리석은 일. 육신이란 오물로 가득 찬 가죽일 뿐이니 이를 가꾸고 치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 마음 가르침의 감로수를 마다하고 재물에 눈이 팔려 일생을 보내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미래라빠. 십만송>

 

검소한 것이 생존의 비결

사람은 누구나 백 년을 살지 못하거늘 부질없이 천 년의 계획을 세우는구나. <명심보감. 존심편>

석자 무덤 속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몸뚱아리를 백 년을 채 본조하지 못하더니, 죽어서 무덤으로 들어간 뒤에는 그 무덤을 채 백 년간 보존하지 못하는구나. <명심보감. 성심편>

 

이름도 남김없이

"제 스승은 천하에 당할 사람이 없는 장사였지만 집안 식구들조차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앞에서 힘을 쓴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 이름이 알려진 것은 제가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저의 능력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열자. 중니편>

세상에 이름을 알리려 애쓰지 마라. 이름에 얽매인다는 것은 스스로 굴레를 쓰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천 원짜리 양말을 사면 아무것도 관심을 갖지 않지만, 유명 연예인은 금세 구설수에 오른다.
아직도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몇몇 부족들은 용맹을 떨쳤던 조상의 이름 대신 그의 해골을 간직한다. 그것이면 족하다. 세상에 이름을 남겨 후에까지 구설수에 오를 필요는 없다.

참새와 기러기는 한 하늘 위를 날아도 서로 부딧치지 않는다. 서로 고도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서로 이해의 폭을 달리하는 사람은 다투지 않는다. 마음의 넓이가 달라서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 듯이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을 받아들이고 품어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속극 중에서 발췌)

 

낮춤

공자가 초나라에서 채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밭을 갈고 있는 두 농부를 만났다. 그 두 사람은 세상을 피하여 숨어사는 장저와 걸익이었다.

걸익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도도한 사람까지 저 지경이 되었으니 장차 누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자네는 사람을 피하는 스승을 따르는 것보다는 세상을 피하는 스승을 따르는 것이 나으리라."
자로가 이 말을 듣고 돌아와 공자에게 전했다. 그러자 공자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짐승과는 함께 무리를 이루지 못할 것이거늘. 그 농부들과 더불어 무리를 짓지 않고 내가 누구와 더불어 무리를 이루겠는가? 천하에 바른 도가 있다면 굳이 내가 고치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이고, 크고 곧은 대나무일수록 바람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몸을 낮추어라. 세상에 나보다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장저와 걸익은 비록 가난과 괭이를 벗삼아 살았지만, 권력을 좇아 여러 나라를 방랑하는 공자를 조롱했다. 다섯 가지 곡식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뜻이 아무리 높고 신분이 귀해도 역시 백수일 뿐이다.

 

아름다운 원칙

친구가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소장은 친구의 노물수수 혐의를 조사하라 이르고, 그날 밤 친구를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자 친구가 상관으로 왔으니 자신의 허물을 덮어주리라 믿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하나의 하늘이 있다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두 개의 하늘이 있구나. 이렇게 좋은 친구가 내 뒤를 봐주고 있으니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그러자 소장은 정색을 하며 태수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술을 마시는 것은 옛 친구와의 우정 때문일세. 지금은 그대의 친구이지만 내일 아침에는 기주자사로서 자네의 일을 처리할 걸세."
이튿날이 되자 과연 소장은 친구의 죄를 조사하여 탄핵했다.

당나라 때 시중 벼슬을 지낸 송경에게 숙부가 있었다. 그런데 숙부는 이부의 말직에 있으면서도 시중의 숙부라는 것을 내세워 높은 벼슬을 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송경은 이부에 공문서를 내려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이 나의 숙부인 것은 분명하나 낙양에 계셨기 때문에 자주 뵙지를 못했다. 아무쪼록 그 분을 내쫓아 중요한 자리에 앉히는 일이 없도록 하라." <사마광 편. 자치통감>

나를 평하여 잘못을 고쳐주는 이는 나의 스승이요, 나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이는 나의 벗이며, 내게 아첨하는 자는 나의 적이다. <순자. 수신편>

 

깨끗한 인생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사회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웨스트민스터 선거구 유지들로부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주민들의 뜻에 따라 입후보를 승낙하는 조건으로 다음 네 가지를 내세웠다.
첫째, 당선되어도 지역구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둘째, 당선되어도 당론에 구속되지 않는다.
셋째, 선거운동에 한푼의 돈도 쓰지 않는다.
넷째. 일체의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다.

누구도 이런 조건하에서 당선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큰 표차로 당선되었다.

중국의 근대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나처럼 하찮은 일생을 가지고도 전기를 쓸 수 있다면 중국에는 4억 권이나 되는 전기가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도서관은 미어터지게 될 것이다."
임종에 가까웠을 때 루쉰은 유언장을 대신하여 짤막한 메모를 남겼다.
첫째, 장례를 치를 때 옛친구 외에는 절대로 조의금을 받지 말라.
둘째, 빨리 묻어 버리고 끝내기를 바란다.
셋째, 추도식을 절대로 하지 말라.
넷째, 나를 잊어 버리고 너희들 일에나 전념해라.
다섯째.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말고, 복수에 얽매이지 않으며 인내를 주장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라. <왕스징, 노신전>

 

집착의 괴로움

옛날 중국 형산 땅에 한 선비가 살았다. 그는 끼니 때마다 걸식을 하였으며, 어쩌다가 돈을 얻으면 술을 마시고 집에 갔다가 낮이면 다시 저자거리에 나타나곤 했다. 이 모습을 본 어떤 부자 친구가 그에게 비싼 도포를 한 벌 주었다.
며칠 뒤 부자 친구가 저자거리를 걷다가 그 선비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그는 그 도포를 입지 않고 예전의 더러운 베옷을 입은 채 걸식을 하고 있었다.
"내가 준 도포는 어디 두고 왜 더러운 베옷을 입었는가?"
부자 친구의 물음에 선비가 대답했다.
"도포가 없을 때는 아무 데서나 빌어먹고, 잠을 잘 때도 문을 잠그지 않았네. 그러나 도포가 생긴 뒤로는 밖에 나갈 때마다 문을 잠그고, 잠을 잘 때도 자물쇠를 채웠네. 그런데 오늘 도포를 입고 저자거리에 나왔다가 내가 그 도포에 매여 있다는 것을 알았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도포를 주었더니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네."
그 선비 역시 도포 한 벌에 얽매여 있었던 것이다. <허균, 한정록>

 

욕망에 관한 이야기

어떤 신선이 인간 세상에 실망하였다. 정말 욕심이 없는 사람을 찾아내어 상을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신선은 지상에 내려와 세상을 유람하여 사라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저 돌덩이를 금덩이로 만들 수 있오. 금덩이로 만들 것을 가지고 오시오."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더 큰 돌덩이를 들고 오느라고 난리를 쳤다. 신선은 크게 실망한 뒤 마지막으로 마침 지나가는 길손에게 말했다.
"내가 저 바위를 금덩이로 만들어주겠소."
그러나 길손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럼 저 산을 금덩이로 만들어주겠소."
그래도 길손은 싫다고 대답했다. 길손에게서 크나큰 감명을 받은 신선은 그에게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한 가지만 말해보거라.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그러자 길손은 신선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든 황금으로 만들 수 있는 당신의 손가락을 제게 주십시오."

금고기와 할머니 이야기와 비교.

 

골치아픈 일들

깊은 숲 속에 성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와 훌륭한 경전 한 권을 주고 갔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와 훌륭한 경전 한 권을 주고 갔다. 성자는 날마다 마음을 바로잡고 조금씩 경전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성자는 책을 살피다가 쥐가 경전을 파먹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는 경전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와 키우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키우려니 우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성자는 다시 암소 한 마리를 키우기로 했다. 그러나 명상만 하는 그에게 소를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암소를 돌볼 여자 하인을 두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제 성자에게는 고양이와 암소, 그리고 아내와 두 아이가 생겼다. 성자에게는 정말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명상을 할 때마다 성자는 혼자 있을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생각했다.
결국 경전 한 권을 읽겠다는 욕심이 엄청난 화를 자초한 것이었다. <바바하리다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있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버리는 것.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관심을 거두는 것---그것이 소유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모든 관심을 접어 버리고 자기의 내면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읽고 있는 경전이란 대부분 후세의 제자들이 밥벌이를 하기 위해 스승의 가르침에 어려운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다. 성자의 가르침마저 버려라. 그것을 읽거나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빈손이 일손

자기 짐이 많은 사람은 남의 일손을 도울 겨를이 없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도리어 적게 가진 사람의 도움을 받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빈손이 일손입니다. 적게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버려야 하는데, 작은 것 하나를 버리는 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식기 3개, 칫솔, 수건, 젓가락 한 개씩만으로 징역을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비록 무기 징역을 핑계 삼는다 하더라도 아직 더 버려아 합니다. 용기는 선택이며, 선택은 골라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성서. 마가복음 10장>

그렇게 천국에 가는 것이 힘이 들 바에야 차라리 부자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리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으로 보아 성서의 이 말이 틀린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탐욕에 눈이 자꾸 어두워지는 부자들을 볼 때는 그들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어지지 않음으로 보아 얼핏 이 말이 맞아 보이기도 한다.

 

재산이 없어도 되는데

자둔 선사가 축법심 선사를 찾아가 말했다.
"저에게 산을 파십시오. 그곳에서 도를 닦으려 합니다."
그러자 축법심 선사가 대답했다.
"세속이 싫어 산으로 도망친 소부와 허유가 산을 사서 은거했다는 소리를 일찍 들어보지 못했소이다." <유의경. 세설신어. 배조편>

나는 조용한 산 속에서 공부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넓은 땅을 소유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산을 사서 은거했다는 도인이 없었다는 말에 큰 감명을 느낀다. 어디에 가건 모든 산 속은 내가 공부할 만한 곳임을 미처 몰랐었다. 반드시 그 산을 소유하지 않아도 됨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남을 돕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재력을 지녀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무재칠시라는 말을 들어 알아도 실천에 옮기는 일이 힘들다. 어쩌면 나의 내면에 "남을 돕는다는 핑계로 재산을 모으려는 비열한 생각"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장 산과 들로 나가면 그곳이 곧 나의 도장이요, 아무 것도 없어도 내 몸과 마음을 바치면 남을 돕는 일이 된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푼 마음을 완전히 버린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어떤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중국의 永明延壽 선사는 심장과 간을 도려내도 목석과 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고 했는데, 정말 그래도 되나요?"
"그러니 먹지 말라는 것이지."
"그리고 술을 오줌똥을 먹듯하는 사람은 술을 마셔도 된다고 하셨는데."
그러니 먹지 말라는 게지."
"미인을 보기를 시체 보듯 하는 사람은 음행을 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그러니 음행을 하지 말라는 게지."
"걸림어 없는 사람은 어떤 일에도 구애됨이 없다는 뜻인가요?"
"딱하구나! 걸림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술이나 고기, 여자를 취하지 않는 법이지." <선원빈. 큰 스님>

거짓 깨달음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수행자들이 있다. 어떤 이는 신도들의 돈을 모아 집을 짓고, 또 어떤 이는 고기와 술과 여자를 즐기면서 걸림 없는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는 모두 거짓일 뿐이다. 걸림 없는 삶이란 바람과 같은 것이다. 진짜 깨달은 사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아무런 티끌도, 장애도 없다.
깨달은을 얻기 위해 숲을 가지려는 사람, 스스로 걸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계율을 어기는 사람은 아직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있는 자이다. 그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으며,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모든 욕망은 마음 속에 있다. 심지어 신에 대한 욕망이든, 깨달음에 대한 욕망이든, 진리에 대한 욕망이든, 자유에 대한 욕망이든, 모든 욕망은 마음 속에 있다. 그리고 마음은 장벽이지 다리가 아니다. 버려야 할 최후의 욕망은 깨달음에 대한 욕망이다. <오쇼 라즈니쉬>

 

혀끝의 집착

13세기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明惠 선사는 야채로 끓인 장국을 몹시 좋아했다. 어느 날 제자들이 특별히 신선한 재료를 구해 맛있는 야채 장국을 끓여 스승에게 대접했다. 明惠 선사는 국 맛을 본 다음 매우 기분이 좋아져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훨씬 맛이 있구나."
제자들이 스승의 표정을 보고는 다들 즐거워했다. 그때 선사사 문득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걱정하며 물었다.
"국에 뭐가 들어갔습니까?"
선사는 갑자기 손을 뻗어 창틀에 쌓인 먼지를 훑더이 그 손가락을 혀로 핥았다. 제자들이 정색을 하고 스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다. 조금 전에 나는 음식에 집착하고 있는 나의 추한 모습을 보았다. 내가 지금 먼지를 핥은 것은 혀끝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최성현. 다섯 줌의 쌀>

깨달음이란 어떤 집착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자는 마음속의 상마저 버린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어떤 분별도 없고, 선과 악의 구분마저 없다.
그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바라보아도 일으키는 마음이 없고, 생각하여도 일으키는 생각이 없다. 보지 않는 방법으로 보고, 생각하지 않는 방법으로 생각하며, 듣지 않는 방법으로 그것을 듣는다.

어떤 사람이 움막 하나 없이 숲 속에서 사는 노인을 만났다. 그가 노인에게 물었다.
"왜 스스로 집을 짓지 않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예전에 나타난 모든 예언자들은 내가 700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말했소. 그러니 집을 지어서 어디에 쓰겠소."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700년을 살아도 집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고작 70년을 살면서 돈을 모은다.

"욕망이 있습니까?"
그러자 모든 선사들이 대답했다.
"이미 욕망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때 오직 지선 선사만이 이렇게 대답했다.
"소승에게는 욕망이 있습니다."
황후가 깜짝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
"선사에게는 어떤 욕망이 있습니까?"
지선 선사가 대답했다.
"일으키면 얼마든지 욕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으키지 않으면 아무런 욕망도 없습니다." <역대법보기>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게 살다간 기업인이 있었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사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1969년에 경여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그의 유언장이 공개되었을 때 입회인들은 숙연한 감동에 잠시 말을 잊었다. 그는 유언장에서 모든 소유주식을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쓰도록 했다. 그리고 가족에게는 일일이 짧은 유언을 남겼다.
아들에게는 대학까지 공부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라고 했다.
딸에게는 자신이 설립한 학교 구내의 묘소 및 대지 5천 평을 상속하되 이를 공원으로 꾸며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울타리를 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 7세였던 손녀에게는 대학 졸업 시까지의 학자금으로 주식의 배당금 가운데서 1만 달러를 마련해 주라고 했다.
그는 수백 억 원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혈육에게는 정신적 유산만을 남김 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의 딸도 세상을 떠나면서 스스로 일해서 모은 2백억 원을 사회에 기증했다.
최근 가장 촉망받는 기업인 미래산업을 이끌었던 정문술 대표이사의 행동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한때 그는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이려운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는 이사회를 하루 앞둔 날, 두 아들을 불러놓고 이사직에서 사임하겠다는 결심을 토로했다. 그는 늘 경영권으 세습하지 않겠노라고 공언해 왔고, 이날 비로소 두 아들에게 이를 통보한 것이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결심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경원권이라는 유산 보다 몇 곱절 더 큰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는 이만하면 자식 농사는 괜찮게 지었다고 생각하고 몹시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평소 인생의 멋진 끝맺음은 물러나야 할 때 미련 없이 물러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회사의 경영권을 종업원들에게 물려주겠다고 다짐해 왔던 것이다.
그는 결국 이사회에 참석하여 더 이상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고 앞으로는 돈을 버는 대신 돈을 쓰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정 그렇게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쓰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도 자기 자신 외에는 사회에 바칠 재산이란 없다. 그 외의 재산이란 모두 이 사회의 것이기 때문이다. <루소. 에밀>

 

죽음에 대한 단상

수피인 스승과 제자가 잡혀가서 사형을 집행당하게 되었다. 그러자 스승이 나서서 말했다.
"저 젊은이는 나를 따라다닌 것 외에는 아무런 죄도 없소. 그러니 나를 죽이시오."
그러면서 수피는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 모습을 본 제자가 급히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스승 대신 나를 죽이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스승이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왕은 혼란에 빠졌다. 두 사람이 왜 이리도 애절하게 죽음을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왕이 물었다.
"그대들은 왜 서로 죽기를 원하는가?"
스승이 대답했다.
"폐하. 오래전부터 오늘 이곳에서 한 사람이 죽으리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 예언에 의하면 오늘 이곳에서 죽는 사람은 다시 부활하여 영원토록 불멸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죽음을 마다하겠습니까? 저 놈이 나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이니 어서 저를 죽여 주십시오."
왕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 같은 놈들. 그런 자리를 무엇 때문에 하찮은 너희들에게 양보하겠느냐!"
그리고 나서 왕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이드레스 샤흐. 수피의 가르침>

죽음을 알면 우리는 모든 굴종과 구속에서 해방된다. 행명을 잃는 것이 불행한 일이 아님을 이해한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불행이란 없다.
우리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언제나 신발을 신고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이 내가 양배추를 심는 동안에 와 주되, 죽음이 와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기를, 정원이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쯤은 더욱 염두에 두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앞으로 백 년 뒤에 살아 있지 않으리라고 슬퍼하는 것은 지금부터 백 년 전에 살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슬퍼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죽음은 또 다른 생의 시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울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들어오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기에 들어올 때 헌 옷을 벗어 던졌다.
일생에 단 한 번만 겪는 일을 가지고 괴로워 할 까닭이 없다. 그렇게 순간적인 일을 그렇게 오랫동안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 오래 산다는 것과 짧게 산다는 것은 죽어 버리면 마찬가지의 일이다. 왜냐하면 길다든지 짧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의 죽음은 우주 질서 중의 한 토막이다. 세계의 생명 중 한 부분이다. 만일 그대들이 인생에서 소득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족하며 물러가라. <몽테뉴. 수상록>

영원한 삶이란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지루하고 무료한 사치이다. 영원히 산다고 생각해 보라. 도대체 무슨 희망이 있는가?
죽음에 대해 늘 고마워해야 한다. 누구든 아무 것도 가지고 떠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죽을만큼 평등한 것은 없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빈손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를 걱정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삶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묘를 호화롭게 치장하고, 성대한 장례식을 치른다. 깨달았다는 사람조차도 신도들을 불러모아 다시를 하고, 제자들이 돌탑 하나 세워주지 않을까 근심한다.
하지만 걱정할 게 없다. 호화로운 묘는 파헤쳐지기 쉬우나 초라한 묘는 그 위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랄 때까지 파헤쳐지지 않는다. 선사들의 죽으은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다. 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허물어 버린 사람들이다.

 

붓다의 가르침

천인이 붓다에게 물었다.
"한적한 숲 속에 살고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어찌 그리 얼굴빛이 맑은가?"
붓다가 대답했다.
"지나간 일은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지 않으며, 현재의 삶을 지켜 나가면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다.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며 지나간 일을 슬퍼하는 사람은 낫에 잘린 푸른 갈대처럼 시든다."
천인이 다시 물었다.
"그대에겐 오두막도 없고, 아무런 보금자리도 없으며, 어떠한 매듭도 없으니 진정 얽매임에서 벗어났는가?"
붓다가 대답했다.
"참으로 내게는 오두막도 없고 아무런 보금자리도 없으며, 어떠한 매듭도 없으니 얽매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천인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세상을 핍박하고, 무엇이 세상을 포위하는가? 어떤 화살이 세상을 꿰뚫고, 어떤 연기가 세상을 가리는가?"
"죽음이 세상을 핍박하고, 늙음이 세상을 포위하며, 애욕의 화살이 세상을 꿰뚫고, 욕망의 연기가 세상을 가린다." <쌍윷다니까야. 천인>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은 욕심이 없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