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대한 예화 모음
고난에 대한 예화 모음
<성구와 금언>
★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니라(행 14 : 22).
★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 : 18).
★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히 10 : 32).
★ 마태 5 : 11 ; 고후 12 : 7 ; 골 1 : 18 ; 벧전 4 : 1.
★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살려고 하는 이는 고통을 보석으로 삼는다(하천풍언).
★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영광도 크다(M. T 시세로).
★ 고난과 눈물이 나를 높은 예지로 이끌었다. 보옥과 즐거움은 이것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페스탈로찌).
★ 자기 고난을 참아야 하고 남의 고난은 돌봐 주어야 한다(樂根潭).
★ 초년 고생은 말년 낙의 근본이니라. 네가 자라면 오복이 구비하고 남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리라(이광수).
★ 고난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다(도미트니야쓰).
★ 고생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다(지스레지).
★ 고통은 축복을 갖다주는 지름길이다(루터).
<실화>
★ 미국에 알펜스라고 하는 곳에 어떤 여자가 반신불수가 되어 오랫동안 병석에만 누워서 신음 중에 있었는데 그는 병석에서 생각하기를 내가 이 반신불수로 오래 신음하다가 죽고 말아야 하겠는가? 내가 이 병든 몸으로도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 끝에 깨달은 바 있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병상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웠다. 그는 결국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한번은 특별히 알펜스 주에 있는 모든 들꽃 즉 야화를 전부 모아오게 하여 이것을 전부 그림으로 그려 500여 종류의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을 본 사람마다 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의 가치가 충분하므로 이것을 하바드 대학에서 사겠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이 소식을 당국에서 알고 이런 보배들을 다른 주로 보낼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알펜스주에서 사서 미술관에 진열하여 보관하게 되어 명성이 떨쳤다.
★ 미국에 싱거라는 사람이 가난한 생활을 중에 병들어 누웠는데 그 부인은 용기를 잃지 않고 모든 가정사를 혼자 맡아 돌보며 자녀를 양육하고 간호하며 밤에는 바느질하고 낮에는 삯빨래를 쉬지 않았다. 이와 같이 용기를 잃지 않고 일하는 부인을 본 싱거는 어떻게 하여 아내를 도울 수 있을까 생각 중에 미싱을 연구해 내고 쇠붙이를 모아 그 어려운 병중에서도 조립하여 내었다.
이것을 발명 특허를 받아 그 미싱의 이름을 따라 "싱가"라 자기 이름을 붙이고 판매하여 많은 재산을 모아 아내를 기쁘게 해주고 바느질을 기계화하게 만들었다.
★ 미국에 죤 밀톤이라는 사람은 42세 때에 한쪽 눈이 실명되고 43세 때 또 한 눈이 실명되어 완전히 소경이 되었으나 그는 신령한 눈으로 신령한 하늘을 보며 세계적인 걸작 "실락원"을 썼다.
★ 오스트레일리아에 한 여인이 병으로 인하여 손과 발을 전부 절단하였다.
이런 불구의 몸으로도 낙심하지 않고 나무로 연필 꼬다리를 하여서 글을 배웠다. 그는 전도지를 써서 배포하여 3000명의 신도를 인도해냈다. 인생고를 선용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 몇년전 미국에 어떤 돈 많은 부인에게 딸 3형제가 있었는데 이 딸 3형제를 데리고 여름에 저 구라파와 성지를 구경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게 되었는데 불행하게 그 배가 가다가 파선 당하여 많은 사람이 대서양에 익사하고 희생하게 되었다. 작은 배로 사람을 구원할려고 했으나 다 구할 수 없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알고 보니 3딸은 다 죽었고 부부만 살은 것을 알고 비통한 그들은 딸들 대신 고아들을 모아서 딸과 같이 정성을 다하여 키우고 가르쳐서 보답코자 결심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아메리칸 캐론이란 유명한 고아원과 탁아소를 세웠다.
자기 사제를 들여 봉사하였다.
★ 미국에 우리가 잘 아는 트레이 박사 아버님은 유명한 부흥사로서 충성하셨다. 그런데 이분이 처음에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로 본래는 중국에 선교사로 가셔서 수고하셨다.
제2차 대전 때 피난민을 구조해 주느라고 분주히 다니다가 자동차 사고로 그만 팔이 부러졌다. 그때 외팔이 되어 일하시다가 한국에 6.25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자연히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청년이 손발을 잃게 됨을 알고 선교부에 청원하여 내가 한국에 가서 의수족을 해줄 마음이 있으니 보내달라고 하여 세브란스 병원과 대전, 광주 등지에서 의수족을 해주며 전도와 봉사에 전력을 기울렸다. 자기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남을 도울 수 있는 자가 되었다.
★ 고구려 때 수나라의 양제가 35만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침략하여 왔을 때 을지문덕 장군이 지리적인 전략으로 대파시켰다.
★ 고려시대 고종(1255년) 41년에 다시 몽고의 침략을 당하였는데 고려왕은 몽고의 공주를 맞아 왕비로 삼고 태자를 몽고에 인질로 사로잡혀 가게 되었고 벼슬아치들은 모두 몽고사람 같은 머리를 깍고 그들의 옷을 입고 다니며 몽고인에게 아부했다. 이때로부터 1335년 이후 이성계가 세운 이조 500년은 실로 수난의 역사였다.
★ 이조 선조 25년(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풍신수실의 야욕은 7년에 걸친 전쟁을 도발하여 왜군 15만이 부산을 내습하기에 이르렀다.
선발대로 (고니니)가 인솔하고 후견부대(가또기요마사)가 인솔하여 우리 땅에 상륙하여 밀양, 대구, 상주, 충주를 점령하고 제2군은 울산, 영천, 여주, 개성과 평양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다행 이도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으로 인하여 왜병을 격퇴케 하였다.
★ 인조 14년(1636년) 청나라 태종이 다시 쳐들어와 병자호란을 일으켰고, 1894년에 중일전쟁이 있었고, 1904년에는 조일 전쟁이 발발하였다.
싸움은 모두 일본이 승리하여 부득이 을사협약을 강제로 맺게 되고 일본통감이 서울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1907년에 정미정변으로 고종 황제가 퇴위하셨다.
★ 1910년에는 융희황제가 일본의 폭력으로 한일합병에 굴복함으로서 일본군이 3개 사단을 투입하여
용산, 평양, 나남에는 육군을 주둔시켰고 전해에는 해군을 주둔시켰으며 전국에는 모두 16,214개의 경찰서와 222,000명의 헌병이 주둔하게 되었다. 우리 백성은, 왜병의 가혹한 탄압을 참을 수 없어 기미년 3월 1일 독립만세 의거를 일으켰다가 검거, 투옥, 살육 당한 연이여 329,000건이나 발생하였다.
3.1운동 대표 33인은 기독교 대표 이승훈씨와 천도교 대표 손병희씨 불교 대표 한용운의 3대 종교 대표가 하나로 뭉쳐 나머지 30인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서명하고 3.1운동의 기치를 들었다. 이 운동의 직접적인 계기는 고종 황제가 시해 당하고 3월 3일 황제의 국장 일이 다가오니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으므로 파고다 공원에서 만세소리가 진동하는 독립의 선언을 하였다.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운동을 위한 집회 수는 1542회에 달했고 동원된 인원은 2,023,000명에 이르렀다.
피해상황은 ; 살해된 인원은 75,002명이요.
부상된 인원은 15,900명
검거. 투옥자는 46,948명
불타버린 교회 수 47교회
학교 전소된 것 2개교
민가 전소된 것 715호
★ 고난을 통한 교회 부흥
독일 교회가 2차 대전 이후 부흥했다. 1945년∼1950년까지가 교회 전성기였다.
비가 오는 날 교인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교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우산을 쓰고 밖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나라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질서와 안정이 되고 보니 노인들이나 몇 명 나올 정도로 교회는 멀어졌다.
우리나라도 역시 지금 교인수가 400만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난을 통한 부흥이라고 본다.
6.25 전만 해도 기독교인 수가 100만도 못 되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몇 해 동안에 200만 교인이 증가했고 교회 수도 6.25 이전에는 3천 교회였으나 69년 통계를 보면 1만 2천 18개 교회로 증가하였고 6.25 민족의 수난을 당하는 동안 교회와 교인 수는 4배로 증가하였다.
★ 어려움에 유익
인도네시아에 오순절 성령운동의 씨앗을 심은 분은 쇼트 목사님이다. 목사님은 30년 전에 미국에서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왔는데 그분이 인도네시아에 도착했을 때 뒤에서 도와주는 분도 없었고 그렇다고 많은 돈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들 부부는 겨우 배삯을 마련하여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뿐만 아니리 신학교를 설립하여 하나님의 성회의 발판을 만들었다. 도와주는 사람 없고 무일푼인 그가 인도네시아에서 그렇게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신앙의 체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신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재산이 넉넉한 그의 아버지는 그가 졸업할 때까지 필요한 학비, 기숙사비, 잡비일체를 은행에 다 맡긴 통장을 선물로 주었다. 그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은행에서 찾아 쓸 수 있었다. 수업 중에 간증시간이 있는데 어떤 학생은 등록금이 없어 금식기도를 했더니 등록금이 생겼다고 간증을 하고 어떤 학생은 기숙사비가 없어 철야기도를 했는데 기숙사비가 생겼다고 간증을 하는데 은행에 예치해 놓은 돈을 찾아 쓰던 목사님은 간증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기를 '저도 간증할 수 있게 해 주십시요'하고 기도를 하였는데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네 통장에 있는 돈을 전부 찾아 돈 없는 학생들에게 전부 나누어주게. 아쉬운 것이 있어야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고 그래야 응답을 받아 간증할 것이 있지 않겠나 그래서 은행에 있는 돈을 전부 찾아서 자기 몫으로는 한푼도 남기지 않고 남몰래 조사하여 기숙사비가 필요한 학생에게 기숙사비를 등록금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등록금을 잡비가 없는 학생에게는 잡비를 필요한 액수를 봉투에 넣어서 철야기도 하는 날 아무도 모르게 방마다 문틈으로 봉투를 밀어 넣었다. 철야기도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학생들이 자기에게 필요한 금액이 들어있는 봉투를 발견하고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함성을 지르면서 기뻐 야단이었다.
응답을 받은 학생들 같이 단잠을 자도 그 밤부터 「아버지 등록금도 해야하고 잡비가 필요한데 제게도 한푼도 없으니 어떻습니까, 주님 해결해 주옵소서.」하고 철야기도 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 후 목사님은 졸업할 때까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부르짖어 응답 받는 체험을 쌓아갔다. 그는 깊은 신앙체험으로 말미암아 졸업을 하자 누구보다도 앞서 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고 빈손으로 불모의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여 성령 운동의 기반을 닦게 되었다. 어려운 고난은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
★ 영국의 유명한 신유의 부흥사가 있었는데 구원파 역사 이래로 그분만큼 강력한 신유의 역사를 행하신 분이 없었다. 그는 미국을 뒤흔들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순절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평생 신장결석으로 고생을 했다. 그가 강단에 서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쏟아지지만 강단에서 내려오면 자신은 사위와 딸에게 업혀서 나갔다. 그의 자서전에 보면 고무공장에서 뜨거운 로울러와 생고무를 눌러 납작하게 만들 듯 하나님께서 자기를 뜨거운 로울러로 거듭 거듭 눌러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술회하였다.
그는 그렇게 고통을 당하면서 살았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그렇게 빈틈없이 전지하시지 않았다면 목숨을 걸고 주의 사업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분이 80세가 되어 목회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희한하게도 목회를 그만두자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고 한다. 이는 사도 바울과 같이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교만하여 넘어 질까봐 가시로 주신 고통이라고 하였다.
★ 태풍으로 말미암아 큰 피해가 있었다. 집과 여러 시설이 바람으로 무너졌다.
어떤 학교에 교사가 무너져 재목들은 산산조각이 났는데 이상하게도 그 중에 두 기둥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조사한 결과 그 나무는 본래 바닷가에서 있던 나무였음을 알게 되었다.
매일 모진 바람을 맞아 그 나무는 바람에 대하여서는 이미 인내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굳은 원인이었다.
인생의 길은 언제나 화창한 꽃밭이 아니라 언제 폭풍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우리는 평소에 어려움을 이기는 신앙의 훈련을 받아 이제까지라도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 물에 빠져 죽음에서 부르짖는 박요한 목사.
지금(현재) 개봉동 광복 교회에 시무 하시는 박요한 목사님이다.
박목사님은 장로의 아들로 태어나서 초등학교에서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작문과 소질이 있어서 톨스토이 셰익스피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한다.
그래서인가 그의 꿈은 노벨상 수상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대학은 서라벌문예과 동국대학 국문과를 거쳤다.
그는 독실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신앙이란 형식적이요 관심적이며 추상적이었다. 나중에는 하나님의 존재까지 부인하고 대학시절에는 술과 담배를 먹고 친구들과 방탕의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대학 2학년 때 여름이었는데 같은 반의 K등과 한탄강 계곡으로 캠핑을 갔었다. 처음에는 얕은 강이었으나 사흘동안의 장마로 강물이 범람하게 되었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었는지 그는 K와 누가 먼저 강을 건넌가 내기를 하기로 하고 먼저 뛰어 들어갔다가 강물에서 1km나 흘러 내려가면서 허우적댔다.
당황하여 몸부림을 쳤으나 강물 속에 두 번이나 꼴깍꼴깍 잠겨 버렸다.
한번만 더 잠기면 기진 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찰라 의심하고 부인하였던 하나님을 물 속에서 찾고 부르짖게 되었다. "하나님 한번만 살려 주세요. 그러면 목사라도 하겠습니다." 그때 그 기도의 응답이 실현되고 말았다.
그때 갑자기 자기도 무르게 강력한 그 무엇이 강 가운데서 허우적대던 그를 강변 모래사장으로 내동댕이쳐 주었다는 것이다. 고난의 함정에서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는 응답이 되었다.
죽음의 함정에서 하나님을 찾아 소명을 받아 지금은 목회자가 되었다.
고 난
<성구와 금언>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연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출 2 : 24 ; 3 : 7).
★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욥 14 : 1).
★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 119 : 50).
★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은 구원하시며(사 63 : 9 ; 벧전 2 : 12 ; 욥 5 : 7).
★ 고생보다 더 중요한 교육이 없다(지스테리).
★ 비애를 실제로 접하는 것은 생의 새 힘을 부어준다(영국 철학자 제임스).
★ 한 조각의 빵을 눈물로 써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할 가치가 없다(토마스 카알라일).
★ 모든 아픔과 고난을 보다 좋은 유익을 낳는 씨앗이라(클레멘트 스톤).
★ 비가 오지 않고 태양만 내려 비치면 사막이 된다(아랍의 격언).
★ 로버트 슐러 박사의 고난을 극복한 비결의 시를 소개한다.
「산이 앞에 가로막힌다 해도 나는 단념하지 않으리라.
나는 계속 도전하리라. 나는 산에 오르리라. 아니면, 산 밑에 터널을 파고 통과 하리라. 아니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그대로 산을 변화시켜 금광으로 만들리라」.
<실 화>
★ 아홉 종류의 고생
미국의 스텐리 존스박은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생의 종류 아홉가지를 들었다.
첫째 : 종교상 혼란한 여러 가지 의견차이에서 오는 고통,
둘째 : 전쟁이 포함되어 있는 사회접촉에서 오는 고통,
세째 : 진재, 화재, 수재, 풍재 등 자연계로부터 오는 여러 가지 재앙의 사실에서 오는 고통,
네째 : 사람을 괴롭게 하는 여러 가지 우환질고에서 오는 고통,
다섯째 : 경제적 공황에서 오는 고통,
여섯째 : 사회의 악습과 무정한 생활표준에서 탈출함을 인하여 생기는 사회의 배척으로 말미암아 오는 고통,
일곱째 : 종교와 정치상 주권자들에게서 받는 압박에서 오는 고통.
여덟째 : 가정생활 곧 가정불화에서 오는 고통,
아홉째 : 그리스도와 합동한 사실, 곧 성도들과 교제하는 사실에서 오는 고통을 들었다.
그 외에도 인생의 고통은 천태만별이라 생각 한다.
★ 하아프는 겨울 바람에만 울린다
어떤 사람이 에어리안왕에게 하아프 하나를 선물했다.
그런데 이 하아프는 바람이 불 때만 좋은 소리를 낸다. 그래서 왕은 음악을 듣기 위해 하아프를 창 밖에 내다 놓았다. 그런데 그 하아프가 신선한 봄바람이 불어와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않고 여름 바람이 불어와도 음악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겨울이 왔다. 어느날 밤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와서 잠에서 깨어보니 때는 겨울이었고 폭풍이 휘몰아치는 깊은 밤이었다.
겨울 바람이 그 하아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 주었다.
이와 같이 인생의 가장 극심한 환란과 역경에서 가장 좋은 것을 발견하고 축복을 받는다.
★ 슬픔으로 인한 주님 발견
클리블랜드에 사는 한 사람이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예기치 못하던 재난이 그에게 닥쳐 와서 그 사업이 왕창 망해 버렸다. 그래서 그는 시카고로 직장을 구하여 떠나고 그의 아내는 친정으로 갔다.
얼마 후에 그의 아내가 병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가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의 아내는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그의 슬픔은 너무나 컸고 매일 상심하면서 울던 끝에 그는 시력을 잃게 되었고 앞을 못 보는 장님이 되고 말았다.
그는 다시 시카고로 돌아갔고 우연히 무디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찬송과 설교에 크게 감동을 받아 전에 맛보지 못하였던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찾았습니다.
그는 어느날 기도회에서 간증하기를 "나는 나의 구주 예수님을 발견하기 위해 나의 시력을 잃게 된 하나님의 섭리를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어느 공동 묘지의 한 비석에는 "세상은 하늘이 치료할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쓰여져 있다 한다>.
★ 전화 위복
미국 서부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큰 농장에 물을 대주던 유일한 우물이 무너지고 막혀 버렸다. 그러나 이튿날 그 막혀버린 샘에서 석유가 솟아 올랐다.
이것은 어떤 환난이나 고통이라도 모두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유익하게 한다는 것이다.
★ 홍수로 방앗간을 잃었고
캘리포니아에 큰 홍수가 났을 때 한사람의 방앗간이 떠내려 갔는데 그 사람은 그 방앗간이 전 재산이었다.
그런데 이 전 재산을 잃은 것이다. 홍수로 재산을 파산하고 이 사람은 낙심하고 주저 않았다.
그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이런 일이 자기에게 왜 닥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재난이 자기에게 유익이 되고 선을 이룬다는 것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그 홍수도 큰 황금 광맥을 발견하게 되어 큰 부자가 되었다.
결국 그를 홍수의 고난으로 가난하게 했던 것이 큰 부자로 만들고자 했던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 애매한 고난
애매한 고난을 받은 자라면 나는 충무공 이순신을 생각한다.
그가 원균의 모함으로 한산도에서 삼도 수군통제사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던 일을 생각해 본다. 그는 이런 부끄러움을 왜 당하였으며 또 어떻게 참았던가?
그리고 그를 오라줄에 묶어서 잡아다 때리고 치고 들고 가두기를 28일 간이나 계속 했다니 역사의 수레바퀴에 먹칠을 하지 않았던가? 그는 옥포, 당포, 한산, 부산, 웅포에서 승전에 승전을 거듭한 장군을 그렇게 고난을 가했던가? 그는 너무 너무 의지의 사람이었고 백전 백승의 맹장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백성들의 인기를 독점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 20년간 유배생활을 했으나
프랑스의 문호 빅톨 유고가 48세가 되던 해에 게르세유라는 섬으로 추방을 당하는 슬픔을 당하였다.
외딴 섬에서 20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에 모든 사람은 그가 완전히 실패한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유명한「레미제라블」이라는 작품을 쓰게 되었다.
★ 환란 가운데 예수를 믿었어요.
광림교회 김선도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어떤 젊은이의 간증이 나온다.
그는 고향인 이리에서 페인트 장사를 했었는데 마음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자기 친구가 사업에 실패하여 어려움을 당하자 자기가 보증을 서고 빛을 얻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의 사업은 더욱 실패하여 부도를 냈다. 그러자 그는 빛 보증을 섰기 때문에 자기 상점문도 닫고 피신해 다니다가 하루는 불량배들을 다리에서 만나 맞아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그 청년은 다리 밑으로 자기 몸을 던졌는데 그만 거꾸로 떨어져서 머리를 다치고 목이 부러져 전신 마비가 되어 죽는 사람 같이 되었다고 한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식물인간이 되어 슬픈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때 마음에 공허가 생겨져서 무엇인가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었는데 치료를 해주는 간호원으로부터 예수를 소개받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날마다 "하나님 나의 손발이라도 움직이고 내손으로 밥이라도 먹게 해 주십시요"하고 기도하자 기적적으로 손과 발에 신경이 통하고 허리를 들고 일어나 앉게 되었다.
그는 그후 계속하여 매달려 기도 생활을 하던 중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나로 하여금 걸어다닐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면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청년은 완전히 버림받는 실패와 고난 가운데 그 마음에 영혼의 눈이 뜨이게 되었다.
★ 화가 복이 되고
옛날 중국에 말 한 필을 키우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집이 있는데 하루는 그 말이 없어졌다. 그러자 집안 식구는 물론 이웃 사람들까지 염려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이 말이 들어 왔는데 야생마 12필을 데리고 왔다. 갑자기 재산이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모두 다 놀라고 기뻐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집의 외아들이 야생마를 타고 다니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상 당했다. 그때 그 주인은 "말이 12필이 생겨져서 복을 받았구나, 생각했더니 오히려 화가 되었구나"라고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나라에 난리가 나서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터에 나가서 죽고 말았습니다만 다리가 부러진 아들은 살아 남아 훗날에 그 지방에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김선도 목사 설교에서).
★ 고난을 이긴 아베베 선수
세계 올림픽 대회에서 맨발의 마라톤 선수로 이름을 날린 이디오피아의 인간 기관차 아베베 선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근위대 장교 출신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그는 4년 후에 세계 올림픽 동경대회에서 예상을 뒤엎고 또 영예의 금메달을 따냈다.
그후에 아베베는 교통사고로 인하여 허리에 상처를 입고 불구자가 되었다. 정말로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척추를 다친지 4년 후에 런던에서 척추 장애자 올림픽이 있었는데 여기 출전하여 다시 금메달을 따냈다. 그는 고난을 이긴 사나이 이다.
★ 악조건을 뒤엎고
목포에서 몇 시간 배를 타고 가면 낙도의 사치초등학교라는 분교가 있는데 20∼30명을 가르치는 여선생이 학생들에게 농구 연습을 시켜 전국 소년체육대회에 출전하도록 만들었다.
섬마을에서 자란 그들이, 그리고 환경이 좋지 않은 그들이 도시에서 환경이 좋고 고기를 먹고 자란 학생들과 대결하여 이기리라는 예상은 전혀 없었으나 마지막 결승전까지 진출하여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한 후 환성을 지르는 관중들 때문에 서로 엉클어져 여선생의 볼을 비비며 흐느껴 우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고 난
<성구와 금언>
★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욥 5 : 7>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 : 10>
★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렘애가 3 : 33-34>
★ 인간은 누구든지 모체 안에 태아로 있을 때에 머리에 상처를 입고 태어나기 때문에 세상에 나오자 마자 운다고 하는 것이다. <심리 학자들>
★ 인내는 모든 고통은 최선의 치료약이다. <플라우투스>
★ 모든 도전에 승리하는 민족만이 번영한다. <토인비>
★ 고난에 유익
미국 알라바마주 엔터푸라이즈에 가면 한곤충의 기념비가 잘 만들어 있다지요. 이 곤충은 볼 위빌이라고 하는 바구미 벌레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바구미 벌레 동상이 여기에 세워 졌는가 하면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전에 알라바마 주에서는 목화 농사만 지어서 살았는데 주민들은 목화농사만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이 목화밭에 딱정벌레가 많이 생겨서 목화 열매를 갉아 먹어 버림으로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때 죠지 워싱톤은 카버라고 하는 흑인 과학자가 이 문제를 놓고 연구한 끝에 땅속에서 열매를 맺는 식물을 심으면 바구미 벌레의 피해를 받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땅콩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땅콩을 심게 되었는데 이 딱정벌레의 위험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땅콩농사에 큰 성공하여 주민들이 잘 살게 되었고 이 지역에 면실유공장 대신에 땅콩 기름 공장이 생겨서 세계적인 땅콩센터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그들이 잘 살게된 이유는 딱정벌레 덕분이라 해서 그곳에 아름다운 곤충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 움막이 전소되고
어떤 그리스도인이 배가 파손되어 구사일생으로 무인도에 닿아서 그곳에 움막을 짓고 어떤 배든지 그 무인도 근처를 지나가다가 자기를 발견하고 구출 해줄 것을 바라면서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잡아 가지고 와서 보니까 움막이 완전히 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데 그 다음날 배 한척이 그곳에 상륙해서 그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좋아서 어떻게 이렇게 알고 찾아 왔느냐고 물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당신이 연기로 구출 신호를 보내지 않았느냐> 고 하더랍니다. 이와같이 때로는 우리가 이해 할수없는 고통과 시련이 올 때도 있으나 이 시련이 도리어 유익 되도록 인도하신다.
★ 상처를 통한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다
현대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라며 하천풍언을 들 수 있는데 그는 후일 일본의 바울이라는 추앙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는 원래 불행하게도 낳을 때부터 기생의 몸에서 출생한 서자였습니다. 첩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지울 수 없는 불행의 상처 때문에 그는 항상 수치와 멸시를 받고 자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의 딛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메이지 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 폐결핵에 걸려 또 다시 시련을 당하게 되었고 결국 학교문을 나와서 학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폐결핵 때문에 토해놓은 핏자국이 벽에 묻은 허름한 빈민굴 속에서 빈민들과 더불어 14년간 봉사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에게는 결핵이외도 안질, 치질염, 축농증, 심장병, 간장의 이상증세 척수병등이 항상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는 그 병 때문에 사회 밑바닥에서 사는 기생들과 걸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사랑과 감화를 주었습니다.
한때 그의 희생적 인품에 감동을 받은 공장직공지아루라는 여인과 결혼을 했던 그는 빈민굴에 모인 무리들에게 자신의 아내를 가르켜 <여러분의 빈민굴속에서 일하는 식모> 라고 까지 했습니다. 자기 사상을 가르켜서 밑닦기 신학이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이뜻은 일본사회의 더러운 곳을 정화시킨다는 뜻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상처투성이의 일생을 살았지만 그는 그 상처 때문에 누구보다도 위대하게 살았고 신앙적인 유산을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하천풍언의 상처 때문에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 상처 때문에 예수를 믿고
현재는 필리핀에 가셔서 선교활동을 하신 미국의 선교사 한분이 있다. 그분은 한국동란 당시 미군 사병으로 참전했다가 중부전선에서 부상을 당했습니다. 거의 생명을 잃어버릴 수 밖에 있는 위기를 모면하고 하와이로 수송되어 대수술 끝에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때 병상에 누워서 그는 예수를 만나고 신앙의 길을 발견 했습니다.
후일 그는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릴번 했던 이 땅에 다시 선교사로 건너와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한국인과 똑같이 온돌방에서 김치와 나물국을 잡수시면서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도 할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포탄에 맞아서 근육이 거의 떨어져 나간 다리의 깊은 상처입니다. 그 상처 때문에 자신은 예수의 복음을 깨달았고 이제 부상당한 다리를 끌고 이곳에 선교사로 왔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의 진실된 고백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김선도 목사님 설교에서>
★ 아들 잃은 후에 신앙을 찾고
포항에서 병원을 경영하시는 김장로님에게는 귀하게 자라고 있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인물이 잘났고 공부도 아주 잘했기 때문에 장차 의사로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키웠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마당에서 수닭과 재롱을 피우며 놀다가 그만 그 수닭이 그 아들의 눈을 쪼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한눈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련 중에서도 그들을 키워서 서울 일류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치기 전날밤 어느 여관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날밤 연탄 가스를 마시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시련과 고통을 안고 번민하던 장로님은 결국 신경쇠약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깊히 하나님께 회개하고 과거의 형식적인 신앙에서 이제는 참 신앙으로 들어가서 더욱 감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 고난을 성공으로 바꾸다
희랍의 유명한 노예 철학자였던 에픽테토스는 그가 노예로서 갖은 핍박과 고난을 당할때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끈질기게 버텨 나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에게는 점차 덕과 지혜가 쌓아져 갔고 마침내 자유인이 되었을 때 훌륭한 철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 두손가락이 없는 딸을 낳고
조용기 목사님께 얼마 전 미국의 한 젊은 주부로부터 항의에 가득한 편지 한통을 받았었다. 그 자매님은 첫딸을 낳았는데 난산 이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하늘이 아득해지는 해산의 고통에서 해방된후 한숨을 자고 깨어나 태어난 아기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아들보다 딸을 원했답니다. 얼마 후에 간호원이 들어와서 당신이 낳은 아이는 따님입니다. 하고 알려줄 때 자매님 마음은 대단히 기뻤습니다. 그런데 간호원의 얼굴이 밝지 못하고 어두운 것을 보자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나? 하고 생각하며 계속 간호원을 쳐다보니 "대단히 미안하고 안된 말입니다만 아이의 왼손에 두 손가락에 두 마디가 없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그 자매님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아들도 아닌 딸이 손 병신이라니 기가 막혔습니다.
다음 순간부터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답니다. "아니 하나님이 내게 그럴 수 있나" 내 딸에게 이렇게 가혹한 운명을 내리시다니 하나님도 너무 하시다.
이 자매님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잔뜩 늘어 놓다가 조목사님 생각이 나서 원망의 화살의 방향을 조목사님께 돌리고 원망이 가득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조목사님은 미국에 있는 자매님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답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자매님의 딸이 왼손 두손가락의 두마디가 없이 태어났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와 사망의 법이 자매님의 딸이 정상적인 아기가 되는 것에 빗나게 했고 자매님의 생활에 행복대신 비참한 사망의 고통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의 딸이 불구자로 태어난 것은 우리의 조상 아담이 가져온 죄와 사망의 법이 그 속에 역사 했기 때문입니다. 조상의 죄 자매님의 죄 사회와 인류의 죄 그리고 자매님도 모르는 사이에 복용한 현대의 약이 자매 속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자매님으로 하여금 불구자인 딸을 낳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매님의 딸이 불구자로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을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원망을 필요가 없습니다. <조용기 목사님 설교에서>
★ 하나님이 내 눈을 멀게 하나니
어떤 목사님의 편지 상담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에 여대생 한 분이 여름방학을 기해 친구들과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어느 호텔에서 민박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이쑤시게로 장난을 치다가 그만 자기의 눈을 찌르고 말았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서 치료를 했는데 의사가 오진을 하여 눈동자가 좁아지는 약을 눈에 넣어 주어 그만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다른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이번에는 눈동자가 커지는 약을 너무 많이 눈에 넣어서 눈이 아주 못쓰게 되었습니다. 일본으로 돌아온 자매님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겠는데 그만 눈이 그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절망이 되겠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께 편지하기를 "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왜 내 눈이 이지경이 되게 했느냐? 하나님은 왜 내 눈을 고쳐 주지 않느냐? "는 원망이 가득한 편지입니다.
이런 문제는 기독교인들이나 목사님들에게 질문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 자매님의 편지를 받았던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자매님의 예쁜 눈이 못보게 된 원인은 자매님의 실수로 사망의 법이 역사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 눈을 찌른 것도 아니고 자매님의 눈이 안 보이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원망해서 되겠습니까? 자매님이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 될 것은 아닙니다. 사망의 법이 역사하면 생명의 법으로 반작용을 일어킴으로써 이를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 상담에서>
★ 심리치료법을 수립한 빅터 프랭클
세계적인 정신 의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세계적인 당시 유대인이라는 죄목으로 독일군 포로 수용소에 갇혀서 갖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옷을 모조리 벗기고 몸에 지닌 모든 물건을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그의 손에 끼워진 결혼 반지조차 탈취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린은 말하기를 <당신들은 나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할지라도 단 한가지 당신들이 나에게 준 상처에 대한 자유로운 반응만은 결코 빼앗을 수 없을 것이오>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깨달은 생의 교훈을 토대로 의미요법이라는 새로운 심리치료법을 수립해서 세계에 공헌을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상처 그 자체가 아니라 상처에 대한 반응입니다.
★ 키에르게골의 입은 상처
덴마크가 낳은 유명한 철학자 하면 키에르케골을 들수 있다. 그는 코펜하겐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가 철이 들기 시작한 소년 시절에 그는 자기 아버지가 결혼한지 불과 6개월만에 출생한 것을 알고 굉장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엄격한 종교교육을 받았던 그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의식이 우울증의 상처로 남겨지게 된것입니다.
그가 젊었을 때 만난 레진 올젠이라는 여인과 사랑을 하다가 결국 파혼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실패한 실연의 상처는 일생동안 그를 고독과 우울 속에 가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상처를 통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발견하려고 고민하였고 결국 새로운 사상을 정립하여 현대 유신론적 실존주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실존에 세가지 단계가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첫째는 미적 실존인데 이것은 리비도의 충동에 따라서 살았던 호색한 돈판의 생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윤리적 실존인데 이것은 윤리적인 행위에 따라서 살아가려는 삶의 태도입니다. 그러니 이것도 불안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결국 실패로 끝나고 바리새인의 위선에 빠지고 만다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종교적 실존의 단계인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 신앙의 결단을 통해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궁극적 단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현대 실존주의의 형성에 결정적 공헌을 남겼습니다.
★ 한국 축구의 대들보 박성화
얼마전 세계적인 잡지 가이드 포스트지에 박성화 선수가 축구볼을 몰고 달려가는 사진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안의 기사에는 큰 활자로 <박성화 한국 축구의 대들보> 라고 쓰여 있었다. 그에게도 한계는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급성 간염과 무릅 연골 파열로 인해 거의 거동이 불가능하게 된 시련의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 가운데서 예수를 발견하고 믿음의 힘으로 자신의 상처를 딛고 재기하여 잔디밭의 돌고래라는 별명을 얻은 축구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픔의 상처로 하여금 더욱 신앙의 위력을 체험하는 축복의 기회를 만들었고 하나님을 향한 적극적인 신앙을 깨닫게 하였던 것입니다.
★ 고난의 날을 기념한 유대인
세계를 통틀어 패전과 패배의 날을 경축일로 기념하는 민족은 유대 민족을 빼놓고 없다고 한다. 다른 모든 민족은 빛나는 승리의 날만 기념하고 경하한다. <학가다> 는 유대의 민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책에서 유대인의 가장 큰 제사날은 유월절이라고 한다.
유월절은 일찌기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매여 있다가 해상되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때를 기념하는 출제일이다. <학가다> 는 해방의 기쁨도 귀중하오나 그 중에서 <우리는 이집트의 바르의 종이었다> 는 귀절로 시작된다. 전세계의 민족의 문학 역사에서 이렇게 굴욕에 가득찬 패배의 이야기로 시작한 역사서는 찾기에 힘든다. 특별히 유월절 날에 유대인의 식탁에서 몇 가지 고난을 상징을 찾을 수 없다.
① 쓴 나물을 먹는다 이것을 먹음으로써 유대인들은 패배의 쓴잔을 되씹는다. 민족의 패배를 말로만 전하는 것으로는 모자란다. 그것을 제사 의식에 되살려 민족의 기억 속에 새겨 놓고 넘어 가겠다는 것이다.
② 그 다음 그들의 음식 가운데 무교병인데 이 무교병은 유대인들이 종살이 할 때에 먹던 맛솟이란 빵인데 소다를 넣지 않는다.
③ 또 한가지의 상징적인 음식은 삶은 달걀이다. 삶은 달걀의 뜻은 여러 각도에서 해석하려고 성서 학자들은 무척 애를 썼는데 지금부터 약 백년전 한랍비가 그럴듯한 풀이를 했다. 곧 이 모든 식물을 삶으면 말랑말랑 해지는데 달걀만은 삶으면 삶을수록 단단해진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은 곤란을 받으며 받을수록 신념과 결의가 굳고 단단해진다. 이것이 유월절에 달걀을 삶는 다고 한다.
④ 그리고 유대인은 유월절에 아라자를 마신다. 이것은 최후의 승리와 최후의 해방을 상징한다 <유대인의 생활 방식에서>
★ 의사의 실수로 고생
6, 000여곡의 찬송을 작곡한 소경 크로스비란 여인이 있다. 그는 생후 6개월만에 소경이 되었는데 그는 자기가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고 의사의 실수로 보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했습니다.
그 여인은 말하기를 <내 육신의 눈은 감겨 졌으나 눈을 뜨게 하시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가 소경이 된 것은 어떤 운명론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리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지도 않고 인간의 실수로 생각했다.
★ 고난을 통하여 깨우침 : 영국의 유명한 저술가 <시, 에스 루이스> 는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형안 할 때에는 우리의 양심을 향해서 귓속말로 얘기를 하십니다. 그러나 그 귓속말로 얘기해서 듣지 못할 때는 때때로 메가폰이라는 고난을 통하여 이 귀머거리가 되어 있는 그 사람을 깨우친다고 했다.
★ 인류의 역사는 고난이다 : 어느 나라왕이 학자들에게 인류 역사라는 제목을 주면서 책을 써 오라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들은 상당히 두꺼운 책이 된 인류의 역사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책을 본 아운은 너무 부피가 많으니 좀 줄여서 오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서 써 왔습니다. 그런데도 왕은 부피가 너무 많다고 다시 써 오라고 했습니다. 학자들이 네 번 줄여서 썼던 인류 역사책은 단한장에다 기록했는데 거기에 단 한마디로 <고난> 이라고 써 있더랍니다.
★ 고난과 뛰어남
세계 80년 성회때 안이숙 여사가 나오셔서 간증하기를 우리 민족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세계 뛰어나고 잘 사는 민족이 되지를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기도하는 것으로 뛰어나고 모이는데 뛰어나고 이런 큰 성회를 개최 할 수 있도록 헌금하는 것으로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축복은 우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요. 앞서가신 신앙의 사람들이 포악한 제국주의자들과 공산군들에게 끌려가서 어떤 성도들은 굶어죽고 어떤 사람들은 추워서 죽고 어떤 성도들은 맞아서 눈이 뛰어 나와서 죽고 턱이 떨어져서 죽어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 희생의 대가라고 눈물로 말했던 것을 들었습니다. 과연 그리스도 십자가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이 힘을 감사합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 부흥의 꽃은 무수한 성도들의 죽음 무덤 위에 활짝핀 결과라 의심없이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