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대한 예화
기다림에 대한 예화
<성구와 금언>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출 14 : 14).
★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창 49 : 18).
★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리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욥 14 : 14).
★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막 15 : 43).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전 1 : 4).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롬 1 : 21).
★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벧전 3 : 20).
<실 화>
★만리장성
중국에 만리장성도 우연히 그리고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만리장성을 쌓기 위하여 돌 하나를 갔다 놓았다. 그 사람이 생각하기를 그 돌 하나 하나가 그렇게 훌륭하고 엄청난 만리장성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만 비록 적은 것이지만 돌 하나 쌓는데서 부터 만리장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대망의 사람은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하다.
★ 우편 배달부의 성(城)
프랑스에서는 돈이 있으면 거대한 성곽을 쌓아 올리고 그 성곽 위에 자기 이름을 써 놓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어떤 우편배달부가 자기성을 쌓고 싶은데 그에게는 돈도 없고 여건도 허락지 않았다.
그런데 우편 배달부는 편지를 배달하고 돌아올 때마다 돌을 실어 날랐다. 10년, 20년 계속해서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도 무릅쓰고 돌을 가져 날랐다. 무려 40년 동안을 돌을 저 나른 후에 그가 퇴직하게 되자 그는 퇴직금을 가지고 그 주어 모은 돌로 훌륭한 성을 쌓게 되었다.
정부에서도 그 배달부의 갸륵한 뜻을 기리기 위해 그 성에 우편 배달부의 성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김○○ 목사).
★ 망부석
홍콩 북방으로 약 20km 가면 큰 산둥 허리에 기묘한 바위가 서 있다고 한다. 그 바위를 이름하여 망부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유인즉, 아득한 옛날에 그 산 밑에는 조각배를 타고 매일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한 어부의 가정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이 어부가 배를 타고 좀 멀리 나가서 고기를 많이 잡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러나 한번 간 그는 돌아오지를 않았다.
그 날부터 그의 아내는 아기를 등에 업고 산에 올라가 남편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 하였다.
하루도 아니요 이틀도 아니라 여러날 여러해가 지나도록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망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인생은 기다리는 동물이다라고 한다.
기 다 림
<성구와 금언>
★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창 49 : 18>
★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나이다. <욥기 14 : 14>
★ 예수께서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 11 : 3>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전 1 : 4>
★ 삶의 고통의 절반은 기다림이다. (로우즈)
★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흔히 거의 기대하지 않은 일은 잘 생긴다. <디즈레일리>
★ 가시나무를 심는 자는 장미를 얻을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필패이>
실 화
★ 기다린 아버지
제주시에서 성산포로 가는 길가에는 눈이오나 비가오나 항상 떠나간 자기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느 늙은 아버지가 있답니다.
지난 60년대에 월남전이 치열할 때에 월남참전을 위해서 집을 떠나면서 아버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전사통보가 왔을 때에 그의 가족들은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웃 마을에 살던 그 젊은 친구들은 모두 돌아왔는데 자기 아들만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아침만 잡수시면 길가에 나와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7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기다림과 축복
본문: 사 30:18
오늘 본문 말씀 이사야서 30:18에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 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를 기다리신다고 했고 또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5:11에도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자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고 조급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도 없고 하나님 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사라는 아들을 주실 때까지 참으며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뜻으로 하나님의 일을 촉진시켜 보려다가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고 큰 불화와 후세에 전쟁의 불씨를 남겨 주었습니다. 오늘날 아랍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곧 이스마엘과 이삭의 전쟁인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계시의 꿈을 꾼 다음에 형제들의 모함으로 구덩이에 빠져 죽을 뻔도 하고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도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원망하지 않고 14년이 나 참고 기다리다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도 7년간이나 사울왕의 창칼을 피하여 이 굴, 저 굴, 이 바위, 저 바위를 숨어 다녔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축복의 날이 올 때까지 잘 기다렸기 때문에 대 성군 다윗 왕이 된 것입니다.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큰 그릇이 될 수 없고 큰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1.참고 기다리라
시편 37:7에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지어다" 했습니다. 복 받을 일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축복이 안 나타나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까? 그럴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참으며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도리어 "슬픔과 고 난의 보자기에 축복을 싸다 준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역대 하나님의 귀한 성도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다 겪었습니다.
고통이나 시련이 올 때 불평이나 낙심대신 "주여 감사합니다. 이 시험이 지난 뒤에는 무슨 축복을 주시 려고 하십니까" 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시련의 크기 만큼, 고통의 크기 만큼 그 다음에 큰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감사할 수 없는 것을 감사하며 기다릴 때 기적적인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평하지 말고 기다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시편 40:1에 보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지 않는 자는 응답을 받기 어렵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하늘 나라에는 되돌아온 소포가 많을 것이다" 그랬습니다. 참고 기다리며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응답이 되돌아 오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낙심치 않고 계속 부르짖어 응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재판관에게 애원할 때도 물러설 줄 모르고 계속 매어 달리다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응답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 며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때가 되면 내 뜻과 내 생각대로는 안 되어도 다른 방법으로라도 하나님은 꼭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기도하며 기다리던 120명의 성도는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지만 실상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그 약속을 들은 사람이 500여명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120명 외에는 중간에 다 낙심하고 돌아갔기 때문에 못 받은 줄 압니다. 믿고 기도한 것은 은행에 저금한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 찾는 때가 옵니다. 씨앗을 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것은 즉시 이루어 주시고 어떤 기도는 몇 년 후에 이루어 주시고 어떤 경우는 수 십년 후에 이루어 주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박국 2:3에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자.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3.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득이 참고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큰 축복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0:23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해도, 십일조를 해도, 봉사생활을 해도 이랬다 저랬다 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고 꾸준히 계속해야 합니다. 조급하고 안절 부절하는 사람은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기다림이 없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참고 기다리십시오. 불평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움직이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참고 계속하십시오. 그럴 때에 정오의 햇빛같이 빛나는 때가 오며 축복의 날이 오는 것입니다.-아멘-
믿음과 기다림
존은 열 살 되던 해 크리스마스에 할머니로부터 우표 앨범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다가 왔지만 우표앨범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런데다 놀러온 친구들은 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경하길 원했다. 존은 선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것은 할머니에게 받은 우표 앨범...이 건..."
"존, 아직 할머니에게서 우표 앨범이 오지 않았는데, 왜 그런 말을 했니?"
존은 이상한 얼굴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우표 앨범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받은 것과 같아요."
존의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믿음을 방해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개월이 지났으나 할머니에게는 여전히 아무 연락이 없었다.
존의 어머니는 왜 할머니가 우표 앨범을 보내지 않는지 마음에 강한 의심을 가지고 아들에게도 이렇게 떠봤다.
"존! 할머니께서는 너에게 약속한 것을 잊으셨나보다."
"엄마, 결코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께서 잊어버리시다니요."
존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존의 어머니는 아들의 신뢰에 찬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엄마, 할머니께 앨범 고맙다고 하는 편지를 보내면 어떨까요?"
"그래, 그거 참 좋은 생각이구나. 자, 한번 써 볼까?"
존의 어머니는 이렇게 용기를 주었다. 순식간에 편지를 쓴 후 우체통에 넣었다. 존은 할머니를 믿으며 휘파람을 불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 후 며칠 안되어 답장이 날아왔다.
"존에게... 존! 할머니는 너에게 우표 앨범을 사 준다고 한 약속을 잊은 게 아니란다. 너의 마음에 드는 앨범을 구하려고 찾아보았으나 좀처럼 없더구나. 그래서 나는 뉴욕에 주문편지를 보냈단다.
그런데 뉴욕에서 보내온 앨범은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도착한 데다 너무 좋지가 않아서 다른 것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여기 3달러를 보내니까 네가 마음에 드는 것을 그곳에서 사가지렴. 할머니로부터."
편지를 읽은 존의 얼굴은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 찼다.
"엄마, 제가 말한 대로지요?"
존은 할머니와의 약속을 결코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그가 믿고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노력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기다림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금이 면제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언제나 월요일 아침이 되면 기숙사로 가기 위해 짐을 챙깁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때에 절은 손으로 차비 몇 푼을 겨우 쥐어 주곤 돌아앉아 속앓이를 하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어머니가 기숙사로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뜻밖이라 왜 오셨냐고 말도 못하고 서 있는 아들에게 몇 번을 접었는지 모르게 꼬깃해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미안하구나,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서..."
아들은 어머니의 그 손이 부끄러워 얼른 방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몇 년 뒤, 그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교도소에 수감됐습니다.
수갑을 찬 아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며 아들은 비로소 다짐했습니다.
"죄송해요 엄마... 조금 기다리시면 제가 호강시켜 드릴게요."
"그, 그래... 기다리마, 기다리고 말구."
출소 후 아들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돈을 모을 때까지는 어머니 앞에 나타나지 않으리란 결심으로 명절 때도 찾아가지 못하고 견뎠습니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고 설을 앞 둔 어느 날, 그가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이젠 찾아갈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큰아들이 돈 벌어 호강시켜 준댔다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전갈이었습니다. 그날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가슴에 안은 채 아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 왜 하루를 기다리지 못하셨습니까? 하루를...."
어머니 가슴에 박힌 못을 끝끝내 뽑아드리지 못한 아들은 눈물만 흘렸습니다.
양보와 기다림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초행길에 오던 차가 비켜서서 기다려주는 배려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이 양보하기를 강요하며 살아간다. 행복은 작은 배려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잊은 채 말이다. 기다리면 손해보는 것으로 인식되어 급행료와 새치기 문화가 한때 부정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기다리면 손해본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배려도 쉽지 않다. 기다려주는 여유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좁은 길을 서두르며 달려와 상대방보고 비켜달라고 삿대질하는 것은 한가위 명절의 기분을 망칠 수 있다. 한가위의 넉넉함을 양보와 기다려주는 배려로 시작하면 좋겠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이 들떠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수하기도 쉽다. 이럴수록 양보하고 기다리자.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는 성경 말씀을 살펴보자. 나만 우선이라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게 원수가 되기 쉽다. 마음은 벌써 고향인지라 서둘러 가려 한다. 이번 기회에 생각을 느긋하게 바꿔보자. 세상이 달라지고 가을하늘이 더 높게 보일 것이다.
기다림
롬5:3-4; 약1:2-4
얼마 전 어느 탄광에 갱도가 무너져서 그 안에 갇힌 광부들이 모두 질식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은 쉽게 생명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조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끈 질기게 기다리고 있던 순간, 그 갱도의 위에서부터 구멍이
뚫려 산소를 마시면서 견디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구출되 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쉽게 낙심한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다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끈질기게 버티던 그 사람만이 살아나왔다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 최후에 구원을 얻게 됩니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하기를 배우고 기다리기를 배우라." 우리는 기다리기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기다림은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기다림
2차 대전 당시 인디애나주 하몬드에서는 사람들이 담배 한 갑을 배급받기 위하여 아침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들에 5시간씩이나 그것도 점심까지 거르면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인가가 그들을 부여잡고 노예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로운 사람들이 아니며 그들은 희생자들이다.
기다림
희망 속에서 사는 삶은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으로부터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편지를 받은 사람의 삶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희망은 슬픔 한가운데에도 기쁨을 가져오고 사랑하는 이를 그리움에 가득찬 가슴속으로 데려온다. 과거에 우리와 함께 있었고 미래에 다시 우리를 찾아올 그 사람은 추억과 희망이 교차하는 귀중한 순간에 이미 우리와 함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그가 과거에 이미 우리의 삶에 와 닿았기 때문에 다시 오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 살던 한 학생이 멀리 동부 해안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많은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을 떠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별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만남이 즐겁지도 않겠지요"하고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신가? 안 계신가? 아마도 우리는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슬퍼하는 가운데 그분이 계시다는 징표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며, 그리워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그분의 발자국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일편단심으로 기다릴 때 우리는 그의 사랑이 이미 우리 삶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들을 그리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을 기다리면서 더 깊어지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아들이 오히려 그들 사랑을 재발견하듯, 우리가 인내하며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완전해진다.
그리스도를 기다림
1986년 1월 베이루트에서 피납되었던 도재승 서기관이 지난 11월 4일 돌아왔다.
그리고 피납 21개월 동안 그를 기다리던 가족들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생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였다. 사실 어쩌면 우리들 중대다수는 그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아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애", 아니면"아니 그런 일이 있었나?"하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만큼은 자나깨나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아내는 검정 옷만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언제 남편이 돌아올는지 모르지만 언제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도 그러한 마음 가짐이 있어야 한다. 평생을 경건하게 살았던 호나티우스 보나르는 아침에 해가 뜨면 창문을 열고 커텐을 젖히며 "주여! 이 아침에 오시겠읍니까?"라고 말하고 또 밤이면 창문을 닫으며 "주여! 이 밤에 오시겠읍니까?"라고 말하면서 항상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았다고 한다.
기다리는 기도
갈 6:9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대홍수가 날 것을 예고한 일이 있다. 그러나 온세상은 120년 후에 대홍수 같은 것은 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서 그사실을 기대하고 기다리던 노아를 온 세상은 다 조소했다. 그러나 정한 때가되니 대홍수가 일어나서 세상을 쓸어 버렸다.
우리는 '설마'하고 - 하나님은 '틀림없으시다'
우리의 기도의 생활은 어떻한가 ?
1. 기도에는 손해가 결코 없다는 것을 확신하라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둔다(갈6:7)
예) 해마다의 기도가 어떻게 그렇게 모두다 이루어 주시는지 ---
예수님의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하신 일은 기도하신 일이다.
2. 하나님이 이루시도록 기다리라
우리가 즐겨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천 2백번이나 꽃을 왕복하며 얻은 것입니다.
영어사전 웹스터를 집필한 웹스터는 36년동안 밤낮으로 이 일을 했습니다.
작곡가 요셉 하이든은 8백개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치창조라는오라토리오는 66세 되서야 8백번이라는 작품을 써본 후에야 나타난 것입니다.
시스턴 채플에 그려진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만찬'도 8년동안 2천번이나스케치해본 결과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한두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찾는 자에게반드시 성공의 기회가 찾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도록기다리는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
예) 출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모세의 애굽과의 싸움에서)"
적용) 하나님이 이루시도록 가만히 맡기고 기다리라
3. 하나님이 이루시는 응답을 바라보라
응답도 영의 일 다 보는 것이 아니다- 깨닫는 자만이 본다.
기다리는 자만이 본다.
감사하는 자만이 본다
예)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예)이스라엘의 전쟁의 분명한 구분 - 실패는 자기 주장 할 때 / 승리는하나님을 앞세우고 법궤를 앞세울 때
기다리는 사랑(사랑하면 가다리는 수고도 거뜬히 해 낸다)
1964년 키 웨스트 해변.한 사내가 인적없는 바닷가에서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던진 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벌써 6년이 넘도록 그는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온다는 약속이 있는 것도 올 가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는 지금 그녀를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랑이 사람을 이렇게 이상하게 만드는 것인줄을 예전에는 미처 상상도 못했던 사람이다. 미국의 代表的인 俳優로 인정받고 있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은 [하바나]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사건의 발단은 직업 도박사인 잭(레드포드)이 세기적인 도박을 하기 위하여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바나행 배를 타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그는 배안에서 생긴 困難한 問題를 기지를 발휘하여 거뜬히 해결한다. 이를 유심히 지켜본 미모의 여인 바비역을 맡은 레나올린이 무슨 물건 하나를 내밀면서 세관을 통과시켜달라고 부탁을 한다. 고성능 무전기였다.
내란의 와중에 있는 쿠바에서 이런 物件을 지니고 있다가 붙들리면 생명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조차 없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그들이다. 바비는 그 당시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에 항거하고 있는 카스트로의 일급 참모인 의사 듀란의 아내라는 것이 밝혀진다.그리고 그녀또한 지하운동의 상당한 지도자라는 것도 알게 된다.
두 사람사이에 로멘스가 무르익기엔 너무나 상이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의사 듀란이 죽고 바비가 감옥에 갇혀서 심한 苦?.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잭이 들은 것이다. 잭은 거액의 뇌물을 써서 그녀를 석방시켜준다. 이어서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으면서 둘의 사랑은 아름답게 영글어 간다.
그러나 만사를 잊고 둘이서 自由의 나라 美國으로 脫出하려는 直前이었다.
잭은 바비의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그는 자기에게 최악의 순간이 닥칠 때 사용하기 위하여 팔뚝속에 감추어 두었던 다이아몬드를 뇌물로 제공하고 그를 釋放시킨다음 이 사실을 바비에게 말해 준다. 바비로서는 다시 남편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일생 일대를 통하여 두 번 있을 수 없는 진한 사랑의 기억을 담은 8일간의 로맨스가 주인공을 끈질기게 텅빈 해변으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일제 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했던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수시로 먼 하늘에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라는 찬송을 부르곤 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올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누가 비웃고 어리석다고 조롱해도 능히 감수할 만큼 대단한 것이다.
기다리는 사랑
눅 15:11-32; 고전 2:9
제주시에서 성산포로 가는 길가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항상 떠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느 늙은 아버지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60년대에 월남전이 일어났을 때, 그의 아들은 월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집을 떠나면서 "아버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월남전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전사 통지서가 왔을 때에 그의 가족들은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웃 마을에 살던 그 젊은이의 친구들은 모두 돌아왔는데 자기 아들만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아침식사 후면 언제나 길가에 나와서 해가 질 때까지 아들을 기다
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내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매일을 하루같이 길가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을 보게 됩니다.
이같이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품을 떠났던 모든 사람이 다시 돌아오기를 밤낮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이 사랑의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누구도, 무엇도 이러한 하
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신앙
슐러 목사가 빅터 프랭클에게 "당신은 어떻게 종교적 경험을 가졌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어떻게 비둘기를 잡습니까?"
라고 되묻고 나서 대답했다.
비둘기를 잡는 방법은 당신이 손바닥에 쌀알이나 빵부스러기를 놓고 당신의 손을 활짝 펴 놓는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비둘기는 당신의 손 가운데서 쉴 것이다. 조용히 하라. 그러면 당신은 믿음을 얻을 것이다. 당신이 믿음을 가다듬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낄 것이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사 46:10)"
기다리라
"혹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줍지 못하셨나요? 틀림없이 엊저녁에 그 극장 안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요"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한 여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극장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니 아직은요. 하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잠깐만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지배인은 이 말을 남기고 목걸이를 찾기 위해 어디론가 가버렸다. 얼마 뒤, 지배인이 돌아와 수화기를 들었다. "부인, 기뻐하세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았습니다."하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 여인은 지배인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으러 간 사이를 기다리지 못했던 것이다. 극장 지배인이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를 추적하려고 백방으로 애써 보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여인과 같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데 실패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가 응답을 주시기에 가장 적당한 때인지를 아시고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라고 명령하신다.
기다린다는 것
월리엄 그레이(William Gray) 목사는 알프스의 한 빙하 동굴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동굴은 단단한 얼음을 뚫어 만든 통로를 통해서 가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가 그 으스스한 터널을 따라서 점점 더 깊이 내려감에 따라 가늘게 들어오던 햇빛도 차차 희미해져 갔다. 우리가 그 터널 끝의 좁은 방에 들어갔을 때에는 앞을 분간할 수없을만큼 완전히 깜깜했다. 그때 안내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가디리세요! 5분쯤 지나면 앞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가만히 선채로 기다렸다. 과연 그 안내인의 말대로였다. 5분쯤 지나니까 눈앞이 환해진느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의 눈이 새로운 환경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우리 눈이 밝아지자 동굴 벽과 천정이 반투명의 초록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신선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고, 안내 책자를 읽을 수도 있었다." 기다림은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해준다. 그러나 참을성있게 가다리는 눈들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갑자스런 변화 때문에 좌절하고 당황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어둡다. 하지만 그들이 벽을 더듬던 초조한 손길을 멈추고 하나님 안에서 조용히 기다릴 때 빛이 들어오고, 그들은 하나님의 친철하심과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기다림
희망 속에서 사는 삶은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으로부터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편지를 받은 사람의 삶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희망은 슬픔 한가운데에도 기쁨을 가져오고 사랑하는 이를 그리움에 가득찬 가슴속으로 데려온다. 과거에 우리와 함께 있었고 미래에 다시 우리를 찾아올 그 사람은 추억과 희망이 교차하는 귀중한 순간에 이미 우리와 함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그가 과거에 이미 우리의 삶에 와 닿았기 때문에 다시 오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 살던 한 학생이 멀리 동부 해안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많은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을 떠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별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만남이 즐겁지도 않겠지요"하고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신가? 안 계신가? 아마도 우리는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슬퍼하는 가운데 그분이 계시다는 징표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며, 그리워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그분의
발자국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일편단심으로 기다릴 때 우리는 그의 사랑이 이미 우리 삶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들을 그리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을 기다리면서 더 깊어지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아들이 오히려 그들 사랑을 재발견하듯, 우리가 인내하며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완전해진다.
기다림속에 이뤄지는 믿음
『실명한 밀턴은 크롬웰과 함께 영국에서 종교혁명을 일으켜 영국을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해 크롬웰은 죽고 밀턴은 정치범으로 사형수가 되었다가 겨우 석방되었다.
그가 실낙원을 쓸 무렵에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무르익은 완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었는데 [내가 역행해서 만들어 가는 것보다는, 내 속에서 이루어져가도록 대망하고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위대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 기다림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
성경본문:시편 62
찬 송:361장 주의 주실 화평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자의 소망이 저를 쫓아나는 도다" (시편 62:5)
콜트만 목사님은 어느 부인이 처해있는 복잡한 결혼문제를 상담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의 처지를 자세히 분석한 후에 다음과 같이 권고를 했습니다. [아주머니 앞에 두갈래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 마음대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빨리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는 주안에서 그리고 주님을 위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주머니의 인내심을 여러가지로 시험해 보실 것입니다만 결국 변치않고 만족한 해결책을 주실 것입니다.
그 부인은 목사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주님을 의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여인의 신앙이 강하여졌으며 하나님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 주시기 시작하시는 것도 알았습니다.
명상 : 인내는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는 미덕이다.
기다림의 뜻
오늘의 본문 말씀에는 '기다림'이라는 뜻이 히브리어인 '카와'가 세 번이나 나온다. 2절의 "바랐더니, 4절의 "기다렸거늘", 7절의 "바라셨더니"라는 말씀이 각각 번역은 다르게 되어 있지만 본디 한 단어이다.
이 '기다림'의 개념을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합리적인 기다림이다.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또한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었으니 좋은 열매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시간적인 기다림이다. 수고에 합당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정성을 들였으므로 이제 기쁨을 기다린다. 땅을 흘렸기에 추수하는 영광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부분을 본문 중에서 보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4절)" - 포도원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우리는 불평도 많고 변명도 많다. 가난 때문이요, 질병 때문이요, 억울하기 때문이요, 분하기 때문이요 - 때문이라는 말이 수없이 등장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를 위하여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은혜를 넉넉하게 주셨다. 필요한 것은 다 주셨다. 내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는 그 길을 막아 주셨다. 내가 나쁜 일을 하려고 하면 나로 하여금 병들게 하겼고 실패하게끔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하신다.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 이제 가을이 오기를, 열매 맺기를 학수고대한다.
다음은 뜻이 있는 기다림이다. 여기에는 강력한 하나님의 의지가 있다. 반드시 이루려고 하신다. 단순히 포도나무를 심어 놓고 포도 맺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좋은 포도를 따기 위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우리는 분명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세상에 내시고 오늘까지 이 땅에 두실 때에는 뜻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포도원을 가꾸셨다. 다 치워버리고 다시 심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기대하시는 포도를 따내고야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양보하지 않으신다. 좋은 포도가 맺도록 역사하시고, 반드시 좋은 포도를 추수하시고야 말 것이다. 누구를 통해서든 이루신다. 반드시 영광을 받으신다. 역사를 실패작으로 만들지 않으신다. 만백성을 통하여 높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 백성을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실 것이다. 그런데 거두게 된 포도는 들포도였다. 이것은 양적인 부족함에서 오는 실망이 아니라 질적인 부족함에서 오는 실망이다. 많이 거두지 못했다고 하여 실망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거두고 있는 것이 쓸모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등대지기 부부
사 42:5-9; 고전 7:2-4; 엡 5:22-24
뉴욕에 살던 한 처녀가 등대지기 청년 제이콥 워커와 결혼했다. 이두젊은이는 등대 하나만 있는 외딴 섬 로빈스 리프에 살아야 했다.
등대를지키는 것이 워커의 일인 데다 그는 자기 일에 굉장한 사명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는 처음에는 이런 데서는 도저히 살지 못하겠다고 1개월간이나 짐을 풀지 않았으나 혼자 떠날 수도 없어 그럭저럭 정착하였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이해의 폭을 넓혀 갈 즈음 남편 제이콥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고 그럭저럭 버텨보았는데 계속 심해지자 스태튼 아이랜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결국 제이콥은 폐렴으로 죽었다. 결혼한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임종하기 전 제이콥은 그의 아내에게 부탁햇다.
"등대를 생각하라."
남편의 시신을 등대가 보이는 언덕 위에 묻은 워커 부인은 등대를 지키기 시작했다. 그 때 나이가 스물 아홉. 수백 번 섬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복받쳐 오르는, 고생과 고독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만 70세(1923년)까지 41년간을 혼자서 등대를 지켰다.
워커 부인은 말했다.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았어요. 폭풍우치던 밤의 기억은 아직고 생생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언덕 위에서 남편의 소리가 들렸어요. `등대를 생각하가'는 그 음성이 내 발을 붙잡았죠."
병아리
한 꼬마가 닭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닭장 안에서는 암탉이 병아리를 까기 위해서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꼬마는 초조해졌습니다.
언제쯤이면 병아리가 나올까, 그것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꼬마는 암탉이 품고 있던 알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곤 알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알에서 병아리가 나올 줄 알았던 꼬마는 깜짝 놀랐습니다.
계란안에서는 채 모습을 갖추지 못한 병아리가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야고보서 1:4)
우리 민족은 원래 여유있고 매사에 인내할 줄 아는 민족이었습니다.
인내라는 것은 참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조급병에 걸려서 식당에 가도 '빨리 빨리'를 외치고 차를 타서도 '빨리 빨리'를 외칩니다.
조금만 줄이 길어도 새치기를 하는 이같은 조급병은 본래 우리 민족의 성품이 아니었습니다.
참고 인내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되찾아야겠습니다.
옛말에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쓸 데 없는 조급함으로 인해 불쌍한 병아리를 죽이는 바보스러운 일을 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 사막의 물 펌프 ♥
미국의 아마고사 사막을 지나기 위해서는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다 보면 중간쯤에서 물 펌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말을 타거나 걸어서 이 사막을 통과하던 행인은 그 물 펌프를 보고는 침을 삼키며
뛰어가게 되지요 그런데 펌프에 도착하면 다음과 같은 특이한 편지를 볼 수 있다는 겁니 다.
"이 펌프에 불을 붓고 펌프질만 하면 시원한 지하수가 틀림없이 나옵니다. 땅 밑의 샘에는 언제나 물이 있으니까요. 펌프 옆, 희 바위 밑을 파면 물이 가득 담긴 병이 파묻혀 있을 겁니다. 햇볕에 증발치 않도록 마개를 잘 막았지요. 그 병을 꺼내서 물을 펌프에 부으십시오. 만약에 그 물을 한 모금이라도 먼저 마시면 물이 모자랍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틀림없이 물은 얼마든지 나와서 당신이 필요한 만큼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ㅜ을 다 쓴 후에는 그 병에다 물을 가득 채워서 마개를 꼭 막아 처음 있던 그대로 모래 속에 묻어 두십시오. 다음에 오는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추신: 병의 물을 먼저 마시면 절대 안 됩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새벽 바다 무지개
마 8:26; 창 9:13,14; 겔 1:28; 계 10:1
미국의 한 교인이 퀸 엘리자베스 II호를 타고 유럽으로부터 돌아오던 중, 북대서양의 한복판에서 거친 폭풍을 만났다. 그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침대 모서리를 꼭 붙잡은 채 밤새 깨어 있었다. 새벽4시가 되자 속이 뒤틀리며 두려움에 휩싸인 채 성경을 읽기 위해서 불을 켜고 아무데나 펼쳐 들었다. 그이 눈에 와닿은 첫번째 말씀은 마태복음 8:26의말씀이었다.
마치 한 목소리가 그에게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두려움은 점차로 가라앉았으며 그는 서둘러 옷을 입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폭풍이 잠든 새벽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는 가운데 거대한 파도 가 물결치고 있었다.
햇빛이 수평선을 믄 때, 바람이 휩쓸로 지나간 바다 멀리 건너편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다.(마데라 스펜서)
**결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열 가지 이유(1)**
사람들은 자기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에게 사랑 받고 싶은 욕구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라면 특히 그러합니다. 이들은 이성이 자기를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뜨겁고 놀라운 감정이 생깁니다.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려서 시간을 같이 보내기 시작하면, 야릇한 흥분감이 싹트기 시작합니다.그들은 서로를 어루만지고 애무하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를 깨닫게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그들의 욕정을 자극합니다.오래지 않아 그들의 마음은 성관계를 맺는 쪽으로 기울어지며, “만약 우리가 정말로 서로를 사랑한다면,성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하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혼하기 전에는 성관계를 가지면 안 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혼전관계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혼전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짧은 순간의 스릴입니다. 어쩌면 일시적인 쾌감을 맛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혼전 관계를 통해 당신이 잃는 것은 평생 당신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결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열가지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첫째로,혼전 관계는 당신이 참 사랑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여성이 성관계를 허용함으로써 사랑을 얻으려고 하거나 유지하려고 할때,비극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참 사랑은 약혼과 결혼,그리고 성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관계는 참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관계는 참 사랑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소멸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열아홉 살 난 한 소녀는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1학년 때까지 자신을 순결하게 지켜 왔습니다. 그 소녀는 한 남학생과 교제를 하고 있었는데, 그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가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떠나기 전날밤에 그에게 몸을 허락했습니다. 그 소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도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를 사랑하는데 몸을 허락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소녀는 여름 방학 내내 자기 “애인”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어 학교로 돌아온 그 남학생은 그 소녀에게 다음과 같은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너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여자가 아니야. 지난번 우리가 같이 지냈던 밤은 악몽이었어. 너 때문에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게 느껴지는지 알아? 그런 짓을 하고 난 이상, 나는 결코 너와 혼할 수 없을 거야. 나와 관계를 갖기 전에 네가 다른 남자들과도 그런 관계를 갖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한시도 내 머리
를 떠나지 않았어. 그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일보다도 더 큰 좌절감을 안겨 주었어.”둘째로, 혼전 관계는 당신이 하나님께서 주신 최선의 것을 알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에 관해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들 가운데 하나는,성이란 자기가 선택한 사람과 즐길 수 있는 육체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성을 천박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며, 우리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에 관한 특정 사실들을 무시합니다.
성은 단순한 육체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관계를 가질 때 당신과 상대방은 하나가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일부가 상대방에게 영원히 남아 있게 되고 그 사람의 일부도 역시 당신에게 영원히 남아 있게 되는 친밀한 경험입니다.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과 혼전 관계를 맺은 다음에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면, 당신은 배우자에게 당신 자신을 100% 다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신은 이미 당신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창조하셨는가에 대해 무지함을 보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셋째로, 혼전 관계는 당신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성경은 청년들에게 자기 몸을 존귀하게 지키고 부도덕한 사람들의 길을 따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젊은이의 순결은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매우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습니다.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소녀가 남학생의 성적 충동을, 자기가 갈구하고 있는 사랑으로 오해하여 그에게 몸을 허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남학생은 그 소녀를 사랑하지 않으며, 나아가 그 소녀를 인격체로 생각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성관계를 원하고 있고,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그
소녀는 언제라도 응해 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소녀를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이용합니다. 그러나 일단 욕망이 충족되고 나면, 그는 그 소녀에게 싫증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그 소녀는 “약간 상했음. 대염가 판매”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바겐세일용 상품처럼 되어 버립니다.
이제 그 소녀가 사랑을 찾기 위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성적 쾌락을 찾아 헤매고 있는 다른 남학생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소녀는 자기 자신이 보기에도 천박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에도 마찬가지로 비춰집니다.
넷째로, 혼전관계는 당신을 평생 괴롭힐 죄의식을 갖게 할 수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양심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한 여인은 마흔두 살의 나이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지은 죄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나는 십대였을 때 그 은밀한 죄들을 저질렀습니다. 나는 울고 또 울면서 후회했습니다…만약 하나님께서 내게 평강을 주시고, 내 삶에서 이 끔찍한 죄의식을 제거해 주시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쩌면 당신은 혼전 관계를 통해 몇 분간의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쾌감이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다섯째로, 혼전 관계는 큰 실망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성관계를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자극적이고 멋진 경험을 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규모가 큰 한 미혼모 보호 기관에서 혼전 관계에 관한 연구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연구팀은 미혼모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성관계를 가졌을 때 당신은 즐거웠습니까 아니면 실망스러웠습니까? 아니면 불쾌했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실망스러웠다”는 대답이 50%이고, “불쾌하거나 혐오스러웠다”는 대답이 30%였습니다. 그러나 “즐거웠다”는 대답은 겨우 20%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합당한 여건(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성은하나님께서 원하신 대로 전율을 맛보는 멋진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결혼이라는 영역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경험은 십중팔구 실망을 안겨 줄 것입니다. 열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된 한 소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랑에 관해 쓴 책에 나온 이야기들은 모두가 다 거짓말입니다.
사랑은 포근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감미롭지도 않으며 오래가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무자비하여 상처만 안겨 줄 뿐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활동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은 마땅히 교도소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달빛과 장미에 관해 쓰레기 같은 글만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쓴 영화나 소설을 보면,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모두 ‘페이드아웃’(영상이나 음량을
서서히 희미하게 만드는 영상 기법-역자 주)으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매우 낭만적이고, 다음 날 아침에는 모든 사람이 매우 행복합니다…그러나 사랑은 결코 이러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처만 안겨 줄 뿐입니다. 만약 당신이 사랑에 익숙해 있지 않다면, 사랑은 당신에게 엄청난 상처만 안겨 줄 것입니다. 더구나 당신의 남자 친구가 다음 날 당신을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당신은 정말 끔찍한 기분이들 것입니다.
*** 결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하는 열가지 이유(2)***
여섯째로, 혼전 관계는 위험한 모험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갖는 성관계는 당신에게 여러 가지 성병을 전염시킬 수 있습니다. 몸가짐이 “헤픈” 여자는 비록 창녀는 아닐지라도 그러한 질병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자도 “전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성병은 여러 가지 심각한 전염병과 실명과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성병은 당신의 자녀들에게까지 전염되어 그와 똑같은 무서운 결과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AIDS 같은 병은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한 명의 남자 친구와만 성관계를 갖고 있었던 어떤 소녀는 자기는 안전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소녀는 성병에 걸렸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그 소녀와 관계를 가진 남자 친구는 오직 한 명의 다른 소녀와만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그 다른 소녀는 다섯 명의 다른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졌으며, 그 남자들은 다시 열아홉 명의 여자들과 관계를 가졌고 그 중에는 창녀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관계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그 소녀는 수십 명과 접촉했던 셈입니다.
일곱째로, 혼전 관계는 여자의 일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성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아야 합니다.
“만약 이 일이 임신으로 이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미혼모 보호 기관을 방문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앞날을 알지 못하는 소녀들, 즉 자기가 참 사랑을 알 수 있게 될 것인지 혹은 행복한 가정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인지를 모르는 소녀들의 얼굴에 드리운 절망의 그림자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몸가짐이 헤픈 여자들만 임신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정한 여자들”도 임신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낙태는 원하지 않았던 임신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손쉬운 해결책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낙태는 당신의 나머지 생애 동안 당신을 괴롭힐 수 있는 무서운 죄의식을 갖게 할 수있습니다. 다음의 편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1989년 여름, 나는 임신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 나는 열아홉 살이었으며, 대학을 두 달 정도 쉬고 있었습니다.
내 남자 친구는 나처럼 신앙적으로 타락한 그리스도인이었으므로, 우리는애를 떼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문제로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부딪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손쉬운” 해결책을 택했습니다.
애를 지운 후 나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후회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면서 주님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만큼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두번째 기회를 주실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분은 너무도 사랑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내 양심은 항상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몽과 같은 내 과거 때문에 깊은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고 계시는가? 물론 나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죄가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기에는 너무나 큰 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어느 누구도 평생 그토록 무거운 죄의식이라는 짐을 질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누구나 용서하십니다.
여덟째로, 혼전 관계는 여러 가지 큰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남자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만약 네가 임신한다고 해도 우리는 언제든지 결혼할 수 있어.”어쩌면 당신은 결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혼은 중대사입니다. 결혼이란 당신이 미처 준비를 갖추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까지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은 달빛과 로맨스와 장미가 아니라 오히려 땡볕과 기저귀와 접시 더미입니
다. 다음 편지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나는 지금 열아홉 살입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영호와 나는 처음 여섯 달 동안은 건실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행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둘 다 학교를 그만두고 곧바로 동거 생활로 들어갔습니다.
가족들은 우리가 교외로 이사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했습니다…지금 나는 내 인생과 내가 영호에게 한 일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갓난애는 계속 울어대며 영호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그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십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그를 탓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초라한 단칸방에서 살고 있으며, 가진 돈도 전혀 없습니다. 영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영호가 나를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이러한 상황으로 끌어들인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애까지 미워하는 것은 마음이 아픕니다.
그는 그 아이를 안아 주거나 그 애한테 관심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악몽일 뿐이다. 나는 잠시 후 집에 있는 내 침대에서 잠을 깰 것이다. 그리고 옷을 입고,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갈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미 그러한 시절이 끝났으며, 나는 지금 수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그러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십대들을 위해서 당신이 이 편지를 공개하리라는 희망을 안고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열아홉 살에 인생을 망친 소녀가
아홉째로, 혼전 관계는 짝이 아닌 사람과 결혼하도록 당신을 기만할 수 있습니다.
만약 결혼하기 전에 누군가와 성적인 관계를 맺게 되면, 당신은 성적 이끌림에서 오는 전율과 흥분만 갖고도 드디어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일을 진척시켜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결혼을 하고 난 후, 짝이 아닌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은 그 이끌림이 참 사랑이 아니라 성적 사랑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열째로, 혼전 관계는 당신의 결혼 생활을 망칠 수 있습니다.일단 결혼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여건이 좋다고 해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결혼 생활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출발이 좋지 않으면 행복하고 성공적인 결혼 생활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혼전 관계는 당신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크게 축소시킵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결혼하기 전에 성생활이 문란했던 사람들은 결혼한 후에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기때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즐거움을 찾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성관계를 가졌던 부부들이 결혼한 후에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의혹과 불신의 씨앗들을 뿌려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나중에 쓰라린 열매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20년이나 같이 살아 온 한 부부가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아내는 나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당신도 나를 믿지 않잖아요』라고 대꾸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믿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왜 서로를 믿은 적이 없었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20년간의 의심과 불신이라는 결과로 나타났으며, 결국은 결혼 생활을 망쳐 놓고 말았습니다.
혼전 관계는 죄이다지금까지 결혼하기 전에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 되는 실제적인 이유 열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열 가지 이유를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혼전 관계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혼전 관계는 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죄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의 테두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죄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음행이라고 합니다. 음행의 죄는 모든 죄 중에서 가장 파괴적인 죄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음행을 피하라…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린도전서 6장 18절).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는 것은, 결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하고 순결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음행하는 사람들과 간음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혼인)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브리서 13장 4절).
혼외 정사와 모든 형태의 비정상적인 혹은 왜곡된 성은 죄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시대가 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이러한 일들에 관한 생각을 바꾸지도 않으셨습니다.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 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린도전서 6장 9,10절).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최선의 것을 갖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혼전 관계를 금하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성을 즐기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에 관한 계명들을 주신 이유는, 우리로 성을 즐기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충분하고도 오랫동안 성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기차에 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일본에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기차가 있습니다. 이 기차는 보통 시속 200km 정도의 속도로 달리며, 때로는 250km까지 속도를 냅니다.
이 기차가 그런 속도를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교하게 설계되어서 기술적으로 잘 설치된 선로 위를 그 기차가 달리기 때문입니다. 기차가 최대 속도로 달릴수 있는 것은 이러한 선로 덕분입니다.
그런데 그 기차가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는 이 케케묵은 선로 위를 달리는 게 지겨워. 이 선로는 너무 제한되어 있단 말이야.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고 싶어. 또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싶어.”그래서 그 기차는 선로를 이탈하여 논을 향해 돌진합니다.
이제 그 기차는 정말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차는 더 이상 선로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기차가 자유로운 것은 좋습니다.그러나 그 기차는 이제 시속 25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상, 그 기차는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력한 어떤 힘이 그 자리에서 기차를 들어내어 깨끗이 씻은 다음 선로 위로 되돌려놓을 때까지 그 기차는 마냥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선로”를 설치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당신이 성을 즐기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충분하고도 오랫 동안 성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단은 당신에게 “선로를 이탈하는” 스릴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 스릴을 맛볼 경우, 당신은 결국 진흙탕 속에서 뒹굴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당신에게 합당한 사람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결혼식장에 들어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할 때, 당신은 배우자를 위해 당신 자신을 순결하게 지켜 온 것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미 선로를 이탈했습니다. 내게도 소망이 있을까요?”
물론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범한 죄들과 실패들로 인해 수렁에 빠진 당신을 거기에서 건져내어 깨끗하게 씻긴 후 다시 선로 위로 되돌려놓으실 수 있습니다.
한번은 일단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간음죄를 범한 여인을 예수님에게로 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그 여인을 예수님의 발 앞에 끌어다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돌로 쳐 죽이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한복음 8장 4,5절).
그들은 그 여인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곤궁에 빠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그 여인을 이용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그 여인을 돌로 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면 모세의 율법을 범하는 셈이 될 것이고, “그 여인을 죽이라”고 말씀하신다면 로마 당국과의 시끄러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곧바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몸을 굽히시고 땅바닥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예수께 결단을 촉구하자, 그분은 몸을 일으키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씩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11절).예수께서는 당신을 용서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당신을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죄를 사함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귀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의 피는 당신의 죄들을 모두 씻어 당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장 7절).
당신은 예수께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죄인들의 친구”이십니다. 그분은 자기에게로 나아오라고 당신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오는 자는 (누구라도)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장 37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분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몫은 당신을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당신을 속박할 수 있는 어떠한 죄에서든 당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한복음 8장 36절).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이러한 자유를 원한다면, 조용히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당신이 범한 죄들을 그분께 말씀드리십시오. 모든 것을 낱낱이 아뢰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당신을 위해 흘리신 그분의 보혈로 당신을 깨끗케 해 주시도록 그분께 간구하십시오.성경을 펴서 요한복음을 읽기 시작하십시오. 요한복음을 읽어 가면서 “믿는” 이라는 단어나 “믿는 자”라는 구절이 나오는 부분에 밑줄을 치십시오. 특히 다음 말씀들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요한복음 1장 10-12절, 3장 16-18절, 36절, 5장 24절, 6장 37절, 20장 31절.
번호:37/70 등록일시:95/10/18 09:56 길이:113줄제 목 : 여자ㅏ 남자는 다른가?
: [남자 VS 여자] 남자와 여자의 차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신체적인 것보다 오히려 심리적인 면, 성격적인 면에서 한층 두드러진다. 생활 속에서 문득문득 발견 하게 되는 그 차이들은 그냥 지나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실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 모습은 그래서 더 아름다운게 아닐까.
사람의 인체는 물, 근육, 지방, 뼈로 이루어져 있다. 남자의 경우 물이 60%, 근육 42%, 지방 18%, 뼈 18%로 되어 있고 여자는 물이 54%, 근육 36%, 지방 28%, 그리고 뼈가 18%로 되어 있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는 물, 근육 등의 구성 비율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별다를 것이 없다.
문제는 생활이다. 생활 속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성격과 심리적 차이가 남자와 여자를 명확하게 구분짓는다. 이런 이유로 남자들은 하나같이 여자에 대해 한마디씩 해왔다. 유명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가 10세 때는 천사와 같고 15세 때는 성자와 같때는 악인이 되고 80세 때는 마녀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지독한 말을 한 사람은 히포크라테스다. 그런가 하면 톨스토이는 ‘여자라는 것은 난롯가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 순간에도 일흔 일곱번이나 생각을 바꾼다’고 여자의 변덕을 꼬집기도 했다.
보수적인 동양 사상가인 공자도 여자를 고운 눈으로 보지는 않았다.
‘여자와 소인배는 다루기 나름이다. 가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멀리 하면 원한을 품는다’.
또한 체스터 필드는 여자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듯 ‘보통 여자는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미녀와 추녀는 지성적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고 그럴 듯하게 한마디했다.
여자도 남자에 대해 해놓은 말들이 많다.
‘남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단 한 명의 여자, 즉 자기의 아내를 통해 여자 세계의 전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멋대로 판단한다’. 펄벅 여사의 남자를 향한 일침이다.
시몬느 드 보봐르는 ‘남자란 아내나 애인이 싫어지면 피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럼 이제부터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구구절절 나열해보자. 남자의 제 1목표는 출세고 여자의 제 1목표는 사랑이다.
남자는 하나를 위해 직장에 나가고, 여자는 일석이조를 노리고 직장에 나간다.
남자가 직장에서 노리는 하나는 돈이요, 여자가 노리는 둘은 돈과 결혼이다.
남자는 결혼식 때 겉으로는 웃지만 속마음은 울고있고, 여자는 겉으로는 울지만 속마음은 웃고 있다.
남자는 세상을 힘으로 살아가지만 여자는 끈기로 살아간다.
성냥을 켤 때 남자는 밖으로그어서 켜지만 여자는 안으로 당겨서 켠다.
화가 날 때 남자는 목소리를 최대한 내려깔지만 여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남자는 입을 다물지만 여자는 말이 많아진다.
길을 걸을 때 남자는 여자를 보지만 여자는 여자를 본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 몸매를 보며 길을 걷지만 여자는 다른 여자의 옷, 화장, 장식품에 관심을 갖는다.
남자는 머릿속에 든 것을 내세워 잘난 척하지만 여자는 얼굴로 잘난 체한다.
남자의 얼굴은 이력서고 여자의 얼굴은 청구서다. 남자는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드러나고 여자는 들인 돈의 액수가 얼굴에 나타난다.
화장을 할 때 남자는 흑백으로, 여자는 총천연색으로 한다.
남자의 눈물은 대포알이지만 여자의 눈물은 총알이다. 여자는 수시로 울어서 그 위력이 별로지만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 대단한 효과가 발생한다.
남자는 예쁜 점원이 있는 곳에 몰리고 여자는 바겐세일 장소에 북적인다.
남자는 이성적이고 여자는 감성적이다.
남자는 큰소리로 여자를 누르고 여자는 애교로 남자를 누른다.
남자는 최초에 승부하고 여자는 최후에 승부한다.
실연당하면 남자는 술로 잊고 여자는 수다로 잊는다.
사내 결혼을 하면 남자는 남아있고 여자는 쫓겨난다.
남자는 자신을 위해 가정을 지키고 여자는 자식들 때문에 가정을 지킨다.
남자는 늘 앞장서 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뒤로 물러서고 여자는 늘 뒤처져 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앞장을 선다.
남자는 풍속을 만들고 여자는 유행을 만든다. 여자와 길을 걸을 때 남자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여자는 남자의 팔장을 낀다.
남자는 옛사랑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비로소 그녀가 궁금해지지만 여자는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옛사랑이 생각난다.
남자는 자리가 높을수록 인기가 있고 여자는 나이가 적을수록 인기가 있다.
남자는 지쳐서 결혼하고 여자는 호기심으로 결혼한다… 나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남자와 여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러나 차이가 있어서 더 잘 어울리는 그들이다.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여자는 손등이 아래로 가야 편하고 남자는 손등이 위로 가야 편하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손을 마주잡을 수 있도록 차이를 둔 신의 섭리라고 하겠다.
남자, 그리고 여자의 서로간의 다름은 바로 이런 절묘한 만남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글·이선경(방송작가)
성경을 태워 따뜻한 불
잠 15:1; 25:11; 벧전 5:15-17
스코틀랜드에 성격이 포악하고 잔소리가 심한 아내를 둔 목사가 있었다.
어느 날 목사가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돌아온 아내가 벌컥 화를 내더니 성경을 빼앗아 불속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성경에 불이 붙어 타들어가자 목사는 슬픔에 찬 눈길로 아내를 바라보며 조용하게 말하였다.
"이렇게 따뜻한 불은 처음 쬐어 보는 구려." 이 부드러운 대답이 그녀를 변화시켜 새롭고 자상한 아내가 되게 하였다.
성미 급한 최부자
잠 19:1-3; 전 5:2
성미가 급하기로 소문난 최 부자가 섣달 그믐날 마을 앞 개울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 때 뒤에서 젊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뭘하고 계시오?"
"앞마을에 가려는데 물이 불어 줄어들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아따! 영감님, 어느 하 세월을 기다기고 있을 셈이오?"하며, 젊은이는 급히 물에 뛰어들어 개울을 건넜다. 자기보다 성미 급한 젊은이를 보고 성미 급한 사윗감을 고르던 최 부자는 잘됐다 싶어 그젊은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딸과의 혼례를 종용했다. 그러자 젊은이는 "언제 택일을 할 때까지 기다립니까?
당장 오늘 밤 혼례를치르도록 하지요"라고 말했다.
최 부자는 정말 성미 급한 사윗감을 얻었다고 흡족해 하며 그 날밤 딸과 예를 갖추도록 했다. 신방에 불이 꺼지고 얼마 되지 않아새해 아침이 밝았다. 그 때 신방에서 고함소리가 나고 신랑이 최 부자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작년에 결혼했는데 1년이 지나도록 태기가없는 여자와 어떻게 일생을 같이 합니까?"
그러면서 젊은이는 훌쩍 길을 떠나고 말았다. 최 부자는 탄식했다.
"아뿔싸, 성미가 급해도 너무 급하군."
시끄러운 예배 때문에
사 30:15; 시 46:10; 77:6,12; 합 2:20
미국의 한 오순절교회가 예배를 드릴 때 너무 소음을 많이 일으켜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교회의 신도들이 그 도시의 소음 방지법에는 `소음이 크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 법이 자신들의 헌법상에 규정된 종교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의 올바른 판정을 호소
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해도 성격이나 기질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차이들이 있는가! 어떤 이들은 행복할 때 소리를 지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그 행복감에 젖는다.
요란스럽고 복잡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너희가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며",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는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아버지가 남긴 저주
1935년 7월 1일 미국의 도나호(Donahoe)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의 두 딸 메어리와 빅토리아에게: 너희는 이 아버지가 너희들에 대해 헌신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불효하였기에 나는 너희에게 각각 1달러를 유산으로 남기는 바이다. 너희들의 삶이 불행과 고통과 혹독한 슬픔 속에 잠기기를 바라노라. 너희들의 죽음이 곧 이루어지기를 저주하며 그 죽음이 대단히 고통스럽고 질질끄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너희들의 영혼은 지옥에 머물 것이며 영원히 저주받은 고통을 겪게 되리라."
오직 불효하였으면 이런 유언을 썼을까? 이 유언을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해 보라.
어머니의 기다림
홀어머니를 버리고 집을 나갔던 아들이 어느 날 자신의 불효를 깨닫고 먼 길을 걸어 깊은 밤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 앞에 도착하니 대문은 열려있고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서는 어머니가 편히 눕지도 않은 채 졸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은 아들이 그 까닭을 여쭙자 어머니는 아들이 집을 나간 후 내내 그렇게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혹 아들이 돌아왔다가 불이 꺼져 있으면 다시 나갈까 염려가 되어 그렇게 하셨다며 아들을 꼭 껴안았습니다.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6:1-2)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어머님 은혜라는 동요의 첫 구절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친구들과 잘 놀다가도 아프거나 두려운 일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엄마"하고 부르게 됩니다.
그만큼 어머니는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안식처이자 피난처입니다.
혹 어머니께 투정을 부려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가끔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을 나눠주시기도 하신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세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약속있는 첫번째 계명입니다.
얼음 위에서 부른 찬송
마 28:20; 시 23:1-4; 히 11:13-15
어느 날 선교사 윌프레드 그렌펠은 위험한 수술을 요청받고 래브라도 해변에 있는 한 마을을 향해 왕진을 떠났다. 가능한 한 빨리 부상당한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그는 여러 마리의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강을 가로질러 가고 잇었다.
그런데 얼마쯤 갔는데 살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의사와 개들은 그만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커다란 얼음 조각에 몸을 의지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의 개들도 그를 따라 행동했다. 그들을 실은커다란 얼음 조각은 대서양 쪽으로 떠내려가기 시낙했다. 강둑에는 거주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므로, 그는 강 하류 근처에 살고 있는 어부
들에 의해 구조되기를 바랄뿐이엇다.
이 비참했던 경험을 그렌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밤새 나는 10말이 가량 떠내려갔습니다. 나는 세 마리의 개를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추위 때문에 나는 그 개들의 껍질을 벗겨 코트로 사용했습니다. 그것으로 나는 내 온 몸을 둘러쌌고, 그 개들의 몸은 얼음 위에 차곡차곡 쌓아 바람막이로 사용했습니다. 나는 가끔씩 물에 젖은옷을벗어 짜고 바람에 말렸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다시 입으면서 내 체온으로 완전히 말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얼마 후, 살아남은 개들 중 가장 튼튼 하던 개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제 살 수 잇으리라는 희망이 점점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나는 그 개를 끌어안고 그 개의 남은 체온으로 내 몸을 감쌌습니다.
조금이나마 따뜻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 개에게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 희미하게 손은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너무 추워서 덜덜 떨다가 잠이 깨어 보니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막 달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바람과 강물이 나를 큰 바다로 흐러가 게했습니다.
그토록 희망 없는 상태에서도 나의 신앙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얼어붙은 강 위에서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되었을 때, 어릴 적에 배웠던 찬송가 가사가 생각나면서 내 마음 깊이 울려 퍼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내가 나의 본향을 멀리 떠나 험난한 인생길을 다닐지라도
주께서 함께하심을 전할 수 있도록 내게 가르쳐 주소어. 주께서 함께 하시리라!'"
기다리는 기도
갈 6:9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대홍수가 날 것을 예고한 일이 있다. 그러나 온 세상은 120년 후에 대홍수 같은 것은 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서 그 사실을 기대하고 기다리던 노아를 온 세상은 다 조소했다. 그러나 정한 때가 되니 대홍수가 일어나서 세상을 쓸어 버렸다.
우리는 '설마'하고 - 하나님은 '틀림없으시다'
우리의 기도의 생활은 어떻한가 ?
1. 기도에는 손해가 결코 없다는 것을 확신하라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둔다(갈6:7)
예) 해마다의 기도가 어떻게 그렇게 모두다 이루어 주시는지 ---
예수님의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하신 일은 기도하신 일이다.
2. 하나님이 이루시도록 기다리라
우리가 즐겨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천 2백번이나 꽃을 왕복하며 얻은 것입니다.
영어사전 웹스터를 집필한 웹스터는 36년동안 밤낮으로 이 일을 했습니다.
작곡가 요셉 하이든은 8백개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치창조라는 오라토리오는 66세 되서야 8백번이라는 작품을 써본 후에야 나타난 것입니다.
시스턴 채플에 그려진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만찬'도 8년동안 2천번이나 스케치해본 결과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한두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찾는 자에게 반드시 성공의 기회가 찾아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도록 기다리는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
예) 출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모세의 애굽과의 싸움에서)"
적용) 하나님이 이루시도록 가만히 맡기고 기다리라
3. 하나님이 이루시는 응답을 바라보라
응답도 영의 일
다 보는 것이 아니다- 깨닫는 자만이 본다.
기다리는 자만이 본다.
감사하는 자만이 본다
예)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예)이스라엘의 전쟁의 분명한 구분 - 실패는 자기 주장 할 때 / 승리는
하나님을 앞세우고 법궤를 앞세울 때
조용히 구하라
어떤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회중시계를 잃어버렸다.잃어버린 장소는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 안.아이는 사방을 뒤졌으나 찾을 길이 없어 아버지에게 말했다.그러자 아버지는 모든 스위치를 끄고 조용히 있어 보자고했다.정말,얼마 안 있어 째깍째깍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시계는 주위 환경이 조용해지자 구석진 바닥에서 자신을 주인에게 알리고 있었다.아버지는아들에게 말했다.『얘야.세상이 시끄러울 때도 조용히 있어 보렴.잃어버렸
던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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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시간에 (In His Time)
저는 수년동안 일관되게 하나님께 요청하고 간구해 온 기도 제목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 기도의 동기나 목적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으며 또 당연히 주님께 자녀로서 요청할 만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그 기도는 지금까지 저에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주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고 있고 또 그 약속을 이루실 것도 믿습니다. "만일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태 21:22)"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이 약속들이야 말로 주님께서 친히 해주신 말씀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저의 기도가 하루 이틀도 아닌 수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았음은..... 주님께서 거짓말장이시기 때문일까요? 솔직이 그런 의심과 회의가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더 깊이 더 자세히 묵상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면서 저는 저의 기도와 간구에 대해 조심스럽게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위의 주님의 약속은 분명히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의 말씀들 전후에는 필수적으로 뒤따르거나 전제되는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자세 혹은 동기나 목적을 가진 기
도는 하나님께서 결코 들어주실 수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①그 마음에 죄악을 품고 기도하면.(시 66:`8, 사59:2)
②주실것에 대해 의심하면(약 1:6,7)
③교만의 기도-타인을 정죄, 비판, 저주하는 기도
④자기 정욕을 위해 쓰려는 기도(약 4:3)
⑤사랑이 없는 상태, 용서와 화해가 전제(마 6:15, 마 5:23)
⑥우리가 지금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기도할 때
⑦우리에게 해가 되는 제목일 경우.
그러나 그러나 우리는 이와같은 경우는 우리 스스로 충분히 점검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와는 다른 경우 때문에 더욱 기도의 삶을 실패하고 좌절에 빠집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고 간구할 때 그 기도에 대해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응답 방법들에 대해 무지(無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구할 때, 하나님의 응답중의 하나는{기다리라}는 응답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기다리라]는 하나님의 답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①아직 우리가 그것을 받을 만한 그릇이 안되었을 때
②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③우리 기도의 동기의 순수성을 시험하고 테스트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고의적으로 응답(성취)을 지연시키고 계실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시고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우리의 기도에 대해 응답하시고 이루어 주는 것을 너무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기왕이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최선의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심을 확신 했으며, 따라서 저의 이 기도가 별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소원처럼 지금 당장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좋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가 구하는 이 선물들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적절한 때에, 제가 받을 만한 그릇이 되었을 때에 비로서 허락 하실 것이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두 단어에 주목했습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스케쥴과 프로그램은 인간의 그것과 같을 수 없습니다. 이 너무나 자명한 사실 앞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적절한 때에 내게 이루어 주십사'고 기도하기는 커녕 지금 당장 우리가 원하는 시각에 즉시 대령시켜 놓을 것을 하나님께 마구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놓고는 하나님의 무응답 혹은 성취의 지연에 대해 원망을 하고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우리의 철없는[기도]들 때문에 하나님은 얼마나 자주 난처해 지실까요?
저는 오늘 이 찬송을 조용히 묵상하며 반복해서 계속 부릅니다. 그리고 이 찬송의 가사속에 담긴 [깊은 진리와 원칙]에 대해 진지하게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 기도라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요한1
서 5:14) 하나님은 거짓말장이나 사깃꾼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이미 들으셨고.... 그 기도를 이루기 위해 지금 일하고 계십니다. (영어 가사는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He makes all things beautiful ....) 지금 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이 이루실 그 때까지 조급해 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기대하며 신뢰하며....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 머물러야 할 자리...... In His Time - 하나님의 시간..... 그 안입니다.
칼라일 부인의 소원
엡 5:25-28; 살전 4:4; 고전 5:11-27
토머스 칼라일은 영국에서 가장 현명한 여인과 결혼했던 것 같다.
부인은 남편을 존경했으며 칼라일 역시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여인을 사랑하지 못할 정도로 부인을 사랑했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듣지 못했던 말을 듣고 싶어 했다. 일기에 딱 한 번 이렇게 썼다.
"칼리일은 한번도 나를 칭찬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으면 그것으로모든게 제대로 되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부인이 죽은 후 칼리일은 부인의 일기를 읽었다. 그제서야 한 번도입밖에 내지 않은 (칭찬의)말을 듣고 싶어 몇 년이고 기다렸던 한 여인과 친교를 맺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간
하나님께서 120년 후에 대홍수가 날 것을 예고한 일이 있다. 그러나 온 세상은 120년 후에 대홍수 같은 것은 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서 그 사실을 기대하고 기다리던 노아를 온 세상은 다 조소했다. 그러나 정한 때가 되니 대홍수가 일어나서 세상을 쓸어 버렸다.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 정한 순간이 있었다. 그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행동하셨다. 드디어 소돔 고모라성은 망하였다. 아브라함의 생애에서도 그와 같은 예를 볼 수 있다. 창15:13절 이하에 "너는 이 일을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오리라"고 하였더니 출12:40-41절에 그것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라. 430년이 마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도다." 430년이 마치는 그날에 정확하게 출애굽하였다. 하박국의 경우도 똑같이 일초의 지체도 없이 하나님이 정한 때에 하나님의 묵시한 바가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레미야에 대해서도 그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되어 갈 일과 그 기한이 끝날 때 사람들은 돌아오게 될 것을 계시해 주셨는데 모든 일이 그대로 되었다. 다니엘 선지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의 강세할 시기를 정확하게 예언했는데 그 정한 때가 차서 인자 예수는 강림하였던 것이다.
<<< 하나님은 결코 >>>
서두르지 않습니다.
-- 워런 W·워스어비 --
비록 내가 장거리 비행으로 지쳤어도 선교사 숙소 게시판에 붙은 글을 보고 큰 소리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주님, 나로 인내하게 하소서 - 그리고 이를 즉시 이루소서!" [인내(忍耐)]는 우리가 어릴 때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들 중의 하나이다. 인내함을 배우지 안는 아이는 다른 어떠한 것도 많이 배울 것 같지 않다. 일리를 배우는 것, 철자법을 배우는 것, 쓰는것, 구구표를 암기하는 것등은 참으로 인내가 필요하다. 키가 자라는 것 까지 인내가 필요하
다! 하나님은 [성장]을 순간적인 경험이 아닌, 진행이 느린 과정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일을 이렇게 계획해 놓으심에 기뻐한다. 이는 나에게 성장에 익숙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참을성 없음은 미성숙의 표시이다} 적어도 야고보는 이렇게 느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당신이 처음 신호등에 멈추었을 때 어린 아이들은 목적지까지 이르렀다고 생각 한다. 병원 진찰 실에서 잠시기다리는 것을 못 참아한다.
전에 스코트랜드의 한 소년에게 학교생활을 몇 년 후에 마치는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전 다만 다음 주를 보낼 궁리에 바빠요"
그러나, 어른들도 인내가 어렵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을 기다리기에 지쳤다. 그래서 아내 사라를 두고 서둘러 하갈을 첩으로 취하였고 그녀에게 낳아주었다. 모세는 참지 못하고 사람을 죽였다. 이것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의 과정을 필요하게 했다.
수년 후 그는 다시 참지 못하여 반석을 내리쳤고 그의 혈기로 인해 그는 거룩한 땅에 들어갈 기회를 잃었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찌어다"라고 시편 32편 9절은 경고한다. 이것은 우리가 필요로하는 경고이다. 노새는 고집세고 주저하는 버릇이 있다. 말은 충동적이고 달려나가기를 좋아한다. 성격적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기다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의 한 부분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보는 대로 행하는 경향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심을 확실하게 보증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인가 일어나는 것을 보기 원한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돌보지 않아 곧 멸망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바람소리를 들어보라!' '얼마나 어려운 시기인가를 보라!'
그러나 하나님은 바람과 암흑 중에도 자기 백성을 위해 역사하고 계셨음을.....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창 42:36)' 실제로 모든 일이 유리하게 되어지고 있던 그 때에 야곱은 이렇게 부르짖었다.
F·B 마이어(Meyer)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연기하심은 거절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준비수단]이다. 하나님은 항상 그의 백성에게 선한 것을 주시려고 하시며 모든 일들 가운데 역사하신다.(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들 중에는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나 괴롭히는 것들도 포함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시는 유일한 방법은 시련을 주어 시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내를 배우는 유일한 길은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룻밤 사이에 버섯을 자라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참나무나 거대한 전나무를 키우시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일 것이다. 그분은 13여년을 들여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도록 준비하였다. 40년간의 봉사를 위해 80년의 기간을 모세를 준비시키시는데 투자하셨다. 사무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을 때는 그가 소년일 때였다. 그러나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 까지 그는 많은 고난과 훈련을 겪어야 했다. 우리는 덕분에 이것을 더욱 풍성히 누릴 수 있는데 그것은 이 기간동안 다윗의 위대한 시(時)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30년을, 3년간의 공생애를 준비하고자 쓰셨다. 그는 그 사역을 이루실 때 꾸준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셨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라고 그는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그는 참을성 없는 제자들에게 물었다. "낮은 열두시간이나 되지 않느냐"(요 11:9 공동번역)
하나님은 자신의 앞으로의 일에 대한 [계획]뿐 아니라 이루실 [시기] 또한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분의 시간을 놓치는 것은 그분의 계획을 연기하는 것이다.
내가 신학교 학생이었을 때, 주말에는 교회를 담임할 특권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여러방면에서 축복하셨고, 한번은 학교를 그만 두고 전 시간을 교회에 바치고 싶어졌다. 지도 교수님은 내가 계속 공부하기를 권하셨고 나에게 이렇게 상기 시켰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자네가 잘해 내기를 기다리셨다네. 그리고 그분은 자네가 졸업할 때 까지 역시 기다리실 수 있을 것일세, 순간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해서는 안되지"
그분의 말씀은 옳았다. 현재 나는 그분의 충고를 따랐던 것을 기쁘게 생
각하고 있다.
아마 가장 참기 어려운 곳은 시련의 용광로 속일 것이다. 하나님은 행하시는 일이나 그것을 하시는 이유를 항상 설명하시지는 않는다. 시련의 시간에는 우리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히 6:12)"이 되어야 한다. 이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히 10:36)"이다.
하나님이 우리곁에 계시고 그분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시고 있음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힘을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같은 사건을 두고 참지 못한다.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으셨을까요?"라고 고민하던 성도가 목사에게 침통하게 물었다. 그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하나님은 당신을 만들어 놓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도 당신을 만들고 계십니다."
얼마나 진리인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쉽게 이 진리를 잊고 있는가? 하나님이 신자를 참을성 있게 만드실 때 그에게 은혜로운 뜻 안에 있는 모든것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내 학교는 어떤 졸업생도 배출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배워야 하고 성숙되어야 한다. 가끔 그 교훈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실패하기도 한다.!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로 더욱 그의 귀중한 이들을 닮게 하신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주여, 나로 인내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방법으로 이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를 즉시 이루소서!" 이 기도에는 그는 응답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전능한 하나님이라도 진흙을 유용한 그릇으로 바꾸시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당신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우리의 시계와 달력보기를 중단하고 믿음으로, 다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분의 뜻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분의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
롬 3:24-26; 엡 2:8; 요일 4:10-11
영국 어느 시골의 한 가정에서 딸이 가출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도시로 가서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자 소녀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이나 멀리서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고향집을 찾아갔습니다.
한밤중이지만 정원에는 자신이 가꾸던 장미꽃도 보이고, 어릴때 뛰어놀던 잔디밭도 보였습니다. 자기 집 가까이 가보니 자신이 놀던 담장의 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소
녀는 그 문으로 가까이 갔습니다. 그리운 부모님의 얼굴이떠올랐습니다.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음성으로 "아버지"하고 불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현관 문이 열리
더니 아버지 어머니가 뛰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어디에 있다가 이제 오느냐?
우리는 네가 집을 나간 뒤 한 번도 대문을 닫아 본 적이 없었단다. 언젠가는 돌아올 줄 믿고 기다리고 있었지." 혹시 밤중에 딸이 돌아올까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던 아버지, 어머니는 딸이 작은 소리로 부르는 것을 듣고 뛰어나와 그 딸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들의 행위를 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게 하시는 이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행함
우리 부모님들을 기억할 때 우리들 대부분을 많은 일로 굳은 살이 박히고 험한 손을 기억하면서 부모님들의 자애로우심과 말씀이 없으시면서도 언제나 자녀들에게 교훈이 되는 모습이 떠오른다.
1922년,북해도 아사히가와에서 태어나 국민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한 후 24세 때 패결핵과 척추 카라에스 합병증에 걸려서 13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면서 입원하고 있을 때 마에가와 다다시 씨를 알게 되어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게 된 미우라 아야꼬라는 일본인 작가는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작품 빙점으로 잘 알려진 여류작가이다.그의 수필집 " 바람은 어디서부터"(기독교서회)에 보면,"사랑은 오래 참고"란 제목으로 어머니의 기억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8년이 지났다.그 어머니를 회상하게 되면 왜 그런지 묵묵히 무언가를 위해 참고 있는 것 같은 얼굴만 눈에 떠오른다.나의 어머니는 절대로 입을 다물고 있는 분이 아니다.가족 중의 누가 병이 났든, 이야기를 손님에게 들려줄 때든,아주 시작부터 자세히 구체적으로 흥미 있는 이야기 솜씨로 말해 주는 분이다.그리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하는 명랑한 성격이었다.그런 어머니인데 왜 나의 눈에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모습일까?
"훗다(:아야꼬의 본성)의 집안은 어머니가 쥐고 있어."
친적 중의 누군가 이런 말을 하였다.집에 찾아와서 어머니가 없으면 "다음에 또 올께"하고는 빨리 가버리는 것이었다.이렇게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어머니였다.
'그런데-----왜 그럴까?'
가끔 나는 어머니의 말 없는 묵묵한 얼굴을 회상하면서 나의 참 어머니는 어느 쪽인가 하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그러한 의문에 대해 요즈음 "아!그렇구나"하며 소리를 크게 지르고 싶은 마음으로 옛날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 내었다.
내가 14,15세인지 거의 50년이나 지난 옛날이다.저녁 식사를 다 끝낸 후였다.어린 남동생이 어머니를 도울 마음으로 밥공기를 네다섯 개를 포개서 식사하던 방에서 부엌으로 나르려고 했다.
"떨어뜨리면 안되니까 그냥 두어라!"
소리를 지르는 나에게 동생은 "문제 없어!"라고 말했다.그러자 그 순간 동생은 어디에 발이 걸렸는지 앞으로 푹 넘어져서 공기를 모두 떨어뜨렸다.2개의 공기가 깨져버렸다.
"그것 봐!그래서 내가 안된다고 했잖아!"
나는 우선 그렇게 말하고는 깨어진 공기 조각을 주으면서 계속 꾸중을 했다.어머니는 동생을 달래신 다음에 나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불러내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야꼬,평생 자기는 공기 하나 깨지 않는 인간인 것처럼 남을 꾸중하는 것은 나빠요."
나는 그 말씀에 깜짝 놀랐다.확실히 어머니 말씀대로 이제부터 평생 공기를 깨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아아꼬는 어머니가 언제나 입을 굳게 다문 표정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어머니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오래 참았기 때문인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억할 때도 예수님은 한 없이 많은 진리를 날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셨지만 예수님의 모습은 언제나 말없이 저 만큼 서서 우리를 잔잔한 미소로 지켜보시는 것 같다.
제목: 방황하는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
눅 15:4; 히 3:10; 롬 23:16, 17; 약 5:20
네 명의 사냥꾼이 험한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그래서 구조대원들이 그들을 찾아 나섰는데, 그들은 날마다 사람의 발자국과 타다가 남은 모닥불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사냥꾼들은 올바른 길을 찾아 보려고 너무도 갈팡질팡했기 때문에 수색대원들은 결국 찾지 못한 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숲속 골짜기에서 야영하던 어느 부모의 훈계다.
"길을 잃었을 때 첫째로 할 일은 헤매지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않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원하면 노래를 부르거나 막대기로 나무를 두드 리어 소리를 내라. 다시 말하지만 절대로 움직이지 말아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끝끝내 찾아 내고야 말테니까 믿고 기다려라."(돈이안 스미스
제목: 기다리는 마음
수년 전에 한 아버지가 먼 여행차 집을 떠나야만 되었다. 떠나기 바로 전에 세살된 꼬마 녀석이 "아빠, 언제 돌아와?"하고 묻는 것이다. 이러자아빠는 자기가9월말까지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놈에게 몇월 몇일 몇시 무슨 계절하고 설명해봤자 알아 듣지도 못할 것이니 이런 얘길 해도 소용 없는 것을 깨닫고서 그는 애 옆에 앉아서얘기를 꺼냈다. "자, 이거 봐. 저 나뭇잎 보이지? 저게 울긋 불긋해져서저 잎들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땐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거야." 다음날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7월과 8월 이 아이는 보모의 손을 잡고 산보를 다니곤 했다. 이렇게 산보하면서 그는 집에 안 계시는 아빠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서서히 날이 지나서 어느덧 9월 초 그리고 9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이 꼬마 소년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뭇잎들은 단풍으로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큰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숱하게 떨어져 온 길바닥과 도랑을 덮었다. 다음날 아침 이 꼬마 친구. 밖을 나오자마자 이 광경을 본 것이다. 그러자 보모의 손을 뿌리치고 낙엽을 발로 하늘 높이 좋아라 차며"야! 신난다! 아빠가 곧 오시는거야"하고 이 꼬마아이는 소리 소리쳤다. 마찬가지로 온 세상이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득차있다. 나뭇잎들은 단풍으로 물들어 한 잎 두잎 낙엽으로 탈 바꿈을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너희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거든 매우 슬퍼하라? 아니다. 용기를 내어 기뻐하라"고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의 위대한 아침이 동터오고 있으니 이는주님의 오심이 가까워 오기 때문이다.
제목: 기다리는 사랑
제주시에서 성산포로 가는 길가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항상 떠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느 늙은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60년대에 월남전이 일어났을 때, 그의 아들은 월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집을 떠나면서 "아버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월남전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전사 통지서가 왔을 때에 그의 가족들은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웃 마을에 살던 그 젊은이의 친구들은 모두 돌아왔는데 자기 아들만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아침식사 후면 언제나 길가에 나와서 해가 질 때까지 아들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내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매일을 하루같이 길가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을 보게 됩니다.
이같이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품을 떠났던 모든 사람이 다시 돌아오기를 밤낮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이 사랑의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누구도, 무엇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목: 기다리는 아내
미국에서 한때 '기다리는 아내들'이 사회문제로 등장한 적이 있다. 요즘 한국도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직장일에 파묻힌 남편과 훌쩍 성장한 자녀들. 40,50대 가정주부들은 막연한 기다림에 지쳐 공허의 늪을 허우적거린다. 여인들은 결국 '모임'을 핑계로 외출을 한다. 맛집을 참새처럼 찾아다니는 미식파,대낮부터 소주를 마시는 주사파,화투판을 벌이는 놀음파…. '기다리는 아내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사회봉사와 전도에 나설 수는 없을까.
지금은 IMF의 밤. 현명한 아내들의 헌신이 필요한 때다.
제목:기다리라
나는 어렸을 때 천식이 있었다. 이 천식이 십대에는 악화가 되었고 대학초에는 봄학기 시험을 포기해야 할 만큼 상태가 아주 안 좋았다. 나와 주위의 다들이 치유를 위해 꾸준히 기도했고. 그 언젠가는 기름을 부으며 안수를 받기까지 했지만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몇 년 후 어느 이른 아침. 그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께서 기도책의 한 문장을 통해 내게 나의 기억의 치유가 필요함을 보여주셨다. 이것에는 내가 전에 경험하지 못한 더 깊은 수준의 누군가에 대한 용서가 따랐다. 나는 내 마음의 감찰과 기도로 며칠을 보냈다. 절대 나는 나의 천식문제로 기도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만 성령님께 그러한 분노와 아픈 기억을 처리해주시기를 간구했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천식을 앓아본 적이 없다. 천식 치유를 위해 많은 기도가 드려졌었지만. 그때까지 나의 깊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기도 응답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많은 부분에 대한 사실이다.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이유로 하나님이 주실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많은 성인들이 기도에는 .예.와 .아니오.만이 기도의 응답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다른 응답을 우리에게 주신다. 기다리라고 응답하실 때도 있다.
제목: 기다리라
"혹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줍지 못하셨나요? 틀림없이 엊저녁에 그 극장 안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요"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한 여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극장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니 아직은요. 하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잠깐만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지배인은 이 말을 남기고 목걸이를 찾기 위해 어디론가 가버렸다. 얼마 뒤, 지배인이 돌아와 수화기를 들었다.
"부인, 기뻐하세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 여인은 지배인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으러 간 사이를 기다리지 못했던 것이다. 극장 지배인이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를 추적하려고 백방으로 애써 보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여인과 같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데 실패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가 응답을 주시기에 가장 적당한 때인지를 아시고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라고 명령하신다.
제목: 기다리지 말고 네가 가라
어느 목사가 그리스도를 믿지는 솥으나, 가끔 교회에 나오는 어느 사회지도층 인사를 위해 특별히 말씀을 준비하고서, 신앙이 깊고 헌신적인 그 사람의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군께 제가 오늘 밤 교회에서 조용히 뵙고 싶다고 전해주쁠시오.” 줌대의 말을 들은 남편은 곧 목사에게 전화로 줌대해주심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런데 그날 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줌대받은 그 손님은 교회에서 그리 멀지 솥은 곳에 살고 있었으나, 끝내 오지 솥았다. 이에 실망한 목사는 자책하듯이 ‘아, 그를 주님께로 인도하지 못하게 되는구나’라고 중얼거렸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왜 네 구주가 몸소 실천했던 모범을 따르지 솥느냐.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가서 거듭남이 무엇인가를 전했던 것처럼 왜 그를 찾아가 말씀을 전하려 하지 솥느냐? 만약 그의 집에 불이 났다는 것을 알면 가서 깨우지 솥겠느냐? 왜 가장 귀한 일을 하지 솥느냐?” 그래서 그 목사는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뚫고 그를 찾아갔다. 악천후 속에서도 자기를 찾아온 목사를 보자 그 사나이는 눈물겹도록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것인가를 알려주시려고 당신을 보내셨습니다. 당신 말씀이 계속 마음을 흔들어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제목: 기다린다는 것
월리엄 그레이(William Gray) 목사는 알프스의 한 빙하 동굴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동굴은 단단한 얼음을 뚫어 만든 통로를 통해서 가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가 그 으스스한 터널을 따라서 점점 더 깊이 내려감에 따라 가늘게 들어오던 햇빛도 차차 희미해져 갔다. 우리가 그 터널 끝의 좁은 방에 들어갔을 때에는 앞을 분간할 수없을만큼 완전히 깜깜했다.
그때 안내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가디리세요! 5분쯤 지나면 앞을 똑똑히볼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가만히 선채로 기다렸다.
과연 그 안내인의 말대로였다. 5분쯤 지나니까 눈앞이 환해진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의 눈이 새로운 환경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우리 눈이 밝아지자 동굴 벽과 천정이 반투명의 초록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신선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고, 안내 책자를 읽을 수도 있었다."
기다림은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해준다. 그러나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눈들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갑작스런 변화 때문에 좌절하고 당황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어둡다. 하지만 그들이 벽을 더듬던 초조한 손길을 멈추고 하나님 안에서 조용히 기다릴 때 빛이 들어오고, 그들은 하나님의 친철하심과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제목:기다림
희망 속에서 사는 삶은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으로부터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편지를 받은 사람의 삶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희망은 슬픔 한가운데에도 기쁨을 가져오고 사랑하는 이를 그리움에 가득찬 가슴속으로 데려온다. 과거에 우리와 함께 있었고 미래에 다시 우리를 찾아올 그 사람은 추억과 희망이 교차하는 귀중한 순간에 이미 우리와 함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그가 과거에 이미 우리의 삶에 와 닿았기 때문에 다시 오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 살던 한 학생이 멀리 동부 해안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많은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을 떠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별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만남이 즐겁지도 않겠지요"하고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이 여기 계신가? 안 계신가? 아마도 우리는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슬퍼하는 가운데 그분이 계시다는 징표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며, 그리워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그분의 발자국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일편단심으로 기다릴 때 우리는 그의 사랑이 이미 우리 삶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들을 그리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을 기다리면서 더 깊어지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아들이 오히려 그들 사랑을 재발견하듯, 우리가 인 내하며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완전해진다.
제목:기다림
예수원에는'소기도실'이라는 조그만 다락방이 하나 있습니다. 주로 묵상기도를 하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며 그분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고 변화를 받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기도실 문에 '기도는 듣는 것이며 또한 기다리는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그곳을 찾는 형제 자매들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그것을 신실하게 이루신 사건들로 가득합니다. 그 말씀들을 읽는 우리는 주님의 능력과 성실하심에 은혜를 받고 새 힘을 얻곤 하지만 그 사건들 속의 당사자들은 지금의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초조함과 의심, 낙담과 좌절감 속에 고통스러워 하기도 했고 때로는 곁길로 가다가 재앙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인간의 불안과 의심을 헤치고 '그분의 때'에 자신이 약속한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심으로 항상 빛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현대인의 재앙 중의 하나는 분주함이다'라고 했습니다.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교만하게 만들고 원하는 바를 자신의 계획과 뜻대로 성취하도록 부추깁니다.'때와 시기'는 항상 가리워져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기다리는 불안'을 갖게 하고 조금씩 세속적인 수단과 타협하도록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그분과 친밀한 사귐을 나누는 자녀들은 비록'그 때와 시기'가 가리워져 있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신뢰와 순종으로 인내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그 분과 보조를 맞추기 힘들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지만, 인내와 기다림의 긴 여정을 통해 오히려 그분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게 되고, 마침내 약속(혹은 비젼)이 성취되는 날, 우리의 속사람마저 변화된 사실로 인해 더욱 놀라게 될 것입니다.
제목:기다림
사탕을 나누어 먹는 자리에서 체면을 차리고 사탕을 얌전히 녹여서 먹다보면 한 알의 사탕을 다 먹기도 전에 남들이 나머지 사탕을 다 먹어버리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이런 막연한 피해의식들이 우리들의 생활을 지배하면서 우린 남들과 함께 한 자리일수록 선두다툼을 해야 하고 경쟁을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화가 그 향기와 빛으로 사랑을 받는 것은, 남들이 다 시새워 벙글어지는 봄날에 잎만 달고 묵묵히 기다리며 봄, 여름을 다 견디고 초가을의 무서리까지도 견디고 난 후에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정말로 절망적이고 힘든 것은 기다림마저도 없는 생활이지 기다리는 생활이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생활에 기다림이 있는 이상 우린 아직 희망이 있고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남들은 이것저것 다 잘 해내는 것 같고 시작하는 것 같으니까 나 역시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시작만 하기보다는 정말 나에게 알맞는 일과 취미를 알 때까지 기다리고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후엔 혼자만의 집념과 끈기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기다림이란 항상 자신을 참아내는 인내와 끈기를 친구로 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꼭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우리들의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끝나고 말지라도 기꺼이 기다릴 줄 아는 삶의 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제목:기다림과 응답
때때로 우리의 기대는 오랫동안의 기다림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기도목록 중 어떤 것들은 응답받기까지 아주 오랜 시일이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나의 기도목록 중에는 군대에서 정년퇴직하신 어버지의 구원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퇴직하시기 직전에 아버지께선 우리를 보기 위하여 달라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셨었는데. 물론 우리 아이들은 미칠 듯이 좋아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오신대, 할아버지가 멋진 군복을 입은 모습은 정말 근사해.” 아버지께서 오색찬란한 단추들이 달린 군복을 입고 비행기 문에서 모습을 보이자 막내 녀석은 할아버지를 맞으러 뛰어나갔습니다. 아버지께서 계단을 다 내려와 팔을 벌려 막내 손자를 꼬옥 껴안았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이르렀을 때 막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선 이미 예수님을 아시죠.” 아버지께서는 “모르겠는데. 얘야 내가 예수를 확실히 알고 있다고 말하는게 웬지 어렵구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요. 그럼 할아버지께선 이제 금방 아시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들이 매일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거든요.” 하지만 그때의 '금방'이란 말은 몇 해라는 기간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께선 1974년 돌아가시기 넉 달 전에야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위해 42년간이나 기도해왔던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몇 년씩이나 기도해왔습니까.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7:8 항상 간절한 기대감을 갖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시오.
제목:기다림에 사는 신앙
어떤 가난한 시인이 늦은 가을에 낙엽들이 바람에 굴러가는 공원의 한 구석의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공산주의의 달콤한 선전을 생각해 봅니다. 배가 고프고 춥고 가난하고 직업이 없는 이 시인은 '빈부의 차이도 없고 실직자도 없고 골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회가 얼마나 좋은것인가! 왜 나쁘다는 것인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기독교의 사랑은 아무래도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공산주의에서 선전하는 배고픔과 직통하는 그런 느낌이라든가 그런 투명성이라든가 그런 직접성 같은 것은 기독교의 복음에는 없지 않을까? 또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의 여신들이 연애를 하고 질투를 하는 이야기처럼 내 말초 신경까지 짜릿하게 느껴지게는 못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저는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우리들의 생명은 사도들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읍니다. 오늘날의 많은 소설들을 읽어 보면, 그 소설들이 전달해 주는 공감은 복음서가 전달해 주는 공감보다도 훨씬 투명하고 직접적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경에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다고 말했읍니다. 어떤 신학자는 '그림자 있는 인식'이라고도 말했읍니다. 또 다르게 말하면 몽롱한 밤에 보는 산과 같다고도 말할 수가 있읍니다. 사도 바울은 '질그릇 속에 보배가 담겼으니'라고도 말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