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범사 감사에 대한 예화 모음

공 상희 2011. 7. 22. 14:38

범사 감사에 대한 예화 모음

 

범사에 감사하라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는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 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고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다.“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다. “노트를 한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
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 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나 자신의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타인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된 손길을 맞잡기 위해서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만큼 잘 알려진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작 행동으로 옮기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까닭은 바로 이 구절에 "범사"라는 말이 전제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몇가지 비결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영적인 원리들 입니다.

1. 살아있음을 감사해보라.

큰 사고를 당했거나 난치병으로 사경을 헤맸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고. 오늘 나의 생명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기본이 닦여진 사람입니다.

2. 문제가 있는 것을 감사해보라.

이 세상에서 문제가 없는 곳은 오직 한군데. 무덤뿐입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는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3. 감사할 일이 생겼을때 즉시 감사해보라.

시간이 지나면 감사의 마음도 희미해집니다. 우리가 감사를 그때 그때 즉시 표현하는 훈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사소한 일과 작은 일부터 감사해보라.

우리는 큰일,굉장한 일을 감사하려다 보니 어려움을 당합니다. 작은 일,사소한 일을 감사할 줄 모른다면 범사에 감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범사에감사하자
남아메리카주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끊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은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외국 관광객들이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왜요?"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거져 쓸 수 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천만에요" "왜요?" "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어떻게요?" "더운물과 찬물이 땅에서 나는 것은 괜찮은데 빨래하기에 꼭 필요한 것이 나오지 않아서 불평이 많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비누가 나오지 않아서 불평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죄인 인간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감사보다 불평이 더 있습니까?
죄가 가리어서 그렇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의 자비를 기억하고 주신복을 세어보면 감사가 생깁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기도
감옥과 수도원. 모두 세상을 등지고 산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한 곳은 불평뿐이고 다른 한곳은 감사가 있는 곳이라는 점이 다를 것이다. 감옥에서도 감사할 줄 안다면 좋은 수도원이 될 것이고 수도원에서도 불평뿐이라면 역시 감옥이다.

“첫째,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할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로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3남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장남 차남을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넷째,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감사합니다. 다섯째,예수 믿다가 와석종신(제명에 죽는 것)하는 것은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을 감사합니다. 여섯째,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덟째,내 두 아들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 아홉째,이 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가지 진리와 신애(하나님의 사랑)를 찾는 기쁜 마음,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1948년 10월27일 아침 고국 남쪽 여수에 자리잡은 애양원교회. 총살당한 두 아들 장례예배는 아버지 손양원 목사의 이 감사의 답사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살전 5:18) 모든 일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 안에서 감사드렸던 다니엘을 닮고 싶어진다.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단 6:7)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세번씩 감사기도로 무릎을 꿇었다”(단 6:10)

인류역사는 다니엘처럼 순교당할 낌새를 알면서도 감사 기도 드리는 성도들의 눈물과 피로 이어져오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기독교를 가리켜 소위 “기도교”라고 합니다. 성도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기도의 회복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했고 로마서에서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는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는 기도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기도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인데 호흡을 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호흡을 중단하면 죽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기도를 멈추면 병들거나 마침내는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할 때도,환난과 핍박을 받을 때도,건강할 때도,병들었을 때도 늘 기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본문: 엡5:15-21
"범사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0-21)

Ⅰ. 건강한 신앙생활
세상인심은 조석으로 변합니다. 2002년 월드컵때 한국축구 감독을 맡았던 히딩크는 프랑스와 체코에 5:0으로 지자 "5:0감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던 매스컴이 한국이 4강에 들자 영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16강만 통과해도 한이없다던 마음이 4강에서 탈락하자 원망이 재발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일이 아닙니다. 바울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성도들을 향해 '범사에 감사하라'고 거듭거듭 강조합니다. 감사는 신앙생활의 바로미터입니다. 성경적 감사생활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Ⅱ. 범사에 감사하는 삶


1) 감사생활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살전 5:16-18)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없는 삶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환경과 조건따라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영원불변하시는 '구원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는 인생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하면서, 말할수 없이 영광스러운 성부하나님, 성자예수님, 성령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바른교리위에 바른신앙생활을 함으로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불신자들은 성도들의 감사하는 삶, 기뻐하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전도가 됩니다. 평소에 감사하는 삶을 살면서 생활의 전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2) 감사생활은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령충만받는 것과 동시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것"(엡5:19-20)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충만한 삶은 감사생활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내입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성령을 계속해서 근심시키는 일입니다. 종교개혁가 마틴루터는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성도는 조그마한 일에도 먼저 감사하는 말을 함으로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진정한 감사생활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가운데서 감사하는 삶입니다.
좋은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과 역경가운데서 감사하는 것은 쉽지않습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바로 고난가운데서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유라굴로의 광풍속에서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되었고, 추위와 배고픔과 죽음의 공포에 떨고있는 선원들에게 축사한뒤 음식을 먹도록 권면했습니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도착한지 1년만에 그 어려운 처지와 환경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려울 때 더욱더 감사할 수 있는 성도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감사는 반드시 훗날 축복으로 바뀔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

본문: 살전 5:16-18

우리 신앙 생활은 매일매일 순간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되지만 특별히 한해동안 농사를 잘 짓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잘 살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날을 택하여 특별한 감사 예배를 드리는 이 추수감사절 예배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 감사절 절기는 구약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왔고 또한 정교도들이 미국에 들어와서 농사 짓고 첫번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어서 온 세계에 파급되게 된 것입니다. 시세로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한 마음은 최고의 덕일뿐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사는 이와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감사와 결부시켜 생각하면 사람은 셋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자기 스승을 팔아 먹은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두번째는 얕은 감사의 사람입니다.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조금 궂은 일이생기면 불평, 원망하는 종류의 사람입니다.
세번째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입학시험에 합격했어야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불합격했어도, 날씨가 좋을 때만 아니라 궂은 날씨에도, 건강할 때 뿐 아니라 질병가운데서도 감사할 조건을 찾아내는 사람이 진정 깊은 신앙의 사람입니다.
어느 농촌 교회에서 새로 교회에 나오던 사람이 몇 주일을 나오고는 안 나와서 심방가서 왜 안 나오느냐고 물어 보니까 예배당 나온 사이에 고추 서말 마당에 널어 놓은 것을 그만 훔쳐가서 "하나님이 계시면 어떻게 예배 보러 간 사이에 도적을 맞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 이제 예수를 그만 믿어야겠다고 말하더랍니다. 새 신자들 가운데는 깊은 신앙이 없기 때문에 이런 조그만 시험이 와도 낙심하기가 쉽고 마귀란 놈은 또 그런 것을 노리고 있습니다.
채소를 심으면 처음에 새싹이 돋아 나온 후에 벌레가 더 많이 덤벼 들어서 그 이파리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과정이 지나가야 떡잎이 나고 다음에 좋은 채소가 되는 것이며, 처음 예수 믿고 신앙 생활하려 할 때는 마귀란 놈이 덤벼들어 시험당한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면서 나가면 틀림없이 그 시험 다음에 더 큰 축복이 오고 믿음이 크게 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장사가 잘 되고 수입이 좋으면 감사하고 어려운 시험이 오고 괴로운 일이 올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그는 얕은 신앙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역경 중에도 풍파 중에도 무슨 일이 잘 안되어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믿음이 깊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를 가다 보니까 한 사람이 자기가 믿던 우상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서는 그 우상의 볼기짝을 마구 때리더랍니다. 그래서 어째서 당신이 믿는 우상을 때리냐고 했더니 "내가 이 우상을 10년 동안 믿었는데도 복을 주기는 커녕 화만 자꾸만 주어서 때립니다" 하고 말하더랍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식으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좋은 일에만 감사하지 말고 궂은 일에도 역경 중에도 실패를 했어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와 모든 것을 섭리 가운데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28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을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유익하게 되고 선하게 이루어 주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모세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모세를 나일강에 갖다 버린 것도, 또 때마침 공주들이 그 곳에 목욕하러 온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40년 고생한 것도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지날 때 필요한 일이었고 바로의 궁중에서 40년 지낸 것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정치적인 훈련을 받는 기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모세 자신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 배후에 다 섭리하시고 인도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지금까지 지나온 경로를 가만히 생각해 보시면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배후에 계신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이러한 자리에까지 앉게 된 것도 우리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배후에 섭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좋으신 분임을 믿음으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잘못할 때 벌이나 주시는 하나님으로만 알기가 쉽습니다. 마태복음 7:9-11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떡을 기대했는데 뜻밖에 돌이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또 생선을 구했는데 뱀이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원망하거나 낙심할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풍파와 역경과 시련이 지나서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이다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악한 사람도 제자식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좋게 해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좋으신 하나님이야 좋게 아니해 주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 좋게 해 주신다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 역경 중에도 실패를 했어도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근래에 와서 6·25사변이 일어난 데 대하여 어찌 감사한지 모릅니다. 6·25 동란으로 참담한 역경이 있었지만 6·25 사변이라는 쓰라린 예방주사를 통해서 공산당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월남이나 크메르 같이 공산화되는 비극을 맛보지 않고 오늘날까지 우리나라가 안전하게 살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해나갈 때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혹은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볼 때 무슨 일이 잘 안되는 것 같고 풍파가 오는 것 같아도 먼 미래를 내다 볼 때 반드시 더 좋게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인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돈 많고 건강하고 무슨 일이 잘 되서 고관대작으로 잘 살았다면 예수 안 믿었을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질병이나 실패나 고통이나 고독이나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찾아 나오므로 예수 믿고 보니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된 줄로 믿습니다. 시편 기자는 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말씀했습니다. 알곡은 키질을 하면 할수록 바싹바싹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긁어 모아서 불에 태웁니다. 알곡된 신자는 풍파가 오고 실패가 오고 시련이 오고 어려움이 와도 더 주님께로 가까이 오지만 알곡되지 못한 신자는 그만 나가 떨어져 영원한 지옥불에 던지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더 좋게 해 주시는 분인 것을 알고 역경 중에도 실패 중에도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전화위복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해서 재난과 불행이 오고 역경이 왔어도 하나님을 계속 믿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결국은 그 재난과 화가 변해서 복이 되게 해 주시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해서 실패한 것도 하나님이 시켰다고 생각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지 마십시오. 여러분 요셉의 생애를 봅시다. 요셉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지만 형들의 시기를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 가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청년기가 되어서는 좋지 못한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해올 때 그 유혹을 물리치자 도리어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고 했다고 하여 그것 때문에 2년동안이나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바로왕의 이상한 꿈을 해몽해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으로 요셉이 그런 고난과 고통을 당했지마는 결국은 그 화가 변해서 복이 되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고 자기 가족과 온 민족을 기근 속에서 구출해 내는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50:20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려 하셨나니" 하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재난을 당하고 화가 왔을지라도 믿음을 지켜나가는 자에게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고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아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무인도에 귀양살이를 갔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깊이 기도하다가 하늘의 영계가 열리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보고 계시록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그는 다시 돌아와 편안히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쓰라린 십자가의 고통이 변하여 부활의 영광을 차지했고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배를 타고가다 배가 파손되는 바람에 바다에서 나무조각을 붙잡고 표류하다가 어떤 무인도에 닿았습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나무가지를 꺾어서 움막처럼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잡아다가 어떻게 나무가지를 비벼서 불을 피워 구워 먹고 했습니다. 하루는 조개를 잡으러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까 자기가 피워 놓은 불이 집에 붙어서 집이 다 타버렸습니다. 그날밤은 노천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배 한 척이 그 무인도로 와서 그 사람을 구출해 주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여기 사람이 있는 줄 알고 왔습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어제 배에 짐을 싣고 지나가다 보니까 여기서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짐을 풀어 내려 놓고 오는 길에 지금 들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애써서 지어놓은 집이 불타서 낙심할뻔 했지만 도리어 그 집이 불탄 것 때문에 그 연기를 보고 자기를 구출해 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고 재난과 실패와 역경 속에서도 자포자기 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언제나 감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일에만 감사하지 말고 궂은 일에도 역경중에도 실패한 중에도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하는 범사에 감사하는 깊은 신앙의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기독교는 '나'라는 개념을 절제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함께' 또는 '우리'라는 개념을 더욱 좋아합니다. '나'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살게 되면 사회는 삭막하게 되어갑니다. 그러나 '우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살게 되면 사회는 풍요롭게 되어갑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남'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래 창조 했던 에덴의 사회에는 '남'이란 개념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좋지 않은 의미의 '남'이란 개념이 단어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이란 개념을 되도록 없애고 '우리'란 개념을 더욱 발전시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가장 소중한 실천적 삶의 원리 중의 하나는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나'와 '남'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범사에 감사하는 인격이 발달 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나'와 '남'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조그마한 문제가 자기에게 닥쳐올 때 그것을 감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문제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눈만 뜨면 눈에서 항상 똑똑 떨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문제가 해결됐다 하면 다른 문제가 또 다가오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다가왔을 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반응 하는 자세가 크게 다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먼저 갈보리 산상에서 이루어진 큰 일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갈보리 산상에서 어떠한 일이 이루어졌습니까? 놀라운 승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 사탄의 정수리를 짓밟고 승리하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갈보리 산상에서 위대한 약속이 생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는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위대한 약속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갈보리 산상에서는 인간들에게 놀라운 소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갈보리 산상에서 이루어진 소망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가다가 없어지는 소망도 아니었습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이루어진 소망은 담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이 소망에 우리의 인생을 걸고 있으니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문제가 닥쳤을 때 먼저 갈보리 산상에서 이루어진 이와 같은 큰 일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 이 문제! 갈보리 언덕에서 이미 해결됐다!"고 담대히 선포하는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어떠한 문제라도 갈보리 언덕에 가면 다 해결 받는다는 사실을 믿기에 그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영혼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합니까? 반사적으로 "아이고 어떡하나! 큰일 났네"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오직 큰 일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일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을 가지고 '큰일났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큰일났다'고 입에서 선포하면 그것으로 끝납니까? 바로 악한 사탄이 '염려'까지 가져다주어 마음의 평안을 해치고 감사하는 마음을 빼앗아가버립니다.

범죄사건 수사를 하려면 초동 수사, 즉 처음에 수사를 잘해야 그 사건을 해결할 확률이 높습니다. 영적인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초동대응을 잘해야 합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큰일났네'라고 입으로 선포해버린 다음에 감사하려고 하면 되지가 않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말, 믿음의 대응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큰 문제를 만났어도 '별일 아니네'라고 믿음의 대응을 하면 진짜로 별일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초동대응을 잘 하기만 한다면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더 큰 감사의 제목을 주실 것입니다.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목사님의 책에 이러한 글이 있었습니다. 한 미국 청년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리를 절단한 후 얼마 동안은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가 있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후에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한 마을로 선교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식인종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식인종들이 선교사를 보고 좋은 먹이가 왔다고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선교사는 자기의 고무다리를 빼 주었습니다. 한 식인종이 얼씨구 좋구나 하고 고무 다리를 입으로 꽉 물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빨이 우드득 소리와 함께 나가버렸습니다.
그러자 식인종들은 신이 왔다고 난리법석을 치며 그 선교사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이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고 결국 선교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원망의 표적이었던 의족이 나중에는 목숨을 살리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에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 감사를 보증하시고 반드시 합력하여 선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그러한 삶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장 승리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신앙은 범사에 감사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여 순교한 주 기철목사 부인 오정모집사는 임종시에 몸이 괴로와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괴로운 것 때문에 감사했다. 그가 감사
한 이유는 그렇게 아파서 잠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깨어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신앙인일수록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바울은 투옥되어서도 감사하고, 또 신자에게 범사에 감사할 것을 말해 주고도 있다.)

 

범사에 감사함(감사)
장사를 한 여자 성도가 목사를 찾아와 가계가 안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 것보다도 더 힘든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장사가 안 되도록 하는가 하며 비웃는 것이라고 했다. 그 여성도는 십일조나 헌금 등을 빠짐없이 했고 주일성수도 착실히 한다고 했다. 목사는 그녀를 앞에 두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장사가 안되고 사람들이 비웃으니 감사합니다." 여성도는 의아한 듯 목사를 보더니 혹시 기도를 잘못한 것
아닌가로 물었다. 그러자 목사는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으니 돌아가서 감사기도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던 그녀가 몇일 후에 얼음판에서 미끄러졌다며 팔에 붕대를 칭칭감고 나타났다. 그때도 목사는 "주님, 팔이 부러졌으니 감사합니다."라고 했고 그녀는 목사에게 이제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것이 저주의 기도라서 팔부러진 것을 감사하면 다음 번에는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시무룩해져서 돌아갔다. 얼마있다가 지난번 보다 훨씬 나빠진 얼굴로 와서는 가계
를 팔았다고 했다. 이번에도 목사는 감사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때 가계를 치우고 업종을 바꿔 다른 장사를 시작했던 그녀가 하루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목사를 찾아왔는데 그녀의 애기인즉 장사가 더 잘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전에 자신이 하던 그 점포자리가 도시계획에 걸려 헐리게 되었다고 했다.
정부에서 보상금을 주지만 점포값에 비하면 형편없을 것이었지만 그녀는 일찍 점포를 팔았기에 손해를 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 애기를 하고 그제사 그녀는 감사의 기도를 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했노라고 했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8)

말씀:‘범사’란 의미는 모든 환경, 모든 상황이란 말입니다.성공할 때뿐 아니라 실패할 때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기쁠 때뿐 아니라 눈물날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형통할 때뿐 아니라 고난을 만났을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성공하고 형통하며 기쁠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믿음의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리더스다이제스트에 로빈슨이란 트레일러 운전사의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그는 교통사고 후 시력을 잃었습니다.그러나 그는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40일간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때 그의 눈이 치료되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소망의 행동입니다.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터는 마귀에게는 감사가 없다고 했습니다.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불평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골 3:15).


범사에 감사하라(2)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란 의미는 모든 환경, 모든 상황(all circumstances)이란 말입니다. 성공할 때뿐 아니라 실패할 때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기쁠 때뿐 아니라 눈물날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형통할 때뿐 아니라 고난을 만났을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형통하며 기쁠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믿음의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배고파 합니다.제자들은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축사’를 하십니다.
‘축사’라는 말을 사람들은 축복기도를 드린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축사’란 말은 빌 축(祝)자에 사례 혹은 감사할 사(謝)자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불평과 원망을 하는 상황에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까짓 것 가지고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이겠습니까?라고 원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신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사로가 죽어 몸이 썩고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낙담하고 있을 때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감사해야 될지를 주님께서는 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리더스다이제스트에 로빈슨이란 트레일러 운전사의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그는 교통사고 후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40일간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때 그의 눈이 치료되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소망의
행동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마귀에게는 감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불평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골 3:15).
1620년 12월 26일 청교도 102명이 미대륙 플리머스 해변에 상륙했습니다. 그들은 모래를 날리고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첫째 180 톤밖에 안되는 작은 배지만 평균 시속 2마일로 117일간 무사히 항해했음을 감사했고, 둘째 항해 중 2명이 죽었으나 한 아기가 태어났음을 감사하였으며, 셋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하였고, 넷째 큰 파도에 밀려 여자들이 바다에 빠진 사건이 두 번 있었으나 모두 구출됐음을 감사하였으며, 다섯째 신대륙 접근 뒤 일부 인디언의 방해로 상륙 못하다 한달 만에 플리머스에 안착하게됨을 감사하였고, 여섯째 3개월 항해 중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감사하였습니다.
개척민의 초대 지사가 된 브래드포드는 새 땅에 정착한지 3년만에 이렇게 선포했 습니다.“높으신 하나님께서 금년에 넘치는 수확을 주셨다. 옥수수 밀 콩 호박과 채소를 가꾸고 사냥을 하며 생선과 조개를 넉넉히 얻도록 축복해 주셨다. 야만인의 습격에서 지켜 주시며 질병에서 건져 주셨다. 무엇보다 우리의 양심을 따라 자유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순례자에게 선포한다. 주후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어른과 아이들은 전원이 모여 이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라” 이들 미 건국의 조상들은 풍요한 수확과 행복한 환경에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무덤을 팔 수밖에 없었던 첫 겨울, 하루에 옥수수 5개씩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던 추운 겨울을 지내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1863년 남북전쟁이 극렬한 때 링컨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미국의 국경일로 선포하며 말했습니다.“모든 미국인은 이날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은혜를 알고 감사하라". 그 후 역대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메시지를 발표하는 관례가 생겼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감사절 메시지에서 “오늘날 미국의 문제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고 윌슨 대통령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덕에 대해 미국인은 감사를 드리자”고 외쳤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 가을날 하루를 추수감사절로 정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 미국인의 위대한 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과거보다 여건이 좋은데도 불평은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100년 전의 미국인들은 꼭 바라는 것으로 16개를 꼽았는데 지금은 92개나 된다는 것입니다. 바네트 깁슨의 저서 ‘행복한 하루’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행운의 손바닥에 얼마나 많이 쥐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그대의 행복과 관계가 없다. 그대의 마음속에 감사한 생각이 없으면 그대는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제발 부탁이니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라. 감사의
예술을 터득할 때 그대는 비로소 행복을 찾을 것이다”
기도: 세상근심이 있을 때, 기쁨이 넘칠 때, 아픔이 있을 때, 축하함이 있을 때, 절망할 일이 있을 때에 사람됨으로 하지 않게 하시며 늘 우리 하나님을 먼저 생각케 하시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범사에 감사하자
남아메리카주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끊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은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외국 관광객들이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습니다." "왜요?"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거져 쓸 수 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천만에요" "왜요?" "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어떻게요?" "더운물과 찬물이 땅에서 나는 것은 괜찮은데 빨래하기에 꼭 필요한 것이 나오지 않아서 불평이 많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비누가 나오지 않아서 불평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죄인 인간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감사보다 불평이 더 있습니까? 죄가 가리어서 그렇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의 자비를 기억하고 주신 복을 세어보면 감사가 생깁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기도

감옥과 수도원. 모두 세상을 등지고 산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한 곳은 불평뿐이고 다른 한곳은 감사가 있는 곳이라는 점이 다를 것이다. 감옥에서도 감사할 줄 안다면 좋은 수도원이 될 것이고 수도원에서도 불평뿐이라면 역시 감옥이다.
“첫째,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할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로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3남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장남 차남을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넷째,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감사합니다. 다섯째,예수 믿다가 와석종신(제명에 죽는 것)하는 것은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을 감사합니다. 여섯째,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덟째,내 두 아들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 아홉째,이 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가지 진리와 신애(하나님의 사랑)를 찾는 기쁜 마음,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1948년 10월27일 아침 고국 남쪽 여수에 자리잡은 애양원교회. 총살당한 두 아들 장례예배는 아버지 손양원 목사의 이 감사의 답사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살전 5:18) 모든 일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 안에서 감사드렸던 다니엘을 닮고 싶어진다.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단 6:7)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세번씩 감사기도로 무릎을 꿇었다”(단 6:10)
인류역사는 다니엘처럼 순교당할 낌새를 알면서도 감사 기도 드리는 성도들의 눈물과 피로 이어져오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림택권 목사(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기독교를 가리켜 “감사의 종교”라고 합니다. 오늘 성경은 범사에 우리가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범사에’라는 말은 ‘in all circumstances’라고 번역하는데 이 말은 어떠한 환경이나 모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왜 감사해야 합니까?
먼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소유했으니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박국은 자신의 모든 소유가 없어졌으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발견하고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감사생활은 어떠합니까? 있는 것 때문에 감사하십니까? 아니면 없지만 있게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십니까?

 

범사에 감사

화란의 선교사 '코리 텐 붐'과 그의 언니 '베스티가' 리벤스부룩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던 날 코리는 수용소 막사의 더러움과 벼룩이 뛰어 다니는 침상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때 베스티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을 가지고 동생을 꾸짖었다. 얼마 후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무자비한 간수들도 막사 안에서 예배를 드려도 아무 상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의아해 하는 코리에게 한 동료가 '저 간수들은 막사가 너무 더럽고 벼룩까지 들끓기 때문에 벼룩이 옮을까 두려워서 막사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리는 감격하여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때로 우리가 만나는 어려운 환경을 이해할수 없을때가 있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그것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다는것을 알때 우리는 그가운데서도 감사할수 있을것입니다.


신앙은 범사에 감사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여 순교한 주 기철목사 부인 오정모집사는 임종시에 몸이 괴로와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괴로운 것 때문에 감사했다. 그가 감사
한 이유는 그렇게 아파서 잠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깨어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신앙인일수록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바울은 투옥되어서도 감사하고, 또 신자에게 범사에 감사할 것을 말해 주고도 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인천 O O 교회 가 목사는 매주일 설교전 기도시간에 날씨에 대한 감사기도를 드린다.
`화창한 날씨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적당한 비를 주셔서 대지를적시어 주시듯 오늘은 성령에 단비를 내려 주실줄 믿으오 니 감사합모` 교인들이 매주일이면 듣는 `날씨에 대한 감사기도`이기 때문에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었다.
그런데 장마철 어느 주일날 11시에 예배가 시작되지 1시간전부터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다.
계속 쏟아진 비 때문에 11시 10분이 지나도 3백명쯤 모이는 교우들이50명밖에 모이지 아니했다.
교인들은 `오늘도 우리 목사님 날씨에 대한 감사를 드릴까?`
제각기 입을 모아 한마디씩 한다. 기도 시간이 되었다.
`날씨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일년 52주 동안 오늘 한 주일만 장대비를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매주일 이런 비류주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 수 있겠습니까?` 본문:시136:1-3,
`항상 네 감사하는 일을 먼저 하늘에 하고 다음엔 땅에 향하라.`
- 토마스 -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식을 갖는다는 것은 독사에게 물리는 것이훨씬 낫도다`


범사에 감사
한국기독교계에 부흥사로 널리 알려진 바 있는 이성봉 목사는 다음과같은감사를 한 일이 있다.

`나는 나의 밑천을 영으로 치고 사니까 가난뱅이가 될 것 같으나 도리어부자가 되었다.놀라지 말라! 내 자본이 얼마인가 하면 12억환이다.이 말은실없고 허황한 말 같으나 가장 진실한 말이요 사실이다.
왜? 내가 쓰고 있는 이 몸을 물자를 드려서 기른다고 하면 독일 같은 과학이 발달된 나라에서도 2억환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 내 몸 하나만 하여도2억환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 내 몸 하나만 하여도 2억환짜리가 되고 또내가 19세되던 해에 2억환 짜리 아내를 한 사람 맞았으니그것만 해도 벌써4억환이 되지 않았는가?

그다음으로 사랑하는 딸이 사형제니 12억환 재산가가 아닌가? 나는집에들어 가면서 막대기를 휘둘러도 하나 거칠것 없지만 그러나 12억환 자본가이다. 그러다가 만일 또 하나님이 데려 가신대도 내게 손해볼것은 하나도없다. 왜? 밑져야 본전이니까 나는 이러한 인생관을 가지고살기 때문에 내생애는 항상 평안하다`

영국 트렌취 감독의 말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신 모든 은혜를 감사하고 나면, 우리에게 중얼거리거나 원망할 시간이 어디있느냐고 한바 있듯 우리에게 주신 각양 은혜를 생각할 때는 모든 것이 다감사조건 뿐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버리라. (살전 5:16:22)


범사에 할 감사
초대 기독교의 교부로서, 성총 박사로 알려지는 아우구스 티누스가 어떤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교수하러 가던 도중, 그만 안내자가 길을 잘못 인도하여, 종내 갈길로 가지 못하
게 되었다. 그때 아우구스티누스의 반대자인 도나티스트(Do- natist)당은 아우구스티누스를 죽이기 위하여, 그들이 지나 가리라는 길에 가서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우구스티누
스 일행이 그 길로는 지나가지 않고 길 잃고서 헤매이게 되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길 잃은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잠시 답답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결국은 유익이 되
었으니, 그로 말미암아 화를 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 믿는 신자는 어떤 일이 뜻대로 안된다고 하여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유익하게 될 것이
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해야.


범사에 감사

 매사에 불평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수박 밭을 지나게 되었는데 가냘픈 줄기에 머리통 만한 수박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쳇 하나님도 너무하시지 저 가냘픈 줄기에 저렇게 커다란 수박을 매달아놓고 이 커다란 고목나무엔 쬐만한 밤톨을 달아놓다니" 그가 어느 날 나무 밑에서 낮잠을 즐기는데 그의 머리위로 밤송이가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깨고 말았다.
 "큰일 날뻔했군, 만약 하나님이 이 나무에다가 수박을 매달아 놓았었더라면 난 죽었을지도 몰라...."


범사에 감사하라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는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고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다.“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다. “노트를 한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 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나 자신의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타인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된 손길을 맞잡기 위해서 범사에 감사하라.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우물가에서 두 사람의 머슴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머슴 하나가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내가 아무리 물통에 물을 잔뜩 길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냔 말이야.얼마 안 가서 다 써 버리고 또 물을 길어 와야 하니, 이렇게 빈통 들고서 말이야` 하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는 세상만사가 억울하고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어 원망만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불평을 듣던 다른 머슴이 대답을 했다.
`야, 그것은 네가 잘못 생각한 것 아니냐? 나는 우물에 올때마다 빈통으로 오지만 갈 때에는 꽉꽉 채워 가지고 가는 뿌듯함 때문에 즐겁고 기쁘기 이를 데 없다. 생각해 봐라, 내가 물통에 물을 꽉꽉 길어가면 집안 식구들이 얼마나 유용히쓰냐, 너도 마음을 고쳐 먹으면 즐겁고 기쁠 터인데 늘 불평만 하니까 문제가 있는것 아니냐?`
그렇다.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같은 머슴 신세지만 빈통으로 왔다가 채워 가지고 가는 것을 불평할 수도 있고, 물을 채워 가지고 간다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죽도록 일만 한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고, 일할 것이 많다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억울해 할 수도 있고, 일할 것이 많다고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억울한 쪽을 택하느냐 감사하고 기쁜 쪽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는 것이 세상만사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은 `항상 기뻐하라`하지 않으셨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