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관한 예화 모음
감사에 관한 예화 모음
감사하는 마음
김동인의 사초집을 보면 고려 말년인 1430년 경 과거에 급제하여 세종대왕 때에는 우의정을 지낸 바 있는 유관이란 사람은 그의 생활이 청빈하였을 뿐만 아니라 감사하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그가 청빈한 생활을 하였던지 우의정을 지내기 전까지만 해도 자기집 하나도 변변한 것을 갖지 못하고 동대문 밖, 그것도 울타리와 대문도 없는 초가집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제때 지붕을 덮지 못하여 군데군데 하늘이 보일 만큼 구멍이 뚫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새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유관은 조금도 불평하는 일이 없이 매사에 감사하였다. 5,6월 장마철이 되어 비는 매일같이 내리고 방안에는 편히 누울 곳도 없이 빗방울이 소리를 내며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유 관 부부는 비가 새지 않는 곳으로 이리저리 옮겨 앉으며 비를 피하다가 나중에는 너무도 많은 비가 쏟아지므로 우산을 받쳐들고 마주 앉아서야 겨우 비를 피하게 되었다. 한참이나 소동을 벌인 후 기가 막혀 화가 나있는 아내에게 유 관은 위로하여 말하기를, "여보! 그래도 우리는 우산이 있으니 이와 같이 심한 비를 피할 수라도 있는 것이 아니오. 우리처럼 우산도 없는 집이야 지금 이 비에 오죽이나 하겠오. 그러니 감사하십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불행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끝내 성공할 수 있음을 알게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S. 존슨이란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하는 마음은 높은 교양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서 저속한 인간에게서는 이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하였고, 프랑스 혁명사를 집필하여 그 이름을 전 세계에 떨친 영국의 역사가이며 평론가인 칼라일은, "나는 암흑을 사랑하고 암흑 속에서 살았으며 죄인들의 괴수로 빛을 미워하고 경건한 생활을 비웃었으나 하나님은 나에게 풍성한 자비를 베푸셨으므로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노라."고 하였던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2:1)
오직, 감사뿐 !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 103:2.
16년 동안 병상에 누워 살아온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늘 통증 가운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 입에서는 늘 감사하는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엄지손가락 하나를 쓸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손가락으로 성경책의 책장도 넘길 수 있었고, 빨대를 이용해 차도 마실 수 있었으며, 음식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할머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 그 때마다 할머니는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으며, 낙심될 일도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의 말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아는 마음
미국의 국민학교(초등학교)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독일에 대 기근이 들어 수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신음하고 있을 때에 어느 마을의 한 부자는 자기 마을 어린이들에게 매일 빵 하나씩이라도 급식을 시켜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집안 사람을 시켜 빵을 굽게 하고 20여명의 어린이들을 모이게 하여 하나씩 가지고 가게 하였다. 그리고 기근이 끝날 때까지 매일 이와 같이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더니, 굶주렸던 어린이들은 "와-"하고 달려들어 서로 큰 것을 갖기 위하여 야단들을 한 후, 주인에게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이런 싸움통에 자기 순서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그레첸'이란 소녀는 아이들이 다 떠난 뒤 맨 나중 빵 그럿으로 다가가 찌그러진 작은 빵 하나를 집어 들고는 기쁜 표정으로 주인 어른을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돌아갔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어린이들은 지난 날과 다름없이 서로 큰 것을 가지려고 아우성들을 치다가는 주인에게 인사도 없이 가 버리곤 했다.
그러나 그레첸은 예외없이 맨 나중까지 기다렸다가 이 닐도 다른 아이들 것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남은 빵 하나를 집어들고는 주인을 찾아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집에 돌아온 그레첸은 어머님과 함께 그 빵을 나누어 먹기 위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빵을 쪼개었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빵 속에서 50센트 짜리 은화 6개가 나온 것이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분명 이것은 잘못된 것이니 은화를 주인 어른에게 가져다 드려라."고 했다. 그때 그레첸은 그 돈을 가지고 주인 어른을 찾아가 사실을 아뢰었더니 주인은 대답하기를, "그 돈은 틀림없는 내 것이란다. 그러나 그것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씨 착한 너에게 상으로 주기 위해 빵 속에 넣게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더 큰 감사의 조건이 생긴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일본의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 씨도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에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더욱 새로운 은혜를 주실 것이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고 매사에 불평을 일삼는 자는 종신토록 만족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시 50:23) 많은 사람들은 좋게 되면 행복이고 나쁘게 되면 불행이라고 하는 단순한 논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롬8:28) 부해도 가난해도 자족할 줄 아는(빌4:11)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만큼 잘 알려진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작 행동으로 옮기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까닭은 바로 이 구절에 "범사"라는 말이 전제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몇가지 비결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영적인 원리들 입니다.
1. 살아있음을 감사해보라.
큰 사고를 당했거나 난치병으로 사경을 헤맸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고. 오늘 나의 생명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기본이 닦여진 사람입니다.
2. 문제가 있는 것을 감사해보라.
이 세상에서 문제가 없는 곳은 오직 한군데. 무덤뿐입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는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3. 감사할 일이 생겼을때 즉시 감사해보라.
시간이 지나면 감사의 마음도 희미해집니다. 우리가 감사를 그때 그때 즉시 표현하는 훈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사소한 일과 작은 일부터 감사해보라.
우리는 큰일,굉장한 일을 감사하려다 보니 어려움을 당합니다. 작은 일,사소한 일을 감사할 줄 모른다면 범사에 감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시편 9: 1)
옛날, 신앙심이 돈독한 어떤 성주(城主)가 식사를 하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신하들의 자세를 고치기로 마음먹고 한 거지를 식탁에 초청했다. 거지는 평생에 처음 먹어보는 기름진 음식으로 한껏 배를 채우고, 거기다 성주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그 거지는 분에 넘치는 식사를 마음껏 한 후 성주의 배려에 한마디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나가 버렸다.
이 모습을 본 신하들은 몹시도 화를 냈다. 개중에는 화가 나서 "저런, 은혜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구." 라고 분개하면서 거지 에게 욕설을 퍼붓는 신하도 있었다. 그저 모든 광경을 침착하게 보기만 하던 성주는 그제서야 입을 열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들도 거지와 다를게 없소. 그대들도 역시 날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있잖소."
적 용 우리는 특별한 일에는 감사하면서도 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참으로 소중한 것들에는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기 쉽다. 공기, 물, 햇빛 그 외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날마다 베풀어주시는 수많은 것들. 사실 이러한 것들 이 없다면 우리는 단 몇 분도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늘 베풀어주시는 것들을 당연시하고 감사의 마음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나 이와 같이 주의 은혜와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한시도 살아 갈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자명한 사실에 대해 늘 감사할 줄 아는 겸허한 마음의 자세, 그리스도인에게 참으로 요청되는 신앙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감사와 찬송
팔이 하나 없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처녀때부터 20여년 동안 팔이 없이 살았으므로 그 여인은 열등감에 젖어 살아왔습니다.
마음속에는 깊은 상처가 잠재해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나 길을 갈 때에 팔이 있는 것처럼 위장을 하고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뒤에서 큰소리만 나도 그녀는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하루는 누군가에게 팔 없는 것을 감사하고 찬송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팔이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고 찬송을 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자기 몸을 결박하고 있던 것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후 그녀가 외출을 하려고 했을 때 위장을 하고 다니던 팔의 스카프를 풀어 버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것만은 풀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진실로 내게 감사하였다면 위장하고 다니던 것을 풀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그 음성에 순종하여 스카프를 풀었는데 그때 참자유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팔이 하나 없는 여자인 것을 인정하고 나니까, 숨길 것이 없고 보니까 큰 자유를 느껴서 찬송하고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이 감사 충만(토리박사)
감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는 자는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자이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나듯이 모든 일에 감사가 들어가면 형통합니다
아무리 주어도 감사할 둘 모르는 사람은 그가 개인 주의자인 까닭이다.
환난과 슬픔에서 하아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으로
변화시키니다(크리소스톰)
감사는 여러분의 축복에 자물쇠를 채우는 비결이다(조용기)
감사는 하나남께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의 행위이다.(손기태)
감사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인생의 형별은 감사가 없는 것이다(내촌)
참성도는 모두 감사로 인생을 승리한 자들이다(손기태)
감사는 성령중만의 증거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제사 행위요 천국민의 생활 특징이다.
감사치않는 자녀를 두는 것은 독사의 이빨보다 더 날카로운 찌르는 가시이다(섹스피어)
감사란?
하나님께 보답하는 성도의 행위(살전3:9)-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감사이유
하나님의 뜻이기에(살전5:18)/ 항상 승리하게 하시기에(고후2: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기 때문(히12:28)/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시100:2)-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나에게 능력을 주셨디때문(딤전1:12)-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가
감사방법
넘치게 하라(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셈움을 입어
무엇으로 감사하나
기도로(욘2:9)-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감사드리며/ 물질로(고후8:2)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봉사로
감사결과
넘치게 된다(고후 9:12)-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인하여 넘쳤느니라
더 좋은 것을 받는 감사
미국의 소학교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도이취에 대기근이 있을 때였다. 많은 수의 가난한 사람이 기아로 신음하게 되었다. 한 부자는 30명 가량의 어린이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 주머니 속에, 너희 한 사람에게 한개씩 줄 수 있는 빵이 들어 있다. 그것을 하나씩 가져가거라. 매일 하나씩은 계속해서 주기로 하마"라고.
어린이들은 매우 굶주려 있었다. 그래 그들은 주머니를 보기가 무섭게 서로 아우성을 치면서 큰 것을 가지려 힘내기를 하여, 힘센 아이가 큰 것을 차지하고는, 주인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은채 가버렸다.
이 싸움틈에 들지 않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있던 그레첸이라는 소녀는, 조용해지자, 주머니 있는 곳으로가 제일 작은 빵 하나를 집어냈다. 그리고는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주인을 찾아가 뜨거운 감사를 드리고 돌아갔다.
그 다음 날에, 어린이들은 또 모여 왔다. 전번과 한가지로 서로 다투어가며 빵을 가지고 갔다. 그들과 한가지로 다툼 속에 끼지 않은 그레첸은, 다른 애들의 반도 못되는 어젯 것과 같은 빵을 가지고, 역시 감사를 드리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레첸은 그것을 어머니와 함께 나누기 위하여, 다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누는데, 놀랄일이 생겼다. 그 것은 빵 속에 빛나는 50센트 은화가 여섯 개나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너무도 놀라워 그레첸에게, "아무래도 네가 잘못 가져 왔는 모양이다. 이런 돈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다. 곧 가지고 가서 할아버지에게 돌려드려라"고 했다.
그렌첸이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드리려 갔을 때 주인 할아버지는 말했다. "틀림없이 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감사할 줄 아는 착한 네게 상으로 주기 위해 빵 속에 넣고 굽게 한 것이다"라고.
작은 것이라도 감사히 알고, 감사를 잊지 않은 때, 더욱 감사할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유대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명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늘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만족은 감사를 낳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산다면 우리의 삶이 이토록 메마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무 큰 일에만 감사하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 속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쌀 한 톨을 만들려면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뜻의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흘리고 또 전혀 아까워하지도 않는 쌀 한 톨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 쌀을 위해 땀흘린 수많은 손길들을 기억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주님, 저희로 감사에 예민한 사람들 되게 하시옵소서. 감사치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역경 중에 감사하다
미국에 신앙이 매우 돈독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그의 생활이 신앙에서 추호도 어그러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길을 걷다가 뛰어든 자동차에 치어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는 병원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몇 차례의 수술 끝에 다리를 잘라 버리게 되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졌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다리가 없는 병신이 되었으니 그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청년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교회의 목사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교우들이 병 문안을 다녀갔다. 그들은 한결같이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 주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년에게 들려 주는 것이었다. 그 말씀은 로마서 8장 28절에 있는 말씀이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청년은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반발심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 다리는 피둥피둥하게 성한 다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다리가 끊겨져 나가 불구자가 되었는데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청년은 워낙 신앙이 좋은 사람이었으므로 반발심을 억누르며 "아멘!"하고 감사를 드렸다.
청년은 얼마 후 수술의 경과가 매우 좋아서 퇴원을 하게 되었으나 잘려 나간 다리에는 어쩔 수 없이 고무다리를 달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단코 낙심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끝내는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다. 목사가 된 후로, 그는 주님의 복음 사업에 전력을 경주하다가 드디어 아프리카 선교사를 자원하여 선교사로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그는 누구나 가기를 꺼려하는 식인종들이 사는 지역으로 들어갔다. 죽음을 각오한 용단이었다. 그가 식인종들의 부탁에 들어서자 식인종들은 좋은 먹이가 왔다고 기뻐하면서 선교사의 주위에 모여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손에 손에 창을 들고 마악 선교사를 향하여 찌르려는 찰나였다. 선교사는 얼른 자기의 고무 다리를 떼 내어 그들에게 내밀었다. 고무다리를 받아 든 식인종들은 와아 물려 들어 그 고무다리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무지 이빨이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맛도 없는 것이었다. 식인종들은 깜짝 놀라서 신이 자기네들의 고장에 왔다고 떠들어대더니 그 앞에 넙죽이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었다.
선교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 예수와 그 복음을 전하였다. 자기는 결코 신이 아니며 주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구세주라고, 단순한 식인종들은 곧 예수를 믿게 되었고 선교사의 말에 순종하여 그 선교사의 선교사업은 대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가 역경 중에 감사한 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 것이다. (롬8:28;시50:14)
잊지 말아야 할 감사
인류 조상인 처음 사람 아담은 빵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했는지 모른다.
먼저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 그것이 잘 자라게 가꾸어서 거두어들인 후 갈아서 가루로 빻은 후 반죽을 해서 다시 굽는 등 보통 15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빵집에 가서 돈만 내면 먹고 싶은 여러 종류의 빵을 사 먹을 수 있다.
이렇게 15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도록 되어진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맨 처음 단 한 사람의 인간은 자기가 걸칠 옷을 만들기 위하여 대단히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양을 키워 붙잡아서 털을 깎고, 짜서 꿰매는 등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은 양복점에 가서 돈만 내면 마음에 드는 양복을 살 수 있다. 혼자서 해야 할 일을 힘들여 많은 사람이 대신하므로 옷을 입을 수 있음을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감사 주일의 유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종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만큼 잘 알려진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작 행동으로 옮기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까닭은 바로 이 구절에 "범사"라는 말이 전제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몇가지 비결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영적인 원리들 입니다.
1. 살아있음을 감사해 보라.
큰 사고를 당했거나 난치병으로 사경을 헤맸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고. 오늘 나의 생명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기본이 닦여진 사람입니다.
2. 문제가 있는 것을 감사해 보라.
이 세상에서 문제가 없는 곳은 오직 한군데. 무덤뿐입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는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3. 감사할 일이 생겼을 때 즉시 감사해 보라.
시간이 지나면 감사의 마음도 희미해집니다. 우리가 감사를 그때 그때 즉시 표현하는 훈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사소한 일과 작은 일부터 감사해보라.
우리는 큰일, 굉장한 일을 감사하려다 보니 어려움을 당합니다. 작은 일 ,사소한 일을 감사할 줄 모른다면 범사에 감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불행하지 않음에 감사
아메리카의 대 부흥사 무디(Moody, D.L)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바 있다. "찬송을 잘 하는 한 신자가 있었다. 그는 집회 때 마다 간증할 때면 먼저 "하나님을 찬미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 날 밤 그가 집회에 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손가락을 모두 붕대로 감고 있었다. 물어보니 손을 벴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대단히 심하게 베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날 밤에는 간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있었는데, 그러나 그는 변함없이 일어서서 [나는 손을 뱄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손가락을 아주 잃어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이었다. 실로 무슨 일이나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은 때에, 우리들은 더욱 잘못되지 않아 감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감사의 고백
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저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배우자가 미워질 때가 있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 된 보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허탈하고 허무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영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감사를 잊었는가
한 젊은 부부가 카나다의 록키 산맥에 자리잡고 있는 벤프라는 지역으로 이
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철따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
운 절경을 연출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그 절경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나자 그들은 더 이상 감사하지 않았습
니다. 벌써 그 경치에 싫증이 난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만
먹는 것이 싫증났다고 불평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
는 늘 특별한 감사거리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수많은 감사거리가 곁에 있음
에도 말입니다.
“주님, 저희들은 감사하는 것을 쉬 잊어버리고 불평하기를 즐겨합니다. 저
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저희 입술에 감사가 넘치게 도와주시옵소서.”
제일 무서운 죄는 감사 못 하는 죄
1. 감사의 내용을 찾으라 문둥이의 치유와 감사, 우리는 감사를 잃고 있지나 않은지 ? ex) 북 아메리카의 신앙 자유위한 개척과 감사절, 남 아메리카의 황금 위한 이주와 탐욕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2. 감사의 대상을 바로 찾으라 문둥이 열 사람. 치유 후 세상을 향해간 9명, 1명만이 에수님께 감사를. 감사의 대상이 잘못 될 때에 우상숭배를 우리도 범하게 된다. ex)
웃시야 왕의 잘못된 제사 -문둥병이 생겨. 반면에 나아만 장군은 감사의 대상을 바로 찾았다.: 치유 후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마리아의 흙을 가지고 가 깔고서 감사 ex)
헬렌 켈러의 감사의 내용
3. 감사의 표현을 바로 하라 감사 만발은 대인 관계의 성공을 가져온다. 벤허 중에서 "현재의 축복에 감사하는 자만이 과거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
ex)1895년 미국 알라바마 주에 바구미를 통한 모화 밭의 황폐.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대신 땅콩과 커피를 심어 오히려 몇배의 물질 축복받아. 그래서 바구미의 동상을 세워. @ 미국인은 아무리 날이 않좋아도 :"Good morning" @김활란 박사의 묘비: 조그마한 비석에 성경모양을 만들고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4. 감사의 결과 더 큰 축복을 받는다, 성숙한 인간이 된다, 평화와 기쁨을 갖게 된다.
감사의 조건
미국의 어떤 부흥사가 집회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어느 뚱뚱한 흑인
여자가 아이를 다섯이나 데리고 옆에 앉더랍니다.
이 흑인 여자가 아이들과 함께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자기는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이럴 경우는 무슨
감사를 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잠시후 그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고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옆의 이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감사
발이 저리고 힘이 없어도 두 다리로 서서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가족과 둘러 앉아 식사를 할 수 있고 기운을 차릴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출입은 부자유 해도 찾아주는 친구들을 반갑게 만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케 하는 잊혀졌던 들꽃을 보고 감격과 행복에 젖을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찬양하듯 푸른 하늘에 가지를 뻣고 서 있는 나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의 촉감에서 주님을 생각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머리 속에 떠올리면 미소가 나오는 귀한 얼굴들을 감사합니다
눈이 마주치면 말없이 미소가 오가는 반려자를 감사합니다
알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 주님께 달려갈 골방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평안함을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
한국기독교계에 부흥사로 널리 알려진 바 있는 이성봉 목사는 다음과 같은 감사를 한 일이 있다.
"나는 나의 밑천을 영으로 치고 사니까 가난뱅이가 될 것 같으나 도리어 부자가 되었다. 놀라지 말라! 내 자본이 얼마인가 하면 12억 원이다. 이 말은 실없고 허황한 말 같으나 가장 진실한 말이요 사실이다.
왜? 내가 쓰고 있는 이 몸을 물자를 드려서 기른다고 하면 독일 같은 과학이 발달된 나라에서도 2억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 내 몸 하나만 하여도 2억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 내 몸 하나만 하여도 2억원짜리가 되고 또 내가 19세 되던 해에 2억원 짜리 아내를 한 사람 맞았으니 그것만해도 벌써 4억원이 되지 않았는가?
그 다음으로 사랑하는 딸이 사형제니 12억원 재산가가 아닌가? 나는 집에 들어가면서 막대기를 휘둘러도 하나 거칠 것 없지만 그러나 12억원 자본가이다. 그러다가 만일 또 하나님이 데려 가신대도 내게 손해볼 것은 하나도 없다. 왜? 밑져야 본전이니까 나는 이러한 인생관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내 생애는 항상 평안하다"
영국 트렌취 감독의 말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신 모든 은혜를 감사하고 나면, 우리에게 중얼거리거나 원망할 시간이 어디있느냐고 한바 있듯 우리에게 주신 각양 은혜를 생각할 때는 모든 것이 다 감사조건 뿐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16:22)
십자가와 감사
미국의 흑백갈등이 깊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기차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백인이 칼을 던져 흑인을 죽이려 할 때 옆에 있던 백인 목사가 손을 들어 칼을 막아주었다. 칼은 목사의 손에 꼽혔고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싸움은 멈추어졌고 흑인은 목사의 희생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고마움을 느낀 흑인은 일생동안 그 목사의 곁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돕게 되었다. 종종 일에 싫증이 나면 흑인은 불평과 원망을 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목사는 칼맞은 자신의 손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 흑인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는데 그 손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구원한 손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감사해야 한다. 그 십자가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예수님의 희생이었기 때문이다.
고난이 감사인가 고난인가?
밀 알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J씨의 이야기입니다. J씨는 뺑소니 차에 머리를 다쳐서 정신분열증과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J씨를 처음 공동체로 데려 왔을 때 그는 힘이 넘쳐나서 옷장을 부서뜨리고, 문고리를 당겨서 망가뜨려 놓고, 사람들을 발로 차며, 자신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주먹으로 때리는가 하면 양치질 할 땐 칫솔을 질근질근 씹어먹고, 세숫대야를 걷어차고......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J씨의 증세가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J씨를 데리고 정신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신경 안정제를 받아왔습니다. 신경 안정제를 먹으면 난폭한 행동이 수정될 것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약을 3일 동안 먹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지금까지 했던 행동보다 더 난폭해지고 눈빛이 충혈 되고 얼굴에는 분노와 증오심으로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4일 째 되던 날 저는 더 이상 그의 난폭함을 약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힘으로, 약의 힘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 그렇다고 연로하신 부모님들께 황소처럼 힘을 쓰는 그를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고, 데리고 있을 수도 없고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J씨가 왜 그렇게 주기적으로 난폭해질까? 여러 가지를 임상적으로 주시하는 동안 아주 재미있고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이 한 달에 한 두 번 고기를 먹는다거나 기름진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영양가가 있는 음식물을 먹을 때면 예외없이 J씨의 행동이 난폭하게 바뀌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 칼로리 음식, 저 지방 음식을 계속적으로 주면 아주 얌전해졌습니다. 얌전해진 J씨, 힘이 없는 J씨가 안타까워 밥을 많이 주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일 경우 그날은 어김없이 그의 난폭한 행동들이 나타났습니다.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J씨는 뇌의 혈관이 막혀서 피의 순환이 잘 안되면 정신질환 증세가 중해진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간사님에게 욕하고, 세숫대야를 걷어차고,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모든 사람들을 미워하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어떤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다가 음식을 줄이거나 기름진 음식을 며칠 동안 주지 않으면 또 말이 없고 순한 양처럼 수긍하고 감사하는 J씨를 보면서 우리 인생들의 역사, 우리 개인의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J씨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고난만 벗어나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순종을 다짐하고는 고난에서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불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힘이 없어 고기를 주어 먹게 하면 그 고기의 힘 때문에 사람을 괴롭히고, 교만함으로 인하여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과 아픔을 주는 그래서 하나님이 징계하면 그 징계가 가혹하다고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말해 버리는...... 잘되고 건강한 때일수록 형통한 때일수록 사람들은 왜 겸손해지지 못하는 걸까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노라” (시 119편 71절)
주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연단 하십니다. 고난 없이 주의 율례를 알 수 없고 그분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 없이는 진실의 가장자리에 머물며 진리의 깊이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고난 가운데 진주가 만들어지듯 고난 가운데 주의 율례의 참뜻이 영롱하게 밝혀집니다.아, 고난은 인생의 소중한 교사입니다.
▧ 기도: 마음의 생각과 동기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늘 저의 마음과 생각이 경건하며, 매사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악한 자들의 혼란스러운 유혹의 말이나 위세에 마음 상하지 않게 도우시고, 담대한 신앙을 허락하소서.
우리는 교회에 감사하노라..
전 상원의원 샘 넌은 냉전은 "핵의 지옥 불이 아니라 동유럽 교회의 촛불로" 끝났다고 말했다. 언론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동독의 촛불행진은 지구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다. 라이프치히 철야 촛불 행진에 모여든 사람은 처음에는 몇 백 명이던 것이 차츰 천 명, 오천명, 오만명으로 늘어나 급기야 오십만 명 - 거의 도시 인구 전체 - 에 달했다
성니콜라이 교회에서 기도회를 가진 후 평화의 시위 행렬은 찬송가를 부르며 어두운 밤거리를 행진했다.
무장한 경찰과 군인도 그 힘 앞에서는 무력해 보였다.
그 날 밤 동베들린의 비슷한 행진에 백만 명이 가담해서 결국 그 흉물스런 베들린 벽은 총 한방 쏘지 않고도 무너져 내렸다.
라이프치히 시가에 거대한 현수막이 걸렸다
손가락이 잘려서 감사
홍천 양덕원에서 온 박용운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어느 날 고추방아를 찧으려고 방앗간을 갔습니다. 고추방아를 찧는데 거들다가 어떻게 실수를 하여 고추방아를 찧는 기계의 벨트에 손가락이 끼워서 손가락이 잘려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떨어진 그 손가락을 붙잡고 급히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분 앞에 먼저 병원에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분은 팔목이 잘려서 비명을 지르며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중에서도 그 분은 어떻게 하다가 팔목이 잘렸는지를 물어 봤습니다. 그 가족의 말이 방앗간에 고추 방아를 찧으려 갔는데 벨트에 팔목이 끌려 들어가서 순식간에 팔목이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자기와 거의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자기는 손가락만 잘려져 나갔는데 그 분은 팔목이 잘려져 나간 것을 본 것입니다. 그 때에 그 집사님은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손가락만 잘리고 팔목이 잘리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똑 같은 상황이었으나 자기는 손가락이 잘려져 나가 절망을 했었는데 다른 사람을 보니 팔목이 잘려져 나갔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고통 중에 감사
성가 작곡가인 웬델 라브레스는 64세 된 할머니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16년 동안 온 몸에 통증이 있고,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신체의 모든 부분이 마비되었어도, 오른쪽 엄지손가락만은 아직 쓸 수 있다는 엄청난 복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 손은 완전히 굳어 움직일 수 없었지만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는 막대기에 매어 놓은 끝이 두 갈래 난 포크를 사용해 안경을 쓸 수 있었고, 음식을 스스로 먹을 수 있었으며, 빨대를 사용해 차를 마실 수 있었고, 성경 책장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실로 엄청난 노력을 들여 이 엄지손가락 하나만을 사용함으로써 할머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을 위로하러 온 한 방문자에게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나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요.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으니 이제는 나의 구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거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마음껏 느낄 수가 있거든요." 그러자 그 방문자는 의아해 하면서 "때로는 낙심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저를 이 세상에서 지켜주시는 한, 이곳에 누워 만족할 뿐입니다. 또 언제든지 주께서 부르시면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도둑맞았을때도할 감사
영국의 신학자이며, 유명한 성서주석가인 매튜.헨리(Matt-hew Henry 1662-1714)가 한번은 강도에게 자기 돈 지갑을 도둑맞은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감사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첫째, 내가 이번에 도둑맞았으나, 전에는 도둑 맞은 일이 없으니 감사하고, 둘째 도둑이 내 생명은 빼앗지 않았으니 감사하고, 세째, 지갑을 도둑 맞았으니 내 재산이 도둑 맞은 것 아니니 감사하고, 넷째, 내가 도둑 맞았을 뿐이고, 내가 남의 것을 도둑질한 것은 아니니 감사하다"라고. 도둑맞았을 때도 감사할 것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하는 기도
두 천사가 지상에 내려왔다. 그들은 각각 성도들의 기도를 담기 위해 바구니를 가지고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곳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학교이건 교회이건 오막살이건 성이건 가리지 않고 들어갔다. 얼마 안 되어 한 천사의 바구니는 성도의 기도로 가득 차 무거워졌으나 다른 천사의 것은 아직도 비어 있었다. 바구니를 가득 채운 천사는 '이것을 주십시오. 저것을 원합니다'하는 탄원의 기도를 바구니에 받아 담았고, 다른 천사는 감사의 기도를 모았던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이야기 인것 같다.
설거지하는 일이 감사해요
미국에 볼크 돌이라는 여성 저술가가 있었다.
돌 여사는 많은 책과 잡지의 기사를 쓰는 문필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언제나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돌 여사가 더욱 깊이 감사하는 것은 그런 유명한 일에 대해서보다는 자신이 부엌 설거지를 할 수 있는 데 대해서였다.
이는 돌 부인이 일생 중 오랜 세월을 맹인으로 지냈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어려운 수술 후에, 겨우 조금이라도 볼 수 있게 되자 부인은 그만 감격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의 부엌 작은 창문으로 작고 푸른 조각 하늘이 보입니다. 또 비누거품에 나타나는 영롱한 무지개 색깔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아요. 암흑뿐인 긴 세월이 지난 후, 이렇게 집안일을 돌보며, 눈으로 보는 갖가지의 아름다움은 그칠 길 없는 감사의 원천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행사 끝에 치우는 일은 으레 가난한 신자이거나 낮은 보수의 직업을 가진 부인들의 차지이다. 사회적 지위가 좀 있거나 돈 푼이나 있는 소위 배운(?) 여자들은 손에 물 묻히는 일은 애써 피하려 한다.
이에 비하면 돌 여사가 갖는 겸허한 신앙이야말로 모든 여성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궂은 일에 대한 감사를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택시운전사의 감사
서울의 찻길이 자동차의 물결로 홍수를 이루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욱이 출퇴근 시간의 러시아워에는 교통지옥이란 표현들을 흔히 쓴다. 어느 날 택시를 타고 퇴근하던 중 퇴계로 길에 서 있었다. 차선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의 행렬은 심한 체증으로 말미암아 좀처럼 빠져나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오른편의 운전기사는 신경질을 부리며 얼굴을 창 밖으로 내밀더니 누군가를 증오하는 목소리로 소리친다.
“웬 노무 자동차가 이리도 많아서 우리 같은 놈 일당도 못 채우게 하노! 자가용차 반으로 줄여야 해 !”
그런데 우리를 태운 택시 운전기사는 빙긋이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손님, 저는 이러한 때 가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사생활 하면서 언제 따로 시간 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어차피 차는 막힐거고 신경질 낸다고 차가 빨리 빠질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손님이 없으면 기도하고, 손님을 모셨으면 전도도 하지요. 손님, 예수 믿으세요?”
나는 그의 말을 더 듣고자 대답 대신 빙그레 웃음을 보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저는요, 운전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돈 벌면서 전도하고, 어떤 때는 손님들의 대화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요. 그리고 금년에 우리 딸이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예수 믿고 보니 모든 것이 감사한 것뿐이예요.”
여의도의 00교회에 나간다는 그 기사의, 웃음을 머금은 환한 얼굴을 되뇌이면서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의 일에 힘쓰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해본다.
감사를 불평으로 바꾸는 사람들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라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 와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 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다.“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은 “천만에요.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더운물과 찬물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사람의 마음 역시 감사와 불평이 솟아나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면 감사하는 일이 많아지고 불평하면 불평할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돌아와 감사했던 사마리아 한사람처럼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삶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2)
궂은 날씨도 감사한 까닭은…
주일예배 때마다 반드시 날씨에 대한 감사기도를 드리는 목사님이 있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 눈보라가 치고 빙판길이 되어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악천후의 주일을 맞이했다.
겨우 모인 20여명의 성도들이 예배 전에 주고받는 농담.“오늘 예배에는 목사님이 날씨에 대해 감사기도를 하지 않으실 거야” 하지만 그날도 목사님의 기도는 이랬다. “하나님, 오늘과 같은 나쁜 날씨의 주일을 1년에 겨우 한 두 번만 주심을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나쁜 날씨 속에서도 맑은 날들을 생각하며 여전히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는 무엇을 받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은혜를 깨닫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느끼기에 하나님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교대로 주시는 것 같고 때로는 나쁜 일만 계속되는 것 같지만 결국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믿음이 그리스도인에겐 필요하다.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시고 항상 좋은 것을 주신다는 신앙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월)영광을 돌리는 감사
중국 고사에서는 보은조라 하여 까마귀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이는 새끼 까마귀가 자신을 낳고 기른 어미 까마귀를 봉양한다하여 생긴 말이다. 미물인 새도 어미의 은혜에 감사하며 봉양하는데 사람들은 좀처럼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간다.
본문으로 들어가면 병 고침을 받은 열 명 중 한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께 돌아와 엎드려 사례했다고 밝히고 있다(16절). 발아래 엎드린다함은 진실된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의 행위였다. 예수님께서는 감사한 사람에게 육신의 질병만이 아니라 영적인 구원의 큰 은총을 내리셨다(19절). 아홉 명과 이 한 명의 차이점은 감사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으신다.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화) 성숙한 감사
'주님께 감사'라는 복음성가가 있는데 가사를 보면 "날 구원하신 주 감사/모든 것 주심 감사/향기로운 봄철에 감사/외로운 가을날 감사/응답하신 기도 감사/거절하신 것 감사/아픔과 기쁨도 감사"라고 노래한다. 이것은 모든 것에 감사하겠다는 고백의 찬양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아무 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라는 고백을 한다. 특히 본문 17절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식을 의미하는데 이런 양식들 즉 일용할 양식이 없다고 할지라도 여호와를 향한 구원의 소망만은 버리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얻거나 받을 때만이 감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구원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수) 나눔의 감사
몇 년 전 어느 신문에 50대의 한 노숙자가 노숙자 쉼터에서 생활하다 공공근로에 참여하면서 모은 돈으로 자신을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 준 노숙자 쉼터에 "제가 반환하는 돈으로 또 다른 실직 노숙자가 구제 받을 수 있다면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라는 감사의 편지와 함께 약간의 돈을 보내었던 글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본문은 나눔이 있는 감사예배를 보여준다.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신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눔으로 즐거워했다(11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날마다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감사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목) 범사에 감사
어느 시골 동네에 가난하고 늙은 한 집사가 살았다. 주일 아침에 헌금 대신 동태 다섯 마리를 드리려고 머리에 이고 가는 도중에 강도에게 각목으로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믿지 않는 자녀들이 병원으로 달려와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며칠 후 그 어머니는 깨어나자마자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려고 가져갔던 동태 다섯 마리가 제 대신 각목을 맞아 주었기에 제 머리가 부서지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도했다. '범사에'라는 말은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감사할 조건이 있음을 말한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요, 그것이 이미 또 하나의 감사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금) 변화시키는 감사
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님 집에 어느 날 강도가 들어와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여보시오 돈을 가져가면서 고맙다는 말이나 하고 가져가야 하지 않소"하면서 순순히 돈을 내주었다. 강도는 "그래 고맙다"고 하면서 가버렸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강도가 붙들려 왔다. 경찰이 "이 사람이 방 선생님 돈을 빼앗았다지요?"하고 묻자 "아니요 나는 이 사람에게 돈을 뺏긴 일이 없어요"하면서 강도에게 "이 사람아! 돈을 받아가면서 고맙다고 하지 않았소?"라고 했다. 경찰로부터 풀려난 강도는 너무나 고맙고 감격하여 그 후 방 선생님 댁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본문 8절을 보면 예수님을 영접하여 자기 집으로 모신 삭개오는 예수께서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지만 감사하여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고 재산을 포기하는 결단을 했다. 주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서 의지적인 삶의 결단을 해야한다.
(토) 여호와께 감사
신앙심이 돈독한 어떤 성주가 식사를 하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신하들의 자세를 고치기로 마음먹고 한 거지를 식탁에 초청했다. 거지는 평생 처음 먹어 보는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성주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영광도 누렸지만 식사 후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나가 버렸다. 이 모습을 본 신하 중의 한 명이 "저런 은혜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구"라고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광경을 본 성주는 "그대들도 역시 날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있잖소"라고 일침을 가했다.
본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로 시작한다. 감사해야 할 이유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날마다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날마다, 어디서나 여호와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금주의 기도
인자와 긍휼로 지켜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모든 은혜를 감사로 받아들이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특별히 이 감사의 계절에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게 하옵시고 범사에 감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내 가족에게 ‘사랑해요’라고 감사의 말을 전하자
서른 한 살의 한 여성이 최근 인터넷에 ‘어느 말기 암 환자의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글을 올렸다. 남편과 다섯 살 된 아들을
둔 여인은 지금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다. 그녀는 하루를 일생처럼 여기며 인터넷에 애절한 사연을 올리고 있다. 이 여인 의 글은 이 시대를 사는 가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 간절한 소원은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 때까지만 사는 것입니다. 아들이 제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요….지금
은 정을 떼기 위해 아들에게 일부러 차갑게 대합니다. 아들과 헤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한없이 눈물이 나요”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세계평화나 인류구원과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녀, 내 부모가 바로 최고의 보석이다. 오늘, 내 가족에게 ‘사랑해요’라고 감사의 말을 전하자. 정말 소중한 것은 항상 내 곁에 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화인데, 독일에서 혀 암에 걸려 혀를 잘라야만 하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혀가 잘리기 전에 최후로 한마디를 하라고 했습니다.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그는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주위에 둘러 있던 사람들도 과연마지막 한마디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누구의 이름을 부를 것인지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는 떨리는 입술로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살전 3:9 )
감격스런 감사
이런 이야기가 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 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는 표현을 해야 한다.
어느 교회에 성도 하나가 자기의 독자 아들이 죽은 것을 감사하는데 "내 아들이 죄 안 짓고 깨끗하게 신앙 생활하다 주님 품에 갔으니 감사하고, 내 마음을 아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하고, 이제는 하늘나라를 향한 마음이 더욱 강렬해졌으니 감사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 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라고 하였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감사인가?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에서만 생기는 것이다.
감사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명화 가운데 "은혜"라는 80이 넘은 듯한 백발의 노인이 성경책과 돋보기 안경, 그리고 한 덩어리 빵과 콩 죽한 그릇을 앞에 놓고 손을 모아 정성스럽게 기도 드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 있다.
이와 비슷한 일본의 명화 가운데 북해도의 한 과부와 서 너 명의 자녀들이 식탁에 앉아 기도하는 광경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 이는 실제로 있었던 것들을 화폭에 옮긴 것입니다.
그 기도는 가난하고 궁핍한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므로 드리는 아름다운 기도임이 분명할 것이다
병을 치료하는 감사의 철학
"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씨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런 일본이 현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씨는 그에게 이런 처방을 내렸다. "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 줄 것입니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감 두 개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 때부터 굳었던 몸이 풀리고 질병에서 벗어났다.
적 용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이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감사'가 풍성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많이 들었지만 막상 감사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우리는 그만큼 감사한다는 말이 익숙지 못할 만큼 감사에 무딘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에게 감사는 기본적인 신앙고백이다. 게다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사할 것을 명하고 계신다. 감사는 믿는 자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감사하는 마음
1860년 9월 어느 날 미국 미시간 호수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고요한 새벽의 침묵을 깨뜨리고 있었다. 4백여 명을 태운 여객선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 대형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누가 좀 도와줘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그 근처 대학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스펜서는 소란스러움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벌떡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던 그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호수로 달려나갔다.
"살려주세요."
여기저기서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호수는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그는 용감하게 호수로 뛰어들어 열 일곱 명의 귀중한 목숨을 구한 뒤 온몸에 힘이 빠져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 날 너무 무리한 탓에 그는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누운 지 7년 뒤 그만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한 신문사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물었다.
"그 날 당신이 구조해 준 열 일곱 명의 사람들과 지금도 만나십니까 ?"
창백한 얼굴의 스펜서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그는 곧 얼굴에 가볍게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 열 일곱 사람 중에서 내게 감사를 표시한 사람은 한 소녀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녀는 지금까지 7년 동안 내게 크리스마스 때마다 감사의 카드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아름다운 마음씨에 위로 받으며 해마다 기쁨으로 기다리고 지냈습니다. 나머지 열 여섯 사람에 대한 원망도 잊은 채..."
마음
영국 트렌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꼭 같은 은혜를 받은 자 중에도 감사하는 자는 실로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눅 17:11-19) 불평 원망은 쉽고 감사란 어려운 것이다. (민 14:1-25).
감사격언 모음
성령 충만이 감사 충만(토리박사)
감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는 자는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자이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나듯이 모든 일에 감사가 들어가면 형통합니다. 아무리 주어도 감사할 둘 모르는 사람은 그가 개인주의자인 까닭이다. 환난과 슬픔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으로 변화시킵니다(크리소스톰)
감사는 여러분의 축복에 자물쇠를 채우는 비결이다(조용기)
감사는 하나남께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의 행위이다.(손기태)
감사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인생의 형별은 감사가 없는 것이다(내촌)
참 성도는 모두 감사로 인생을 승리한 자들이다(손기태)
감사는 성령 충만의 증거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제사 행위요 천국시민의 생활 특징이다.
감사치 않는 자녀를 두는 것은 독사의 이빨보다 더 날카로운 찌르는 가시이다(섹스피어)
더욱 많은 것으로 감사하면
스펄젼 목사는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고 말했다.
소경 웰리암 문은 자기와 같은 소경들을 위하여 점자를 발명하고 오백여 방언을 이용하여 수백만의 소경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는 소경이 되어 갖게 된 재능에 대해 당신께 감사합니다. 나로 하여금 그 재능을 투자하게 하사 주님께서 오실 때에 소유물의 높은 이자까지 붙여서 받을 수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감사의 편지를 써보자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4).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 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 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9-10).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편지를 써보자.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셨다. 그리고 계속 용서하신다.
사랑하는 하나님 !...............
샘솟는 감사의 원리
스쿼시라는 운동이 현대인들에게 점점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혼자도 할 수 있는 운동이고 아주 격렬해서 짧은 시간을 해도 많은 땀을 뺄 수 있을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잘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쿼시는 벽에 공을 쳐서 주고받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 공은 천천히 치면 천천히 돌아오고 세게 치면 빠르게 돌아온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때문이다.
감사의 원리가 바로 그런 것이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새로운 감사의 조건이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감사를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더 새롭고 더 큰 감사를 할 수 있다. 감사를 계속하면 습관이 되며 이 습관은 계속해서 사람을 더욱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다. 원망도 마찬가지다. 그것 역시 하면 할수록 새로운 원망의 조건이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불평을 잘하는 사람은 더 새로운 불평을 하게 되고 반드시 더 큰 불평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습관적인 불평은 더욱더 불행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고야 만다.
이 세상에는 많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를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늘 원망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것을 본다. 광야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보라. 하나님의 그 큰 은혜 안에 살면서도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살다보면 우리의 삶속에서도 그런 불평하는 모습이 종종 나타날 때가 있다. 늘 감사하면서 살리라고 결심한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에게서도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망각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에 불평한다.
지난날 그토록 큰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받은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우리는 현재 누리는 은혜까지도 잊을 때가 많다. 이유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미래에 베푸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어련히 알아서 인도하실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에 대해 바로 그 망각 때문에 불평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불평을 극복하고 감사를 회복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망각을 청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의 조건을 깊이 찾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의 조건이 많은가. 아직도 누리고 있는 생명, 건강, 사랑하는 가족들, 일용할 양식 등…. 언제나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를 잘 하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성도이고 하늘의 축복을 끌어올 수 있는 사람이다.
에디슨의 감사
토머스 에디슨은 평생 2000여 개의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참 대단한 연구실적이다. 그래서 에디슨은 지금까지 발명왕으로 통한다. 그런데 에디슨은 천재가 아니고 어렸을 때는 저능아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젊어서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다. 환경으로 보면 최악의 악조건이다. 그런데 그는 말년에 생을 회고하면서 이 점을 늘 하늘에 감사했다고 밝혔다. 연구실에 들어가면 잡음이 들리지 않아 연구에 몰두하게 돼 연구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내 귀를 들리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오늘 너무 많은 것이 주어져서 감사하지 못 하는 이 시대를 생각하게 한다. 이번 주간은 감사절 주간이다.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고백해보자.
감사할 이유
본문: 시편 100: 1-5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36절)
천안 호두과자 집 심복순 권사님이 지은 책 ‘다윗 왕보다 행복해 지려면’에는 크리넥스 티슈 상자 금고 이야기가 있습니다.권사님은 쇠로 만든 금고를 사지 않고 다 쓰고 빈 티슈상자를 금고대용으로 쓴답니다. 요즘의 것은 상자 포장의 그림이 아름답고 폐품활용도 되며, 도둑도 가져가지 않아 좋다는 짧은 얘기입니다. 티슈 상자처럼 겉으론 허술하지만 실속 있고 감사로 알찬 성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밝고 아름다운 추수감사절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왜 추수감사절을 지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3절).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는 그의 것입니다.“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이 한 구절에서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배웁니다. 창조하신 하나님, 조성하신 하나님, 구속하신 하나님, 나를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서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3절)이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 같이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자는 양을 지켜줍니다. 양의 필요를 압니다. 양이 아플 때 보살펴 줍니다. 양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목자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선하고 인자하시며 성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5절).인간은 누구나 한번쯤 선할 수 있습니다. 한번쯤은 인자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성실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그 성실하심은 영원합니다. “영원하고 대대에 미치리로다” (5절) 이것이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어제나 오늘, 그리고 내일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세월이 흘러가면 달라지나 하나님은 변하실 리가 없습니다.그러므로 영원히 변치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이 마땅합니다.
* 기도: 추수할 수 있는 기쁨, 감사할 수 있는 기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감사는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주어진 환경을 감사하는 사람보다 환경을 비판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 줄리어스 시저가 큰 잔치를 열어 많은 신하들을 초청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돌변하여 비바람이 몰아치자 시중을 들던 신하들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시저는 그 신하들에게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도록 명령했습니다. 잠시 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자신들이 하늘을 향해 쏘았던 화살이 되돌아와 상처를 입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원망과 불평은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사막처럼 메마르고 황폐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 보는 사람까지도 괴롭게 만듭니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 보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어 우리 주위의 환경도 더 좋게 만듭니다.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세상의 삶을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건이나 사물을 볼 때마다 무슨 비판 왕국에서 온 사람처럼 신랄하게 비판만 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 사람처럼 다른 사람을 비판만 하는 자는 결국 자신이 하는 그 비판으로 도리어 자신이 비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우리는 남자로 태어날 것인가, 여자로 태어날 것인가 생각하며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의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내 주위의 모든 환경은 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모든 환경에 대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배어 있을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모를 원망하거나 불평한다는 것은 축복의 우산을 스스로 버리는 꼴이 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자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온유함과 겸손함을 늘 풍길 것입니다. 자신의 환경에 대해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은 아직도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일 것입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청각 장애자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는 소년 시절에 기차 안에서 신문을 팔면서 틈이 나는 대로 열차 한구석에서 실험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실험을 하다가 기차의 진동으로 화학약품이 떨어져 불이 나서 소동이 일어나자 격분한 승무원이 에디슨을 기차에서 밀어 떨어뜨렸는데 이때의 충격으로 고막이 파열되었다고 합니다. 훗날 에디슨에게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실험과 연구에 불편함이 없었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나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실에 대해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감사는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비록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으며 감사한다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아는 오늘 본문의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부모님의 사랑을 온통 다 받고 성장하다가 하루아침에 종이 되어 외국으로 팔려간 신세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어려운 환경이라면 그래도 잘 버틸 수 있는데, 잘 살다가 갑자기 환경이 바꾸면 견디기 더 어려운 법입니다. 요셉의 상황이 그러했습니다. 갑자기 변한 자신의 환경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그때 요셉의 나이는 성숙한 40대가 아니라 17세 청소년기였음을 기억해 보십시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십대의 나이에 강제 가출을 당하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 생활을 할 때 얼마나 고독했겠습니까? 보고 싶은 부모님, 미운 형들, 타지에서의 문화 충격, 노예 생활…. 거기에다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었던 환경은 또한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하루 이틀도 아닌 수년간의 감옥 생활을 요셉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요?
사람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해하기 마련입니다. 감옥 생활하는 요셉의 미래는 그야말로 어두움뿐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인 환경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오히려 감사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모든 것을 선으로 바꿔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꿋꿋하게 살아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자신을 애굽에 팔았던 형들에게 요셉이 말하는 장면입니다.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다같이 오늘 본문을 읽겠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 45:4-8)
이렇게 요셉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크게 사용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도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감사로 인내하면 더 좋은 감사의 조건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원망하고 불평할 때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하늘을 향해 쏟아 부은 그 원망과 불평은 줄리어스 시저의 신하들의 화살처럼 자신들에게 오히려 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조건 속에서도 원망과 불평 없이 감사했던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신뿐 아니라 자기 민족, 아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자신이 처한 환경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손 가정이라 할지라도 혹은 몸이 다소 불편하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감사로 받아들이지 않고 부모를 원망하고 자기 자신을 학대한다면 결코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어떤 육체적 질병 속에서, 혹은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인내하며 살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처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칼란 지브란의 『방랑자』란 책에 보면 우리가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떤 조개가 친구 조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 난 몸 속이 많이 아파. 이상한 물건이 내 몸속에 있어서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 조개는 기세가 당당하여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난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아. 난 몸 속이나 몸밖이나 모두 건강해.” 바로 그때 예쁜 게가 지나가다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쁜 게는 건강을 자랑하는 조개에게 말하기를 “그래, 너는 건강하고 완전하지. 하지만 그뿐이잖니. 네 옆에 있는 조개는 지금은 고통을 당하지만 그 속에 굉장히 아름다운 진주를 품고 있는 거란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바다에 비교하곤 합니다. 파도가 없는 바다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바다에 파도가 없다면 그 물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더럽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는 고통, 실수, 아픔들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고귀한 인격과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다이아몬드나 황금 문이 아니라 ‘진주 문’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고통 속에 생기는 진주,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고 통과하는 진주 문을 바라보세요.
한창 공부해야 할 청소년 시기에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무릎을 꿇고 좌절하고 만다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 환경의 현실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하겠습니까? 내 주위와 모든 환경을 받아들이고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항로에 순풍을 몰아오는 비결입니다. 감사하는 이에게는 계속 감사의 조건이 오고, 불평하는 이에게는 계속 불평의 요소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향하신 계획을 지금은 잘 알 수 없지만. 여러분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사로 받아들인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요셉과 같은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자, 이제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간직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언젠가 우리를 진주와 같이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불행한 조건 속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다면, 진흙 속에 장미가 피어나듯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감사의 조건들이 피어오를 것입니다.
온전한 감사 생활
옛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받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태산 같은 은혜도 잊어버리고 조그마한 어려움이 생겨도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때가 많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 광야 생활 중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유월절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불평하였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건망증이 너무 심하다. 크리스천의 삶은 순간순간 감사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발레리 엔더슨은 “감사는 결코 졸업이 없는 과정이다”라고 했다. 어떤 나병환자가 있었다. 그의 병이 점점 심해져서 코와 손가락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고 썩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이렇게 신앙고백했다. “하나님 내가 나병으로 썩어져 죽는다 할지라도 죽는 순간까지 나의 성대만은 상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이 성대를 가지고 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리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이고, 차원 높은 감사 생활인가? 감사는 영적 생활의 윤활유이다. 본 회퍼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인가 비기독교인가의 구별은 그 사람이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불평하느냐가 좌우되는 것이다.
역경에서도 감사
신앙 인은 좋은 일이 있고 범사가 잘 될 때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잘 안되고 힘들 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감사하라, 찬양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3장의 말씀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와 상당히 거리가 느껴지는 그런 말씀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사람은 고독하게 되면 될수록 자기를 부르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린다고 했습니다.
역경을 극복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더 확고하게 해주고 지혜롭게 해줍니다. 역경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은 사람의 인격을 정화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윤리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건강도 중요하고 지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격은 더 중요합니다. 인격이 무엇입니까? 풍부한 인간미, 신의, 온유, 겸손, 정직, 책임감 등입니다.
이와 같은 품성은 순탄한 환경보다는 역경에서 더 연마됩니다. 아브라함의 인격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 가나안까지 힘들고 고생스러운 나그네 생활 속에서 연마됐습니다. 보석도 원석을 갈고 다듬어서 만들고 필요한 가구도 원목을 베어다가 자르고 다듬어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온전한 신앙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애굽 땅에서 파란만장한 역경을 겪으며 하나님께서 들어쓰시는 신앙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대개 악기에 쓰이는 목재는 밖에 버려져서 눈비를 맞고 추위와 더위 속에서 수축작용이 반복되는 가운데 좋은 자재가 됩니다. 사람은 역경에서 온전한 신앙인으로 성장합니다.
역경은 우리의 신앙을 온전하게 합니다. 역경은 사랑의 견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속에서 당하는 역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질책으로 알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의 사랑의 견책으로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불평? 불만하고 원망하고 거역하고 찌푸리고 살아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혹시나 모든 것이 잘 안되고 힘들더라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몸으로 감사하고 물질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와 새로운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참 감사합니다
주님, 나는 당신에게 출세의 길을 위해 힘을 원했으나 당신은 제게 순종을 배우라고 나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 건강을 청했으나 당신은 보다 큰 선을 행하게 하시려고 병고를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 부귀를 청했으나 당신은 내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만인이 우러러 존경하는 자가 되고 싶어 명예를 청했으나 당신은 나를 비참하게 만드시어 당신만을 필요로 하게 해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홀로 있기가 외로워 우정을 청했으나 당신은 세계의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당신에게 내 삶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청했으나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 삶의 길을 주셨습니다. 비록 내가 당신께 청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하였으나 당신이 나에게 바라시던 그 모든 것을 주셨사오니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율법에 규정된 40대의 채찍에서 한 대 감한 39대의 채찍을 유대인에게서 맞았고, 한 대만 맞고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로마의 태장을 세 번 맞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환경에 의해 쉽게 좌절당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좌절과 불평은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런 상황에서 “주님, 참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휘파람 소리 / 서형선
* 기도: 주님, 나는 자신의 행복과 편안함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위해 모욕과 수치를 당하시고 생명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기억할 때 내 안에 일어나는 감사와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며 영혼들을 세우게 하소서.
생명에 대한 감사
내 심장은 하루에 자그만치 10만3689번을 뛴다. 몸속의 혈액은 놀랍게도 하루에 1억6800만 마일을 달린다. 그리고 나는 하루에 숨을 몇 번이나 쉬는가 하면 무려 2만3040번을 쉰다. 내가 무슨 수고를 해서 심장이 그렇게 많이 잘 뛰어주고 내가 달리라고 해서 혈액이 그 먼 거리를 달려주는 것이 아니다. 또 내가 아무런 수고를 안해도 나의 폐는 그렇게 여러 번 호흡을 해준다. 이 모든 일에 약간의 차질만 와도 나의 생명에는 금방 이상이 오는 것인데 내가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고 생각조차 안해도 그처럼 여러 번 심장이 뛰어주고 폐가 호흡을 해주니 정말 내 생명을 지으시고 지탱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뿐이다. 이뿐인가. 당신은 하루에 두뇌 세포를 자그 만치 700만개를 사용하며 사는 것이다. 창조주 우리 하나님의 신비여!
감사의 조건 3가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미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활조건은 72가지가 있었고 그 중에 절대 필요한 것이 18가지가 있었는데 오늘에 와서는 그것이 496가지로 늘었고 그 중에서 절대 필요한 것은 28가지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풍부한 생활을 향락할 줄 알면서도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는 감사할 줄 모름을 회개해야 한다.
파아핀이라는 사람은 세 가지만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첫째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몸의 건강, 셋째는 소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의 다음 명언을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①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 ②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③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감사하고 있는가?
감사는 기쁨이다.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찬양 시인 송명희 님은 뇌성마비로 인해 부자유스러운 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몇 일간 온몸을 움직여가며 고통에 겨워 눈물과 땀을 흘려야했다 그는 자신의 몸이 너무도 추하고 고통스러워 주님께 원망을 했다 "주님, 나의 몸을 이렇게 할 것이었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지 왜 생명을 주시어 이처럼 고통을 당하게 하시나이까?'그는 고통 속에서 원망과 좌절로 생활하는 가운데 주님의 사랑스런 음성을 들었다. '명희야! 네 몸이 온전했더라면 네가 나를 알겠느냐?'그는 그때에 비로소 주님의 커다란 사랑을 깨닫게 되었고 그 사랑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주님의 사랑에 겨워 수많은 감동의 시를 작시하였다. 우리들이 잘 알고있는 '그 이름' '얼마나 아프실까 너의 쓴잔을'이 모든 시가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순수한 고백이었다. 그의 생활은 곧 기쁨으로 변하였다. 온 세상을 주님의 세상으로 여기며 기쁨 속에서 강사의 생활을 하였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감사하라! 감사는 찬양이 절로 나오게 하며 기쁨이 온 가슴에 가득 차게 하고 생활을 변화시키며 주님을 더욱 사모하게 할 것이다.
소경의 감사
소경의 감사 찬송가만 8,000여 편을 쓴 '패니 크로스비'여사(1820-1915년)는 과히 우리가 존경할 만한 분이다. 그는 생후 6주만에 소경이 되었는데 평생에 한번도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다. 어느 목사님이 그녀를 동정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다른 축복은 넘치도록 주시면서 어째서 당신의 눈을 볼 수 있도록 하지 않으시는지 유감입니다"라고 말하자 여사는 "내가 태어난 자리에서 하나님께 한 가지를 요청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소경으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것이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놀라서 이유를 묻는 목사님에게 "내가 천당에 가서 뵈올 예수님의 얼굴이 내가 보는 첫 얼굴이 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때로 환경으로 인해 감사를 잃을 때가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를 아는 사람들은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그 환경 가운데서 주를 높이며 그에게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범사에 감사
화란의 선교사 '코리 텐 붐'과 그의 언니 '베스티가' 리벤스부룩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던 날 코리는 수용소 막사의 더러움과 벼룩이 뛰어 다니는 침상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때 베스티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을 가지고 동생을 꾸짖었다. 얼마 후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무자비한 간수들도 막사 안에서 예배를 드려도 아무 상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의아해 하는 코리에게 한 동료가 '저 간수들은 막사가 너무 더럽고 벼룩까지 들끓기 때문에 벼룩이 옮을까 두려워서 막사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리는 감격하여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때로 우리가 만나는 어려운 환경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그것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그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 가운데서의 감사
'죤 웨슬레'가 여섯 살이었을 때, 집에 불이 나서 가재 도구가 몽땅 소실된 적이 있었다. 그때 죤을 제외한 모든 자녀들은 구출되었지만 지붕이 내려앉기 바로 직전 울음소리가 들릴 때까지도 잠자고 있던 그를 미처 대피시키는 못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이미 늦었다고 단정했지만 죤의 아버지는 단숨에 계단을 올라가 연기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아 밖으로 내던졌다. 끝내 여덟 아이가 다 살아나자 조금 후 지붕이 내려앉았다. 그때 아버지가 외쳤다. '여러분들, 우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집이 불탔을지라도 난 아직 부유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덟 아이를 다시 주셨거든요' 이 일은 '웨슬레'의 마음에 잊혀지지 않는 신앙의 기초가 되었다.
기도와 감사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체코의 유명한 작곡가인 안톤 드보르자크는 그의 교향곡 신세계 9번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많은 곡을 작곡했는데 그의 곡들의 공통점은 작곡을 끝내고 그 밑에 “Thanks be to God” 즉 “하나님께 감사”란 글을 써놓은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는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철로의 두 레일과 같으며 또한 마차의 두 바퀴와 같은 것입니다. 새가 한 쪽 날개만 가지고는 날 수 없고 두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는 것처럼,또한 레일이 둘이 있어야 기차가 굴러갈 수가 있고 마차의 바퀴가 둘이 있어야 달려갈 수 있는 것처럼 기도는 감사와 함께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늘 감사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의 아이러니
감사란 참 아이러니컬한 것이다.
정말 감사해야 될 것 같은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거의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감사하면서 살거든.
* 감사할 만한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일에 조차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 행복의 근원입니다.
오직, 감사뿐 !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
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 103:2.
16년 동안 병상에 누워 살아온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늘 통증 가운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 입에서는 늘 감사하는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엄지손가락 하나를 쓸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손가락으로 성경책의 책장도 넘길 수 있었고, 빨대를 이용해 차도 마실 수 있었으며, 음식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할머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 그 때마다 할머니는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으며, 낙심될 일도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의 말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 하실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 기도: "주님, 저희 마음의 주인이 되어 주시사 저희로 하여금 주님으로 인해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
* 금언: 하나님께 감사하면 무거운 짐도 축복으로 변한다.
감사하는 마음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배 한 척이 침몰된 일이 있었다.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호수에 빠져 죽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북서부 대학의 한 학생이었던 수영 선수 한 사람이 사력을 다하여 23명을 구출해 낸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R.A. 토레이 박사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토레이 박사는 그의 설교 가운데서 오래 전 미시간 호수에서 있었던 배의 침몰사고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그때 젊은 대학생이었던 수영 선수의 용기와 인간애를 극구 칭찬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그때의 그 젊은이가 노인이 된 채 앉아서 그 설교를 듣고 있었다. 설교가 끝난 후 토레이 박사는 그 장본인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때 사건을 통하여 가장 인상깊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노인은 낮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단 한 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세 가지 감사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지구촌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활조건이 72가지가 있었고 절대 필요한 것은 18가지가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필요한 것은 5백가지이며 절대 필요한 것은 50가지라고 사회학자들은 분석한다. 필요한 것과 절대 필요한 것을 더 많이 누리며 사는 현대인들이 과연 60년 전보다 더 행복할까. 오히려 감사할 줄 모르며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1690년 증기기관을 발명해 낸 프랑스 물리학자 파핀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 가지로 인해 늘 감사한다.
첫째는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몸의 건강이요,
셋째는 영원한 삶을 향한 소망이다."
작은 것부터 감사하는 삶
존 뉴턴의 전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그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입으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부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자기가 이처럼 심한 고생을 당했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술을 마시고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옷이 나무에 걸려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패륜아를 살려주시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런 일을 겪을수록 더욱더 난폭하고 악해지려고 애썼습니다.
그 후 존 뉴턴은 노예선을 타려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그 배를 놓쳤습니다. 얼마 후 그 배가 폭풍으로 침몰하여 단 네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이 말할 수 없이 악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신가?” 라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존 뉴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살려고 하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사랑이 이겼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참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모두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조그만 은혜에도 크게 감사하며 온전히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신앙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번 은혜의 역사를 베푸시는데도 여전히 자기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패역 한 자입니다.
▧ 기도: 주님, 주님의 넓은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원합니다. 저의 마음의 초점을 주님께 고정시키므로 사건과 사람을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사탄의 미혹을 물리치게 하시며, 사랑이신 주님의 관점에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감사’의 입술
본문 : 에베소서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미국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본질 밑바닥에는 다른 사람에게 감사를 받을 경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나는 인자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 여름 미국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다가 만난 사업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중 어느 한 명이 다른 직원들에 비해 업무 성과가 탁월했습니다. 그 직원은 늘 다른 직원들에 비해서 생산성이 높았고 그래서 보너스도 좀더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언제가 한번 그 사업가는 그 직원에게 급여 봉투를 주면서 그 동안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편지를 읽고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준 사장의 배려에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회사 일에 혼신을 바쳐 더욱더 충실한 결과 이제는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더 많은 보너스와 보상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업가의 작은 표현 하나가 한 사람의 가능성을 살려주고 나아가 회사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그리 요란하고 대단한 노력을 들이는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한 일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상대방이 성의를 다해 자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해올 때 그것을 짜증스럽게 대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직장이나 공동체, 가정의 분위기를 바꾸고 더 화목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인자는 서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으십니까?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서로에게 감사하는 태도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가족은 가장 편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편안함이 서로에 대한 무시로 변질되는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아이들을 무시하고 부부가 서로를 무시하는 말을 하며 자녀들이 부모님들을 무시한다면 그 가정이 어떻게 화목한 가정이고 분위기가 좋은 가정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가정의 화목한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상대에게 늘 감사’ 하는 것입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입술을 거룩하게 하소서. 내 입술에 감사의 말을 품게 하시고 다른 이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세계적인 극적가인 버나드 쇼는 모든 책이 다 없어진다고 해도 꼭 하나 갖고 싶은 책이 있는데 그것은‘욥기’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욥이 곤욕과 질고를 겪으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 데서 욥의 위대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참된 지자(知者)는 모든 교우에게 배우는 사람이요, 참된 강자(强者)는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이요, 참된 부자(富者)는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존슨은 “감사는 위대한 교양의 결실”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사람이 감사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영혼이 병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감사의 경험과 감사의 표현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조건이 됩니다.
더욱이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귀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음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다 받아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감사하는 데서 자라가고 완성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신앙인의 영성을 가늠하는 최고의 기준은 감사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알렉산더 화이트 목사님은 항상 감사하는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주일 설교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다행히도 목사님이 계시는 곳은 날씨가 항상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입니다. 한 성도는 이런 의문을 품었습니다.
"오늘같이 날씨가 지독하게 나쁜 날 목사님은 과연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그러나 화이트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같은 날씨를 매일 같이 주시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감사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목회를 하는데 한 집에서 살았다. 하루는 아들이 들어오면서 조금 이상한 듯 하면서도 상기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들: 아버지, 오늘 저에게 참 감사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버지: 무슨 일이 생겼느냐?
아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정말, 정말 감사해요.
아버지: 그래? 어서 말해 보아라.
아들: 오늘 교회에서 집으로 오다가 차가 일곱 바퀴나 굴렀어요. 그런데 상처 하나 없이 이렇게 말짱해요.
아버지: 나는 너보다 훨씬 더 감사하다.
아들: 아버지는 여덟 바퀴 굴렀나요?
아버지: 아니다. 나는 한 바퀴도 안 굴렀다.
병상에서의 감사
춘원의 역작 <사랑>의 주인공 안빈 박사의 모델이었던 장기려 박사, 70년대 후반으로 기억되며 내 귀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간곡한 재혼 권유를 어렵게 물리치고 친구 사무실을 나온 그는 2층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그만 한쪽 아킬레스건이 끊기는 불상사를 당했습니다.
그는 즉시 백병원에 입원했고 병상에서 세 가지 감사를 느꼈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을 이겨낸 것을 마치 자기가 선하여 된 것으로 생각했던 불경죄를 깨닫게 되어 감사.
둘째,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많은 친지와 제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됨을 감사.
셋째,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들을 병상에서 조용히 읽을 수 있게 됨을 감사.
그는 기적처럼 아킬레스건이 잘 이어져서 그후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테니스까지 칠 수 있었지요. 나는 그의 병상에서의 감사를 기억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감사를 되찾곤 합니다.
감사와 불평
영국 크랜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만 한 오막집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빈손일때 더 감사를…
얼마 전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란 제목의 책을 봤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행복에 이르고 성공에 이르는 바른 지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과 같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바른 인식, 곧 바른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화로 알려주고자 하는 책입니다. 이 우화에서 치즈는 인간이 도달하는 행복과 성공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행복도 성공도 우리 앞에 고정된 채 멈추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그 변화에 바르게 대처하여 나가는 사람은 승리자가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실패자 내지 낙오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톨스토이의 ‘행복론’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행복의 조건을 돈으로 사려고 하고 좋은 집에서 얻으려고 하지만 그것들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조건이 잘 갖춰졌다 하더라도 사람이 그 마음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행복이 아닙니다. 따라서 행복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운을 행복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행복은 인간들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선이지만 행운은 운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요행이요, 우연히 굴러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행운처럼 우연히 얻어지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것에서 창작하고 힘쓰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보람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멀리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가까이 에서 내가 만들어가야 할 대상입니다.
행복을 만드는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신앙적인 면을 말씀드립니다. 먼저 감사입니다. 만사를 감사로 이어가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결과만 놓고 마음에 들면 감사하고 불만족스러우면 감사해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항상 무슨 일에든지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을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라고 하였습니다. 없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지면 어떤 경우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베푸는 것이 행복입니다. 받는 것으로 행복하려 할 게 아니라 주는 마음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사회 어느 곳에서나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보람으로 삼을 때 행복한 삶이 됩니다. 예수님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만드는 보람이 행복입니다.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하면 할수록 축복으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루의 감사
위장을 떼어내고도 감사하는 분, 우리 교회에서 자라서 참 좋은 믿음으로 활동하며 수고하다 목사의 아내로 출가한 분이 있다.
그분이 수술을 하였다 기에 병실을 찾았더니 두 가지 주사가 꽂혀 있는 채 미소 지은 얼굴로 맞이한다. 그 날은 그저 위장을 일부 잘라냈겠지 하고 위로하고 기도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 남편 목사에게 들었더니 암이 심해 위장 전체를 들어내고 식도와 장을 직접 연결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 원목이 수술 전에 상담하고 기도로 준비하며 진행 중이라고 한다.
아 ! 놀랍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 사모는 그렇게도 침착하고 태연했을까 !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수술하지 않으면 곧 끝날 일인데 그렇게 원인을 찾아내어 수술했기에 최소한 3년은 더 연장되었으니 본인도 식구들도 감사하며 잘 다루어 나가면 더 살 수도 있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 다시 찾아갔더니 링겔 주사를 꽂은 채로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웃으며 목사님 또 오셨느냐고 인사하는데, 나는 속으로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든지 나를 통제하느라 무던히 애를 썼다.
기도를 마치고 병실을 나서 층계를 내려오면서 ‘그렇지. 주님이 준비하신 다음 세계가 있음을 확신하며 3년이면 약 1,100일을 더 허락 받았다고 생각하기에 저들 내외는 웃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한 시간 한 시간 하루하루를 귀하게 살며, 특히 위를 가지고 산다는 것을 감사하며 살기로, 또 그 위에 주님이 다음 세계를 준비해 주셨음을 감사하며 살기로 다짐하면서 병원 문을 나섰다.
감사의 인사를 받으실 분은
어떤 곳에 무엇이든지 희귀한 것만을 갖고 싶어하는 임금님이 있었다. 어느 날 임금님은 맛이 기막히게 좋은 요리를 잡수신 후 감탄했다.
"이제껏 먹어 본 요리 중에서 이것이 제일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요리를 만든 요리사는 세계 제일의 요리사임에 틀림없다. 많은 상을 주어야겠다."
그러면서 요리사를 불러들였다.
요리사는 임금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겸손해 했다.
"임금님, 칭찬해 주시니 대단히 기쁩니다만 이 요리는 제 기술이 좋아서만이 아닙니다. 만약 좋은 야채를 파는 사람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칭찬해 주시려거든 좋은 야채를 많이 파는 채소 장수를 칭찬해 주십시오."
임금은 그렇다고 생각되어 채소 장수를 불렀다. 성으로 불려 간 채소 장수는 칭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임금님,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야채를 팔았을 뿐이며 칭찬 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 야채를 키운 농사꾼이겠지요."
이번에는 농사꾼이 불려 갔다. 농사꾼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며 임금님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자기가 농사한 야채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얘기를 듣자 깜짝 놀랐다.
"임금님, 그것은 틀립니다. 저는 그저 손질만 했을 뿐이지요. 제가 땅을 갈아 씨를 심어도 때에 따라 비를 주시고 햇볕을 주시는 분이 없으면 저는 잎사귀 하나. 열매 하나 만들지 못하지요. 단지 저는 대대로 농사꾼이었기에 봄에 씨뿌리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것뿐입지요. 감사의 인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요."
* 참조: 시50:14, 시104:23,24, 골3:127, 딤전4:4
[추수감사절의 유래]
유대 장막절서 비롯… 링컨이 첫 제정
추수감사절은 유대인의 맥추 감사절 (레위기 23:9∼14)과 장막절에서 유래한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비롯됐다. 영국의 박해를 피해 1620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그해 겨울 추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이들은 이듬해 가을 곡식을 수확하고 인디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감사찬송을 드렸다.
오래 전부터 유럽에서도 추수감사절을 지켜왔지만 이처럼 청교도들이 추위와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거둬들인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추수감사절 의미를 더한 것이다. 1주일간 계속됐던 이 행사를 기려 1864년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1월 넷째 주간을 추수감사주일로 정했다. 그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9년 11월 셋째주 목요일로 감사절을 변경했다.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은 1904년부터 지키게 됐다.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추수감사절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11월10일을 감사일로 선포한 것.이후 1914년 각 교파 선교부 회의를 통해 미국 선교사 최초 입국일인 11월 셋째주 수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켰지만 곧 주일로 바뀌게 됐다.현재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추석을 전후해 추수감사절을 새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를 시행하는 몇몇 교회도 있어 이에 대한 검토가 논의되기도 한다.
“내 감사지수는 얼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이 환자들은 예수께서 그 곳에 계셨기 때문에 희망을 가졌으며 긍휼을 호소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한 마디 명령만 하시면 바람과 바다도, 질병과 마귀도, 심지어는 죽음마저도 복종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군사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예수께서 자신들을 도우시리라고 확신했다. 열 사람은 모두 예수님의 권세와 사랑을 믿고 기도하기로 결단했다. 그들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어 기도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고 하셨다. 제사장은 그들을 치료해줄 능력은 없었으나 그들이 깨끗하다고 선언해줄 임무를 맡고 있었다.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로 결단했다. 그들은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제사장에게 가는 것 자체가 믿음의 행위였다. 그들은 가다가 고침을 받았다.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난다. 순종하는 과정에서 병고침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하나는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여기에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예배의 장소는 ‘예수님의 발 앞’이다. 예배의 자세는 ‘엎드리는 것’이다. 예배의 정신은 ‘감사’이다. 열 사람 가운데 한 사람만 감사를 결단했다. 그는 은혜를 받자마자 즉시 감사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상관없이 자신이 받은 은혜만 생각하며 감사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아홉 사람은 깨끗함을 받고 너무 좋아서 살던 마을로, 사랑하는 가족에게로, 그리고 함께 놀던 친구에게로 달려가기 바빴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범하기 쉬운 실수다. 우리는 간구 하다가 응답 받지만, 순종하다가 은혜 받지만 받은 것에 도취하여 기뻐하다가 흔히 응답해주신 하나님, 은혜주신 주님에게로 돌아와 감사하는 것을 잊을 때가 너무도 많다. 우리는 간구 하는 데는 신속하지만 감사는 더디다.
문제와 필요가 있을 때 믿음으로 기도하는 믿음은 큰 믿음이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은 더 큰 믿음이다. 그러나 가장 큰 믿음은 응답과 은혜를 받고 감사하는 믿음이다. 우리의 감사지수(GQ)는 얼마인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받을 복을 세어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GQ를 높여야 한다. 이 땅에서부터 영원히 기쁨과 즐거움, 참된 성공과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를 높이기보다 GQ를 높여야 한다. 감사는 더 큰 은혜를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며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감사하지 아니하는 마음은 온갖 종류의 범죄를 낳게 하는 토양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한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다. 기도하고 순종하며 감사한 한 사람은 그 영혼까지 깨끗함을 선물로 받았다.
생사 갈림길에도 충만한 감사
‘황금의 입’을 가졌던 크리소스톰은 항상 복음을 전하면서 감사의 삶을 살았다. 그가 살고 있던 당시의 로마 황제는 기독교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공포하였다. 이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체포당하여 감옥에 갇히었다. 그는 감옥에서 “하나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곳에 파송 하였군요. 감사합니다”고 기도하였다. 사형언도를 받고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순교라고 하였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고 고백했다.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크리소스톰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이 할 일이 더 남아 있군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
“6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72가지의 필요한 생활조건을 가졌고 18가지의 절대 필요한 것을 갖고 살았는데 지금은 500가지의 필요한 생활조건이 있고 50가지의 절대 필요한 것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나는 항상 세 가지 감사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즉 일용할 양식과 건강한 몸,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의 감사 조건은 무엇인가.
감사노인
평북 어느 교회의 별명이 `감사노인'이라는 분이 있었다.
연세가 80이 넘은 과부인 이 할머니는 슬하에 자식이 없어 이리저리 구걸하며 하루하루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다가 기독교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이 70에 성경을 통해 한글을 깨치고 성경을 항상 손에서 놓지 않고 열심히 읽으며 전도와 기도에 힘썼다.
그리고 슬프든지 즐겁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그 노인을 가리켜 `감사노인'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이 감사노인은 성경 공부에 얼마나 열심인지 2,3백 리 떨어진 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려도 허리를 굽히고 그 먼 거리를 찾아가 공부하였다.
특히 노쇠한 몸을 이끌고 이웃집을 다니면서 방적을 도와 한 푼 두 푼 받은 것을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매주일 1전이라도 꼭 헌금하고 조사 월급에는 수십 전을 정성스레 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헌금은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과부의 헌금과도 같은 것으로 그 지역 모든 신자들에게 신앙 생활의 본이 되었다.
‘가진 것’에 감사하자
경영의 귀재라고 불리는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 한 기자가 경영비결을 물었다. 마쓰시타는 웃으면서 “나는 몸이 약합니다. 그래서 항상 건강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러다보니 나를 대신해서 일을 해주는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없으면 나는 사업을 할 수가 없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직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할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 늘 생각을 하고 아이디어를 모읍니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항상 감사하면서 경영을 한 것이 마쓰시타의 경영비결이었던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할 수도 없었던 헬런 켈러는 “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못 받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모든 것이 어렵다고 해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가. 3주동안 뗏목을 타고 표류하다가 구조된 에디는 “마시고 싶은 깨끗한 물과 먹고 싶은 밥만 충분히 있다면 더 이상 아무 것도 불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성경도 “항상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한탄하지 말자.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자.
맨발도 감사
페르시아에 사니아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그는 평소 불평하지 않았는데 꼭 한 번 불평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신발 살 돈이 없어서 맨발로 걷게 된 때였다.
"왜 우리 부모님은 가난하게 살아서 내게 신발도 못 사주시는 걸까?"
이렇게 불평하면서 걸어가는데 다리가 없는 불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 불구자를 보는 순간 자기의 처지를 감사하게 되었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다리 없는 사람에 비하면 비록 신발을 신지는 못했지만 두 발로 걸을 수 있으니 참 행복하고 만족합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감사하는 자
알렉산더 화이트 목사님은 항상 감사하는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주일 설교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다행히도 목사님이 계시는 곳은 날씨가 항상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입니다. 한 성도는 이런 의문을 품었습니다.
"오늘같이 날씨가 지독하게 나쁜 날 목사님은 과연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그러나 화이트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같은 날씨를 매일 같이 주시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 모두가 이런 시야가 열린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워지면 나도 또한 얼마나 행복한 생을 살까요?
옥중에서 부르는 감사
헌트 선교사가 만주에 있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다가 1941년 10월 신사참배 거부로 감옥에 갇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감방 안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던 중 갑자기 어떤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니 이어서 곡조가 떠올라 노래가 만들어졌다.
"감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만왕의 왕이시니 각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족속들 주를 찬양할지어다 땅을 권세와 의로 다스리시며 파도도 그의 명령에 복종하나니 감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네 감사하는 일을 기쁨으로 이루라."
그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그러다가 문득 이것을 기록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외투주머니 속에서 중국 동전이 하나 남아 있는 것을 찾아냈다.
그는 동전을 쥐고 힘껏 눌러 회벽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감방 안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얼마나 잘 써졌는지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쓰고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식별하기는 곤란했지만 알아 볼 수는 있었고 곡조도 기억이 났다.
잠시 후 간수가 작은 창구를 통하여 감방 안을 들여다보며 "벽에 쓴 것이 무엇이냐?" 라고 의심스럽게 물었다. 바로 앞에서는 겨우 읽을 수 있었지만 비스듬히 보이는 문에서는 창에 비치는 빛에 반사되어 뚜렷이 보였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감사와 기쁨을 간수에게 설명하여 주었다. 간수는 새삼스럽게 이상한 듯 감방을 휘둘러보며 "이런 감방 안에서 도대체 누가 감사할 수 있을까?" 라며 그의 동전을 압수하여 갔다. 그러나 작은 문을 걸어 잠그는 간수의 얼굴은 매우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감사기도
어느 날 저녁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쉐퍼드 파이가 식탁에 올랐을 때 여섯 살 된 이안이 신이 나서 저녁 식사기도를 하겠다고 자청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과 그날 재미있게 보냈던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린 후 그 애는 잠시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 아주 착한 꼬마 애를 이 집에 보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주 착한 아이라고? 어디 있는데?"
내가 놀라 물었다.
"바로 여기 있잖아."
그 애는 씩 웃으며 자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난 하나님께 나에 대해 감사를 드린거야."
그날 밤 설겆이를 하면서 난 생각했다.
'그 애 말이 맞아.'
우리들은 모두 우리를 지으신 분이 붙여준 딱지를 달고 이 땅에 왔다. 거기에는 '창조주께서 개별적으로 정교하게 지으심' 이라고 쓰여져 있다. 갑자기 난 가슴이 메어져 왔다.
오랜 세월 감사의 기도를 드려오면서 왜 나는 한번도 나에 대해 감사를 드려보지 못했을까! 나는 비눗물이 뚝뚝 떨어지는 두 손을 마주잡고 그 자리에서 조용한 기도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주님, 저를 이토록 훌륭하게 만들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들도 자신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
아들의 영결식장에서 발표한 감사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본문 중에서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 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 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 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까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이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 십년 간의 눈물로 된 기도의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 자매들이 23년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여러분들께도 감사 드립니다
감사의 마음
「일본의 테레사수녀」로 불리는 다마키여인은 평생을 한센씨병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다. 요양원을 만들고 고름이 나는 환자들의 피부를 치료하다가 그만 자신도 한센씨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한센씨병에 걸린 것을 알고 이렇게 기록했다.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하다.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다.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하나님은 내게 병을 주어 여러가지 감사의 마음을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감사하는 삶
미국의 기독교 교단 중 「그리스도 연합교회」가 있다. 이 교단에서는 하루에 열 두번 감사할 것을 강조한다.
△ 아침,새로운 시간을 주심에
△ 아침 식사에는 음식을 보며
△ 일터에 가면서 움직이는 기쁨에
△ 일하는 보람에
△ 일하면서 비판이나 압력을 받을 때는 도전을 주심에
△ 칭찬을 받을 때는 만족함에
△ 점심에는 대화할 수 있는 동료에
△ 일과 후 작은 성취에
△ 귀가 후 가족을 보며
△ 신문,TV를 보면서 여가를 주심에
△ 잠을 주신 은혜에
△ 꿈 속에서는 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의 힘
감사하면 「불행한 상황」이 달라진다. 어떤 처녀가 반지를 잃어버리고 집 에 와서 분노한 모습으로 불평했다.
그녀는 반지 한 개를 잃어버림으로써 행복과 자존심, 생활까지 다 잃은 듯 끊임없이 원망을 쏟아놓았다. 이런 딸을 본 어머니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 상황이 반전됐다.
『얘야, 손가락을 안 잃 어버린 것을 감사해라. 네 손가락은 그대로 있잖니. 손가락마저 잃어버렸으면 어떡할 뻔했니? 반지야 다시 살 수 있지만 손가락은 살 수 있겠니?』
감사하는 마음
1860년 9월 어느 날 미국 미시간 호수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고요한 새벽의 침묵을 깨뜨리고 있었다. 4백여 명을 태운 여객선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 대형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누가 좀 도와줘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그 근처 대학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스펜서는 소란스러움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벌떡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던 그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호수로 달려나갔다.
"살려주세요."
여기저기서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호수는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그는 용감하게 호수로 뛰어들어 열일곱 명의 귀중한 목숨을 구한 뒤 온몸에 힘이 빠져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 날 너무 무리한 탓에 그는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누운 지 7년 뒤 그만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한 신문사 기자가 그에게 찾아와 물었다.
"그 날 당신이 구조해 준 열일곱 명의 사람들과 지금도 만나십니까 ?"
창백한 얼굴의 스펜서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그는 곧 얼굴에 가볍게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 열일곱 사람 중에서 내게 감사를 표시한 사람은 한 소녀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녀는 지금까지 7년 동안 내게 크리스마스 때마다 감사의 카드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아름다운 마음씨에 위로 받으며 해마다 기쁨으로 기다리고 지냈습니다. 나머지 열여섯 사람에 대한 원망도 잊은 채..."
온전한 감사 생활
옛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받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태산 같은 은혜도 잊어버리고 조그마한 어려움이 생겨도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때가 많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 광야 생활 중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유월절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불평하였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건망증이 너무 심하다. 크리스천의 삶은 순간순간 감사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발레리 엔더슨은 “감사는 결코 졸업이 없는 과정이다”라고 했다. 어떤 나병환자가 있었다. 그의 병이 점점 심해져서 코와 손가락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고 썩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이렇게 신앙고백 했다. “하나님 내가 나병으로 썩어져 죽는다 할지라도 죽는 순간까지 나의 성대만은 상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이 성대를 가지고 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리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이고, 차원 높은 감사 생활인가? 감사는 영적 생활의 윤활유이다. 본 회퍼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인가 비 기독교인인가의 구별은 그 사람이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로 알 수 있다.”
감사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이 한번은 지방을 여행하던 중에 예배시간이
되어서 작은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날 목사님의 설교가 얼마나 은혜가 넘치는지 스펄전이 그 설교
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후 그 목사님을 찾아가서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누구시냐고 묻길래 스펄전은 자기가 영국런던 뉴파크
교회의 담임목사인 스펄전이라고 대답했다. 이때 이 목사니은 그가 스폴전이
라는 말을 뜯고는 깜짝 놀라면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설교는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집을 보고서 그대로 한 것이라
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스펄전은 더욱 눈물을 흘리면서 그 목사님의 손
을 붙잡고서 하기를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만든 빵을 오늘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게 다시 먹여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겸손하고 감사를 하는 사람에게 인한다.
슬픔 중의 감사
어느 가족이 디프테리아로 한 주간에 세 아이를 잃었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세 살 짜리 딸아이만 남았습니다. 그 다음 부활절 아침에 그 부부는 딸을 데리고 교회로 갔습니다. 남편은 주일학교 교장이었는데 예배를 인도하면서 성경에 기록된 부활의 가르침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지만 그 부부는 침착하고 조용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한 소년이 자기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장 선생님과 그 사모님은 부활절에 관한 이야기를 정말로 믿고 계신 것 같아요"
소년의 아버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믿고 있단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과 사모님의 믿는 방식과는 다르지요"라고 말해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깊이는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이렇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믿는 사람들이 죽은 후 그리스도가 계신 곳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고 있는 우리는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적은 것으로 만족하기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가장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만족할 줄 아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 미국의 대부호 하워드 휴즈 역시 전자보다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엄청난 재산을 모아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요즘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도 하워즈 휴즈가 벌인 초창기 프로젝트 중의 하나였다. 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뉴욕 브로드웨이 연극과 뮤지컬 사업 역시 그에 의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미국 최대의 텔레비전 방송국 가운데 하나인 ABC 방송국과 TWA 항공사의 지분까지 소유한 그는 가장 젊은 나이에, 그리고 가장 짧은 시간에 재벌로 급부상한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유산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그런 그에게 어떤 기자가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얼마나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조건 지금보다 더 가져야 행복합니다."
많은 돈을 갖고도 결코 만족하지 못했던 하워드 휴즈. 그의 인생이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쳐졌는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의 숫자는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고도 남았다.
감사 가르치기
미국 유학시절, 추수감사절을 맞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같은 반 학우의 집에 초청을 받았다. 그 친구는 스페인어를 잘 하는 남미 계통으로,3대 전에 미국으로 이민 온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의 가족은 부인과 돌이 갓 지난 아들, 이렇게 세 명이었다.
추수감사절 저녁식사 시간, 우리는 식탁에서 칠면조 앞에 둘러앉아 미국 전통의 추수감사절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친구의 아들 존이 그만 들고 있던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존의 어머니는 그것을 주워 아이에게 주려다가 존이 손만 내미니까 “아니, 무언가 말해봐”(No, Say Something)라고 했다.
존은 말은 안하고 포크를 달라고 계속 보챘다, 이러자 어머니는 존에게서 말이 나오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그 말은 바로 “감사합니다”(Thank You)였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자녀에게 제일 먼저 가르치는 말이 ‘감사’다. 감사란 말이 생활화돼 있는 것이다.
감사가 있는 가정, 감사하는 사회생활, 감사가 넘치는 신앙생활이야말로 자신과 이웃을 훈훈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감사하는 마음
월간 낮은 울타리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웠던 저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느 가정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댁의 가장은 의과대학 교수이면서 유명한 병원 원장이었고, 하나뿐인 아들도 의과대학생이었습니다. 사모님과 딸도 인정이 많고 덕 있는 분들이어서 저는 남의 집 살이 하는 것 같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 가족 모두가 너무도 고마워 저는 정성을 다해 그분들을 섬겼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제가 스무 살이 된 어느 날, 저는 뜻밖에도 그 댁 아들로부터 정식으로 청혼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과 심한 충격으로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그 집을 떠날 궁리만 했습니다. 주인댁 부모님도 당연히 반대를 했고 집안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는 아들에게 부모님의 승낙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의를 다하여 꾸준하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납득시켜 주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아들의 뜻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에게 알려주셨고, 그의 뜻을 받아들이라고 권면 하셨습니다.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두렵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는 저에게 아버님이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아내로 택하고 너를 며느리로 맞이한 우리에게 갚고 싶은 것이 있다면 네가 의사인 남편의 아내답게 되는 것이고, 병원장의 며느리답게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면서 이 가문의 당당한 일원이 되거라."
저는 그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가정부 처지에서 그 댁의 며느리로 처지가 바뀐 것입니다. 저를 선택한 남편과 받아 준 시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은 이전에 제가 가정부로 일하던 떄의 의식이나 태도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버님의 며느리답게 그 남편의 아내답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뿐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시부모님과 남편이 원하는 대로 공부를 시작,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대학의 간호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그 가문이 원하는 며느리와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아픔이 함께 하는 과정이었으나, 오직 저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모든 가족이 저를 인정해 주고 그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 감사와 감격이 오늘도 저를 기쁨과 보람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도 힘이요, 저의 재산입니다.
성경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하므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라고 하였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1:12)고 하였습니다.
오래 전 미국의 햄크스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 광산에서 일하다가 크게 부상을 당했습니다. 두 눈이 멀게 되고 두 손이 떨어져나가 심한 불구가 된 그는 매우 절망하여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금식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예일대학의 유명한 교수가 설교한다는 자리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교수는 청중들에게 "사람마다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다"고 설교했습니다.
폐회 후 햄크스는 그 교수를 만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는 "나 같이 눈도 없고 손도 없는 인간에게 무슨 사명이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동안 말없이 그를 쳐다보던 교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에게는 하지만 아직 입과 귀와 발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눈과 손이 없더라도 나머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온 햄크스는 이 한마디로 큰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자마자 곧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고는 자신에게 눈과 손만 거둬가고 입과 귀와 발을 남겨주신 것에 대한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그 후 그는 스텐포드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의 유명한 강연자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은 주변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사람에게 희망을 품게 함으로써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적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또 다른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남대서양 연안에 있는 파타고니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선교를 하다가 죽은 알렌 가디너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그는 일생을 무서운 고통과 고독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해변에서 뒤집혀진 배 옆에 죽어있는 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오랫동안 기록해 온 것으로 보이는 다 낡아빠진 일기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일기장에는 그가 지금까지 당한 모든 곤란과 굶주림과 목마름과 상처, 고독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 마지막에는 그가 죽기 직전에 겨우 붓대를 움직여서 간신히 쓴 마지막 글귀가 씌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드린다. 이 생각으로 나의 머리속은 가득 차 있다."라고 씌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희망과 감사가 가득찬 사람에게는 죽음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7),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하였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하였습니다.
감사는 기독교인이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입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시30:4)
감사하는 생활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너무나 지극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세 가지만 들어주마."
이 사람은 무척 기뻐하면서 무슨 소원을 아뢸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마도 자기 아내가 퍽 싫었던 모양입니다. 첫 번째 소원으로 "지금 마누라를 데려가시고 새 마누라를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소원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를 데려가셨습니다. 장례식 날 문상객은 참 많이도 왔습니다. 그 문상객들은 한결같이 "아이고, 그 좋은 분이 돌아가셨군요."하며 "남들 몰래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참 좋은 일 많이 하셨는데, 그렇게 착하고 복된 분이 돌아가셨군요"라고 이구동성으로 죽은 아내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문상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자기 아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고, 그런 사람이 죽어서 되겠나' 싶어 하나님께 "제 마누라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라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두 번째 소원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으니 무엇을 구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하나 남은 소원을 투자할 만큼 귀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아예 하나님께 여쭈어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라." 이렇게 해서 그는 정말 세 번째 소원을 이렇게 기도하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내 처지 이대로 좋습니다. 이대로도 분에 넘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날마다 이와 같이 간증하는 사람은 늘 승리합니다. 감사하는 사람한테는 마귀도 손을 못 댑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달 동안 특이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 실험이란 한 마을의 일정한 구역에 있는 각 집에 매일 만원씩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 준 다음 그 결과를 관찰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첫 째날 그는 집집마다 들려서 현관에 만원을 놓고 살며시 나왔습니다. 그를 본 마을 사람들은 제 정신으로 하는 행동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멈칫멈칫 나와서 그 돈을 집어갔습니다. 둘째 날에도 거의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습니다. 셋째 날, 넷째 날이 되면서 사람들은 그 돈을 사용해 본 후 그 돈이 가짜가 아닌 진짜 돈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동네는 날마다 만원씩 선물로 주고 가는 사람의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둘째 주쯤 되었을 때 동네 사람들은 현관 입구에까지 직접 나와 돈을 나눠주는 사람이 언제쯤 올 것인가 하고 평소에 그가 오던 길목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은 이웃 마을까지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주쯤 되자 이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이상한 사람이 와서 돈을 주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지 않게 되었습니다. 넷째 주가 되었을 쯤 매일 만원씩 돈을 받는 것이 마치 세끼 밥 먹고 세수하고 출근하는 것 같은 일상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드디어 실험 기간이 끝나는 한 달의 맨 마지막 날에 그 실험을 계획했던 사람은 평소와는 달리 그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지 않고 그냥 그 골목을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문을 거칠게 열고 현관까지 나와서 성난 목소리로 "우리 돈은 어디 있습니까? 당신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왜 오늘은 내 돈 만원을 안 주는 겁니까?"라고 따지거나 불만과 원망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가 결국 그들 중 다수가 멸망당한 사건을 상기하게 됩니다.(고전10:1-11)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습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끓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많은 멕시코 여인들이 그곳에 와서 빨래를 합니다.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더러운 빨래를 삶은 뒤 바로 옆에 있는 냉천에서 깨끗하게 헹구는 식으로 아주 편리하게 빨래를 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의 빨래하는 모습을 본 어느 관광객이 그 빨래하는 여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처럼 편리하게 더운물과 찬물을 동시에 주셔서 쉽게 빨래할 수 있으니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그런데 그 여인들은 "천만에요,"라며 뜻밖의 반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면 비누까지 내려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비누는 주시지 않았습니다."라며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원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강물에 새긴다"는 우리 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부패한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은 끝없이 요구하고 만족을 모르며, 감사를 모르는 삶임을 의미하는 말일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롬1:21)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95:2)
플라톤의 4대 감사 제목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4대 감사제목'을 갖고 있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의 제목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 개, 소, 당나귀로 태어나지 않고 인격과 이성을 갖춘 존재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둘째는 그리스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 그는 철학, 정치, 예술, 학문이 살아 숨쉬는 문명국가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웠다.
셋째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을 감사했다. 소크라테스는 변변한 글 한 줄 남기지 않았으나 플라톤으로 인해 위대한 철학자로 부상했다.
넷째는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봉건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감사의 제목이 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쌓이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이 쌓인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는 감사하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투병 중에도 감사
'제2차 세계대전' '가장 긴 밤'등을 집필한 작가 코넬리어스 라이언은 5년간 암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그는 투병 중에도 매일 아침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이언은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은 기도를 올렸다. 하루는 아내가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라이언이 대답했다.
"새날을 맞는 다섯 가지 기쁨이 있어요. 첫째, 사랑하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족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셋째, 병들어 눕기 전에 작품을 탈고한 것이 감사하지요. 넷째, 병마와 싸울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주님이 지금 저와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참 신앙은 죽음 앞에서 빛을 발한다. 평온할 때는 모두가 참 신앙인처럼 보인다.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 비로소 신앙의 진위가 가려진다.
건강과 마음가짐
이 시대의 가장 극렬한 전쟁터는 인간의 마음세계이다. 미움, 시기, 원망, 불안, 초조, 근심, 걱정 열등감, 의욕상실, 패배감 등의 모든 심리적 갈등은 각종 질병의 직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건강을 위해서는 단순한 마음가짐과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인간관계 속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번민의 상당 부분을 해소시킬 수도 있다. 감사는 삶을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갈 때만 가능하다. 불평불만이 가득하고 원망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부정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명력 있는 삶을 누리게 되지만 부정적인 마음자세는 자신의 체질을 서서히 산성화시켜서 결국 병적 체질이 되고 만다. 이것을 심신상관의학이라 한다.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최고의 예의는 감사하는 마음가짐이다. 감사는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이웃을 얻게된다. 영육의 총체적인 건강을 누리려면 마땅히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감사하는 이유
미국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에 연로하신 한 권사님이 계신다. 그분의 네 아들은 하나같이 미국에서 사회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훌륭하게 되어 교회와 이웃의 존경을 받고 있다.
권사님은 29세 때 남편을 여의셨다. 당시 남편은 숨을 거두면서 권사님을 불렀다.“여보, 그 동안 고생이 많았소. 미안하지만 이제 한 가지만 약속해주오. 우리 네 아들을 꼭 책임지고 키워주오” 권사님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약속할게요”라고 했다.
이 믿음밖에 없는 젊은 과부는 갖은 고생을 하며 어린 네 아들을 키웠다. 밥상에 먹을 것이 있을 때는 “주님,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자식들을 앉혀놓고 “주님, 오늘은 금식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 양식이 있건 없건 감사를 드리면서 아들을 키운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어머니와 네 아들을 크게 복 주셨다. 하나님이 이런 분을 복 주시지 않으면 누구를 복 주시겠는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
감사하는 기도
두 천사가 지상에 내려왔다. 그들은 각각 성도들의 기도를 담기 위해 바구니를 가지고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곳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학교이건 교회이건 오막살이건 성이건 가리지 않고 들어갔다. 얼마 안 되어 한 천사의 바구니는 성도의 기도로 가득 차 무거워졌으나 다른 천사의 것은 아직도 비어 있었다. 바구니를 가득 채운 천사는 '이것을 주십시오. 저것을 원합니다'하는 탄원의 기도를 바구니에 받아 담았고, 다른 천사는 감사의 기도를 모았던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이야기 인 것 같다
기도와 감사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체코의 유명한 작곡가인 안톤 드보르자크는 그의 교향곡 신세계 9번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많은 곡을 작곡했는데 그의 곡들의 공통점은 작곡을 끝내고 그 밑에 “Thanks be to God” 즉 “하나님께 감사”란 글을 써놓은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는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철로의 두 레일과 같으며 또한 마차의 두 바퀴와 같은 것입니다. 새가 한 쪽 날개만 가지고는 날 수 없고 두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는 것처럼,또한 레일이 둘이 있어야 기차가 굴러갈 수가 있고 마차의 바퀴가 둘이 있어야 달려갈 수 있는 것처럼 기도는 감사와 함께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늘 감사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
공항에서 한 아이가 불안 해 하는 태도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던 한 여행자가 가지고 있던 과자를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어머니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말에 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 어머니는 또 한번 타일렀다. 그래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여행자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자 아이의 어머니는 "감사의 말을 배운다면 이 아이가 더 훌륭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라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우리에게 감사의 말을 강요하는 국법은 없으며 또한 감사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의 단순한 삶은 더 풍성한 삶으로 인도될 것이다.
감사의 습관
중세기 구라파에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당시의 구라파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 있었다. 이때 구라파에서는 페스트를 만연시킨 것은 유태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태인은 흑사병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태인이 흑사병에 잘 감염되지 않았던 이유는 극히 간단하다. 당시만 하더라도 구라파인의 생활은 야만적이었다. 위생관념이 거의 없어 목욕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비누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하니 얼마나 불결한 생활이었나 하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유태인은 오래 전부터 목욕을 하고 식사 전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여호와께 감사드려야 하고 가까이 지내야 하기 때문에 몸을 깨끗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종교적인 규칙이며 신앙생활의 습관이었다. 평소에 몸을 깨끗이 하는 습관이 그들을 무서운 전염병으로부터 구해준 원인이 된 것이다. 유태의 어린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 습관을 배우기 이전에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을 배운다. 부모가 의도적으로 감사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신에 대한 감사의 분위기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은연중에 감사의 생활을 몸에 익히게 된다. 어떤 일이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을 주신 여호와와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유태인들은 생각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곧 남에게 감사함을 받을 수 있는 선행을 낳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감사의 무게만을 심고 거두었다.
어느 교회에 한약방을 하는 장로가 있었다.
하지만 장로이면서도 주일 예배만 마치면 낚시하러 가는데 정신을 쏟는 그런 사람이었다. 잘 믿는 그의 부인이 낚시를 만류하여도 듣질 않았다.
어느 주일 오후 장로는 낚시터에서 큰 고기를 낚아 쥐고, 그것을 들고 입이 벌어져라 웃으며 집에 온 장로는 튀김을 해 먹자고 했다.
부인이 그것을 받아들여 놓고 튀김기름을 불에 올려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잠자던 아기가 깨어나 문을 열고 기어 나오다가 그만 기름 그릇에 빠져 죽어 버렸다.
자기의 죄로 어린 아들을 잃은 장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변하더니 돈을 벌러 재료값만 빼고는 모두 교회에 갖다 드렸다.
어떤 겨울 독감이 유행하던 때 장로 댁에서 약 2첩만 지어먹으면 감쪽같이 낫는다
는 소문을 듣고 한약방에는 손님이 끊일 사이가 없게 되었고 금새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감사하므로 하는 일에 하나님은 갚아 주신다.
감사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는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다.
“노 트를 한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 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사 라졌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나 자신의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타인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된 손길을 맞잡기 위해 서 범사에 감사하라.
참으로 감사해요
메튜 헨리(1662~1714)는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요 성경 주석가였다.'
어느 날 그는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해서" 그날 다음과 같은 일기를 남겼다.
"오늘 처음으로 소매치기 당한 것이 감사하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다. 소매치기는 지갑을 훔쳐 갔지만 내 생명은 훔쳐 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신앙과 영생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다. 설령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털렸다고 하더라도 아깝지 않은 것들이다. 또한 내가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가 되었기에 감사하다
감사하는 마음
발명왕 에디슨이 연구를 위한 약품을 들고 기차에 올랐다가 그 약품이 쏟아지는 바람에 기차에 불이 났습니다. 차장은 에디슨을 열차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그만 귀가 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불행을 잘 견디며 세계 제일의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한다. 딴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으니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현실의 모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금 우리의 현실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버릴 것이 없는 것을 모두 지니고 사는 삶, 그것이 풍요한 삶입니다.
감사를 아는 사람
어떤 사람이 환한 얼굴을 하고 있어 주위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얼마 전 중증장애인 단체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왔다가 너무 피곤해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니 저도 모르는 기쁨이 솟아나지 뭡니까.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남을 도왔더니 제가 살아났습니다. 이 기쁨을 그동 안 잊고 살았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윌리엄 제임스의 말.
"감사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산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달라진다"
'감사'의 철학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씨가 고국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신과의사인 후치다씨는 그에게 이런 처방을 내렸다.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줄 것입니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감 두개를 건네주었다. 가와가미 기이치씨는 손을
내밀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굳었던 몸이 풀리고 질병에서 벗어났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이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풍성하다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할 것이 계속 생긴다
아주 맑은 연못에 개구리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개구리들은 행복한 삶에 대해 지루함을 느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간구했다.“저희들에게 왕을 보내 주십시오” 하늘은 연못에 커다란 통나무를 던져주었다. 그때부터 개구리들은 통나무를 왕으로 섬겼다. 통나무 주변에 몰려드는 애벌레, 딱정벌레, 지렁이들은 아주 맛있는 먹이였다.
그러나 개구리들은 몇 달이 지난 후부터 반응이 없는 통나무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그래서 다시 하늘을 향해 빌었다.“좀더 강력한 왕을 보내주소서” 하늘은 연못에 식욕이 왕성한 큰 물뱀을 던져주었다. 개구리들은 물뱀을 크게 환영했다. 그런데 그날부터 물뱀은 개구리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몇 달 후, 연못에는 단 한 마리의 개구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불평은 불행의 시작이다.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람이 인생의 물뱀을 만나기 쉽다.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할 것들이 계속 생긴다.
주변을 돌아보면 감사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엄 부스는 83세 때 안 질환으로 실명선고를 받았다. 아들 브람웰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부스는 아들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이제 네 얼굴을 볼 수 없다는 뜻이로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부스는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더니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두 눈을 가진 상태에서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끝났다. 이제부터는 두 눈이 없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
윌리엄 부스는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실명을 당하고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새로운 봉사를 다짐했다. 사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감사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단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들이 감사의 조건들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4대 감사제목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4대 감사제목’을 갖고 있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의 제목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 .개,소 ,당나귀로 태어나지 않고 인격과 이성을 갖춘 존재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둘째는 그리스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 그는 철학, 정치, 예술, 학문이 살아 숨쉬는 문명국가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웠다.
셋째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을 감사했다. 소크라테스는 변변한 글 한줄 남기지 않았으나 플라톤으로 인해 위대한 철학자로 부상했다. 넷째는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봉건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감사의 제목이 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쌓이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이 쌓인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는 감사하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우리의 마음을 늘 감사로 가득 채우자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하루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는 좌석에 혼자 앉아서 깊이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쿵”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덩치가 엄청나게 큰 흑인 여자가 올망졸망한 어린아이를 다섯 명이나 데리고 자기의 옆자리에 비집고 앉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과연 그는 무슨 감사를 드렸을까.“하나님, 지금 제 옆에 앉은 이 뚱뚱한 흑인 여자가 저의 아내가 아닌 것에 대해 저는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깊이 생각하면 그 가운데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음
을 알려준다, 누구를 생각하든,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좋은면, 밝은면, 아름다운 면을 생각하도록 노력하자,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늘 감사로 가득 채우자.
감사의 제조업자가 되자
노만 필 박사는 항상 적극적 사고방식을 강조한 사람으로 어느 날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한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그 부인은 계속해서 주변환경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다. 좌석이 불편하고 시트가 지저분하고 청소도 제대로 안돼 있고 승무원도 불친절하다는 등 불평을 했다.
이때 부인의 불평을 듣고 있던 남편이 필 박사에게 인사를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들을 소개하기를 “저는 변호사이고 제 아내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필 박사는 “그럼 부인께서는 어떤 것을 제조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웃으며 “제 아내는 불평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자입니다”고 대답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부인처럼 불평을 만드는 제조업자가 아니라 감사를 만드는 제조업자가 돼야 한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시면서 모든 것을 참아주신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어렵다고 불평해서야 되겠는가. 감사하는 자세는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만든다. 감사의 제조업자는 시련을 축복으로
변화시킨다.
감사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목회를 하는데 한 집에서 살았다. 하루는 아들이 들어오면서 조금 이상한 듯 하면서도 상기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들: 아버지, 오늘 저에게 참 감사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버지: 무슨 일이 생겼느냐?
아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정말, 정말 감사해요.
아버지: 그래? 어서 말해 보아라.
아들: 오늘 교회에서 집으로 오다가 차가 일곱 바퀴나 굴렀어요. 그런데 상처 하나 없이 이렇게 말짱해요.
아버지: 나는 너보다 훨씬 더 감사하다.
아들: 아버지는 여덟 바퀴 굴렀나요?
아버지: 아니다. 나는 한 바퀴도
감사헌금 유형(有形)
무통감사
안면볼수형: 감각은 있으나 전혀 드리지 않는 성도
안타까운형: 감각은 있으나 드릴것이 없어 못 드리는 성도
갈등망각형: 갈등을 순각적으로 느끼는 성도
소통감사
벌벌형: 아까워서서 벌벌 떨며 하는 성도
과자값형: 자기 아들 과자 값 정도 헌금하는 성도
커피값형: 자기 애인 커피 값 정도 헌금하는 성도
저녁값형: 자기 식구 식사 값 정도 헌금하는 성도
보통감사
넉넉감사형: 넉넉함에 감사하여 헌금하는 성도
체면유지형: 다른사람이 드리므로 체면 때문에 할수 없이 하는 성도
예방주사형: 불행, 환난을 미리 막기 위해 헌금하는 성도
대통감사
미리믿는형: 넉넉해진 것을 믿고 듬뿍 헌금하는 성도
무조건형: 보기에 감사할 조건이 없는데도 헌금하는 성도
불구하고형: 역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헌금하는 성도
과부램돈형: 몸을 드리며, 가진 것을 전부 드리는 성도
생각하며 감사하십시다
솔맨이라고 하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안된 젊은 나이에 그는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말해줍니다. "당신은 임파선 결핵을 앓고 있소. 앞으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부인은 유명한 가수로, 그녀는 지금 임신중입니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거니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할 때에도 죄스럽습니다. 몹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위로합니다. "3개월밖에 못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 개월을 허락해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하십시다. 아무도 원망하지 맙시다. 3개월이 얼마입니까 ? 천금같은 그 기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십시다. 그러면서 오로지 3개월이나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열심히 일합니다. 그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병은 씻은듯이 나았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에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보통 사람은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때에 대개 자비하신 분으로, 고난 당하시는 얼굴로 그리는데, 이분은 지도력이 있고 강인한 인간성을 지닌 인물로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이 유명해서 수백만 장이나 인쇄되었고 오늘도 많은 가정에 걸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3개월이 어딥니까 ? 하루가 어디입니까 ? 한 달란트가 어디냐 그 말씀입니다. 모름지기 감사하며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1941년 어느 날, 발명왕 에디슨이 66세 되던 해의 일이다. 그가 오랜 세월 몸담고 연구해 오던 연구실이 화재를 만나 잿더미로 변했다. 아직도 진행 중인 미완의 연구 업적들도 고스란히 사라져 버렸다. 모두들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가슴이 아파 말문이 막힌 아내에게 에디슨은 말했다. "이 잿더미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요. 나의 모든 실수와 잘못을 깨끗이 불태워 버리고 이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일 무서운 죄는 감사 못 하는 죄
1. 감사의 내용을 찾으라
문둥이의 치유와 감사, 우리는 감사를 잃고 있지나 않은지 ?
ex) 북 아메리카의 신앙 자유 위한 개척과 감사절, 남아메리카의 황금 위한 이주와 탐욕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2. 감사의 대상을 바로 찾으라
문둥이 열 사람. 치유 후 세상을 향해간 9명, 1명만이 예수님께 감사를. 감사의 대상이 잘못 될 때에 우상숭배를 우리도 범하게 된다.
ex)웃시야 왕의 잘못된 제사 -문둥병이 생겨. 반면에 나아만 장군은 감사의 대상을 바로 찾았다.: 치유 후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마리아의 흙을 가지고 가 깔고서 감사 ex)헬렌 켈러의 감사의 내용
3. 감사의 표현을 바로 하라
감사 만발은 대인 관계의 성공을 가져온다. 벤허 중에서 "현재의 축복에 감사하는 자만이 과거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
ex)1895년 미국 알라바마주에 바구미를 통한 모화 밭의 황폐.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대신 땅콩과 커피를 심어 오히려 몇 배의 물질 축복 받아. 그래서 바구미의 동상을 세워. @ 미국인은 아무리 날이 않좋아도 :"Good morning" @김활란 박사의 묘비:조그마한 비석에
성경모양을 만들고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4. 감사의 결과
더 큰 축복을 받는다, 성숙한 인간이 된다, 평화와 기쁨을 갖게 된다,
자연에 대한 감사
미국 태생의 유명한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감사하여 다음과 같은 노래를 썼다.
"우리 눈앞에 피는 아름다운 꽃들과 향기롭고도 고운 연한 풀들과 새들의 노래와 별들의 역사와 그 밖의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주신 하늘 아버지께 우리는 감사를 그립니다.
맑은 시내와 푸른 하늘과 높은 가지들 밑에 놀기 좋은 그늘과 신선한 공기와 서늘한 바람과
아름다운 꽃피는 나무들을 주신 하늘 아버지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세계, 아름다운 구속자, 그리고 그를 통하여 참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은총 받은 생활(감사가 없는 자의 생활)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 우화적 단편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과거에 은혜를 입혀준 몇 종류의 사람을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어본 것이다.
처음 예수는 한 주정꾼을 만난다.
그는 거의 폐인과 같이 된 젊은이였다.
예수께서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주정꾼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일으켜 걷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엇을 먹고 살라 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만족한 직업 하나도 없었오." 그
다음 예수는 한 여자가 창녀가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받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예수는 여자에게 말한다.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갔오?" 창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나를 창녀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으나, 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이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했오." 그 후 예수는 한 불량자가 정신없이 이웃과 매질을 하고 있는 장면에 부딪힌다. 예수는 그에게 묻는다.
"여보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오?" 불량자는 예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 준 소경이었소.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경을 돋구고 귀찮고 화나는 세상이 아니오?
결국 나는 화풀이도 하고, 마구 치고 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하였소."
이 단편은 은총을 은총으로 살려, 빛을 내지 못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다.
창녀에게서 구원되거나 소경이 눈을 뜨는 이상의 큰 은혜를 우리는 입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감사를 모른다. 감사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이 되는 새로운 생활로 자기를 전환시킬 때 비로소 살아나는 것이다.
소녀의 감사
집시 스미스가 에버딘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을 때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어떤 손이 그의 코트를 잡아당기더라는 것이다. 스미스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다보니 옷차림이 몹시 남루한 한 작은 스코틀랜드 소녀가 손에 무엇인가 종이로 싼 물건을 꽉 쥐고 서 있었다. 스미스 목사는 헐떡거리고 서 있는 소녀에게 물었다.
“얘 아가. 왜 그러니.” 소녀는 종이에 싼 뭉치를 그에게 불쑥 내밀면서 “선생님. 이것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게 뭔데 그러지.”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선생님 드리려고 가져온 캔디예요.”소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였다.
“오. 캔디. 무슨 캔딘데.” “선생님 저는 새 아빠를 가지게 되었어요.”
“선생님. 우리 아빠는 지난 토요일까지는 한번도 술 취하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난 토요일 이상하게 술을 마시지 않고 들어오셨지 뭐예요. 이상하다. 오늘은 아빠가 어떻게 술을 마시지 않으셨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 토요일 이후 아빠는 언제나 맹송 맹송한 맑은 정신으로 계시면서 늘 얼굴이 환히 밝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제는 제가 여쭤 보았지요. 그랬더니 아빠는 지난 토요일 선생님의 집회에 참석하셔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셨어요. 이제는 술도 마시지 않고 올바르게 살겠대요.”
그 말을 들은 스미스 목사는 너무도 반가웠고 용기 백배하였다. 스미스 목사는 나중에 당시의 감격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 일생에 그처럼 귀한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내 일생이 그 한 순간을 위해 지어졌던 것같이 느껴져요. 주님을 위한 봉사의 대가로서의 그 적은 캔디. 그것이 이 다음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알게 해주었답니다.”
남은 것에 감사하라
헤럴드 러셀은 영국의 공수부대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고 불구자가 된 상이용사였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기독교신앙으로 온갖 어려움을 딛고 금속의수로 글을 쓰며 살았다. 그는 이런 투지를 인정받아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에 출연, 아카데미상까지 받았고 상금을 모두 자선사업단체에 기부했다. 기자회견에서 『신체적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그는 웃으며 말했다.『장애가 오히려 축복이 되었습니다
잃은 것에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헤아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조건2
랍비 한 사람이 나귀등에 닭 한 마리와 천막 그리고 등불을 싣고 길을 가고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르려면 한참은 더 가야 할텐데 이미 날이 어두워 길가에서 유숙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민가는 한참 떨어진 것 같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커다란 나무 밑에 천막을 치고서 자리를 잡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성경을 읽고자 등불을 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등잔불을 꺼버리고 말았다. 그는 성경을 덮고 기도를 하고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천막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에 눈이 부셔 잠을 깬 랍비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날마다 꼬끼오 소리로 나를 깨워 주던 닭이 어찌 오늘은?'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간 랍비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나무에 묶어 두었던 닭과 나귀는 맹수에 찢겨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여행중이라 지치고 피곤한 자신에게 왜 이런 변고가 생겼는지, 은근히 하나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 생각하니 이젠 화가 났다.
그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닭과 나귀가 참혹하게 찢겨 주는 그때에 자신은 곤히 잠을 잤으며,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다.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살아 있구나 내가 살아 있어 하나님은 내게서 닭과 나귀를 앗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 살려주신 것이었구나! 하마터면 난 감사해야할 하나님께 원망을 늘어놓고 불평을 할 뻔했구나. 난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 게야. 노아처럼."
감사연습
공자는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상이 있는데 첫째, 타인의 실패를 기뻐하는 자이며, 둘째, 윗사람을 헐뜯는 자 곧 앞에서는 굽신거리고 뒤에서는 욕하는 자, 셋째, 용기는 있으나 예의가 없는 자, 넷째,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 곧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중 가장 싫어하는 자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은 영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믿는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지만, 인간적인 눈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하나님께 대한 인식이 결여된 사람에겐 매사에 불평과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서 왜?"라고 생각하는 부류와 "그 사람이 왜?"라고 생각하는 부류로 나누어진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쳐다본다.
우리교회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1년에 한 번 감사하려면 힘들다. 1년에 한 번 쓰는 기계가 잘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감사는 습관이다 .매일 꾸준히 연습하지 않으면 어느새 불평의 노예가 되어 신앙 없는 신앙인이 되고 만다. 10월 한달 동안 우리가 힘써 훈련해야할 경건의 연습이 있다면 매일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말하는 가를 기록해 보라. 이익에 뿐 아니라, 손실에도, 사람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를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볼테르는 말하기를 "권태로운 인간이 되는 비결은 무엇이든 마구 지껄이는 것이다."라고 했다.
오늘부터 모든 대화에 반드시 '감사합니다'를 붙여서 말하는 습관을 들여 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축복하시고 환경을 변화시키시는지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냉수 한 모금 보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마음을 진정시킨다고 했다.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있는 말 한마디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온화함을 주고 기쁨을 준다.
감사 하 는 삶
독일 역사에 '마티 바덴'이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유주의적 사상이 있다고 해서 극 보수파에 밀려나 젊은 시절에 고생을 많이 한 정치가 이다. 한번은 그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 값싼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아침에 깨어보니 구두가 없어졌다. 밤새 도적을 맞은 것이었다. 화가 잔뜩 나서 욕을 하면서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가도록 내버려두신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때 친구 하나가 헌 신발을 빌려주며 주일이니 교회에 가자고 했다.
마티는 마지못해 교회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 중에서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하고 있었다. 기도드릴 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떄 그 젊은 정치가 마티 바덴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고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을 수가 없구나. 나는 신발만 잃어버렸으니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되지만 이렇게 남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그 불구자의 감화가 마티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다. 그 후 그는 언제나 감사의 생활을 했다. 그는 항상 감사할 조건들을 찾았다.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독일의 재무장관이 되어 국가를 위해 크게 일하는 정치가가 되었다.
항상 감사
스펄젼은 40세 이후부터 관절염의 일종인 통풍 때문에 몹시 시달린 사람이다. 지금까지 아스피린이나 혹은 마취제가 발달해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 통증을 고스란히 참고 견 뎌야 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통풍 때문에 기동을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데 믿음좋은 그의 교회 신자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 통풍으로 몹시 아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이에 스펄젼이 대답하기를 "예, 감사하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이 병이 나은 후에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감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신자는 조용하지만 그러나 무게 있는 말로 이렇게 스펄젼 목사에 게 충고했습니다. "목사님, 지금 몸이 아플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그 아픈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그
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 말에 스펄젼은 참으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자신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표현하는 감사
일본의 하천풍언이 안질에 걸려서 눈이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던 적이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수술을 하고 실명을 했다가 눈을 뜨게 되었는데, 처음에 눈을 떴을때 바늘 구멍만큼 희미하게 뭐가 아물아물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윤곽이드러나자, 부엌에서 조그마한 창문으로 열린 하늘을 바라보며 하천풍언을 황홀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만 살았던 그 소경이 시력을 회복하면서 자기가 시력을 가졌다는사실에 너무도 감격을 했습니다. 이런 일은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하지 말고 감사하다고 자꾸 표현을 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잊지 말아야 할 감사
인류 조상인 처음 사람 아담은 빵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했는지 모른다.
먼저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 그것이 잘 자라게 가꾸어서 거두어들인 후 갈아서 가루로 빻
은 후 반죽을 해서 다시 굽는 등 보통 15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빵집에 가서 돈만 내면 먹고 싶은 여러 종류의 빵을 사 먹을 수 있다.
이렇게 15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도록 되어진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맨 처음 단 한 사람의 인간은 자기가 걸칠 옷을 만들기 위하여 대단히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양을 키워 붙잡아서 털을 깍고, 짜서 꿰매는 등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은 양복점에 가서 돈만 내면 마음에 드는 양복을살 수 있다.
혼자서 해야 할 일을 힘들여 많은 사람이 대신하므로 옷을 입을 수 있음을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감사할 줄 모르는 투정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시103:2)
몇년 전 어느 잡지에 불평하는 버릇을 갖고 있었던 벤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청년의 얘기가 실렸습니다.
그는 날씨에 대해서 불평하였고 가족과 친구의 흠을 잡았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기분을 상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다음과 같은 운문을 읽었습니다.
"내려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불평하거나 슬퍼할 시간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끊이 없이 그에게 쏟아 부어 주시고 계셨던 선물들을 못보고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습관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가 나거나 불평하고 싶어질 때마다 멈추고는 그가 즐기고 있는 많은 좋은 것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곤 하였습니다.
이것은 효력이 있었습니다! 못마땅하여 입을 삐죽거리기보다는 찬양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불평스러운 마음을 훨씬 쉽게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태도가 모든 믿는 사람들의 성품이 되어야 합니다.(시34:1, 엡5:20)
우리가 불평을 말하는 것보다 축복을 헤아리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되면 삶의 모든
것이 다른 모습을 띠게 됩니다. 감사를 드립시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선물과 우리가 가진 모든 소유물을 생각할 때 불만으로 가득찬 불평의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지요.
감사하는 삶.2
미국의 기독교 교단 중 "그리스도 연합교회"가 있다. 이 교단에서는 하루에 열 두번 감사할 것을 강조한다.
<1>아침, 새로운 시간을 주심에
<2>아침 식사에는 음식을 보며
<3>일터에 가면서 움직이는 기쁨에
<4>일하는 보람에
<5>일하면서 비판이나 압력을 받을 때는 도전을 주심에
<6>칭찬을 받을 때는 만족함에
<7>점심에는 대화할 수 있는 동료에
<8>일과 후 작은 성취에
<9>귀가 후 가족을 보며
<10>신문,TV를 보면서 여가를 주심에
<11>잠을 주신 은혜에
<12>꿈 속에서는 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의 조건
식인종들의 세계로 몸을 던진 어느 선교사는 자신의 몸을 주를 위하여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기도와 훈련 끝에 타오르는 선교의 꿈을 안고 식인종들이 우글거리는 남아프리카로 향한다. 남아프리카에 도착한 선교사 부부의 각오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루는 그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식인종들이 그들을 잡아먹고자 모여서 이들의 집에 쳐들어 온 것이 아닌가!
이 때 이 선교사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것이니 내가 직접 나의 살을 잘라서 주자는 마음으로 그들의 추장에게 갈을 달라하여 자신의 왼쪽 허벅지를 잘라서 주었다. 이 때 그들이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누구이길래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느냐는 의아심을 갖고 자신들끼리 의논을 하다가 과연 남다른데가 있구나 하고 추장부터 와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더라는 것이었다. ... 다행이도 선교사가 잘라준 다리는 고무다리였다는 것을 모르는 그들을 선교사는 구원 시켰고 또한 하나님께서 감사하기를 교통사고로 인하여 죽기까지 결심한 나를 이렇게 살리고 고무다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눈물을.....
감사는 못할진대 이런 자만은 되지 말자
1. 두루 다니며 한담하며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잠20:19)
2. 횃불을 둘러 띤 자 (사50:11)
3. 어정거리며 돌아다니는 자 (렘2:36)
4. 타락한 딸 (렘31:22)
5. 둘러싸고 괴롭히는 자 (호7:2)
6.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민족 (롬10:3)
7. 게으르고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드는 자(딤전5:13)
* 감사는 못할진대 이런 자만은 되지 말자 *
1. 두루 다니며 한담하며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잠20:19)
2. 횃불을 둘러 띤 자 (사50:11)
3. 어정거리며 돌아다니는 자 (렘2:36)
4. 타락한 딸 (렘31:22)
5. 둘러싸고 괴롭히는 자 (호7:2)
6.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민족 (롬10:3)
7. 게으르고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드는 자(딤전5:13)
감사 격언 모음
성령충만이 감사충만(토리박사)
감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는 자는 축복의 열쇠를 손에 쥔 자이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나듯이 모든 일에 감사가 들어가면 형통합니다. 아무리 주어도 감사할 둘 모르는 사람은 그가 개인주의자인 까닭이다. 환난과 슬픔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으로 변화시킴니다(크리소스톰)감사는 여러분의 축복에 자물쇠를 채우는 비결이다(조용기)감사는 하나남께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의 행위이다.(손기태)감사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인생의 형별은 감사가 없는 것이다(내촌)
참 성도는 모두 감사로 인생을 승리한 자들이다(손기태)감사는 성령 충만의 증거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제사 행위요천국민의 생활 특징이다.
감사치않는 자녀를 두는 것은 독사의 이빨보다 더 날카로운 찌르는 가시이다(섹스피어)
상원의원의 감사방식
성 구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로마서 1: 21)
정성껏 이발을 끝낸 이발사에게 목사는 감사하다고 하고 이발비가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발사는 "목사님, 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에게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한사코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는 하는 수 없이 그냥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발사는 가게문을 열 때 목사가 보낸 감사 편지와 꽃다발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 이발을 끝낸 경찰관에게도 역시 "경관님, 저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합니다. 경관님에게는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발사는 경관이 보낸 감사 편지와 도너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 그 이발관에 상원의원이 한 명 찾아왔습니다. 이발을 끝낸 상원의원에게 "이발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저는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였고 상원의원은 그냥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발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명의 상원의원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잊지 않는 사람
물에 빠져 죽게된 사람을 머리칼을 잡아 끄집어내 살려주었더니 다른 사람은
메달을 달아주며 칭찬하는데 살아난 사람은 그때 머리칼이 아파서 혼이 났다고
두고 두고 원망하더랍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대로
은혜를 잊기가 쉽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Springfield에 있는 위튼벌그 대학에서는 34년 전에 200달러를
갚지 못했던 학생한테서 백만불을 기부받은 일이 있는데 그 분은 대 Power회사의
사장인 Dr.Stanley Hanley입니다. 그가 성공한 것은 바로 이 감사를 잊지 않는
성품때문일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골로새4:2)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제일 가르
치기 어려운 수학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문제이다"라는 서양격언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새 날에 허락하신 ...감사
여호와께서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시118:1)
우리는 새 날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뜻을 적어 보라. 그러면 시편 기자의 이 말씀이 귀중하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감사의 뜻 :
주님! 나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얼마되지 않는다고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보니 나는 주님께로부터 모두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7명중 한 소년만 감사
에드워드 스펜서는 미국 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1860년 9월 8일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게렛 신학교 학생으로 있었던 스펜서 군은 밤중에 친구의 고함소리를 듣고 눈을 떴습니다. 가까운 미시간 호수에서 큰 연락선이 조난되었다는 것입니다. 스펜서는 더 생각할 것 없이 미시간 호수까지 달려갔습니다. 385명을 태운 여객선이 암초에 부딪쳐 침몰한 것입니다. 그 중 287명이 익사하는 큰 사고였습니다. 스펜서는 고등학교 시절 수영 선수였으므로 수영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심한 바람과 높은 물결을 뚫고 호수로 뛰어들어가 한 사람씩 구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열여섯 명을 쉬지 않고 육지로 끌어냈습니다. 아무리 수영 선수라도 그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는 너무 지쳐 육지에 쓰러졌으며 최후의 힘까지도 다 소비한 상태였습니다. 그 때 곁에서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파도 속에 허우적거리는 또 한 명의 조난자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스펜서는 정신없이 일어나 다시 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날의 무리가 화근이 되어 그는 병상에 눕게 되었고 7년 후 3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신문 기자의 방문을 받고 그 날의 소감을 질문받았을 때 그는 힘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날 밤 내가 물에서 건져내어 생명을 되찾아 준 사람은 17명인데 나에게 감사를 표시한 사람은 그중 한 소녀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 소녀는 지금까지 7년 동안 크리스마스마다 감사의 카드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는 16명보다도 이 한 명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위로를 받습니다."
23명을 구출했으나...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배 한척이 침몰된 일이 있었다.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호수에 빠져 죽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북서부 대학의 한 학생이었던 수영 선수 한 사람이 사력을 다하여 23명을 구출해낸 일이 있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날 R.A.토레이 박사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는 오래 전 미시간 호수에서 있었던 배의 침몰 사고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그때 젊은 대학생이었던 수영 선수의 용기와 인간애를 칭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의 그 젊은이가 노인이 된 채 앉아서 그 설교를 듣고 있었다. 설교가 끝난 후 토레이 박사는 그 장본인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때 그 사건을 통하여 가장 인상깊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단 한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일이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의 생을 훈훈하게 지펴주는 불씨와 같다. 원망과 불평과 불만이 편만한 세계는 한대 지방과도 같다. "감사합니다."
라든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등의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우리 네 삶의 주변을 꽃향기처럼 향기롭게 해줄 수 있다.
감사 주일의 유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종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감사의 마음
「일본의 테레사수녀」로 불리는 다마키여인은 평생을 한센씨병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다.요양원을 만들고 고름이 나는 환자들의 피부를 치료하다가 그만 자신도 한센씨병에 걸리고 말았다.그녀는 한센씨병에 걸린 것을 알고 이렇게 기록했다.『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하다.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다.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하나님은 내게 병을 주어 여러가지 감사의 마음을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감사의 힘
감사하면 「불행한 상황」이 달라진다.어떤 처녀가 반지를 잃어버리고 집에 와서 분노한 모습으로 불평했다.그녀는 반지 한 개를 잃어버림으로써 행복과 자존심,생활까지 다 잃은 듯 끊임없이 원망을 쏟아놓았다.이런 딸을 본 어머니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 상황이 반전됐다.『얘야,손가락을 안 잃어버린 것을 감사해라.네 손가락은 그대로 있잖니.손가락마저 잃어버렸으면 어떡할 뻔했니? 반지야 다시 살 수 있지만 손가락은 살 수 있겠니?』
감사하는 삶
미국의 기독교 교단 중 「그리스도 연합교회」가 있다.이 교단에서는 하루에 열 두번 감사할 것을 강조한다.△아침,새로운 시간을 주심에 △아침 식사에는 음식을 보며 △일터에 가면서 움직이는 기쁨에 △일하는 보람에 △일하면서 비판이나 압력을 받을 때는 도전을 주심에 △칭찬을 받을 때는 만족함에 △점심에는 대화할 수 있는 동료에 △일과 후 작은 성취에 △귀가후 가족을 보며 △신문,TV를 보면서 여가를 주심에 △잠을 주신 은혜에 △꿈 속에서는 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한 에디슨
사람은 은혜를 입고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하나 불행한 일이나 역경속에서 감사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그러나 징정한 감사는 역경에서도 감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감사할 때 우리의 불행을 행복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어 주신다. 토마스 에디슨은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기차에서 신문팔이를 하며 틈틈이 공부하였다. 그는 열차 한 모퉁이에 실험실을 만들어 놓고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기차가 흔들려 실험실의 약품이 쏟아져 기차에 불이 붙었다. 노발대발한 차장은 에디슨을 열차 밖으로 내동댕이쳐 버렸다. 에디슨은 뇌를 다쳐서 귀가 멀고 말았다.그러나 에디슨은 낙심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여 위대한 발명왕이 되었다. 후에 그는 "나는 그 때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귀에 딴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라고 하였다.감사는 기적을 창조한다.
괴롭지 않았더면
일본에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이질이라는 질병으로 뇌성마비를 얻어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눈꺼풀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된 사람, 우찌무라 겐죠가 있다. 그의 몸은 머리만 크게 발달하고 나머지는 어린아이의 것 그대로인 채 흐느적거리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몰골이다. 그에게는 어머니 한 분 밖에는 없었는데 어머니가 성경책을 머리맡에 펴두고 머리를 받혀놓고 나면 돌아오기까지 그 장 만을 보아야 하는 불편 때문에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어느날 고린도전서 12장을 읽어내려가던 중이었다. 주님이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하신 말씀을 자기에 대한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바울은 자기처럼 눈에 박힌 가시를 제해 주시기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한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어떤 사람을 찾아가도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눈꺼풀을 이용해서 자판을 집어 갈 때 윙크하는 방식으로 복음적인 시를 지어 두 편을 발표하였다. 뒤늦게 책과 방송을 통하여 완악한 일본인을 회개시키는 사도로 쓰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선택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변모되기 까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먼길을 마다 않고 자신을 회개시키려 찾아온 목사님 덕분이었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회고적인 시 "괴롭지 않았더라면"이다.
만일 내가 외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 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감사할 조건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죄인도 하는 것이다. 성도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는 감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감사는 스스로 걸어갈 힘이 없을 때 우리를 도우실 끈이 된다.
긍정적인 마음의 감사
영국의 트렌취 감독은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취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삶이란 왜 이렇게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작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맨 먼저 보는 주님의 얼굴
만일 큰 부와 좋은 건강과 복되고 기쁜 우리 주님과의 사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비록 많은 사람들이 부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날마다 구원의 기쁨을 맛보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남은 인생을 기꺼이 검소하게 살기로 선택할 것입니다. 과거에 나는 불가지론자로서 내 사업을 번창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끌려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붙잡힌 바 되었습니다.“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찬송가 작사가인 화니 크로스비는 무려 8,000여 곡 이상의 복음성가를 작사했습니다. 불과 생후 6주만에 장님이 되었지만, 그녀는 한번도 그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나는 주님께서 그렇게 많은 은사를 당신에게 주셨으면서도 시력을 주시지 않는 것이 섭섭합니다”하고 한 목사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재빠르게 대답하기를“내가 태어날 때 한 가지 청원을 할 수 있었다면 장님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하셨지요.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요?
”라고 놀란 목사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크로스비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눈으로 처음보고 기뻐하게 될 것이 천국에서 뵐 주님의 얼굴일테니까요.”
메뚜기 때와 감사
미국 역사에 기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미네소타 주의 이야기입니다. 1874년부터 77년까지 3년에 걸친 가뭄과 심한 메뚜기떼로 농작물은 전멸하고 대 경제공황에 빠졌습니다. 1877년 4월 27일 주지사 필스베리(Pillsbury)씨는 모든 주민에게 감사기도의 날을 선포하였습니다. 농작물이 전멸하였으나 몸이 살아 있고 앞으로도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미네소타 주민 전체의 감사기도가 하늘을 덮었습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은 들판을 덮었던 메뚜기떼가 며칠 사이에 전부 죽은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설명을 시도하나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유명한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이 위성턴 시를 지나가시다가 한 흑인 청소부 청년이 있는 대로 욕설을 퍼붓고 짜증을 부리면서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곁에 다가가서 등을 두드리며 "여보게, 자네는 하나님이 자네에게 맡기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가 없소? 청소를 할때 베에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하듯, 괴테가 작품을 쓰듯,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일을 하는 동기가 선할 때, 그리고 올바른 목표 앞에 삶의 촛점을 맞출때, 내가 하는 그 일을 갑자기 보람이 있습니다. '오! 주님, 나에게 이 사역을 주신 것을 감사 합니다. "똑같이 하는 그 일인데, 그 지겨운 일인데 주께서 내 마음에 긍지를 심어 주시는 그 순간 내 입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오기 시작힙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마음 속에서부터 흘러나기 시작합니다. 성령이나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주님, 오늘 아침도 일어나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그러면서 그 일에 뛰어드는 그리스도인의 자부심! 그리스도인의 긍지!여기에 낙심을 이기는,그리고 독수리처럼 하늘을 비상하며 삶을 창조와 능력으로 바꾸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활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과 용기와 이 비전! 이 삶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세가지 감사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지구촌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활조건이 72가지가 있었고 절대필요한 것은 18가지가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필요한 것은 5백가지이며 절대필요한 것은 50가지라고 사회학자들은 분석한다.필요한 것과 절대필요한 것을 더 많이 누리며 사는 현대인들이 과연 60년 전보다 더 행복할까.오히려 감사할 줄 모르며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파핀은 이렇게 말했다.『나는 세가지로 인해 늘 감사한다.첫째는 일용할 양식이요,둘째는 몸의 건강이요,셋째는 소망이다』
신발은 없으나..
지금부터 약 백팔십년 전 독일의 유명한 정치가 마티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독일의 재상으로 있다가 그에게 자유적인 사상이 있다고 해서 정계에서 물러나와 고생을 하였는데 심지어는 외출할 때 신발이 없어서 그냥 외출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느날 맨발로 예배당에 들어가다가 두 다리가 없는 불구자가 예배당 문에서 구걸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 나는 얼마나 감사한다 비록 신발은 없으나 이렇게 성한 두 다리를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하며 들어가 감력한 감사를 드렸는데 그날처럼 은혜받은 날이 없었다 한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절단하는 독일에서 한 중년의 성도가 대학병원의 수술실에서 혀의 암 때문에 혀를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취 주사를 손에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며 "마지막 남길 말씀은 없읍니까? " 라고 했습니다. 글로 쓸 수는 있겠지만 혀를 사용하는 말은 이것이 최후의 말이 될 것입니다. 간호원,조수,견습의사들... 둘러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심각했고 잠시 침묵과 긴장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만일 나라면, 만일 내가 한마디할 수 있는 말만이 남아 있다면 누구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드디어 입이 움직거리고 눈에서는 두줄기 눈물이 흐르더니 다음과같은 말을 세 번 되풀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잃은 것과 가진 것
존 밀턴의 감사"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대전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 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어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합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탑니다. 그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합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결연히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만 눈을 돌릴 때 그곳에는 오직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잃은 것을 넘어 가진 것을 세어 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
영국의 청교도 시인 존 밀턴(JOHN MILTON)은 한창 일할 나이에 눈이 어두워져 그가 44세때에는 완전히 소경이 되었다.그럼에도 그는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하기를, "주께서 내 육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볼 수 있도록 신령한 눈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역경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저 유명한 [실락원]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살전 5:18).
추수 감사절
1620년 청교도들이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의 분리파에 속하는 사람들이 박해를 견디다 못하여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네델란드로 도피를 하였으나 그곳에서도 아르미니우스파의 반대에 부딛쳐 그들은 1620년 12월에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 메사추세츠 주에 상륙하여 익숙지 못한 기후와 굶주림과 싸우면서 인디안으로부터 배워서 가꾼 옥수수와 호박 등을 처음 수확하였을 때에 그 고마움을기념하기 위하여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제로 지켜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요 역사입니다.
헬렌 켈러여사
헬렌 켈러가 쓴 `3일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감사
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놀을 보고 싶습니다.둘째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셋째날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 찬 표정을 보고 싶어요.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헬렌 켈러의 소망은 지극히 소박한 것이었다.우리가 매일 누릴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었다.눈을 감고 지난 1년을 회고해 보자.내가 받은 복이 얼마나 많았던가.감사의 잔이 차고 넘친다.단지 욕심 경쟁 시기 질투가 감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