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달설교

어버이주일 설교-네 부모를 공경하라 포함 18편

공 상희 2011. 5. 6. 13:35

네 부모를 공경하라!"

성경 : 마가복음 71~14절 

 

지금도 그러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생활하는데 껄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긴밀히 조직된 집단으로 대단히 충성스러운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미세한 것까지 전통의 모든 것에 복종할 것을 서약했으며, 의식적 정결에 철저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세 외에 그들의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바치기로 맹세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죽은 동물의 시체에 접촉한 자들에게 손대지 않았으며, 병으로 더렵혀진 것들과 어떤 관계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사실상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어렵게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도 괴롭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지 않은 자들을 멸시했으며 오만하고 거만스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만이 하나님과 그분 말씀의 유일한 해석자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바리새인들은 편협되고 독선적이고 아집과 오만으로 가득한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라고 해서 다 나쁘고 삐딱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 중에서도 어떤 바리새인은 기독교운동 초기의 구성원이 되었으며(6:7), 신약성경에 나온 위대한 자들 도 여럿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31절 이하에 나오는 니고데모같은 사람은 구원의 비밀을 알고자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그 시체를 달라고 하여 예수님께 몰략을 바르고 장사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534절에 바리새인 가말리엘이 나옵니다.

그는 당시 율법에 능통한 박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담대하게 증거 한다고 분개한 공회가 사도들을 체포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가말리엘은 오히려 꾸짖으면서 신중히 행동할 것을 주장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인물 중에 사도행전 91절 이하에서 나오는 사울은 어떻습니까?

그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당대에 가장 훌륭했던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제 1, 2, 3차 전도 여행을 통해 유럽을 변화시켰던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옥중서신을 비롯하여 13권의 복음서를 기록하기도 한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아무리 이단같고 나쁜 무리의 집단들이라고 할지라도 나만 옳고 상대방은 나쁘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사고는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시각이 아닙니다!

사고가 열려진 그리스도인의 시각은 바리새인과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바리새인같은 무리들로부터 좋은 점을 발견하여 배우려는 사람일 것입니다.

 

아무튼, 이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러한 부분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혼동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단 그 시대만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아무리 신앙 생활 잘하려 하고, 부모를 잘 공경하려 한다 할지라도 바리새인과 같은 세상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훼방하고 혼동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어디 세상뿐이겠습니까?

우리 주위에는 바리새인같은 인생들! 바리새인같은 그리스도인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로 인하여 혼동되고 힘들어하는 부분도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지난 8일은 어버이 날이었으며,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

이렇듯이 연일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이 가정을 잘 지키고,

어른을 잘 공경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닐 것입니다!

 

신문 지상에 보면,

자식이 부모를 불질러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어른에게 함부로 덤비고, 대들고, 때리고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고 난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제도의 법이 아닙니다!

법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옆 사람을 보고 기준을 삼고,

대중문화를 통해 보고 듣는 것으로 기준을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무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사회의 법이 무시되고,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나마 무디어진 가슴에 양심이라는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마저도 위태해지는 조짐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본문에 등장했던 현대판 바리새인들 때문입니다.

그 바리새인들 같은 세상 사람들, 바리새인들 같은 엉성한 교인들 때문에 멀쩡하고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이 혼동되며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들도 자신들 옆에 널려있는 그 바리새인들 같은 사람들을 보고 기준을 삼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세상의 법에서 찾듯이,

신앙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인 하나님의 법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것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커다란 대형 교회에서 기준을 찾으려 하고,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기준이 되어가고 있고,

이리저리 다녀보았던 닳고닳은 교인들이 순수한 신앙인들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타고 모방의 풍조가 만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의 신령한 법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히 외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이 이 모양인데,

어떻게 어른 공경이 잘되고, 부모 공경이 잘되리라고 생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 가정의 달은 이미 빛 바랜지 오랩니다!

요즈음은 법이 살아있고, 법이 중시되는 가정이 아니라

"그저 아무러면 어떠하냐? 아무일 없기만 바란다"는 식의 가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주위를 한번씩 둘러보세요!

과연 자기 자식을 붙들고 시시콜콜하게

"인사는 이렇게 잘해야 한다",

"어른한테는 항상 존칭을 사용해야 한다",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어른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하는 식으로 가르치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잘 가르치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가정들이 다 이런 것들을 별로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나 할머님들께서 손주들을 대하는 모습도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꼭 부모들이 하는 모양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어요!

그것이 뭐 중요하냐는 식이지요!

그러면서 말하기를

"! 돈이나 잘 벌고, 잘먹고 잘살면은 그만이다!"

"인사좀 안하고, 말 좀 안 들으면 어떠냐?"는 식이란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 부모들 자신들로부터 시작해서 자녀들에게까지 한 가지 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리새인들 같은 인생들과 문화로부터 오염된 "외식의 병"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어른들에 대한 사랑이나, 부모에 대한 사랑까지도 잘 모르게 된 것입니다!

"사랑?"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그것이 뭐 말라비틀어진 것이냐고 할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까지 이런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조차도 사랑에 대해 관심도 없고,

참 사랑의 중요성을 모르는 아이들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가 부모가 죽은지 며칠이 되었는데도, 그 죽은 시체 옆에서 몇날 며칠을 잠을 자고 살아갔던 것이지요...

진정 부모를 사랑했다면 그러겠습니까?

 

사랑을 모르는 아이들은 이별도 모릅니다!

이별을 모르니 슬픔을 알리 없습니다!

 

이별을 안다는 것은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있는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특히 편모 가정!

편부 가정 아이들에게 말입니다.

 

너 돈이 중요하냐! 사랑이 중요하냐구요!

그러면 십중팔구는 "사랑"보다는 ""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 보면서 말세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는 어린 나이부터 사랑을 잘 알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알만한 나이에 사랑을 줄 수 있는 부모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사랑을 배우고, 느끼고 할만한 대상,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옆에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필요성이라든지,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대신 그들에게는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야 하는 문제가 더 시급했던 것이지요.

학교가게 되면 점심 먹는 문제,

학용품 준비해가야 하는 문제,

정상적인 가정 아이들을 보면서 가지게 되는 컴플랙스(complex), 즉 복잡한 문제들이 그런 병을 키우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종합적인 것들이 바로 현대판 바리새인같은 사람들과, 바리새인 같은 대중문화 때문에 멍들고 물들어 가게 된 원인들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아이들은 가슴으로 사랑을 알고 가슴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가페 사랑같은 조건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반드시 조건이 있는 사랑을 원하고,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조교제 같은 나쁜 모습들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돈으로 주고받는 사랑만을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당연히 가슴보다는 입술로만 나불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절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아주 똑같습니다.

요즈음 아이들 보세요.

 

그저 돈만 있고 먹을 것만 있으면 그만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필요 없고, 엄마 아빠도 필요 없습니다.

돈만 있고 맛있는 피자만 있으면 울지 않고 저희들끼리 잘 놉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나 할아버지 할머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즈음에 어른 노릇 하려면은 돈이 있어야 혀!"

맞는 말입니다!

 

돈 없이는 아무리 자신의 손주고, 아들녀석들이라 해도 미움 받을 수밖에 없어요!

돈이 있어야 대우받고, 대접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오늘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가서 한번씩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너 아빠 엄마가 돈이 없어서 돈을 많이 못줘도 사랑할 수 있니?"라고요...

 

그러면 우리가 이런 병폐를 이제부터라도 고치려면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의 지식으로 자녀를 가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교육에 자녀를 내어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교육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기본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만 배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어떻습니까?

세상 교육이 마치 필수과목인 마냥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만 그렇고 학교 선생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들이 더합니다!

집사님이고, 장로님이면 뭐합니까?

입시철만 되면은 자기 자녀들보다 먼저 흔들리는데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의 자녀들이지만, 여러분들이 자녀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것 아니잖습니까?

그렇다면 너무 강권하지 마세요!

 

그러면 우리 부모들이나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입니다.

이러다 보면, 부모나 선생은 어디까지나 코치(coach) 이상이 되면 절대 안됩니다.

부모나 선생은 코치로 남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그 재능이 잘 성숙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썩은 지식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면서 스스로 조명 받도록 이끌어주라는 말씀입니다.

믿습니까?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은 고등학교 3학년 정도가 되면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런 아이들은 절대로 우왕좌왕하지 않습니다!

진로 때문에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자신의 재능대로 나아갔고,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았으니 어른을 잘 공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에게는 조건 있는 사랑보다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식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은 필수란 말씀입니다!

믿습니까?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집에 가서는 선택을 필수로 바꾸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정을 바로 세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정을 세우는 집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다고 하였습니다(725)!

 

그렇습니다!

하나님 사랑 실천하여 반석과 같은 가정 만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5:16)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의 보금자리이다.가정은 세상에서 지치고 깨어지고 상처입은 심령들이 다시 재충전 받고 치유받는 곳이다.지난 주간에는 'I love you' 컴퓨터 바이러스가 기성을 부려서 수 백만 대의 컴퓨터를 못 쓰게 만들었다. 다행히 범인을 잡았다고 하지만 그 피해액이 10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최근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오히려 가정을 파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을 본다. 잘못된 사랑의 개념과 변질된 사랑의 바이러스가 자녀교육과 부부관계와 부모관계를 오히려 파괴하고 있다. 요새 보면 잘못된 TV 쇼나 흥미와 상업위주의

매스컴들이 가정을 해치고 파괴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은 어머니주일 또는 어버이주일로 지키는 날이다.그래서 부모의 사랑과 부모에 대한 공경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세상이 많이 혼탁 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진실되고 순수한 인간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다.

 

 

 

오늘 본문을 한 번 따라 읽겠다.'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1) 첫째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라고 말씀하고 있다.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하는 것은 인간의 윤리나 도덕 이상으로 하나님의 명령이다. 인간이 인간 되기 위한 조건이며 마땅한 도리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말하자면 부모 공경이 신앙의 시금석이 된다는 말이다. 그 사람의 부모에 대한 태도나 공경을 보아 그 사람의 신앙을 측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2) 오늘 본문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다.그럼 공경하라는 뜻이 무엇인가? 공경이라는 말의 원어는'무겁다'는 뜻이다. 우리 몸의 내장 중에는 가장 중요한 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우리 몸의 지체가 다 중요하지만 간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이 망가지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그만큼 부모를 귀중히 여기고 잘 보살피라는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경하여야 하는가?첫째로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하나님이 우리 부모를 세우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대신해서 가정에 부모님을 허락해 주신 것을 받아들이고 부모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해야 한다. 골로새서 320절에는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했다.

 

둘째로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고 보답하는 것을 말한다.짐승의 세계에서도 어려서는 어미가 먹이를 구해서 먹여주고 길러주지만 어미가 늙으면 새끼들이 커서 어미에게 음식을 갖다 먹이는 것을 볼 수 있다.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자기를 낳은 부모에게 감사하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면 금수만도 못한 것이다.

셋째는 부모를 기쁘게 하고 실제적으로 돌보는 것을 말한다.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의 라이벌되는 사람이 아브라함을 모독하려고 아브라함 링컨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이었고 아브라함 링컨도 교육도 받지 못한 촌사람이라고 공격을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은 오히려 나의 아버지가 구두 수선공으로 자기 직업에 충실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러한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주어서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를 조금도 수치스럽게 생각치 않았다.어떤 아들은 대학 졸업식에 누추하게 찾아온 아버지를 누구냐고 친구들이 묻자 우리 집에 일하는 머슴이라고 했다는데 이런 자식이 성공하고 축복을 받지 못한다. 잘 나도 내 부모요 못나도내 부모인데 자기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부모를 기쁘시게 하며 실제로 어려운 것들을 보살펴드리고 필요한 것들을 공양해드리며 마음 정성껏 섬기는 자녀가 복을 받는 것이다.우리가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부모 공경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세상을 떠나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는 인간애와 효성을 보이셨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일 중에 혹 믿지 않는 부모가 계시면 그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처럼 귀한 것이 없다. 그리고 자녀들도 믿음 안에서 바로 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하며 열심히 살아갈 때 그것이 가장 귀한 효성이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성경에 보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한 사람들은 모두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며 살던 사람은 모두 저주를 받게 된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는 대효의 종교이다.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듯이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바로 공경하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공경과 자녀 사랑은 단순히 자기 부모와 자기 자녀만이 아니라 남의 부모와 남의 자녀도 자기부모처럼 공경하고 자기 자녀처럼 사랑하는데서 기독교의 부모 공경과 자녀 사랑이 실현되는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에베소서 6:13, 출애굽기 18:1-12)

 

아무리 시대가 지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요구는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급변할지라도 이 세상을 참으로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지혜라고 나는 믿습니다.

 

솔로몬이 일 천 번제를 마치고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요구하는 바를 주시겠다고 하자 백성들을 바르게 통치 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분별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만 있다면 자신은 인생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기쁘시게 했습니다. 패역하고 혼탁한 세상, 가치관이 허물어진 패역한 세상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어떤 것이 참된 삶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일이 어버이 날입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 부모님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다가 이 날만 꽃 달아드리고 맛있는 음식과 선물 사 드리며 요란 떠드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을 1년에 하루 생색내기로 다 갚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조금만이라도 기억하고 감사하자는 의미에서 이 날이 정해진 것은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모공경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주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부모 공경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현대인 성경에는 율법에 대한 이름이 세 가지 나옵니다. '하나님의 법''예수님의 법', '모세의 법'이 그것입니다. 율법을 '하나님의 법'이라고 부를 때는 주로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십계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는 법입니다. 십계명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인간을 이렇게 가르치고 싶다' 하는 뜻을 표현한 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십계명을 주실 때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든 백성이 들을 수 있는 큰 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이 법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두 돌 판에다 이 법을 친필로 새겨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법을 언약궤에다 넣어서 보관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선포하셨을 뿐 아니라, 친필로 써서 그것을 언약궤에 보관하게 하실 만큼 십계명은 그 만큼 중요한 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폐지될 수 없는 법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아예 폐기해 버리셨다고 가정해본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양심에 있던 도덕적인 인식이 다 사라졌을 것이고, 이 세상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을 재해석하고 적용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그대로 받아서 순종하셨으며 그 계명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완성하신 그 계명을 똑같이 행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는 제 5계명을 철저하게 순종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예수님은 실질적인 가장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을 부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33년의 전 생애 중 30세가 되기까지의 오랜 세월 동안 그 힘든 목수 일을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효는 십자가 위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도 어머니 걱정을 했습니다. 어머니를 혼자 남겨 두고 가는 것이 너무 걱정스러워서 다소 생활의 여유가 있는 그의 제자 요한에게 자기 대신 그 어머니를 부양해 달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19:26-7).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법' 아래 놓여 있으며, 동시에 예수 십자가의 거룩한 피로 구속함을 받은 백성으로서 '예수님의 법' 아래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순종해야 하며, 예수님의 명령을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은 시대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변하는 법이 절대 아닙니다. 시간을 초월하고 세계를 초월해서 영구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부모 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경남에 있는 어떤 가정에 70대 초반 정도의 어머니 두 분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기사입니다. 치매 현상이 있던 분들인데 자녀들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에 뛰어내린 것입니다. 아무리 치매에 걸렸다 해도 노인들에게는 눈치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자기를 얼마나 불편해 할까?'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따금 자녀들이 그런 내색을 할 때면 모른 척 하고 어쨌든 참아보려 애썼지만 급기야는 마음속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차라리 내가 죽자. 내가 죽는 게 자녀를 위하는 길이다.' 하고는 뛰어내린 것입니다. 그러니 그 누가 나이 드신 부모님을 제대로 잘 공경한다고 큰소리 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어머니를 모시고 있지만, 절대로 내가 어머니를 잘 공경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전히 저는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공경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남겨 두지 않고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하면 좋고, 상황에 따라서는 안 해도 괜찮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신명기 516절을 봅시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은 이 명령에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으셨습니다. 무조건적인 명령인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이 명령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 가장 엄중한 벌을 내리시겠노라 선언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115, 17절을 보십시오.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돌로 쳐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3계명을 어긴 사람들에게 주는 형벌입니다. 레위기 24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을 함부로 모욕하는 사람은 돌로 쳐죽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훼방하고 거역한 죄나 하나님 자신을 훼방한 죄를 똑같이 다루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로 볼 때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 공경을 부담스러운 명령으로만 알면 안 됩니다. 5계명에는 또 다른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516절을 다시 한번 봅시다.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는 무조건적이고도 엄중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절대 거기에서 그치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순종하여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613절까지 읽겠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십계명 중에서 사람들에게 주신 계명이 여섯 개인데 그 중에서 순종할 때, 약속이 보상되어 있는 계명은 바로 제 5계명인 것입니다. 물론 부모 공경을 어떤 보상을 위한 방편으로 여기라는 말씀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에게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저하지 않고 계십니다(6:1-3).

 

 

그렇다면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1. 감사하라

 

"공경하라"는 말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자녀는 부모한테 이중적으로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빚입니다. 부모가 없었으면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부모님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지고 있는 또 한가지 빚은 양육 받은 빚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들에게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의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줄 것인지만, 아들이 정말 바보가 되기 전에는 유산을 물려줄 수 없다." 이 소식을 들은 랍비가 그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유언을 남겼군요. 당신의 아들이 정말 바보가 되지 않는 한 재산을 물려줄 수 없다니,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갈대를 입에다 물고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마루 위를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것이었다. 그의 행동은 자기 아들이 아이를 낳아 그 자식을 귀여워하면 자기의 전 재산을 상속시켜 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자식이 태어나면 인간은 바보가 된다'는 속담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모님은 우리가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미성년 기에 수십 년 동안 돌보고 먹이고 가르치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기까지 적어도 20년 이상 부모의 은덕을 입어야 합니다. 동물 가운데서 인간처럼 오랫동안 부모 밑에서 보호를 받는 동물은 없다고 합니다. 2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부모의 은덕을 입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공경하라"는 말에는 무엇보다 감사할 줄 알아야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2. 순종하라

 

시대가 급변하면서 자녀들은 부모들의 가르침이나 권면에 세대차이를 느껴서 잘 들으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바로 성인이 된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신 연로하신 부모에게 순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고 방식을 갖게 되기 쉽습니다. 부모님의 말을 체면상 들어주기는 하지만 자기에게 어떤 도움이 될 만한 말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의 말이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심지어 우리가 이런 입장에 있을 때에라도 부모를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펜실바니아 주립대학의 [워너 샤이] 박사가 30년 동안 4천명을 대상으로 해서 "나이와 인지능력의 변화의 상관관계"를 연구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나이를 먹어 가면서 지능이나 감각 따위가 어떻게 변하느냐 하는 것을 연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내놓은 결론은 참 놀랄만한 것입니다. 특별한 질병이 있어서 신체가 약해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75세까지 인지능력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75세까지는 머리가 둔해진다든지 말이 어눌해진다든지 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75세를 넘어간 사람이라 해도 현저하게 저하되기 시작하는 것들이라고는 기억력이나 정보처리 능력, 언어감각, 공간감각과 같은 것들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75세가 넘어가도 저하되지 않고 오히려 더 증가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혜'라는 것입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오랜 인생 경험을 통해서 축적된 지식을 이용하여 어떤 사건을 놓고 판단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지혜는 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더 발전할 수도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18장에 보면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이야기를 한 장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그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200만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어 광야를 여행하는데, 이드로가 와서 보니 모세가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너무 피곤하고 지쳐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한가지를 제안합니다. 출애굽기 18:21-23절을 보겠습니다.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 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 부장과 백 부장과 오십 부장과 십 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 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 그대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대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모세는 이드로의 충고대로 겸손히 순종함으로 그의 사역이 평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욥기 1212절에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나이 드신 부모님들이 구시대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그분들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명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첨단의 지식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은 마땅한 일이며, 복된 일인 것입니다.

 

 

3. 부양하라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이 점점 고령화되어간다는 것입니다. 노인의 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젊은 사람들은 갈수록 여유가 없어집니다. 물질적으로도 어렵겠지만 사실은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모시는 일이 여간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모 경시 풍조가 점점 심해지는 것은 성경이 예언한 말세의 징조라는 사실입니다. 디모데후서 31-2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고통 하는 때의 징조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거역한다'는 말은 "인륜의 정마저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낳고 키워 준 정마저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벌써 우리 주변에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두려워 떨면서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해야 할 열 가지 지침을 말씀드림으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고백을 자주 하십시오. 쑥스럽거든 편지를 쓰면 됩니다 늙음을 이해해야 합니다.③웃음을 선물하십시오. 보약을 지어 드리기보다 웃음을 한 보따리 선물하면 더욱 좋습니다. 용돈을 꼭 챙겨 드리십시오. 노인들도 돈이 필요합니다. 부모님에게도 일거리를 드리십시오. 나이 들수록 설 자리가 필요합니다. 이야기를 자주 해드리십시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주십시오. 항상 밝은 표정을 보이십시오. 자녀들의 기쁨은 부모님에게 가장 큰 선물입니다. 작은 일도 상의하고 문안 인사를 잘 드리십시오. 건강 정기검진은 필수입니다. 부모의 인생을 잘 정리해 드리십시오(영정사진도 만들어 주시면...). 부모님의 방식을 인정해 드리십시오. 내 방식대로 효도하려고 들면 안 됩니다. 마음 편한 것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핑계거리들을 내세우지만 그것에 미혹되면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따라야 할 가치관은 세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니까" 하고 따라가야지 "세상이 이러니까" 하고 따라가면 안됩니다. 손에 성경을 들고 있으면서 "세상이 이러니까"하고 좇아가는 사람보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라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십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가정에는 향기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의 가정에서 피어나는 이러한 향기들이 진동할 때 이 더럽고 악취 나는 잔인한 세상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네 부모를 공경하라(23:22-26)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v25)

아르메니야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무너진 건물 속에 모녀가 깔려 있었습니다. 불과 26세밖에 안된 젊은 엄마 스잔나 페트로시안은 그의 네 살배기 딸 가야니가 울며 보채자 자기의 손가락을 깨진 유리로 찢어 흐르는 피를 딸의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14일 만에 모녀가 극적으로 구출되었을 때 스잔나는 열 손가락이 모두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이러한 분입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위해 1년에 7200개의 그릇을 닦는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물과 산소같아서 때로 사람들이 그 고마움을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不孝父母死後悔'라는 말이 옳은 듯 싶기만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까요? 왜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실까요? 어떻게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요?

 

1. 왜 사람들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까요?

단순히 귀찮기 때문일까요? 너무 바쁘기 때문일까요? 과거에는 삶의 지혜와 지식을 다 부모에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스승입니다. 부모는 모든 면에 자녀보다 우월하며 하나에서 열까지 부모에게서 배웠지요.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도움 없이 학교에서, 사회에서, 학원에서 스스로 배우고 익힙니다. 부모는 더 이상 소중한 스승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기업과 기술과 삶의 터전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았습니다. 목수의 아들은 목수의 기술과 모든 연장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고, 농부는 농사의 기술, 농지, 농기구 등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꼭 부모의 터전이나 기술과 직업을 물려받지 않습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개인주의의 팽배로 공동체의식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고 너 없는 나뿐입니다. 부모의 도움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없으면 자유롭고 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 말세에 타락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1:30, 딤후3:2).

 

2. 왜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실까요?

1) 하나님의 지엄하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중에 제5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계명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대적 순종이 있을 뿐입니다. 2) 축복을 약속한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에게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6:103, 20:12). 3)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3:20).

 

3. 어떻게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요?(23:22-26)

1)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라(22). 청종이란 순종할 마음을 갖고 경청하는 것을 뜻합니다. 부모는 자식보다 오래 사셨습니다. 많은 실패와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인생의 선배입니다. 많은 경륜과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경청해야 합니다.

2)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22). 중히 여기고 존재를 높이 인정하며 모든 것보다 우선하고 가장 무겁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중국 후한서에 곽거라는 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장가를 들었고 비슷한 때 세 며느리가 아기를 낳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곽거는 큰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 엉뚱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네가 오래오래 살고 싶은데 젊은이의 젖을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니 낳은 아들을 땅에 묻고 그 젖을 내가 먹게 하라" 이 말을 들은 큰아들은 정신나간 소리를 한다고 한마디로 거절하더랍니다. 둘째 아들을 불러 똑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거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셋째 아들은 달랐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식이야 다시 또 낳으면 되지만 부모님이 오래 사셔야 된다며 아기를 업고 연장을 들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따라나선 노인은 앞장서서 가다 아기를 묻을 자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땅을 파니 땅 속에서 황금종이 나왔더랍니다. 이 이야기는 효자에게 주는 축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모가 말씀하실 때, 정신나간 소리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니 하고 부모의 말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3)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워하고, 불의한 자의 부모는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시집을 가서도 바르게 살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옳게 살아야 부모는 즐거워하십니다. 돈과 인기와 권력을 위해 불의하면 이는 결코 효가 아닙니다.

4)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24).

 

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라 했습니다. 땅의 지혜는 정욕적이요, 세상적이요, 마귀적이나 하늘의 지혜는 화평과 성결과 관용입니다. 미래지향적이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생각하고 보다 깊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5) 부모에게 마음을 주고 부모의 길을 기뻐해야 합니다(26). 부모는 자식에게 물질을 구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달라고 합니다. 부모의 길, 곧 부모의 목적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소원 직업..모두를 기뻐해야 합니다. "아버지, 왜 하필이면 그런 직업을 선택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큰 불효입니다. "우리가 가난해도, 집 한 칸 없어도 좋아요. 난 엄마 아빠가 살아오신 그 길, 그 정직하심이 자랑스럽고 기뻐요." 이것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 효입니다.

성경은 효도가 장수와 건강과 성공의 비결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지엄하신 주의 명령을 순종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19:19

 

 

 

오늘날의 비극이 무엇인가? 산업 혁명 이후로 도시화 현상이 생김으로 가족관계에 대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 제도로 전환됨에 따라 두가지 면에서 소외 계층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어린 유아들이며, 다른 하나는 노약자들입니다. 어린이는 보호의 대상이자 이지만 노약자들은 효도할 공경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에 비하여 노약자들에 대한 관심은 너무나 인색한 편입니다.

십계명의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간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관련 된 계명 가운데 첫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니다. 사람이 제일 먼저 관계를 갖는 것은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출생한 후 처음 관계는 보모와 맺습니다. 부모와 관계가 원만하하지 못하면 이웃관계,사회 관계가 바로 형성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해도 변할 수 없는 것은 부모 공경에 관한 말씀입니다. 5:16,“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말씀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청개구리 아들같이 되면 안됩니다. 청개구리 교훈에 보면 살아 생전에 어머니가 산으로 가라하면 강으로 가고, 강으로 가라하면 산으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돌아 가실 때가 되서 걱정이 됐습니다. 이 아들에게 산에다 묻어 다오 하면 강에다 묻을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강에다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청개구리가 평생 불효하다가 어머니가 죽고 난 후에 후회하며 어머니의 유언대로 강에다 묻었는데, 묻어 놓고 비만 오면 강에 나가서 슬피 운다는 이야기입니다. 살아 생전에는 효도 않하고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고 비딱하게 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부모님 말씀한 것이 새록 새록 생각이 나서 그때부터 효도해 보겠다고 별별 일을 다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리에게 죽고 난 다음에 효도를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살아 생전에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살아 계실 때에 옷이라도 한 벌해 드리고, 살아 계실 때에 고기라도 한 근 사다 드리고, 살아 계실 때에 용돈이라도 드리고 살아 계실 때에 효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효도입니다.

21:18절에는 만약 어기면 돌로 쳐서 죽이라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부모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돌로 쳐서 죽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의 율법은 용서가 없습니다. 간음했다. 돌로 쳐 죽여라. 도둑질 했다. 돌로 쳐 죽여라. 부모에게 공경하지 않았다. 돌로 쳐 죽어라. 전부 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는 것을 순종하지 않으면 이렇게 엄하게 다루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약 시대 때에 살고 있다면 죽어야 될 사람이 많습니다. 부모 공경 않는 사람은 죽이라고 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찔림이 와야 합니다. 잘 해야 하는데 내가 못하고 있구나.

딤후3:1-3,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부모를 거역하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부모를 공경하기 보다는 부모를 거역하고 부모 말 안듣는 세대가 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효도를 참 잘 했습니다. 이렇게 험한 세상으로는 안 갔습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몇 십년도 안 지났는데 세상이 험해요. 저도 솔직한 이야기로 우리 집 앞에 빈집이 있는데, 거기 젊은 청소년들이 거기는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옛날 같으면 불러 꾸짖기도 하겠습니다마는 불렀다가 왜 그래요 하면서 칼 침 맞을 까봐 부를 수도 없어요. 옛날에는 나이든 분이 젊은 사람들을 불러다가 훈계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 잘 못했습니다 합니다. 요즘은 뱀이 고개를 쳐들 듯이 쳐들고 왜 그럽니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하고 더 심하면 칼 침 맞습니다. 말세가 오면 자녀들이 부모 말을 잘 듣지 않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공경하라는 말은 후하게 갚는 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입니다. 부모의 은혜는 후하게 갚으라는 것입니다. 노인이 되면 하는 일은 적어지고 과거를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사진을 꺼내 놓고 보면서 훌쩍 훌쩍하는 것입니다. 노인이 되면 외롭습니다, 그래서 말할 상대만 생기면 했던 이야기를 또하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것입니다. 노인이 될수록 공경을 잘 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언젠가는 노인이 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노인들을 공경하라고 후하게 갚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경해야 할까요?

 

1.부모를 귀중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게 부모를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받들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가 없는 사람들은 나에게 부모가 한번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해외 입양아들이 고국에 돌아와 부모를 찾습니다. 그래도 부모가 있으면 좋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성공은 했어도 부모가 없는 것에 대한 아픔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부모는 나를 버렸지만 나는 그 부모를 찾고 싶다는 것입니다.

2:51,“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부모님에게 순종하며 받드는 생활을 했습니다.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면 아멘하고 들으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무엇을 시키면 안하겠습니다하고 나중에 후회하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천사같이 예하고 대답하고 뒤에 가서는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하고 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말씀하면 예하고 뒤로 가서 바뀌면 안되요. 아멘한데로 그대로 아멘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님께 순종하되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교회 나가지 마라. 제사를 드려라. 한달에 한번만 나가라고 강조하는 분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갈등을 갖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조건 순종이 아니라 주 안에서 순종입니다. 사울 왕은 아들 요나단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령은 잘못된 명령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다윗을 살려 줍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지 않으면, 하나님 섬기는데 방해되지 않으면 다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3:22,“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7:6에 보면 마지막 때는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노인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신앙의 연조를 무시할 수 없어. 신앙 생활 오래 한 것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몇 년 신앙 생활을 화끈하게 잘하는 것 같지만 몇 십년 신앙 생활을 변함없이 하나님의 교회에 충성하고 잘 섬긴 것을 무시하면 안되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몇 십년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 약한 것 같다가도 저력이 있어요. 넘어기는 것같다가도 안 넘어져요. 왜냐하면 그동안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왔기 때문입니다. 노인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어째듯 인생을 성공하고 살아 온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다보면 죽고 싶은 적도 많아요. 인생을 비관해서 가롯 유다처럼 죽고 싶은 때도 많은데 그런 어려운 고비를 넘어 넘어 지금까지 승리하며 왔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살고 싶을 때보다는 죽고 싶을 때가 더 많았지만 그렇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그곳을 빠져 나와 자녀들들을 잘 양육하고 키우고 지금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노인이 갖고 있는 지혜는 굉장한 것입니다. 12:12,“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리라고 했습니다, 노인들의 지혜를 빌려야 합니다. 연장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업을 하든지 어려움이 오면 신앙의 연장자, 인생의 연장자에 겸손하게 귀를 기우리고 들어야 합니다. 신앙의 연장자는 신앙적으로 권면해 주고, 인생의 연장자는 인생의 귀한 교훈을 들려 줍니다. 들으면 은혜가 됩니다. 솔로몬 뒤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은 왕위에 오른 뒤에 노인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까? 노인 신하들이 대답하기를 성전을 짓느라고 힘이 들었으니 세금도 감면해 주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자는 것이였습니다, 르호보암 왕은 젊은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풀어 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더 심하게 조이라는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노인 신하들의 권면을 무시하다가 결국 나라가 12조각이 나고 남쪽이 두 지파만 차지하게 됩니다. 왜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열 지파가 여로보암 왕을 따랐습니까? 이유는 늙은 신하들의 지혜로운 권면을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인생에 실패하는 것은 연로한 사람들의 지혜를 우리가 빌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는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 있다는 것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귀하게 생각하고 여러분의 부모에게 겸손하게 귀를 기우리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홍수 후에 노아는 땅을 일구어 포도 농사를 지었는데 열매를 먹고 취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벌거벗k고 잠이 들었는데 아들 중에 함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널리 광고했습니다. 그런데 야벳과 셈은 뒤 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수치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때문에 이로 인해서 함은 저주를 받고 야벳과 셈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 살찐 고기를 부모에게 대접하고도 지옥가는 아들이 있고 아버지를 방앗간에서 일하도록 해도 천국 가는 아들이 있다는 탈무드의 교훈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고기를 먹으며 참 맛이 있구나 했더니 아들이 대답하기를 강아지도 먹을 때에는 잠자코 먹는다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습니까? 이렇게 무시하면 고기를 대접하고도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안이 가난해서 아버지를 방앗간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라에서 방앗군을 징집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 계속 방앗간에서 일하세요. 제가 대신 가서 어려움을 대신 겪고 오겠습니다이렇게 아버지를 귀중히 여기고 공경하면 방앗간에서 일하게 하고도 천국 간다는 말입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은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고르반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자기 수중에 100만윈이 있는 것을 부모님이 알고 있습니다. 안 갖다 드리면 섭섭하다고 할 터이니 고르반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아버님 하나님께 드린 헌금이기 때문에 있기는 하지만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해하세요라고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렸다하고 부모 공경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자녀들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진심으로 잘 섬기는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효도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23:24,“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다부모 공경에 첫째는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죄 짓지 않고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믿음 생활 잘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마음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은 자식이 성공하고 사업이 잘되고 돈 많이 벌어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것도 기쁨이지만 내 자식이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내 자녀가 세상에서 부끄럽게 살고 세상사람들이 입에 오르락 내리락하면 그것이 불효라는 것입니다. 둘째,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23:24,“지혜로운 자식은 낳은 자는 그로 인하여 즐거울 것이라지혜로운 자녀를 낳은 부모는 기쁘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지혜가 얻어 진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이삭은 야곱과 에서 두 아들을 두었는데 에서는 불신앙이요 야곱은 신앙적입니다, 이삭은 늘 에서 때문에 마음에 근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이방 여인들만 데리고 옵니다. 3)마음을 주며 사는 것입니다. 23:26“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 할지어다효중에 가장 큰 효는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왜 마음을 기쁘게 해야 하는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22)고 했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앓는 병도 치료되지만 마음에 근심이 쌓이면 뼈가 마릅니다. 뼈는 우리 몸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입니다. 근육과 함께 운동하고, 뇌와 내장을 보호하고, 골수에서는 혈구를 만듭니다. 그런데 이 뼈가 마르면 몸의 전 기관에서 건강에 적신호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은 좋은 보약을 지어 드리는 것보다 더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을 근심되게 하면 뼈를 마르게 하는 고통을 안겨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간에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을 중요합니다. 부모 자식 간에 마음이 오고 가는 것 이것이 효도입니다. 마음이 끊어지고 부모에게 먹을 것만 가져다 주는 것은 짐승 사육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부모를 먹여 살리는 것을 효도라고 하면 그것은 짐승을 기르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논어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지 부모에게 의식주만 해결해 주는 것이 공경이 아닙니다. 부모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떤 자녀는 부모를 뵈러 와서도 건너 방가서 잠만 자다가 갑니다. 가져 온 것은 별 것 없어도 대화를 해야 합니다. 4)부모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룻과 나오미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이지마는 룻은 나오미를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하는 것을 따라 가는 것이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가 신앙적으로 살고 신앙적인 길을 가면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이 공경입니다. 부모 신앙을 따르는 것이 공경입니다. 자식들은 내 길 간다고 하면서 목탁이나 섬기고, 점이나 보러 다니면 안되요. 부모님이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하면 자녀들 따라서 부모를 잘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된 길입니다.

3.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요셉은 시련 끝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 부모를 모시고자 수레를 보내고 극진이 환영하여 맞았습니다, 부모 공경 잘 못하는 사람이 신앙 생활 잘한다는 것은 이율 배반적인 일입니다.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이 부모 공경 잘하고, 부모 공경 잘하는 사람이 하나님도 잘 섬기는 것입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반질 반질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가 눈에 보이는 부모도 잘 섬기지 못하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고슴도치는 몸에 가시가 돋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미의 눈에는 가시가 보이지 않고 반질 반질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는 돈으로 계산이 안됩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에게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말만 하고 좋은 것만 주려고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잘되는 복을 받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형통하며 창대한 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부모를 거역하고 멸시하면 저주와 진노를 받습니다.

장수한 복을 받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분이 누구신가?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입니다. 므두셀라에 대하여 성경에 구체적인 기록은 없으나 모세의 영감을 통해서 므두셀라가 그 부모 에녹에게 어떻게 효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세기 5:21-24)고 했습니다. 므두셀라는 그 아비 에녹이 하나님과 삼백년간 동행할 수 있도록 아비의 곁에서 효성있는 장자로서 부모를 공경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비 에녹이 자녀들을 양육하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 6:13

제목 :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사랑하는 성도들과 가정 위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어버이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의 마음으로 이 예배에 임해 주시길

바랍니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어버이날이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전해진 날을 우리가 좋게 생각하여 받아 들여 지키고 있습니다.

원래는 어머니날이지 어버이날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날만을 지키다 보니까

세상 사람들이 불쌍해서 함께 포함시켜 어버이 날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관계가 어떤 관계입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서로를 떼어놓을 수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촌수를 따지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가족 제도는 인정을 받고 있는 제도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한 지붕아래서 공존합니다. 그러면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가 함께 살아가면서 그곳에서 혈육의 정을 배우고, 인정을 배우고, 우애와 협동정신과 상하질서의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같은 가족제도가 오늘에 와서는 점점 퇴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산업화의 사회를 변모해가면서, 도시화의 사회로 변모해 가면서, 우리의 가족제도는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서구사회가 걸어가고 있는 그 삭막한 길로 접어들고 있으며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가 멀어지고 인정은 점점 매말라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어버이 주일을 지킴으로 퇴화해 가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이를 생각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첫째,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나?

 

자녀가 부모를 공경해야 함이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시간 이 물음을 제기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기의 입신출세를 위해서, 자신들이 편안히 살기 위해서

부모를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불필요한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2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 명령입니다.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행해야 할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인 것입니다.

 

부모님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며 자식의 공경을 받지 못하는 부모들은 어디에다 발을 붙이고 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불효의 종교라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몰라서 하는 무식의 소치입니다.

 

1. 효도는 천륜의 법칙입니다.

이것은 곧 창조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벌써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이성적인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부모를 섬기는 상호협력의 조화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생명체의 상호간을 볼 때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천륜의 법칙이자 명령이신 효의 도리를 못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따릅니다.

 

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경홀히 여긴다는 말은 소홀히 여긴다. 가볍게 생각한다. 무시한다의 뜻입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합니다.

 

2. 부모공경은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20장에 10가지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제1계명 4계명까지는 대신 관계의 계명이고

5계명 10계명까지는 대인 관계의 계명입니다.

그런데 대인관계의 계명중에 첫째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20:12)

위로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고 아래로 육신의 부모를 공경함은 하나님이 계명입니다.

 

3. 예수님이 효의 모범을 보이셨으므로

예수님의 나사렛30년 생활은 홀어머니 마리아를 공경하는 생활이었습니다.

한번도 어머니께 불효하여 고통을 드린 흔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시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님께 대한

지극한 효성을 보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그 고통가운데서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3마지막 그 고통의 순간에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효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3

4. 부모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부모님은 자식인 우리에게 태에 있을 때 피를 주었고, 영양을 주었고 생명과 성품을 주었고 태어난 후부터 사랑을 주었고 육신의 먹을 것과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의 은공보다 더 깊은 은공이 없고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사랑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이는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한 부분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까마귀도 어미에게 반포(反哺)의 보은을 한다는 데 어찌 사람의 자식으로서 부모를 공경치 않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정다운 이름이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라는 이름은 정답기 그지없는 이름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입니다.

학교에 갔다 돌아와서 대문에 들어서자 마자 부르는 말도 엄마입니다.

길을 가다가 넘어졌을 때도, 몸이 아파 신음할 때도, 시집간 딸이 친정에 오면서제일 먼저 부르는 말이 엄마입니다.

세상에서 이 보다 더 정다운 이름은 없습니다.

노래 :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둘째, 어떻게 효도할까?

 

1.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6:1"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자녀는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순종하되 하나님의 말씀 안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공경하라" (티마오) - 값을 지불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녀는 마땅히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것이 공경입니다.

자녀된 우리는 노인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심이 좋았던 분 가운데 가나안 농군 학교 김용기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다섯가지 효도관을 말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많아지면 잔소리가 많아진다 그러나 모두 받아 들여라. 경험이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 중에는 그른 것이 없다.

노인들은 노여움을 쉽게 느낀다. 늙어지면 몸과 마음이 약해져서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처럼 느낀다. 의지하는 것은 오직 자식뿐이다. 자식마저 노여움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그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늙으면 갖고 싶은 것이 많다. 부모에게 많은 돈을 드려라. 갖기를 바랄 뿐 함부로 쓰지는 않는다.

4

나이가 들면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집수시고 싶은 것을 사 드리도록 해라.

노인들은 항상 몸이 가렵다. 등을 자주 긁어드려라.

이것이 잘 실천하셨던 장로님은 효자였고, 효도를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과 효()

시골에는 닷새만에 장이 서게 됩니다. 장이 서면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장터에 팔러갑니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는 뜰 안의 여러 농사일들과 집안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생각은 장에 간 아들에게 있습니다.

오늘 갖고 간 물건을 팔았는지, 올해는 넘기지 말고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등등, 마침내 저녁이 되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도 아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저녁을 다 지어놓고 기다리다 못해 동구 밖까지 나가봅니다. 언덕에 올라보니 장터에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들은 보일듯 말듯 합니다. 마침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멀리 장터를 향해 봅니다.

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이라 합니다. 어버이 친자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보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여기에 버금가는 한자가 '효도 효()'입니다.

아들은 갖고 간 것을 늦게까지 다 팔고서 고등어 몇 마리와 어머니께 드리려고 화장품 한 곽을 사들고 오는데 동구 밖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머니, 다리 아프실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저의 지게 위에 타십시오." 그래서 지게 위에 태워오는 모습이 한자의 효도할 때의 자입니다. 즉 노인을 업고 오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자의 모습, 자와 자가 가정에 있을 때 그 가정은 복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자.(心孝)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의 길이다.

늙으면 어린아이 같이 된다는 말을 조금 전에 했습니다만 작은 일에도 섭섭해 하시고 오해도 잘하십니다.

이러한 심리를 잘 이해 하셔서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자. 가정이 불화하면 부모님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형제간에 우애하고 부부간에 화락하여야 부모님의 마음도 평안하여 가정 천국이 이룩될 것입니다.

 

3.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해 드리자.(身孝)

의식주는 물론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하며 용돈도 넉넉히 드려 생활하시는데 불편이 없도록 해 드리자.

부모님 살아 생전에 효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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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세상 떠나고 난 후에 굉장히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을 보는데 그것보다는 생전에 효도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옛말에 "자식 주머니에 있는 많은 돈도 내 주머니의 돈만 못하다."

 

4. 불신 부모를 예수 믿게 하자.(靈孝)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필요한 것 다 잘 해주신다해도 만약 그 영혼이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같이 불행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고로 자녀로서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대의 효성은 부모님을 예수 믿게 하여 구원 얻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 돌아오지 않은 부모가 계신다면 계속 관심을 가지시고 기도하시를 바랍니다.

 

셋째, 효도하는 자가 받는 축복

 

효도는 인간의 도리요. 본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마땅히 해야할 효도인데 무슨 상급을 바라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에게는 두가지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1. 모든 일이 잘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은 모든 일이 성공하고 형통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로서 잘못된 자 없고 위인이나 선지자치고 불효자가 없습니다. 불효하면서 잘 될 줄 생각지 말라.

 

Story : 아버지가 남긴 저주

193571일 미국의 도나호(Donahoe)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의 두 딸 메어리와 빅토리아에게 : 너희는 이 아버지가 너희들에 대해 헌신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불효하였기에 나는 너희들 각각에게 1달러를 유산으로 남기는 바이다. 너희들의 삶이 불행과 고통과 혹독한 슬픔 속에 잠기기를 바라노라. 너희들의 죽음이 곧 이루어지기를 저주하며 그 죽음이 대단히 고통스럽고 끈질지게 질질끄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너희들의 영혼은 지옥에 머물 것이며 영원히 저주받은 고통을 겪게 되리라" 오죽이나 불효했으면 이런 유언을 썼을까?

 

요셉의 효도

 

Story : 강철왕으로 불리우는 카네기의 어린 시절은 매우 가난하고 불우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는 내의가 단 한벌밖에 없어서 밤에 어머니가 빨아서 말려주면 그 이튿날 그것을 입고 출근하였습니다. 그는 서원하기를 돈을 벌어 어머니께 좋은 옷을 사드리고 수고한 것만큼 평안하게 해드린 다음 결혼하리라고 굳게 마음속으로 약속했습니다. 그는 30여 년간 열심히 일해서 강철왕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는 서원대로 어머니께 효도하고 52세때 결혼하고 62세에 첫 아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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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수의 복을 받습니다.

"네 생명이 길리라"

1) 땅에서 오래 살리라는 말입니다.

건강하고, 평안하고, 부하고, 구원받고 오래 살리라는 말입니다.

2) 자손이 끊어지지 않고 번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3)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 대밭에서 큰 죽순이 나는 것처럼 효자의 집에서 효자가 날 것입니다.

내 자식이 효자되길 원합니까? 자기가 먼저 부모에게 효도하여 본을 보여라.

 

Story : 이조 숙종 때 개성근방의 이름난 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늙어 거동을 못하시는 어머니를 정성스

럽게 모시고 있는데 임금님이 그 고을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에 어머니가 행차를 보고 싶어하시자 어머니를 지게에 태우고서 나갔다가 임금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그의 효성을 칭찬하시면서 송아지 한 마리와 쌀 열가마를 하사하였습니다. 효도의 대가를 톡톡히 받은 것이지요. 그 소식을 들은 이웃 마을의 소문난 불효자가 자기도 상을 받아야 되겠다고 벼르게 됩니다. 몇 달 후에 임금님이 지나가시자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억지로 지게에 지고서 임금님 눈에 띄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임금이 지나가다 또 이것을 보았고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 때 원님이 저놈은 아주 못된 놈이라고 하면서 벌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효자와 똑같이 소 한 마리 쌀 열가마를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효도는 흉내내기도 어려운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효는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1. 효도는 천륜의 법칙입니다.

2. 부모공경은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3. 예수님이 효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4. 부모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어떻게 효도할까요.

1.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2.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자.

3. 생활에 불편이 없게 해드리자.

4. 불신 부모 예수 믿게 하자.

 

효도자가 받는 축복

1. 모든 일이 잘되게 해 주십니다.

2. 장수의 복을 받습니다.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

본문 잠23:22-26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다. 부모님에 대한 효를 다시 한번 반성하며 신앙 안에서 부모에게 효도 할 때 어떠한 복이 임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한가지 먼저 생각할 것은 부모라 할 때 나를 낳아 주신 어버이만이 아니며 또한 내가 낳은 자녀만이 자녀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결혼한 일이 없습니다만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했으며 그 외에도 여려 사람을 믿음으로 낳았다고 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복음적으로 볼 때 그처럼 훌륭한 아버지는 없다고 본다. 어버이되는 바울은 아들을 훈계하였고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들음으로 영육간 효도의 본을 보여 주었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않다."고 하였다. 스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진정으로 어른들은 다 내 부모요, 어린 청소년들은 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 우리교회 어느 집사님은 토요 열림마당에 나오는 재가 장애인을 보고 '내 아들입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은 다 내 아들들이라'하는 마음과 '이 땅의 모든 노인은 다 내 부모님이다'라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부모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나는 효도 할 길이 없다고 하며 지난날에 불효한 것이나 후회하면서 눈물이나 흘리는 자녀는 효도 할 수 없다. 이제 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으면 내 친구의 어머니도 있고 내 이웃의 어머니도 있으며 또한 이 땅에도 버려진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 내 아버지는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이 땅에 아버지의 연배되시는 분은 얼마든지 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효도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시간에는 효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효는 첫째, 목적이 무었이냐가 중요하다. 누구를 위한 효냐하는 것이다. 정말 부모님을 위함이냐 아니면 나를 위함이냐?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떤 선행이라도, 아무리 굉장한 일이라도 그 목적이 나 자신에게 있을 때에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비록 구제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내가 칭찬을 받기 위해서, 내가 복 받기 위해서, 내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효도를 한다면 그 효도는 완전히 타락된 효도이다.

둘째로, 효는 그 방법이 문제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인가? 흔히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소홀히 하다가도 돌아가시고 나면 야단스럽게 굴면서 효자인 척 한다. 산 부모는 모셔봐야 이득이 별로 없고 죽어서 귀신이 되어야 복을 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얼마나 잘못된 방법인가? 목적이 그릇되고 방법이 잘못되면 미신적인 데로 빠져든다. 우리는 무엇을 효도하며 왜 효도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효도를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나이 많은 부모님을 자랑으로 생각해야한다. 사람들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노인들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그러나 노인이 대접을 받는 사회가 아니라 소외당하고 외롭게 사는 시대이다. 부모님이 오래 살도록 해 드리는 것과 장수하시는 부모님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 효도이다. 6:2-3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다. 장수의 복은 효도하는 가정에 주시는 복이다. 따라서 나이 많은 어른들이 있고 그를 모시고 있다는 것은 가문의 자랑이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늙으신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나를 위해 평생을 바치시다가 고생하시는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 졌다 할지라도 자랑으로 여겨야 한다. 6:23 [의인의 아버지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했다. 의로운 자녀가 되어야 한다. 아무개 아들, 아무개 자부가 아니냐고 칭송 듣는 것이 효도이다.

성경에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말씀하신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축복권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부모가 자녀에게 복을 빌면 자녀가 복을 받는다. 또한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효도가 바로 복을 받는 기준임을 알아야 한다. 부모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선포 할 수 있고 자식은 그 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녀에게 복을 빌었다. 이삭도 야곱에게 복을 빌었다. 이삭은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큰아들, 작은아들을 구별 할 수 없었지만 그가 빈 복은 그대로 임했다. 그러므로 장수하신 그분의 자녀됨을 자랑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적인 개념으로 볼 때도 부모의 죽음이 자식들의 책임이며 세상 떠나게 된 부모님을 잘못 모셔서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하며 죄인의 모습으로 옷을 입는 것이 상복이다. 그런데 요즈음 장례식에 가 보면 상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옛날에는 상주가 죄인이기 때문에 수염도 안깍고 세수도 안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빨간 루즈까지 입술에 바르고 희희닥 거리며 웃지를 않나, 농담을 하지 않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완전히 잘못 되었다.

둘째로, 마음 편하게 모셔야 한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ex) 서울 중앙청 뒷 쪽에 효자동 이라는 동네가 있다. 이곳을 효자동 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가 있다고 한다. 옛날 어떤 할아버지가 실수하여 자다가 손자를 깔아 죽였다. 그 할아버지는 자기가 실수하여 손자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염려하여 아미를 몰래 안고 나와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죽은 아이를 보고 "아 불효 자식아,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만들다니." 하면서 그 죽은 아이의 뺨을 호되게 때렸다. 그랬더니 죽은 아이가 살아났다. 이 일을 임금님이 듣고서 그 동네를 효자동이라 이름했다는 이야기다. 어쨋든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편하게 모시려는 것이 진실된 효도이다.

셋째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 효도이다.

요한3:4[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 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했다. 내 아들이 진실하게 살고 내 딸이 아름답게 사는 그것 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고 더 즐거운 일이 없다는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모의 말씀에 대해서는 절대적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슨 토론을 열심히 하다가도 "이것이 전승이다." 하면 절대 따르게 된다. 전승, Tradition이 무엇입니까? 전승이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부모님들의 교훈들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나 부모의 말씀을 업수히 여기지 않고 존중한다. 이것이 신앙의 지혜이며 그 신앙적 효도가 복을 받게 하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속여도 부모는 자식을 속이지 않는다. 거짓으로 부모를 기쁘게 해서는 않된다. 불의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효도가 아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효도하고 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루 한 두번은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어머니, 우리집에 어머니는 꼭 필요한 분이십니다. 어머니는 꼭 계셔야 합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부모님 하시는 일이 다 옳고, 그 교훈, 그 뜻이 옳았음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 효도요 그리고 기쁨으로 그 길을 따를 때에 그것이 바른 효도이다. 부모님의 귀를 즐거워하는 것이 참된 효도이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참되 효도이다. 의인의 후손은 번성하며 은혜를 입는다.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고 했다. 내가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며 나 또한 좋은 부모가 되어 후손에게 복된 길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형통한 복이라도 당대에 끝나 버리면 큰 비극이지 복이 아니다. 그래서 시 128:6에 가정의 복을 말씀하시면서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고 하였다. 대를 이어 내려가는 축복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좋은 것을 심어야 한다. 믿음의 씨았을 심어야 한다.

ex)곽 선희목사님 책 가운데 이런 간증이 있다. 이북에서 피난 내려올 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손에는 성경책 한 권만이 달랑 들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재벌도 부자도 아니지만 하고 싶은데로 구제하고 선교를 한다고 했다. 사실상 한국 교회 가운데 가장 큰 교회 중의 하나이며 소망 교회가 하는 일은 대단하다. 그렇게 된 이유를 곽 목사님은 자기가 선해서가 아니라 다 조상 덕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얻어먹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밥도 달라고 오고 쌀도 달라고 오면 할머니께서 손에 잡히는 데로 많이 주시곤 했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하시기를 '내가 죽거든 일 주일 동안 거지 잔치를 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돌아 가셨을 때 소를 잡아 일 주일 동안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모두 불러 대접을 했다고 한다.

그 선조들의 신앙과 심어놓은 의로운 행위가 지금 자기에게서 거두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지금 부지른히 심어 놓으면 내 후손이 절대로 걸식하지 않는다. 솔직히 유산은 물려주지 않아도 신앙적 유산을 물려주면 어디를 가든지 귀인을 만날 것이다. 복받지 못할 짓만 하면서 복을 달라고 비는 사람만큼 답답한 사람은 없다.

오늘 우리는 부모상이 좀 달라져야 한다.

1) 훌륭한 아버지는 돈 많고 비싼 외제 장난감이나 뭐든지 사 달라는 대로 척 척 사주는 아버지가 아니다. 2) 훌륭한 아버지는 지위가 높아 교장 선생님도 쩔쩔매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작년에 어느 외국 신문에 나온 기사 가운데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다음의 다섯가지 조건을 충족 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첫째, [때로는 엄마를 몰아내라]는 것이다. 하루종일 엄마가 아이를 치마폭 속에 넣고 있으면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이따금 엄마를 빼 돌리고 아이들과 아버지가 집안을 어지럽히기도 하고 자기를 끼리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해야한다.

둘째, [아이들을 자연으로 끌어내라]는 것이다. 등산도 좋고 야외 천막 생활도 좋다. 그래야 아이들이 순수하고 강하게 자란다.

셋째, [시선을 아이들과 같은 높이에 두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언제나 서서 말하면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아버지에게 눌리게 된다. 그러면 부모 자식간에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넷째, [아침에 얼굴을 맞대라]는 것이다. 퇴근이 늦은 아버지가 아이들과 마주앉는 기회는 이른 아침 이 외는 드물다. 그 기회 마저 놓치면 부자간에는 틈이 생기게 된다.

다섯째. [어린이들에게 꿈을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신조와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라고 말씀 드린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되어야 하며 또 자녀들에게 기쁨을 받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이다.

땅에서 형통하고 장수하는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자자손손 이어지는 가정되기 위해서 효성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룻처럼 효도하자

1:15-18

사사시대때에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곳에 엘리멜렉과 그의 아내 나오미 두아들말론과 기룐

네 식구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때에 둘째 며느리였던 룻 이라는 여인의 그 행실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귀감이 되어지는 아름다운 효에 대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해였던가 그 땅에 큰 흉년이 들

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수해동안 흉년이 계속 되어지자 살다가 힘이 들

었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까지 이 고생을 물려주게 될까 염려하면서

흉년이 없는 모압 땅에 가서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이사를 했습니다. 그들은 목메이고

그리던 모압이라는 땅에서 보다 더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축복스럽게 살려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다리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눈물이었습니다. 그것은 다

름 아닌 그 집안에 호주며 남편인 엘리멜렉이 죽 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야속하다고는 하

지만 이렇게 슬플 수가 있습니까? 나오미 눈에서는 눈물이 마른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태

산처럼 믿고 의지했던 남편이 죽게 되자 의지할 때가 없어서 나오미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인생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 고생스러워서 웁니다. 또한 고향산천 부모형제를

떠나서 이억만리 외국땅인 모압에서 서러움과 고통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후회스러워서 웁

니다. 그라나 흐리는 세월은 눈물을 마르게 하는 약이었습니다. 세월은 그녀의 눈에서 눈물

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서둘러서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성공시키는데 노력했

습니다. 그것도 모압자녀들 가운데서 이름 있고, 가문 있고, 기품 있는 마음씨 고운 아가씨

들을 골라서 자부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맏며느리로 맞이하니 그 이름이 오르바라고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며느리를 데리고 왔으니 바로 룻이라고 하는 여인입니다. 모압

에 온지 십 여년이 지났습니다. 남편의 슬픔도 잊어가고 있을 무렵 이것이 또 웬 날벼락입

니까? 큰아들 말론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 기룐 두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 뒤에서 남았더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슬픈 사연이었던지 성경은 그

들이 어떻게 죽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찾아온 모압에서 이 불행을 맞고

보았더니 얼마나 가슴이 매여는지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말로다 형용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당하니 나오미는 슬프다 못해 부끄러웠습니다. 동네사람들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런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은 모압에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두 며느리를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고향에서 들려오는 소식인즉,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함을 들었습니다. 이 말은 베들레헴 고향 땅에 풍년이 찾

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녀는 베들레헴으로 귀향할 것을 결심하고 젊어서 등진 고향

황혼녘에 찾아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자부를 돌려보내면서 "사량하는 딸들아

너희들은 각각 어미 집으로 돌아가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시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

시기를 원하노라. " 라고 말했습니다. 나오미는 큰 며느리였던 오르바를 설득합니다. 돌아가

. 나는 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너는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 . 그때 나오미는 오르바를 설

득하여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룻은 돌아가려하지 않았습니다. 룻은 뭐라고 표현했는지 아

십니까? 14절에 보면 룻은 그를 붓 좇았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겠다

, 어머니가 떠나는 그길을 나도 떠나겠고, 어머니가 머무는 그곳에 나도 머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황혼녘에 외로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시어머니와 함께 하겠다는 룻의 장엄한 고

백을 읽는 동안 우리 마음은 숙연해집니다. 세상이 아무리 편해도 룻의 감동적인 이 글은

지우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글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우리는 이 내용에서 효가 무엇

인가를 배웁니다. 또한 부모가 누구인가를 깨닫게 하여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명명백백하게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기로 소원했다

는 것입니다.

15,16절을 보면 말로써 오르바를 돌려보낸 시어머니 나오미는 "보라 네 동서는 그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이것이 시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자식을 위

해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위해 마지막 전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데 이 말을 들은 룻은 어머니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

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길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

하겠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룻은 시어머니를 혼자 돌려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기가 그 노 시어머니를 모시지 아니하면 그를 모실 분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룻은 노

시모를 모시고 살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요즘과 비교해볼 때 얼마나 대조적인가를 보여줍

니다. 내 친정부모가 귀한걸 알면 내 남편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도 귀한 줄 알아야합

니다. 그 부모님께 효도하는 며느리 아들 또한 며느리와 아들과 딸과 사위를 사랑할 줄 아

는 부모의 사랑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

 

룻의 효도는 시어머니를 위하여 자기자신

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데서 볼수 있습니다. 요즘 이기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에서 자기 유

익과 자기 안목과 자랑과 정욕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는 이 시대인데도

여러분 룻이라고 하는 여인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위하여 자기를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국을 포기했습니다, 또한 고향을 버렸습니다. 자신의 일가친척도 버렸습니

. 부모와도 이별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종교도 버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어머니

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라고 말합니다.

는 시어머니를 위하여 자신의 평안과 행복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천하보다 귀한 자신의 생

명도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요즘에 찾아보기 힘든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사랑입니

. 효가 깨지면 가정이 깨집니다. 효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민족의 장래가 보장됩니다.

혀져가고 깨어져 가는 효도가 다시 한번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가정들로부터 되살

아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룻의 효도는 아무 소망이 없는 시어머니

를 공경했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구슬땀을 흘리면서 농사를 짖는 것은 가을에 풍성한 수확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구

슬땀을 흘리면서 그들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합

니다. 고생도 참습니다. 그러나 룻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한가지 소망이 없는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의 효도가 남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세상은 황폐해져가고 가정은 무너질데로 무너져가고 사람들의 인륜은 찾아보기 힘든

어려운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녀

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어머니와 네 아버지께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

 

부모공경과 성령님

6:1-3

 

<本文>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

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6:1-3)

 

<序言>

옛날 젊은 부부가 홀로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어린 아기가 있었는

, 농사 일이 바쁘다 보니 부부가 함께 밭에 나가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어느날 밭

에서 돌아온 부인은 기절 초풍할 장면을 보았습니다. 시아버지가 낮잠을 자다가 아기를 깔

고 자는 바람에 아기가 죽고 만 것입니다. 부인은 그 아기를 안고 얼른 바깥으로 뛰어 나왔

습니다. 혹시라도 시아버님께서 '자신이 아기를 깔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괴

로워 하실까?' 하고 , 이 사실을 비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부인은 울면서 아기를

안고 밭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달려가 자초지정을 말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말을 듣고 있

다가 갑자기 어린 아기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이런 불효 막심한 자식, 왜 하필이면 할아버

지한테 깔려 죽어서 할아버지의 심기를 괴롭게 하느냐 이놈! 너 같은 불효 자식이 천하에

어디 있겠느냐 이놈!" 하며 뺨따귀를 세차게 내려 쳤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아기가 깜짝

놀라 깨어 나더랍니다. 이 사연이 널리 퍼지면서 그 지역에 효자와 효부가 산다 하여 '효자

'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현대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을 당할수록 부모공경에 대한 윤리가 파괴되

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부모를 슬프게 하는 자녀들의 행동을 많이 접합니다.

떤 사람은 노부모를 남의 집 앞에 버리거나 양로 시설 앞에 버립니다. 어떤이는 제주도에

여행 갔다가 버리고 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동남아까지 가서 버리고 온다고 합니다. 고려

장 보다 흉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 사람들이 부모에 대해 어떻게 대하든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그리하지 않

아야 하겠습니다. 인격과 믿음의 차원에서 말입니다.

 

<本論>

1.부모공경은 부모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부모공경은 부모로부터 얼마나 혜택을 많이 받았느냐 하는 객관적 사실에 달려 있지 않습니

. 부모의 은혜를 얼마나 느끼느냐 하는 주관적 느낌에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부모의 심

정을 얼마나 알고 부모의 행동과 삶을 얼마나 이해하느냐 하는 인격적 수준에 달려 있습니

.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대한 불평 이상으로 부모를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는 분노를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1998512일 새벽 전북 진안군 생수면 점촌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재소를 경영

하는 전창균씨 집에 한밤중에 불이 나 불길이 하늘로 치솟으며 순식간에 집 전체가 불덩이

로 화했는데, 부인 김정숙씨가 불 속으로 뛰어들어 셍후 9개월 된 아들을 구해내고 큰 아들

을 구하려 다시 뛰어 들어갔다가 불길이 너무 세어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아들과 함께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구조에 나선 소방관들이 김 여인을 찾았을 때 "김 여인은 아들

을 꼭 껴안은채 숨져 있었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은 것입니

.

 

우리의 부모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희생으로 우리를 길렀습니다. 가장 좋은 것

으로 주려했던 이들입니다. 그들이 고생을 하면서라도 우리에게는 편안하게 살게 하려 했습

니다. 그들은 먹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는 먹이려 했고, 입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입히려

했고, 자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재우려 했고, 공부하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는 공부를 시키려

했습니다. 만일 그것들이 우리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부모에게 그럴만한 피치 못할 이

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미워할만한 내용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당한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환경과 개인적 형편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들을 오늘날 우리의 환경과 우리의 관념에서 판단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모독이요 폭력인 것입니다.

 

부모가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지 못하는 자는 자신을 미물만도 못한 자로 여겨야 합

니다. 잠언 30:17"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

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고, 레위기 20:9에는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21:18-21).

 

2.부모공경의 방법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러시아 혁명이 있을 때 공산당들은 집들을 모두 태워버리고 곡식들을 모조리 없애버렸습니

. 러시아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모두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때 모스크바

로 여행을 갔던 어떤 사람이 들판에 주저 앉아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어머니를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풀뿌리를 캐다가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 같

았습니다. 그러나 여행하는 사람은 그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기에 어

린 아이를 품에서 떼어 냈더니 그 어머니의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젖꼭지를 칼로 잘라서

피를 빨리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먹지 못해서 젖이 나지 않고 아기가 젖을 달라고 울 때

그 어머니는 젖꼭지를 잘라 피를 마시우게 했던 것입니다.

 

부모는 우리에게 육체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일생을 희생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능력이 없어질 때에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드려야 합니다. 늙어지면 먹고 입고 자는 문제

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늙었어도 혼자서 쓸 일이 있으므로 일정한 용돈을 드려야

합니다. 요셉과 룻과 예수님은 그에 대한 좋은 모본을 보였습니다(45:9-11,47:12,

1:18,2:3,11,19:27).

 

정신적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한 리포터가 집을 나와 걸인이 된 어느 할아버지와 인터뷰한 일이 생

각납니다. 그 할아버지는 자식에게 버림받아 방황하고 있었지만, 리포터가 그 아들의 이름과

주소를 묻자, 그 할아버지는 아들이 살고 있는 곳을 알면서도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것

은 아들의 명예에 해가 될까 염려해서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버렸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부모는 당신들이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 고통을 우리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셨

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쁘게 해주시려고 온갖 비위를 다 맞추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잠언 15:20에는 "지혜로운 아

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라고 했고, 23:25에는 "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늙은 부모와 자주 함께 있어

주며, 잔소리를 들어 주며, 궁금증을 풀어 드리며, 일거리를 드리며, 마음을 헤아려 드리며,

결정을 존중해 드리며 가르침을 순종해 드려야 합니다. 그것들이 부모로 하여금 의문감과

소외감과 고독감과 불안감 등을 없애주고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줍니다.(1,3:20). 어느 시

골 농부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어머니로 하여금 자기의 발을 닦도록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물질을 드리고 마음을 편히 해 주었다고 해도 영적인 삶의 효행이 없다면 부모에게 가장 중

한 것을 드리지 못한 것이 될 것입니다. 부모가 사역자라면 부모를 위해 기도해 드려야 하

, 부모가 일반 신앙인이라면 신앙 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그리

고 부모의 바램이 헛되지 않도록 신앙 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1:16-17). 그리고 부모가 불신자라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전도를 해야 합니다.

 

3.부모공경을 통해 성령님의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부모의 무조건적 사랑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대한 음영입니다. 레위기 19:32"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했습니다. 하나의 일반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을- 저주와 축복을 약

속하여- 주신 것은 사회적 질서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요일5:3,4:20,15:4-8, 3:20). 특히 에베소서 5:18-20에서 성령충만을 권면한 다음에

5:22-23에서 부부사랑에 대해 말씀하시고 6:1-3에서 부보공경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부부사

랑 뿐아니라 부모공경을 통해 성령님과의 교제와 순종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격적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로마서 8: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

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뿐 아니라 모든 섭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감동을 소멸하지 않아야 하며 성령님의 섭리를 순종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9"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공경

인 것입니다.

 

<結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어떤 목적을 가지셨으며 성령님께서 어떤 심정을 가지셨는

지 아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인격적으로 세심하게 작은 부

분에까지 간섭하시는지 알고 그를 순종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제목: 부모공경 자녀양육(4: 1~4)

 

I. 주안에서 순종입니다.

II.주안에서 공경입니다.

III.부모의 도리. 자녀의 도리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지난주간에는 어린이 주일로 지켰으며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자녀들은 부모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주일(시간)입니다.

 

마태복음 79~10절에서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그리고 계속해서 마태복음 711절에서 보면 "너희가 악한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 이라고 했습니다. 이세상의 인생된 부모들은 자식에게 좋은 것 . 맛있는 것. 귀한 것. 아름다운 것.

만족하고 요긴한 것. 복된 것을 다 주고 싶어 합니다.

 

결코 자식들에게는 나쁜 것 . 악한 것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짓과 도적 그리고

살인과 간음으로 가득찬 인생들도 자식에게는 이런 것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성이고 모성입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711절에서 너희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것은 누가복음 1113절에서 보면 "성령" 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어버이날에 성령을 선물로 받는 자가 가장 좋은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꽃도 좋습니다. 금도 좋습니다. 은도 좋습니다. 물질도 좋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을 어버이 주일에 받는자는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한 가정이 가정답게 형성 되어지려면 부모와 자녀 .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이루워

져야 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함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 (6:1~4)절에서는 한 가정의 관계를

잘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는데 주는 교훈입니다.

 

I. 자녀는 부모에게 주안에서 순종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고 했습니다.

 

성경은 자녀가 부모에게 철저하게 순종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20절에서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118~21절에서 보면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않는 자식. 부모의 질책을 듣지 않는 자식이 있으면 성읍 장로들에게로 데리고 가서 자식의 패역과 완악함을 이야기하고 불 순종과 방탕한 생활을 이야기하면 성읍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이고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고 했습니다. 20: 20절의 말씀을 보면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117절을 보면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찌니라" 고 했습니다.

 

지금은 21세기 세계화시대. 정보화 시대를 부르짖으면서 가정윤리가 파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가정의 자녀들이라면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 이름을 부르고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고 살면 자자손손. 대대토록 하나님이 그 가정을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II. 주안에서 공경입니다.

 

우리 본문 (6:2)절에서 보면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012절의 말씀을 보면 "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10계명 중 4번째까지의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인간과 인간에게 준 첫 계명은 5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의 공경은 "티마오" 즉 값을 지불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그 구속의 은혜를 값으로 다 보답할 수 없는 것처럼 자식이 부모가 낳으시고 길으신

그 값을 다 지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시대에 뒤떨어지고 구세대라 할 지라도 무시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당연히 공경의 대상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잘 되고(3)절 땅에서 장수하는 축복이 임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III. 부모의 도리 자녀의 도리입니다.

 

우리 본문(6:4)절에서 보면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했습니다. 부모의 도리는 자녀들이 일방적인 부모 공경만으로 이루워 지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유교의 다른 점은 유교에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스승을 존경하고 상전을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기독교와 똑 같습니다. 유교에서는 그 다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 다음에 하나님은 부모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본문 (4)절에 "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공경을 받을 줄 아는 부모는 역시 자녀를 성경적으로 양육합니다. 그것이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딤후3: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바탕으로 교육한 유대인에게는 노벨상 수상자의 1/3을 찾이 하고 있지만 한국인에게서는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젖을 물리고 성경을 가르쳐주고 기도하여 주고 찬송하며 기르면 그 아이는 커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잘 되는

축복과 장수의 축복이 함께 오게 될 줄을 믿습니다.

 

자녀의 도리는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순종이고 둘째는 공경입니다. 자녀는 자녀의 도리를 다 할 때 그 사람이 인간이 됩니다. 그 때에 그 자녀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습니다. 잘 되는 복을 받습니다. 장수의 축복도 받습니다. 부모는 부모의 도리를 다 할 때에 자식에게 성경으로 양육할 때. 훈계할 때.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때 자녀들로부터 공경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부모는 자식을 뒤돌아 보는 주간입니다.

부모는 나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자녀 또한 나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와 나의 자손이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여 땅에서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성도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약속있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모두 깨닫고 믿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부모님께 효도하자

(6:13 )

오늘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버이주일입니다.우리 기독교의 제일되는 계명이 바로 효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는 핵가족 제도로 바꾸어져 갈뿐 아니라 부모님을 모시기를 꺼려 합니다. 효는 기독교의 바탕이요 도덕의 중심입니다.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했습니다. 이 명령은 인간이지켜야할 의무입니다.

 

 

1. 부모님은 자녀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었으므로 공켱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피를 받아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곧 시들어지고아무리 복스러운 어린아이라토 곧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시들지도 늙지도 병들지도 않은 법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주고 또주고 끝없이 주는 사랑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고도로 발달해도 사랑은 만들어 낼 수없습니다. 아무리 값비싼 금덩이를 가지고도 부모님의 사랑은 살 수 없습니다. 효는 하나님의 약속된 첫 계명이요 엡 6:1자녀들아 에 네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옳으니라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잘되는 죽복받고 형통의 축복딴고 오래사는 축복을 받습니다.

 

 

2. 도덕의 중심이: 효도임으로 우리는 효도해야 됩니다.

불효자는 도덕을 파괴하는 자입니다. 불효자는 나라의 높은 직책을 맡길 수 없습니다. 부모를 섬길줄 모르는 자가 나라와 민족을 섬길 수가 없고 국민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자화쌍친략이요 가화만사성이며 치국평천하라 했습니다. 오늘날 아무리 삼강오륜이 땅에 떨어져도 기독교만은 효를 중심해야 합니다.

 

3. 부모님 은혜 극진하니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자녀 위해, 태중고, 해산고. 양육고를 다 당했습니다. 해산의 수고와 양육의수고 기르는 수고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부모는 굻주리면서 자식은 잘먹이고 잘입히시는 부모님 부모님은 못배웠어도 자식에게는 끝까지 교육시켜 주시는 부모님 병들면 밤잠자지 않고 자녀의 머리탈에 앉아 지료해 주시는 부모님이십니다.

 

4. 효도는 축복의 근원이 되기에 부모님에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할 때 장수의 축복 범사가 잘되는 죽본 지혜와 명칠의 축복 부귀영화의 축복을 받습니다. 1.87에 부모님께 순종마는 자에게 부귀와 영화를 약속했습니 다.

 

5. 불호자의 말로는 망하기 때문에 켤코 불 효해서는 안됩니다.

15 탕자는 부모를 배반하고 나갔다가 망해서 돌아왔습니다. 부모거역할 때 흉년을 만났습니다. 우리에게 사업에 흉년 가정에 흉년 농사의 흉년 사랑의 흉년 직장의흉년을 만나거든 혹시 내가 하나님께 부모님께 불효한일 없는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삼하 18:에 압살롬이 부모를 반역하다가 망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6. 효자의 말로는 하나님이 책임져 줍니다.

롯은 시어머니께 효도하더니 보아스를 만나 자손만대 복받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부모님께 순종하여 한해에 농사지어 100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제 효도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 다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자손만대 효도의 가문 하나님 잘 섬기는 가문 됩시다. 그리하면 여호와의 축복을 받게될 것입니다. 아멘-

 

설교제목 :부모님을 즐겁게 하여 드립시다

본 문/23:15-25

오늘은 우리 교회들이 지키는 어버이 주일입니다. 주 안에서 부모님을 잘 모시자는 뜻으로 지키는 귀한 주일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님 모시는 효도에서도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약속한 말씀대로 자신에게도 복이요 하나님께도 영광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통하여 부모님을 즐겁게 하여 드리자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져 합니다. 본문 말씀은 부모님을 즐겁게 하여 드리는 효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부모님을 상심하게 하면 안됩니다.

 

어떤 때에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까? 음주입니다(20, 21, 29, 30). 음주는 한 마디로 하여 패가망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잘 되기만을 그렇게도 원하시는 부모님에게는 음주가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성경에 술취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과음을 금했지 음주 자체를 금한 일은 없다고 합니다. 얼핏 들으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잘 못 보았고 또 그 성경의 뜻을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보지도 말라(31)"고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과음하게 되고 폭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음주는 모든 신경을 마비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고 후유증으로 몸의 신체 구조 기능이 약해지는 것이므로 패가 망신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는 삶은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1519). 죄인의 형통이란 부당한 방법으로 출세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죄인도 일시 형통할 수 있으며, 그 형통은 쉽게 잘 되는 것 같으므로 부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형통이 후에 큰 낭패가 되어 장래가 없고 소망이 끊어 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불순종은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2. 부모님을 즐겁게 하여 드립시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 드리는 것입니까? 정직하고 지혜롭게 살면 부모님을 즐겁게 하여 드리는 것입니다(1516). 곧 성공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청종하므로 부모님을 즐겁게 하여 드립니다(6:1).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님께 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고 맛이 있는 것을 해 드리고 많은 용돈을 드린다 해도 순종이 없으면 불쾌하게 하는 것입니다. 레갑 족속은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여 마시지 않는 것을 제일 큰 규범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35:111).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선조 요나답이 금주하라고 명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처할 집과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일에 순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너희는 내가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30:14).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설 자가 끊어지지 않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부당하여도 일단은 순종하십시오. 부당하면 창조적인 제안으로 순종하십시오. 다니엘과 그 세 친구처럼.

공경함으로 부모님을 즐겁게 하여 드립니다. 4 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공경이란 말은 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존경하라는 뜻입니다. ()처럼 아주 귀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간이 나쁘면 고칠 길이 없다고 합니다. 간은 모든 음식물을 걸러서 모든 곳에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와같이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모든 것 받아서 걸러 좋은 것을 주십니다. 부모님답지 못하여도 자식은 부모님을 존경하여야 합니다. 또한 공경이라는 말은 봉양하라는 말입니다. 물질로 봉양하십시오. 더 모양도 내어 드리고 더 좋고 맛있는 것도 종종 해 드리십시오. 그리고 자주 대화로 봉양하십시오. 그날 그날의 일들을 말씀드리고 기도도 부탁 드리십시오. 요사이 Video, Cyber 시대에 부모님의 모습, 가장 바람직한 모습(기도, 말씀 묵상, 찬양, 봉사하시는 모습 등)Video, Cyber에 담아 주십시오. 이런 것을 만들어 장례식 때나, 자식들이 다 모였을 때에 한 번씩 보시고 자녀들에게도 보여 주십시오. 특히 믿음 생활을 도와 주십시오. 천국에 가셔서 크게 면류관을 받으시도록 하여 주십시오. 유산이나 많이 타려고 하지 마십시오. 특히 혼자 계시는 부모님들에게 상대편이 되어 주셔서 외롭지 않게 즐겁게 지내시도록 하십시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효도에 대하여는 목사가 꼭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자식된 도리로 마땅히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줄 압니다. 이것이 자신이 잘 되는 길이요 자기도 부모가 되었을 때에 자식에게 효도를 받을 것입니다. 또 옛날부터 수신제가시국평천하 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정에서 부모님을 잘 모심으로 좋은 시민이 될 수 있고 좋은 교인이 된다는 원리도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부모님에게 효도하여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자는 것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1. 소극적으로는 주색잡기로 패가망신 하지 말고

2. 적극적으로는 정직과 지혜로 성공하고

3. 순종하고 공경함으로 부모님을 즐겁게 하여 드립시다.

 

 

본 문 : 에베소서 6 : 1 - 4

제 목 : 부모님의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까?

 

할렐루야!!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

모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부모님의 은혜를 언제인들 잊으리오마는 부모님 주일을 맞이하여 마음속 깊

, 그리고 뼈에 사무치도록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효성을 다하여 하늘의 신령

한 복과, 이땅의 기름진 복을 충만하게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본문 6:3절 말씀에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 어버이 날에 대한 유래는 미국의 안나 자비스(Mrs, Anna M. Jarvis)

라는 부인에게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자비스 부인은 특정한 날을 정하여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후 1913년 이래 5월 둘째주일을

정하여 세계적인 행사로 확대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58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여 지켰는데 1973년부터 아버지들의 항의로 인하여 어버이날로 지키게 되

었습니다. 이 날은 자녀들이 카네이션을 달았습니다. 부모가 있는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달고 부모가 없는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달았습니다. 그것이 이제

는 부모님께 달아드리는 것으로 풍습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고 첫째주일은 어린

이주일로 지키고 둘째주일은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이 세상에 수십만 마디의 말이 있어도 그중에 가장 고상하고 좋은 말은

머니아버지라는 말 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보다 아버지의 사랑보다 더 크고 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쥐면 꺼질

세라 불면 날세라 금지옥엽 애지중지 하며 겨울이면 추울세라 여름이면 더울세

라 염려하시고 행여나 배고파 할까봐 당신은 못먹어도 자식들 입에 밥풀 하나

라도 더 먹이고자 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요, 진자리 마른자리 구별치 않고

진자리에는 당신이 누우시고 마른자리 골라 자식들 뉘어서 키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한 길이라면 천리길이라도 마다 않고 달려가시며, 또 자

식들을 위한 일이라면 손발이 갈퀴손이 되고 손톱 발톱이 다 달아도 당신몸 아

끼지 않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이와 같이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공을 어찌 태산에다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아래 더 큰 것이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다음으로 부모님의 은혜가 크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은혜에 대한 노래가 있

습니다.

 

나실제 괴로움 다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달토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당신은 못입어도 철따라 세옷을 입혀주고 수업료 장만해서 공부시키며 훌륭

한 사랑이 되라고 당부하시며 어쩌다 병이라도 나면 밤새워 물수건을 이마에

놓아주시며 간호해 주시던 따뜻한 손!

떠나 보내면 보고 싶어 차에 오르기도 전에 언제 또 오려느냐고 물으시며 눈

물고인 얼굴로 바라보는 인자한 모습을 세상 그 어느곳에서 누구에게서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잘하면 자랑하고 싶어 어쩔줄 모르시고 잘못하면 분해 하시던 어머니의 사

, 사람되라고 눈물로 가르치며 열번 잘못해도 다 잊어주시고 용서하시던 어

머니의 사랑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저리며 눈시우리 뜨거워집니다. 이처럼 어머

니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시고

도 더 못주어서 아쉬워 하는 한없는 그 은혜, 그 사랑을 무엇으로 보답한단 말

입니까?

장미꽃이 아름답다고 해도 어찌 어머니의 아름다움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릴 때 주일학교에서 배운 찬송이 있습니다.

 

1.천송이 장미꽃을 다발지워도 만송이 장미꽃을 아름지워도

그보다 더욱 더욱 아름다워요 언제나 보고싶은 어머니 얼굴

2.천만개 옥구슬을 달아놓아도 천만개 금구슬을 달아놓아도

그보다 더욱더욱 보배로워요 언제나 보고싶은 어머니 얼굴

3.백두산 한라산을 포개놓아도 동해물 서해물을 합쳐놓아도

그보다 더욱더욱 깊고높아라 어머니 그사랑은 한이 없어라

 

이와 같이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은 평생을 갚아도 갚을 길이 없어 부모님에

게는 언제나 빚을지고 사는 것이 우리 자식들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이

부모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배은망덕한 인간들이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부모없이 어떻게 이땅에 태어날 수가 있었으며 부모없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

아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에는 부모님을 내다 버리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양로원

근처에는 심심찮게 노인들이 버려지고 있답니다. 효도관광 시켜준다고 제주도

에 가서 버리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어떻게 다시 찾아오니

까 요즘에는 동남아 외국에 가서 버리고 온답니다.

지난번 텔레비죤에도 방송이 되고 신문에도 보도가 되어서 여러분들도 잘 아

시겠지만 대구에서는 자식이 80이 넘은 어머니를 며느리와 사이가 나쁘다고 등

산용 텐트를 하천기 외진곳에 치고 그곳에다 내다 버렸습니다. 이틀밤을 추위

와 공포에 덜며 지내고 마침 경찰에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어머니는

그 자식을 감싸주느라고 자기가 걸어왔다고 합디다. 그 할머니의 말이 죽어버

릴려고 약방에 가서 약을 달라고 하니까 팔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

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있노라고 하는 말을 듣고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

. 그래서 메스콤에서는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손발이 다 닳토록, 그리고 허리가 꾸부러지도록 자식들 키워주었는

데 왜 이와 같이 부모를 박대하는 것입니까? 그 벌을 어떻케 감당하려고 하나

님 두려운줄 모르고 그와 같이 잔인한 일을 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말씀하기를

(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20:9)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

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 새 중에 까치는 길조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까치가 울면 좋은 일

이 있든지 반가운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흉조라고

합니다. 그래서 까마귀 울음소리는 어쩐지 음산하고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런데 이 흉조라고 하고 또 사람들이 좋와하지 않는 까마귀는 자기의 어미에게

가장 효도를 잘하는 새입니다. 그래서 까마귀는 어미새에게 먹을 것을 갔다 줍

니다. 어미새가 늙어서 털이 다 빠져서 날지를 못하게 되면 어미새를 등에다

업고 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아 봉양을 하는 새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미물

의 짐승도 어미를 알아보는데 어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어머니를

몰라본다면 이는 금수만도 못한 인간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님의 은혜란 아무리 갚아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가운데서 "효도" 하는 방법을 찾아서 일생동안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부모님의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10계명을 보면 14계명까지는 인간이 하나님께 하여야 할 계명이고,

510계명까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그런데 그중 첫째

가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

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이요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길이 되는 것

입니다.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

는 것이니라"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님에게 절대적으로 순종을 하여야 합니다. 부모

님을 잘 공경하여야 합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천사입니다.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치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 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

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

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그러면 부모님을 잘 공경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

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고 말씀하셨

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중에 가장 첫째가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의 살과 뼈를 깎아서 낳은 자식을 손발이 다 닳도록 키워주었는

데 부모들이 왜 그 자식과 같이 살기를 싫어합니까?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부모님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실수도 있고 허물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

니 참 효도는 부모님의 실수을 이해하고 허물을 덮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부

모님이 평생동안 살아온 그 문화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20:9절 이하에는 노아가 어느날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취하여서 하체를 드

러내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노아의 아들중에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흉을 보았

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뒷걸음으로 가서 아버지를 덮어드렸

습니다. 잠이 깬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하고 함에

게는 형제들의 종이 되는 저주를 내렸습니다.

 

<> 나이 많은 노모를 둔 형제가 살았습니다. 형은 생활이 넉넉했으나 동생

은 가난했습니다. 형은 어머니를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항상 어머니를 극

진히 잘 받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작은 아들네만 가시면 올려고를 하

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아들이 그 까닭은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랫드

니 어머니가 하시는 말이 옷과 음식이야 너희네만 할까마는 작은 아들네만

가면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언제나 등을 긁어주는데 그게 어찌나 시원한

지 그래서 오기가 싫구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진정 어머니를 편안하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은 큰 아들네의 좋은 옷과 맛있

는 음식보다도 작은 아들네의 사랑과 정성이었습니다. 늙은 어머니에게 좋은

옷도, 맛있는 음식도, 풍성한 용돈도, 선물도 필요하시지만 더 좋은 것은 몸에

와 닿는 자식의 손길에서 따사로운 정감을 더 느끼는 것입니다.

부모님 날이라고 카네이션 꽃 한송이나 달아드리고 선물이나 사 드리면 그만

인줄 알고 게다가 용돈이나 몇푼 드리면 효도한줄 아는 이런 정신은 고쳐져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사드려도 그보다 마음속으로부터 울어나오는 혈연

의 사랑이 더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 며칠전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70이 넘은 남자 노인이 혼자서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가 죽은지 5일만에 발견

이 되었습니다. 오피스텔이라면 혼자 살기 아주 편한 아파트 같은 집으로 값도

꽤 나가는 집입니다. 그 노인이 자식이 없어서 혼자 산 것이 아닙니다. 혼자 사

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자식들은 생활비도 잘 드리

고 무슨 때가 되면 선물도 사드리고 또 아버지를 살기 편리한 오피스텔에 잘

모셨다고 생각하였겠지요.

 

고사(古詞)에 반의지희(斑衣之戱)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옜날 초()

라에 老萊子라는 사람이 늙은 부모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색동옷을 입고 어리

광을 부렸다고 해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참 효도는 주안에서 부모님의 교훈에 순종하며,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요, 또 장수와

축복의 비결인 것을, 깨달아 실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부모님이 살아계신 생전에 효도를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효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사는 의,,주를 잘 보

살펴 드려서 불편함이 없으시게 정성를 다해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도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잘 보살펴 드리

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제일먼저 부모님을 생각하고 불렀습니다(

47:12)

세상 만사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인생은 영원한 것

이 아니고 곧 떠나갈 몸입니다. 부모님은 때가 되면 떠나시게 되니 생존해 계

실 때에 효도를 잘해야 합니다. 효도는 내일로 미루어서는 않됩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습니다. 철들어 보니 벌써 부모님

은 떠나고 계시지 않아 그때는 가슴쳐 후회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나의 고향 교회에 박찬희 라고하는 믿음 좋은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70이 넘은 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살아계실 때에 그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기 위하여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는 산 삭망차리를 해 드렸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아무리 제사상을 잘 차린들 그 어머니가 한숟가락 잡수시지 못하고 오히

려 산 사람들이 잘 먹는 꼴이 되니까 살아계실 때에 이와 같이 맛있는 음식을

차려서 효도를 하였습니다. 그때만해도 생활이 그리 넉넉치 못할 때여서 매달

두 번씩 소고기국 끓이고 음식 장만해서 집안 어른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를 몇년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어머니도 결

국 아들의 효성에 따라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교회 출석 하시다가 돌아가셨

습니다. 아들의 효성이 어머니를 구원하여서 천국가게 하신줄로 믿습니다.

<아멘>

 

 

3. 부모님께 일시적인 효성이 아니라 영원한 효성을 하여야 합니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동안에는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음식으로 최선을 다하

여 편안히 모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부모님은 언

젠가는 떠날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 뒤에 영원한 세계에서 영생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러므로 영원한 효도는 부모님께서 예수를 믿고 구원함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잘

하실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아직까지도 구원받지 못한 부모님은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서 전도하여 영원한 천국으로 모시는 것이 효도중

에 가장 큰 효도이며 영원한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22:1절 이하의 말씀에는 그곳은 밤도 없고 등불과 햇빛이 없어도 어둡지

않고 눈물이 없는 곳이며 아픈 것이나 죽음이 없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

로 이 아름다운 영원한 천국에 부모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러케 되면 여러분들

은 효도중에 가장 큰 효도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살아계신 부모님은 그렇게 전도를하여

영혼을 구원시킨다고 한다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부모

님에게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그분들이 평생에 예수를 믿으셨다면 구원을 받

아서 천국에 가 계시겠지만 예수 믿지 않고 가셨다면 분명히 지옥에 가셨을 텐

데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그와 같은 분들에게도 효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16:19절 이하의 말씀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부자가 죽어서 음부의 고통중에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보고 아브라함에게 소청하기를 나사로를

내게 보내어 물한방을만 내 혀에 떨어뜨려 달라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부자는 다시 청원하기를 나사로를 다시 세상에 보내어 나의 이 참상을 다섯형

제들에게 알게하여 그들은 자기와 같이 음부의 고통에 오지 않게 되기를 청원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대목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 부자의 소원은 자신은 어쩔수

없이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어도 형제를 비롯하여 온 가족들은 하나님 믿

고 그 지옥에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부모님이나

조상들 중에 예수 믿지 않고 죽으신 분들이 지금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신앙생

활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돌아가신 분

들에게 효도하는 길은 여러분들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

니다. <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한번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좋은 옷 입히시려고 자신들은 추위에 떨었고,

자식들 배불리 먹이시려고 자신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야 했습니다.

문풍지 우는 깊은 겨울밤에도 호롱불 켜놓고 바느질로 긴긴밤을 지새우셨습

니다. 휘영청 밝은 달을 쳐다 보며 객지 나간 아들 생각에, 또 시집보낸 딸 생

각에 잠못이루는 부모님이셨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한대서야 어찌 사람이

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서 편안히 기쁘고

즐겁게 모시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시어 효도중에 효도를 하는 성도가 되어

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과, 신상의 건강의 축복과, 자손 천대까

지의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약속을 수반하는 첫계명

에베소서6:13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 : 첫계명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10가지 계명을 주셨습니다.

1계명은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2계명은 우리사람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3계명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계명은 안식을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여기서 네 번째 까지의 계명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수직적인 관계 즉, 우리 사람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모든 의무가 기록 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

8계명은 도적질 하지 말라

9계명은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증거 하지 말라

10계명은 네 이웃에 있는 것을 무엇이든지 탐내지 말라

510계명까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으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해야 될 일들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즉 수평적인 관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수평적인 인간관계의 계명중에서 첫 번째로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첫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여러분!

우리중에 누군가가 살인한 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우리중에 누군가가 간음한 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우리중에 누군가가 남의것을 훔친 도둑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우리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범죄자라면 우리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뉘우칠 것 입니다. 아니면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데 왠 일입니까? 늙으신 부모님께 효도하지를 못해도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고사하고 전혀 마음에 꺼리낌이 없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어긴것이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그 계명에 공경하지 않는것이나 계명을 어긴것에는 다를 바 없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살인한 죄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 공경은 깊은 원리의 배경이 있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산천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급속도로 진전이되고 하루가 달리 변하고 있지만 자식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자녀를 양육해 보시지만 자녀를 끔찍히도 사랑하시지 않는 분은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자녀를 위하여 우리의 온갖것을 희생하시지 않습니까?

자녀 뒷바라지 하기 위하여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처럼 애지중지 자녀를 위하여 온갖 정성 다바치고 우리의 생을 희생하여 양육하였는데 이제 여러분들께서 늙으셨을 때 그 자녀들이 핵가족으로 인하여 자기 부인과 아이들만 챙기고, 사업이 바쁘고 직장생활이 피곤해서 부모님 찾아오지도 않고, 불경기다 하면서 용돈도 제대로 드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기 자식은 해줄 것 다해주고,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매일 핀잔 주면서 구박한다면 여러분의 심정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특별히 우리네의 부모님들은 지금 연로하신 분들입니다.

우리네의 부모님들은 지금 어린아이들과 중고생을 양육하는 젊으신 부모님들 보다 훨씬 더 고생을 하신분들입니다.

출산하실 때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정말 힘들게 고통스럽게 출산하셨습니다.

40년도에 50,60년도에 우리들을 출산하셨습니다. 정말 지지리도 가난하고 쪼달렸던 우리나라 전쟁전 후의 그 참흑한 현실 앞에서 하루세끼 끼니를 이어가기가 어려웠던 시절, 또는 전쟁과 남북간의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많은 우리의 어머님들은 남편을 잃었습니다. 아내와 헤어졌습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못했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남편을 잃은 우리네의 어머님들은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상상할 수 없는 고생을 하시면서 자식하나 잘 키워

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당신들의 모든 삶을 희생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네의 부모님들은 맛있는 것 제대로 잡수시지 못하고 입을 것 제대로 입지 못하시고 배울 것 제대로 배우지 못하신분들 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오직 자식하나 잘되기를 눈물로 키워 왔습니다.

이렇게 자식때문에 죽도록 일만하시고 고생하시고 잡수시지도 못하여 얼굴이 아름답지 못할 수도있고 멋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름답지 못하다고, 멋이없다하여 늙으신 어머님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을 꺼려하고 무식하다고 핀잔을 주며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무시해버리는 심성은 왠말입니까? 왠 일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모두 부모를 공경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계명입니다. 첫계명입니다.

장인, 장모님을 극진히 공경할 수가 없습니까?

시아버지, 시어머님을 극진히 공경할 수가 없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계명이기 때문에 노력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남편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시어머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내를 사랑하면서 나의 아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모순입니까? 예를들면 자녀에게 힘을다해 귀중한 것을 선물로 주었는데 자녀는 그 선물을 준 부모님은 뒷전이고 부모님께 감사하지 아니하고 그 선물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면 그 선물을 준 부모님은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사랑하는 남편을 있게 해 주신 시어머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어머님임으로 내가 사랑할 수 있으며, 극진히 공경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국적인 문화 아래서는 더욱더 부모님께서 순종하고 공경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제사도 지내지 않으면서 살아계실 때도 효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웃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전도가 될 수 없습니다.

효도를 잘하면 전도가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집 며느리는 효도할 줄 몰라”. 이런식이라면 어떻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우리S.F.C. 여러분! 청년부 여러분!

부모님께 순종하십시오.

우리에게 이해가 되는 부분만 순종하란 의미가 아닙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란 의미는 우리가 그리스도인 이라면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순종하란 의미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3:20)

결혼하신 성도님 여러분! 부모님께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공경은 순종보다 물질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공경은 순종할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만 할뿐 아니라 공경도 아울러 하여야 합니다. 어떤 자녀들은 물질적으로는 잘하고 있으면서 마음의 순종은 없습니다.

여러분!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공경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서울에 효자동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있습니다, 갓태어난 아기와 할아버지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몸부림에 아기가 할아버지의 팔에 목이 눌려 죽었습니다. 며느리가 죽은 아기를 보고 시아버지가 놀라실까봐 몰래 아이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와서 자기 남편에게 상황을 말했더니 남편이 죽은 아이를 보고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불효자식이라면서 한 대 때렸더니 그 충격에 아이가 깨어나 아이가 살았다고 합니다. 부모님을 위한 이 아들의 행동을 보고 효자동이라 칭합니다. 이러한 효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낳으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밤낮으로 기르시는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니의 희생은 한이없어라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 124문에 의하면 부모의 의미는 육신적인 친부모뿐만 아니라 연령에 있어서 또는 다른 의미에서 윗사람을 말하며 특히 교회 또는 하나님의 법령에 의하여 된 가족, 교회에서 위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의미는 나의 친부모가 아닐지라도 교회에서의 어른을 공경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연장자를 공경하라 교역자를 공경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대는 계급사회임으로 모든 일들이 질서있게 잘 진행이 됩니다.

회사도 일종의 계급사회임으로 모든 일들이 질서있게 잘 진행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계급사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연장자를 존경하라는 이 의미를 깨닫지 못 하면 교회에 질서가 없게 됩니다. ,,선후관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부모처럼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고 공경하여야 합니다.

4남전도회는 1남전도회원들께 순종하고 공경하여야 합니다. 때로는 뜻이 다를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6,7여전도회원들도 1,2여전도회와 의견이 다를 때 진리문제가 아니면 순종하여야 합니다. 5,6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자녀들아 부모들에게 순종하라 종들아 상전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당회안에서 뜻이 맞지 않아서 무질서하여 교회에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집사님때에는 잘 순종하다가 장로님이 되고 나면 선배 장로님도 무시해 버리고 같은장로다하여 질서를 혼란케 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도 장로인데하는 교만한 마음을 마귀가 심어 줍니다. 연장자를 공경하여야 합니다.

19:32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

32:7 “너는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리하면 네게 가르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왕은 경험이 많고 나이 많은 신하들의 말을 듣지아니하고 자기와 같이 자라난 연소한 신하들의 말을 추종하다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던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사시절부터 절기때에 조그만 카드 한장이라도 써서 장로님들께 드렸으며 찾아 뵙곤 하였습니다. 연장자들은 수십년의 인생을 살아온 경험 그 자체가 지혜입니다.

12장에서는 노인은 지혜있고 장수해서 명철하다고했고,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 모든 교역자는 연령적으로는 어리지만 영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는자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윗사람의 부류에 포함된다는 것을 아시고 부모로 대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성경은 영적부모에 대해서 존경하고 순복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6:6, 13:17, 딤전5.19, 벧전5:7) 이제 우리가 육적인 나의 친부모를 공경하고 교회에서의 윗사람, 연장자, 교역자를 공경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다른계명에는 약속이 없습니다. 2계명에는 은헤를 베풀어주신다는 약속이 있는데 그건 약속이 아니고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5계명에는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우리에게 복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구원만 강조합니다. 그래서 복이야기를 하면 세상적인 것이라 하며 비난합니다. 세속적, 기복주의 라고 비관합니다.

또 어떤교회에서는 육적인 복을 너무 강조 합니다. 이 지상에서 잘 살아야됨을 강조하다보니 구원과 신앙의 성숙은 멀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성숙과 복을 다 강조 하고 있습니다. 잘되는 복을 주십니다. 잘된다고 할 때 물질이 많은 것만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위가 높아지는 것만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물질이 없고 직위가 높지 않지만 행복하게 늘 감사하게 살아간다면 잘 되는 것 아닙니까?

이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다 할지라도 마음에 기쁨이 없고 평강이 없다면 잘되는 것 아닙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 즐거움, 은혜와 평강이 있다면 그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잘되는 복은 물질의 번영은 분명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삽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들! 그리고 젊으신 어버이 여러분들이여! 힘있게 살아 가십시오.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평안히 살아 가십시다.

만약 우리가 인생을 즐길 줄 안다면 우리는 청년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노인노인입니다.

만일 우리가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젊음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과거만을 회상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입니다.

만일 우리가 즐거움을 회상하고 있다면 우리는 젊음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고통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줄줄 안다면 우리는 젊은이 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받으려고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입니다

꿈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젊음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국에서 파견된 한 천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지고 가야하는 임무를 가지고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천사가 세상을 둘러보다 정원에 핀 장미가 아름다워 가져가고 또 엄마품에 안겨

 

있는 아기의 미소가 아름다워 그것도 가져가다가 아기를 보고 있는 엄마의 사랑이 더 아름다워 보여 그 사랑도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장미꽃은 시들어버리고, 아기의 미소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은 변함 없이 더욱 숭고해져 있었습니다.

모든 자녀들 여러분! 어머니의 사랑은 한없이 숭고 한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내가 못나고 머리가 둔하고 불구자일 때 멸시하고 업신여기나 우리의 부모님은 그럴수록 더욱 불쌍히 여기시고 더 큰 사랑 더 많은 도움을 주시면서 가슴아파 하십니다.

이러하신 부모님께서는 100세까지 살수 없습니다.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무덤앞에서 목놓아 울어도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주안에서 순종하십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십시다.

그리하여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어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공경은 약속있는 첫계명

3:1-4, 6:1-3

 

우리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약속의 관계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는 두 개의 큰 약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예수님이 오시기전에 약속하신 말씀이고,

신약은 예수님이 오신 후에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불변의 약속입니다. 온 우주가 없어진다 하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 변하지 않으며 그 약속은 성취되고 이루어집니다.

오늘은 부모님의 은공을 생각하면서 예배드리는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봉독한 에베소서 6장에서 보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는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되기를 바랍니다. 가정이 잘되고 자녀가 잘되고 사업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잘되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잘된다는 말이 어떤 뜻이 있습니까?

 

 

첫 번째로 / 잘된다는 말은 훌륭하게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성서에 보면 효도한 사람들이 훌륭하게 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효도한 요셉이 훌륭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들을 만나러 갔다가 억울하게 애굽에 팔려갔지만 20년만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나안에 큰 흉년이 들어 죽게된 아버지 야곱과 그 형제들을 애굽으로 이사하게 하여 죽음을 면하게 했습니다. 다윗도 아버지의 말씀 순종하여 효도하므로 훌륭하게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강하게 하고 빛나게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 질된다는 말은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어린 사무엘은 어머니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여 엘리 제사장이 있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잘 섬겼으므로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위대한 제사장과 선지자로 성공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효도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성공하게 하십니다.

 

세 번째로 / 잘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미국에서 인공위성을 처음 만들어 발사할 때 완전하게 만들어놓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할 일을 다 했습니다. 단 한가지 이제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일만 남았다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올바른 기도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설계를 잘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허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효도하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두 번째 약속은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장수한다는 말은 오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공한 것이 오래 가야 하고, 받은 복을 오래 누려야 합니다.

세상에 보면 성공했어도 금방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크게 성공을 했다가도 곧 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공했으면 오래가야 하고 복을 받았으면 오래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장수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영생의 복을 의미합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영생의 복을 누리고 삽니다.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에게 마땅히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의 방법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고 물질로 잘 봉양해야 하고 신앙의 모범으로 기도로 잘 공경해 드려야 합니다.아멘.

 

 

 

 

제 목: 네 부모를 공경하라

본 문: 에베소서 6:1-3

 

오늘은 우리를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기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어버이 주일"입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은혜를 입고 그 은혜를 어떻게 갚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동물과 같을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 인간다움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어버이의 개념을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먼저는낳아준 어버이인데 이것은 일반적인 개념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의 목회자를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나를 먹여 주시며 돌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신부라고 하는데 영어로 파더(father)라고 하여 아버지와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지적으로 나를 가르쳐 주신 분이니 그분의 영향권에 내가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가르쳐 주신 모든 선생님들이 정신적인 세계에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정치적 지도자인 왕을 아버지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 옛 어른들의 생각인 군()()() 일체(一體)라는 인식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은인들에 대한 윤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땅에 떨어져 짓밟히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있었든 일입니다. 시골에서 세 아들을 낳아 논밭을 다 팔아가며 아들들을 서울로 보내 교육을 시켰습니다. 애쓴 보람이 있어 큰아들은 사업을 하여 재벌이 되었고, 작은아들들은 큰 회사의 중역이 되었습니다. 부모들은 재산은 없어지고 몸은 늙고 살 길이 막연하여 서울에 올라와 이 아들, 저 아들네 집으로 전전하며 지내는데 가는 곳마다 천대를 합니다. 이렇게 되자 두 늙은 부부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낫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이동 골짜기 푸른 잔디가 돋아나는 양지바른 곳에서 진달래꽃을 꺾어놓고 두 노인이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 대하고 죽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이와 유사한 일이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이러한 시대 속에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언 30:17)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애굽기 21:15) 하셨으며,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출애굽기 21 :17) 하셨습니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부모가 그를 잡아 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명기 21:18-21)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저주의 경고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불효의 죄를 얼마나 크게 보시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볼 때 불효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첫 계명을 어긴 것이 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에베소서 6:2). 십계명가운데 효의 계명은 제5계명입니다. 그런데 왜 본문에서는 첫 계명이라 하셨을까요? 십계명을 내용별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1-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관계된 계명이며, 5-10계명까지는 인간관계에 관한 윤리의 계명입니다. 이 인간윤리의 첫째가 되는 계명이 곧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효는 인간 윤리에 있어서 가장 큰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또한 불효는 사탄에게 미혹된 증거라 하셨습니다. 말세가 되면 세상이 극도로 타락하게 되는데 나타나는 증거가운데 하나가 불효라 하셨습니다. 성경에 예언하시기를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디모데후서 3:1-3).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이러한 때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망각하되 부모님의 은공마저 저버리며 ,감사함을 모르며, 인정과 사랑이 메마른 타락한 시대를 향해 어느 분이 이러한 권효가를 지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이내말씀 들어보소

하나님께 영혼받고 부정모혈 육신되어

천금일신 귀한몸이 이세상에 태어나서

금지옥엽 사랑받아 자란것이 아니던가

부모생육 그은혜는 하늘보다 높건마는

청년남녀 많은중에 효자효부 귀할세라

제자식이 꾸짖으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모님이 책망하면 듣기싫어 성을내며

시끄러운 아이소리 듣기좋아 즐기면서

부모님의 교훈일세 잔소리라 빈정되네

열아들을 기른부모 하나같이 길렀건만

열형제가 한부모를 어이하여 못섬기나

그대몸이 귀하거든 부모은공 생각하고

서방님을 생각거든 시부모를 중히아소

안먹어도 상관없는 술담배를 낭비하나

부모위해 쓰는용돈 다방레지 팁만못해

과자봉지 쥐고와서 아이손에 쥐어주나

부모위해 고기한근 사올줄을 모른다네

한국만족 부모효도 자손만대 자랑일세

 

효도는 신앙생활의 시금석입니다.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구별하는 방법가운데 한 가지가 효도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섬긴다는 것은 허위요 거짓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한14:20). 하셨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해도 그 신앙이 거짓이라면 부모님의 은혜를 망각한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이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격언에 "신은 도처에 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버이들을 만들었다." 라고 했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신자의 증거입니다. 효도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2-3). 하셨습니다.

한 소년이 바다를 정복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평생 뱃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 소년은 자라나 큰 선박회사에 취직을 하고 먼 나라로 출항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드리렸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너를 떠나 보내는 것이 너무 괴롭구나" 효심이 지극했던 이 청년은 어머니의 눈물을 보자 항해를 포기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으며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복을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 너도 반드시 큰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훗날 이 청년은 미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조지 워싱톤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며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효도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사람은 모두가 효자였습니다. 노아의 아들 셈과 야벳이 그렇고, 요셉이 그렇고, 룻이 그렇고, 다윗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의 효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2:51의 말씀에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을 박히시는 그 쓰라린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시며 어머니 마리아의 장래를 위해 제자인 요한에게 당부하셨습니다.

 

한 불쌍한 과부가 산을 개간하여 가꾸고, 양계를 하며, 삯빨래를 하여가며 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그 아들은 어머니에게 보답하고자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식장에서 최우수상으로 금메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졸업식장에 참석은 하였으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아들이 부끄러워 할까봐 기둥 뒤에 숨어서 장한 아들의 졸업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단상에 올라가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받은 후 어머니에게로 달려가 "이 모두가 어머니의 은혜입니다." 라고 감사하며 금메달을 어머니의 목에 걸어드리고 어머니를 업어드렸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아들이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된 윌슨입니다.

 

 

성도 여러분 효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1-3).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있는 첫 계명

에베소서6:1-3 (어버이주일)

 

무엇이든지 대부분 첫 번째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친히 돌비석에 새겨주신 십계명에도 첫 번째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인데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계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돌비석 두 개에다 계명을 새겨 주셨는데 두 번째 돌비석에 첫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돌비석에 새겨진 제5계명에는 다른 계명과 다른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라"는 명령이고 둘째는 "그리하면" 하고 약속이 있습니다.

6계명은 "살인하지 말지니라" 7계명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8계명은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지니라" 10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는 계명으로 모두 하지 말라는 것이고 약속은 따로 없습니다.

하나만 잘 하면 대박이 터집니다. 잘 되고 장수합니다. 효도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이가 점점 많이 들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해서 음식을 자꾸 흘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며느리와 아들이 보기가 답답해서 "미안하지만, 아버님은 딴 곳에서 잡수세요"하고 다른 상에다 드렸습니다.

그러나 미동도 어려운 할아버지가 그릇을 들고서 먹으려고 하니 그릇을 떨어뜨려서 자꾸 깨뜨립니다. 이런 일이 있으니 며느리는 화가 나서 어디 안 깨지는 그릇이 없나 살피다 주방 옆에 있는 고양이 밥그릇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 고양이가 쓰던 나무그릇에 밥을 담아서 할아버지에게 드렸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주방 옆에 앉아서 그 고양이 밥그릇에 갖다 주는 것을 조금씩 드시고 지냅니다.

시간이 흐른 후 아들과 며느리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너댓 살 먹은 아들이 나무를 갖다 놓고는 칼로 부지런히 가운데를 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길동아, 너 뭐 하는 거니?" 그러자 아들은 "나무그릇을 만들려고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릇을 만들어서 뭐 하려고 그러니"하고 다시 물었습다. 그러자 그 아들은 "아버지가 이 다음에 늙으시면 여기다가 밥 담아 드리려구요"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이 다음에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를 공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부모에게 효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자식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효도할까요?

1.주님 앞에 가셔서 칭찬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신앙생활 잘 하게 도와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가 시집을 갔는데, 시아버지는 장로님, 시어머니는 권사님이신데 하나님 앞에 헌신하시는 것이 실망 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대로 천국 가셨다가는 책망들을 일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헌금할 일 있으면 "돈이 있어야지" 하고는 발뺌하고, 교회를 건축할려고 하는데도 "돈이 있어야지"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신앙생활 제대로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매는 금식하며 기도하며 시부모님을 설득시키는 것입니다. 가서 직접 이해도 시켜드리고, 눈물의 편지도 보내면서, 그러면서 믿음 없는 남편을 설득시키면서 열심히 교회봉사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십일조 생활, 아낌없는 헌금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는 것을 보게 하였습니다.

지금은요! 그의 남편은 완전히 변하여 열심 있는 성도가 되어 교회 일이라면 열일 제쳐놓고 하는자가 되었고, 이제는 남편과 합작으로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며 그 부모님이 하나님께 헌신하실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교회 건축을 시작하는데 "돈이 있어야지"하고는 참여를 안 하는 것을 알고 아들 두 내외가 "돈 없으면 밭문서라도 드리세요. 지금 교회를 지으면 앞으로 수 십년이 가는데 자녀들 보기에 떳떳하게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밭문서라도 드리면 교회가 필요할 때 팔아서 쓸 것 아닙니까? 자식들 물려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세요" 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그 부모님이 많이 변화되었지요. 그러나 아직은 그대로 주님 앞에 가신다면 장로로서 권사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그럽니다. 그 집에 맏며느리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주님 앞에 가셔서 칭찬들을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본인이 헌신한 것이고, 둘째는 자녀들이 신앙생활 잘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 된 자들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도 큰 효도입니다. 내가 신앙생활 잘못한 것 때문에 부모님께서 책망들을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효도가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부모님께서 주님 앞에 서실 때를 생각할 줄 아는 것이 큰 효도입니다.

 

2.중보기도입니다.

부모님을 위한 중보기도는 필수적입니다. 자기자녀들을 위해서는 기도하면서 부모님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지요. 자주 못 찾아 뵈올지라도 기도를 많이 하세요.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마음의 평안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보세요. 부모님들이 건강하시면 평안하시면 굳이 주일날 주일성수 못해가면서까지, 성가대, 교회학교 교사, 식당봉사, 구역장 사명 제쳐놓고 부모님 뵈러 갈 일 없지 않습니까!

부모님께 전화해서 안부전하고, 또 아니면 토요일 가서 뵙고 용돈도 드리고, 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잊지 않고 매일 기도할 중보기도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님을 위한 기도이고, 둘째는 교회 목사를 위한 기도입니다. 목사는 영적인 아버지이니까요! 그리고 셋째는 자녀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물론 세 가지외에도 해야할 기도가 많이 있지만은 말입니다. 최소한 이 세 가지는 하셔야 합니다.

3.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잠언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제일 기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식들 잘 되는 것입니다. 잘 되는 모습을 보여드리세요.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말씀에 순종하세요.

할 수 있는 한 선물도 해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자주 전화 드리고, 최선을 다하시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반드시 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명령에는 잘되고 장수하는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부모공경도 하나님을 앞설 수 없음을 명심하면서 성경말씀을 따라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설교제목 :약속 있는 첫 계명

성경본문 :에베소서6:1-3

"자녀들아 !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오늘 본문을 보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십계명의 제5계명은 무엇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행복이 넘치는 가정, 사랑이 충만한 천국과 같은 가정을 만들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효도하는 신앙인의 가정은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천국과 같은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원천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은 대대로 효도하는 가정이 되셔서 약속하신 대로 축복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순종하라

약속있는 첫 계명의 첫 번째는 순종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1). 자녀들은 마땅히 부모에 대해서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부모에 대한 공손한 태도와 예의를 지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면 성경말씀에 기록된 대로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이 임하게됩니다. 부모의 말씀을 순종해도 축복을 받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어찌 하나님의 축복이 없겠습니까. 성경은 "주안에서 순종하라." 주안에서, 즉 신앙적 차원에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느 조건이나 혹은 어느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고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계명은 우리 자신들을 위해 있는 것이고, 그 속에 사랑이 있고, 약속이 있고,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주신 계명들입니다. 이제 이것을 믿고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으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더욱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자녀에게 부모라는 이름 하나만 가지고도 공경을 받을 이유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 자격도 없었고 사랑을 받을 만한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우리는 효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효는 행할 때에 주어지는 이득을 생각하면 할 수 없습니다.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다만 받은 마음에서 감사하는 행위가 효도입니다. 부모님이 내가 효도할 만한 분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참된 효도의 첫 걸음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했습니다. 효도의 기본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따를 줄 알고 부모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서 효도는 출발합니다. 그런데 순종하라는 데는 단순한 행위 이상의 더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순종하는 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할 때 순종이 효도가 되는 것이지, 단순히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고 그것이 효도가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순종은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더라도 스스로 알아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면 그것이 곧 부모님의 뜻대로 한 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래서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늘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서 언제든지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할 줄 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상심하지 않게 해드리고, 마음 편하게 해드리고, 부모님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행동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뒤늦게 후회하지 마십시오. 부모만큼 소중한 분은 세상에 없습니다. 천하인간 중에 부모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분은 없다는 사실을 이제 깨닫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공경하라

약속 있는 첫 계명의 두 번째는 공경입니다. 본문 2-3절은 말씀하기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공경'이란 '삼가서 예를 차려 높임'이라고 사전에는 되어 있습니다. 부모 앞에서는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할 뿐만 아니라 항상 존중해 드리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세상의 자녀들보다 더욱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과 은총으로 기르고 도와주고 붙들어 주는 부모와 스승을 하나님 앞에서 공경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기서 공경이란 사랑과 존경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우리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부모에게 사랑과 존경을 다하여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 삶을 보장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 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선택의 것이 아닙니다. 이는 자녀의 의무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보다 상대방을 더 높이는 마음을 공경한다,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관계 중에서 부모는 공경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나이가 많이 드셔서 힘이 없고 능력도 없어진 부모님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효도가 아닙니다. 효란 존경이 앞서야 합니다. 부모를 높이는 마음이 효도입니다. 우리는 어른들의 지혜를 높여야 합니다. 그들은 깊은 지혜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이상과 현실이 있습니다마는 과거가 없습니다.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없습니다. 노인들은 그 평생을 통해서 많은 눈물과 또 많은 희생과 뼈아픈 고통을 통해서 얻어진 높은 경험과 그를 통한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지혜를 들어야 합니다. 그 지혜를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면 거창한 것을 떠올립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해드리는 것이 공경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돈을 듬뿍 드리거나, 해외여행을 시켜드리거나, 좋은 옷을 해드리거나, 뭐 좀 이래야 공경하는 것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경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경의 반대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공경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무시하는 것입니다. 멸시하는 것입니다. 자식들 가운데 은근히 부모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고생 고생하면서 먹고 싶은 것 참고 입고 싶은 것 참으면서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 놓았더니 부모님을 무식하다고 합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도 안 듣습니다. 자기가 더 똑똑하고 자기 생각이 더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모는 지식으로 공경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가진 재산으로 공경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줄만큼 다 주신 부모님입니다. 더 줄 것이 있다면 좋지만, 더 줄 것이 없는 것은 자기가 가진 것은 이미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모님은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그 사랑만으로도 충분히 공경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향한 그 눈물겨운 사랑은 충분히 공경을 받을 자격이 있으십니다.

1) "공경하라"는 말에는 감사하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자녀는 부모한테 이중적으로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빚입니다. 부모가 없었으면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의 생명은 부모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생명은 수여자이며 내 삶의 뿌리입니다. 만물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 됩니다. 만약 사람이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모르면 그는 뿌리에서 잘린 나무가 죽은 것같이 인생의 근원을 모르는 그는 죽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을 알고 그 안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산자가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부모님은 우리 육신의 뿌리이고 근원이기 때문에 부모를 떠나 관계가 끊어진 인생은 버림받은 인생이고 그 인격이 죽은 인생인 것입니다. 부모를 아는 것이 그의 인격의 뿌리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영원히 갚을 수 없는 혈연관계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지고 있는 또 한가지 빚은 양육 받은 빚입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미성년 기에 수십 년 동안 돌보고 먹이고 가르치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기까지 적어도 20 년 이상 부모의 은덕을 입어야 합니다. 따라서 "공경하라"는 말에는 무엇보다 감사할 줄 알아야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언제나 자식들 생각뿐입니다. 평생을 다 바쳐서 최선을 다해서 양육했어도 부모님들은 한결같이 다른 집 아이들처럼 잘 먹이고 입히지 못했다고 마음 아파하십니다. 이번 어버이 주일에는 그 어느 어버이 주일 때보다 감사하시는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공경하라는 말에는 부모님을 잘 모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장차 우리 눈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삭막하고 무서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부모 경시 풍조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심해지리라는 것은 성경이 이미 예언한 말세의 징조입니다. 디모데후서 31-2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고통 하는 때의 징조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두려워 떨면서 깊이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레위기 193절은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고 까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부모를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겨도 부모를 섬기면서 섬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특히 신앙인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원천이 되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를 공경하고 효를 다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충성을 다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윤선목사님은 "군인이 목총을 가지고 훈련을 하는 것은 실전에서 진짜 총을 들고 전쟁에 나가기 위한 것 같이 부모공경은 하나님공경의 훈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모공경은 주님 오실 때까지 잊지 말아야 하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 잘되고 장수하리라

하나님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들에게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자에게 "여호와께서 네게 준 땅, 즉 땅을 주시겠다는 것과 그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20:12). 오늘 본문 에베소서에서는 효도하는 자는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성경말씀은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사람에게 잘 되고, 장수하고, 복을 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효도하는 것이 "축복이 약속된 첫 계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효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놀라운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장수의 복을 받습니다. 지혜와 명철을 얻습니다. 또한 효도하는 사람에게는 명예와 영광도 주어지게 됩니다. 효도하는 사람의 가정과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화목을 원하신다면 효도하십시요. 형제들끼리 화목하는 것도 부부가 사랑하는 것도 알고 보면 그 힘의 근원이 효에 있습니다.

효도하는 가운데 훌륭한 자녀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경건한 가정, 효도하는 가정 분위기가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한 교육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 돌아가서 여러분의 부모님께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효도할 때에 자녀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신앙의 유산, 경건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자녀들의 삶에 하나님의 약속된 복이 주어지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 유산들 중에서 특히 효를 강조하고 자랑해 왔습니다. 효가 모든 행위의 기본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사회 법도가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가치관의 혼란이 오게 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어른들은 효와 신앙을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부모님께 효도를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사람들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효심을 회복하여 부모님을 존경하며, 부모님에게 순종하여, 참 효도의 본을 보이면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보람있고 후회가 없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