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신년설교

잊을 것과 기억할 것 / 빌3:12-16

공 상희 2011. 1. 2. 06:54

잊을 것과 기억할 것 / 빌3:12-16

 

중, 고등학교에서는 국사와 세계사를 배웁니다. 저의 학창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저로서는 연대표를 암기하는 일이 가장 힘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분명히 할 수 있는데 그 사건의 발생 연월일을 암기하는 일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공부는 재미있게 배워야 할 과목인데도 재미없게 지나갔다고 기억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단순히 기억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역사를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역사의식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역사의식’이 무엇입니까? ‘역사의식’이란 쉽게 말하면 ‘과거의 역사로부터 현재와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 능력’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즉 과거를 돌아봄으로 현재 내가 어느 위치에 서 있으며, 미래를 위한 바른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말입니다. 일제의 치욕을 왜 겪어야 했고, 6. 25는 왜 겪게 되었는가? 국론 분열과 국방에 대한 대책이 없었던 것이 그것을 불러오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국방에 철저를 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은 과거의 실수나 잘못으로부터 지혜를 얻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은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저지른 실수나 잘못을 계속해서 반복할 뿐입니다.
개인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은 과거를 통해 교훈을 받고, 현재의 위치를 바로 파악하며, 미래를 위한 바른 방향을 설정할 줄 압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은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개인의 신앙 역정에서 과거를 돌아볼 뿐 아니라 현재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식에 기초해 미래를 위한, 곧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계속하여 좇아가겠다”고 하는 방향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2002년도의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과거의 모든 시간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과거 속으로 흘러 들어갈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단지 지난 해를 과거라는 시간 속에 그냥 넘겨버릴 것이 아니라,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미래를 위한 바른 방향을 설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기억의 힘은 놀랍습니다. 미국이 제2차 대전에 직접 참전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일본이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것입니다. 평화롭던 하와이(Hawaii) 진주만(Pearl Harbor)은 순간 일본 폭격기들의 폭격에 쑥대밭이 되고 말았고, 전함 아리조나호는 단 5분 만에 침몰하여 1600명의 생명이 바다 속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미국인들은 인사할 때 ‘Good Morning’ 대신 ‘진주만을 기억하시오’(Remember Pearl Harbor)라는 인사를 대신했다고 합니다. 결국 진주만의 치욕을 잊지 않은 미국은 온 국력을 결집시켜 일본을 상대로 싸워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로 기억이 주는 교훈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성경에도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라”고 촉구는 말씀이 많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한 예로
신 6:10-12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서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라 하였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에게 풍요로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삼가 조심하여 애급의 노예 상태에서 그들을 구원하여 인도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쉽게 타락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바로 신명기 말씀에서 권면하는 바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기억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시간 지난 한 해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돌아보면 기억해야 할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태풍 룻사가 경남 및 강원도 지역을 핥기고 지나간 깊은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재난에서 우리를 빼주셨습니다. 우리가 의로워서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외로웠을 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웠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던 일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솔직해야 합니다. 위기의 순간만이 아닙니다. 단 하루라도 하나님이 돌보지 아니하셨다면 우리가 오늘 어찌 이 자리까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한 시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까?
시 12:5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매 순간마다 우리 인생을 도우셨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면 한 편으로 감사하게 되고, 또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 내 인생에 함께 하셨음을 확인하게 되고, 어려웠을 때 나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현재에도, 장래에도, 나와 함께 하실 것을 믿음으로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 하나님이 도우셨던 그 일들을 해가 바뀌어도 기억하시고 신앙의 교훈과 힘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2. 잘하고 잘못한 과거를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올 한 해를 보내면서 해야 할 일은 ‘잊어야 할 일을 잊는 것’입니다. 본문 13절 후반에서 바울 사도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라 말하고 있습니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애써 기억에서 지워버린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의 기억을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지워버릴 수 있겠습니까? 잊어버린다는 의미는 과거를 깡그리 망각한다기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였음을 잘 기억했습니다. 성도들을 괴롭히고 교회를 핍박하던 자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아픈 과거에 얽매여 자신을 학대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오늘의 삶에 올무가 되도록 방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거스틴(Augustin)은 말하기를 “사람은 현재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쾌하고 슬픈 기억 때문에 불행하다. 만약 마음의 평온을 갖기 원한다면 불쾌한 기억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지난 일들 중에 잘못한 것에 대하여 너무 집착하게 되면 오늘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기억에 너무 집착할 때 ‘나는 못해’, ‘나는 안돼’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현재 우리 인생의 발목을 잡고 넘어지게 만듭니다.
반면에 과거에 자기가 잘한 일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교만해지기 쉽고,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 힘들어집니다.

부산의 명문고인 경남고등학교의 정문 입구에 이런 표어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패자는 과거를 자랑하고 승자는 미래를 자랑한다”. 아마 명문학교로서 이름을 날리던 과거의 향수에만 집착하기 보다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의 표어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중학교 때 전교 5등 안에 들던 수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게을리 한 결과 반에서 겨우 중간의 정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공부를 잘 한 학생임으로 머리가 뒤떨어지지는 않을 것이고, 열심히 하면 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학생은 자신이 과거 전교 5등을 했다는 기억에만 매달렸지 오늘 그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학생은 오늘의 실패를 과거의 향수로 달래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잘못한 것 뿐 아니라, 잘한 것 역시 잊어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심 후 사도 바울은 그야말로 열심히 믿음의 경주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놀라운 신앙의 진보를 보일 뿐 아니라, 여러 지방에 복음을 전하여 많은 교회를 세운 성공적인 선교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실패와 성공의 기억들을 다 잊어버립시다. 이따금씩 기억이야 나겠지만, 그 과거의 기억에 얽매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늘 과거에 얽매이고 그 회상에서 사는 사람을 보면 현재의 삶이 없습니다. 현재의 삶이 없는 사람은 미래도 없습니다. 그는 영원히 과거에 사는 불쌍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3. 뚜렷한 미래의 방향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과거의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거나, 혹은 망각해야 할 것을 망각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미래의 방향을 바로 잡기 위함입니다. 즉 미래를 위한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노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미래의 경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다 같이 13,14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 사도의 위대한 점이 여기서 발견됩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감옥에 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감옥에 갇힌 몸이 미래를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의 개혁을 말할 수 있습니까? 먼저 그 몸이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자기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합니다. 생의 목표와 목적을 밝힙니다. 그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해야 할 뚜렷한 목표가 있습니다. 풀려나기만 하면 언제든 달려들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는 위대한 생애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 예배가 끝난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위대한 생의 목적이 있습니까? 새해에도 이루어야 할 분명한 삶의 방향이 잡혀 있습니까? 없다면 이 자리에서 목표를 정하십시요. 삶의 분명한 방향을 정하십시오. 여러분의 생애에 가장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위대한 목표를 정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위한 교훈을 얻고, 미래를 위한 통찰력을 얻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지나간 한 해가 새로 오는 한 해를 살아가기 위한 소중한 자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난 한 해의 겪은 일들 중에 기억해야 할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내게 힘을 주시고, 도우셨던가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새해에도 하나님이 힘주시고 도우실 것을 믿는 역사적 교훈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또 한편 잊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잊으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실패나 성공이나 그것에 얽매여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바울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한 것처럼, 여러분도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푯대를 분명히 정하고, 그 푯대를 향하여 후회 없는 믿음의 경주를 다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