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 빌3:12-14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 빌3:12-14
한 소년이 길을 가다가/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예쁜 신부를 맞아 장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염이 긴 노인 한 분이 다가오더니/ 이 소년에게 색동조끼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노인은 소년에게/ 이렇게 말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위 단추를 왼쪽으로 돌리면 원하는 만큼 시간이 간다."
이상하게 여긴 소년은 시험 삼아/ 단추를 왼쪽으로 돌려 봤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소년은/ 늠름한 청년이 되어 있었고/ 신부를 맞아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예쁜 아내와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즐겁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보채고 짜증스럽게 하자 귀찮아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조끼의 단추를/ 왼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성큼 자라 청년이 되었고/ 이제는 됐구나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다시 이전과는 또 다른/ 어려운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그 일들은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부담스러운 일들이 있을 때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조금 씩 조금씩 단추를 돌렸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덧 세월이 흘러/ 더 이상 단추를 돌릴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자리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임종을 보기 위해 지키고 앉아 있는 자녀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의 의미는/ 인생의 참 맛을 보지 못하고/ 식빵의 건포도만 빼 먹듯이/ 이리 저리 피하며 살았던/ 그래서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자신의 삶이 한스러워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인생이 주어진다면/ 잘 살아 보겠노라 생각하고는/ 마지막 한 번 윗 단추를/ 이제는 오른쪽으로 한번 돌려보기로 했습니다. 힘을 다하여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 그만 단추가 "뚝" 하고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꿈이었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
여러분, 인생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인생을 오래 살았다고 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살면 살수록/ 더 답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말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로맹 롤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왕복차표를 발행하지 않는다. 일단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공들여 읽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 한번밖에 그것을 읽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하나 뿐인 인생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가지고/ 오직 한 번 뿐인 인생을 삽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생은 일회전으로 끝나는 엄숙한 시합”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엔 연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매일 매순간이 결승전입니다.
아테네의 수학자요 철학자였던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그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를 가르쳐 주는 일이다.”
맞습니다. 하나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을 사는 두 가지 자세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첫째, 닥치는 대로의 삶입니다.
그저 별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뜨면 그때부터 하루가 시작됩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하루가 끝납니다. 꿈도 없고 목표도 없습니다. 계획도 없고 자기 반성도 없이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둘째, 계획적인 삶입니다.
생각을 깊이 합니다. 일단 마음을 정하고 나면/ 그때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작은 일 하나도/ 대충하는 법이 없습니다. 적당하게 얼버무리지 않습니다. 꿈이 분명합니다. 목표가 확실합니다.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습니다.
대개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 중에/ 계획 없이 목표 없이/ 그저 되는대로 살았던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분명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글로 써보고/ 그림으로 그려보면서/ 하나하나 실천에 옮겨갔던 사람들입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았던 사람들입니다. 용기의 상징인 피와/ 노력의 상징인 땀과/ 정성의 상징인 눈물을/ 아낌없이 쏟았기에 성공이라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조적 소수 J. F 케네디
J. F 케네디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의 35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미국 최연소 대통령입니다. 그는 비전과 신념과 용기를 지녔던/ 뛰어난 지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4년 임기를 못 채우고/ 2년 10개월 만에 암살당해 생을 마감했지만/ 지금도 미국인의 우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케네디는 최연소일 뿐 아니라/ 대통령이 되기에는/ 사회적 조건이 맞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첫째는 백인이어야 했습니다.
둘째는 앵글로색슨 영국계라야 했습니다.
셋째는 개신교도라야 했습니다.
이건 하나의 불문율과 같아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미국의 정상에 도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일랜드 출신의/ 카톨릭 신앙을 가진 그가/ 대통령에 도전하여 성공했습니다. 그는 미국 국민들에게 많은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애쓴 열렬한 이상주의자였습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뉴프런티어’, 새로운 개척지에 서 있다. 우리는 새로운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60년대 후반까지/ 인간을 달나라에 착륙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렸습니다.
그런 일은 90년대 후반에나/ 가능한 일이 아니겠느냐/ 꿈꿀 것을 꿈꾸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케네디는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 계획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케네디는 이 계획을 ‘아폴로 계획’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예상대로 반대론자들은 공상과학처럼 허무맹랑한 일에/ 무모하게 국력을 낭비하지 말라며/ 강력하게 중지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케네디는 어떠한 반대에도/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힘있게 달려 나갔습니다.
마침내 1969년 7월 21일/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 왔습니다. 사람이 달에 착륙하는 장면이 텔레비젼을 통해/ 전세계에 방영된 것입니다. 20세기 안에 실현될 지마저 의문시되던 달 착륙이/ 20년이나 앞당겨 졌던 것입니다. 아폴로 계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진보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비록 소수지만/ 사실 역사는 다수의 군중보다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 발전해가는 것입니다. 닥치는 대로, 되는 대로 살아가는 다수가 아닌/ 분명한 목표와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실천해가는 소수가/ 역사를 주도해 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생활신조
성서에도 위대한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신약성서에만 해도 그 수가 꽤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을 빼고는/ 기독교를 논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본적도 없고/ 만나본적도 없지만/ 그리스도의 탁월할 제자로 살았습니다.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되는대로 살았더니/ 어느 날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확실한 생활신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입니다.
그는 푯대를 바라보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과거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 사람의 현재는/ 그 사람의 과거와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래서 전력이 중요하고/ 이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과거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일 뿐입니다. 과거 때문에 현재가 망가지거나/ 미래를 망쳐서는 안됩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는 2002년 한 해를/ 거의 마무리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주일로는 마지막입니다. 신년주일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오늘 송년주일을 맞았습니다. 지나간 주일들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난날들은/ 깨끗이 잊어야 합니다. 지나간 날들은 뒤로 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한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가 이룬 모든 업적과 자랑을/ 뒤로 하겠다는 결의입니다. 사실 바울처럼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주의 복음을 증거하며/ 병자를 고치는 놀라운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그러한 것을 자랑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앞을 향하여/ 달려가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장부 정리
송년주일을 맞은 오늘 우리에게도/ 바로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2002년 한 해 동안/ 주님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셨고/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많은 땀을 흘리셨습니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전도를 위해 애쓰셨고/ 현실과 괴리가 있음에도/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몸부림치셨으며/ 힘들게 번 돈을 헌금으로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여러분의 그 모든 수고와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압니다. 하늘 나라 장부에/ 다 기록되어졌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2002년도 장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02년도 장부로/ 2003년도 장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2002년도 장부를 뒤적이면서/ 올 해 많이 수고했으니/ 내년엔 조금 쉬어야지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열심히 사역한 것에/ 스스로 흐뭇해하면서/ 내년에 뒷짐을 진다면/ 여러분은 영적으로 나태해질 것이며/ 신앙이 퇴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오천남부교회 믿음의 식구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세요.
우리는 아직 완전히 잡은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온전히 이룬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이런 자세를 가지고/ 2003년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다가오는 2003년이/ 그리 만만한 해는 아닐 것 같습니다. 뭐 언제 만만한 해가 있었습니까마는/ 사회적으로 2003년은 변화의 소용돌이가/ 보다 거세질 것으로 봅니다. 영적으로도 마귀는 그 어느 때보다/ 삼킬 자를 두루 찾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그 어떤 해보다 험난한 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곧 바로 달려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낙오하고 뒤처지게 될 것입니다.
영신(迎新)을 위해 송구(送舊)를
우리는 과거의 업적뿐만 아니라/ 과거의 실수와 괴로운 기억도/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입니다. 과거의 것을 붙들고 있다가/ 현재를 그르치는 것은/ 주님도 원하시는 바가 아닐 겁니다. 여러분의 모든 허물과 죄악들을/ 이 시간 예수님 앞에 내려놓고/ 해결하시기를 바랍니다. 해를 넘기지 말기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끊임없이/ 새 출발하기를 원하십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서/ 매일 추억의 앨범이나 넘기고 있는 것을/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를 향하여 발걸음 떼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 주님이 좋아하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들은/ 12월 31일 밤 11시부터/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아름다운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 것은 뒤로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예배’/ 그 뜻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영신(迎新)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게 송구(送舊)입니다. 그렇습니다. 뒤에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앞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습니다.
과거를 잊지 못한 여인
지나간 일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상담실 문을 두드린 한 여인이 있습니다. 일년 전 어느 날 그녀는 끓는 물주전자를/ 난로 옆에 놓았는데/ 어린 딸애가 그것을 잡아당겨/ 뜨거운 물이 쏟아짐으로/ 온 몸에 매우 심한 화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얼굴과 손이 일그러진/ 흉측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일로 인해/ 집에 혼자 앉아서/ 그 잘못을 끝없이 되새기며/ 자신을 정죄하고/ 눈물로 일년을 보냈습니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눈물로 세월을 보내도/ 아이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저 눈물로 지내다/ 어느 때보다도 어머니의 사랑과 돌봄을 받아야 할 그 아이는/ 일년 동안 방치된 채 지내게 되었습니다. 가정은 점점 웃음을 잃어버리고/ 일년을 어둠 속에서 불행하게 지내야 했습니다. 상담가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단이 우리를 과거의 잘못이라는/ 울타리 안에 우리를 가두어 두고/ 불행하게 하는 전략이라구요.
사랑하는 오천남부교회 믿음의 식구 여러분,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에서 구제 불능인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과거의 아픈 상처를 잊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나는 절대로 그것을 잊을 수 없어.’
그러면서 복수의 칼을 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칼을 가진 자는 어떻게 된다고요?
“칼로 망한다고요.”
주님은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송년주일을 맞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을 보세요.
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나를 용서하고/ 새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최상급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행복은 나의 태도와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행복은 선택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여러분은 행복을 위해서/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과거를 선택하여 불행한 삶을 사시겠습니까?
미래를 선택하여 행복한 삶을 사시겠습니까?
그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미래지향적 삶
믿음의 선배 바울은/ 철저히 미래지향적으로 살았습니다.
이 말은 오로지 미래에만 관심을 갖고 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도 때로는 과거의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전력 때문에 괴로워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게 교만해지려는 자신을/ 제어해주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 때문에/ 미래로 나아가는 것에/ 방해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허물과 죄가/ 더 큰 자극제가 되어/ 더 헌신하였습니다.
미래지향적인 바울이/ 일생의 목표로 삼은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줄 다 아시죠?
그의 일생의 목표는/ 또한 우리 일생의 목표이기도 하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일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주님을 알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와 같이 고생하기를 원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의 일생의 목표를 잘못 정했었습니다. 그 잘못된 목표를 향하여/ 열심을 품었습니다. 잘못된 방향을 향하여/ 전 속력을 내었습니다.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삶의 목표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는 자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예수의 대적자에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으로/ 인생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였던 글래드스톤 같은 사람은/ 어릴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목표로 정했습니다.
그는 정치가가 된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나라의 일을 한 목적도 분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질적 목표
사랑하는 오천남부교회 믿음의 식구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설마 삶의 목표도 없이 살고 있지는 않죠?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지는 않겠죠?
여러분 각자의 삶의 목표를 재정립하시길 바랍니다.
목표를 분명해야/ 바울처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열심이 달릴 수 있습니다. 흔들림없는 목표를 세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푯대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표를 바로 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목표들을 세웁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것들 중에는/ 비본질적인 것들도 섞여 있습니다. 이기심에서 출발하고/ 욕심에서 잉태된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본질적인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순교할 때까지 추구했던 것입니다.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왜요?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의 은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고/ 그분을 닮아가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더 고상하고 귀한 목표는 없습니다.
예수냐 예수에 대해서냐
교회가 점점 복잡해지는/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교제를 위해/ 또는 불신자들이 쉽게 교회당 문턱을 넘기 위해서/ 취해진 조치들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동호회 활동을 하고/ 운동시설을 갖추고/ 오락기구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저도 원칙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선을/ 분산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아닌/ 예수님에 대한 것을 보게 합니다. 복음이 아닌/ 복음에 관련된 것을 듣게 합니다.
목수 일을 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못질하는 법을 가르쳐 줬습니다.
“애야, 못질을 잘하려면/ 못에 네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단다. 그러면 점차 못만 크게 부각되어 보일거야.”
여러분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 외의 것을 바라보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 신앙의 손해를 입은 적이 없습니까? 별것 아닌 일에 열 올리고/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목소리 높였던 적이 없습니까? 여러분이 교회를 몇 년 다녔는데/ 신앙의 성장이 없었다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가 살아온 인생들을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인정을 받느냐/ 인정을 받지 못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칭찬을 받고 싶은 거룩한 열망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에 소원만 품고 있으면 됩니까?
그 날 인정해달라고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됩니까?
아니죠? 그래도 될 것 같으면/ 제가 물어보겠어요?
바울은 부름의 상을 위하여 어떻게 했다구요?
“좇아가노라”
열심히 일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상주고 싶겠어요?
심지도 않은 곳에서/ 열매를 따겠다는 말인데/ 그게 어디 말이 됩니까?
고민하며 임명
여러분이 지난주에 낸 사역지원서를 참조하여/ 장로님과 제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여/ 제직과 봉사자를 임명했습니다. 규모가 작은 교회이기 때문에/ 겹치는 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자기가 하고 싶었던 사역이 아닌/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 임명받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올 한 해 너무 힘들어서/ 내년에는 빼주길 바랬는데/ 또 그 자리에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역을 맡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 아시죠?그건 그 사역에 임하는 여러분의 자세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에 봉사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봉사자로서 여러분의 태도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교회 일은 몇 몇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교인은 사역자여야 합니다. 봉사하는 일에서 제외되어야 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함께 하는데서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차라리 혼자 일하는 것이/ 속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혼자 해야 할 사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일은 함께 해야 합니다. 함께 마음을 맞추다보니/ 조금 늦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함께 해야 합니다. 빨리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성품과 인격을 다듬어가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것도 훈련하게 되고/ 상대와 내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내년에 이 일은 절대로 안한다.”
여러분,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누가 죽고 싶어서 죽나요?
하나님이 생명을 취하여 가시면 죽기 싫어도 죽어야 하잖아요?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 원하시면/ 지체인 우리는 어떤 일이라도 해야죠?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의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는다면/ 교회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여러분이 당연히 순종하며 봉사해야죠?
몇 달란트를 남겼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달란트를 주셨습니까?
그분이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까?
그분이 무슨 이유 때문에/ 저와 여러분에게 재능을 주셨습니까?
여러분은 여기에 대해 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겨주신 달란트, 은사와 재능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반드시 묻게 될 것입니다. 봉사 장부를 들춰보시며/ 왜 2003년에는 내가 준 달란트를 묻어 두었느냐고 물으실 겁니다.
그 때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실 겁니까?
‘토요일 밤늦게까지 돈버느라/ 주일날을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작년에 너무 고생을 해서/ 당분간 좀 쉬고 싶습니다.’
‘애가 너무 어려서 아직은 일하기가 힘듭니다.’
열이면 열 사람/ 백이면 백 사람을 붙들고/ 봉사를 요청해 보면/ 타당하지 않는 이유가 없습니다. 봉사할 수 있는 형편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왜 봉사해야 합니까?
우리가 왜 사역을 해야 합니까?
형편이 여의치 못하지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합니다.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지만/ 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 곧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일하면 젊어진다
제가 포항남부교회에 부교역자로 있을 때/ 성영이 권사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남편이 전에 선린애육원 원장을/ 오래 역임하신 서두표 장로님입니다. 제가 있을 때/ 그 권사님의 연세가/ 82센가 3센가 그랬어요. 그런데 구역장에서 뺐다고/ 얼마나 서운해 하시던지/ 나중에 다시 맡겼어요.
우리 교회에 80세 넘으신 분들/ 몇 분 안계시잖아요?
요즘에 70 이하는 노인 축에도 못 끼어요.
70이 안되었는데 자리 비켜주면/ 오히려 기분 나빠해요.
“아저씨”, “아주머니”, 그래야 기분 좋아합니다.
“할배”, “할매”하면 ‘이런 못 배운 사람이 있나’ 하는 눈으로 봐요.
여러분, 스스로 노인네 취급하지 마세요.
실버 합창단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셨어요?
60세가 넘으신 분들이 모여서 만든 합창단입니다. 그런데 우리교회 성가대에/ 60대가 못 앉을 이유가 있습니까? 마음만 청춘이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청춘처럼 사역해야 합니다. 60 넘으신 분들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가 다 쓸모 있어서/ 살려놓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쓸모없으면/ 그 때 불러 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불려가기 전까지는/ 불평할 것도 없고/ 환경 조건 탓할 것도 없이/ 오직 감사함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사역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힘이 필요하면 힘을 주시고/ 건강이 필요하면 건강을 주시고/ 물질이 필요하면 물질을 주실 줄 믿습니다.
교사만은
서로 교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이 들리던데/ 그 영광스러운 사역을/ 왜 피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역을 다 제쳐두고라도/ 하고 싶어 하는 사역이 교사여야 하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교회의 사역 중에서/ 중요하지 않는 사역이 없지만/ 그래도 교사 사역보다 더 중요한 사역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왜 학교 공부를 했습니까?
왜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졸업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한/ 기초실력을 쌓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셨습니까?
왜 틈틈이 성경공부를 했습니까?
자신을 위해서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요?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아는 만큼/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아는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 말씀을 공식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올해에는 죽을 쒔어도/ 내년에 다시 도전해 보세요. 올해에는 반 이상 결석을 했어도/ 내년에 다시 한번 시도해 보세요. 저는 우리교회에 젊은 분들이 다 교사를 하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이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에필로그
말씀을 맺겠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새 출발하십시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십시다.
과거에 붙들려 있지 말고 내일을 생각하십시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장래를 설계하십시다.
우리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올해보다 내년에 더 충성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