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은혜를 받읍시다 (겔36:24-38)
회복의 은혜를 받읍시다 (겔36:24-38)
요약
하나님께서는 회복 불가능한 이스라엘을 향해 회복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먼저 말씀으로 정결케 하시고,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사 부드럽게 하시고, 성령을 부어 주사 말씀대로 살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심령이 회복되려면 말씀으로 돌아와야 하고 예수 믿어 거듭나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 충만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회복을 약속하셨어도 기도해야 한다고 하신다. 이처럼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회복일지라도 믿음과 성령을 통해 적용 받아야 하는 것이다.
설교
회복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에 "하쉬브"라고 하는데 잘못된 것으로부터 본래적인 것으로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킵니다. 우리 하나님은 회복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 되어 썩어 냄새난 나사로를 말씀으로 살리셨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장차 주님의 부활을 예표하고 나아가 성도의 영육 간의 부활 즉 회복을 시사함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들은 여호와의 진노로 바벨론에 정복되어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망하고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백성들은 죽거나 노예로 사로잡혔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복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까 그들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시더니 바벨론에 포로된 지 70년 만에 극적으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건은 이스라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의 영적인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 본문에 나타난 우리 영혼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1. 말씀으로 정결케 하시는 회복입니다.
25절에 보면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라고 했습니다.
여기 맑은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여 온전히 회개하였습니다. 이처럼 날씀은 정결케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엡5:26에 보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요15:3에서도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하셨고, 시119:9절에도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했습니다. 시119:11절에도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잠29:18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말씀을 모르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이 겁 없이 행합니다. 유대인들 보세요. 그들 안에 말씀이 없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음의 서기관을 만들어 열심히 말씀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2. 새 영과 새 마음으로 회복시키십니다.
26절에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영”은 ‘루하흐’로서 인간 영혼을 뜻합니다. 그리고 “마음”은 역시 영혼의 다른 표현일 뿐이지만 영혼의 지정의 기능을 강조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새 영과 새 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새롭게 형성된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은 중생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심겨주신 범죄를 모르는 새 생명입니다. 그래서 딛3:5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회복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선에 의해서 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 신앙을 타종교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타종교의 것은 윤리나 도덕이나 수양이지만 우리 신앙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을 때 옵니다.
3. 성령을 충만히 주사 회복시켜 주십니다.
27절에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내 신’은 성령을 뜻합니다. 26절에 이어 27절에 이와 같은 말씀을 주시는 것은 사람이 거듭나는 것만으로는 다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듭났어도 아직 어린이라면 고린도 교인들처럼 육신에 속한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3:1-3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했습니다. 우리 영혼이 어리면 율법 아래 있어 육체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속히 초기 거듭남에서 자라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지는 회복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슥4:6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에 국한 된 예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의 신앙생활 승리생활도 성령으로만 가능하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여서 늘 생명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본문 28절에 열거된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땅 즉 심령 천국을 누립니다. 또 29절과 같이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시듯 은혜의 풍성함을 주십니다. 또 36절에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일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듯 우리의 몸까지도 하나님께 드려질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37절과 38절에 보면 숫적인 회복도 허락하십니다. 마치 예루살렘 절기에 양떼 같이 사람을 채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 생각까지도 온전히 주님께 드려지게 될 것을 시사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골3:10에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했습니다.
4. 그래도 성경은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37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고 말씀하십니다.
위에서 말한 모든 약속이 주어졌어도 기도해야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혹시 회복 되지 않았다면 왜 회복되지 않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달리 표현하면 기도생활이 부족하면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805년 윌리암스 대학에 한 기도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폭우가 쏟아지는 날 사람들은 다 흩어졌지만 다섯 명의 청년들은 가지 않고 건초더미 속에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그 이후 건초 속에서 기도했던 그 은혜가 얼마나 좋았던지 건초더미 기도회가 생기게 되었고 그 기도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선교사들이 파송되었는데 이렇게 시작한 윌리암스 대학의 선교는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대학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믿고 기도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스라엘과 동일하게 말씀으로 중생으로 성령으로 회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과 동일하게 기도해야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신앙생활 잘하여 말씀과 성령 안에서 온전한 회복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