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유월절 양 예수님

공 상희 2010. 9. 11. 17:39
유월절 양 예수님 1
출12:1-14

이 시간 함께 은혜 나눌 말씀은 “유월절 양 예수님”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장자 재앙 때 어린양의 피로서 구원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유월절은 온 국민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수십만 마리의 희생의 피가 흘려지는 큰 절기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신약의 성도들이 이 구약 율법의 유월절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유월절이 장차 인류를 위해서 보혈의 피를 흘리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월절을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구속의 사랑과 원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는 유월절에 관하여 시간이 되는 데까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유월절에 쓰이는 제물인 양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유월절 양은 어린양이어야 합니다.

출12:3에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랬습니다.

이처럼 유월절 제물은 반드시 어린 양이어야 하고 소나 비둘기가 아닌 오직 양이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이 양이 바로 우리를 위해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은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부릅니다. 요1:29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습니다. 또 고전5:7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몇 가지 알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유월절 제물에 양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양은 속죄의 제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상징해 주기 때문입니다. 가령 양은 낮은 데를 좋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성을 봅니다. 또 양은 순종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 양은 털이나 고기나 가죽이나 뿔까지 모든 것을 주인을 위해서 바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에 생명까지 바치셨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제물에 양은 양이되 어린 양이어야 했을까요? 그것도 1년된 어린양이어야 함 말입니다. 그것은 이 때가 가장 사랑스러운 때이기 때문입니다. 왜 가장 사랑스러운 때에 잡았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가장 사랑 받는 분이심을 교훈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아버지를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의 기쁨이셨습니다.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 하실 때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유월절 어린 양의 의미입니다.

2. 유월절 제물에 쓰인 어린 양은 처음 난 양이어야 합니다.

츨13:2에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유월절 양은 반드시 처음 난 초태생을 드려야 하며 또 수컷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장차 속죄양으로 오실 메시야가 장자로 이 땅에 오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가장 큰 형님이셔요. 옛날 찬송에는 형님 되신 예수님에 대한 찬송이 있었습니다. 또 “부형 같이 됩소서” 라는 가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입니다.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롬8:29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이 맏아들이시라면 우리는 둘째 셋째 이런 차남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대로 장자로 오신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장자는 축복권 구원권 상속권이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들이 구원 받고 천국을 상속 받음을 시사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자가 아닐지라도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후사 즉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눅12:32에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또 그 말씀이 롬8:16-17에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그러므로 유월절 양에 담긴 의미가 큽니다.

3. 유월절 제물에 쓰인 어린 양은 흠이 없는 양이었습니다.

출12:5에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그리고 출 22:20-23을 보면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무릇 -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우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낙헌 예물로는 쓰려니와 서원한 것을 갚음으로 드리면 열납되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이렇게 유월절 양에 쓰이려면 고르고 또 골라서 준비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드리는 예물은 정성 어린 것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뜻은 아무 죄 도 흠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래야 하신 이유는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태만 빌려서 탄생하셨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대한 성경을 보면 벧전1:19에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했고, 히9:14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라 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얼마나 찾았습니까마는 찾지 못했습니다. 눅23:14-15 보면 빌라도도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는 분이시되 죄는 없으십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무죄성은 속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온전하신 주님과 연합될 때 우리 성도 또한 의로워짐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고전1:30에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 했습니다. 또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무흠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과를 담당하셨을 뿐 아니라 죄성까지도 담당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유월절 어린 양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되신 주님께 감사하십시다.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죄의 멸망에서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고 천국의 상속자가 됩니다. 이 귀한 진리를 믿을 뿐 아니라 널리 전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월절 양 예수님 2
출12:1-14

오늘도 “유월절 양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재앙 때 어린양의 피로서 구원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장차 인류 구원을 위해서 대속의 피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절기입니다. 이 유월절에 관하여 지난 시간에는 어린양이어야 한다, 처음 난 양이어야 한다, 흠 없는 양이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도 유월절 어린양 몇 가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원이 진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4. 유월절 양은 반드시 4일간 집에 간직하였다가 잡아야 합니다.
출12:3-6에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유월절 양은 10일 그러니까 유월절 4일전에 미리 정해서 집에 간직하였다가 잡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4일 동안 집에서 기르면서 그 양이 과연 흠이 없고 점도 없고 상처나 배탈도 나지 않아 건강한 양으로 합격할 때 유월절 속죄양으로 쓰려는 것입니다. 그 만큼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럼 신약에서는 이 사실이 어떻게 성취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잡하시기 전 4일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므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놀라운 예언의 성취입니다. 정말 비교해 볼까요? 눅 19-22장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한 주간의 행적을 볼 수 있습니다. 설명하면 일요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이 때가 잡하시기 4일 전입니다. 월요일에 성전을 청결케 하십니다. 화요일에 가르치십니다. 수요일에 가룍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 팔려는 생각을 넣습니다. 목요일에 성만찬 후에 잡히십니다. 그런데 유월절 양을 어들 때 잡았던 것처럼 예수님도 악의 무리들에게 깊은 밤에 잡히십니다.

이 기간이 정확하게 4일간입니다. 이 기간에 양이 과연 흠이 있는지 문제가 있는지 시험해 보는 것처럼 이 기간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시험하고 흔들어 보고 온갖 핍박을 다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범죄하지 아니하시고 온전히 승리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참고 승리하셨나요?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입니다.

5. 유월절 어린양은 정월 십사 일에 잡았습니다.

출12:6에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레23:5에 “정월 십사 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그랬습니다.

이 정월 14일 그러니까 1월 14일은 우리 태양력으로 말하면 3,4월 고난절 봄에 해당합니다. 요 7장을 보면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6개월 전에 과연 메시야라면 유대 예루살렘에 가서 자기를 드러낼 것을 말했으나 주님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8:20에도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음이러라”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환경이 예언 성취를 위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유월절 정월 14일에 잡히시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요18:39-40에 나타난 빌라도의 재판 기록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19:14에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 저희가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 주니라” 했습니다. 여기 예비일은 1월 14일 저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통해서 불법 재판함을 묵인하셔서라도 꼭 그 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운명하실 시간에 대해서 출12:6에 “해질 때”라고 했습니다. 이 해질 때란 NIV성경에서는 “두 저녁 사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유대인의 저녁은 두 개인데 낮 12시부터 시작되는 저녁과 오후 6시로부터 시작되는 저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라면 오후 3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 9시에 운명하셨는데(눅23:44-46) 유대 제9시는 우리의 오후 3시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맘대로 자기 죽을 날자와 시간을 정할 수 있습니까? 절대 맘대로 못하는 것이 출생과 죽음입니다. 우리가 한국에 내 부모님의 자손으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지 내 뜻대로 된 것 아닙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 아름다운 유대 명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게 될지 사람은 아무도 추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 성경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그러기에 예수님은 정확무오하신 우리의 구주이심이 입증되었습니다.

6. 유월절 양의 피는 문 좌우 설주와 위의 인방에 발랐습니다.

출12:7에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라 했습니다.

여기 어린양의 피를 바름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피는 애굽 나라에 임한 사망의 마지막 열 번째 재앙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처음 아홉 가지의 재앙과 이적으로는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보호만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열 번째 재앙으로 양의 피를 바르고서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예표하는가?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배 피를 믿는 자를 구원해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피 없이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피 공로는 언제까지든지 꼭 기억해야 할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 양을 잡을 때 먼저 양의 옆구리를 찔러서 그 피를 뺀다고 합니다. 그 때 양은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있다가 피가 다 빠지고 나면 쓰러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그 옆구리를 창으로 찔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피를 가지고 문설주와 문인방에 발랐습니다. 문설주는 좌우 문틀이고, 문인방은 문틀 상단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세 곳에 바른 의미가 귀합니다. 먼저 문 위 인방에 바른 것은 예수님의 보혈은 위에 게신 하나님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흘리신 보혈은 먼저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 그렇게 함으로 죄가 속죄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좌우편 설주에 바른 피는 무엇을 뜻할까요? 한 편의 피는 바로 우리 양심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아버지께서 피를 보시고 아무리 용서했어도 우리가 피의 확신을 가지고 양심의 자유를 누리지 않으면 여전히 영적 사망은 왕노릇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다른 편의 피는 어디를 위한 것일까요? 우리 원수 사단을 위한 것입니다. 이 보혈의 피로 사단을 추방시키게 됩니다. 사단 마귀는 다른 것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몰아냅니다. 우리가 보혈 공로에 설 때 사단은 더 이상 우리에게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확신을 가지고 양심의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거리낌이 있으면 사단이 틈타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귀한 진리 아닌 것이 없이 오묘하기만 합니다. 혹시 죄로 인해 양심이 괴로우십니까? 회개 하시고 내 죄를 갚으신 예수 피 공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적 사망이 결코 틈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와 기쁨과 해방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유월절 어린양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복음의 진리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유월절 어린양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우리 주 예수님을 잘 계시해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귀한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이제 죄로 인해 더 이상 방황하지 마시고 회개하고 돌아와 그 품 안에서 이 속죄의 공로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게서 주시는 참 구원과 해방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유월절 양 예수님 3
출12:1-10

오늘도 “유월절 양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그 동안 유월절이 얼마나 한 부분 한 부분 모두 죄인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건과 같은가를 대조해 보았습니다. 그 동안 말슴 드린 것을 다시 기억해 보면 어린양이어야 한다, 처음난 양이어야 한다, 흠 없는 양이어야 한다, 4일 전에 잡아야 한다, 정월 14일에 잡았다, 옆구리를 찔러 피를 뺐다, 피를 문의 인방과 설주에 발라야 한다, 뼈를 꺾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양고기를 먹었다, 이방인도 할례를 받으면 먹을 수 있었다는 말씀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좀 더 대조해 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더욱 견고히 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7. 놀라운 사실은 유월절로 그 해 첫 달이 되게 하였습니다.

출12:2에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양력과 음력이 있듯이 이스라엘도 민간력과 성령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때가 민간력 7월인데 정월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 정월을 아빕월이라고도 하고 니산월이라고도 합니다. 유월절이 얼마나 중요하면 이렇게까지 하셨을까요? 이처럼 유월절이란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이 중요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답이 벧전1:18-19에 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했습니다. 즉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이 거듭남이란 출생이니 새로운 시작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구원의 유무 천국의 유무 거듭남이 유무가 결정되는 중대한 사건이 됩니다.

인간은 거듭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요3:3-5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중생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가 흘리신 피 공로로 자기 죄가 사함 받음을 믿는 그 일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8. 유월절에는 한 일은 잡은 그 양고기를 먹었습니다.

8-10절에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했습니다.

유월절 그 밤에 유월절을 지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고기를 먹었습니다. 이것은 누가 대표로 먹어서도 안 됩니다. 모두가 먹어야 하기 때문에 3-4절 보면 가족의 수대로 넉넉히 먹을 만큼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그 날 밤에 온 가족이 양고기를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양고기 먹는 일이 신약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고전 11장에 나와 있는 대로 떡은 주님의 몸이요 잔은 주님의 피입니다(고전11:24-25). 그러므로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요 음료입니다. 요6:35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양을 먹고 구원을 받았듯이 우리도 늘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단번에 구원을 받았지만 그러나 늘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 그 구원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먹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른 사람들은 내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니까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양고기를 먹는데 규칙이 있습니다. 10절에 나와 있듯이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소화하라” 남은 것은 불에 태워야 합니다. 열대 지방이기 때문에 남기면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양고기는 언제나 즉시 먹었기 때문에 결코 부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에도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몸은 다른 인간들의 시체와 같이 썩어서 없어지지 않고 다시 부활할 것을 예표합니다. 행2:31에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남김이 없이 먹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의 복음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전15:1-2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출12:43-48을 보면 이 양고기는 종이나 이방인일지라도 할례를 받으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찬예식에 참여할 자격은 죄인이어도 이방인이어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세례를 받은 자는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 혹은 할례의 의미와 같이 진실로 회개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9. 유월절 어린양에 대한 규칙은 뼈를 꺾지 아니하였습니다.

출12:46에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며“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양이 뼈도 먹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설렁탕 육골즙 얼마나 좋아합니까? 뼈 속의 영양은 물론 뼈 자체가 녹아서 나오기 때문에 영양가가 풍부합니다. 그런데 이 육골즙을 만들려면 뼈를 꺾어 부러뜨려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서 진짜 진국이 나옵니다. 그러나 유월절 양 뼈는 꺾어서도 먹어서도 안 됩니다. 이와 같이 한 것은 대체 무슨 진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장차 죄인의 대속주이신 메시야가 오셔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지만 결코 그 뼈가 꺾이지 않을 것을 예표합니다. 이 말씀은 시34:20에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예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예언대로 예수님과 함께 달렸던 두 죄수는 모두 산채로 다리뼈가 꺾임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고로 꺾이지 않으셨습니다.

요19:32-36에 그 말씀이 있습니다.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그럼 왜 뼈가 꺾이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꺾이지 않게 하셨을까요? 이것의 일차적 의미는 사단이 예수님의 육은 죽여도 뼈는 손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의 발꿈치 즉 고통만 줄 뿐입니다. 그러나 이차적 의미는 이것은 예수님의 마음 혹은 진리는 손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뼈의 은혜로 우리들도 영원히 견고한 신앙을 갖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렇게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또 예수님의 살은 우리를 장성하게 합니다. 또 예수님의 뼈는 우리를 영원히 견고하게 합니다. 이 모두 이 아름다운 신앙 안에서 자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