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하나님의 위로

공 상희 2010. 9. 11. 17:38

하나님의 위로
사40:1-5

이 시간에 “위로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하셨습니다. 고난 많고 상처 많은 세상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위로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위로는 이 세상이 말하는 그런 위로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위로’란 ‘낙담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을 달래는 것’ 으로 정의됩니다. 이 달래는 것 가지고는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 1장에서 성도들이 받는 위로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후1:3-7)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진정한 위로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 속에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눅2:25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여기 시므온은 예수님의 오심을 위로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이 구속의 은총을 경험할 때 진정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관점에서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함께 살핌으로 하나님의 크신 위로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1. 말씀을 통한 사랑의 음성으로 나타납니다.

1-2절에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했습니다.

여기 정답게 위로하라는 말씀은 말씀을 통한 위로의 은혜입니다. 롬15:4에 보면 성경의 안위가 나옵니다. 롬15:4에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 그랬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경을 통해서 위로를 받습니다. 가령 사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그런가 하면 성령의 위로가 있습니다. 행9:31에 성령의 위로가 나옵니다. 이 위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 심령에 경험하는 위로입니다. 이 때는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것만 같습니다. 이 때는 눈물이 쏟아지면서 마음의 상처가 씻는 듯이 다 사라집니다.

그런가 하면 지체된 성도들을 통한 은사적 위로입니다. 빌2:1에 “그리스도 안에 무슨 위로나” 그랬는데 이것은 위로가 은사임을 시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만 특별히 바나바와 같이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이 많아서 잘 이해해 주고 말로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사람이 그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고전14:3을 보면 예언의 은사도 그 기능 중 하나가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지치고 상처 받은 마음이 위로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위로는 말씀을 통해서 성령을 통해서 성도들을 통해서 임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보더라도 아들을 낳은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케할 때 한나는 울고 먹지 못하고 괴로워 할 때 그 남편 엘가나가 얼마나 위로했습니까? 삼상1:8을 보면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 보다 낫지 아니하뇨” 한 이 말씀을 볼 때 사람으로서는 많이 위로했음을 봅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그것이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눈물로 부르짖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마음에 성령의 위로를 주셨고 기한이 되어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람에게 위로 얻으려고 하면 더 상처만 받습니다. 하나님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위로는 구원과 용서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2절에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은 그 지긋지긋한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민족이 가장 기쁠 때가 언제였습니까? 8.15 해방이 될 때 입니다. 장차 남북통일이 올 때 가장 기쁠 것입니다. 그런데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바벨론에서 해방이지만 본문이 진정 의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공로로 죄인들이 죄악에서 해방되게 될 것을 예언함입니다.

이것은 바로 구원과 용서를 통한 위로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말씀으로 위로도 중요하지만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진리 안에서 진정 위로를 받지 않으면 그 위로는 지속되지 못합니다. 외부적인 위로도 좋지만 구속의 은총으로 와지는 내부에서 샘솟는 위로여야 합니다. 이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했습니다. 이 구원의 은총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시116:12-14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했겠습니까? 죄 많은 여자가 이 구원을 경험했기에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으며 값진 향유를 부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을 때 삶까지도 변화됩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은혜를 받으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20년간 복수의 칼을 갈며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마중 나오던 형 에서가 야곱을 용서하고 야곱을 호위하는 호위대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영이 문제 해결하면 육신의 문제도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울 때마다 모여서 회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내 영혼이 고쳐지면 내 육신도 고쳐집니다. 최근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 중에 다이돌핀이 있습니다. 이 다이돌핀은 모르핀의 20배 효과가 있다는 엔돌핀보다 4,000배의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다이돌핀이 나오면 어떤 스트레스도 병도 다 고쳐진답니다. 그런데 이 다이돌핀은 우리가 감동을 크게 받았을 때 우리 몸에서 생성이 된다고 합니다. 즉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구원과 용서의 은총을 깊이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위로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남으로 임합니다.

3-5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했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영광’과 육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게 포로에서 해방 되는 것보다 더 큰 관심사는 메시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위로는 정다이 말씀하는 그 위로보다, 해방과 용서의 위로보다 더 큰 위로입니다.

이처럼 최고의 위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심입니다. 내 인격 안에 예수님의 실체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의가 내 의가 되고 예수님의 권세가 내 권세가 되고 예수님의 영광이 내 영광이 됩니다. 이 합일의 은총은 결코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례로서 우리 주님과 하나 되기 때문입니다. 요14:20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더욱 충만하여 이 놀라운 영광의 합일의 은총이 나타나 악인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진정한 위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행복과 기쁨을 모르고 고난과 시험과 낙망 속에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고난이 큰 만큼 위로도 더 크게 주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으로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고 게십니다.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주시는 큰 위로를 받아 여러분의 마음과 삶이 더욱 복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