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브엘세바로 가자
공 상희
2010. 9. 11. 17:34
브엘세바로 가자 (창26:23-33) 설명 브엘세바 ㄱ. 일곱 우물 - 말씀 ㄴ. 언약의 우물 - 성령 브엘세바 가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1. 구원의 복 2. 임마누엘의 복 3. 영적 자손의 복 4. 좋은 일이 터지는 복 요약서술 비유적으로 볼 때 평탄한 듯 했으나 견딜 수 없이 불안했던 르호봇은 세상이요, 반면 일곱 우물 혹은 언약의 우물인 브엘세바는 말씀과 성령의 상징이다. 이 은혜에 동참하려면 올라가듯 경외생활의 애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삭이 블레셋 왕과 화친했듯 나를 죽이며 사랑해야 한다. 이 은혜의 브엘세바로 올라가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구원이요, 함께 하심이요, 의로움이요, 승리요, 온갖 신령한 축복이다. 말씀과 기도 속에서 오순절의 초대교회가 탄생했듯 참된 신앙의 사람의 탄생도 역시 그러하다. 설교 이 시간 함께 은혜 나눌 말씀은 "브엘세바로 가자" 라는 제목입 니다. 본문은 이삭이 블레셋의 온갖 방해를 피해서 드디어 브엘세 바로 가서 복을 받는 내용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 것이라고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나 이삭은 다투지 않고 양보하고 양보하고 또 양보하여 네 번째 브엘 세바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그 복은 무엇입니까? 브엘세바란 일곱 개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은혜의 샘이 펑펑 터지는 복입니다. 여기서도 펑 저기서도 펑 여기저기서도 펑펑 터지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도 이 삭과 같이 브엘세바의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브엘세바는 어디일까요? 지리적으로 브엘세바 우물은 가나안 최남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주 애굽과 가까운 경계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느 냐? 애굽은 세상이요 가나안은 신앙이나 천국인데 그러므로 우리 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힘쓰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습니 다. 그럼 브엘세바란 무엇일까요? "브엘세바"란 언급한 대로 '일곱 우물, 혹은 언약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뜻에 두 가지의 신령한 의미가 있는데 일곱 우물은 말씀이요, 언약의 우물은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브엘세바가 주는 진리는 누구든지 말씀과 성령으로 오면 은혜와 복을 받는다 는 진리입니다. 그럼, 브엘세바로 올라가는 자에게 주는 축복은 무엇일까요? 1. 구원의 축복입니다. 24절에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 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그랬습니다. 여기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다른 하나님이 아닌 아버지 아브라함 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라 함은 하나님의 선택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매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의 의미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믿으면 믿음으로 말 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3:7에 "그런즉 믿음으 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했습니다. 브엘세바로 떠나는 자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나타 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돌아오면 구원을 받 습니다. 요일2:24에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했습니다. 말씀 안에 와야 예수 안에 거 할 수 있고 예수 안에 거할 때 아버지 안에 거하며 이것이 곧 구 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의 구주시오 왕이시라는 사실을 믿 는 믿음에 거할 때 이것이 브엘세바에 거하여 받는 구원의 복입니 다. 2.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입니다. 다시 24절에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그랬습니다. 여기 두려워 말라 하신 것을 보아 이삭이 당시 얼마나 불안했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언제 블레셋 사람들이 나타나 우물을 빼 앗을지 혹은 죽일지 모릅니다. 그런 그에게 브엘세바로 올라가던 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말씀하셨 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무엇이 불안하고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늘 성경보고 기도하여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보세요. 늘 말 씀보고 기도하더니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로움이 임하고 하나님의 강함이 입 혀지고 하나님의 지혜가 오고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사람 은 사람인데 그들의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 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셔서 얼마나 도와 주시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깨워 주시고, 어떤 때는 알게 해 주 시고, 대비시켜 주시고, 매사에 간섭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우 리는 부족하지만 함께 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사자굴에서도 두려 울 것이 없습니다. 풀무불 속에서도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수많은 이적도 나타납니다. 삼손의 그 힘이 어디서 났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에서 났 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어떤 악마도 원수도 우리를 이 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승리가 나 타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엘세바로 가야 합니다. 3. 자손이 형통하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24절 하반절에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 셨습니다. 여기 자손이란 약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자손의 번성을 가리킵니다. 영적으로는 전도의 열매, 더 좁게는 내 속의 의의 성품이 늘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말씀과 성령이 충 만할 때 전도도 되고 내 영혼도 잘 됩니다. 그런데 이 브엘세바의 생활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삭이 블레셋에서 우물을 팔 때마다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르호봇에 와서 도 거기서도 생수가 터지고 땅도 넓어 번성하기 부족함이 없었지 만 마음은 웬지 불안하여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좋은 땅을 버리고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이처럼 우리 육신을 생각하면 브엘세바로는 가기 어렵습니다. 이 편하고 좋은 르호봇 세상에 누가 엎드려 기도하려고 합니까? 그리 고 힘들게 말씀 배우려 합니까? 육신 생각하면 주일 날 누가 예배 드리려하고 날마다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육신 생각하면 놀러 가 고 육신 생각하면 집에서 이 채널 저 채널 돌려가며 좋아하는 것 보며 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이삭이 그 평탄한 르호봇에서 견딜 수 없 었듯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생활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 습니다. 영혼에 만족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형통이 없습니 다. 이것이 르호봇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르 호봇에서 떠나 신앙의 브엘세바로 올라가야 합니다. 4. 온갖 축복과 형통의 샘이 마르지 않는 축복입니다. 32절에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 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했습니다. 드디어 브엘세바에서도 우물이 터지는 장면입니다. 만약 물이 나 오지 않으면 거기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제 그 우 물을 주셨습니까? 우물을 팔 때 블레셋 왕이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화친을 청했습니다. 이 제 의를 받은 이삭은 그 동안 가졌던 한과 상처와 섭섭함을 털고 그 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잔치를 베풀어주고 다음 날 그들을 평안하게 보냈습니다. 그랬던 그 날 브엘세바에 우물이 터 졌습니다. 한 개도 아니고 파면 나고 파면 나서 7개나 터졌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씀보고 기도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구원하려 는 겸손과 순종의 실천이 있을 때 주시는 영혼의 풍성한 복을 시 사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거나 기도하지만 아직 은혜의 샘이 터 지지 않았다면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늘 기도하고 겸손 히 말씀 앞에 순복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은혜가 옵니다. 축복이 옵니다. 형통함이 옵니다. 일곱 개의 은혜의 샘이 터집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브엘세바는 말씀과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말씀과 성령을 사모하십시다. 바쁘시더라도 열심히 교회에 나오셔서 말씀과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 들과 같이 영육 간의 은혜와 축복의 생수가 터져 나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