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제목 : 잠의 종류

공 상희 2010. 9. 11. 17:32
제목 : 잠의 종류
본문 : (시127:1-2)
초점 : 잠에 대한 성경의 상징적 의미를 고찰

요약
성경에는 우리가 자야할 잠과 자서는 안될 잠을 구분하여 말씀한다. 자야 할 잠은 피
곤을 푸는 육체의 잠이요(막4:38), 예수 안에서 염려를 맡기는 안식의 잠이요(시
127:2), 계시가 오는 비몽사몽의 잠이요(행22:17), 능력으로 혼절하는 잠이요(계1:17),
부르심 받는 임종의 잠이 그것이다(마9:24). 그러나 자서는 안될 잠은 술의 잠이요(창
9:24), 게으름의 잠이요(잠6:9), 불신앙적인 사망의 잠이요(시13:3), 영적으로 죽는 잠
이다(엡5:14, 눅9:60), 기타 잠의 용례는 많다(시44:23, 시121:4, 신28:30).

설교
이 시간에는 성경에 나오는 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잠을 살펴보고
자 하는 것은 그 속에 귀한 여러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1. 성경에는 육신의 잠이 나옵니다.

막4:38에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그랬습니다.
이렇게 베게를 베고 자는 육신의 잠, 이 잠은 너무나 잘 아는 잠입니다. 피곤할 때 오는
잠입니다. 이 잠은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는 언제나 자야 합니다. 이 잠을 자는 것은 하나
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2. 육신의 잠에도 안 자야 할 잠이 있습니다.

창9:24에 "노아가 술이 깨어" 그랬습니다. 이 잠은 술의 잠입니다. 이 잠은 정상적인 잠
이 아니라 술에 취하여 떨어진 잠입니다. 이 잠에 빠지면 실수를 합니다. 그래서 노아는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냈습니다. 이 잠에 취한 롯은 자기 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혹은
이 술에 취한 나발은 교만하여져서 다윗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대왕 솔로몬은 경고하기를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23:32-35 ) 했습니다.

3. 혹은 육신의 잠에도 악한 잠이 있습니다.

잠6:9에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
냐" 했습니다. 이 잠은 게으름의 잠입니다. 성경에서 게으른 것은 악한 것과 한 동류로 봅
니다. 그래서 게으르고 악한 종아 이렇게 한 동류입니다. 반대로 충성될 때는 항상 착함이
그 동류입니다. 왜냐하면 게으를 때 온갖 마음에 악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을 부지런히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살 은혜를 주십니다. 잠4:16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
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잠과 관련된 악입니다. 이 잠은 절대 자서는 안될 잠입니다.

4. 그런가 하면 사망의 잠이 있습니다.

시13:3에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그랬습니다. 이 잠은 어떤 잠인가 신
앙에 깨어 있지 못한 잠입니다. 신앙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그 심령은 죽게 됩니다. 그
래서 마25:13에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하셨고,
마26:41에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하셨으며, 살전5:6에도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했습니다. 이 잠도 절대 자서는 안될 잠입
니다.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천성길을 가다가 많은 사람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서 '여기 자면 안 됩니다' 경고하지만 이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괜찮은데 하면서 다
시 잡니다. 그런데 기독도가 놓아둔 책을 찾으러 다시 돌아오다가 이들이 붙잡혀 죽어 있
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사망의 잠이요 신앙의 잠입니다.
흔히 깨여 신앙생활하자고 하면 나는 별일 없는데 하면서 별로 각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도 모르는 순간에 시18:4-5에 다윗이
당하였던 것처럼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
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하듯 시험이 찾아오게 됩니다.

5. 사명에 잠이 있습니다.

욘1:4-5에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했습
니다.
사명 피해 배타고 도망간 요나는 큰 폭풍을 만나 나중에는 배에서 던져져서 고기 뱃속에
들어가 온갖 어둠과 오물과 고난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요나는 그 상황을 스홀의 뱃속이
라고 부릅니다. 스홀이 무엇입니까? 지옥 물론 지옥과 같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절망적이
고 고통스러웠으면 그렇게 표현했을까요? 그러므로 사명의 잠이란 이처럼 사명을 외면하
는 것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6. 육체 임종을 잔다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마9:24에 예수님께서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셨습니다. 바울도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4:13) 했고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
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했습니다.
왜 임종을 잔다고 했을까요? 다시 깰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다
시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편하기 때문입니다. 사57:2에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임종은
쉬러 들어가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악인은 꿈속에서도 악몽을 꾸듯
불신자가 죽으면 더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으면 끝나고 편할 줄 알고 죽지만 더 큰
고통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6. 성경은 영적으로 죽은 것도 잠이라고 부릅니다.

엡5:14에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
리라" 했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죽은 것 즉 불신앙의 심령을 죽은 자로 봅니다. 예수님
께서도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
하라"(눅9:60) 하실 때 죽은 자들이 어떻게 죽은 자를 장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여
기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가리켰습니다. 이 잠은 구제 받을 수 없는 잠입니
다. 속히 회개하고 예수 믿어 생명으로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7. 성령의 능력에 압도되어 기절한 잠이 있습니다.

계1:17에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랬습니다. 사도 요한
이 주의 날에 계시 받으면서 예수님을 보고서는 그 영광에 압도되어 죽은 자 같이 된 상태
를 가리킵니다. 다니엘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단8:18에 "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컸으
면 하나님도 아닌 천사가 나타나도 이렇게 혼절을 할까요?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이나 천사
가 안수하여 줍니다. 그것은 그만큼 강한 능력이 아니고는 그 영광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사람이 오래 어둔데 있다가 갑자기 나오면 실명한다고 합니다. 일식 시에 많은 동물들이
실명하기도 합니다. 갑작스런 빛을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 빛도 그러한데 세상 빛
보다 더 밝은 천국의 영광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천국을 다녀왔다는 간증이 있지만
온전한 영광을 다 보았다고 볼 수 없고 대부분 교훈적인 의미의 경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의 잠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간혹 있는 잠의 종류 중 하나입니다.

8. 예수 안의 안식의 잠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2) 했습니다.
이 잠은 하나님께서 성을 지켜 주시니 편한 마음으로 잔다는 의미도 되지만 마음의 진정한
안식을 의미하는 잠이기도 합니다. 이 잠은 잘 때도 생활할 때도 우리에게 존재해야 할 성
도들의 가장 정상적인 잠입니다. 예수님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하신 대로 성도들은 마음
의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9. 계시를 위한 잠이 있습니다.

행10장을 보면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봅니다. 비몽사몽이란 육신이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잠시 의식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이 때 주시는 것은 그래
야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 수 있고 또 교만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욥33:14-17에 그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다니엘도 꿈을 통해서 계시를 많이 받았습니다. 요셉이나 동방박
사들도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바울도 행22:17에 "후에 내가 예루살렘
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
루살렘에서 나가라"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성경 수준의 계시는 없고
우리를 삶 속에서 돕는 그런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타, 비유적으로 잠이 사용된 예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환경의 어려움을 마치 하나님이 주무신다는 표현을 빌어서 기도하는
경우입니다. 시44:23에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
리지 마소서" 혹은 시121:4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
니하시리로다" 이런 구절입니다. 혹은 비유적으로 부부생활을 잔다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신28:30).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잠의 종류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 중에는 반드시 자야 할 잠이
있고 자서는 안될 잠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혹시 불신앙과 게으름과 사망의 잠을 잔다면
이 시간 깨시기 바랍니다. 대신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 예수 안에서 누리는 참된 안식과 평
안의 잠을 자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