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에게 주신 약속 요일4:7-8
(요약)
사랑하면 악한 원수일지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마5:44-45).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야 상이 있다(마5:46-47). 사랑할 때 영생을 풍성히 누린다(요일3:14). 사랑할 때 주의 말씀대로 살아진다(요14:15). 사랑하지 않으면 피 흘려 사신 교회를 해치다 저주 받는다(고전16:22).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요일4:8). 사랑의 유무는 하나님의 자녀임과(요일3:10)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한다(요13:35).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위해 귀한 것을 예비해 놓으셨다(고전2:9).
(설교)
이 시간에는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모두가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온갖 문제들이 있는데 이것 한 가지면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 방법은 사랑입니다. 사랑할 때 이 땅에 전쟁 기아 스트레스 죄악 그 무슨 문제도 다 해결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랑할 때 영의 문제 다 해결되고 믿음이 정상을 향해 달리는 아름다운 신앙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는 사랑하면 혹은 사랑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하여 성경에서 하시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랑하면 원수도 아버지의 자녀가 됩니다.
마5:44-45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자녀임은 물론이고 그 괴롭히고 박해하는 악한 원수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예수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이렇게 놀랍고 힘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처럼 강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괴롭히거나 믿음을 박해하는 원수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자녀 삼으시려고 그런 줄 알고 사랑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꾸어지기만 하면 더 잘합니다.
2. 사랑하면 하늘의 상을 주십니다.
마5:46-47에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야 상이 있습니다.
또 갚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눅14:12에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 들으면 우리 생각을 고쳐도 많이 고쳐야 할 것입니다.
3. 사랑할 때 영적 생명의 풍성함을 누립니다.
요일3:14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에는 생명적인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을 묻는 부자 청년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19:17) 하신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물론 불신자가 계명 지켜 영생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 언약 백성이라고 전제할 때 이 말씀은 풍성한 영적 삶의 원리를 교훈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믿는 성도들이 이제 힘쓸 일은 사랑입니다. 우리 신앙의 척도는 사랑의 수준입니다. 그래서 벧전1:22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잘 됩니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내가 은혜를 보통 받아서는 안 되겠구나를 깨닫게 되고 그 문제 가지고 기도하다가 성숙한 신앙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영적인 생명의 풍성함을 갖게 됩니다.
4. 사랑하면 주의 말씀대로 살아집니다.
요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14:24에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하셨습니다. 혹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양을 먹이라! 는 말씀도 있습니다. 내 자식은 열도 키우지만 남의 자식은 하나도 키우기 어렵습니다. 주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은 너무 기쁜 일이요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자에게는 그만큼 고역이 없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과연 내 마음과 생각과 잠재의식마저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로 될 수 있을까 걱정하지만 사랑하면 가능합니다. 그냥 거룩하게 살아야 하겠다 할 때는 온전히는 말씀대로 살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주의 영광을 위해 몸 바치지 못한 것이 한이 될 만큼 변화합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12:30)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함에서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5. 사랑할 때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고전16:22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저주하지 말라 했는데 저주를 선언하다니 무슨 일일까요? 그러나 어느 실재하는 특정 대상에게 저주함이 아니고 주를 사랑하지 않는 부류에 들어서는 저주를 받게 된다는 어조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린도 교회의 경우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님의 피 흘려 사신 교회를 교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여러 면에서 부패시키고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과 교회를 파괴하고서 어떻게 복 받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아끼는 사람은 무슨 말 한마디도 상처 입을까봐 조심합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가 어떻게 되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든 말든 새 신자까지라도 선동해서 자기 감정대로 합니다. 그런 풍파가 지나가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실족합니다. 그런데 그 도수가 넘어설 때 하나님께서는 가만 두시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이 말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 대한 경고입니다.
6. 사랑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요일4:8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체험하지 못한다는 말이고 체험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도 받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일2:11에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영적 어두운 가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요일3:17에는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했습니다. 요일4:12에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은사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비로소 사랑할 때 익게 됩니다. 우리에게 각종 은사가 풍성해도 사랑이 없으면 그 은사가 덕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은사가 풍성해서 놀랍게도 잘 되기도 하지만 혹은 은사가 너무 뛰어나서 안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유무입니다. 그래서 고전13:1 이하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 없이는 목회해도 사랑 없이는 못합니다. 덕을 세우려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 없으면 상처 주고 실족 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16:14) 했습니다.
심지어 요한은 사랑의 유무를 하나님 백성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시금석으로 말씀합니다 요일3:10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사랑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럼 우리가 하나님 자녀 되었다가 마귀 자녀 되었다가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 말씀은 그 특징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혹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놀라운 것을 주십니다. 고전2:9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기타 사랑에 대한 말씀을 참고로 들려 드리면 롬13:10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했습니다. 갈5:13에는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했습니다. 엡5:2에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하셨습니다. 골3:14에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했습니다. 히6:10에는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성도를 섬긴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히10:24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히13:1에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벧전4:8에는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요일4:19에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4:20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다” 요13:35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롬8:28에 하나님을 사랑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랑의 중요성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이란 강제가 아니라 우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은혜로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됨으로 참된 복을 누리며 장성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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