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랏산의 교훈 (창 8:4)
아라랏산의 교훈 (창 8:4)
이 시간 “아라랏산의 교훈”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 4절에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물에 떠다니다가 최초로 머문 곳이 바로 아라랏산입니다.
이아라랏산은 현재 터키와 러시아의 국경선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라랏산은 거의 사철 얼음으로 덮여 있고 오후가 되면 눈과 비를 몰고 오는 엄청난 폭풍우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아라랏트산은 두 정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중 대 아라랏산의 높이가 5,160m입니다. 탐험가들에 의해 방주가 해발 4,200m지점에 수십 미터 얼음 속에 묻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라랏산은 에덴동산에 이어 두 번째 인류의 출발지라는 점에서 아라랏산이 주는 의미가 큽니다. “아라랏”이란 ‘거룩한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상징하기도 하고 영적으로는 성결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리들도 이 축복된 땅에 머물러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복된 땅에 머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죄악의 홍수가 물러가야 합니다.
3절에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그랬습니다. 물이 감하여 노아 나이 600세 7월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했는데 이 때가 홍수가 임한지 150일 만입니다. 아라랏산에 머물려면 물이 감해야 합니다.
여기서 물은 좀 부정적 의미입니다. 긍정적으로는 물이 씻는 세례이지만(벧전3:21) 여기서는 물러가야 할 물이니 부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죄악의 홍수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죄악의 물이 물러가야 합니다. 죄를 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외치셨습니다. 시24:3-6에도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했습니다.
진정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생각과 입술과 행위에서 성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벧전3:10-12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습니다.
2.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다시 3절 하 반절에 “일백오십 일 후에 감하고” 그랬습니다. 이 때 노아의 식구들의 마음이 얼마나 부풀어 있었겠습니까? 또 얼마나 기대가 컸겠습니까? 그러나 기다려야 합니다. 150일을 기다렸다면 앞으로도 74일을 더 기다려야합니다.
아라랏산에 머문 후에서 74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다른 산들의 봉우리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대 아라랏산에서 가장 가까운 산봉우리는 리틀 아라랏산입니다. 리틀 아라랏산은 해발 3,920m로 방주가 머문 빅 아라랏산보다 1,200m가 낮은 산입니다. 수위가 1,200m 낮아지는 기간이 74일이 걸렸습니다.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다고 내려갈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다 마르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방주의 생활은 답답하고 빨리 내려가고 싶지만 때가 되기 전에 내려가면 안 됩니다. 진흙수렁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참고 기다리자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바람과 햇빛으로 물을 감하게 하시고 땅을 마르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바람 같이 불 같이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갈망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아직 심령이 답답하고 암담하더라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500여명의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성령을 기다리라는 약속을 듣고도 진정 기다린 사람은 120명 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릴 때 성령께서 바람 같이 불 같이 임하셨습니다.
행2:1-4에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성령 충만 받고 어떻게 변했습니까? 거룩한 성도로 변했습니다.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준비 없이 서둘면 안 됩니다. 성급하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붇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7-8)
뭐든지 기초 준비가 중요합니다. 사업에 경험도 없으면서 많이 투자하면 실패를 당합니다. 그 분야의 성공자가 되고 싶으면 월급 안 받아도 좋으니 도시락 싸가지고 성공하는 사람 밑에 가서 배워야 합니다. 성급함과 자존심이 일을 그르칩니다. 일류에게 배우면 일류가 됩니다. 준비 없이 서둘면 안 됩니다. 빙산의 일각처럼 보이지 않는 준비가 더 중요합니다.
이처럼 은혜를 모르고 신앙 생활하다가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혹은 율법주의에 빠져 고통을 당합니다. 나만 아니라 남까지 고통을 줍니다. 혹은 은혜 받기 전에 사명의 길을 나섰다가 감당도 못하고 상처만 크게 받아 낙심합니다. 교회 일하기 전에 은혜부터 받으세요. 노아와 같이 성급하지 마시고 먼저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는 것입니다.
3. 내 의무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노아가 할 일도 하지 않고 기다린 것은 아닙니다. 창8:6-8에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자기가 할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나기 전에 이미 천지만물은 창조되어 있었고 우리가 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공로를 다 마련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모두 하나님께서 은혜 주셨기에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없나요? 사람도 최선을 다해 믿음과 순종과 충성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교의신학에서도 성화란 성령의 주도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성화의 방편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성화의 방편은 크게 세 가지인데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섭리적 인도입니다. 말씀 성례 기도 묵상 연단 친교 예배 우리가 영적생활에서 힘써야 하는 모든 것이 모두 성화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것들이 성령의 은혜를 받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아야 거룩해집니다. 거룩한 길 다닙니다. 노아가 자기 할 일에 최선을 다했듯 우리 할 일 은혜 받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가만있다고 은혜를 주는 것 아닙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갈망해야 합니다.
4. 계속해야 합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일이 끝난 것 아니었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손종하여 방주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산에 발을 밟기까지는 밟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가 하늘로 이륙할 때 가장 힘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하늘로 올라가면 힘이 덜 듭니다. 그러나 너무 힘을 쓰지 않으면 아래로 추락하게 됩니다.
우리 영적생활도 독수리처럼 정상에 올라갔더라도 방심하거나 태만하거나 교만하면 또 다시 추락합니다. 절대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경외함으로 은혜 충만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천국의 산 시온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그러기 위해 세속의 물결이 다 물러가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할 성화의 방법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영혼이 더욱 거룩해지고 거룩한 천국에 발 딛고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