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홍수로 본 인간론 (창 6:1-8)
노아홍수로 본 인간론 (창 6:1-8)
이 시간에 “노아홍수로 본 인간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구제불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비뚤어져서 사람이 어찌할 수 없을 때 흔히 쓰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말을 쓰면 안 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제불능 같던 우리 옛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 드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셨는데 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을까요? 그 답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만큼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지 의인을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을 읽으면서 생기는 궁금증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부패하기 짝이 없는 것이 인간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노아시대의 사람들만 멸하시고 지금은 그대로 두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기다리실 뿐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장차 지옥의 불로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심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악에 대한 심판이 있고 영적인 의미에서는 베드로가 홍수 사건을 세례의 사건으로 보았듯 지금도 옛사람을 장사시키는 은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옛사람을 처리해 주시는 귀한 은혜, 이것이 오늘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밝혀 주는 것은 옛 사람의 정체입니다. 엡2:3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했습니다. 즉 노아시대의 그 죄인들의 모습에서 심판 받아 마땅한 우리 옛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잠재해 있던 인간의 악함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 뿐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처리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시인하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우리의 옛 사람을 처리해 주십니다.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부르짖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육체를 따라 살았던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창6:2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심판의 원인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구분이 사라진 것입니다. 혼인의 기준이 신앙이 아니라 육체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 중에 창4:25-26에 나오는 경건한 신앙의 줄기인 셋 계통의 사람들이라는 견해가 가장 유력합니다. 요새 말로 표현하면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들"도 여러 견해가 있지만 가인 계통의 불경건한 자녀들로 보는 견해가 가장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요새 말로 표현하면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 보면 신령한 사람과 육적인 사람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이었던 사람들이 점차 타락하여 육적인 것을 따를 때 생겨지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3절에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했는데 이 표현은 육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이란 외견상의 미모와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도는 고려하지 않고 사람의 외모만 보고 따라갔던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육체를 따라 사는 모습입니다. 육을 따라 사는 것 중에 눈으로 범하는 죄가 큽니다. 눈으로 보는 것 때문에 죄를 많이 짓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안목의 정욕이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보는 안목의 정욕으로 망했습니다. 다윗도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다가 죄를 범했습니다. 아간도 여리고성의 황금과 시날산의 외투 같은 전리품에 홀려 범죄했고, 삼손도 아리따운 들릴라를 보므로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 안목의 정욕 대단히 조심해야 합니다. 히13:4에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하셨습니다. 마음으로라도 범죄하였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스폰지와 같아서 마음에 사진이 찍히면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아주 보지 않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덜 보려고 해야 합니다. 폭력이나 음란 우상 이런 내용이 짙은 프로나 매체도 조심해야 합니다.
자주 그 환경에서 살면 죄를 의식할 수 없습니다. 이방종교나 이단들의 말을 자꾸 들으면 생각의 구조가 그렇게 바뀌어서 그 사고방식에 진리를 용납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저는 이런 사람이라고 마음을 다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숨기면 진짜 혹독한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내어놓고 회개하면 복된 은혜로 제거해 주십니다.
2. 본질적으로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4절에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했습니다.
여기 네피림이란 악한 거인들을 가리킵니다. 네피림에 대하여 이단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인데 천사와 사람이 결혼해서 네피림을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참고할 가치도 없는 주장입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주장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마22:30에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하셨습니다. 천사는 영물이라 결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섬기라고 창조된 천사는 어떤 성적인 구별이 없습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간 즉 중화적 존재도 아닙니다. 천사는 육체를 갖지 않은 영물일 뿐입니다.
그럼 네피림은 무얼까요? 본문에서 분명히 고대의 용사라고 말합니다. 민 13장을 보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 온 사람들이 아낙의 거인들을 보았는데 그들을 가리켜 네피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네피림이 고대시대에 유명했다는 것은 너무나 악해서 악명 높았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거대한 신체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침략하고 약탈하는 폭군들이었던 것입니다. 셋의 자손들이 처음에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점점 하나님을 버리고 가인의 후손들과 결혼하면서 그 자손들이 네피림이 되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옛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멀리해 보세요. 틀림없이 우리 옛 사람이 나타나지요?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악의 모습 그게 네피림입니다. 잠재해 있던 이것이 나타나면 괴물이 따로 없습니다. 이게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남을 고통스럽게 하고 어디서나 문제를 일으킵니다. 인간이 하나님 떠나 세상과 가까워지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것이 네피림입니다.
3. 자신이 오직 악할 뿐임을 호소해야 합니다.
창6:5-6절 보십시다.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모두 악함을 보시고" 여기 관영[貫盈]이라는 말은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죄악이 가득 찼습니다. 넓게는 당시 세상이 극도로 타락했다는 말이고 우리는 거기서 죄악으로 가득 찬 우리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사람에게 양심과 도덕이 있어 선한 것도 있는 것 같지만 인간은 그것마저도 처리해야 할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이사야는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64:6)라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은 환경이 악해지면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악인으로 변합니다. 북한에서 수용소의 사람들을 고문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인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상황이 오면 쉽게 그렇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사자도 호랑이도 악어도 표범도 독사도 아니요 왕따 당한 고라니라고 합니다. 고라니는 초식동물로 순한 동물이지만 일단 왕따를 당하면 반감으로 맹수로 돌변하여 어떤 맹수와 싸워도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악한 것은 인간이에요.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이 제일 무서운 동물입니다. 중국에서 일본인들이 약 10,000명으로 생체 실험했는데 사람을 일열로 세워놓고 총 한 방에 몇 명이 죽는지 권총 효능시험을 했고, 산 사람의 동맥을 잘라 몇 분 후에 죽는 지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또 영하 40도에 발가벗겨 기둥에 매어 놓고 몇 분 후에 얼어 죽는 지도 실험했고, 사우나탕에 넣고 땀을 얼마나 흘리는 지도 실험했으며 땀을 얼마나 흘리면 죽는 지도 생체 실험하였습니다. 사람이 악하면 얼마나 악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생체 실험장이 중국의 하얼빈에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느냐고 비난하지만 그러나 본질적 악함으로 본다면 모두 일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직 악할 뿐임을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1:2-6)한 이사야의 외침처럼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본질적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고 부르짖는 자는 진정 고침 받을 복 있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 홍수 심판은 이 지상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의미에서 이 사건은 성령으로 우리에게서 되풀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자신을 의인이라 생각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죄가 넘친 곳에 은혜도 넘칩니다. 하나님의 처리가 필요한 죄인임을 고백하시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노아시대 사람들처럼 자신을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부르짖어 우리 옛사람을 처리해 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