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행함의 은사 (고전 12:10)
능력 행함의 은사 (고전 12:10)
고전12:10에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이라 하였습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서 “능력 행함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 드릴 차례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지만 여기 능력 행함의 은사는 "어떤 이에게는"이라 한 것처럼 특별히 어떤 사람을 사용하셔서 성령께서 기적을 행하게 하시는 은사입니다. 기적이 나타나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얼마나 좋은 은사인지 모릅니다.
성경에 능력이 행해진 예는 아주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모세의 이적입니다. 애굽 나라에 피 개구리 이를 비롯한 열 가지 재앙으로 치고 홍해를 가르고 하늘의 만나와 반석의 생수로 마시는 기적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엘리야의 이적 역시 많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집에 곡식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고, 이스라엘에 삼년 반 동안 비 오지 않게 했다가 다시 오게 하고, 바알의 제사장들과 대결에서 기도로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다 태웠습니다.
혹은 그의 제자 엘리사 역시 겉옷으로 쳐서 물을 가르고, 게하시로 하여금 영안을 뜨게 하여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하고 아람 군대의 눈을 멀게 하여 포로로 잡은 일이며, 베드로를 통해 나타난 무수한 이적, 바울을 통해 일어난 무수한 이적을 봅니다. 혹은 선지자 에스겔이 성령의 인도로 그 몸이 다른 장소로 옮겨지고, 빌립 역시 성령으로 홀연히 다른 장소로 옮겨진 일, 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이 넘어지거나 쓰러진 일도 있었고, 안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은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이적은 너무 많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물을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고,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을 먹이시고, 풍랑을 꾸짖어서 잠잠하게 하시고, 물 위를 걸어오시기도 하셨으며, 죽은 자도 세 번이나 다시 살리셨습니다. 요21:25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능력 행함의 은사는 어떤 은사일까요?
학자들의 정의를 살펴보면 데이비드 피체스(David Pytches)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은사는 자연 세계에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간섭으로 어떤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랬고,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는 “기적의 은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어떤 사람들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인데 이 은사를 통해 은사자는 매개자가 되어 목격자들이 볼 때 통상적인 자연 법칙을 바꾸었다고 인식하는 능력 있는 행위를 말한다.”
바디 클린턴(Bobby Clinton)은 “기적들 행함은 이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을 불러와서 그 결과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간섭하셨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정의대로 능력 행함의 은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느끼도록 역사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믿게 하시기 위한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마술과 같이 남을 속이거나 교묘한 자연의 원리를 이용한 그런 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은사입니다.
능력의 원어는 ‘듀나미스’입니다. 듀나미스는 권능, 능력, 기적(듀나미스, miracle 또는 power)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기적(miracles)으로 번역한 성경들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능력, 기적, 표적이란 말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은사를 흔히 기적의 은사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의 행하심은 복음서에 나타나는데 거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사도행전에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계속하여 나타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사도시대에 끝났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믿는 성도를 통하여 그 능력을 계속 행하고 계십니다.
요14:12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변함없이 성도들에게 오셔서 성도들을 통하여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적을 기록한다 해서 그것을 성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능력 행함의 은사는 어떻게 활용할까요?
1. 능력이 주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행10:38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셨습니다. 요1:16에도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신령하신 것이지 내가 신령한 것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 내 힘대로 할 능력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에게 큰 능력이 임하기를 바라고 자기 안을 살펴보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텅 빈 자신만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를 바라보지 마세요. 우리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이 주님께서 필요에 따라서 우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성전 미문 앉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 이름으로 고칠 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행3:12-13) 외쳤습니다.
우리에게도 능력을 주셔요. 믿을 수 있는 능력, 사랑하는 능력, 근신하고 두려워 하지 않으며 강하고 담대한 능력 이런 능력을 주셔요. 그러나 전능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들은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직접 나타내셔요. 나와 함께 하신 주님에게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능력을 행하는 기초적인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 능력이 있다는 말씀으로 능력의 강박관념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2. 기도를 축적해야 합니다.
능력 행함의 기적은 기도의 응답의 결과입니다. 행16:25-26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고 했습니다. 이 일이 있기까지 바울과 실라가 기도했고, 더 나아가 그들을 위해 밤낮 기도하고 있었던 배후의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결실을 따먹는 것입니다. 십 분 기도한 것 다르고 한 시간 기도한 것 하루 기도로 준비한 것 다릅니다. 미국 펜사콜라에 일어난 놀라운 기적의 부흥은 수년 간 기도했던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펜사콜라 브라운스빌 교회의 담임목사 킬패트릭은 찰스 피니의 믿음도, 아주사 거리의 윌리엄 시무어의 끈질긴 힘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직감도 없었지만 이런 은총이 임하기를 2년 반 동안 계속 기도했습니다.
킬패트릭목사는 설교할 때마다 영혼에 대한 사랑과 성령의 역사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원하지 않는다면 저는 사임하겠습니다. 성령의 역사에 무관심한 2천 명의 교회를 목회하느니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50명의 교회를 목회 하겠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신앙의 적성에 맞지 않다고 200여 명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교회로 만든 결과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펜사콜라를 복음화시키고 세계 사람들이 와서 은혜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기적의 종일지라도 기도하지 않는 곳에서는 기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막6:5-6에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 많이 하면 아무나 설교해도 이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간구함으로 도우라고 했습니다.
3. 방법으로는 안수 선언 도움 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안수하여 고치셨습니다. 혹은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병인의 손을 잡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기도하고 말하는 것을 이루실 것을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산도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쓰임 받을 뿐이라는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에 서야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이렇게 자기를 의식하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주 조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순간만큼은 사적인 입장이 아니라 공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사요 하나님의 도구로 섰다는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성령으로 수많은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이 주님께서 이 시간에도 능력을 나타내셔서 영광 받으시고 큰일을 이루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전지전능하시고 능력 많으신 주님을 믿고 영혼을 사랑하며 성령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회를 포착하여 믿음을 다해 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