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강해 모음

성령은 어떻게 나타나실까요? (고전 12:4-6)

공 상희 2010. 9. 10. 17:51

성령은 어떻게 나타나실까요? (고전 12:4-6)

 

 

이 시간에는 “성령은 어떻게 나타나실까요?”라는 제목입니다.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는데 성령은 보이지 않는 분이신데 어떻게 나타내실까요? 성경에 하나님께서 성도를 돕기 위해서 자주 나타나시는 것을 봅니다. 모세에게도 나타나시고 아브라함에게도 나타나시고 야곱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소돔에 살던 롯을 불 심판에서 구원하시려고 천사를 보내 나타나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나타나실까요? 성령을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성령님은 한 순간도 떠나지 않으시고 도우시는 우리 보혜사이시기 때문입니다. 유익을 주시기 위해 성령께서 나타나시는데 오늘 고전 12장을 보면 약 세 가지 방향에서 나타나십니다.


1. 은사로 나타나십니다.


4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성령께서 다양한 은사로 나타나신다는 말씀입니다. 은사는 선물이라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냥 나타나시는 것 아닙니다. 귀하고 놀라운 선물 가지고 나타나십니다. 온갖 아름다운 선물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나시기 때문에 성령에 관심할수록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께서는 지혜가 필요하면 지혜로, 지식이 필요하면 지식으로, 병고침이 필요하면 신유로, 능력이 필요하면 능력으로, 혹은  믿음으로 영분별로 예언으로 방언으로 통역 등으로 도우심을 나타나십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지만 주시는 은사를 통해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10:37-38)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 받으면 은사가 나타납니다. 사람이 아이로 태어나면 여러 가지 성장과 변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변성기로 목소리가 변한다든지, 수염이 나거나 신체가 변한다든지, 남성도 그렇지만 여성은 더 변화가 심해서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정상입니다.


제가 이런 당연한 말을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정상적인 성령의 일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20대였을 때 크리스천 신문에 이런 비유로 기고해서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왜 당연한 일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온갖 아름다운 선물 가지고 나타나십니다.


2. 직임으로 나타나십니다.


5절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성령께서 다양한 직무를 주십니다. 성경에 직무에 대한 은사는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 목사 교사 사랑 섬김 구제 긍휼 위로 다스림 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른 이름이 있을지라도 대부분 이 직무의 내용들입니다.


바울이 사도요 복음의 일군이 된 것도 성령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엡3:7에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갈1:1에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이라 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사도권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를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전한 복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바울이 부정되면 신약성경이 무너집니다. 바울이 쓴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까지 바울의 저서에 포함시킨다면 신약 27권중 서신서 22권 중에서 무려 13권이 바울이 쓴 것입니다. 수효도 그렇지만 바울 쓴 내용이 우리 기독교의 핵심과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사도권을 주장한 것처럼 자기 직무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확신입니다. 이것을 소명감이라고 합니다. 소명이란 이것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인데 그러니까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맘가짐으로 임해야 합니다. 이번 실종자 수색하다 순직한 UDT의 한주호 준위는 UDT의 전설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충성했다고 합니다. 이번 실종자 수색에 있어서도 사병들은 시키지 않고 간부들만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UDT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세계 최강의 군인들입니다.

 

이처럼 나에게 주어진 직임은 어떤 것인가? 보이는 직임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직임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알아야 합니다. 아합 왕 시대에 오바댜는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 선지자들을 대거 굴에 숨기고 음식을 제공했습니다(왕상18:4).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 같은 사람도 보이지 않는 직무자들입니다.


사람의 인체도 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손 발 눈코 입 보이는 지체도 귀하지만, 심장 폐장 위장 신장 간장 뇌 뼈 등 보이지 않는 장기도 대단히 귀합니다. 이처럼 보이는 직무로 수고하는 자도 귀하고, 보이지 않게 기도로 물질로 권세로 하나님의 일을 측면에서 채비하는 일군도 귀합니다. 기도의 일군도 더 많아지도록 기도하시고 하나님 일하는데 물질 구애받지 않도록 물질의 큰 일군도 나오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다양한 자기 직무가 주어지는 것을 알고 자기 직무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3. 역사로 나타나십니다.


6절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역사란 일을 뜻합니다. 원문으로 보면 ‘효과, 작용, 작업’ 이런 뜻인데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을 역사(役事)라고 합니다. 성령의 하시는 역사도 다양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는 너무도 다양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서 성경에 예는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종류는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적이 특이하면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의심하기도 하는데 좀 더 마음의 눈을 넓게 열어야 합니다. 상공에 높이 날던 여객기가 고장났는데 방송을 듣고 목사가 기도했더니 다시 시동이 걸리면서 살아난 기적도 있듯 얼마든지 이적은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행 19장에 바울의 기적을 가지고 생각해 봅시다. 행19:12에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그럴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이적은 더 신비하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 일을 교리화시켜서 손수건에 의미를 둔다면 박태선의 발 씻은 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바울은 결코 스스로 손수건을 얹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손수건 열풍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예측할 수 없게 역사하는 것이지 사람이 그것을 방법화시켜 연속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부르짖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 그것을 보는 자는 살리라 하셨습니다. 보는 자는 모두 살았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상상할 수 없고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이것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거기다 의미를 둔다는 것입니다. 왕하18:4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 때까지 향하여 분향합니다. 병들고 문제만 있으면 이 놋뱀 아래로 데라고 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로 가지 않고 놋뱀에게로 옵니다. 놋뱀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잘한 일일까요? 잘못한 일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그것을 다 부수어서 없앴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다양합니다. 필요하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릴 수도 있습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터질 수 있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 아닙니다. 더 신비한 일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요1:50-51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셨습니다. 그걸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것을 방법화시켜서 강조할 때는 잘못이지만 신비한 일이 나타났다는 자체로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에게는 이 성령의 3대 역사가 다 나타나셨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성령의 직임도 성령의 역사도 다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충만히 나타나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능력 주시기 바랍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다 한 성령의 행하심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나타나심 따라 은사와 직임에 충성하시는 귀한 일군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