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삶 (창5:21-24)

공 상희 2010. 9. 10. 17:14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삶 (창5:21-24)

요약

하나님과 동행함이란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산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암3:3).
서로의 뜻이 합하지 않고 어떻게 동행하겠는가?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요14:23).
주님의 편에 서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편이 되신다.
또 하나님의 일에 충성해야 한다.
주의 사역의 현장에 우리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창5:21-22).
이것이 에녹의 동행의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설교

인생에 있어서 누구와 동행하느냐는 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대왕 솔로몬은 잠13:20에서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했습니다. 사는 날 동안도 그런데 죽음을 넘어 영원까지 동행할 대상자를 만나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이고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유명한 복음 전도자인 존 길모아 목사가 좌판에서 물건을 파는 노인에게 전도했습니다. "예수를 믿으십니까?" "물론이지요.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입니다." 그때 길모어 목사는 말하기를 "예수 믿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어요." "아니 예수 믿는 것보다 더 귀한 것 말이요?" "예, 그것은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 믿는 일은 나의 구원을 위한 분야에서는 가장 귀한 일이지만 주님을 위한 데 있어서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하나님과 걷는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종종 ‘뜻을 좇다, 삶을 살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올바른 삶을 살 뿐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자기와 동행하는 에녹을 얼마나 기뻐하셨으면 죽음을 맛보게 아니하시고 승천하게 하셨을까요?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사는 삶입니다.

암3:3에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그랬습니다.

즉 뜻이 같아야 동행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여행을 해보면 뜻이 맞지 않고서는 가장 어려운 것을 봅니다. 아폴로 15호의 조종사였던 어윈 박사가 우주비행 훈련을 하다가 척추를 다쳐 병상에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병상에서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왜 이렇게 오랫동안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네가 인생을 지나치게 과속한 것이 문제이니라."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어윈은 “하나님, 이렇게 살면 잘 믿는 것 인줄 알았더니 제멋대로 인생을 과속해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하나님의 방법보다 내 방법을 더 앞세웠습니다. 다시는 나 혼자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과 동행하겠나이다.”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일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 없이 혼자 달려가는 삶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런 혼자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지 행복하지 않습니다. 동행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산다는 것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래서 이것을 알리기 위해서 율법에서는 서로 다른 짐승을 한 멍에 메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29)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행복하려면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찰스 몬로 쉘톤이 쓴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처럼 우리들도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것까지도 우리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항상 하나님께 여쭙고 생각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동행입니다.

요14:23에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하셨습니다.

즉 주의 말씀을 순종할 때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남북 전쟁을 할 때 전세가 불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부관들이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지 않으니 휴전해야 합니다.” 그때 링컨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신가를 묻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기만 하면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명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면 됩니다.

미국의 체신부 장관을 지낸 워너메이커는 백화점 왕으로 십의 일조가 아닌 십의 구조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드린 사람입니다. 신문 기자가 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투자할 때마다 늘 성공하는데 당신의 생애에서 어떤 투자가 가장 성공적인 투자였습니까?" 그러자 웨너메이커는 "열두 살 때 투자한 2불 50센트가 생애 최고의 투자였습니다. 그 때 2불 50센트를 주고 성경을 샀는데 그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순종하며 살았더니 이런 축복과 은혜가 주어졌다는 고백입니다. 이 또한 귀한 명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바울도 예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한결 같은 모습은 말씀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늘 읽고 듣고 깨달아 마음에 간직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성하며 사는 것입니다.

22-23절에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했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좀 우습지만 고대 시대에는 자녀 낳는 일을 하나님의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5장의 고대시대의 경건한 족장들의 일생은 오래 살면서 자녀 낳는 일이 그들의 업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깊은 뜻을 보면 결코 우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녀 낳기를 그렇게 소원한 것은 먼저는 창3:15에 의거하여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구원자 메시야를 갈망함이요, 다음은 그들을 길러 셋과 같이 경건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기를 갈망한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로 표현하면 거룩한 신앙운동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님과의 동행이란 하나님께서 맡기신 육신의 일에도 충성하면서 무엇보다 불신자들 전도와 각인의 성화를 위해 신앙훈련 영성운동에 노력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바로 그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내가 살아난 후에 갈릴리로 가리라 하셨는데 제자들처럼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의 사역의 현장에 우리도 가야 그것이 동행이요 동역입니다.

4.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가는 것이 동행입니다.

창5:21-22에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라고 했습니다.

대체 무드셀라가 누구기에 그 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패역하고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므두셀라'라는 이름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드셀라‘란 ‘창을 던지는 사람’ 이란 뜻입니다. 옛날 고대 부족끼리 서로 싸울 때면 그 마을을 정복하기 위해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그 마을입구를 지키는 창을 던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탁월한 용기와 무술을 가졌기 때문에 적들은 저 창을 던지는 사람만 없어지면 저 마을을 우리가 깨끗이 소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므두셀라’ 라는 이름에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 지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체법이 없는 한 보안법이 폐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결국 보안법이 폐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 지키는 법의 폐지는 곧 무서운 심판을 불러오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녹이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은 것은 이 아들이 죽을 때 이 세상이 홍수로 심판을 받을 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실재로 계산해 보면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노아의 홍수가 있었던 사실을 보면 그 말씀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죄에 대해서 두려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그는 그 아들을 나면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이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라인홀드 니버는 “사람들이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마음대로 살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이런 두려움을 가질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경건은 우리로 세상에 안주하지 않게 합니다.

어떤 분이 청둥오리 농장에 갔더니 사육장에는 청둥오리들이 가득한데 울타리가 하늘 쪽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저러다가 다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주인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렇게 살찐 녀석들이 어떻게 날아갑니까? 저 청둥오리들은 본래 하늘을 나는 오리들이지만 태어나자마자 영양식을 듬뿍 주면 저렇게 살이 찌고 결국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못한답니다." 이처럼 세상 사랑하여 거기에 안주해 살아가게 되면 하늘의 신령한 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주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위대한 인생은 돈과 인기와 권력의 성공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행복하십니까? 평안하십니까? 얼마나 복되십니까? 이제 주와 함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에녹과 같이 가장 행복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