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공 상희 2010. 9. 10. 16:58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요20:19-23

이 시간에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이라는 제목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네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축복의 명령입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선교명령입니다. 세 번째는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 은혜명령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그대로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내적치유를 명령하셨습니다. 이 네 가지 명령 중에서 두 번째의 명령 선교명령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1절에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신 이 말씀에는 선교의 원리에 대한 몇 가지의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1. 선교의 출발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라는 것입니다.

21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선교의 출발이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보여줍니다. “보냄 받았다”는 원어가 사도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사도이십니다. 그래서 히3:1에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특별히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3:17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4:34에도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 6:29에도, 8:42에도, 9:4절에도, 11:42절에도, 12:44절에도, 17:3절에도, 오늘 본문에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이 21장으로 되어 있는데 16장이 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을까요? 요3:16-17이 그 답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한 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선교학적으로 보면 선교를 위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중단되지 않는 한 복음 선교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깊이 돌아보아야 할 것은 진실로 죄인들을 사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선교는 출발조차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남이 하니까 해야 한다고 하니까 좀 흉내 내 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선교의 출발이라는 사실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마음을 구비해야 합니다.

호주 가까이에 있는 뉴 헤볼리시스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3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인데 백인이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지역인데 이 지역에 영국선교사이며 학자인 존 윌리암즈가 1839년 11월 20일에 최초로 상륙했습니다. 그러나 상륙하지마자 원주민들이 나와서 살해해 버렸습니다. 두 번째로 해리스 목사님이 그 뒤를 이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도 상륙한지 3일 만에 살해당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로 존 골든이라는 목사님 부부가 같이 들어가서 원주민과 사귀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오래지 않아서 토인에게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네 번째로 맥 네이슨 선교사가 들어갔습니다. 그도 1년도 못되어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섯 번째로 골든 목사가 들어갔는데 그는 세 번째 들어갔다가 살해된 존 골든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는 형처럼 자기가 죽을 것을 알면서 들어갔습니다. 그는 현지 언어를 연구하고 신약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괴한이 침입해서 그를 처참하게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의 피가 번역하고 있던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순교 장면의 원고를 적셨습니다. 그 후 일곱 번 째 선교사인 로버슨 목사님이 상륙하여 비로소 그에 의하여 30개 섬이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독교화 되었습니다.

왜 그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주신 그 사랑 바로 그 사랑이 선교의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까? 이 사랑이 없다면 선교는 시작할 수도 성공할 수도 계속할 수도 없습니다. 이 선교의 출발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선교의 원리는 예수님이 선교의 모델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21절에 “나를 보내신 것같이” 그랬습니다.
이 나를 보내셨다는 말씀 속에는 선교의 출발과 아울러 선교의 모델이 숨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선교사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하려면 성경 전체는 물론이지만 최소한 복음서의 예수님을 연구하고, 나아가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행적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요즘 새벽마다 사도행전을 읽고 있지만 선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도 단순한 것도 아님을 봅니다. 바울이 할례를 행하고 나실인의 서약을 하고 이런 것 먹어라 먹지 말라 선교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이단 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선교의 모델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에 나셔서 이스라엘의 풍습대로 먹고 마시며 입고 말하며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하심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해 주는 좋은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이 구절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가르치시는 교육사역과 전파하시는 전도사역과 병을 고치시는 치유사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역도 예배만 드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교회들이 예배가 가장 귀한 것이로되 교육을 위해서 모이는 장소가 되어야 하고, 건강을 위해서 모여드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교인들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안타까운 것이 기도도 하지만 사람이 해야 할 일도 가르쳤으면 하는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들이 병원선교도 해야 하고 혹은 병원에서 버림 받은 사람들이 건강함을 얻는 그런 대체의학의 장소도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을 본 받아 이런 여러 특징을 갖춘 사역이 이루어질 때 예수님의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전도하실 때 사람 없어서 전도 못한 적 있었습니까? 진짜 수준 높은 신령한 말씀을 전할 때는 다 도망치고 말았지만 선교를 위한 방법을 활용하셨을 때는 구름 떼와 같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선교의 모델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쉬지 않고 제자들을 기르셨습니다. 우리의 선교도 대중사역과 아울러 본토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3. 선교의 원리는 우리에게도 선교의 명령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21절에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셨습니다.
마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처럼 이 시대 우리들에게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이런 동일한 말씀으로 명령하십니다. 선교는 명령입니다. 마28:20에도 명령형입니다. 명령에는 복종해야 할 의무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교지의 교회만 선교체제가 아니라 어느 교회든지 선교체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들게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내게 주신 명령으로 받고 헌신했습니다.

우리 조선에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토마스목사도 그렇습니다. 토마스 목사는 영국 웨일즈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선교사로 왔지만 산모인 아내가 생활환경이 맞지 않아서 죽었습니다. 그런 청천벽력 같은 충격 속에서도 토마스는 조선에서 온 김자평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선교를 다짐하고 백령도에 가서 주민들에게 성경을 나누어주고 전도를 하고 갔습니다.

다음해 토마스는 미국 상선 제네럴 셔만호를 타고 한강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그만 잘못 해서 대동강으로 들어갔습니다. 만경대에 상륙해서 100여 권의 성경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조선정부에서는 퇴각하라고 명령했지만 이 선원들이 물러가지 않고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정부에서는 화공법을 써서 셔만호를 불태웠습니다. 토마스는 헤엄쳐 나와 성경 한 권을 평양성 수비대원 김충권에게 주면서 “예수 믿으라”고 외치면서 목베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26세였습니다. 지금도 양화진에 가 보면 수많은 외국선교사들이 거기 묻혀있습니다. 그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우리들이 은혜로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자기에게 하신 명령으로 받아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까운 이웃에게 봉사하거나 전도하는 것도 선교입니다. 평생 불교 중으로 살던 어떤 사람은 늦게야 회개하고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자기와 같이 귀신 섬기던 사람에게 전도했습니다. “동생, 동생도 이젠 예수 믿게. 웬 예수냐고 하겠지마는 귀신 믿어 득본 게 뭐가 있는가, 귀신들이 거짓말을 얼마나 많이 하던가, 귀신들은 툭하면 굿하라, 고사 지내라, 기도비 달라, 초하루 보름에 쌀과 돈 들고 오라 하는데 그러면서도 득을 준 것은 없다는 것을 동생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의 전도를 듣고 예수를 믿은 그 사람이 박에녹 집사라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죄인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마음에 있습니까? 우리 모두 예수님의 선교 모델을 본 받아 가라 하시는 주님 명령에 따라 전도하시고 선교하시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