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공 상희
2010. 9. 10. 16:47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슥9:9-10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종려 주일이란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의 왕으로 모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어떤 은혜를 주시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9절에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왕이 누구십니까? 지금 이 시대는 왕정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우리는 왕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이 왕이었으나 시84:3을 보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이처럼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혹시 우리의 마음이나 사단이나 환경이 다스려지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다 하나 아직 내가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내가 왕 노릇하지 말고 겸손히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겸손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온전히 다스려 주십니다. 당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겉옷을 길에 펴며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였던 것처럼 우리 주님을 기쁨으로 그렇게 우리의 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다시 9절에“그는 공의로우며” 했습니다. 여기 공의로우시다는 것은 악을 철저히 척결하시고 의인에게는 상을 주심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상선벌악의 섭리로서 그렇게 하시고 장차 재림하셔서 또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진정 공의로우셔서 벌의 면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이 공의는 더욱 적극적이 됩니다. 즉 진정 공의로우시기에 우리의 죄성까지도 남김없이 성령으로 처리하여 주시고 나아가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로 의로움을 가득히 주시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진짜 공의입니다. 어떤 왕도 이렇게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왜 나는 예수 믿는데 아직도 악이 척결 되지 않고 의로움이 없습니까?” 하시는 분 안 계십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진정 왕으로 섬기는 자세가 부족하기에 그 공의로움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종려주일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만이 아니라 나의 왕으로 받드시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진정 공의로움을 경험시켜 주실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구원을 경험케 하여 주십니다. 다시 9절에 “구원을 베풀며”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침략을 받아 속국이 되었을 때 사사나 왕을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모든 압제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용서 받고 죄에서 해방 받아 내 영혼이 살고 내 영혼이 강해지고 내 영혼이 승리와 영광을 얻고 복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길 때만이 가능합니다. 4.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진정한 평안을 주십니다. 10절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했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별명입니다. 예루살렘은 남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이 남북 이스라엘은 우리 하나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즉 에브라임이 성도의 육체라면 예루살렘은 성도의 영혼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영육 간에 얼마나 고통과 갈등이 많습니까? 성도들의 최고의 싸움은 다름 아닌 성도들의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예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그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성령이 임하여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천국이란 하나님의 정권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정권에 철저히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5.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주십니다. 10절에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했습니다. 여기 바다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땅 끝은 세계입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셔서 온 세상을 변화시키실 것을 예언하심입니다. 이 말씀은 진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왕으로 삼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고 세상을 복음화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왕으로 다스리자 그 만한 능력이 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9절에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우리가 받들어야 왕의 일을 하시는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독특한 왕이십니다. 세상 왕은 강압적으로 사람을 굴복시키고 복종시키지만 예수님은 겸손하신 왕이시기에 우리가 그를 높여 드리고 순복하고 순종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왕으로서의 사역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런 왕을 보셨나요? 그래서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그것을 보여 주시려고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교회의 권세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영적 권세를 가지고는 있으나 성도들이 교회의 권세를 받지 않으려고 세상 밖으로 나가 버리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겸손하여 교회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순복하고 그 다스림에 순종해 주실 때 교회는 권세를 발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순박해서 순복하니까 교회가 벌을 주어도 당연하게 받았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권위는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도들의 순종에 의해서 강하게 섰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이 나를 정복하여 주시기를 기다리지 말고 주님께 스스로 순복하고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을 드려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높여 예배해야 합니다. 다스려 주시도록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처럼 기도하고 찬송하고 왕을 섬겨야 합니다. 왕 섬기려면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생활입니다. 그래야 왕으로서의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처럼 주님을 나의 왕으로 크게 환영하십시다. 내 자리를 주님께 내어 드리고 잘 섬기십시다. 잘 경외합시다. 그래서 진정한 다스림과 변화와 구원과 평안과 능력을 경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