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제목:성경의 질문

공 상희 2010. 9. 10. 16:39

제목:성경의 질문
본문:(막8:27-30)
요지:가장 중요한 근본 질문

요약
성경의 질문은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질문이다(막8:29).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 성령 충만을 받았느냐 하는 질문이다(행19:2). 이것은 영
적인 성장과 삶에 사활이 걸린 문제이므로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또 예수님을 사랑하느
냐 하는 질문이다(요21:15). 세상을 사랑하거나 주님보다 더 사람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
시 버려야 한다. 그리고 얼마나 감사하느냐 하는 질문이다(눅17:17). 과거의 처지에서 구
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잊는다면 타락의 길이니 반드시 감사해야 한다.

설교
우리는 성경에서 여러 가지의 질문을 봅니다. 그런데 이 질문들은 한결같이 중요한 내용의 질문입니다. 그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반드시 상기시켜야 할 중요한 진리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억할 점은 이
질문들이 그들에게만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하는 질문이란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질문에 정확하고
분명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이 문제는 인생의 사활이 걸린 신앙의 근본적인 문제
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럼 성경은 우리에게 어떠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까?
1. 성경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질문합니다.

막8:29에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시는
길에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막8:28) 그러자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라 하든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 가가 가
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은 내 이름을 잊고 내 얼굴을 잊는 한이 있더라도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입
니다. 그래서 세례 문답할 때 이 문제는 빠지지 않습니다. 이 질문의 답 속에 우리의 구원 문제가 달려 있
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는 4대 성인 중 하나다 혹은 선
지자 혹은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혹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이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
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잘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
나의 아들 시몬에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셨습니다.

이 답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나의 인생의 구주요 왕으로 믿고 영접할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
은 내 안에 예수님을 영접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고후13:5에 "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
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과연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시고 나의 왕이시고 예수님이 내 인생의 희망이시고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는 인생임을 믿으십니까? 이 질문을 달리 표현한다면 예수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어 예수와 함께 죽
고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하늘에까지 높이 되어 예수님과 나와는 생명적 운명적 인격적 관계가 있
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제는 지식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할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로 나의 구주와 왕으로 삼고 이 진리 안에 견고히 서야 합니다.

2. 성경은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합니다.

행19:2에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했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이 언제 성령을
받느냐 하는 교리 논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성령 충만을 받았느냐를 물은 것일
뿐 교리적 근거를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했
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 다음 안수할 때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열두 사람쯤 되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성령도 몰랐지만 우리 성도들은 성령에 관해서 많이 듣기도 하고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
데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성령 충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은사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반
드시 성령 충만과 은사를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즉 '성령의 충만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것을 절대적 사
항으로 인식하고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오순절 교단에서는 성령 충만을 성령 세례로 인식해서 이것을
받지 못하면 구원도 없다고 하기 때문에 어찌하든 받으려고 하니까 지식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지만 그러
나 성령 충만에 힘쓰다 보니 결과는 좋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 외의 교단은 신학적으로는 정리가 잘되어
있지만 거기에 사활을 걸고 힘쓰지 않기 때문에 십 년 가도 어린이 신앙에 머물고 있기 쉽습니다.

성령 충만과 은사가 왜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닙니까? 씨를 뿌렸는데 오뉴월이 와도 겨울이라면 문제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성령 충만과 은사의 문제는 각인의 성화와 각인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누리는 축
복과 또한 맡기신 귀한 주의 사역을 이루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역시 사활을 걸고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
다. 성령 충만의 충만이란 우리 영혼의 지정의를 성령께서 지배하사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은 성화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는 성령께서 도우시는 초자연적인 영적인 재능으로 성화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며 신
령한 사역의 귀한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한 말씀과도 같이 우리는 성령 충만과 은사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성령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고 거룩함에 거할 수 없으며 은사를 받지 못하면
주의 일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과연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는 성경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묻습니다.

요21:15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
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말씀을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세 번이나 묻자 베드로는 무슨 뜻인가 근심이 되서 주께서 나를 사랑
하시는 줄 아시나이다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베드로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신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어 우리도 아멘 해야 할 내용이기(고후1:20)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외에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랑은 하나
님의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사랑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으
면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사랑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나를 혹은 내 가족을
혹은 내 취미나 꿈을 더 사랑했다면 그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사랑의 유무를 알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주님의 뜻대로 살아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입니다. 그것은 무엇이 점령했든지 그 점령한 마음대로 그만큼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
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내 말씀대로 살고 있지 않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라는 교훈입니다. 참으로 예수
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매사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를 위해서 살수밖에 없습
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삽니까?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하십니까?

4. 성경은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눅17:17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
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 열명을 깨끗이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러 온 사람은 그 중에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매우 서운해하시면서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
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참으로 당시 한센병이라고 하면 사회에 버림을 받는 이중고 삼
중고의 고통을 가진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살려주니 자기들 바쁘다고 핑계 치며 다 오지 않고 사마리아인
하나만 감사하러 왔습니다.

신령한 측면에서 보면 우리들은 모두 죄로 말미암아 영의 문둥병자였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
적 상태와 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고 상한 것과 터진 것과 맞은 흔적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하나님께서 이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죄병까지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
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송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얼
마나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갑니까?

이 감사는 열 명 중 한 명이라는 부분적인 감사여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으신다
해도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죄악에서 구속하여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로 가득합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넌 후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
했습니까? 이 사건은 우리가 세상에서 구원을 받은 사건의 예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거를 잊지 못하
도록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게 하시고 광야의 초막절을 지키게 하시고 신명기를 주시면서 강조하시고 강조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모르고 여호와가 누구냐고 교만할까 뵈서였습니다. 바
벨론에서 해방되었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시126:2에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했습니다. 이 감격을 잃었다면 회복해야 합니다.

찬송가 185장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너 위해 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를 지은 F. R. 하
버갈 양은 신구약을 원전으로 읽을만큼 천재였는데 그녀가 독일에 유학해 있을 당시 몸이 쇠약해 휴향 차
뒤셀도르프에 있는 학우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집 거실에 걸려 있는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램브란트
의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 그림 밑에 "나는 너를 위해 생명을 주었는데 너는 날 위해 무엇을 주었느냐" 라
는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놀라운 충격을 받고 영감을 얻어 이 찬송시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자기 몸 버려 피 흘려주셨는데 우리는 항상
감사하며 감격 속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시간 이상의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주님은 너희는 나를 어떻게 믿느냐고 물으
십니다. 또 너희는 성령 충만과 은사를 받았느냐고 물으십니다. 또 너희는 그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구원해 주신 구속의 은총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문제는 인생의
사활이 걸린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말로만이 아니라 신앙으로 확실히 대답해 줄 수 있는 복
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