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마리아의 일을 간증하라

공 상희 2010. 9. 10. 12:46
마리아의 일을 간증하라

막14:3-11

주요내용:말씀과 신앙



오늘 읽은 막14장에서 우리는 대단히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이 클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간증하되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과장도 아니고 이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이 어찌 함부로 할수 있는 말입니까? 그것도 예수님께서 말입니다. 과연 마리아는 어떤 신앙을 가졌기에 이렇게 칭찬을 하셨는가? 그리고 우리도 그와 같이 칭찬 받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 되겠습니다.



참고적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설명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는 마리아라면 과연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와 또 그는 어떤 일을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마리아라는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하는 수가 많습니다. 마리아는 모두 여자 아름인데 마리아에는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가 있고, 귀신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도 있고,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또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또 초대교회 다락방의 주인인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또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도 있고, 그리고 로마교회의 마리아라는 신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마리아는 바로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를 가리킵니다.



그 다음, 마리아가 예수님께 한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에 나온 대로 귀하고 값진 향유 한 옥합을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이 한 옥합의  나드향의 값이 5절을 보면  300 데나리온이라 했습니다.

300 데나리온이라면 300일 품삯이니까 100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입니다. 더욱이 이 물품이 자신의 혼인을 위해 평생 준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리아가 한 일입니다. 이 기사가 마26장과 막14장 그리고 요12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종합해서 보면 좀더 자세히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생략하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마리아의 그 귀한 신앙은 어디서 난 것인가? 하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하겠습니다.



마리아의 그 놀라운 신앙은 어디서 났습니까?

첫째로, 그 믿음은 말씀에서 났습니다.



눅10:39을 보면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마리아의 믿음의 비밀입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성경은 롬10:17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자라려면 무엇보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또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권했습니다.



그런데 눅10:39을 좀더 깊이 보셔야 합니다. 더 깊이 보면 마리아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주의 발아래서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에서 은혜받는 노하우가 거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겸손을 가리킵니다. 겸손이 오하우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겸손하지 않으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겸손히 말씀을 들음! 이것이 마리아의 첫째가는 믿음의 비밀입니다.



둘째로, 그 믿음은 주의 사랑을 깨닫는데서 났습니다.



8절에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고난 당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마16:21이라든가 26:2에서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주님 살아계실제 그 몸에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이 부분에서 마리아가 제자들과 다른 점 몇 가지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제자들은 고난에 관한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지만 그 말을 마음을 두지 않았고, 그들은 또 감히 그렇게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묻기도 두려워했으며, 명예심에 사로잡혀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신앙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다 잊어도 이 점은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 대 속의 진리입니다.



그 다음, 마리아는 예수님의 고난이 자기를 위한 고난임을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주님의 그 고통을 생각하며 깊이 깊이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신앙의 발원지입니다. 상식적으로도 바른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를 위해서 죽으신 생명의 은인을 위해서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린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감사해 하고 그를 위해 산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의 신앙을 급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최고의 영적 영양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먹었던 것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영양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만큼 신앙을 성장시키는 영양소는 없습니다. 보통 철이 든다는 말을 할 때 그것은 무엇을 깨닫기 시작할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 믿음도 철이 들어야 하는데 믿음의 철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그 은혜를 깨달을 때 옵니다.



골1:6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했습니다. 깨달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때 견고한 믿음으로 자랍니다. 아름다운 믿음으로 자랍니다. 충성하는 믿음으로 자랍니다. 감사하고 감격하는 믿음으로 자라납니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 그 고난에 동참하는 신앙이 생겨납니다.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이기심은 다 사라져 버립니다. 교만도 다 사라져 버립니다. 게으름과 안일도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영원히 죄에서 멸망할 나를 구원하신 그 주님을 깨달을 때 옥합은 자연히 깨뜨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그 분을 위한다면 옥합이 아무리 귀하고 귀하다해도 무엇이 아까울 수가 있겠습니까? 또 오라버니까지 죽음에서 살려주신 그 분을 위해서 옥합 한 개가 무엇이 그리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마리아가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의 구원을 위하여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세상에 오신 주님을 위해 나의 가장 존귀히 여기는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그 발은 나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셔서 흙먼지 묻은 발이 아니었습니까? 이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신앙의 최고의 비밀입니다.



일본의 하루야마 시게오가 쓴 뇌내혁명이라는 책을 보면 건강과 장수를 위해서는 명상을 하라 했습니다. 이 명상이란 자기의 기분을 가장 좋게하는 생각을 골라서 언제나 그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뇌에서 뇌내 모르핀이 대량 분비되어서 비만을 치료하고 성인병을 물리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명상의 소제가 예수의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은 나의 인격과 나의 사상과 나의 관심과 나의 습관과 나의 인생을 바꿀 큰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명상의 소제가 되어 감사와 찬송과 사랑이 넘쳐날 때 그곳에는 육만이 아니라 영육 간의 기적도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부터 여러분께서는 영육 간의 특수한 보약인 예수님의 사랑의 보약을 끊임없이 드십시오. 근심 걱정 불만 불평 세속 혈기 다 버리고 이제는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명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믿음의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초점은 마리아의 신앙이 아닙니다. 본문의 초점은 그리스도가 그 주제요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이 그 주제입니다. 이 잔치 자체도 예수님을 위한 잔치였습니다.



마리아처럼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주님의 그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앗시시의 프란시스도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몸에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랬기에 그는 부잣집 아들이라는 사치와 특권의 옥합을 깨고 자신의 생애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옥합도 깨어져야 겠습니다. 그럼 옥합이란 무엇입니까? 이 옥합은 자아일수도 있고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 고집 내 행복 내 주장 내 이기 내 취미 내 자존심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이런 것들은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그가 그럴 수 있없던 것도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4-15)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적인 삶을 실천한 것도 다 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마리아를 간증하라는 예수님의 분부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본문 9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분부는 복음전파와 함께 마리아의 이 신앙을 간증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성숙하고 참된 신앙의 표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표본을 본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복음과 함께 믿음의 샘플을 반드시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잘 익은 신앙의 첫열매였습니다. 고난주간이 다가오지만 이번에는 나를 위해 고난받으신 주님을 한 번 깊이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매일 매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의 신앙의 비밀을 깨달으셨을 줄로 믿습니다. 그 비결은 겸손히 말씀을 듣는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눈물도 없고 감사도 없고 희생도 없고 무정하며 자라지 않고 주의 고난에 동참할 줄 모르는 이유는 이것을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복음을 통하여, 혹은 성례를 통하여, 혹은 간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전파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마리아를 본 받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모두가 마리아와 같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마리아처럼 신앙이 무르익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를 위한 삶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모두 나를 위해 고난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