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제목:예수님의 피권세

공 상희 2010. 9. 10. 12:45
제목:예수님의 피권세

본문:(히9:13-14)

주요내용:속죄의 확신



이 시간에는 '보혈의 공로'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능력 있는 것이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만큼 큰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보혈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시간에는 이런 측면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보혈은 우리를 영원히 의롭게 하신 능력입니다.



히9:12에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했고, 히10:10에도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했습니다.

여기 영원한 속죄라는 말씀과 단번에 그리고 거룩함을 얻노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까지도 모두 지불하신 영원하신 대속의 피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그러므로 롬8:33-34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성도들은 근본적으로 모두 죄 값이 청산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 영원토록 보혈을 믿고 어떤 순간에도 자기를 정죄하지 않을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자범죄도 용서합니다.



요일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활 속에서 범죄한 것이 있다면 그 때마다 하나님께 자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자백과 참소를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자백은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요 참소는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속죄함 받은 자로서 회개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보혈은 죄과만이 아니라 죄성까지도 씻어 줍니다.



히9:14절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했습니다.

예수님 보혈 공로의 놀라움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용서함에 그치지 않습니다. 죄성까지도 씻어 줍니다. 슥13:1에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하셨습니다.

찬송가 202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이 찬송을 보면 보혈은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한다, 시험을 이기는 승리된다, 육체의 정욕도 이긴다, 정결한 마음도 얻게 한다, 눈보다 더 희게 한다, 부정한 모든 것 말히신다, 날마다 나에게 찬송을 준다는 등의 가사를 보게 됩니다. 이 가사를 보고 보혈이 어떻게 속죄 그 이상의 기능이 있을까 의아해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 뿐 아니라 보혈은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까지 변화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보혈 공로로 말미암은 양심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성화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화란 심령의 새 생명에 의해 되는 것인데 그 가책된 양심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의 힘이 번번히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보혈확신이 성화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는 축복의 능력입니다.



히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낮에도 말씀드렸지만 보혈 공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율법 아래 있으면 영적으로만 아니라 육신적으로도 저주 아래 있게 됩니다. 보혈공로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보혈 없이 축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갈3:13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 받고 살려면 보혈공로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보혈공로에 서서 하나님도 나를 정죄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정죄하겠는가 하면서 모든 저주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극한 평안함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온갖 저주도 다 물러 가고 축복이 찾아옵니다.



이처럼 예수의 보혈은 악마까지도 물리치는 능력입니다.



계12:11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했습니다.

심령에 믿음으로 보혈 바르고 평안하면 어떤 사탄도 틈타지 못합니다. 마귀는 각인의 심령에 어둠과 참소와 각종 마음의 상처를 줄 뿐 아니라 그것을 타고 들어와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용서의 확신과 내적 치유가 이루어지면 마귀는 쫓겨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기도해서 조금 낫게 하면 다시 들어오고 다시 들어옵니다. 양심의 가책이 심하면 왜 답답해집니까? 영이 혼탁해졌기 때문입니다. 즉 사단이 틈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혈공로로 말미암는 완전한 자유를 알아야 합니다. 롬4:5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하신 대로 아직 성화 되지 못했을지라도 누리는 양심의 자유를 알아야 합니다. 이 양심의 자유를 누리면 사단이 거할 곳을 찾지 못하고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은 화평케 하는 능력입니다.



엡3:13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피는 하나님과 인간, 유대인과 이방인간, 사람과 사람간의 담을 헐었습니다. 혹시 하나님이 안 만나진다면 보혈공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평안 찾아오면서 만나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 혹시 대인 관계가 잘 되지 않는다 해도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으십시오. 요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보혈의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만이 아니라 사람끼리도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심령에 성령이 활발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모두 한 영 한 성령 한 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영이 통하고 생명이 통하고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피 공로만 믿는다면 인종 민족 지방 남북까지도 다 하나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보혈은 기도 응답의 비결이요 능력입니다.



요일3:21-21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양심의 자유를 누리면 입만 벌려도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양심이 정죄 상태에 있으면 구해도 받지 못하고 반대로 율법의 저주만 불러옵니다. 신비한 것은 보혈 공로을 모르면 거룩한 것을 접하면 접할수록 더 사망이 역사합니다. 보혈 공로 없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거나 교회나 성도나 하나님의 일이나 기타 거룩한 것을 가까이 하면 더 가책이 느껴져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혈 공로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물론 구하지 조차도 못합니다.



그런가하면 보혈 공로는 성령의 일군이 되게 합니다.



히9:21에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했습니다.

마치 성막에서 성령 받은 장인들이 잘 만든 기구라고 할지라도 피로서 정결케 하지 않고서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보혈의 공로를 충만히 누리지 못하면 성령의 종으로 쓰임 받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심령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깃들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심령에 평안이 깃들 날이 없으니 어떻게 성령의 종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보혈의 확신은 만사의 기초입니다.



우리의 심령은 보혈의 확신에 설 때만이 강건할 수 있습니다.



롬14:22에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우리는 욥을 통해서 완전주의 양심이 갖는 비참함을 봅니다. 욥은 잔치한 후마다 언제나 속죄제를 드리며 극도의 성결을 추구했습니다. 이처럼 완전주의 양심은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자기의 의를 체크하며 회개합니다. 회개가 잘못되었다란 뜻이 아니고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완전주의 양심은 불필요할 만큼 자기 성찰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심령에는 크게 범죄한 일없어도 온갖 사단의 참소와 영육간의 시련 속에 빠집니다.

그래서 욥이 원수들에게 귀한 재산을 빼앗겼듯이 정죄 의식은 마음속의 귀한 평안과 은사와 부요와 각종 아름다운 보배들을 사라지게 합니다. 또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음 같이 성령의 능력과 열매마저도 잃고 맙니다. 그 뿐 아니라 더 심해지면 욥이 심한 피부병에 걸려 괴로워했듯이 그 심령은 답답하고 아프고 썩어 문드러지고 영적으로 암울하기 그지없고 괴로워서 견딜 수 없어집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욥을 한사코 정죄하려 한 것처럼 죄 아닌 것조차 죄로 여겨지고 그 심령은 소망이란 찾을 수 없는 절망 그 자체가 됩니다. 이것이 완전주의 양심이 당하는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는 완전주의에서 벗어나 보혈공로를 믿는 생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욥의 회복의 비결은 욥기에서 힌트만 보여줍니다. 그 힌트란 하나님께서 욥의 자기 의를 주장함을 책망하심과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용서를 빌었다는 두 가지 입니다.

여기서 엿보이는 것은 즉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예비하신 의여야 하며, 욥의 조건 없는 용서는 곧 그가 하나님 앞에서 조건 없는 용서를 받았음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보혈의 공로를 시사하는 교훈입니다. 혹시 영육 간에 욥과 같은 환난 속에 있습니까? 이 시간부터 영원토록 보혈 공로를 믿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환난은 사라지고 상한 심령은 치유되고 저주도 사라지고 갑절의 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정죄하지 않으시는데 왜 자기를 정죄합니까?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예수 보혈을 늘 강조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의 공로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보혈 공로를 믿고 양심의 참된 자유와 예비하신 모든 복락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