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
보혈을 누리자
공 상희
2010. 9. 10. 12:40
보혈을 누리자 (히9:13-14) 이 시간에는 ‘보혈을 누리자’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 한 주간 후면 고난 주간이 다가옵니다. 우리를 위해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신 우리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이 고난 주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보혈을 다시 한 번 음미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 축복이 많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축복만큼 큰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한 것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면서 주님의 보혈을 받아 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받아 누립니까? 믿음으로 받아 누립니다. 우리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을 때 우리는 참으로 귀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럼, 믿음으로 누리는 보혈의 공로는 무엇일까요? 1. 우리를 영원히 의롭게 하신 은혜입니다. 히10:10에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거룩함을 얻노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 값을 근본적으로 다 갚으신 영원하신 대속의 은혜임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죄를 짓는 죄인이지만 주님의 공로로 의인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4:5-8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아직도 경건치 않고 범죄 하지만 그래도 주님의 공로로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롬8:33-34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보혈의 공로를 믿고 어떤 순간에도 자기를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상태나 행위를 보지 마시고 주님의 공로만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가운데서도 보혈 공로에 서서 자기를 정죄하지 않을 때 진정한 용서를 누리게 됩니다. 2. 주님의 보혈 공로로 자범죄에서도 용서를 받습니다. 요일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범죄한 것이 있다면 그 때마다 하나님께 자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자범죄에서 어떻게 용서를 받습니까? 이 역시 믿음입니다. 진실로 자백했다면 하나님께서 보혈 공로로 용서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혈을 체험하려고 하니까 못 누립니다. 보혈을 느끼려고 마시고 용서의 믿음을 갖고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양심에 자유와 평안이 옵니다. 그러나 자백과 참소를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자백은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요 참소는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속죄함 받은 자로서 회개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그런데 보혈은 죄성까지도 씻어 줍니다. 히9:14절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죄를 용서함에 그치지 않습니다. 죄성까지도 씻어 줍니다. 슥13:1에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죄 용서의 확신을 가질 때 양심에 평화가 와서 성령이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양심이 거리끼면 은혜는 소멸되고 맙니다. 이렇게 보혈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까지 변화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보혈 공로로 양심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성화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화란 새 생명으로 되는 것인데 그 가책된 양심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의 힘이 번번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보혈확신이 성화의 기본입니다. 4.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만들어 줍니다. 히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보혈 공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율법 아래 있어 나는 죄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육 간에 저주 아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보혈의 공로를 믿고 죄의식을 버림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날 때 저주는 사라지고 축복이 옵니다. 이렇게 보혈 공로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갈3:13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주의 죽음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러am로 은혜와 복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보혈 공로를 믿고 당당히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 받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도 정죄하지 않는데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보혈 공로 믿고 정죄에서 풀려 날 때 저주는 물러가고 축복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욥을 보세요. 욥은 사탄의 참소로 말미암아 온갖 축복과 자녀와 건강까지 빼앗겼습니다. 이처럼 정죄 의식은 마음속의 귀한 평안과 은사와 부요와 각종 아름다운 보배들을 사라지게 합니다. 또 성령의 능력과 열매마저도 잃게 합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심령은 답답하고 아프고 썩어 문드러지고 암울하기 그지없고 괴로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욥을 한사코 정죄하려 한 것처럼 우리 심령은 정죄의식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나 욥이 완전주의에서 벗어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듯 예수 공로 의지할 때 우리 영혼은 모든 시험을 다 이기고 은혜와 생명과 평강과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처럼 보혈을 믿는 성도에게는 영육간의 복이 찾아옵니다. 5. 예수님의 보혈은 악마까지도 물리치는 능력입니다. 계12:11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했습니다. 심령에 믿음으로 보혈 바르고 평안하면 어떤 사탄도 틈타지 못합니다. 마귀는 각인의 심령을 먼저 정죄하고 그것을 타고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확신과 양심의 자유를 가지면 마귀는 쫓겨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심하면 왜 답답해집니까? 사단이 틈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혈공로로 양심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롬4:5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하신 대로 아직 성화 되지 못했을지라도 보혈로서 양심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이 양심의 자유를 누리면 사단이 거할 곳을 찾지 못하고 나가게 됩니다. 6. 예수님의 보혈은 화평함을 누리게 합니다. 엡3:13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피는 하나님과 인간, 유대인과 이방인간, 사람과 사람간의 담을 헐어버립니다. 혹시 하나님이 만나지지 않는다면 보혈공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안 찾아오면서 만나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 혹시 대인 관계가 잘 되지 않는다면 역시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으십시오. 보혈은 하나님과만이 아니라 사람끼리도 하나가 되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심령에 성령이 활발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모두 한 영 한 성령 한 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영이 통하고 생명이 통하고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피 공로만 믿는다면 인종 민족 지방 남북까지도 다 하나 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입니다. 7. 예수님 보혈은 기도 응답을 누리게 합니다. 요일3:21-21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양심의 자유를 누리면 입만 벌려도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양심이 정죄 상태에 있으면 하나님을 가까이 못하고 기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혈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심령의 사망이 역사하지 않고 기도가 열립니다. 8. 보혈 공로는 능력을 받아 일하게 합니다. 히9:21에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했습니다. 성막에서 모든 기구들은 피로서 정결케 한 다음에 사용했습니다. 이와 같이 보혈의 공로를 누리지 못하면 성령의 종으로 쓰임 받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심령에는 정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가 깃들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심령에 평안이 깃들 날이 없으니 어떻게 능력의 종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보혈의 확신은 만사의 기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전히 쓰러지고 넘어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공로로 의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사십시오. 보혈 공로를 맘껏 누리십시오. 그래서 모든 저주는 다 사라지고 승리와 생명과 평안과 축복의 심령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