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 신앙 (행 3:1~10)
앉은뱅이 신앙 (행 3:1~10)
이 시간 “앉은뱅이 신앙”이라는 제목입니다. 사람이 앉은뱅이로 산다는 것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요?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나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사람의 몸은 조금만 쓰지 않아도 굳어져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으니 몸은 굳어질 대로 굳어져서 재활의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죽기를 구하였겠지만 죽지도 않고 그래서 그가 살기 위해서 한 일은 구걸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행이 불가능해 걸어 다닐 수 없으니 사람들이 많이 출입하는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이라는 곳에 앉아서 구걸하며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에게 소원이 있다면 저 사람들처럼 마음껏 걷고 뛰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생활도 영적으로 앉은뱅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나면서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영적 거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계3:17에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했던 것처럼 영적인 불구자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정상적인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 갈망하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3절에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앉은뱅이가 추구하는 것은 물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5절)았습니다. 그가 날마다 걷기를 갈망했다면 재활 혹은 휠체어라도 타고 움직일 수 있었겠지만 그가 거지로서 지구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물질을 구하는 한 그의 인생은 달라질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앉은뱅이 출석은 잘했습니다. 2절에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에” 출석했습니다. 자신이 오지 못하면 남이 메고 와서라도 주기 때문에 빠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것은 단지 돈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이 땅의 것이라면 진정한 영적 부요는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구해야 진정한 변화와 부요가 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찬양이 있듯이 생명이 되신 예수님은 구하지 않고 세상 것만 구한다면 언제나 영적 거지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예수를 구하는 것이 직통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좋지만 바로 하나님을 구하세요.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것을 구하면 구할수록 늦습니다. 세상을 구한다면 더욱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 없다고요? 자신을 속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이 다들 숨겨져 있습니다. 믿음 없는 체하지 마세요. 그 소원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엘리야의 작은 두름 조각이 큰비되어 쏱아집니다.
렘29:12-13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셨습니다. 사40:31에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2. 교회생활의 기본이 잘 되어야 합니다.
3-4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나를 보라 하지 않고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겸손일가요? 사역의 협동성을 보여준 걸까요? 그것도 되지만 저는 거기서 교회를 봅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 불과 두 사람이지만 최소 단위로서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지체된 우리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여기서 교회생활의 기본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생활의 기본이 잘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할 때 잘 배워야 합니다. 적당히 배우지 마세요. 교회생활은 새벽기도회부터 배워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새벽기도회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은 충실한 영적생활과 체험은 물론 다른 모든 것에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부터 나오신 분들은 다들 충실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전도를 해도 새벽기도부터 나오라고 전도해야할 것 같습니다. 대인기피증에 있는 사람도 새벽이라면 잘 나올 수 있습니다.
교회를 무시하지 마세요.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교회 없으면 누가 진리를 보존하고 가르칩니다. 교회가 없으면 어떻게 신앙이 유지되고 발전합니까? 전도한 사람을 어떻게 관리하고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교회생활 잘해야 합니다. 주일성수 잘해야 합니다. 교인의 의무도 잘해야 합니다. 교회생활 소홀하고 영혼이 잘된 사람 보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한 부분 이상씩 맡아서 봉사해야 합니다. 은퇴가 하나님의 일까지 은퇴인 줄 아세요? 더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뭔가를 보시는데 그것의 대부분이 교회생활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잘 따르시기 바랍니다.
6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했습니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은금은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드립니다. 구원의 말씀, 은혜의 말씀, 생명의 말씀, 축복의 말씀, 형통의 말씀을 드립니다. 말씀대로 순종해 보세요. 그대로 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믿음으로 살아보세요. 반드시 기적은 나타나고 말 것입니다.
3. 안 되더라도 연습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하려 해도 잘 안되면 강제로라도 해야 합니다. 7절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 었다 했습니다.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외쳤지만 그 사람은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몸도 굳고 마음도 굳었습니다.
걸어라.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러나 몸도 굳었고 마음도 굳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수십 년이니 굳어도 너무 굳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달려가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잘 안 된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적성에 맞지 않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잘되고 적성에 맞는 사람 없습니다. 반복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적성을 낳아요. 전문가를 만듭니다. 사람의 인체는 하루만 순종해도 그 리듬이 어김없이 다음날 나타납니다. 오늘 몇 시에 일어나면 다음날 그 시간이 되면 깨집니다. 오늘 몇 시에 식사를 했다 하면 다음날 그 시간이 되면 식사와 관계없이 위에서 소화액이 나옵니다.
며칠만 힘써 하면 우리 몸도 마음도 도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쉽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4:7) 했습니다. 안 된다. 불가능하다. 하기 싫다. 어떻다. 다른 잡념 다 버리고 말씀 한 마디라도 힘써 반복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적 앉은뱅이에서 구제되는 기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8절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 하였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다니 얼마나 감격입니까? 율법에 의하면 신체적 결함이 있으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앉은뱅이의 수십 년간의 소원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삶의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은 자꾸만 퇴화되려고 합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약해지고 굳어집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목표가 없으면 약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다시는 앉은뱅이로 가지 않습니다. 이 때 가장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나아가 사명을 위해 살아가십시다. 언제부터선가 교회에서 선교가 사라졌습니다. 해외선교만 선교가 아닙니다. 지역과 민족을 위해서도 해외선교와 똑 같이 해야 합니다. 마치 선교사들이 비복음권에 가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불신자들이 교회 나오게 하듯이 여기서도 똑같이 계획도 짜고 예산도 짜고 시행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인이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보내는 선교사, 물질의 선교사, 기도의 선교사도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고 예배와 선교에 최산을 다할 때 다시는 영적 거지로 전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도해야할 제목이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백성들이 너무나도 타락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방송언론의 타락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는 죄가 죄로 보이지 않을 만큼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어떤 방향에서 나올지 모르는 위기에 있습니다. 우리와 이 나라가 살 길은 회개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부터 앉은뱅이의 신앙에서 벗어나 나라와 민족의 죄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처럼 앉은뱅이 신자로 사시렵니까?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시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갈망하고 교회 중심의 생활과 성경 말씀을 반복하여 힘쓰고 노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서 진정한 영적 건강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