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행 1:4-5)
이 시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사도들에게 당부하신 말씀 중 하나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왜 떠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 답은 그 다음 말씀에 이어집니다.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령의 능력을 받고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신앙생활도 불가능하고 하나님의 일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꼭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려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을 받는데 왜 예루살렘이어야만 할까요? 예루살렘 아니고는 성령 받기 불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어디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에는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안디옥에서도 가능한 것이고 고린도에서도 가능한 것이고 한국에서도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시는 것이지 특정 장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주님께서 특별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신 이유는 무얼까요? 이 말씀은 사2:3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언을 이루시기 위함도 있지만, 교훈적으로는 예루살렘이 갖는 놀라운 상징성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예루살렘이 갖는 그 상징성만 가지고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성령 충만 받는 이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상징에서 본 예루살렘의 관점에서 성령 충만의 방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럼 성령을 어떻게 받는 것일까요?
1. 예수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예루살렘은 복음의 상징입니다. 마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다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보통 장소가 아닙니다. 모라아산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이 장소는 이미 1500년 전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드리라고 하신 선택의 장소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름 아닌 이곳에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입성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지내진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거기에 있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이시고,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대로 그 때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하늘에 앉혀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나의 구주,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다시 사신 예수를 나의 주로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복음을 믿는 것이 성령 받는 일의 가장 기초가 됩니다. 예수 믿는 자에게 성령이 계십니다. 마음에 예수님은 계시는데 성령은 없다? 예수 안의 성령이라 하셨어요. 삼위일체가 함께 하십니다. 요일2:23에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를 나의 주로 믿고 높이고 그 발아래 겸손하면 성령의 은혜가 강물과 같이 넘칩니다. 겸손은 은혜를 받는 비결입니다. 그냥 겸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로 삼고 겸손해야 합니다.
2. 늘 예배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보통 장소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출34:23에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매일 번제가 드려지고 온 종일 온갖 제사와 영광이 돌려지며 일 년 3차 온 국민이 온갖 아름다운 것을 다 가지고 모여들어 예배하고 춤추고 교제하며 축하하는 신앙의 성지입니다.
예루살렘 같이만 살면 됩니다.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고 주일과 공적예배에 예배하고 생활 속에서 날마다 찬송하고 살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다르게 성령 받는 것 아닙니다. 늘 겸손과 높이는 마음으로 경배하세요. 그러면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와 찬송에 힘썼습니다. 구약에는 성령의 은혜를 여러 아름다운 곡식과 과일에 비유했습니다. 그렇다면 심지 않고 어떻게 거두겠습니까? 날마다 예배하는 것이 심는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3.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그 성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던 장소입니다. 합2:20에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했습니다.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거하실 성전을 지었습니다(왕상8:13).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신약시대이지만 예루살렘이 어떻게 보통 장소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불신자와 성도가 사는 집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없이 사는 집과 날마다 찬송하며 사는 집이 어찌 같겠습니까? 우리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영적 에너지가 배어 있습니다. 예배하며 사는 집은 들어만 가도 은혜의 기운이 훈훈합니다. 우리는 출타해도 항상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리의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땅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얼마나 시험이 많았습니까? 핍박도 핍박이려니와 왜 그렇게 마귀의 시험이 많았는지 예수 믿을 수도 전도할 수도 은혜를 갈망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 예수 못 믿겠다고 했습니다. 영적 불모지였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은혜 체험하겠다고 함부로 혼자 산기도 하다가 시험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장소 무시할 것 아닙니다. 그러나 수천 년간 하나님께 영광 돌렸던 예루살렘은 은혜 받는 장소로서 이미 크게 한 점 먹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받으려면 장소를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교회를 가까이 하라는 교훈입니다.
4. 전투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125:2에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라고 했던 것처럼 예루살렘은 천혜의 요새지입니다. 산 위에 세워졌고 3면은 절벽이고 북쪽은 산입니다. 강한 군대도 공격하기 어려운 성이었습니다. 성만 강한 것 아닙니다. 사람도 강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대대로 침략을 받는 성이라 예루살렘의 거주자는 일생 성을 지키며 싸워야 했습니다. 목숨 걸지 않고는 예루살렘에 머물 수 없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본래 그런 곳입니다.
느헤미야 11장을 보면 예루살렘에 거주자가 나오는데 특별한 사명과 특별한 각오 없이는 예루살렘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대대로 침략을 받는 성이었기 때문에 보통 각오 없이는 거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핍박도 강한 곳이었고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목숨 걸고 신앙생활하는 교훈도 됩니다.
바로 이런 마음 가지고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한 발 세상에 한 발 적당주의 믿음으로는 은혜 받을 수 없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투철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용사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섬겨야 은혜 충만 받습니다.
5. 세상보다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거룩한 성이라 했습니다. 구약에서도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아내로서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개념은 계 21장에서 새 예루살렘 어린양의 아내로 발전합니다.
가장 아름답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신부된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그 미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결과 사랑과 순복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신부가 아닙니다.
약4:4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했습니다. 축구도 좋습니다. 그러나 축구가 우상이 되선 안 됩니다. 돈도 좋습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 멀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살면 은혜 생활할 수 없습니다.
나는 예루살렘을 떠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울 왕의 신하 시므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다윗을 반역자로 간주하고 압살롬의 난 때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다윗이 승리하자 시므이는 다윗에게 와서 용서를 구하며 살려 달라 할 때 다윗은 자비를 베풀고 신하로 삼는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살아 있을 때만큼은 그에게 벌주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죽은 후에는 책임을 묻도록 솔로몬에게 유언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특이한 판결을 내립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한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시므이는 그 명령을 3년 동안 잘 지켜오다가 종이 도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그를 잡으러 예루살렘을 떠나가는 실수를 범합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그는 브나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왕상2:36-46).
어떤 일이 있어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하는데 떠났습니다. 우리는 시므이 같은 죄인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은혜 받지 않으면 우리 영이 죽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예루살렘을 떠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핑계 저 핑계 충분히 이유가 되더라도 진리 떠나지 말고 신앙생활 잘해야 합니다. 은혜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지순례한다고 성령 받는 것 아닙니다. 신앙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복음의 예루살렘, 교회의 예루살렘, 예배의 예루살렘, 충성의 예루살렘, 거룩의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신앙생활 잘하여 약속하신 성령의 은혜 충만히 받아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하는 증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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