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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모음] 새벽예배 설교 모음

공 상희 2010. 5. 29. 07:23

[설교모음] 새벽예배 설교 모음

 

본문 : 슥 1:1-6
제목 : 복을 받고 살려며는  (이윤근 목사)

서론

복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받는 일이라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합니다. 그럼 진정한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시편 저자는 말하기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시 73:28)하였습니다.

1. 나쁜 행위를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4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였습니다.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2)하였습니다. 스가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가리키는 것입닌다. 그들은 죄 값으로 바벨론으로 잡혀 갔으니 이제 후손들은 그와 같은 죄를 지어서 선조들과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지은 죄로 고통을 당했다면 자손들은 회개하여 새로운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즉 선조들의 전철(前轍)을 밟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복을 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조들의 좋은 점은 본받아야 하지만 나쁜 점은 본받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 회개해야 합니다.

본문 3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고 사는 비결은 무엇보다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기본 진리는 회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이 땅에 오직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막 1:15, 마 4:17).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돌아가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주시고(행 2:38) 기쁨을 선물로 주시며(행 3:19) 물질과 건강을 주십니다(욥 42:6, 10). 그러므로 복을 받고 살고 싶으면 먼저 회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회개는 만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야 합니다.

본문 3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거리를 멀 게 하셨다가도 회개만 하면 가까이 하셔서 많은 복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조상들이 지은 죄를 다시 짓지 아니하고 회개하고 바로 살려고 노력하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세상 끝날 때까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은 말씀대로 살아서 복을 받아야 합니다.

결론

스가랴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비교적 상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원칙을 뛰어 넘어서 복을 받는 방법이없고 원칙대로 해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복을 받고 살고 싶으면 나쁜 행위는 본받지 말고 잘못은 철저하게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도록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로 돌아오시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 슥 2:10-13

제목 : 기뻐하라

서론

사람은 다른 사람이 기뻐하라고 해서 기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기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뻐할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할 줄 압니다. 바울사도는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지만(살전 5:16)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합니다(빌 4:4). 그렇습니다. 기뻐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하게 있어야 할 줄 압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기뻐하라고 하지는 아니합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기뻐하라고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메시야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0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하였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장차 메시야로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을 내다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뻐하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육신을 입히셔서 베들레헴으로 보내시고 그로 인하여 천국의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또 그의 재림으로 인하여 그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즉 약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여 함께 계시면서 구원사업을 이룩하시겠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니 기뻐하라는 것입니다(요 1:14, 계 21:3-4).

2. 메시야로 구원 받기 때문입니다.

본문 11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서 거하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하였습니다. 이는 신약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심은 권세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니고 그가 죽으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로 인하여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그로 더불어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롬 8:16). 즉 모든 백성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러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임을 알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3. 메시야로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본문 12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하였습니다. 이는 메시야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천국 운동을 전개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모든 좋은 것을 거져 주시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시는데(고전 4:7) 심지어는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시는데 그 외에 무엇인들 아끼겠다는 것입니다(롬 8:32). 그렇습니다. 우리는 만가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송한 것은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보답하는 부분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해야 합니다(시 116:12).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고 오늘날의 성도들도 받은 은혜를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예수를 믿으면서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로 찾아오셨다는 것을 알고 기뻐해야 하겠고 그로 인하여 구원을 받아 영생복락에 들어가게 됨을 기뻐하며 메시야로 인하여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기뻐하고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본문 : 슥 3:1-5

제목 : 메시야를 통한 승리

서론

성도들이 싸울 싸움의 대상자는 혈과 육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악령들이라고 하였습니다(엡 6:12).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다가 중단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중단시키지 아니하시고 완성하게 하신다는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을수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성도들이 이기게 됩니다.

1. 하나님께서 사단을 물리쳐 주십니다.

본문 1-2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희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대표인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건 것은 판단을 받기 위함이요 그의 보호하심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의 보호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메시야는 사단을 책망하여 물리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불러서 의롭다고 인정하신 하나님은 끝까지 도와서 천국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건지신 하나님은 끝까지 사단의 방해에서도 건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역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성령의 역사만은 못하기 때문에 성도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2. 죄와 싸워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본문 3-4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은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씻음받고 구원받는데는 조금도 지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듯이 죄로 더러워진 몸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피로 죄에서 해방되고 사망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죄가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의 피는 우리들의 죄를 흰눈과 양털같이 희게 하시는 것입니다.

3.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본문 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죽을 때까지 깨끗한 생활이 필요합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히신 하나님께 깨끗한 관까지 씌워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용서받았으면 용서받은 기쁨으로 더욱 상급까지 탈 수 있도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만 맡기시면 쓰러지고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약한 저희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부형 같이 항상 함께 하시면서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생의 신앙생활에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전투적인 생활입니다. 가난과도 싸워야 하고 질병과도 싸워야 하며 물질과도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와도 함께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선한 싸움을 싸워서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후에 면류관을 받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딤후 4:7-8). 우리들도 예수를 믿어 그의 도우심으로 마귀와 싸워서 승리할 줄로 압니다.

 
본문 : 슥 4:1-3

제목 : 교회가 빛을 발휘하려면

서론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며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등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본문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리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등대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신약의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등대(燈臺 : 원근 따위를 알리기 위하여 높은 탑 꼭대기에 등실(燈室)에 강력한 광원을 베풀어 놓은 장치)는 밝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의 빛을 밝히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교회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등대의 사명은 불을 밝히는 사명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항해하는 배의 길을 인도하여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등대 구실을 제대로 못하면 자체의 빛을 발휘못하는 것으로끝나지 않고 항해하는 배가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사명이 크다 하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세상에서 교회가 교회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인생길을 가는 사람들의 방향을 잘못 인도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 등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본문 2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하였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등잔의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그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취게 하여 저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도리게 하라"(마 5:14-16)하였습니다. 교회는 즉 성도들은 착한 행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서 빛을 발휘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말과 행동은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비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 기름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본문 3-6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하였습니다. 주발은 기름을 저장하는 그릇이고 감람나무는 기름의 공급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름의 공급원인 감람나무가 없으면 등잔에 불을 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나 교회가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빛을 발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도우심으로 착한 행실을 해서 빛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엡 5:18).

결론

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고전 10:31).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착한 행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본문 : 슥 5:1-4

제목 : 날아가는 두루마리

서론

인간은 매우 어리석고 영적으로 우둔하기 때문에 경건한 노력이 없이는 주님과 신령한 은혜를 체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스갸라 선지자는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는 중에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았는데 그 두루마리는 온 지면에 행하는 저주라고 하였습니다.

1. 도적질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본문 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하였습니다. 도적질은 하나님의 계명인 8계명을 범하는 것이요 사람에게는 해를 끼치는 고약한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남의 것을 아끼고 그 소유권을 침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계명을 어기고 남의 소유를 몰래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가중한 행위는 도저히 용납될 수도 없고 용납이 되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2.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본문 4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하였습니다. 이는 위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며 십계명 중 제3계명을 범하는 죄악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속이는 것은 사기에 해당한 것이므로 세상 법에서도 용납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도 용납될 수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저주만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말하기를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계 22:15)하였습니다.

3. 저주 받은 자는 끝장을 내버립니다.

본문 4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적질하는 자와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편이 글대로 끊쳐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와 같은 죄를 짓는 자의 집은 아주 끝장을 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도 죄를 짓고 사람에게도 죄를 지은 자들은 그 집에 있는 나무와 돌까지도 폐허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범죄자의 온 가족을 제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멀리하여 저주를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계시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목적은 성전 재건 공사에 있어서 원수들의 방해로 인하여 중단한 것을 다시 착수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계명을 범하여 도적질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는 자들의 가족 및 본인까지도 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 슥 6:1-15

제목 : 하나님의 섭리

서론

하나님의 섭리는 창조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뜻을 완전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즉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떄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 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사 43:1-3)하였습니다.

1. 놋산과 같이 든든합니다.

본문 1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 산은 놋산이더라"하였습니다. 네 천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집행하는 천사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두 놋산 사이라 하였으니 감람 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오시는 분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메시야를 보내어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고 그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를 마련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하간 하나님의 섭리는 변함없이 차근차근 이루시는 것입니다.

2. 섭리를 방해하는 자를 물리치십니다.

본문 6-8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릉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하였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그 지시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도록 적과 싸워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진멸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게 하십니다.

본문 9-15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사로잡힌 자 중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었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취하되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서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하였습니다. 이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 전을 건축하다가 중단하였던 것도 다시 완성하시고 신약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원수들이 예수님을 죽이면 되는 줄로 알지만 그렇게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는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섭리는 결코 마귀의 방해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완성은 이룩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의 섭리는 너무나도 든든하여 놋산과 같기 때문이고 대적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물리치시고 결국은 그 뜻대로 이룩되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 : 슥 7:1-7

제목 : 무엇을 위한 금식이냐

서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선지자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그 질문 내용이 금식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칠십년 동안 오월에 울고 금식하고 칠월에 금식을 했는데 그대로 계속해야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금식한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굶고 울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금식에 대하여 바른 인식을 가질 필요성을 본문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1. 유대인들의 금식은…

본문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하였습니다. 이는 금식은 했지만 금식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이 아니였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오월의 금식은  성전 훼파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바벨론으로 잡혀간 유대인 포로들이 금식한 것이고 칠월의 금식은 바벨론 군대로 말미암아 유대 총독 및 남아 있었던 유대인들이 살해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금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바람직한 금식이 아니라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금식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금식이 인간의 욕구불만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2. 진정한 금식은…

본문 6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얼마간 금식을 하며 ㄴ다른 때의 모든 불의한 생활을 덮어주고 깨끗하게 해 주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의 영광 중심해서 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31). 그런데 유대인들의 금식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전시 효과를 노리고 금식을 하였습니다(마 6:16-18). 그리고 금식하면서 생활은 엉망으로 하여서 책망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사 58:3-9). 그래서 진정한 금식은 음식을 굶는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생활이 더욱 중요함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금식은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니느웨 백성들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죄를 자복하는 것이며 요엘 선지자가 기록한 것처럼 형식으로 하지 않고 진정으로 죄를 자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야 합니다(욜 2:12-17). 그래서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을 향하여 회개함과 기도하기 위함의 목적에서만 하는 것입니다.

3. 금식보다 중요한 것은

본문 7 "여호수아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 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었느니라"하였습니다. 금식을 하는 자들이 금식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시한다면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금식은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는 자기 수고를 알아달라는 효과를 노린 행위지 하나님을 위한 금식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하였습니다. 몇날을 굶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즉 진정한 신앙생활은 금식하는 것이 아니고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 그 말입니다. 사무엘 제사장은 말하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22-23)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지 아니한 것을 회개하는 방편으로 금식하는 것은 좋게 여기시지만 자기의 욕구불만을 충족시키려는 수단으로 금식하는 것은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금식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결론

금식은 나쁘다고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다만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극단적인 표현이냐 아니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냐 여하에 따라서 금식의 결과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금식을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 아니고 자기들을 위한 금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먹는 것 때문에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생활을 했다면 우리들은 먹는 것을 폐하고라도 죄를 자백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을 목적으로 한 금식이 되어야 합니다(슥 8:19).

 
본문 : 슥 8:1-13

제목 :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서론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고 생사화복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복을 주시면 인간은 복을 받아 누리고 살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북을 주시지 아니하면 그 누구도 복을 누리고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되 백성을 괴롭히는 마귀를 미워하시고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을 질투하는 형식으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마귀는 죄를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평안한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 4-5 "만군의 여호수아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며 거기서 장난하리라"하였습니다. 이는 전쟁이 없고 평화가 임하여 백성들이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게 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지 아니하신다면 이 지구상에는 어느 곳에도 평안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평안함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본문 7-8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하였습니다. 이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신약시대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둘도 아닌 독생자를 주셔서 그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희생을 하게 하여 죄로 인하여 죽은 자기 백성들을 살리시는 것입니다(요 3:16, 롬 5:8).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시 32:1-3). 그리하여 죄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3. 환경이 좋아집니다.

본문 12-13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주변 환경이 사람이 살기에 알맞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면 땅이 저주를 받아 곡식도 내주지 아니하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며 야생동물이 사나와져서 사람을 해치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사람이 살기에 알맞게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뿌린 씨앗이 결실을 하여 인간들이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신 28:12-14).

결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집을 짓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성을 지키는 파숫군의 경성함도 허사이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눕는 부지런성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시 127:1-2).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박토가 옥토로 변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하여 사람이 살아가는데 편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도록 그를 섬겨야 하겠습니다(출 23:25-26).

 본문 : 슥 9:9-10

제목 : 오실 메시야

서론

본문 말씀은 시온의 딸들에게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기쁨은 찾을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 바울사도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합니다(빌 4:4). 같은 원리로 시온의 딸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이 찬양을 하라고 합니다. 이는 오실 메시야로 인하여 즐거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즐거움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하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메시야로 즐거워하는 것인지 알아봅시다.

1. 공의로 구원을 베풀기 때문입니다.

본문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세상 형편과는 달리 억울하게 벌을 받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자기 믿음대로 정직하게 구원을 받기 때문에 빈부 귀천 남녀노소 차별이 없이 주님 오심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2. 그의 희생으로 구원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9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하였습니다. 메시야는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시고 죄 많은 이 땅에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어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희생하시는 희생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빌 2:5-8). 즉 그의 죽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공로없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시야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하였습니다(사 54:5-6).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메시야로 인하여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3. 재림으로 평화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진정한 평화가 이루워지게 된 것은 메시야가 초림시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완전한 평화가 이루워지는 날은 메시야의 재림이 임하는 때부터 입니다. 메시야의 재림으로 세상의 전쟁도 질병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없어지고 지상에는 진정한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픔도 근심도 없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생활이 전개되기 때문에 메시야로 인하여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결론

지금은 오실 메시야가 아니고 오신 메시야로 인하여 기뻐하며 재림하실 메시야로 인하여 기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오신메시야로 인하여 죄에서 구원을 받고 재림하실 메시야로 인하여 누릴 즐거움을 인하여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고 영생을 소유하고 내세를 소망하고 살게 되었으니 메시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본문 : 슥 10:5-7

제목 : 하나님의 긍휼

서론

하나님은 인간을 늘 불쌍힝 여기시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들이 죄를 지은 것만큼 벌하지 아니하시고 보시고 들으시는 대로 판단하시지 않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인간을 돌아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1. 적과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본문 5 "싸울 때에 용사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대적을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로 부끄러워하게 하리라"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은 죄를 지어 괘씸한 일은 많지만 그래도 적의 강력한 군대와 싸워서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2. 기도를 들으십니다.

본문 6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하였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유다와 요셉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비록 부족한 점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이 드리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3. 즐겁게 살게 하십니다.

본문 7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하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와서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여러모로 도와서 그들이 살아가는데 기쁘고 즐겁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슬퍼하며 근심하게 되는데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계속 슬퍼하며 살도록 하시지 않고 죄를 사하시고 즐겁게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행 3:19).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긍휼은 한이 없어 사랑하시는 범위의 한계를 두시지 아니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를 범하였지만 적에게 지는 것을 보고만 계시지 않고 이기게 하시며 그들이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며 주 안에서 즐겁게 평생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 슥 11:15-17

제목 : 악한 목자

서론

우매한 목자라는 말은 도덕적으로 악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악한 목자는 양떼를 잔인하게 취급하고 그 결과는 비참하게 될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선한 목자를 배척하므로 악한 목자를 맞이하게 되어 곤고를 겪어야 할 것을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악한 목자는 역대의 악한 통치자들이요 적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1.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합니다.

본문 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하였습니다. 양떼가 죽어가는 상태에 있는데 마음에 두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즉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이 죽어가는 상태에 있으면 치료시키려고 온갖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만 악한 목자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도망한다고 하였습니다(요 10:11-12).

2.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합니다.

본문 16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하였습니다. 흩어진 자는 어린 자 및 유리하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은 모든 면에서 약합니다. 어미 양이나 목자의 보살핌이 특별히 요청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양이 길을 잃게 되면 반드시 어미가 찾든지 목자가 찾아도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목자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찾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선한 목자는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이는 선한 목자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목자는 정 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3.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합니다.

본문 16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하였습니다. 상한 자는 상처난 양을 말하는데 그와 같은 자를 고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에스겔 선지자가 기록한 대로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겔 34:3-4)하였습니다. 이는 악한 목자의 횡포이지만 선한 목자는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강하게 하려니와 살찐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겔 34:16)하였습니다. 악한 목자는 선한 목자와 정반대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론

선한 목자는 또한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합니다. 살찐 자의 고기를 먹습니다. 양떼의 굽을 찢어 놓습니다. 이와 같은 목자는 영력이 쇠하여지고 영적 지각이 어두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가 될지언정 악한 목자가 되어서 화를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문 : 슥 12:10-14 

제목 : 회개의 선물

서론

회개는 인간의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시 80:7, 19)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행 11:18)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도 선물이고(엡 2:8) 회개도 선물이며 성령도 선물입니다(행 2:38).

1. 간구하는 심령을 주십니다.

본문 10 "내가 다윗이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억지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회개할 마음을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의 원인 자는 성령이시고 회개의 행동자는 곧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177장 작시자 엘우도 하인즈 스톡스(E. H. Stokes)목사는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 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하소서"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와 신앙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고전 12:3).

2. 애통케 하는 심령을 주십니다.

본문 10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하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서 시켜 주셔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찌른 바 그를 바라본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고 애통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베드로사도의 설교를 듣고 애통하는 심령을 가졌습니다(행 2:37). 베드로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마 26:74-75). 예수님의 죽으심은 곧 내 죄를 위하여 죽어주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면 애통하며 진정으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착실하게 회개하는 심령을 주십니다.

본문 11-14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 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온 땅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하였습니다. 하다 드림몬의 애통은 요시야왕이 거기서 전사한 때에 유대인들이 슬퍼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대하 35:22-25). 즉 유대인들이 요시야왕이 전사한 것을 보고 슬퍼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생각하는 육체의 슬픔이 아니고 회개의 슬픔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착실하게 회개하여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따로 따로 개인들이 착실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구원은 가족 단위나 교파 단위가 아니고 오직 개인 단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개개인이 착실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결론

죄를 지으면서 웃는 것보다는 죄를 회개하면서 우는 것이 더욱 좋은 것입니다. 니느웨 성민의 애통의 눈물은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켰으며 베드로의 애통의 눈물의 기도는 예수를 부인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애통하며 회개할 마음이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본문 : 슥 13:1-6

제목 : 주님께서 희생하는 날에

서론

본문에 그 날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시는 날에는 무엇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하여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죄와 더러움을 씻게 됩니다. 

본문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의 보혈의 속죄를 믿게하는 성령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는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친의 태에서부터 죄악에 감염되어 나왔습니다(시 51:5). 그래서 그 죄를 주의 보혈의 피로써 씻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의롭다함을 받고도 죽을 때까지 회개하는 생활은 계속이 되어야 합니다. 즉 칭의의 은총을 받았어도 성화되는 과정은 계속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하간 우리들의 죄악은 샘물과 같은 보혈로 씻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더러운 귀신이 떠나게 됩니다.

본문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새시대가 열리면 이 땅에서 더러운 마귀들과 귀신들이 물러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신약시대에는 마귀의 활동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는 마귀가 역사를 한다고 해도 승리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에는 마귀는 완전히 패배하여 성도들을 괴롭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구약시대의 우상들은 신약시대에 와서는 완전히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을 것입니다(벧전 5:8).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시고 희생하실 때의 구약의 모든 우상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유대 땅에서 근절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귀신의 활동도 성도들을 해치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막 5:1-20, 행 16:16-18). 그러나 신약시대에도 거짓 선지자들과 우상 숭배는 계속되지만(마 24:2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그들은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선지자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본문 4-6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하였습니다. 신약시대의 선지자의 활동은 세례요한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선지자요 진정한 제사장이며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누구든지 내가 선지자라고 말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날에는 내가 선지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지자가 필요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선지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직접 아들을 통하여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도 우상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맥을 추지못하였지만 그래도 살아도 미약하게나마 성도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는 완전히 패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을 예언하던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하시게 되면 전혀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 슥 14:4-11 

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서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시고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사십일 동안 부활을 증거하시다가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려고 다시 재림하시게 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신앙고백으로 채택하여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재림은 틀림없이 임하는 것입니다. 다만 날짜와 시간을 모르는 것 뿐입니다. 그럼 주님께서 재림을 하시면 어떻게 되는가?

1. 지상으로 재림하십니다.

본문 4-5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선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하였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틀림없이 있는데 문제는 공중 재림 먼저 하시고 지상 재림을 하시느냐 여기에 많은 학설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공중이 되었든지 지상이 되었든지 장소와 회수가 중요하지 않고 주님의 재림은 틀림없다는 것을 믿고 준비하는 성도의 생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주님은 지상재림으로(욥 19:25) 단회적으로 끝난다고 믿고 있습니다(요 14:1-3). 그가 그 날에 오셔서 우리를 공중으로 끌어 가시든지 지상에 두시든지 그것은 내가 알바가 아니요 다만 주와 함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살전 4:16-18). 한번의 재림으로 주와 같이 어느 곳에 있든지 장소가 중요하지 아니하고 그와 같이 함께 있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문제는 다음 재림론에서 다루겠습니다.

2.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본문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초림하실 때에도 선지자직과 제사장직 및 왕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왕이시지만 겸손하여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으로 심판하시러 오시는 것입니다. 세계가 그 분 하나의 통치하에 다스림을 받게 되는 정치적인 왕은 아닙니다. 오직 구속 받는 성도들이 만왕의 왕이신 재림주를 중심하여 하나님께만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 사는 것입니다.

3. 영원한 평안을 가지고 오십니다.

본문 11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 후에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형편에 대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그가 재림하시면 다시는 저주가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저주의 원인이 되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찬송과 기쁨만 있으면 영원한 평화만 있는 것입니다. 그 곳에는 질병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인간 사회와 같이 아귀다툼도 없고 시기나 질투는 더욱 없고 행복과 영원한 평화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재림후의 형편입니다.

결론

주님의 재림은 모든 성도들의 바라는 바입니다. 사도요한은 아멘 주 예수시여 오시옵소서(계 22:20)하고 고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시라고 해서 오실 분이 아니요 오시지 말라고 해서 오시지 아니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재림하셔서 우리 성도들은 영원무궁 영생복락에 들어가 주님만 경배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