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설교모음2
제 목 |
사랑이 있는 곳에··· |
말 씀 |
요한1서 2장 7-11절 |
주 제 |
사 랑 |
“Qui non diligit non novit Deum quoniam Deus caritas est”
1. 머리말
안녕하세요, 소년부 여러분? 6학년 친구들은 이미 잘 알고 있어서 눈에 익은데, 5학년 친구들은 처음보는 친구들도 꽤 있는 것 같아요. 주일 아침 교회에 오는 시간에 전도사님과 인사한 친구들이 있어서 전도사님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그 친구들은 앞으로 전도사님이 주목하겠어요. 왜냐하면 9시를 넘어 지각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이예요. 새해에는 지각도 않하고 미리 나와서 말씀공부하고 예배드리는 친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6학년 친구들은 의젓하게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데 5학년 친구들이 예배시간에 떠들면 않됩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5학년 친구들이 개구쟁이가 많다고 들었는데, 5학년이 되어서도 만일 그러면 선생님이나 전도사님이 혼내줄거예요. 예배시간에는 바른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예요.
오늘 설교 제목을 큰 소리로 읽어볼까요?
그래요. 오늘은 사랑에 대해서 예기 할까해요. 어떤 사랑일까요?
2. 본문
** 예 화 **
오늘 얘기하려는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내 친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줄 아는 사랑. 그곳에 참다운 사랑이 있고, 진정한 우정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볼까요? 9-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도,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니, 그 사람 앞에는 올무가 없습니다.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가운데 있고, 어둠 가운데서 걷고 있으니,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실천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거기에 걸맞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공주가 공주답게 행동해야 공주로서 인정을 받는 것처럼, 어린이는 어린이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지 바른 어린이, 착한 어린이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생활을 해야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내가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친구들 있습니까? 올해 소년부 친구들은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인사하고 내가 먼저 도와주는 소년부 친구들이 되십시오. 그러면 소년부는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교사 경건회*
·찬송 : 241, 542장
·말씀 : 누가복음 9장 21-27절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소년부를 사랑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예표로서 이 땅위에서 우리가 이룩해야할 목표입니다. 우리는 소년부 교사로서 헌신하기로 결단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저 단순한 봉사가 아닙니다. 어린 생명들의 영혼을 담당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명예를 얻기 위하여, 지위를 얻기 위하여 봉사를 하며 지도자가 되는 것도 육신의 지도자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자들은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헌신하기로 마음만 먹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도 ‘너희는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과 ‘너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언뜻 보기에는 모순된 말씀같아 보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인데 어떻게 우리의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루라고 말씀은 얘기하는 것인가?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 ‘너희는 구원을 받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너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문맥상 성화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지도자가 되기로 마음만 먹는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 23절은 우리에게 교사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야하는지를 명확히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여기에는 자신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뚜렷한 목표와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함께 끊임없는 헌신의 삶이 필요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교사가 된다는 것은 영적인 지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말씀을 명심하셔서 아이들을 믿음으로 양육시켜서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드는데 각자의 역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알림
“예배 순서 숙지, 아이들 인원파악(재적인원과 출석인원 = 결석자 원인 파악 = 총무에게 알려주기 바람), 매월 마지막주일 오후에는 약속을 하지 말 것(월례회), 교사 기도회(31일 예정), 성가대 명단 파악하여 오늘중에 연락바람”
·다음주 설교 : 제목 - 당신을 사랑하기에···, 본문 - 요한복음 4장 24절, 주제 - 바른 예배
나눠읽는 말씀 - 성시교독문 1번(시편1편), 처음 찬송 - 9장, 감사의 찬양 - 231장, 사회 - 6학년1반 선생님, 기도 - 6학년1반 어린이
제목 |
당신을 사랑하기에··· |
말씀 |
요한복음 4장 24절 |
주제 |
바른 예배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잘 지냈었요?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착한 흥부는 고생고생을 하지만 결국은 복을 받고 욕심장이 놀부는 결국은 벌을 받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학교에서, 텔레비전에서 수 없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흥부가 게으름뱅이라고 하여 멸시를 하고 놀부를 성실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주제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 마음의 중심이 선하야 그렇지 않느냐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놀부는 악한 의도로 제비의 다리를 부렀뜨렸습니다. 흥부는 제비가 불쌍해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료하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착한 의도입니다. 사람은 마음을 악하게 먹으면 계속해서 악한 말을 하고 못된 행동만 하게 됩니다. 욕을 하는 친구는 욕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욕을 하게 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악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 친구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게 되고,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마치 놀부가 제비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렸듯이.
2. 몸말
오늘은 어떻게 드리는 예배가 바른 예배인지 말씀해 드리려 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볼까요?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요한복음 4장 24절]
우리 소년부 친구들은 이말을 작년부터 수도 없이 들어서 외우고 있을 것입니다. 예배때마다 부장 선생님이 외쳤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말씀에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예배당 안에 와 계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말입니다. 전도사님 옆에도 계시고 우리 친구들 옆에도 계셔서 소년부 친구들이 얼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는지를 바라보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태도도 영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어떤 것이 영적인 태도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은 바로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고 성실한 자세로, 바른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또한 정말로 바른 자세로, 정성된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정성된 마음을 가지지 않고, 바른 자세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친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친구들일 것이예요.
3. 나오는 말
앞에서 전도사님이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흥부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복을 받았다고. 마찬가지입니다. 정성된 마음과 바른 자세로 사랑하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더욱더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격언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그렇습니다.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작년에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자세가 바르지 못했지만 새해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른 자세, 정성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 드립시다.
* 교사 경건회 *
·찬송 : 403, 469장
·말씀 : 요한복음 4장 7-19절
“예수님은 사람의 본질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예수님은 시종일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터치하였던 것입니다. 누구나 얻고 싶은 영원한 생명, 생수.
사람은 존재의 의의를 느끼기를 원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잘났고, 못났고를 떠나서 남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길 원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바로 이것입니다. 나같은 존재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수’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 생수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교사란 바로 이 생수를 어린 생명들에게 마시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생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이 생수를 마시면서 자라게 됩니다. 생수가 없으면 어린 생명들은 항상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생수가 끊이지 않도록 계속해서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교사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자신의 현재의 모습이 교사로서 충분치 못하다고 낙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생수를 전하여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알림 : 오늘 예배 사회, 기도 준비되었는지 확인, 결석자 파악(원인), 교사 기도회가 전체 24일 p.m. 9:30로 예정), 교사 월례회가 26일, 임원 모임은 19일 오후 1:00에 있습니다. 오후 예배후 청소는 초등부와 함께, 반별 기도회, 교사 주소록 작성.
·다음주 설교와 예배 순서 : 사회·기도 - 6학년 2반, 말씀 -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제목 - 준비합시다, 주제 : 합당한 그릇
성시 교독 - 5번, 처음 찬송 - 188, 감사의 찬양 - 준비합시다 (찬미 500, 431번)
제 목 |
준비합시다 |
말 씀 |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
주 제 |
합당한 그릇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잘 지내셨어요? 우리 친구들 방학인데 규칙적인 생활은 하고 있어요? 운동도 해요?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어릴때의 습관이 평생 간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오늘 설교 제목이 뭐예요? 큰 소리로 한번 읽어볼까요?
[위인전 예화 인용]
2. 몸말
오늘 말씀을 우리 친구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다시한번 읽어볼께요.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가 말한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귀하고 성별된 그릇이 될 것입니다.”
전도사님이 보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친구들은 선생님이나 부모님들로부터 귀히 쓰임을 받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쓰임을 받는가하면,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귀히 쓰임을 받는 친구들이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말씀도 잘 살펴보면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처럼 귀히 쓰이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나무그릇과 질그릇처럼 어떤 것은 귀히 쓰이지도 못하고 천하게 쓰이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쓰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쓰임을 받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남들보다 무엇인가가 특출나면 인정을 받습니다. 요즘, 어린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인기 가수 그룹 H.O.T 같은 사람들은 노래를 잘부르거나, 춤을 잘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으로 우리 친구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노래 잘부르고, 공부잘하는 친구들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공부도 못하고 노래도 못부르는 전도사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은 전도사님 처럼 노래도 못부르고, 잘난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귀히 쓰임을 받을까요? 바로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훈련, 교육, 준비하는 자만이 하나님으로부터 귀히 쓰임을 받고 인정을 받는 친구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바른 예배와 말씀, 기도생활을 하는 자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귀히 쓰임을 받는 친구들이 될 수 있습니다.
3. 나오는 말
속담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귀히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일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자를 귀히 쓰십니다.
소년부 여러분, 항상 바른 예배와 말씀, 기도생활을 하며 깨끗한 마음을 지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도 받고 귀히 쓰임을 받는 친구들이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364, 465
·말씀 : 아모스서 5장 4-6절, 24절
“우리는 소년부라는 공동체로 모였습니다. 공동체라함은 일군의 목적과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그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년부는 어린 생명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영혼을 양육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 공동체는 또한 흰돌교회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역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시야를 넓힌다면 공동체라함은 반드시 교회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인이라해서 반드시 교회에 국한 되어 생각하고 존재하며 공동체를 구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사회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회를 변혁시키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임하도록 사람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고 사회를 하나님 보시기에 정의롭고 바른 사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독교 공동체입니다.
제가 공동체를 사회와 연관해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일련의 나라 정치를 돌아보면서 저는 오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한 나라의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기독교인다운 가치관을 가지고 공의를 이 땅위에 세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말씀처럼 ‘너희는 나를 찾아라. 그러면 산다’ 는 말씀처럼 경제가 어렵고, 나라 살림이 어려우면 하나님께 먼저 묻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나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인간적인 정치술로만 해결하려하고 있습니다.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하에 날치기 법안 통과를 하는가 하면, 언론을 통제하여 왜곡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위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입니다.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다면 당연히 교역자와 당회원들과, 제직들이 서로 협력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정부가 사리사욕만을 찾는데 급급하였기에 그런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이런 현실속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제가 전에도 비슷하게 말씀드린 것으로 기억하는데 새하늘과 새땅은 미래에 있을 종말론적인 역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상에서 오늘 지금 우리가 이루어야할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하면 현재적 종말론이라 합니다.
선생님이라 함은 제가 새해 첫 교사 경건회때도 말씀드린 것처럼 영적 지도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가 되십시오.
·알림 : 지난주에 선생님들 몇분이 교사실을 청소해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사 기도회가 24일 금요일 9:30에 있습니다[인원 파악]. 교사 월례회가 26일 오후 예배후 있습니다. 임원 모임은 오늘 오후 1:00에 있습니다. 식권 추가명단[8명]. 오늘 예배 인도, 기도.
·다음주 설교와 예배 순서 : 사회·기도 - 6학년 3반, 말씀 - 호세아 6장 1-6절, 제목 - 나의 사랑, 나의 하나님, 주제 : 사랑, 처음 찬송 - 2장, 감사찬송 - 252장, 교독문 - 5번
·월례회 설교 :
제 목 |
나의 사랑, 나의 하나님 |
말 씀 |
호세아 6장 1-6절 |
주 제 |
사랑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일주일 동안 잘 지냈어요?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숙제는 다했어요? 개학은 언제해요?
[전도사님 초등학교때의 일화 - 언행일치의 위선적 모습]
2. 몸말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먼저 1-3절을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바꾸어서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주께로 돌아가자. 주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 앞에서 살 것이다. 우리가 주를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
언뜻 보기에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바로 뒤에 이어서 나오는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4-6절의 말씀을 계속해서 읽어드리겠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마음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 그래서 내가 예언자들을 보내어 너희를 산산조각나게 하였으며, 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로 너희를 죽였고, 나의 심판이 너희 위에서 번개처럼 빛났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전도사님이 새해들어 설교시간에 계속해서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예배자세입니다. 습관은 한번 잘못 길들이면 고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처음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교회에 나오느냐에 이미 예배를 드리는 자세는 결정됩니다. 전도사님이나 선생님이 하두 강조하니까 마지못해 겨우 예배시간에 떠들지 않고 겉모습만 얌전한척, 예배를 잘 드리는 척하는 친구들은 오늘 말씀 호세아 6장 1-3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위선자입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잘못도 않하고 있으니깐 하나님도 이런 나를 용서해주시고 예배도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친구들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이십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겉모습만 뻔지르르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 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그저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보다는 하나님은 중심에서 우러 나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전도사님은 지금까지 3주에 걸처서 예배에 관한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렸습니다. 첫 번째에는 “당신을 사랑하기에····”라는 제목으로 요한복음 4 : 24절 말씀을 가지고 참된 예배는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로는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는데 “준비합시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로부터 귀히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하는 자게 되어야 하며 그 준비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바른 예배생활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오늘 전도사님은 형식적인 예배생활의 위선적인 모습을 지적하고 바른 예배의 자세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드리는 예배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겉모습만 바른 자세가 아닌 속마음이 바른 자세가 되어 드리는 예배야말로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인 것입니다.
3. 나오는 말
사람은 성장하는 가운데 수없이 많은 좋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갖가지 교훈과 격언,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여러 가지의 말·글들을 읽고 듣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게도 그 좋은 충고나 교훈, 격언 등을 들으면서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생활입니다.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느냐는 나의 신앙이 어떤 모습이라는 것의 단적인 증거입니다.
“바른 자세로 드리는 예배,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드리는 예배” 이것이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믿음을 성장시킬 것입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403, 313장
·말씀 : 갈라디아서 5장 1절 = ‘자유’
·알림 : 교사기도회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후 예배후 교사 월례회가 있습니다. [부장집사님댁에서] , 식권을 총무선생님으로부터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오후 1시에 자기반 소개판 만들기가 있습니다. 장소는 유치부실과 소예배실입니다.
·월례회 말씀 : 찬송 542장, 말씀 이사야 43장1절
·다음주 말씀 : 말씀 - 빌립보서 4장 6절, 제목 - 기도? 주문?, 주제 - 기도의 본질
찬송 - , 성시교독- , 사회·기도
※자기반 소개판 만들기※
*준비물
·가 반별로 모조 전지 1장씩 교사와 어린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나 어린이들의 스냅 사진들, 색종이, 싸인펜이나 색연필, 또는 칼라펜, 풀, 가위
*방법
·모조 전지 위에 먼저 교회를 만들거나 그린다.
·담임 선생님을 중심으로 준비한 사진을 정리하여 예쁘게 붙인다.
·자기반의 자랑, 특색 등을 소개하고, 각 사진 밑에 간단한 설명을 통하여 자기반 어린이를 소개한다.
·반별 소개판을 교육관이나 교회의 적당한 장소를 이용하여 붙이고, 계속 보완하며 한 해 동안 잘 관리한다.
※자기반 소개판 만들기※
*준비물
·가 반별로 모조 전지 1장씩 교사와 어린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나 어린이들의 스냅 사진들, 색종이, 싸인펜이나 색연필, 또는 칼라펜, 풀, 가위
*방법
·모조 전지 위에 먼저 교회를 만들거나 그린다.
·담임 선생님을 중심으로 준비한 사진을 정리하여 예쁘게 붙인다.
·자기반의 자랑, 특색 등을 소개하고, 각 사진 밑에 간단한 설명을 통하여 자기반 어린이를 소개한다.
·반별 소개판을 교육관이나 교회의 적당한 장소를 이용하여 붙이고, 계속 보완하며 한 해 동안 잘 관리한다.
※자기반 소개판 만들기※
*준비물
·가 반별로 모조 전지 1장씩 교사와 어린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나 어린이들의 스냅 사진들, 색종이, 싸인펜이나 색연필, 또는 칼라펜, 풀, 가위
*방법
·모조 전지 위에 먼저 교회를 만들거나 그린다.
·담임 선생님을 중심으로 준비한 사진을 정리하여 예쁘게 붙인다.
·자기반의 자랑, 특색 등을 소개하고, 각 사진 밑에 간단한 설명을 통하여 자기반 어린이를 소개한다.
·반별 소개판을 교육관이나 교회의 적당한 장소를 이용하여 붙이고, 계속 보완하며 한 해 동안 잘 관리한다.
제 목 |
기도? 주문? |
말 씀 |
빌립보서 4장 6절 |
주 제 |
기도의 본질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일주일간 잘 지내셨어요? 이젠 겨울방학도 끝났죠? 숙제는 다 했어요? 우리 친구들이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주기도문이라는 것도 있고 사도신경이라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주기도문이 무슨 뜻이예요?
우리나라는 조상대대로 부처님을 섬기는 불교 국가였어요. 부처를 믿는 절에도 염불이라고 해서 주문을 외우는 것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집에 가보면 벽에 이상한 ‘부적’이 붙어 있었어요. 전도사님 집에도 예전에 주님을 영접치 않았을때는 이런 부적을 벽에 부치곤 했어요. 그런 부적이 있으면 집안에 재앙도 안생기고 자녀들이 복을 누린다는 믿음때문이지요.
그러면, 이런 부적이나 염불하면서 외우는 주문처럼, ‘수리수리 마수리’ 하면 원하는 데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주기도문이며, 기도인가요?
2. 몸말
오늘 말씀을 읽어볼까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위에서 전도사님이 말한 즉,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 처럼, 기도를 요술 방망이로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과연 그럴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라는 것은 요술 방망이처럼 주문 외우듯이 외우기만 하면 원하는데로 이루어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예요. 물론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모든 능력은 기도외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그러나, 기도를 하나의 주문으로 생각하거나 요술 방망이처럼 생각하며 기도하는 친구들은 기도를 잘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소년부 여러분, 아버지와 이야기 하는데, 요술 방망이처럼 “수리수리 마수리···”하며 대화를 합니까? 그렇지 않죠?우리 친구들이 아버지에게 얘기를 나누듯이, 하나님과도 얘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일은 개학일인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납니다. 그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어떡하면 좋죠?”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친구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을 조용히 보여 주십니다.
기도란 이처럼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방학숙제를 못했는데, 혼나기 싫어서 ‘하나님, 저 방학숙제좀 해줘요?’ 라고 기도하는 것은 참다운 기도가 아니라, 혼자 요술 방망이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예요. 기도는 주문이나, 요술 방망이가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3. 나오는 말
우리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장난치나요? 아버지와 얘기하면서 떠드나요? 그러면 아버지가 버릇 없다고 혼내시잔아요.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와 얘기를 하는 것인데 어떻게 버릇 없이 굴수가 있어요? 그럴 수 없지요? 그러면 예배시간에 우리 친구나 전도사님이 기도하는 동안에도 떠들면 않되지요? 하나님과 얘기하고 있는데 감히 떠들 수 있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친구들에게 “맴맴”하실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매일매일하는 대화입니다. 기도합시다.
*교사 경건회*
·찬송 : 347장, 377장 [08:30 - 08:35]
·성경공부 [08:35 - 08:45]
·알림 : 오후 01:00-02:00 자기반 소개판 만들기가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예배후 겨울 성경학교를 위한 교사 기도회가 있습니다.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희정, 김양순, 김성태, 배은혜- 뒤에 신훈] 겨울 성경학교 자체 강습회가 다음주부터 오후 01:00-02:30에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부족한 상황에 있습니다.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설을 보내러 멀리 가시는 분 계십니까? 공과공부를 09:45에 끝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주 설교 : 본문 - 마태복음 6:9-13, 제목 - 이렇게 기도 드려요, 주제-기도하는 방법(주기도문 강해 및 기도순서 정리) 처음찬송- , 감사찬송- , 성시교독- ,
·성경공부
6학년 : 중심개념 -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 생활하면서 유혹이 올 때 말씀으로 이기며 생활하는 어린이가 되게 한다.
5학년 : 중심개념 -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룬 요셉 -> 하나님께서는 우리 어린이들에게도 꿈(이상)을 주신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도록 한다.
제 목 |
이렇게 기도드려요 |
말 씀 |
마태복음 6장 9-13절 |
주 제 |
기도의 자세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잘 지냈어요? 설 명절도 잘 보냈구요? 이제 한 살씩 더 먹었네요. 한 살씩 더 먹은 만큼 여러분의 마음도 보다 자라기를 바래요.
전도사님이 교회에 처음 나와서 전도사님은 기도할 줄을 몰랐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기도를 유창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 친구들처럼 기도를 유창하게 하고 싶고, 그리고 다른 친구들로부터 존경도 받고 싶어서 형식적으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식사기도를 하는 것도 일부러 조금 길게 했습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이 저 친구는 신앙이 참 좋은 아이라는 말을 할 것 같아서요. 때로는 기도를 다 했는데도 일부러 눈을 천천히 떳습니다. 기도를 오래 한 것처럼 보이기 위햬서 말입니다.
그런 것이 위선적인 기도라는 것을 안 것이 2년 뒤였습니다.
2. 몸 말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볼까요? 오늘 말씀은 여러분이 익히 외워서 아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번에는 6장 5-8절까지 읽어볼까요?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길 모퉁이에서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
소년부 여러분, 예수님이 살아계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중에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어요. 바리새인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예요.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분리된 자들’이라는 말로써, 원래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경건한 부류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모세가 만든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모두 지켰을 뿐만 아니라 모세가 만들지도 않은 여러 율법 조항까지 만들면서 하나하나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게 되었어요. 하루에 3번씩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공공 장소에서 기도를 해야하며, 금식할때는 얼굴에 금식하는 표가 나타날 정도의 모습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이들은 율법을 너무도 잘 지키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율법에 올무가 되어서 형식적인 모습에만 너무 치우치게 되었어요.
오늘 말씀에 나오는 위선자들이란 바로 이 바리새인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경건의 모습을 지니려고 노력했으나, 나중에는 그러한 마음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더 의식하게 되어서, 정말로 마음속에서 우러 나오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백주 대 낮에 남들이 보는 한 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척 했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지도 않으니깐, 기도도 이말 했다가 저말 했다가 두서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바른 기도의 자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매주일 예배를 끝마칠 때 하는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라는 말이예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겨울 성경학교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오늘 말씀인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3. 나오는 말
기도는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유창하게 말을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란 지난주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하나님과 나와의 대화라는 것입니다. 대화를 할 때는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과 하는 것이지, 시장 한 복판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친구들이 혹시 기도를 할 때 남을 의식한다면 그것은 인격적인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년부 여러분,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세요. 진실한 대화를 나누세요. 하나님은 친구들의 마음 소리를 듣고 싶어합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기도를 듣고 싶어합니다. 진실한 기도를 하세요.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372장, 55장
·공과공부 : 5학년-전체적으로 1단원 요약 = 복음적으로 정리
6학년-2단원 요약 = 삼위일체 하나님,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 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바로 이해하는 것임.
·함께 기도 : 갈라디아서 6장 6-10절 = 삶을 반성.
·알림 : 설 명절은 잘 보내셨습니까? 지난주에 자기반 소개판 만들기를 했습니다. [참석인원 52명] 매주 수요일 예배후 겨울 성경학교를 위한 교사 기도회가 있습니다.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양순, 김성태, 안창덕] 겨울 성경학교 자체 강습회가 오늘 오후 01:00-02:30에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부족한 상황에 있습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과공부를 09:45에 끝내 주시기 바랍니다. 졸업자선생 파악.
·다음주 설교 : 말씀|마가복음 1장 12-15절, 제목|광야에서, 주제|사순절의 의미. 처음 찬송|1장, 성시교독|18번, 감사찬송|101장.
제 목 |
광야에서 |
말 씀 |
마가복음 1장 12-15절 |
주 제 |
사순절의 의미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친구들 일주일 동안 잘 지냈어요? 이번 한주간은 나라가 참으로 어지러웠던 것 같아요. 김일성 주체 사상을 만든 황장엽 비서가 남한으로 망명하였고, 한보게이트 사건으로 온 여론이 정치권에 집중되었고, 경제는 침체기에 들어갔으니 말이예요. 우리 친구들은 이런 어른들을 본받지 마세요. 이런 모든 비리와 사상의 왜곡의 시작은 인간의 왜곡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예요. 욕심 때문에 생겨났단 말이예요. 욕심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이길 힘이 충분히 있는 것이예요.
그런데, 우리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이기에 우리 내부에 있는 욕심을 극복할만한 힘이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겠어요?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 친구들 사순절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四旬節(사순절)은 말 그대로 부활절을 앞두고 40일 동안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매일 성경을 읽고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절기예요. 그러나 이 사순절은 달력상으로 부활절부터 40일을 거꾸로 헤아려서 시작하지 않아요. 날짜만을 계산할 경우에는 사순절의 기간은 정확히 46일이거든요. 하지만, 초대 기독교인들은 주일을 예수님이 부활하신 기쁜 날이기 때문에 금식을 비롯한 금욕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어요. 때문에 사순절 기간에 포함되는 주일들은 사순절의 정규 기간에서 제외되었고, 그 덕분에 사순절은 날짜 수로는 46일이 되었던 것이예요.
원래 사순절을 가리키는 ‘렌트’(Lent)는 ‘봄’이라는 뜻을 가진 ‘렝텐’(Lencten)이라는 말에서 나왔어요. 렝텐은 다산을 상징하는 바벨론의 여신 아스타르테(Astarte)에게 바치는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40일 동안 금욕하던 기간을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교적인 절기에 성경의 메시지를 부여함으로써 그 절기가 지닌 의미를 재해석하려고 시도하였어요. 그것이 바로 사순절의 유래예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40일간의 시내산 금식, 노아 시대에 40일간 비가 내린 사건,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간의 광야 생활, 엘리야가 40일을 걸어서 호렙산에 이른 사건 등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을 보낸것과 상징적으로 의미가 통해요. 이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의 모습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광야생활 40일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기 극복을 위한 고난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예요.
2. 몸 말
그러면, 우리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후 광야로 떠났어요. 바로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여러 욕망들을 이기기 위해서.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으로 먹기를 탐하는 욕망, 성적인 욕망, 돈을 많이 모아서 부자가 되려는 욕망, 남보다 잘났다고 칭찬만 듣고 싶고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지려는 욕망, 이 4가지는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이예요. 예수님은 이런 욕망을 이기기 위해서 광야로 나가셨어요. 40일간의 금식을 통하여 먹는 욕망을 극복하셨고, 권세의 욕망도 말씀으로 물리치셨어요.
40일간 고난의 광야생활을 통하여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물리치셨어요. 이 후로 예수님은 우리 나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활동을 하신 것이예요. 그 첫 번째 활동이 바로 오늘 말씀 14-15절 말씀이예요.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3. 나오는 말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절기입니다. 인간적인 욕망으로 세상을 살아가시지 않은 예수님, 모든 인간적인 욕망을 극복하신 예수님, 여기에 우리가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인간적인 욕망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어리석은 나라의 위정자들처럼 자신의 욕망에 휩싸여서 나라를 어지럽혀 역사를 왜곡시키지 말고, 우리 친구들은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한 삶을 살으신 예수님을 본받는 희생의 삶, 사랑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순절의 참 뜻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55장, 447장
·공과공부 : 5학년, 6학년 = 용서
·함께 기도 : 나라와 교회를 위한 기도 = 시편 13편 [-08:45]
·알림 : 매주 수요일 예배후 겨울 성경학교를 위한 교사 기도회가 있습니다. 연속 금식 기도회가 있습니다. 교사 웍샵이 오후 1:00-2:30에 있습니다. 박인순 선생님이 한사랑 선교회를 졸업하셨습니다. 안창덕 선생님의 큰 형님이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위로해 주십시오. 김양순 선생님이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위로해 주십시오. 다음주 교사 월례회는 3월 첫째주로 옮기겠습니다. 성경학교에 참석할 수 있는 아이들 명단을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겨울 성경학교 자원 교사 명단과 식당봉사 명단.
·다음주 설교 : 말씀-마가복음 8:31-38, 제목-쿠오바디스?, 주제-희생, 처음 찬송-9장, 성시교독-13번, 감사찬송-230장.
제 목 |
쿠오바디스? |
말 씀 |
마가복음 8장 31-38절 |
주 제 |
희 생 |
“si quis vult post me sequi deneget se ipsum”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 친구들 일주일간 성경 많이 읽었어요? 사순절 기간 동안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읽으세요. 그 속에서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떤 고난을 당하셨는지, 어떻게 죽음을 당하셨는지를 잘 살펴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도하세요.
오늘 말씀 제목을 한 번 읽어볼까요? “Quo vadis?” 조금, 생소하죠? 혹시 이 글씨를 본 친구 있어요? 세계 문학 전집에서 본 친구들도 있을 것이예요. 폴란드의 작가 쉔키비쯔가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쓴 책 이름이기도 하죠. 1800년 말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 프러시아, 프로이센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어요. 마치 우리가 일제 치하 36년의 세월을 보냈듯이. 이런 시대 상황속에서 쉔키비쯔는 조국의 민중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기 위해서 “Quo vadis?”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죠.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조금 뒤에 말씀 드릴께요.
2. 몸 말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31절부터 35절까지 읽겠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흘뒤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꼭 붙들고, 예수께 항의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셨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아서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기적을 베풀고 병든자들을 고쳐주시고, 죄 용서의 선포까지 하셨습니다. 당연히 수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뒤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예언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들을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해방을 시킬 이스라엘의 왕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제자들도 동일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수제자 베드로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바렘에 찬 물을 얹었습니다.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왕이 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을 위해 죽으러 간다고. 그리고는 사흘뒤에 살아날 것이라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흘뒤에 살아날 것라는 말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충격적이었던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을 당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연히 베드로는 극구 반대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이런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은 단호히 말합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리고는 나머지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군중들을 향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3. 나오는 말
“Quo vadis?” 란 말은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의 라틴어 발음입니다. 군중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던 예수님, 그러나 그 길만이 진정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길임을 알았던 예수님. 그러기에 그는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Quo vadis, Domine?” “주여,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 말은 로마 베드로 성당 입구에 쓰여진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도 베드로와 관계된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폭군 네로황제의 박해에 못이겨 로마를 떠나 도피의 길을 거닐고 있을 때, 애피안 국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Quo vadis, Domine?”하고 베드로가 물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베드로의 질문에 답하기를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로마로 가는도다. 그대 베드로가 나의 어린 양을 저버렸으니····”하고 대답하셨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후 베드로는 로마로 다시 돌아가 거꾸로 십자가처형을 당하는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설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은 결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사순절 기간 우리가 묵상해야할 내용은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144, 367
·공과공부 :
·함께 기도하기 : paradigm shift, 마가복음 2:17, 22, 27·28
“I have come to call not the righteous but sinners.”
·알림 : 월례회는 오후 1:00-2:30에 소년부 교사실에서 있습니다. 겨울 성경학교 준비와 더불 어 있습니다. 수요 기도회, 금식 기도회에 참여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대웅 선생님이 졸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김묘경 선생님이 입학하십니다.
·다음주 설교 : 사도행전 7:59-60, 제목-결코 나는 변치 않으리! , 주제-志操(지조), 처음찬송 - 39장, 성시교독-11, 감사찬송-427장
제 목 |
결코 나는 변치 않으리! |
말 씀 |
사도행전7장 59-60절 |
주 제 |
志操(지조)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친구들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이면서 동시에 3·1절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우리 조상들을 돌아보면 수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관순도 그런 부류의 사람중 하나였습니다.
유관순은 무찔러야할 적이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이라는 적이었습니다. 적이 분명할때는 저항하기에도 명분이 분명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적이 분명치 않을 경우 저항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씨 조선을 창설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의 경우가 그렀습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여 고려를 무너뜨리자, 망한 고려의 옛 충신들은 이에 분개하여 자결하거나, 멀리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습니다. 대다수의 나머지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고려 왕실을 버리고 이성계의 쿠테타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한 충신이 있었는데, 그는 쿠테타를 일으킨 이성계를 따르지 않고, 망해버린 옛 고려 왕실을 향한 변하지 않는 절개를 고수한 사람입니다. 바로 정몽주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곧은 절개를 자랑하며 고려왕조에 충성을 다하는 정몽주를 향하여 이성계편인 이방원은 정몽주를 설득하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헛 수고로 끝나고 맙니다. 그리고는 끝내는 반대파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정몽주는 죽기전 고려왕조를 향한 자신의 절개를 시조로 읊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고, 또 중학교에 가면 교과서를 통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역사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절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욕심이나 자기 목숨하나 건지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그토록 신봉했던 사상이나 가치나, 사람들을 저버리고 등을 돌리게 마련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역사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變節者’라고 합니다. 신앙에도 절개를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앙을 저버리는 변절자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친구들이 읽은 말씀의 주인공은 절개를 지킨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2. 몸 말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스데반은 ‘주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하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스데반은 우리 친구들도 잘 알고 있듯이,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가 된 사람입니다. 진리를 향한 그의 정신. 사람은 모름지기 지조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切開.
스데반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신봉하던 가치체계를 뒤 흔들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난후 참 진리를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를 참 하나님으로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로 혐오했습니다. 그런 예수를 따르던 스데반을 유대인들은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유대인들의 고발에 의해 유대 법정에 끌려 나와서 결국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 아무런 힘도 없이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던 것처럼 땅바닥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의미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기독교는 이스라엘 넘어로 널리 퍼지게 되는 역사를 맞이합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예루살렘에 있던 많은 사도들은 죽음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이 분산을 통하여 기독교의 서방전파가 시작되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말하자면 스데반의 죽음하나가 전도의 확장을 가져온 것입니다. 또한 사울의 회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 말씀 8장 1절을 보면,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당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스데반이 죽을 때 그 광경을 사울(나중에 바울이 됨)이 똑똑히 목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표기는 되어있지 않지만, 스데반의 죽음은 사울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왜 그토록 돌에 맞아가면서 예수라는 자를 믿는 것일까?” 결국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을 하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됩니다.
3. 나오는 말
역사를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면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만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개신교의 창시자 루터가 그렇고, 유관순도 그랬고, 오늘 스데반도 그렇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으로 죽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후세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말해줍니다. 무엇이 참 진리인지를.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스데반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 변치 않는 믿음을 여러분도 한번 가져 보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211, 355
·공과공부 : 5학년-효도, 6학년-노력
·알림 : 지난 24-25일동안 겨울 성경학교가 주님의 은혜가운데서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그 동안 기도로 협력해 주신 분들과, 직접 몸으로 봉사해주신 선생님들과 봉사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8일 저녁 9:00에 노방전도와 짝궁 초청잔치를 위한 교사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계속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오후 예배후 초등부와 연합으로 소예배실을 청소합시다. 4월5일에 교사단합대회를 하면 좋겠습니다.
·짝궁초청잔치를 위한 엽서를 아이들에게 보내고 주중(월요일 저녁때)에 연락해서 전달했는지를 확인. 아이들 명단을 확보하여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공과공부 시간에도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주 설교 : 말씀-사무엘하12:10-12, 18:33, 제목-역사의 수레바퀴, 주제-죄의 댓가, 처음찬송-2장, 성시교독-13번, 감사찬송-231장
☞가상칠언☜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막15:34, 마27:46)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시편31:5)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 27)
“내가 목마르다”(요19:28)
“다 이루었다”(요19:30)
제 목 |
역사의 수레바퀴 |
말 씀 |
사무엘하 12장 10-12절, 18장 33절 |
주 제 |
죄의 댓가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일주일간 잘 지냈어요? 이제 개학 했지요?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도 많이 만났을 거예요. 전도사님도 개학을 해서 분주한 일주일을 보냈어요. 그러나, 그 분주함속에서도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오늘은 사순절 네 번째 주일이니, 예수님이 왜 고난을 당하셨는가를 복음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이 더욱 무럭무럭 자랄 것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를 저질렀으면서도 그 대가를 치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은, 법을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규칙을 어기면 그만큼 손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짓을 하면 그것에 대한 대가는 분명히 받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조상들도 그랬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여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40년간의 광야 생활에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냈기에 결국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죽었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죄를 지으면, 그에 따른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스라엘의 영웅 다윗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다윗이 죄를 저지른 결과 어떻게 대가를 받는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2. 몸 말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집안에 재앙을 일으키고,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너의 아내들도 빼앗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어서, 그가 대낮에 너의 아내들을 욕보이게 하겠다. 너는 비록 몰래 그러한 일을 하였지만, 나는 대낮에 온 이스라엘이 바라보는 앞에서 이 일을 하겠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서, 성문 위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울었다. 그는 올라갈 때에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울부짖었다.”
겨울 성경학교 닫는 예배때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윗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죄를 저질렀습니다. 자신의 부하 장수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일부러 죽게 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습니다. 이 사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이 사실에 대해 책망합니다. 그리고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 합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읽은 말씀입니다. 9절 말씀에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선지자 나단의 책망에 다윗은 바로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죄에 대하여는 용서를 받았지만, 그 죄의 대가는 그대로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하 18장 33절 말씀에 나온 것처럼 자신의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당대의 영웅 압살롬, 그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찬양 받을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배반하고 아버지 다윗왕을 물리치고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고 모반을 꾸몄습니다. 압살롬의 세력이 얼마나 컸던지 당대 영웅 다윗과 그 부하들조차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윗을 몰아내려는 반란은 압살롬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압살롬을 제 손으로 죽인 것을 슬퍼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읽은 사무엘하 18장 33절 말씀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이었습니다. 전에 그는 밧세바를 취하기 위하여 자신의 부하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도록 유도했었는데, 이제 그는 그 죄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모반을 꾸미고, 결국 아들의 죽음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3. 나오는 말
사람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하여 우리의 양심에 고발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죄로 인하여 죄책감을 느끼게 되어 결국 죄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고, 그 대가로 자기가 그토록 아꼈던 사랑스런 압살롬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후에도 이스라엘에는 다윗왕조에 대하여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이 죄를 저지른 대가로 많은 환란을 당하였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로마서 6장 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갚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범했어도 담대히 그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교사 경건회*
·찬양 : 347장, 415장
·공과공부 : 지난주 공과 학습 점검 = 5학년 : 내가 할수 있는 일들을 실천했는지. 6학년 : 삭개오가 변한 것처럼, 내 자신의 생활도 변했는지.
5학년-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예수님 [유비 : 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친구]
6학년-생명을 귀중히 여기신 예수님
·알림 : 16일 오전 11시에 노방전도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계속 기도합시다. 22일 짝궁 초청 잔치가 있습니다. 준비는 점심식사후 임원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31일에는 부활절 예배를 드립니다. 오후 예배후 소예배실 청소합시다. 4월 5일에 교사 단합대회가 있습니다. 초청엽서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주 설교 : 말씀-마태복음 22장 14절, 제목-청함받은자? 택함받은자?, 주제-전도, 처음찬송-9장, 성시읽기-9번, 감사찬송-301장.
제 목 |
청함받은자? 택함받은자? |
말 씀 |
마태복음 22장 14절 |
주 제 |
전도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안녕하세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지요? 전도사님도 너무 추워서 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 오늘은 사순절 몇번째 주일이지요? 그래요.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어제 전도사님과 선생님들이 노방전도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중에서도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전도사님은 어떤 한 친구와 잠깐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5학년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교회에 다녔지만,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유인즉, 예수님이 정말 부활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핵심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은 속으로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벌써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불쌍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친구는 머리로 이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가슴으로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도 분명, 부활이 이해가 잘 안되는 친구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을 맞이하여 가슴으로 예수님을 사랑해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주실 것입니다.
2. 몸 말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오늘 말씀은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를 비유로 들어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혼식에는 보통 사람들이 많이 몰려옵니다. 결혼하는 사람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비유로 든 혼인잔치 비유는 어떤 나라에 임금이 있었는데, 임금의 아들을 혼인시키기 위해서 혼인잔치를 베풀고 자기의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였다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받은 사람들은 바프다는 핑계로 임금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손님들이 아무도 없자, 임금님은 거리에 나가 아무나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병자들, 가난한자들, 거지들 모두를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하인은 임금의 명령을 받아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혼인잔치는 아주 즐겁게 진행되었습니다만, 임금님에게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혼인잔치에 걸맞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향해 임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라. 거기에서 슬피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리고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 나옵니다.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따랐으며, 그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에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에로 초대 받은 사람들은 삶이 변화되었으나, 오직 한사람만 삶이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혼인잔치 밖으로 내 쫓습니다. 그리고는 “첨함받은 사람은 많되, 택함받은 사람은 적다”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3. 나오는 말
다가오는 토요일에는 소예배실에서 ‘짝꿍초청잔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짝꿍초청잔치를 하는 이유는 오늘 말씀에서처럼, 믿지 않는 친구들을 구원시키기 위해 잔치를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임금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은 것 처럼, 우리도 우리 주위에 있는 친구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방전도도 하고,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내고, 그 친구들을 위해 기도도 한 것입니다.
소년부 친구들, 여러분은 청함받은 사람이 되지 마시고, 택함받은 사람이 되십시오. 기껏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여러분들의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아니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리고는 오늘 말씀 혼인잔치의 비유처럼, 여러분들의 친구들을 전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248장
·공과 : 5학년-우물가에 물을 길러나온 여인처럼 영적으로 목마른 우리 인간들을 위해 참 생명의 물을 주시려고 십자가의 고통으로 대신 목마르셨다. 죽음의 고난으로 우리에 게 주신 생명 샘물을 감사히 받고 마시며 친구와 이웃에게 나눌줄 알도록 하자. 또 한 생명의 물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고 실천하 기로 하자. = 짝꿍초청잔치도 일종의 생명 샘물을 주기 위한 실천임을 깨닫게 하자.
6학년-항상 용서하시는 예수님은 가장 처절한 죽음과 고통의 자리에서도 용서를베 푸셨다. 끝까지 용서하셨던 예수님은 죽으시면서까지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기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잘못을 예수님께 고백하도록 가르치고 한없는 용서를 베푸 시는 예수님께 기도하도록 하자. 매일 기도하며 살도록 이끌어주자. = 속량설
·알림 : 어제 노방전도가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금길수, 이순자, 이희정, 김양순, 김수진, 배은혜], 다음주 토요일[22일]에는 오후 1시에 짝꿍 초청잔치가 있습니다. [엽서를 선생님이 직접 써서, 아이들에게 줄 것. 식사는 집사님들의 도움을 받을 것. 다가오는 금요일은 마지막 기도회가 있으니, 모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금요일에 아이들에게 전화심방. 분기시상을 아이들에게 알려줄 것. [예배자세에 대한 평가를 선생님들께 자문구하기], 오후 예배후 소예배실 청소합시다. 4월 5일에 교사 단합대회가 있습니다. 부활절 계란 만들기는 선생님들에게 일임[자기반은 자기가]
·다음주[고난주일] 설교 : 말씀-마가복음 14장 71-72, 요한복음 21장 18절, 제목-닭이 두 번 울기전··· ,주제-회심,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8장, 감사찬송-161장.
제 목 |
닭이 두 번 울기전··· |
말 씀 |
마가복음 14장 71-72절 |
주 제 |
회 심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일주일간 잘 지냈었요? 오늘은 고난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자신의 제자중 하나인 가롯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여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잡히고, 자신의 열두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고, 급기야는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는 골고다 언덕에서 비참하게 십자가 처형을 당하여 죽음을 겪습니다.
스승이 훌륭해 지려면 좋은 제자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라는 뛰어난 제자를 만나서, 2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소크라테스는 성인 中의 한 사람으로 우리들의 입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좋은 제자를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를 따르던 모든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도망을 갔으니, 스승을 버린 배은망덕한 제자들인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감옥에 붙잡혀 있을 때,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밤에 몰래 찾아와 소크라테스를 살리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서, 소크라테스에게 탈출하라고 설득할 정도로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소크라테스를 끔직이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수제자 베드로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베드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몸 말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말하기를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다.”
자기가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 베드로는 그 예수를 배반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예수님을 배반한다해도 자신만은결코 예수님을 떠나지 않으며, 배반하지 않으리라던 베드로는 끝내 예수님을 저버렸습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붙잡혀 법정에 끌려가던 때에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혹시, 예수님이 커다란 기적을 행하셔서 자기를 붙잡은 사람들을 모두 처벌하실리라는 실낫같은 희망을 안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기대했던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며, 예수님은 처참하게 십자가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3. 나오는 말
베드로의 부인은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리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 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고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가족도 버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베드로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베드로는 회심을 합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베드로는 회심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위기에 처하면, 우리의 가족을 버릴 수 있는 보통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는 연약한 모습속에서 다시한번 일어설 수 있는 새로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연약했던 베드로가 일설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교사 경건회*
·알림 : 짝꿍초청잔치, 기도회, 오는 금요일 성찬식, 다음주는 부활 주일,
·다음주 설교
제 목 |
하나님의 것 |
말 씀 |
사도행전 5장 1-6절 |
주 제 |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친구들, 일주일간 잘 지냈었요? 4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돌아보면 꽃이 활짝 피고 봄의 향내를 물신 풍기는 계절입니다. 이 4월의 계절에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느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이죠? 그래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란 무엇입니까? 쉽게 생각하면, 헌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또 무엇이 하나님의 것일까요? 바로 주일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 십일조나 헌금, 또는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여 십일조나 헌금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와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반은 오락이나, 먹을 것으로 쓰고, 나머지 반만 하나님께 드리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주일은 하나님의 날인데, 주일날 어디 놀러 가기만 하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것 엮시 하나님의 것을 자기 마음데로 사용하는 위선자나 정직하지 못한 친구들의 모습인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이런 사람의 심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2. 몸 말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열중이었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신도들이 불어났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다 충실히 따르기 위해서 공동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고, 더불어 먹었습니다. 공동생활을 통해 그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바나바라는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과 더불어 함께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 기독교 공동체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시작하였습니다. 그 공동체 가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일원답게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더불어 사용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생겼습니다. 오늘 말씀 사도행전 5장 1-2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를 팔아서, 그 값의 얼마를 따로 떼고 난 나머지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처음에는 아나니아나와 삽비라는 선한 동기로 자신의 땅을 팔려고 하였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들은 자신의 밭을 팔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땅을 팔고 돈을 받는 순간, 그들의 마음에 욕심이라는 사탄이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나머지 부분만 사도들 앞에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끝까지 그들은 그 사실을 숨기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하였던 것입니다.
3. 나오는 말
결국,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소년부 여러분, 아직도 정직하지 못하십니까? 하나님의 것을 여러분의 것처럼 마음대로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정직하게 나왔더라면, 죽음은 모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하나님의 일이나, 하나님의 것을 여러분의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는 친구들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하나님의 것을 여러분의 욕심에 따라 사용하지 마십시오.
잠언 말씀에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여호와의 등불일진대, 만일 그 등불이 빛을 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합시다.
*교사 경건회*
·찬송 : 55장, 56장
·공과 공부
·알림 : 어제(4월5일) 10명의 교사와 저가 교사 단합대회를 가졌습니다. 참석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교사 동정사항
·다음주 설교 : 말씀-베드로전서 2장 9절, 제목-하나님의 자녀, 주제-바른 행실,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9번, 감사찬송-181장
제 목 |
하나님의 자녀 |
말 씀 |
베드로전서 2장 9절 |
주 제 |
은 총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여러분,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잘 지냈었요? 소풍은 다녀왔어요? 이제 마음을 정돈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먼저 우리 잠시 기도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교회 다니는 것이 부끄럽습니까? 여러분은 학교에서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을 조사하면, 적어도 2/3는 다닌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왠지 숙스러운 친구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왠지 식사 기도할 때 남의 눈치를 보면서 기도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고민을 전도사님도 처음에 교회에 다닐 때 많이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전도사님은 ‘내가 왜 교회를 다녀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일까? 교회에 다니기 전에는 이런 고민이 전혀 없었는데.’ 하며 고민하기도 합니다.
우리 친구들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일상생활처럼 느낄 것입니다. 정신 없이 학교생활을 하다가 주일이 되면, 교회 선생님이 전화하니까 겨우 다니는 것이지요. 사실 전도사님은 우리 친구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 와도 별 재미가 없고, 지루하고 딱딱한 예배를 드려야 하고, 어려운 성경 말씀을 공부해야 하니, 오기가 싫은 것이지요.
전도사님이 알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배도둑질을 하고 그것을 즐거워하고, 커서는 방탕한 생활을 한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멀리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하나님은 그를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었습니다.
2. 몸 말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 여러분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분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과 같이 되었으니, 신령한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시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간에, 여러분이 일주일간 하나님 앞에서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교회에 나오는 것조차 부끄럽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여러분은 택함 받은 백성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결코 놓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기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도 여러분이 싫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택한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3. 나오는 말
우리 친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죠?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듯이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는 것이 부끄럽다거나, 습관적으로 다닌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에 의해 붙잡힘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와 그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아시고 늘 감사하면서 거룩산 백성답게 생활하십시오. 오늘 말씀 2장 1-2절에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갓난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거룩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택함받은 백성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54장, 88장
·공과공부 : 5학년-빛과 소금이 되어라. 6학년-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알림 : 없음
·다음주 설교 : 제목-‘그 날이 오면’, 말씀-예레미야 33장14-16절, 주제-정의와 평화[시 인용]
처음 찬송-9장, 성시읽기-11번, 감사찬송-427장.
제 목 |
그 날이 오면 |
말 씀 |
예레미야 33장 14-16절 |
주 제 |
정의와 평화 (시 인용) |
여러분들은 참으로 불쌍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먹을것이 풍부하고 교육도 마음껏 받고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할 수 있는 시대이긴 합니다만, 이런 것이 부족하다고 해서 불쌍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불쌍한 것은 존경하고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이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여러분들과 같은 나이의 친구들에게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으면, 으레 “대통령이요”라고 대답을 곧잘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통령은 여러분들에게 더 이상 존경의 대상, 꿈의 대상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먼 옛날 이스라엘 민족도 같은 상황에 있었습니다. 나라는 둘로 나뉘어지고, 백성들은 타락과 도탄에 빠지고, 이웃나라의 침입으로 백성들은 포로의 신세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민족, 게다가 나라가 두쪽으로 나뉘어져서 한 쪽은 이미 멸망하고, 나머지 한 쪽마저 이제 바빌론의 포로신세가 되어버린 지금,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으며 이를 극복할 지도자마저 잃어버렸습니다.
나라에 지도자가 없으면, 그 나라는 소망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존경하는 지도자가 있습니까? 소년부 친구들이 정말로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위인전을 왜 읽습니까? 여러분들이 뒤따라야할 모범을 찾기 위해서 아닙니까? 지도자가 없는 백성은 불쌍한 백성이고, 지도자가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교회도 영적 지도자가 없으면, 그 교회는 망하고 영적 지도자가 없는 사람은 신앙마저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소년부 여러분, 예수를 본받으십시오. 우리들을 위하여 자신의 핏값으로 우리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신 사랑과 희생의 정신, 여기에 우리가 따라야할 모범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다운 영적 지도자의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그를 따르면 소망이 있습니다.
어제는 37번째 맞는 4·19혁명의 날이었습니다. 여러분은 4·19혁명이 무엇인지 잘 모르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꼭 알아두십시오. 수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의 핏값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하게 한 것이 4·19혁명이었다고.
예수를 따르십시오. 그는 오늘도 “나를 따르라!”하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예수가 오늘 예레미야의 말씀처럼 포로되어 황폐해진 이스라엘 민족, 둘로 갈라진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실 참다운 영적 지도자입니다. 갈라진 우리 민족을 하나로 이어줄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소망 속에서 묵묵히 그분을 따라갑시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521장, 54장
·공과 공부 : 5-주기도문, 6-생명이신 예수님
·알림 : 선물 주기, 임원 모임(1:00)-야외예배·북한동포돕기, 다음주는 월례회
·다음주 설교 : 제목-하늘나라, 말씀-마태13장 3-9절, 주제-new world, 처음찬송-9, 성시읽기-14번, 감사찬송-161 [성경은 하늘나라에 대해서 예기하고 있는 것임]
제 목 |
하늘나라 |
말 씀 |
마태복음 13장 3-9절 |
주 제 |
New World |
참 이상하지요?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제자들에게 말해주신다고 하면서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비유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이상한 하늘나라인 것 같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지고, 어떤 씨는 돌짝밭에 떨어지고,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지니. 그 씨를 뿌린 농부는 한번도 농사를 지어본 일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서 하늘나라는 좋은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은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이상한 하늘나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의 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농사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한강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인근 주변의 마을은 항상 물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우리 친구들도 이런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92년도에도 한강이 크게 범람해서 강 옆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겪은 적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옛부터 강 주변에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들도 요단강이라는 조그마한 강 주변에 많이 모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요단강 계곡에 여행을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느끼기로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요단강은 꽤 큰 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3미터의 폭과 발목까지 오는 깊이의 조그마한 냇가에 불과합니다. 아주 작은 냇가를 강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 비가 한번 오면, 엄청난 양의 비가 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여름에 큰 홍수가 오듯이, 이 요단강에 비가 내리면 아주 큰 비가 옵니다. 그래서 비가 온 후의 요단강은 엄청나게 큰 계곡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큰 홍수를 만드는 이 요단강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방법이 조금 독특합니다. 우리나라의 농사법은 봄에 씨를 기름지고 좋은 땅, 곧 정해진 장소에 뿌려, 일년내내 잘 돌보고, 거름을 주어 가을에 거두어 들이는데 반해서, 이스라엘의 농사법은 우리나라 농사법과는 달리 요단강이 홍수에 의해 범람할 때 홍수가 난 그 물위에 씨를 뿌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이 마르고 빠지면, 물속에 뿌린 씨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는데, 오늘 말씀처럼, 어떤 씨는 돌밭에, 어떤 씨는 가시덤불속에, 어떤 씨는 길가에 뿌려진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기름지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만이 살아 남아서 자라게 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는 그 씨가 어디에 떨어질지 모릅니다. 그 농부는 그저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씨를 뿌릴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에게만 하늘나라를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잘난 사람이거나, 못난 사람이거나 할 것없이 모두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하늘나라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서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오늘 말씀처럼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늘나라란 어떤 곳입니까? 전도사님은 여러분의 나이때 곧, 6학년때 가장 고민하였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전도사님은 어려서부터 어른들로부터, 선생님들로부터 항상 착하게 살아야 하며, 정직해야하고, 친구가 칭찬받을 일을 하면 함께 기뻐해 주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 말씀들이 어린 전도사님의 마음에는 너무도 당연하며 좋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실천하려고 애썼습니다. 옆친구가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으면, 전도사님도 기뻐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의 마음 한 구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왠지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이 끌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왠지 비교가 되고, 시기심 등이 전도사님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않그렇습니까? 불쌍한 경우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지요? 친구가 공부를 잘해서 상을 타면 함께 기뻐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왜 그런데, 기뻐해 주지는 못할 망정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일까요?
하늘나라에는 이런 질투심, 시기심, 경쟁심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돈이 없다고 해서 천대받는 곳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공부를 못한다고해서 기죽는 곳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자기와 놀아줄 친구가 없다고 해서, 자기를 친구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외받는 곳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입니다. 질투심, 시기심, 경쟁심이 없는곳, 오직 사랑만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늘나라는 이런 곳입니다.
소년부 여러분, 이런 하늘나라에 가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 마음을 오늘 말씀에서 나온 좋은 땅에 뿌려진 씨처럼, 선한 마음의 밭을 간직하십시오. 하늘나라는 이런 친구들의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88장, 78장
·공과공부 : 5학년-심판하지 말라(타인의 긍정적인 면을 보라, 판단과 비평의 차이점),
6학년-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알림 : 오늘 2부예배후 이희정 집사님댁에서 월례회가 있습니다. 다음주부터 소예배실 청 소, 다음주는 교회 학교 연합예배(오전 9:00), 북한 돕기 운동.
*교사 월례회*
·말씀 :
·안건 : 5월 4일 교회학교 연합예배 9:00. 예배후 프로그램은?
사회-김종석, 기도-손금섭, 헌금기도-장호산, 헌금송-중·고등부, 설교-백현기
야외예배-간식·선물에 대한 예산지원이 있음-참가명수를 미리파악.
어버이주일 꽃달아드리기-소년부가 2부예배시간 전에 실시.
·5월 월례회는 장신대에서.
·임직식 축하순서.
제 목 |
선한 사마리아인 |
말 씀 |
누가복음 10장 25-37절 |
주 제 |
영생에 이르는 길 = 이웃사랑 |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 날은 우리 소년부 친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한 날이기 때문에 부모님들도 여러분들이 해달라는 것은 뭐든지 다 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주일’하니까 전도사님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도사님이 매우 잘 알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어렸을 때 그 친구의 가정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부모님들이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부모들처럼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해주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한 번은 어린이 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린이 날은 어린이를 위한 날이라고 생각하기에, 부모님들이나 어린이들 모두 이날만큼은 어린이들이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해주는 날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친구의 집은 너무도 가난해서 이런 것을 기대조차 못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꾸어서라도 자식을 위해 뭔가를 해주어야겠다는 부모된 도리로써의 생각에서 친구의 어머님은 어린 자식을 불쌍히 보시며 “뭐 먹고 싶니? 짜장면 사줄까? 어디 놀러 갈까?” 하며 물어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집안 형편을 잘 아는 그 친구는 선뜻 대답을 못했습니다. 짜장면도 먹고 싶고, 다른 친구들처럼 놀러도 가고 싶었지만, 짜장면을 사 먹을 돈조차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 친구는 어머님에게 “짜장라면을 먹고 싶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머님은 말없이 웃으시면서 짜장라면을 사와서 어린 자식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식사를 하는 동안 그 친구는 짜장라면을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님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짜장면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어머님의 심정! 그 친구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짜장라면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2. 몸 말
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가난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곁에는 눈물의 빵조차 먹을 수 없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가 이런 상황속에 있습니다. 자식이 굶주림에 시달려 허덕이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맺힌 눈물만을 흘려야하는 어머니들이 북한의 어머니들입니다.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하루 온종일 일해 겨우 받아낸 옥수수를 가지고 돌아오는 아버지가 북한의 아버지입니다. 먹고 살기위해 계속해서 탈북자가 생기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형제 북한의 현실입니다.
우리 소년부 친구들은 너무도 잘 살아서 굶주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배고프면 사먹으면 되지, 무슨 걱정을 합니까?” 라고 대답하는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굶주리는 것은 북한이 하나님께 벌을 받아 그런 것이니, 그대로 나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습니까? “그것은 내 일이 아니다” 하며 외면해 버리고 있진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삶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친구들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친구들에게 이 한 마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삶을 사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오늘의 말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율법선생이 예수님을 찾아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서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길에서 강도만나 거반 죽게 된 사람을 향하여 당시 도덕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못본체 하며 지나갑니다. 그렇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으며 암송하고 다녔던 제사장과 레위인들! 그러나 그들에게는 행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그렇게도 미워했던 자들, 혼혈족속이라고 그렇게도 무시했던 사마리아인, 그 사마리아인만이 그 강도만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물어 보았던 율법선생도 사실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에게서 부족한 것은 아는 것만큼 행함이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3. 나오는 말
그렇습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소년부 친구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매주일 교회에서 공과공부를 통해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배워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네 이웃, 곧 북한의 친구들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북한은 올 5·6·7월 달에 가장 큰 식량난의 위기에 처한다고 합니다. 또 신문에 나와 있듯이, 어떤 경우는 너무 굶주려서 창자가 꼬인 어린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요,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지금 대통령을 비롯한 나라의 정치인들은 우리의 형제자매가 굶주리는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들은 심판날에 지옥으로 갈 사람들입니다.
소년부 친구들, 하나님께서 오늘 이웃사랑을 실천한 친구들에게 어떠한 말씀을 하시는지 마태복음 25:35-40의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다음주 설교*
·말씀 : 요한일서 4장 10-11절, 잠언 23장 22-25절
·제목 : 어버이를 공경합시다.
·주제 : 효도
·처음찬송 : 9장
·성시교독 : 22번
·감사찬송 : 379장
->하나님이 사랑했던 아들 예수를 우리를 위해서 화목제물로 허락한 희생적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우리를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을 진실로 사랑하자.
제 목 |
어버이를 공경합시다 |
말 씀 |
요일4장 10-11절, 잠23장 22-25절 |
주 제 |
효 도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친구들, 일주일간 잘 지냈어요? 지난 5월 5일은 무슨 날이었지요? 모르는 사람이 없겠죠? 그렇죠, 어린이 날이었죠? 어린이날에 엄마, 아빠랑 같이 즐겁게 놀았어요? 그럼, 5월 8일은 무슨 날이지요? 그래요. 어버이 날이었죠? 우리 친구들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꽃 달아드렸어요? 달아드린 친구만 손 들어보세요. 우리 소년부 친구들은 아빠, 엄마를 매우매우 사랑하는 것 같아요. 오늘 설교 말씀 제목이 뭐예요? 큰 소리로 한번 읽어볼까요? 그래요. “어버이를 공경합시다” 이예요.
2. 몸 말
사실 ‘어린이 날’ 이나, ‘어버이 날’ 은 기쁘고 즐거운 날이지만, 때론 가난한 사람들이나 부모님이 안계신 친구들에게는 기쁜 날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상처만 주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해야할 부모님이 안계시거나, 사랑받아야할 자식이 없는 경우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말하기를 “믿음, 소망, 사랑”중 ‘사랑’이 으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경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씁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계명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 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지요. 이 중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한번 생각해 볼까 하는데, ‘네 이웃을 사랑하라’ 말에서 가장 첫째가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는 계명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두 번째로 지켜야할 말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 두 번째 말씀, 곧 ‘부모님 사랑’을 말하려 합니다.
오늘 말씀 잠언에서 ‘너의 아버지를 즐겁게 하고, 네 낳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여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를 즐겁게 하는 것과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친구들과 싸우는 자식이 아버지를 즐겁게 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죠! 부모님께는 교회간다고 헌금을 받아와서, 교회에는 오지도 않고 헌금할 돈을 오락실이나 군것질하는 친구들이 아버지를 즐겁게 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죠? 단지 공부만 잘하는 것이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모님을 사랑하되 주님 안에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안에서 부모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바로, 주님을 사랑하듯, 부모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친구들이 하나님을 무서워 하듯이 아버지를 두려워해야 하고, 친구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듯, 어머니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말씀 요한일서 4장 10-11절에서 말씀하고 계시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한 것처럼, 우리 친구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부모님을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엄마, 아빠는 대단히 큰 사랑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예요. 아주 작은 말이 친구들의 엄마, 아빠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나주에 효도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친구들은 절대로 효도를 하지 못합니다. 그때는 이미 늦어버릴 것입니다. 지금부터 효도하세요.
3. 나오는 말
소년부 친구들은 엄마, 아빠를 사랑하세요? 공경하세요? 대답이 작은 것 보니, 엄마, 아빠를 별로 사랑하지 않나 보내요. 다시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큰 소리로 대답한번 해보세요. 정말 사랑하세요? 그래요. 전도사님도 아버님, 어머님을 무척 사랑한답니다. 오늘 집에 돌아가서 엄마, 아빠께 꼭 말씀 드리세요. “이제부터는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속 안썩이는 착한 어린이가 되겠습니다”하면서, 엄마, 아빠 얼굴에 뽀뽀를 꼬~옥 해주세요. 알았죠? 이것은 전도사님과 약속하는 것이예요.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너를 낳아 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늙은 어머니를 업신여기지 말아라. 진리를 사들이되 팔지는 말아라.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렇게 하여라. 의인의 아버지는 크게 기뻐할 것이며, 지혜로운 자식을 둔 아버지는 크게 즐거워할 것이다. 너의 어버이를 즐겁게 하여라. 특히 너를 낳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여라.”
*교사경건회*
·찬송 : 453, 414
·공과공부 : 5학년-약속의 땅을 향하여(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소망을 갖도록 한다)|| 12과 불타는 가시덤불 =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는 어린이가 되도록), 이사야 41장 10절 참조.
6학년-말씀을 지킨 아들(龍頭蛇尾 머리는 용, 꼬리는 뱀 || 처므에 시작된 계획은 용처럼 그러 듯해 보이나, 나중 결과는 뱀의 꼬리처럼 보잘 것 없음을 말함)
·알림 : 어버이주일을 기념해서 아이들에게 편지쓰기. 꽃 달아드리기-아이들 10명 정도[6학년](예배를 09:55-10:30까지), 임원모임. ‘권사님’ 호칭문제.
·다음주 설교 : 말씀-열왕기하 2장 12-14절, 제목-스승과 제자, 주제-참스승을 만나야 한다.
처음찬송-9장, 성서교독-10번, 감사찬송-189장.
[스승의 주일]
제 목 |
스승과 제자 |
말 씀 |
열왕기하 2장 12-14절 |
주 제 |
참스승을 만나야 한다 |
소년부 친구들, 여러분들을 누구를 좋아해요? 존경하는 분 계세요?
소년부 여러분 삼국지를 잘아시죠?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에 대해서 말할까 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곁을 떠나 학문의 스승을 찾아 공부하러 떠났습니다. 때는 한나라가 기울어 가고 정부는 부패했고, 이제 바야흐로 나라는 망할 운명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유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유비는 한나라의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좋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노식이라는 늙은 노인에 의해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유비는 큰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한편 어떤 늙은 노인 노식이라는 사람도 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너무 늙어서 그 강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인은 유비에게 큰 강을 건널수 있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비는 그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늙은 노인 노식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넜습니다. 그 늙은 노인 노식은 유비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봅니다. 유비는 기울어져가는 한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관직에 등용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런 유비의 생각을 알고 늙은 노식은 답례를 한다는 의미에서 아주 오래된 큰 고목나무 밑으로 가서 잎과 줄기가 온통 말라 비틀어진 고목나무를 가리키며 장차 유비에게 한가지의 중요한 가르침을 깨닫게 해 줍니다. 늙은 노식은 큰 고목나무만을 가리키며 유비에게 잘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그냥 떠나 갑니다. 유비는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질때쯤 유비는 늙은 노식이 가리키는 큰 고목나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닫고 자신의 인생방향을 그 순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 큰 고목나무는 너무 늙어서 잎이며, 줄기며 할 것 없이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큰 고목나무가 말라 비틀어진 것은 잎이나 줄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 고목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뿌리부터 이미 썩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울어가는 한나라를 살리기 위해 공부해온 유비는 이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이미 국운을 다한 한나라에 관직에 들어가서는 한나라를 재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 유비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꿈을 가지게 됩니다.
소년부 여러분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우리 친구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름으로 시험볼 때 열심히 노력도 하지 않고 성경에 무엇이든지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신다고 생각하여 시험 전날까지 공부한자 하지도 않고 시험 전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서 그 친구가 시험을 잘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야할 부분이 있고, 사람이 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이것만큼은 자기가 원하는데로 되질 않습니다. 유비는 이 좋은 스승을 우연히 만났지만, 이 만남을 통하여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오늘 말씀속에는 두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명은 스승이고 다른 한명은 제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엘리야, 그는 기도로 바알신들을 물리친 아합왕 시대의 최고의 예언자였습니다. 이제 그는 나이가 많이 들어 하늘나라로 병거타고 올라갈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 자신의 후계자를 뽑아야 하는데, 자신의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 한명을 뽑으려 합니다. 후계자로 뽑힌 사람은 엘리사였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하나님께로 부르심을 받을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고 이제 자신이 죽기 전에 자신이 몸담고 있던 선지자들을 배출해내는 선지학교의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서 벧엘과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 수련학교를 방문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엘리사라는 제자가 스승 엘리야의 걸음하나하나를 끝까지 뒤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스승 엘리야는 귀찬키도 하여,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의 분부대로 벧엘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엘리야의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잠시후면 죽게될 스승 엘리야에게서 엘리야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능력을 물려받기를 원했습니다. 즉,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은 엘리야로부터 엘리사는 능력을 받습니다. 오늘 말씀은 엘리야가 하나님께로 승천할 때 엘리사가 사라져버린 엘리야를 부르짖으며 울부짖는 모습이 나오고, 이어서 엘리야가 사라지면서 엘리야로부터 두갑절의 능력이 엘리사에게 전수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 증거로 엘리사는 엘리야가 했던 방식으로 엘리야의 겉옷으로 요단강을 두 번치니 요단강이 갈라진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엘리사는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예언자 엘리야를 만나 그에게서 엘리사는 하나님의 영감을 얻어냈습니다. 그리고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소년부 친구들은 정말로 여러분들을 인도해줄만한 스승이 계십니까? 그저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선생님이 스승이 아닙니다. 진정한 스승이란,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인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스승인 것입니다. 엘리야를 만났던 엘리사처럼 여러분들도 정말로 하나님이 인도하신 훌륭한 스승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교사 경건회*
·찬송 : 414, 409
·공과공부 : 5·6학년 모두 사도행전 2장 1-4절의 내용 = 성령강림
·알림 : 예배사회자 문제, 예배시간에 꽃 전달(아이들에게 꽃을 미리 전달-최진선 담당)
다음주 월례회(장신대),
·다음주 말씀 : 말씀-전도서 9장 :13-18절, 제목-의인도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주제-의인의 고난, 처음찬송-9번, 성시교독-7번, 감사찬송-252장
제 목 |
의인도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
말 씀 |
전도서 9장 13-18절 |
주 제 |
의인의 고난 |
1. 들어가는 말
소년부 친구들, 일주일간 잘 지냈어요? 소풍은 잘 갔다 왔어요? 전도사님도 친구들처럼 소풍을 갔다 왔어요. 그런데 너무 힘들었어요. 버스를 하루에 8시간씩 탔거든요. 이제는 5월도 마지막 주일이예요. 너무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듯이 우리 소년부 친구들의 신앙도 마음도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어요.
2. 몸 말
오늘 말씀 제목을 한번 읽어 볼까요? “의인도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요. “의인도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예요. 그러면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볼까요? 소년부 친구들이 한절을 읽고 전도사님이 한절을 읽을께요.
옛날 이스라엘에 조그마한 나라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나라에는 어리석고 게으름뱅이이며, 매일 매일 술만 먹고 나라는 돌보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임금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힘이 센 이웃나라가 이 조그마한 나라를 처들어왔어요. 임금은 너무도 당황했지만, 그 임금 주변에는 임금과 그 나라를 걱정하며 충성을 받치는 신하들이 없었어요. 조그마한 나라였기에,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었는데, 힘이 센 이웃나라가 이 성벽을 모두 포휘했어요.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 났구나’ 하며 체념하고서 죽을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힘이 센 나라는 점점 더 위협을 하며 성벽으로 다가오고 있었어요. 백성들은 울며, 공포에 떨고 있었어요. 임금을 원망하기도 하고 성벽을 몰래 빠져나가다 이웃 백성에게 붙잡혀 죽는 사람도 생겼어요. 포위는 점점 좁혀져서 더 이상 버틸수 없게되었을 때, 그 조그마한 나라에 살고 있는 한 가난한 선비가 나타났어요. 그 선비는 비록 가난하여 농사나 지으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너무도 지혜로운 사람이었어요. 그 가난한 선비는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속에서 다른 백성들처럼 달아나거나, 불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슬기로운 지혜로 싸움을 하지 않고 힘이 센 이웃나라를 물리쳤어요. 백성들과 임금들은 너무 기뻐했으며, 그 가난한 선비를 존경했어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간이 얼마 흐르자 그 조그마한 백성들은 임금님을 포함해서 아무도 그 가난한 선비를 기억하지 못했어요. 사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가난한 선비를 오래 기억하지 못했어요. 대대 자손들에게 그 슬기로운 가난한 선비에 대해 말했을 법도 한데, 왜 그 가난한 선비를 오래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었을까요?
그 선비는 가난했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정직하지만, 의롭지만, 그러나 힘이없고, 소외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가난한 선비는 비록 정직하였지만, 의롭고 슬기로워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지만,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오늘 말씀 16절을 보면, ‘“지혜가 무기보다 낫다”고, 나는 늘 말해 왔지만, 가난한 사람의 지혜가 멸시받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가난한 사람의 말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어요. 아무리 지혜롭다고, 아무리 정직하다고, 아무리 의롭다고 할지라도, 그런 사람이 반드시 존경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의롭고, 정직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고난을 당하며,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으며, 인정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직하면, 의롭게 생활을 하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3. 나오는 말
소년부 친구들, 정직하게 사세요. 의로운 삶을 사세요. 슬기로운 자가 되세요. 그러나 그런다고 반드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멸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세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정직하고 의롭게 사는 친구들에게는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바르게 사는 것이 어렵더라도, 정직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어렵지만,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이 어렵지만, 하늘나라에서 여러분들을 향한 큰 상급을 생각하며 끝까지 인내하며 의로운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한구절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364장, 347장
·공과공부 : 6학년-눅19:11-27(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책임의 중요성), 칭찬받는 사람 ||
5학년-출12:29-36(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 애굽에서 떠나 오다
·알 림 : 월례회는 오후 1시에 교사실에서 있습니다.
·다음주 설교 : 주중에 삐삐로 알려드립니다.
*5월 월례회*
·말 씀 : 잠언 11장 1-4절
·월례회 내용
@Home Coming Day - 22일 (반 재적 인원이 적은 반은 전도)
순서 : 공과공부->예배->2부활동(장소는 지하 중등부실)
준비 과정 : 기도회(수요예배후), 편지 보내기(2회-색깔 있는 편지지->8일, 15일)
반별 기도회-매주일 공과공부시간에 5분을 할애하여 통성으로 기도
22일 예배는 인형극, 2부활동은 상담교실?(새신자는 특별상담 및 신앙 교육)
@여름성경학교 교사 확보 및 교사 강습회
제 목 |
예수님의 향기 |
말 씀 |
고린도후서 2장 15절 |
주 제 |
예수님을 닮기 |
1. 도 입
소년부 친구들, 안녕하세요? 마음을 정돈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먼저 잠시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저희들의 마음을 열어주시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귀기울이게 하여 주십시오. 말씀을 전하는 자나 말씀을 듣는 친구들 모두에게 같은 은혜를 허락해 주어서 열린마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지혜의 왕’ 하면 누가 있습니까? 그래요.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었지만 걱정이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왕이 되었지? 나는 아직 어리고 지혜도 없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데···”
솔로몬은 걱정을 하고 있다가 아버지 다윗이 어려울 때 기도한 것이 생각나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솔로몬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다른 것을 구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라를 잘 다스릴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솔로몬의 마음을 보시고 지혜 뿐만 아니라 오래 살게도 해주시고 나라가 부자가 되게도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지혜가 많은 왕이라는 소문이 온 나라에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의 지혜에 감탄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보았습니다. 이런 소문은 이웃나라에도 전해져서 시바 나라의 여왕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시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몸소 이스라엘 나라까지 왔습니다. 솔로몬 앞에 나타난 시바 여왕은 예쁜 꽃 두송이를 가지고 와서 솔로몬의 방안에 두고는 거리를 두고 멀리서 눈으로만 어느 꽃이 진짜 꽃인지 알아 맟춰 보라고 하였습니다. 둘 가운데 하나는 종이로 만든 꽃이었는데 사람의 눈으로는 도저히 가려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한 솔로몬은 신하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라.”
솔로몬의 명령에 신하들이 창문을 열자 나비들이 날아와서 꽃에 사뿐히 앉았습니다. 이윽고 솔로몬은 말하기를,
“나비가 앉은 그 꽃이 진짜 꽃입니다.”
나비는 향기가 있는 꽃에 날아가서 앉은 것입니다. 평범한 사실이지만, 진실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2. 전 개
냄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기가 있고 싫어하고 피해 다니는 나쁜 냄새가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도 누구나 다 이런 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일 착한 일을 많이 하여 아름다운 향기를 나타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나쁜일 못된 일을 하여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며 피해 다니는 나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은 플라스틱이나 헝겊으로 만든 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꽃들은 시들지 않는다고 자랑하거나 예쁘다고 자랑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생명이 없고 향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향기를 내던 예쁜 꽃도 죽으면 썩어서 썩는 냄새가 나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죽으면 썩어서 다른 사람에게 썩는 냄새를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이 살아 있어서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야 하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잘 믿어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한다고 하여 감옥에 가두어 놓았을 때에도 얼마나 모범이 되며 믿음을 잘 지켰는지 일본 사람들까지 “옥중성자”라고 불렀습니다.
해방이 되자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에 있는 애양원에 가서 문둥병자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아 외롭게 살던 문둥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준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계셨던 손양원 목사님은 아들 동인이와 동신이를 죽게 한 공산당도 살려주게 하여 그 공산당을 자신의 양 아들로 삼았던 사람이었습니다.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모두들 도망가 목숨을 건지기에 바쁠 때, 손양원 목사님은 “이 양떼들을 두고 내가 어디에 가겠습니까? 난 이분들과 같이 이곳에 있겠습니다.” 하면서 도망 가질 않았습니다. 끝내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당에게 잡혀 총살을 당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정말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옮긴 아름다운 예수님의 향기였습니다.
3. 결 론'
소년부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이름을 모르는 꽃들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아름다운 향기를 냅니다. 우리도 누가 알든 모르든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냅시다.
누구든지 깊은 산 속에서 향기나는 꽃을 보면 좋아하며 옆에 있고 싶어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내면 누군가가 우리를 좋아하며 우리의 곁에서 친구가 되어줄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08:25에 시작]
·찬 \송 : 505
·공과공부 : 5학년-고달픈 광야생활, 출애굽기16:13-16, 6학년-심판하신다, 마태복음25:31-46.
·알 림 : 공과공부시간에 5분씩 할애하여 'Home Coming Day'를 위해서 기도할 것.
성경학교를 위해서=위원회 조직(오후1시에 잠시 모임)
기도회가 수요일마다 = 7월 여름성경학교때까지
단합대회가 있습니다 = 6월6일, 시 간 08:00, 오후예배 끝난후 소년부실 청소
·다음주 설교 : 말씀-사도행전 4장 19-20절, 제목-진짜용기, 주제-참된용기,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0번, 감사찬송-427장.
1997년 6월 8일 [imitare]
제 목 |
진짜 용기 |
말 씀 |
사도행전 4장 19-20절 |
주 제 |
참된 용기 |
1.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용기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용기있는 사람인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엉뚱한 짓을 잘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용기를 보여 주기 위해서 맥주병을 손으로 깨뜨리다 그만 크게 다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가의 용기를 보여 주기 위해서 20그릇이나 되는 짜장면을 억지로 먹다가 배탈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용기는 아닙니다.
전도사님도, 어렸을 때, 다른 친구들에게 용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다가 다리가 부러져 두달간 기부스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용기는 아닙니다.
어떤 친구는 문방구에서 주인이 지켜 보는데서 물건을 훔치고 자기 뱃장이 크다고 자랑하는 어린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그런 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간이 큰 것도, 뱃장이 두둑한 것도 진정한 용기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것 뿐입니다.
2. 전 개
베드로도 처음엔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나서기 좋아했고 뱃장을 튀기며 큰 소리치기를 좋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갯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실 때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이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을 둘러보며 큰 소리 쳤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아시고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그가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여 장담하였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 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체포되셨을 때 그의 용기는 시들어 버린 꽃처럼 맥을 못추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한 큰소리가 있어서 할 수 없이 멀찍이 예수님을 좇아 대제사장의 집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대제사장의 뜰에서 자기의 얼국을 아는 계집 종에게 처음으로 그 용기가 시험받게 되었습니다.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그의 용기가 진짜였다면 이 기회에 떳떳이 자기를 드러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계집 종의 손가락 끝에도 가슴이 서늘하여 “네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딱 잡아 떼었습니다.
두 번째 종이 또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베드로는 그 소리, 그 뱃장, 그 용기를 다 어찌했는지 벌벌떨며 이젠 부인하고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용기가 진짜임을 보여주기 위한 마지막 시험입니다. “너도 그 당이라.”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라 버리던 그 용기가 다 어디 갔습니까? 베드로는 또 부인하고 맹세할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저주까지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러자 닭이 울고,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밖에 나가 통곡을 하였습니다.
3. 결 론
그러나 오늘 말씀을 좀 보세요. 베드로는 달라졌습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 것도 아무도 무서워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가 참 용기의 사람이 된 것은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아가서 예수님을 못박았던 사람들을 향해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살리셨으니, 그 예수 외엔 천하에 구원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
베드로와 요한의 말에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깜짝놀랐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예수의 이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히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 니할 수 없다.”
베드로에겐 하나님 이외에는 두려울 것도, 두려운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용기요 진짜 뱃장입니다.
4. 나오는 말
우리에게도 용기는 꼭 필요합니다. 용기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속에서 나는 자신의 용기입니다. 이 용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스로가 용기 있다고, 대담하다고, 뱃장이 세다고, 간덩이가 크다고 속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자기 목숨을 요구하는 일 앞에서는 곧 시들어버리는 용기입니다. 이것은 참된 용기가 아닙니다.
또 한가지 용기가 있습니다. 이 용기는 자기 자신 속에서 나지 않습니다. 이 용기는 위로부터 오는 용기입니다. 이 용기는 믿음의 용기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가장 무서워 하는 죽음까지 깨뜨리신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용기입니다. 오순절 이후에 베드로가 가졌던 용기입니다. 이 용기가 진짜 용기입니다. 이 용기는 한 분 하나님외에는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이 용기는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습니다. 이 용기는 하나님의 눈치만 살핍니다. 하나님이 ‘예’ 하시면 나도 ‘예’ 하고, 하나님이 ‘아니오’ 하시면 나도 ‘아니오’ 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사랑하는 흰돌교회 소년부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의 제자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용감하게 살아갑시다.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세상 그 어느 것도 그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 참된 용기를 구합시다. 하나님의 눈치 이외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맙시다. 언제라고 ‘예’ 와 ‘아니오’를 분명히 합시다. 그래서 진짜 용기 있는 사람이 됩시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78장, 88장
·공과공부 : 5학년-“15장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 출애굽기 19장 1-6절
6학년-“좋은 땅에 뿌려진 씨”, 누가복음 8장 4-8, 11-15
·알 림
@하나님의 은혜로 6월6일 교사 단합대회가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함께 참석해주시고, 뒤에서 수고해 주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성태 집사님 : 된장찌개, 박민희 선생님 : 새 모델 탄생, 신훈 선생님 : 길을 잃어버렸다 돌아온 탕자 ]
@계속해서 수요일 예배후 기도회가 있습니다.
@매주 공과공부 시간에 Home Coming Day를 위해서 5분간 함께 기도.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나오지 않는 아이들에게 편지 쓰기.
@여름 성경학교 준비 위원회가 오늘 오후 1시에 교사실에서 모입니다. 안건은 성경학교 일정표.
@여름 성경학교 담당 선생님을 정교사 위주로 계획을 세움.
·다음주 설교 : 말씀-요한복음 10:9, 제목-네가 어디 있느냐?, 주제-구원,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9번, 감사찬송-240장.
# 여름 성경학교 일정표 내용.
제 목 |
흰돌인이여, 일어나라! |
말 씀 |
이사야 60장 1-3절 |
찬 송 |
54장, 414장, 542장 |
1. 머리말
저희 「흰돌교회二十年史」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면목동에 흰돌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펼쳐진 것은 1970년이었다. 흰돌교회의 설립은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형성과정과 유사하다. 초대교회의 형성과정이 선교사들의 복음전도보다도 먼저 평신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우리 민족에게 소개되어 선교사들을 이 땅에 요청한 것처럼 흰돌교회 역시 평신도들로부터 교회설립의 의지가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
여기에서 저의 눈을 멈추게 한 부분은 “흰돌교회 역시 평신도들로부터 교회설립의 의지가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는 부분입니다.
지금도 그때의 주역들이 계시지만, 흰돌교회는 평신도인 여러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또한 바로 그 평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우리 흰돌교회가 올해로 27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30주년을 바라볼 나이가 3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3년후면 21세기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해이기도 합니다.
동양의 성경책이라 읽컬어지고 있는「論語」제2편 위정(爲政)편 4장에 보면 공자는 자신의 정신적 발전단계를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열 다섯살에는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살에는 이립 곧, 자기의 뚜렷한 입장을 세웠으며, 마흔살에는 불혹 곧,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었고, 쉰살에는 천명 곧, 하늘로부터 이어받은 사명을 깨닫게 되었으며, 예순 살에는 누구의 말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나이 삼십에 而立 즉, 뜻을 세웠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 흰돌교회도 뜻을 세울 나이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而立할 나이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而立한다는 것을 요즈음 말로 바꾸면 ‘vision’(꿈)을 세웠다는 말입니다.
「흰돌교회二十年史」를 보면, 1970-1979년의 9년간을 “교회 설립과 조직”의 시기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80-1990년 10년간을 “전진하는 교회”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2000년까지를 “비젼을 심는 교회”라는 타이틀을 걸고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인 21세기를 맞이하게 될 때, 우리 흰돌교회는 뜻을 세울 而立의 나이인 30주년을 맞는 해로서, 21세기 흰돌교회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본 론
而立할 나이에 이른 흰돌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꿈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다가올 21세기에 흰돌교회가 나아가야할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디를 향해서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까? 어떤 꿈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까? 우리가 소망하는 세계는 어떤 곳입니까? 우리의 최종 목표점은 어디입니까?
우리는 그 답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이사야서의 주인공인 이사야가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부터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로 3대에 걸처 예언한 사람입니다. 그 동안에 아모스의 예언대로 북 이스라엘은 함락되고, 남 유다왕국도 속국이 되는 쓰라린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사야는 그 같은 민족적 위기의 한가운데서 일생을 바쳐 싸운 예언자였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속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민족과 멸망해가는 유다 왕국을 향하여 희망적인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사야의 말씀은 장차 받을 예루살렘의 영광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지금은 너희가 속국이지만, 이제 곧 하나님은 너희 이스라엘 민족위에 구원의 빛을 비추실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나라들을 비출 것이며,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의 빛을 보고 찾아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흰돌교회 성도 여러분, 그 구원의 빛, 그 광명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곳, 하늘나라가 아닙니까? 그리고, 그 하늘나라가 우리가 꿈꾸어야할 목표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에 선포하신 말씀을 두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늘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말한 것은 모두다 “하늘나라”입니다. 씨뿌리는 비유도 그렇고, 겨자씨 비유도 그렇고, 곡식과 가라지 비유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열처녀 비유도, 달란트 비유도, 양과 염소 비유도, 포도원 농부 비유도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하늘나라가 어떤 곳이기에 예수님은 그토록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서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얘기한 것입니까?
그 답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요한계시록 21장 3-4절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늘나라는 눈물을 흘리는 자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그 눈물을 닦아 주시는 곳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 나라는 한의 민족입니다. 한이 너무도 많아서 기뻐도 우는 민족입니다. 저는 지난 1월에 볼일이 있어서 토요일에 교회에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어떤 집사님의 어머님 회갑에 초대되어 박영근 목사님과 권사님 한분과 몇몇 집사님들과 함께 회갑연에 초대되어 식사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자녀들의 장기자랑을 보고 있을 때, 어떤 자녀 한 분이 ‘어버이 은혜’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으레하는 노래인데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함께 계셨던 권사님도 집사님들도 어느덧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왠지 모를 슬픔이 우리 모두에게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바로 이런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원통하고 한이 맻혀서 어디 하소연 할곳도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에는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먹고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곳이 아닙니다. 한푼의 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몽땅 내팽개쳐야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정복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 경쟁사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평화 ‘샬롬’이 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 하늘나라가 예수님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음심과 부활 하심으로 하늘나라는 이 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샬롬의 하늘나라는 성자 프란체스코의 기도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이런 것이 행해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평화가 임합니다.
흰돌교회 성도 여러분, 저 멀리 있는 곳만이 하늘나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하늘나라는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그 하늘나라를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진정한 목표이자, 꿈인 하늘나라를 이 땅위에 임하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 흰돌교회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두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참다운 코이노니아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 빌립보서 2장 1-4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코이노니아’ 란 ‘성령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절의 말씀에 나오는 ‘성령의 무슨 교제’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무슨 교제’(τισ κοινωνια πνευματος) 가 바로 ‘코이노니아’를 의미합니다. 성령안에서 성도들간에 교제하는 것이 코이노니아입니다.
빌립보서 2장 1-4절은 말씀 전체가 바로 ‘성도의 교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참다운 교제란 말씀처럼,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 것”이 바로 참다운 성도의 교제입니다.
제가 알기로, 저희 흰돌교회가 저녁 7시 예배에서 오후 3시 예배로 바뀐 이유는 오전 예배를 드리고 오후 3시 예배를 드릴때까지 집에 가지 않고, 교인들간에 ‘성도의 교제’를 하라는 의미에서 실시한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일부 집사님들이나, 연세가 드신 어른들만이 찬양하고 기도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 특히 청년들은 오전 예배만을 드리고, 교회에서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다들 바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다들 바쁘면, 주님과의 교제는 언제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은 단지 예배만을 드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주일간 세상속에서 살면서 힘들고, 절망적이었던 일들을 성도들간에 이야기하고 서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아갈 때, 신앙의 성숙이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힘을 얻어서 다시금 일주일간 하나님의 자녀답게 열심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늘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교회의 문턱이 낮아져야 합니다.
말씀 누가복음 4장 18-19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한 첫 취임설교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밝히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진자, 힘이 있는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포로된 자와, 눈먼자, 눌린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대형화 되고 조직화 되면서 소외당하는 계층이 생겼습니다. 바로 돈이 없고, 힘이 없어 사회로부터 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눈에는 지금의 한국교회의 문턱이 높아만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어쩔수 없이 조직적이게 됩니다. 그러나, 조직은 때때로 교회 공동체를 경직화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직이라는 것은 잘 돌아가면 순기능을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오히려 역기능을 하여 교회 공동체를 둔화 시켜 버릴 수 있습니다. 기업체식으로 구조화 되어가는 교회 조직체에 의해,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은 때때로 상처를 받고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흰돌교회가 속해 있는 면목동 일대는 대체로 서민계층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님들도 마찬가지로 서민계층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강남의 대형교회가 하는 식으로 해서는 교회가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더더욱이 교회의 문턱이 낮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이 확장되기 어렵습니다.
교회의 문턱이 낮아여야 함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개개인의 마음이 겸손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과감히 개혁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개혁은 사람이 변해야 이루어집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먼저 그리스도의 겸손을 실천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의 변화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교회의 구조 개혁입니다. 교회는 성도님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모여서 성도간에 참다운 성도의 교제를 나누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열린교회가 되도록 구조를 개혁해야 합니다.
조직이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교회 공동체가 갖고 있는 복음의 역동성은 훼손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래 ‘新바람’ 의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신바람이 나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에 취해 신바람나게 기도하고 신바람나게 봉사하며 신바람나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의 문턱이 낮아지고 성도들간에 겸손이 풍성해져서 신바람나게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흰돌교회 성도 여러분, 하늘나라를 외치시기 바랍니다. 그 하늘나라가 여러분 가운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3. 맺음말
흰돌교회 성도 여러분, 21세기에 한국교회를 이끌어나갈 교회가 누구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바로 꿈을 품은 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을 품은자에게 응답하십니다. 꿈을 가진자에게 하나님은 그 꿈을 이루어주십니다.
21세기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21세기의 흰돌교회는 而立 즉, 뜻을 세워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뜻을 세운 교회만이 한국교회를 개혁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뜻을 품은 교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은 야곱·모세 선교회의 헌신예배입니다. 야곱·모세 선교회는 40에서 50대 사이의 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0대는 ‘不惑’의 나이요, 50대는 ‘知天命’의 나이입니다. 더 이상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40대와 하늘의 뜻 곧,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50대의 장로님, 집사님들로 이루어진 곳이 바로 야곱·모세 선교회입니다. 불혹의 나이에, 더군다나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나이의 여러분들이 바로 위로는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아래로는 자라는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분들입니다.
21세기의 흰돌교회가 한국교회의 빛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는 바로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여러분들이 흰돌교회의 vision을 제시하고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이끌어나갈때에야 바로 흰돌교회는 한국교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흰돌교회를 누가 이끌어 가겠습니까? 단지 목사님 혼자서만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흰돌교회의 시작은 평신도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흰돌교회 성도 여러분, 꿈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21세기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21세기의 한국교회는 오직 꿈을 품은 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소중히 간직하시고, 그 꿈을 향해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이루어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개혁해 나아가는 흰돌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기 도 *
“사랑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잘 것 없는 저희들에게 한없는 은총을 허락해 주시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믿는 백성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허락하시어 이 땅위에서 하늘나라의 백성들 답게 살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그러나 저희들은 연약하여, 그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희들의 교만과 이기심으로 오히려 하늘나라 백성답게 살지 못했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다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서 고백하고 간구하오니, 저희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해 주시고, 형식적이거나, 겉치레하는 인사가 아닌 진정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게 해 주시고, 교회로부터 그리스도의 겸손이 성도들 사이에서 향기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21세기 흰돌교회가 한국교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특별히 저희 야곱·모세 선교회를 기억하여 주시어서, 저들이 흰돌교회를 이끌어 나아가고 봉사할 때, 저들을 통해서 흰돌교회의 꿈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을 통하여 흰돌교회가 한국교회의 빛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니다. 아멘.
제 목 |
네가 어디 있느냐? |
말 씀 |
요한복음 10장 9절 |
주 제 |
구 원 |
1. 서 론
하나님이 어딨어·······.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속이고 도둑질 하고 서로 죽였습니다.하나님께서 온 땅을 내려다 보시니 온 땅이 터질 만큼 죄로 가득 했습니다.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생각하는 것이 늘 악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모든 것을 땅 위에서 쓸어 버리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오직 한 사람 노아만은 늘 외롭게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핍박했지만 노아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세상을 멸할 터이니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주의 생김새와 크기, 방주 안에 들어 가야할 것들에 대해 자세히 일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노아는 가족들과 함께 배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욕하며 방해하였을 것입니다. “저 큰 배를 지어서 뭐에 쓴담?”
“배를 산 꼭대기에서 만드는 바보 천치들·······.” “저 영감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비는 무슨 비야.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노아와 그 가족은 들은 체도 않고 열심히 배를 만들어 갔습니다. 배가 다 완성되기까지는 무려 120년이나 걸렸습니다. 12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일했습니다.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그 피눈물 나는 고생 끝에 배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심판이 임박해 와도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며 정신 못차리고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짐승들을 다 들여보내고,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배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손수 그 하나밖에 없는 문을 닫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믿든지 말든지 하나님의 약속은 이뤄졌습니다.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람들은 처음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흘 스무 날 계속 비가 쏟아지고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높은 산봉우리까지 물에 잠기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노아를 불렀을 것입니다. 아무리 슬피 울며 방주문을 두드려도 이젠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닫으신 문을 누가 열겠습니까? 방주문은 오직 한 개 뿐입니다. 그러나 문안에는 구원이 있었습니다.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 뿐인 문밖은 죽음과 공포와 저주와 슬픔 뿐입니다. 부자도, 마음이 착하다고 사람들에게 칭찬 듣던 사람도 별 수 없습니다. 방주의 문은 오직 하나, 문안에 있느냐 문밖에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2. 본 론
하늘나라의 문도 오직 하나 뿐입니다. 하늘나라엔 뒷문이 없습니다. 단 하나의 문이 있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에 빠져 하나님의 영광스런 나라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인하여 우리가 죽을 것 대신 그 아들을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죽음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셔서 하늘에 이르는 문이 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문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착한 맘으로도, 돈으로도 어쩔 수 없습니다. 문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배의 문이 오랫동안 열렸던 것처럼 하늘나라의 문도 지금까지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옵니다. 어느 날인진 모르지만 방주문을 닫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 문을 닫으실 날이 옵니다. 아직 문이 열려 있을 동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 후엔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 안에만 있다면 염려할 것 없습니다.
3. 결 론
죄를 짓고 나무 뒤에 숨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신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을 향하여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은 하늘나라의 문이신 예수님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아직도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어 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지 않는 어린이는, 아무리 예뻐도, 착해도 문밖에 있는 것입니다. 아직 늦기 전에, 하늘 나라의 문이 열려 있을 동안에 문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447장, 455장
·공과공부 : 5학년-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다, 여호수아 1:10-11
6학년-우리 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까지, 사도행전 1:8
·알 림 : Home Coming Day와 여름성경학교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매주 수요일 에 기도회가 있습니다. [이번주에는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준비위원회 모임이 있습니다.[오후1시]
오늘 두 번째 편지 발송, 5분 기도, 주중에 [화, 목] 두 번 전화 심방.
여름성경학교 홍보 [가정통신문 발송 22일]
·다음주 설교 : 제목-화내는 법, 말씀-요한복음 2:15-17, 주제-하나님에 대한 열심,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6번, 감사찬송-133번.
제 목 |
화내는 법 |
말 씀 |
요한복음 2장 15-17절 |
주 제 |
하나님에 대한 열심 |
1. 머리말
지난 일주일간 지내면서 친구와 싸운 사람들 있습니까? 싸웠다면 왜 싸웠습니까? 왜 여러분들은 화를 냈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친구가 욕을 해서 화를 낸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다른 친구가 피자를 혼자 먹고 자기한테는 한 입도 주지 않아서 화를 낸 친구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왜 화를 내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너무 치사합니다. 어떤 때는 사탕 1개 때문에도 화를 내고 싸움까지 하지 않습니까? 말 한마디가 귀에 거슬린다고 혈기를 부리는 수도 많습니다.
그러면 화내는 것이 나쁩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절대로 화를 내선 안됩니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화를 내선 않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화도 잘내고 신경질도 잘 부리면서 남이 화를 내면 손가락질을 해댑니다. 아니 그런 사람일수록 오히려 자기에게 조그만 손해만 와도, 자기 기분이 조금만 언짢아도 얼마나 잽싸게 핏대를 올리며 화를 내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것과 비겁하고 졸렬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2. 본 론
화내는 법을 배우려면 우리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명절을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올라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성전은 죄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곳이었으며, 기도하는 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성스러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 가셨을 때 그 곳엔 기도 소리 대신 소와 양과 비둘기 울음 소리로 시끄러웠습니다. 또 짤랑짤랑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 세는 소리로 소란스러웠습니다.
원래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각자 집에서 길러서 몰고 와야 하지만, 거리도 멀고 사정이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흠없는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법 때문에 제물을 갖고 온다해도 제사장의 검사에 합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장사꾼과 짜고 성전에서 소나 양이나 비둘기 등을 팔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대가로 제사장들은 돈을 두둑히 벌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이것을 보시고 그 마음이 어떠셨겠습니까?
또한 이스라엘에 20세 이상된 남자는 반 세겔 되는 돈을 성전에 바치게 되어있었습니다. 세겔은 유대의 돈이므로 당시 각 지방에서 모여온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쓰는 로마돈을 유대인의 돈인 세겔로 바꾸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돈 바꾸어 주는 사람은 이익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너무너무 화가 나신 예수님께서는 노끈으로 책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쫒으셨습니다. 또 돈을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다 쏟아 버리고 상을 엎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열심히 예수님을 삼켜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선 단 한번도 화를 내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수없이 괴롭혔어도, 수없이 많은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그 애매한 고난을 끝까지 받으시면서도, 천한 자들의 더러운 손으로 따귀를 맞고, 회롱을 당하시면서까지,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벌거벗기우고 못박히시는 그 수치와 곤욕을 다 당하시면서도 예수님은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습니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술을 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선 화를 내신 적이 없었습니다.
3. 맺음말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서는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히 그를 삼킬 만큼 하나님을 인하여서는 무섭게 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 곳에서만은 맹렬한 화를 쏟아 놓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 때문에 용감히 화를 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화를 내는 공식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다같이 따라서 해 보세요.
“나를 위해서는, 죽어도 화를 내지 말고, 주님을 위해서는, 죽어도 화를 내라.”
*교사 경건회*
·찬송:
·말씀: 벧전 1:22-2:10 [23절-부활, 9-치유] [오시는 하나님 선포]
·알림: Home Coming Day - 상담, 권면, 기도, 말씀, 찬양 [준비찬양을 10분정도, 심사위원 선정-기준은 ㄱ.전원 참석 ㄴ.단합심 ㄷ.열심., 예배때 새로나온 어린이 소개, 찬양대회 진행은 정대웅선생님]
다음주는 북한 선교주일로 교회학교가 정했습니다. 선교헌금하도록.
오늘 오후 1시에 준비위원회 모입니다.
오늘 가정통신문 1차 발송이 나갑니다.
다음주는 월례회가 있습니다.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름수련회 건]
아이들에게 여름성경학교 참석을 권해주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수요기도회가 있습니다. 목요일에는 여름수련회 답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 체 교사 기도회가 있습니다. [시간:p.m. 8:00->, 장소:미금선교회]
·다음주 설교: 제목-주라, 그리하면······., 말씀-누가복음 6:38절, 주제-베푸는 사랑, 성시교독-15번, 처음찬송-9장, 감사찬송-282장.
제 목 |
주라, 그리하면······ |
말 씀 |
누가복음 6장 38절 |
주 제 |
베푸는 사랑 |
1. 머 리 말
말씀 한 구절 더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8-25절.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소년부 친구들, 이게 뭐죠? 그래요. 풍선입니다. 전도사님이 풍선을 한번 불어보겠습니다. [거의 터질 때가 가까울 만큼 풍선을 분다] 여러분, 이 풍선에 바람을 계속 넣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요. 펑! 하고 터질 것입니다. 아무리 큰 풍선이라도 바람을 받아 넣기만 하면 결국은 터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풍선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고 바람을 분다면 풍선은 절대로 터지질 않을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젊은 청년이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는 권세를 가진 관원이었고, 부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교양도 있고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계명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관원이고, 부자이며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지만 그에겐 그런 것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찾아온 것입니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고 한 계명들을 지키라. 그리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청년 관원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그 계명들을 지켰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청년의 속마음을 환히 들여다 보시고, 그를 측은히 여기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들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러나 그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슬픈 얼굴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아까 풍선에 바람이 많이 들어가면 갈수록 터질까봐 조심스럽지 않았습니까? 이 청년 관원이 그의 재물을 움켜 쥐고 남에게 주려하지 않을 때 그는 별 수 없이 염려와 근심 가운데 돌아갔습니다. 그 청년 관원이 갖고 있던 많은 재물은 그에게 영생을 주지도 행복을 주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의 재물 때문에 그는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 본 론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사람들은 남에게 주지 않고 자꾸자꾸 모으기만 하면 티끌모아 태산이 되듯이 넘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식은 다릅니다. 정말 넘치게 받기를 원한다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남에게 나눠 주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갚아 주십니다. 후하게 되되, 꽉꽉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하여 우리에게 안겨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는 두 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하게 얻은 것들 즉, 풍성한 은혜, 풍성한 사랑, 풍성한 재물, 풍성한 복음······ 등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기뻐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날마다 행복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눠주면 줄수록 그의 삶은 더 풍성하게 되고 윤택하게 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안겨 주리라.” 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그 약속대로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의 신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오직 자기외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모으면 모을수록 자기는 가난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기쁨이란 없습니다. 오히려 부자관원같이 염려와 근심 속에 살아갑니다. 가득히 바람이 채워진 풍선이 언제나 터질 듯 터질 듯 불안한 것처럼 그의 마음은 그 재물 때문에 불안합니다. 나눠주니 않으면 썩거나 터집니다.
소년부 여러분은 어떤 신자에 속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그 모든 좋은 것들을 남들과 나누고 있습니까? 나눠주지 않으면 썩거나 터집니다.
3. 맺 음 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여러분이 먹고, 입고, 살아가는 모든 것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더구나 가장 소중한 외아들까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한방울 남기지 않고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받았고, 축복을 받았고 모든 좋은 것들을 하늘로부터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것들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돈도 내 것, 생명도 내 것, 축복도 내 것······ 내 것, 내 것 하면서 움켜쥐고 사는 것이 옳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움켜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움켜쥔 사람은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움켜쥔 손을 하나씩 펴보세요. 두 개를 펴면 두 개 편만큼 후히 받을 수 있습니다. 다섯 개를 펴면 그만큼 더 후하게 받습니다. 열 손가락을 모두 펴서 남에게 나눠 준 사람은 하나님께로 모든 것을 다 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위해 목숨까지 주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을 우리의 이웃과 나눌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88장, 346장
·공 과 : 6학년- 행 9장1-22절, 우리들의 선교방법들, [바울이라는 한 사람의 중요성],
5학년- 삼상 7장 15-17절, 사무엘의 활약, [‘사무엘’ 의 단어 뜻 지시], [한경직 예]
·알 림 : 교사기도회에 참석해 주신 선생닙들게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북한 선교주일로 교회학교가 정했습니다. 선교헌금하도록.
오늘 오후1시에 월례회가 있습니다.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름수련회 건]
아이들에게 여름성경학교 참석을 권해주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수요기도회가 있 습니다. 다음주는 맥추감사절 주일입니다. 헌금봉투를 나누어 주도록. 2학기 공과교 재를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제 목 |
열매를 보면··· |
말 씀 |
누가복음 6장 43-45절 |
주 제 |
좋은 열매 |
1. 머 리 말
요즘, 뉴스나 신문을 보면, 무시무시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학교 폭력’ 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며칠전에는 SBS 방송국에서 ‘학교폭력’에 대해서 특별 방송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힘센 상급생 아이들이 하급생들을 때리고, 돈을 뜯어내고 괴롭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 어떤 친구는 학교 폭력 때문에 자살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학교폭력은 여러분과 같은 나이인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친구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친구들이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결국은 불량배가 되거나 깡패가 되버리기 쉽습니다. 강도질이나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 됩니다. 예전에 있었던 ‘지존파’로 알려진 범인들처럼 되는 것입니다.
2. 몸 말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 혹은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느껴지는 감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을 만나면 항상 웃음이 넘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어떤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향기를 나타냅니다. 마음이 온화한 사람은 부드러운 향기를 나타내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위선적인 냄새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을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라’고 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남들에게 좋은 향기를 풍기는 따뜻한 마음과 온화한 마음을 가졌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태어날 때부터 그랬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어떤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만들었기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 때문입니다.
사과나무가 혼자 자라는 법이 있습니까? 사과나무를 가꾸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합니까? 병충해로 인해 나무가 병들지 않도록 항상 돌봐야 하며, 제때에 물도 주고, 햇빛도 적당히 주어야 싱싱하고 좋은 사과열매가 생깁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사과열매는 썩고, 맛도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나쁜 것에 의해 병들어 버리면, 나중에는 곪아 터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지존파나, 학교폭력을 일삼는 사람이 되버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을 잘 가꿀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 다음 구절인 누가복음 6장 46-49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어떤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지키고, 행하면 그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거름이 되어서 착한 마음씨로 성장하여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3. 맺 음 말
소년부 친구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세요? 선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되길 원하세요, 나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되기를 원하세요? 물론 선한 마음씨겠지요. 선한 마음속에서 선한 행동이 나옵니다. 여러분 모두 듣고 배운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겨서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101장
·공과 공부 : 6학년-정의의 예언자 아모스, 아모스 5:21-27절, [용기, 지혜]
5학년-새 나라를 세우려고, 사무엘 상 8:1-22절,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
|| 다음주부터는 2학기 공과책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알 림 : 지난주 월례회를 김춘자 집사님댁에서 은혜가운데 마쳤습니다.
오늘은 맥추절기입니다. 헌금봉투를 나누어 주기 바랍니다.
오후 1:00-2:30까지 자체 강습회가 있습니다.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련회에 아이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권면해 주시기 바랍니다. 70명 목표.
가정통신문이 다시 나갑니다. 매주 수요일 기도회가 있습니다.
·기도회 : 308장, 고린도 후서 11장 2절 - “중매”
[어린이 70명이 참석할 수 있도록, not사고·날씨, 준비위원들, 전체 교사들]
·다음주 설교 : 말씀-누가복음 14장 34-35절, 제목-맛 잃은 소금, 주제-진정한 그리스도인, 처음 찬송-9장, 성시교독-3번, 감사찬송-189장.
제 목 |
맛 잃은 소금 |
말 씀 |
누가복음 14장 34-35절 |
주 제 |
진정한 그리스도인 |
1. 머 리 말
한달 전에 우리나라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해외에서 브라질에게 10:3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진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도 축구 경기를 보면서 우리나라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들이 너무도 힘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말하기를 정신력이 결여되었다고 말하면서 일제히 비난을 하였습니다. 선수들의 자존심이 상했을 뿐만 아니라, 보고 있던 우리조차도 자존심이 매우 상했습니다. 선수들이 축구를 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축구선수가 축구를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축구선수가 아닙니다. 축구선수는 축구선수로서의 맛을 내야 합니다. 열심히 뛰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습니다.
2. 몸 말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나게 하겠느냐? 그것은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가 없어서,밖에 내버린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소금이 어떤 역할을 합니까? 소금은 음식이 싱거울 때 간을 맞추는데 쓰여집니다. 또한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소금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그 소금은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 소금은 오늘 말씀에 나와 있듯이, 밖에 내버려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이와 동일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맛이 나야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맛이 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잘못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맛이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 5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지니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 사이에서 화목하게 하는 맛을 내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무엇을 화해해야 합니까? 어떤 친구들은 ‘하나님과 화해하라니, 내가 언제 하나님과 싸웠습니까?’ 하고 반문할는지 모릅니다. 화해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실 저는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겠습니다. 전도사님이나, 선생님이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주지만, 저는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하고 의심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저는 거짓말하고 친구들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것이 진정한 화해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예수님을 믿는 참 맛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하는 순간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맛이 나타납니다. 용서할 수 없었던 친구를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고, 거짓말하고, 욕하던 습관을 고치려는 마음이 들고, 왠지 교회에 오는 것이 즐거운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맛입니다.
3. 맺 음 말
여러분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습니까?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고백합니까? 믿음이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것을 아무리 사랑한다 할지라도 예수님만큼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에서부터 예수님을 믿는 맛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하덕규’ 라는 가수를 아세요? 하덕규 가수는 ‘시인과 촌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덕규 가수는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말하기를, 왜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는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했었습니다. 심지어는 ‘신’이라는 분에게만 의지하는 나약한 사람들이라고까지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는 것이 비참하고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노래는 우울하고 슬픈 멜로디를 띠고 있었습니다. 급기야는 마약에까지 손을 댔습니다. 그러던, 그가 방황하고 마약으로 비참한 나날을 보낼 때, 하루는 왠지 교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때가 1993년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였습니다. 예배 시간 내내 그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의 삶은 긍정적이며 노래도 밝은 멜로디를 띠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명성교회 고등부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을 정도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화해를 했던 것입니다. 화해를 한후 그는 삶이 변했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소년부 친구들,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그래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마음으로부터 믿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맛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향기로운 맛이 날 것입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408장
·공과공부 :
·알 림 : 오후 1:00-2:30까지 자체 강습회가 있습니다. 프로그램 담당자들은 계획을 정확히 세워 점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련회에 아이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권면해 주시기 바랍니다. 70명 목표.
이번주 수요일 마지막 기도회가 있습니다.
분기 시상이 있습니다. 오후에는 교사 헌신예배가 있습니다. 2:30에 소년부 교사실 에서 찬양연습이 있습니다.
·기도회 : 502장 [아이들 70명, 안전사고와 날씨, 프로그램 담당자와 진행자들]
·다음주 설교 : 말씀-시편 49편 20절, 제목-슬기로운 자, 주제-깨닫는 자, 처음-9장, 감사찬송-246, 성시교독-1편.
제 목 |
두 번째 범죄 |
말 씀 |
창세기 2장 7-9절, 15-17절 |
주 제 |
인간의 죄성을 인식 |
1. 머 리 말
소년부 여러분, 이번 여름 성경학교 표어가 뭐예요? 다같이 큰 소리로 읽어볼까요?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그렇습니다. 생명과 평화를 사랑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번 여름성경학교를 통하여 이번 주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꼭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창세기 2장 7-9절을 다시한번 읽어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만드실 때, 맨 먼저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에는 많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나무와 온갖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산 한가운데는 어느 누구도 접근해서는 않되는 두 종류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는 것 처럼 바로,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였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따먹어도 되지만,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만은 따먹어서는 않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의 꾀에 빠진 하와와 아담은 결국 선악과를 따먹게 되고,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창세기 3장 19절에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결국, 범죄한 아담과 하와, 곧 사람은 죽도록 고생햐야 먹고 살 수 있고 땅과 씨름을 계속하면서 살아야 하며, 결국에는 죽게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사람은 영원히 살지 못하고 언제가는 죽게 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2. 몸 말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이제 또다시 아주 큰 죄를 저지르려고 합니다.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으로 두 종류의 나무 가운데 두 번째의 나무열매를 따먹으려고 합니다. 바로 “생명나무”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어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죽음을 피하고자,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에서 또하나의 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바로 생명복제입니다. 지난 1997년 2월 23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리에 있는 로슬린연구소의 윌머트 박사는 과학기술에 의한 유전자 복제를 통해 dolly라는 똑같은 양을 복제하였습니다. 이말은 머지 않아 사람도 과학기술에 의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인데, 사람들은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소년부 친구들은 똑같은 사람을 만들 수 있는 과학기술에 대해 많은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바라보겠지만은,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에 불과합니다. 만일 과학기술로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 낸다면, 우리는 두 번째로 하나님께 죄를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과학자들은 사람을 과학기술로 만들어 내려고 온 정성을 다 드리고 있습니다. 바로 두 번째의 나무 “생명나무”를 따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오늘 말씀 창세기 2장 15-17절의 말씀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선악과 나무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지만, 이 말은 생명나무의 경우와도 동일하다고 봅니다. 결국, 생명나무를 따먹게 되면 인간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게 될 것입니다.
3. 맺 음 말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 과학기술로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우리 사람들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인간을 복제해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소년부 친구들, 이번 여름성경학교 기간동안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가슴으로 뜨겁게 느껴보세요. 그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 많은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
월요일 (21일) |
제 목 |
나도 할 수 있어요 |
말 씀 |
약 2:14-17 |
주 제 |
믿음의 결과 |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어떠한 선행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여 아무런 착한일도 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옳지 못한 일입니다. 믿는 사람은 거기에 합당한 바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도 점점 식어져 결국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야고보서 2장 17절에 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오늘부터 이제 수련회가 정식으로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이번 수련회에서 무엇을 기대합니까? 재미있게 노는 것을 기대합니까? 수영을 기대합니까? 물론 그런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일부러 여러분의 집을 떠나 이곳 멀리까지 왔습니다. 집을 떠난 여러분은 이곳 3박4일 동안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이번 여름수련회를 통해서 여러분들의 신앙생활 모습이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련회를 한 보람이 있죠! 오늘 말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 시간, 잠시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오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눈을 감으시고 잠시 10분 정도 말씀을 깊이 생각하시면서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를 하나님께 반성하는 기도를 마음속으로 드리세요. 집에서 매일 늦잠을 자지는 않았는지,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씀에 말대꾸만 하고 순종하지 않았는지,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옆사람과 장난만 치고 소중한 마음으로 예배 드리지 않았던 모습들을 하나님께 모두 고백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하세요. 그리고 이 시간이후부터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겠노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약 10분간 음악을 들으면서 자세를 똑바로 하고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10분후에 전도사님이 마무리 기도하겠습니다.
|
화요일 (22일) |
제 목 |
비툴어진 마음 |
말 씀 |
마태복음 5장 3-12절 |
주 제 |
심령이 가난 = 욕심 없음 |
예수님이 말씀하신 8복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오늘은 8복중에서 특히 첫 번째 복을 묵상하여 보겠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왜 그런지 아십니까? 바로 마음에 욕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도둑놈이 태어날 때부터 도둑놈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도 처음에는 착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그의 마음속에 욕심이 생겨서 돈을 사랑하고, 남의 물건을 사랑하다가 도둑질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8복을 말씀하시면서 첫 번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욕심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이웃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돈을 투자하는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는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5장 3절 말씀을 가지고 약 10분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8복 전체를 가지고 묵상하셔도 좋습니다. 내가 정말로 욕심이 없는 사람인가, 아니면 욕심덩어리로 가득찬 사람인가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10분후에 전도사님이 기도하겠습니다.
|
수요일(23) |
제 목 |
참 사랑 |
말 씀 |
누가복음 6장 32-36절 |
주 제 |
원수 사랑 |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부모님께 향하는 마음을 사랑이 있고, 이성간에 서로 좋아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또 친구들간에 서로 좋아하는 사랑도 있도,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라은 이런 사랑보다는 한 차원 높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한 ‘원수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아들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원수 사랑은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어?”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바로 ‘원수사랑’입니다.
이 시간 조용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마음으로 고백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사랑하지못했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되달라고 기도하세요. 10분간 묵상하시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세요. 10분후에 전도사님이 마무리 기도하겠습니다.
|
월요일 (21일) |
제 목 |
주님의 몸 |
말 씀 |
에베소서 1장 22-23절 |
주 제 |
주님의 공동체 |
1. 머 리 말
우리 몸에 쓸 데 없는 부분이 어디일까요? 우리가 한 알의 조그만 사탕을 먹는데도 손이 필요하고, 입이 필요하고, 목구멍이 필요하고, 위가 필요하고 창자가 필요합니다. 결국, 많은 부분이 힘을 모아 움직여야 합니다. 이 중에 어느 한 부분만이라도 “내가 알게 뭐람”하며 일을 하지 않는다면 큰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모둔 부분부분은 모두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몸에 없어도 좋을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보니 교회는 몸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란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곧 교회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머리 부분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사셔서 우리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2. 몸 말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몸에서 머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러분 병원에서 팔 없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발이 잘려진 사람은요? 그러나 머리가 없는 환자를 본일이 있어요? 맞습니다. 손, 발, 다리 없이는 불편한대로 살 수 있지만 머리가 없으면 죽어 버립니다. 머리가 없는 사람을 생각할 수 없듯이 예수님은 우리 개인개인에게 너무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모시고 그 명령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착해도, 아무리 예뻐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머리 없는 시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셔서 우리의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모든 사람에겐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충만한 것들로 가득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예수님 안에만 죽음까지 이길 수 있는 충만한 생명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만 충만한 사랑이 있어 주님께 오는 사람마다 모든 죄를 용서 받습니다. 주님 안에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충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외에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만한 것들이 예수님 안에 가득히 차있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아직도 예수님을 머리로, 주님으로 모시지 않은 어린이가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오늘이 가기 전에, 아니 수련회가 끝나기 전에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머리요, 주님으로 모셔들이세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살아가세요. 온 세상의 모든 것으로 가득하신 예수님의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되어 멋지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몸도 중요합니다. 병원에서 머리만 있는 환자를 본 일이 있어요? 우리도 예수님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머리 되신 예수님께서도 몸인, 우리가 없으면 큰 일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 처럼, 우리는 예수님에게 너무너무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 귀한 피로 우리를 사서 주님의 몸의 한 지체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머리 혼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머리는 명령을 받을 몸이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아주 어리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리지만, 어린 우리들로서의 책임과 역할이 다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들 한사람 한사람을 다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께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아이는 한 명도 없어요.
팔 노릇을 해야 할 사람이 일을 안하면 팔병신 예수님을 만들고 말것이예요. 예수님의 몸을 병신으로 만드시겠어요? 그렇다면, 이제 마음을 조용히 가다듬고 예수님의 몸의 지체로서 여러분의 몸의 지체로서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세요. 교횡 결석하지 않는 일, 친구를 주님께 데려 오는 일, 어려운 친구를 위로해 주는 일, 요절을 외우는일 등 주님을 섬기는 일을 생각하고, 그 일을 잘 하겠다고 결심하세요.
3. 맺 음 말
독일 어느 교회에 예수님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 연합군의 포탄하나가 날아와 동상 앞에서 폭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파편이 동상을 쳐 깨뜨렸습니다. 주님의 동상에서 두팔과 다리가 없어지고 입이 달아났습니다.
곧 장로님들이 모여 의논을 했습니다. “동상을 다시 만들어 세웁시다”, “아예 치워 버립시다” 여러 의견이 오고 갔지만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한 장로님이 엄숙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저 동상을 그대로 둡시다. 그대신 우리 교인 모두가 예수님의 없어진 입, 팔, 다리 노릇을 합시다.”
모든 장로님들이 감동을 받고 각기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곧 이 교회 전 교인들도 예수님의 팔, 다리, 입의 노릇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어떤이는 열심히 다니며 전도를 하고, 어떤 이는 전쟁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이 교회는 주님을 매우 사랑하는 교회가 되었답니다.
사랑하는 소년부 여러분! 어리고 연약해도 여러분은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당당한 한 지체입니다. 그 독일 교회의 신자들처럼 여러분에게 주어진 지체로서의 일을 충성스럽게 하세요. 그리고 아직도 머리이신 주님을 모시지 못한 어린이들은 마음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영접하세요. 그래서 모든 것에 충만하신 주님의 충만을 여러분의 것으로 맘껏 누리세요. 기도 드리겠습니다.
|
화요일 (22일) |
제 목 |
하나님의 아픈 사랑 |
말 씀 |
요한복음 3장 16절 |
주 제 |
참사랑 |
1. 머 리 말
전도사님이 기독교 신문에서 읽어본 내용이 있었습니다. 북한강이 흐르는 청평, 강가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어린이 시체가 가마니에 덮여 있었습니다. 그 옆엔 그 아이의 부모가 넋을 잃고 신음하며 가슴을 찢는 아픔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죽은 아이의 부모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삐쭉 내밀고 한마디씩 한마디씩 비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수련회 왔다가 물에 빠져 죽었대”
“저에 아버지가 교회 전도사래”
“하나님이 있긴 어딨어”
“전도사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는 걸 보니, 기도를 안했나 보지?”
전도사님인 그 아이 아버지는 너무너무 괴로웠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은 것도 원통하고 슬픔이 이루말 할 수 없는데, 업친데 겹친격으로 사람들이 ‘전도사 아들이 교회 수련회에 따라 왔다가 물에 빠져 죽다니!’ 하며 비난하는 것에 대해 더욱 서글펐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아이가 죽어 슬프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를 받는 것 같은 마음에 창피하고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싸늘하게 식어 빳빳하게 굳어가는 아들의 시체 앞에서 이 아이의 부모님은 가슴을 쥐어 뜯으며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왜 차라리 저를, 차라리 이 악한 나를 죽이시지 않으셨습니까? 전도사의 아들이, 당신의 종의 아들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2. 몸 말
밤이 새도록 울며 기도하다 기진맥진하여 있을 때 잠잠히 마음속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읽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십자가에 죽게하신 사랑을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사람들마다 조롱하며, 침을 뱉으며,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입을 삐쭉이며 멸시의 눈으로 쳐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죽음은 그 아버지 하나님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아마 그 아들이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실 때 하나님의 마음엔 그보다 훨씬 굵고 흉한 아픔이 박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의 그 사랑은 아픈 사랑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는 사랑입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리고는 감사와 찬송을 올렸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슬픈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괴롭고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 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죽을 것을 대신하여 자기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여러분의 슬픔을 대신 당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병과 고생을 대신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여러분을 얻기 위해 그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잃으셨습니다.
그 큰 사랑, 그 기막힌 사랑, 그 고통스런 사랑, 그 아픈 사랑으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픈 사랑에 응답하세요.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어린이가 우리 가운데 있어요? 아직도 하나님의 그 아픈 사랑을 멸시하는 어린이가 이 자리에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 나오세요. 이 시간이 가기 전에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세요.
3. 맺 음 말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처럼 아픈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 없습니다. 환란도, 곤고함도, 핍박이나 기근도, 가난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도 끊어낼 수 없습니다.
이와같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여러분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합니까? TV보다도 더 사랑합니까? 여러분의 친구보다도 더 사랑합니까? 여러분의 엄마 아빠보다도 더 사랑합니까? 여러분에게 있는 최고의 사랑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양심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처럼 아프게 사랑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아픈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기도 드리겠습니다.
|
화요일(22일) |
제 목 |
나를 용서하소서! |
말 씀 |
누가복음 18장 9-14 |
주 제 |
회개의 의미 |
전도사님이 중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심하게 매를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선생님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담임 선생님은 전도사님을 특히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을 속였습니다. 매일매일 해야할 숙제를 않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는 한 것처럼 속였습니다. 선생님이 전도사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순히 믿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이 선생님을 속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선생님은 너무 화가 났습니다. 숙제를 안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토록 신뢰했던 제자가 선생님을 감쪽같이 속였다는 사실이 선생님을 무척 화나게 했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손바닥이 시퍼렇게 멍들었고 허벅지에 피멍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매를 맞는 전도사님은 아프기보다는 무척 창피했습니다. 선생님을 속였다는 죄로 인해 죄송하고 창피한 생각이 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를 숨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죄가 들통날까봐 안절부절하지요. 그러나, 막상 들통나면 오히려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 부모님께 지은 죄,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은 죄를 숨기고만 있으면 여러분의 마음은 점점 썩어들어가고, 급기야는 죄의 짐에 눌려 여러분을 노예로 만들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죄를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 바리새인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여 남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자각하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통곡하면서 죄를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중 세리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도 세리처럼 겸손히 하나님께 여러분의 죄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조용한 마음으로 앞에 있는 A4 용지에 여러분의 죄를 적으시기 바랍니다. 10분간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여러분의 죄를 고백하시고, 10분후에 전도사님이 잠시 기도드리겠습니다.
|
수요일 (23일) |
제 목 |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
말 씀 |
요한복음 12장 24-25절 |
주 제 |
생명사랑의 정신 |
1. 머 리 말
우리는 지금까지 3박4일 동안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수련회를 진행해 왔습니다. 이 기간동안 소년부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모두 이 주제를 몸으로 체득하고자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과학기술로 사람을 만드는 생명복제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중히 여기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소중함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Camp fire에서 하나님께 지은 지난날 우리들의 잘못을 모두 회개하고 새로운 생활을 하기로 다짐도 했습니다.
그러면, 이번 수련회에서 배운 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생명 사랑”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사랑하고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사람을 죽이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그만큼 사람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공부가 하기 싫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없나, 친구들이 놀려댄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없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입니다.
2. 몸 말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생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고자 ‘인간복제’라는 엄청난 죄를 저지르려는 사람들은 결코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속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25절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오늘 말씀속에서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영원히 살기 위해서 과학기술로 인간복제를 한다면 이것은 자신의 목숨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목숨은 잃어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자신의 생명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영원히 사는 길이 보장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친구들은 어제 성경공부 시간에 녹음기를 통해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아직도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방울의 피가 모자라 수혈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북한에 우리 친구들처럼. 이런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전해줄 때, 사랑을 받은 사람도 새로운 기쁨을 느끼겠지만, 사랑을 준 사람 또한 샘솟는 기쁨이 생깁니다. 영생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남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하는 순간, 그 사람만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3. 맺 음 말
생명사랑의 시작은 남을 위한 헌신적인 삶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만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알버트 슈바이쳐를 잘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다 아는 것처럼, 아프리카에 가서 평생 죽을때까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보살펴 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의사이기 전에 먼저 훌륭한 신학자였습니다. 슈바이쳐는 먼저 신학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속에 나오는 예수님의 생애에 관해서 책을 하나 썼습니다. 이것은 슈바이쳐를 단번에 세계적인 사람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슈바이쳐는 이 책속에서 “생명을 매우 사랑하는 예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학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의학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생명을 사랑하는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도 생명을 사랑하기 위해서 아프리카로 가서 평생을 병자들을 위해서 몸받쳐 헌신하였습니다.
이런 삶이 바로 생명을 사랑하는 삶이고, 이런 사람만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이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 소년부 친구들도 이제부터는 이웃의 생명을 사랑하는 헌신적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제 목 |
사랑의 힘 |
말 씀 |
요한일서 4장 7-8절 |
주 제 |
하나님을 사랑하자 |
1. 머 리 말
소년부 여러분, 삼국지를 잘아시죠? 그러면, ‘초한지’는 아세요? 잘모르세요? 삼국지가 유비·관우·장비·제갈공명·조조 같은 사람이 등장하여 싸움을 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면 초한지는 항우장사와 유방이라는 사람이 싸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 진시황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독재 군주였기에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마구 잡아죽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살아있던 시대에는 감히 어느 누구도 진시황에게 대들지를 못했습니다. 진시황은 지금도 세계 사람들이 경탄할만한 ‘만리장성’을 쌓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막강했던 진시황이 죽자 진시황이 다스리고 있던 중국이 초나라와 한나라로 분열되었습니다. 초나라의 대장은 항우장사로 알려진 항우였고 한나라의 대장은 유방이었습니다. 서로 중국을 제패하기 위해서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은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항우와 유방이 어렸을 때의 얘기입니다. 한번은 유방이 길을 걷고 있는데, 항우와 그 패거리들이 유방을 가로막고, 겁을 주었습니다. 항우의 가랭이 사이로 기어서 빠져 나가지 않으면, 유방을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유방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비굴하지만 항우의 가랭이속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그이후로 항우는 유방을 겁쟁이로 놀려 댔습니다. 나중에 이들이 커서 초나라와 한나라의 대장이 되어 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초나라가 막강했습니다. 한나라는 조그마한 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쟁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초나라가 점점 약해지더니 급기야는 한나라의 유방에게 초나라의 항우가 죽게 되었습니다. 초나라의 항우가 얼마나 힘이 강했던지 “항우장사”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항우장사가 결국은 유방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왜 젔는지 아세요? 바로 한 여자를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이름은 지금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항우장사는 한 여자만을 죽기까지 사랑했습니다. 항우장사는 그 여자를 위해서라면 적군속에도 들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끝내는 유방에게 포위되어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병사들은 몰래몰래 도망가 버리게 되자, 항우가 사랑했던 그 여인은 항우와 마지막 잔치를 벌이고 자결합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항우는 밤새도록 피눈물을 흘리며 애도를 합니다. 그리고는 날이 밝자 홀로 초나라 유방의 적진을 뚫고 도망가려다 많은 화살을 맞고 죽게 됩니다.
2. 몸 말
소년부 여러분, 여러분은 항우장사처럼 그토록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삼국지를 잘아는 것 같아 얘기하는데, 삼국지에서 유비도 죽고 관우·장비마져 죽었는데, 제갈공명은 “출사표”라는 상소를 올리고 조조를 죽이려 떠나잖아요? 그 출사표 내용이 얼마나 충성어린 내용인지 여러분은 아세요? 자기를 알아준 유비에게 향한 충성심이 구구절절 흐르고 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이나 초한지에 나오는 항우장사처럼 여러분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섬기는 분이 계십니까? 제갈공명은 한낱 사람에 불과한 유비가 자신을 찾아온것에 감사하여 평생을 유비를 위해 몸바쳐 싸웠는데, 하물며 자신의 외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해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목숨을 내놓을 만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큽니까? 우리를 향한 그 하나님의 사랑은 유비에 대한 제갈공명의 사랑보다도 훨씬 크고, 초나라의 항우장사의 사랑보다도 훨씬 큽니다.
오늘 말씀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는커녕 배은 망덕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제갈공명이나 항우장사는 한낱 사람에 불과한 유비나 한 여인을 그토록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사랑했는데, 하물며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사랑을 실천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향한 배은 망덕한 짓입니다.
3. 맺 음 말
소년부 여러분,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형제·자매를 서로서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을 실천하는 곳에 바로 하나님이 계십니다. 오늘 말씀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랑의 힘이 우리를 구원시켰습니다. 이 사랑의 힘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을 옆에 있는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랑의 위대한 힘을 발견할 것입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88, 414장
·말 씀 : 출애굽기 3장 14절 “모세는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한다. 그는 역사적 상황에서 자기의 과제를 보면서도 자기의 무능을 고민하는 것이다. 모세는 새삼 그 하나님이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는 뜻밖에 ‘나는 나다’라는 대답을 듣는다. 이 대답은 중요한 의미를 나타낸다. 이 대답의 원문은 ‘나는 나였다(과거). 나는 나나(현재). 나는 나일 것이다(미래)’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역사적 사건 자체라는 뜻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출하기로 결행한다. 그리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안다. 이로써 이 하나님의 뜻은 홀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과 인간의 결단과 더불어 어루어진다.”
·알 림
·수련회 점검
·찬 송 : 495장
·기도회 : 안전사고, 날씨, 프로그램 진행, 은혜받을 수 있도록.
제 목 |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
말 씀 |
누가복음 7장 44-47절 |
주 제 |
은혜위에 은혜 |
1. 머 리 말
소설 이야기를 하나 해줄께요. “어린 도둑과 40마리 염소”라는 제목의 소설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 나오는 수박 서리입니다. 주인공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러분만한 아이 ‘장원두’입니다. 시골이 배경인데, 원두는 그 동네에서 가장 부잣집 할아버지의 손자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동네 ‘깡다구’라는 사람의 밭에 수박을 훔치러 들어 갑니다.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친구 ‘한주’라는 아이에게 같이 가지 않으면, 학교 정문 앞에 수박 도둑놈은 ‘한주’라고 써놓겠다고 협박하고 꼬셔서 같이 갑니다. 수박밭의 주인공인 ‘깡다구’는 엄청 난폭한 사람인데, 원두와 한주는 수박을 훔치려다 그만 들키고 맙니다. 먼저 친구 ‘한주’가 붙잡히고, 의리 때문에 주인공 장원두는 자수를 합니다. 수박밭의 주인인 ‘깡다구’는 이 아이들을 붙잡아 파출소로 데리고 갑니다. 도둑질을 했으니까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원두와 한주는 눈물을 흘리며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수박밭 주인이 파출소에 데려와서 법에 따라 처벌해 달라고 고발했지만, 파출소장은 수박을 훔치려다 들킨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권총을 꺼내더니 원두와 한주를 향하여 또 다시 붙잡히면 이 총으로 쏠 거라고 윽박지르고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수박밭 주인인 깡다구는 아이들을 그렇게 돌려 보내면 어떡하냐구 화를 내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지옥에 갔다온 기분의 원두와 한주는 맥이 풀려 집으로 돌아옵니다.
소설 전체를 얘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수박서리는 뻔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독교 식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주인공인 원두와 한주는 저와 선생님들과 우리 친구들 모두가 될 수 있고, 수박주인은 사탄, 파출소장은 하나님. 이러면 어떨까요?
앞에서 말한 소설에서 원두와 한주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죄를 짓고 싶고, 또 그 유혹에 이끌리어 죄를 짓게 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수박밭의 주인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죄를 짓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우리의 양심에 고발을 합니다.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너는 이제 지옥에 갈거라고. 우리는 겁에 질리고, 눈물을 흘리며 내가 왜 이랬나 후회하면서 하나님 앞에 갑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실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진노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2. 몸 말
우리는 지난 주일부터 수요일까지 속리산에서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3박4일간의 일정을 은혜 가운데서 마쳤습니다. 전도사님이 여러분들이 써낸 평가서를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수련회가 힘들었지만 유익했고 재미있었던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번 수련회에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캠프화이어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용서 받았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요. 사실 우리의 죄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다시금 나쁜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에 배운 모든 것들을 언제 배웠느냐는 식으로 우리는 다시금 예배 시간에 떠들고, 장난치고, 헌금가지고 장난을 치고,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는 모습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죄가 용서 받지 못해서 그럽니까? 아니면, 우리가 사탄의 자식이라서 그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우리가 다시금 죄를 짓는 이유는 우리의 의지가 약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 죄를 많이 지은 어떤 여자가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값비싼 향유로 발을 씻겨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죄를 너무 지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도 모두 알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이제 예수님께 와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을 보시고 예수님은 결국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고 말씀하시면서 그 여인을 용서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47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거니와,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용서받는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향유를 예수님 발에 적신 여인은 예수님을 다른 누구보다도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한 것입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을 조금만 사랑했다면 예수님은 그 여인을 조금만 용서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깊이 사랑할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죄를 더욱더 깊이 인식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더욱더 깊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수련회 가서 이제는 다신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돌아왔지만, 돌아오자마자 죄를 짓는 것은 바로 우리의 연약한 마음 때문입니다. 이 연약한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 놓으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해 주셔서 연약한 마음을 강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3. 맺 음 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수련회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믿는 친구들은 모두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내가 또다시 죄를 짓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친구들, 하나님은 이렇게 연약한 우리를 보시면서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더욱더 깊이 인식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게 됩니다. 소년부 친구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여러분의 마음속을 잘 드려다 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죄를 깊이 느끼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세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502, 308장,
·공과공부 :
·알 림 : 여름 수련회가 주님의 은혜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기도로 도와주신 선생님들과 함께 동참해 주신 선생님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구체적인 평가회는 오후 1:00-2:00에 월례회때 하겠습니다. 장소는 소년부 교사실입니다.
·월례회 : 요한복음 10장 11-12절 [삯꾼과 목자-수련회의 Dilemma]
·다음주 설교 : 말씀-사무엘상 19장 23-24절, 제목-사람 녹이는 용광로, 주제-성령충만, 처음찬송-9장, 성시읽기-7번, 감사찬송-162장.
제 목 |
사람 녹이는 용광로 |
말 씀 |
사무엘상 19장 23-24절 |
주 제 |
성령충만 |
1. 머 리 말
소년부 여러분, 일주일간 잘 지냈어요? 날씨가 너무 더웠지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우리 모두 녹아 버릴 것 같습니다. 이런 때는 건강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쇠를 녹이는 용광로를 아시죠? 여기 저기서 모아 온 쇳덩어리들을 다 용광로 속에 넣으면 아무리 딱딱한 쇠라도 다 녹아 물처럼 됩니다. 녹이라던가 지저분한 불순물은 다 위로 뜨지만 참 쇳물은 밑에 고이게 됩니다. 쇳조각들이 용광로 속에서 녹아 새로운 쇠가 되어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만들어 지게 됩니다.
이번에는 소년부 친구들이 잘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상한 용광로 소개하겠습니다. 알기쉽게 이 용광로를 라마나욧 용광로라고 부르겠습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목베었을 때 사울 왕은 그를 너무너무 장하게 여겨 군대 장관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싸움터에서 돌아올 때 여자들이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사울을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일세.” 사울은 시기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룽의 마음이 시기와 질투로 이글이글 타고 있을 때 악신이 그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을 잡아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려고 집어 던졌습니다. 두 번이나 그렇게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약이 오른 사울은 블레셋 군사의 손에 다윗을 죽게할 흉계를 꾸몄습니다. 자기 딸 미갈을 주어 사위로 삼는 조건으로 블레셋 군사 100명을 죽이고 그 증거를 갖고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 모든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죽기는커녕 혼자서 200명을 거뜬히 해치웠습니다.
그 후에도 9번씩이나 죽이려고 별렀지만 다윗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엘상 18:12에서 보듯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미움과 시가로 미칠 것 같이 날뛰었습니다.
2. 몸 말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라마나욧에 있는 사무엘에게로 도망을 쳤습니다. 다윗이 라마나욧에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있다는 정보를 들은 사울왕은 당장 잡아 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마 성질이 강하고 난폭한 군사들만 뽑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다윗을 잡으려고 라마나욧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 하나님의 신이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셨는지 이들 마음이 녹아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을 잡을 생각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같이 예언하고 찬송을 했습니다.
사울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그보다 더 강팍하고 악독한 군사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라마라욧에 이르자마자 하나님의 신에 녹아버렸습니다. 사울은 화가 이글이글 타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세 번째로 또 군사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의 신이 충만한 라마나욧에 들어가자 마자 쇠가 녹듯 녹아져서 예언을 하였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사울은 직접 칼을 들고 다윗을 죽이려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말씀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다시한번 읽어볼까요? [사무엘상 19장 23-24]
사무엘과 그의 제자들이 사는 라마나욧은 용광로였습니다. 그 어느 뜨거운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사울과 그 부하들을 물같이 녹여 버리지 않았습니까? 사무엘에게 임하셨고 그를 늘 두르셨던 하나님의 신이 라마나욧 온 지역에 얼마나 충만하였으면 살기등등한 사울의 마음까지 녹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3. 맺 음 말
참으로 사람을 녹이는 용광로가 있습니다. 이 용광로는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우리가 죽을 것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 가셔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간절히 기도할 때에 불의 혀 같은 능력의 성령님께서 충만히 내리셨습니다.
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는 사람마다 완전히 녹아져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청년 사울의 살기등등한 마음도 성령님의 불 같은 능력으로 완전히 녹아졌습니다. 아니 새사람된 바울의 마음속엔 용광로 같은 뜨거운 능력의 성령님께서 늘 충만히 계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만나는 사람마다 녹아지고 변화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사람을 녹이는 용광로이십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믿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아니시면 아무도 변화받은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먼저 우리 맘을 성령님으로 가득히 채우십시다. 우리 속이 온통 성령님의 뜨거운 용광로가 되게 합시다. 내 마음, 내 생각, 내 말, 내 머리, 내 행동, 내 성질···
나의 모든 것을 성령님이 사로잡아 주시길 기도합시다. 우리와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속에 계신 용광로 같은 성령님에 완전히 녹아 버릴 만큼 뜨거운 성령님의 사람이 됩시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364, 88
·공과공부 : 5학년-열왕기상 4장 29-34, 23과 슬기로운 임금님.
6학년-에스겔 37장 1-14, 마른 뼈로 가득 찬 골짜기.
·알 림 : 건강 조심, 8월말 선생님과 함께 시간, 9월 첫째주에 반별 찬양발표.
·다음주 설교 : 말씀-히브리서 4장 12절, 제목-살아있는 성경, 주제-성경의 소중함을 자각,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2번, 감사찬송-171장.
제 목 |
나를 따르라 |
말 씀 |
누가복음 9장 57-62절 |
주 제 |
제자도 |
Ⅰ. 머 리 말
마태복음 16장 24절 말씀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대학 4년 동안 저의 뇌리를 감싸고 있던 화두의 말씀이었습니다. 우연히 친구로부터 들은 말, “너는 이 말씀의 뜻을 깊이 이해해야 해” 라는 말은 저에게 화두가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에 오히려 저에게는 너무도 짐스런 말로 다가왔습니다. 때문에 저는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 말씀을 해석하려 했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말씀이 주어진거야’ 생각하면서 제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4년후 저는 이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저에게 진로의 방향을 바꾸는 근본적인 말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말씀을 주십니다. 그것이 꼭 말씀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부름의 신호, 곧 “나를 따르라” 는 신호를 던집니다. 따름의 양태가 주의 종이 되었든지, 아니면 평신도로서 따르는 다른 무엇이 되었든지 상관없이.
Ⅱ. 전 개
A. 문제 제기
1. 본문읽기
예수님의 부르심과 따라감에 관한 말씀이 간단 명료하게 나타나는 곳이 오늘 말씀 마가복음 2장 14절 입니다.
“또 예수께서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2. 구절풀이
이 말씀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세리장인 레위를 부르자 레위가 일어나 좆았다는 내용입니다. 너무도 단순·명료해서 우리 인간들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조금 벅차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단순히 세리장 레위가 그대로 순종했는가? 어떤 상황이었기에 예수님의 부르심에 세리장 레위는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심리적, 역사적인 방법등을 동원해 그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가령 즉석에서 좇은 세리장 레위는 이미 예수를 전부터 알고 있어서 그의 부름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등의 합리적 설명을 통해 이 본문을 좀더 쉽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런 대답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리장 레위의 모습은 예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한 방법으로 뒤를 따라갔다고 하는 행동의 즉각성만을 고수할 뿐입니다. 과연 무엇이 세리장 레위가 자신의 삶의 터전을 박차고 예수님을 따르게 만들었습니까? 세리장 레위의 신앙 고백이 그렇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세리장 레위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대로 순종하는 행동을 보여 주었을 뿐입니다.
B. 분 석
1. 본문읽기
예수님의 부르심과 관계해서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3가지의 반응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오늘 말씀 누가복음 9장 57-62절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그분을 향하여 ‘당신이 어디로 가시든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다른 사람을 향하여 ‘나를 따르시오’ 하시자 그는 ‘[주님] 먼저 제가 물러가서 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자들이 자기네 죽은 자들을 장사 지내게 내버려두고, 당신은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알리시오.’ 또 다른 사람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주님. 그러나 먼저 제가 제 집에 있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를 향해] 말씀하셨다. ‘쟁기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습니다.’”
2. 구절 풀이
첫 번째 사람은 따를 것을 예수께 자청하였습니다. 그는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먼저 따르겠다고 나섰고, 스스로 감격하였을 뿐입니다. 그는 먼저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가 따르겠다고 자청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첫 번째 사람은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첫 번째 사람에게 얘기해 줄 뿐입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의도성을 갖고 행동합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 인간은 행동으로 옮깁니다. 첫 번째 사람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영광으로만 보였을 뿐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가신 길은 결국은 승리와 영광의 길이었습니다만, 첫 번째 사람은 그 이전에 있을 고난과 십자가의 길은 생각지 못한 것 같습니다. 승리와 영광의 길은 십자가에 숨겨져 있어서 우리 인간들에게는 결코 보이질 않는 숨겨진 진리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이상의 영역은 오직 믿음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의 이해 타산속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며, 그러면 나에게도 약간의 콩고물이 떨어지겠지 하는 마음에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이 가는 길이 결코 영광의 길, 기쁨의 길이 아님을 말해 주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이 먼저 불렀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은 따라가기 전에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장례를 선행의 극치로 간주하였습니다. 남달리 정결례를 지켜야 했던 까닭에 원칙적으로 문상 가는 일이 없던 제사장들조차 자기 부모·동기·자식의 장례만은 손수 치러야 했습니다. 이것이 유대교의 율법이었습니다. 그만큼 장례를 중요시 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도 잘 볼 수 있는 문화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기 전에 먼저 아버지의 장사를 치를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르심과 율법과의 충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따르겠다고 하면서 먼저 율법을 지키고나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전에 먼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선순위가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사람은 자신의 전통에 얽매여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일을 하면서도 우선순위를 바꿀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할 때는 우선순위가 뒤바뀌어서는 않됩니다.
세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과 같이 먼저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람과 다른 것은 자기 쪽에서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따라갈 것을 원하면서도 자신과 예수 사이에 무엇을 끼어 놓으려고 합니다. “당신을 따르겠나이다. 그러나, 우선 이러이러한 조건을 나에게 허락해 주십시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세 번째 사람은 따라가려고 합니다만, 자신의 조건이 이루어져야만 좇겠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이 대부분 여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예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예수님을 따르고 싶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는 쟁기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다보기 때문입니다. 이러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면 주여 당신을 따르겠나이다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모습 입니다.
요즘은 확률 시대입니다. 비가 올 확률이 몇%, 안올 확률이 몇%, 사람이 죽을 확률이 몇% 등등. 확률로 따져봐서 가능성이 높으면 실행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만두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확률이 아닙니다. 신앙은 순종 아니면, 불순종인 것입니다. 양자택일중 하나를 하는 것입니다. 확률이 높으면 부르심에 응답하고 확률이 낮으면 응답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지는 못했습니다. 이들은 따를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Ⅲ. 주 제
그러면, 누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습니까? 누가 따를 수 있습니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고 번민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못하여 갈등하고 있는 사람에게 소위 경건하다고 하는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순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순종치 않기 때문에 말씀을 들어도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순종치 않기 때문에 그의 은혜를 못 받는 것입니다. 마음 어느 한구석에서 당신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항의하고 자기자신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괴로움은 결국 당신 자신의 죄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언뜻 볼 때, 이런 대답은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양심만 더욱더 죄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신앙 생활은 우리에게 복음이 주는 자유함을 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는 이신칭의의 복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저 완고한 17세기 율법적 정통주의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의 신앙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율법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과거나 현재의 상황을 무시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많이 졌어도, 아무리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도, 예수님께서는 오늘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문제는, 누가 따를 자격이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과감하게 한발을 내디디냐의 문제입니다. 누가 안전한 삶의 터전에서 불안한 삶의 터전으로 과감하게 나오느냐, 누가 먼저 가능성의 세계로 한발을 내디디냐의 문제입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선다거나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를 잘못 생각한다거나, 실리를 따져 확률이 높으면 뒤따르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실리를 따져서 75년동안 살던 그 안전하던 고향땅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했을 뿐입니다. 즉각적인 순종만이 복받을 자격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했을 때 우리가 해야할 것은 즉각적인 순종만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순종만이 필요합니다. 내가 따라야할 자격이 갖추어져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 아니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따위의 행동은 필요치 않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는 “예”하고 따라감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순종의 내용이 따로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를 따르라!”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 뒤를 따라간다는 것은 철두철미 내용 없는 일입니다. 실현시킬 만한 뜻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에 따른 댓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적인 생각에 의하면 가치있는 어떤 내용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따라가기 위한 것 뿐입니다. 버리지 않고는 예수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르는 행동 자체에는 일푼의 가치도 없습니다. 무시와 무의미만이 있을 뿐입니다. 제삼자는 없습니다. 불려 나왔으니 지금까지의 생활을 청산하고 ‘이리로 나와서’ 엄격한 말씀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Ⅳ. 맺 음 말
성경에서 ‘나를 따르라’ 고 하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인간적인 모든 속박이나 억압, 무거운 모든 짐, 근심과 양심의 고통 등에서 인간을 자유케 하는 부르심이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할 때 인간은 자신의 가혹한 멍에를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드러운 멍에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져야 할 멍에를 벗어 버리려는 자에게는 예수의 계명이 가혹하고 무거운 짐이 됩니다. 자진하여 이 부름에 순종하는 자는 무거움을 모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르심 자체가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제 목 |
살아있는 성경 |
말 씀 |
히브리서 4장 12절 |
주 제 |
성경의 소중함을 자각 |
1. 머 리 말
소년부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대학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질문이긴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는 대학에 들어가고 싶을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벌써부터 속샘학원, 컴퓨터 학원 등을 다니고, 조금 더 크면 국어·영어·수학 등의 과외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대학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잘 살고 싶어서요? 물론 이런 대답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대학에 들어가야만 잘사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대답입니다. 꿈을 이루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고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이 중요한 것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꿈을 이루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있습니다. 훌륭하게 되고 싶은 사람은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스승을 잘 만나야 제자도 훌륭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2. 몸 말
사람들은 스승을 말하면 보통 옛날의 위인을 말합니다. ‘네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 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순신을 말한다든가 세종대왕을 말하는 등, 옛날에 훌륭했던 사람 등을 얘기합니다. 물론 이순신은 존경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스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스승이란 여러분의 인격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되었든지 아니면, 책이 되었든지 상관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꿈에 영향을 준 스승이 있습니까? ‘나는 앞으로 이런 사람처럼 되어야 겠다’ 고 여러분 마음속에 다짐을 하게한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까?
스승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고, 둘째는 책입니다. 오늘은 이 두 종류의 스승중에 두 번째 스승인 책에 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요즘은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교보문고나 종로서적에 가보면 수없이 많은 책들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책들중에서 나의 인생을, 나의 꿈을, 나의 인격을 뒤바꿀만한 책이 몇권 있습니까? 아무리 책이 많아도 여러분의 인생을 뒤바꾸는 책은 한 두권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의 스승이 될 만한 책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감동을 주는 책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스승이 되어 여러분의 꿈을 이루게 하는 책, 여러분의 인격을 바꾸는 책은 한 두권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베스트 셀러가 바로 성경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조차도 여러분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됩니다. 여러분의 스승이 되어 여러분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여러분의 인격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경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 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 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 히브리서 4장 12절의 말씀은 성경이 어떠한 책인지 우리에게 정확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스승입니다. 성경속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경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그 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성경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여러분의 스승이 되지 못한다면 성경은 여러분의 스승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스승이 되지 못한다면 아브라함은 옛날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다윗이 아무리 훌륭한 장수이면서 왕이었다고 하더라도 다윙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이해한다면 다윗의 이야기도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성경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성경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찾지 못한다면 성경은 우리의 스승이 아직은 아닌 것입니다.
3. 맺 음 말
옛날에 쓰여진 성경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살아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참 스승입니다. 사람을 바꾸어 놓는 것이 바로 스승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격을 변화 시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되어서 여러분의 꿈을 이루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한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진홍 목사님]
그렇습니다. 성경이 살아서 움직이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성경은 우리의 스승이 아닙니다. 소년부 여러분, 성경이 살아 움직이는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처럼 성경이 여러분의 혼과 영을 쪼개어 여러분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는 스승이 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465, 308
·공과공부 : 5학년-열왕기상 11장 26-40절, 남북으로 갈라진 왕국[한국의 통일 얘기를 거론]
6학년-미가 6장 1-16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민중의 지도자]
·알 림 : 8월말 선생님과 함께 시간, 9월 첫째주에 반별 찬양발표.
오늘 박인순 선생님 사임, 정은주 선생님 부임.
아이들 출석 관리를 조금 신경써야 합니다.
·다음주 설교 : 말씀-요한복음 3장 28-30절, 제목-자기를 낮추는 자 , 주제-겸손,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0번, 감사찬송-301장.
제 목 |
자기를 낮추는 자 |
말 씀 |
요한복음 3장 28-30절 |
주 제 |
겸 손 |
1. 머 리 말
소년부 여러분, 일주일간 잘 지냈어요? 방학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지요? 숙제는 다했어요? 전도사님이 초등학교 다닐때는 숙제가 무려 46가지나 있었어요. 그 많은 숙제를 하다보면 방학이 다 지나갔어요. 숙제는 밀리지 않게 그때 그때 해야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에 훌륭했던 사람들을 잘알고 있습니다. 동양의 성인 공자, 서양의 옛날 로마시대의 영웅 카이사르,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어칠, 우리시대의 마지막 지도자로 일컬어지는 김구선생님등. 이들 모두는 그 시대속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던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한 시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했던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일컬어 ‘위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훌륭했던 사람들 뒤에서 그들을 훌륭한 위인이 되도록 이끌고 도와 주어었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1인자가 있으면 반드시 2인자도 있는 법입니다. 사장이 있으면 부사장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부사장이 사장의 자리를 넘보게 되어 사장을 내쫓고 자신이 사장이 되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것을 일컬어 교만이라 하지요. 이런 사람들은 권력이나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자신의 위치를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삼국지를 잘 안다고하니, 또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공명과 관우·장비중 어느쪽이 나이가 더 많습니까? 그렇습니다. 관우·장비가 훨씬 많습니다. 그러면 직책상 누가더 높습니까? 제갈공명입니까? 아니면 관우·장비입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제갈공명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자신들보다 한참 연하의 아우뻘 되는 제갈공명을 갑자가 유비가 데려와서는 관우·장비보다 높은 자리에 앉히고는 명령에 순종하라는 얘기를 합니다. 수많은 전투에서 어느누구에게도 지지않던 관우·장비. 처음에는 형님 유비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동생인 자에게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갈공명이 지휘하는 첫전투에서 제갈공명이 승리하자, 관우·장비는 무릎을 꿇고 제갈공명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후로는 한번도 제갈공명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일 관우·장비가 제갈공명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중에 유비가 죽은뒤에도 관우·장비는 제갈공명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칩니다. 만일 관우나 장비, 이들중에서 어느하나라도 사심이 있었다면 유비가 이끄는 초나라는 쉽게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관우·장비는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유비와 제갈공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비는 배우지도 못했도 뛰어난 지략가도 못됩니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당대의 뛰어난 지략가입니다. 모든 공부를 다 마친 사람입니다. 그런 제갈공명이 유비가 싸움도 못하고 뛰어난 지략가도 아니라고해서 유비를 업신여기고 유비를 몰아내고 초나라의 왕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갈공명은 자신의 위치, 자신의 능력,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제갈공명은 싸움을 잘하는 장수가 아닙니다. 칼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군사를 다스리고 지휘하는 모든 병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뛰어난 지략가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지략가라해도 한 나라를 다스릴수는 없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지혜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모을 수 있는 힘 곧, 인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이것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제갈공명은 이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제갈공명이 갖고 있지 않던 것을 유비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2. 몸 말
오늘 말씀속에 등장하는 예언자 세례요한도 자신의 위치, 자신의 능력,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요한이 말하였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에 맞는 일을 맡기신다. 내가 맡은 일은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갈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 군중이 그분에게 몰려가는 것은 당연하다.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도 옆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한다. 나는 지금 그러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은 더욱더 위대해지고 나는 더욱더 작아져야 한다.’”
요한은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예수님보다 먼저 예언자가 되어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세례요한은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라고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백성들은 세례요한이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줄 메시야로 여겼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세례요한이 이스라엘의 메시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고, 세례요한에게 모여든 사람들이 그 예수에게로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자신을 버리고 예수라는 사람을 따르니, 자신들이 생각했던 요한의 힘은 점점 약해져만 가는 것은 아닌가하고. 그래서 오늘 말씀 속에서 제자들은 “선생님, 사람들이 모두 이리로 오지 않고 예수에게로 모여듭니다” 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불안스런 질문에 세례요한은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제자들에게 얘기합니다. “내가 맡은 일은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갈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가아니라 그분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
사실 왠만한 사람같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고 예수라는 사람을 쫓는것에 대해 심한 질투와 증오심이 싹트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께 1인자의 자리를 내줄 수 있는 것입니다.
3. 맺 음 말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과 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알고 있다는 것은 바로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 위에 스려고 합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와 능력,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자는 겸손합니다. 관우·장비도 그랬고, 제갈공명도 그랬고, 세례요한도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소년부 친구들도 세례요한처럼, 겸손히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예수님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54, 379장
·공과공부 : 5학년-열왕기하 17장 1-18절, 무너진 이스라엘[7-8절, 일제언급]
6학년- 스바냐 3장 14-20절,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알 림 : 8월말 선생님과 함께 시간, 9월 첫째주에 반별 찬양발표.
아이들 출석 관리를 조금 신경써야 합니다.
수련회 전체 평가회는 9월 첫주로 연기됐습니다.
·다음주 설교 : 말씀-고린도후서 7장 10절 , 제목-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 주제-회개,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5번, 감사찬송-230장.
제 목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
말 씀 |
고린도 후서 7장 10절 |
주 제 |
회 개 |
For godly grief produces a repentance that leads to salvation and brings no regret, but wordly grief produces death.
옛날 서양의 로마시대에 살았던 두 명의 사람을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그 두 사람은 동일하게 타인의 손에 의해 죽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또한 일생일대에 아주 중요한 결단을 하기 위해 많은 근심을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두 사람이 한 근심의 결과, 한 사람은 로마의 역사를 바꾸었으나, 로마가 멸망하면서 자신의 이름도 사라진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오늘날까지 모든 사람의 신앙의 대상이 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 명은 여러분이 성경에서 가이사랴라고 알고 있는 ‘시이저’[카이사르]입니다. 여러분은 가이사랴(시이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 들어보았습니까? 이 말을 한 사람이 시이저입니다. 그는 로마의 장군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장군으로 지금의 프랑스와 영국을 완전히 정복하였습니다. 승리자가 되어 돌아오는 시이저를 향해 로마정부는 그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자신이 태어난 이탈리아 로마, 이 로마를 위해 8년 동안 프랑스와 영국을 정복하고 돌아오는 이 때, 로마에서는 자신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당시 로마의 북쪽 국경선인 루비콘 강앞에서 근심을 합니다. “내가 만일 군인들을 해산하고 아무것도 무장하지 않은채 로마로 들어가면 나는 죽는다. 그러나, 내가 군사들을 이끌고 로마로 들어가면 로마는 나로 말미암아 내란이 일어나고 많은 나의 동족들이 죽게 된다. 나는 어느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며, 며칠을 근심속에 휩싸입니다. 그리고는, 결단을 내리고는 군사들을 무장시킨 채,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는 말과 함께 로마의 국경선인 루비콘 강을 건넙니다. 이후 로마는 내전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끝내는 시이저에 의해 로마는 통일되지만, 자신이 그토록 믿고 있던 부하장수 부르투스라는 사람에 의해 살해를 당합니다. 시이저의 근심과 결단은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이저가 죽은 이후 40여년이 지나고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30세가 되어서야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많은 기적을 일으키면서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군중들을 모두다 이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거라고 기대하면서 뒤를 좇아갔습니다. 드디어, 이 사람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우리의 구원자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정작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 입성해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큰 근심에 싸여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근심을 하면서 기도를 하였던지 땀이 피방울 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이 사람도 오랜 근심 끝에 결단을 하고 겟세마네 산을 내려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근심과 결단은 시이저처럼 자신의 동족들을 죽이는 결단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람의 근심과 결단은 자신이 죽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 시이저가 세운 로마제국은 역사속에서 사라졌지만, 예수가 세운 하늘나라는 계속해서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나라의 시민은 바로 믿는 여러분과 저가 됩니다.
사람의 근심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근심하다가 결국은 자신이 갖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는 좌절하여 쓰러지거나 끝내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마치 시이저처럼. 또 어떤 사람은 근심하였지만, 결국은 문제가 해결되어 그 시대의 역사를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위에서 든 두 사람, 시이저와 예수는 똑같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만큼 큰 근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많은 사람을 죽게하고 결국은 자신도 비참하게 죽게 하는 근심이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한 근심을 하였습니다.
어디에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바로 오늘 말씀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근심은, 회개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근심은 죽음을 가져 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근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이저는 자신의 명예욕을 위해 근심하였고, 끝내는 많은 자신의 동족을 죽이고 자신도 처참하게 죽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뜻에 맞는 근심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시이저처럼 자신의 욕심을 위해 근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근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88, 54장
·공과공부 : 5학년-역대하 36:1-21, 기울어지는 유다 왕국[앗수르, 바벨론, 애굽의 3대 열강||요시야-여호야하스-엘리아김[여호야김](여호야하스의 동생-이집트의 왕 느고에 의해)-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여호야김을 포로로 끌고감-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됨-느부갓네살왕이 여호야긴을 잡아가고 여호야긴의 삼촌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함으로 멸망당한 유다 왕국, 내가 지킬 약속은 무엇인가?]
6학년-학개 1:1-11, 성전을 건축하라[바벨론에 살면서 고국을 떠나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이 바벨론을 침공하면서 자기가 정복한 나라 백성들과 화친하며 포로들을 끌어오기 전에 살던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다리오 왕 제 2년은 B.C. 520년으로, 고레스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가를 내리고 유다 총독 스달보스내의 감독하에 성전 기물도 회송하도록 허락한 지 거의20년이 지난 후였다. 학개·스가랴\말라기(약 20년후)\느헤미야·에스라(B.C. 445년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옴) 모두다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 성전 건축을 원하시는 하나님,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생활하는 어린이]
·알 림 : 오늘 선생님과 함께 시간, 9월 첫째주에 반별 찬양발표.
다음주 월례회는 오후예배후 장신대에서 합니다.
·다음주 설교 : 말씀-마태복음 7:13-14 , 제목-좁은문으로 들어가라 , 주제-좁은문 ,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6번, 감사찬송-246장,
제 목 |
사무엘이 죽으매 |
말 씀 |
사무엘 상 25장 1절 |
주 제 |
성숙한 믿음 |
1. 머 리 말
다윗은 느닷없이 철부지 17살의 어린 소년에게 찾아와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은 현실로 다가오지는 않은 아직은 미완성의 작품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의 비밀스런 선택이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왕이 되기까지는 무려 13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 동안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한 자질을 하나씩 배워 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에게 사울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왕이 되지 않도록 다윗의 삶을 적극적으로 주관하셔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깨닫게 하십니다. 30세에 왕이 될 때 까지 다윗은 갖은 역경을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법을 배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하나씩 쌓아 나갑니다.
그런 다윗에게 인생에 있어서 3번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2번은 그가 왕이 된 후 에 겪은 것으로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는 밧세바와의 동침과 그에 따른 결과로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하나님은 다윗을 책망하십니다. 다행히 다윗은 곧바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다윗이 왕이 된 후 겪게 되는 신앙적인 위기였습니다. 이것 말고도 또 하나의 위기가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이것을 그는 왕이 되기전에 겪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 사무엘상 25장의 내용입니다.
2. 몸 말
ㄱ. 문제제기
오늘 말씀 사무엘상 25장 1절의 말씀은 앞·뒤 문맥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듯 합니다. 24장의 내용은 엔게디 광야에서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25장 2-44절은 다윗과 나발, 그의 아내 아비가일의 이야기입니다. 25장 1절은 앞 뒤 문맥과 전혀 상관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1절은 그저 당대 최고의 예언자이며, 마지막 사사로서 하나님의 전권을 부여받았던 사무엘의 죽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앞· 뒤 문맥을 잘 살펴서 해석을 해야 한다는데, 과연 이것과 다음에 나오는 나발의 얘기와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25장 2절 이하의 내용을 살펴보면 간단합니다.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가기 전에 마온지방에 이릅니다. 다윗은 마온지방에서 가장 갑부인 나발에게 먹을 것을 부탁합니다. 마침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자기의 부하들 가운데서 젊은이 열 사람에게 먹을 것을 얻어오도록 합니다. 전에 다윗이 나발의 양떼들을 지켜주었던 적도 있고 해서 다윗은 나발이 다윗의 부탁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발은 정반대로 대답을 합니다. “도대체 다윗이란 자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내가 어찌, 빵이나 물이나, 양털 깎는 일꾼들에게 주려고 잡은 짐승의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사건의 발단은 여기에서 시작 됩니다. 나발의 대답이 다윗을 분노케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부하들에게 명령합니다. “모두 허리에 칼을 차거라!” 그리고 자신도 허리에 자기의 칼을 차고 600명 중 400명이 나발 한 사람을 죽이려고 달려 갑니다.
그러나, 문맥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토록 인내심 많던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고 온 사방을 돌아 다니는 사울조차도 살려주었던 그 다윗이, 원수도 아닌, 자신의 동족을, 그것도 아무런 군사력도 갖고 있지 않던 한갖 갑부에 불과한 나발을 향해서 칼을 들이댑니다. 아무리 모욕을 당했다고해도 600명의 부하들 중 400명이나 거느리고 나발을 죽이려 합니다. 예전에 그토록 인내심 많고, 신앙적으로 굳건했던 다윗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엇이 과연 다윗을 그토록 흥분시켰습니까?
ㄴ. 반 론
어떤 사람은 위의 사건에 대해 다윗이 인간적인 분노를 표출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다윗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가 나에게 있다” 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나발이 나를 그렇게 대우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나발은 나의 모든 친절을 모욕으로 갚았다. 나발이 나를 그렇게 멸시한 데 대하여 보복을 해야겠다. 이 일은 나의 윗사람이며, 원수인 사울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발과 같이 오만한 자에게는 교훈을 남겨 놓아야 한다.” 라고 다윗은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지금 인간적인 분노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인내력이나 자재력을 상실한채, 자신의 동족인 나발을 죽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다윗의 선의의 행동에 대한 대가가 고작 나발의 무시였기에 다윗이 그토록 흥분했을까요? 사실 다윗은 나발뿐만 아니라 나발의 모든 남자 친족들을 살해하기 위하여 불타는 격분 가운데 400명의 사람들과 함께 출발한 것입니다. 다윗은 인내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다윗이 인간적인 분노에 휩싸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24장에서 자신의 원수인 사울조차도 살려주었던 인내와 너그러움은 사라지고, 그깟 나발의 말에 그토록 분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발과 같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의 몇 마디 모욕적인 언사가 다윗을 그렇게도 살의에 가득차게 만든 원인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다윗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다윗이 그토록 나약한 존재였습니까?
ㄷ. 본문 풀이
문제는 어째서 그토록 인내심 많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던 다윗이 한순간 에 이토록 인간적인 모습을 나타냈는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인간적인 격정에 휩싸이도록 만들었습니까? 그 해답을 우리는 오늘 본문 사무엘상 25장 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애곡하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다윗이 인간적인 격정에 휩싸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사무엘의 죽음’에 있었습니다. 17세의 미성년의 나이에 사무엘로부터 왕이 될거라고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 그 기름부음은 비밀리에 거행됩니다. 오직 자신의 가족들만이 참석한 가운데서,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주었습니다. 왕이 될거라는 예언과 함께. 그때로부터 17살의 소년 다윗은 커다란 꿈을 갖게 됩니다. 언제가는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라고.
그러나, 그의 인생은 사무엘의 예언과는 반대로, 13년 동안 죽음에 직면하는 위기의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바로 사울의 칼이 그의 목을 겨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윗이 그 모진 고난을 다 겪으면서도 잊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것 하나였습니다. 바로 사무엘의 기름부음. 다윗은 사무엘의 기름부음하나만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매 순간마다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번번히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무엘을 통해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 “네가 이후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미쳐 왕이 되기도 전에, 그토록 자신이 의지하던 사무엘이 갑자기 죽어버린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예언자이며 가장 존경을 받고 있던 사무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행한 사무엘이 죽은 것입니다. 막강한 권력과 권위를 갖고 있던 사무엘의 도움과 힘을 의지하였기에, 도망 다니면서도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믿고 있던 그 무엇인가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보다 인간 사무엘을 더 의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초조해 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심경을 현대어 성경은 보다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즈음에 사무엘이 죽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그를 라마에 있는 집에 장사하였다. 이렇게 사무엘도 죽어서 다윗의 위치가 더욱 불리하게 되자, 다윗은 아예 안전한 시내 반도로 들어가 바란 광야에 자리를 잡았다.”
사무엘의 죽음은 다윗의 위치를 더욱 불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초조해지기 시작하면, 인내심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끝내는 일을 저지르게 마련입니다. 다윗이 인간적인 분노를 표출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동족에게는 칼을 대지 않았던 다윗이 이제는 자신의 동족에게조차 칼을 드리대려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 ‘사무엘의 죽음’ 은 바로 25장 전체 다윗의 행동을 꿰뚫고 있는 말씀입니다.
3. 주 제
이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인간이란, 자신이 믿고 있던 그 무엇인가가 사라지게 되면 초조하게 되고 불안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그 무엇인가를 더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더욱더 의지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한 것 이상으로 인간 사무엘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갖고 있던 힘, 권위를 그는 의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홍성사출판부에서 나온 엔도슈사쿠의 「위대한 몰락」이라는 소설책이 있습니다. 그 책속에는 베라스코라는 스페인 신부가 등장합니다. 그 신부는 일본으로 선교하러 가기 위해서 조국 스페인을 떠납니다. 지금도 일본은 선교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책속의 시대는 임진왜란후 일본이 다른나라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때였기에, 당시에 일본으로 선교하러 간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을 만큼 위험한 때였습니다. 베라스코 신부가 가기 전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으로 선교하러 갔지만, 모두 순교를 당했기 때문에, 감히 어느 누구도 일본에 선교하러 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는 자원을 합니다. 그리고는 일본에 들어갑니다. 그가 일본으로 선교하러 가는 목적은 한가지 이유에서 였습니다. 일본에서 선교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허락만 된다면, 자기는 주교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라는 꿈을 앉고 그는 일본을 향해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일본으로 들어가서 정부요원을 만나 협상을 벌입니다. 당시 일본은 서방과의 무역을 반드시 해야만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속에서 스페인과의 통상을 시도하려는 때였기에 스페인 통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 통역사의 역할을 이 베라스코 신부가 맡습니다. 그러면서 이 베라스코 신부는 일본 정부인사들에게 한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자신이 일본과 스페인의 통상을 성사시킬테니, 그 대신에 일본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락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 신부를 이용하여 그 조건을 수락합니다. 신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일을 진행시킵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조국 스페인으로 돌아갑니다. 교황청에서도 이것을 승인할 것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 신부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어지러운 정세로 말미암아 일본정부가 스페인과의 통상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 신부는 한명의 일본인도 전도하지 못하고 맙니다. 결국, 베라스코 신부는 교황청으로부터 문책만 당하고 아무런 소망도 가지지 못한채, 철저히 절망하고 몰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몰락은 몰락이 아니었습니다. 몰락의 심연속에서 그는 자신과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제서야 비로소 참 믿음이 뭔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그 참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죽음의 땅 일본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적인 모든 도움들이 사라진 곳에서 하나님은 사랑으로써 나타나십니다. 베라스코 신부는 인간적인 모든 가능성이 끊어진 그곳, 바로 몰락의 심연속에서 참 하나님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다윗도 엮시 인간적인 모든 도움들이 사라진 그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나발을 죽이러 가고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그제서야 다윗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어떤 행동인지를 깨닫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립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토록 위급한 때에 그대를 보내주셨으니 그분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토록 슬기롭고 신중하게 행동하여 나의 큰 허물을 미리 막아 준 그대의 슬기에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직접 원수를 갚느라고 수많은 사람을 죽일 뻔하였습니다. 그랬더라면 내가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지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발길을 돌립니다. 죄를 지으려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몸소 음성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다윗의 행위는 분명 후회할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통해 몸소 다윗의 발걸음을 막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에 다윗은 멋지게 응답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4. Message
성도 여러분, 혹시 하나님보다 인간적인 그 어떤 것을 더 의지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혹시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지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시 다윗이 느낀 불안감과 초조감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죄의 유혹에 빠져 불안감이나 초조감, 절망감 등을 겪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전에는 인간적인 것을 더욱 의지하던 다윗이, 사랑으로 오시는 하나님께 멋지게 응답하여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듯이, 하나님보다 사람을, 물질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여 불안하고 초조해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몸소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바로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흰돌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는 죄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몸소 사랑으로 찾아오신 분입니다. 여러분도 사랑으로 오시는 하나님께 다윗처럼 멋지게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제 목 |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
말 씀 |
마태복음 7장 13-14절 |
주 제 |
좁은문 |
소년부 여러분, 조선시대 폭군으로 유명한 임금이 누구 있습니까? 그렇죠. 광해군이라는 임금입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후 나라가 황폐해진때 임금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광해군은 자신의 정권에 위협을 느끼자, 친형 임해군과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인목대비를 중전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듭니다. 왕이 폭군이 되니, 그 밑에 있는 사람들도 서로 세력다툼만 일삼게 되고, 급기야는 다시금 백성들의 삶이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공무원들은 불법으로 세금을 거두워 들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폭군 광해군이 왕으로 있은지 3년째 되던 해에 과거시험이 있었습니다. 그 시험문제는 “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일에 대해 그 대책을 쓰라” 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름대로 갈고 닦은 실력으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어떤 이는 사람을 잘 뽑아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다고 했는가하면, 다른 이는 법을 고쳐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과는 달리 목숨을 내건 답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일에 대한 대책으로 이 사람의 대답은 한마디로 ‘정신 못 차리는 임금’ 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의 실수와 허물에 대해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대답하겠습니다. 임금의 실수는 국가의 병입니다. 자만심을 버리고 신중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 살기 등등한 광해군 앞에서 한 답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여러 심사 위원들은 두려워서 차마 뽑으려하지 않았습니다. 폭군 광해군 엮시 낙방시킬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신하들 중 의로운 사람들이 급제시킬 것을 주장하여 이 사람 ‘임숙영’ 은 과거시험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진리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그것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좁은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이 진실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생활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침에 몇시에 일어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고, 밥을 먹을 것인지, 학교에는 언제 갈 것인지, 어떤 친구들과 얘기를 할 것인지,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항상 선택해야 합니다. 오른쪽으로 갈 것인지, 왼쪽으로 갈 것인지. 오른쪽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요, 왼쪽은 세상의 길입니다. 그러나, 오른쪽 길은 우리 눈에는 너무 좁아보이고, 가기에 힘든 길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는 왼쪽길, 넓고 큰 길을 택합니다. 그 길로 가는 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쉬운길이 진리의 길은 아닙니다. 진리의 길은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좁아보이고, 어려운 길처럼 보입니다.
사실 과거시험을 치른 모든 사람들은 그 문제의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왕의 폭정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이것을 알면서도 감히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말했다가는 자신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이것을 말했습니다. 아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행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만이 나라를 살리고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은 좁은길 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사는 생활. 이것은 실천하기에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진리의 길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좁은길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소년부 여러분, 진리의 좁은문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248, 495장
·공과공부 : 5학년-열왕기하 25:1-21, 역대기하 36:16-17. 바벨론에 잡혀 가다[앗수르, 바벨론, 애굽의 3대 열강||요시야-여호야하스-엘리아김[여호야김](여호야하스의 동생-이집트의 왕 느고에 의해)-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여호야김을 포로로 끌고감-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됨-느부갓네살왕이 여호야긴을 잡아가고 여호야긴의 삼촌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움 :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유다 왕국-유다가 망한 이유는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한 것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6학년-말라기 3:6-12.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드려라 [말라기 시대에는 성전이 완성되었으므로 성전 재건을 힘쓰던 때에 보인 열심은 사라져 버리고 종교적인 나태와 형식주의와 부패가 일어났으며, 제사장들도 긴장이 풀리고 게을러졌으며 백성들은 제물에 대하여 불성실하고 십일조를 게을리하고 이혼이 성행하여 잡혼이 많았다 -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어린이]
·알 림 : 9월 첫째주에 반별 찬양발표.
오늘 월례회는 오후예배후 장신대에서 합니다. [말씀-에베소서 4장 1-16절]
·다음주 설교 : 말씀-창세기 37장 5-8절, 제목-꿈을 꾸는 어린이, 주제-Vision,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3번, 감사찬송-162장.
제 목 |
목표를 정하고 |
말 씀 |
다니엘 1장 8-9절 |
주 제 |
충 성 |
1. 머 리 말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쉬임없이 흔들 거리며 왔다갔가 하는 목표를 바라보고 스스로 속으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정함이 없는 재물을 목표로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이름이 날리는 것을 목표로 세웁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다스려 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 갑니다. 이런 목표는 대부분 마치 바람을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보처럼, 무지개를 잡으려고 갈팡질팡 왔다갔다 헤매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움직이기에,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2. 몸 말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고 오직 곧은 길만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다니엘도 그런 사람중의 한 사람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뒤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중에 흠이 없고 아름다운 네 명의 청년이 왕에게 봉사하기 위해 뽑혔습니다. 왕은 그들을 아주 아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먹는 음식을 먹이며, 자기가 마시는 포도주를 마시도록까지 하였습니다. 잡아 죽여도 할 말이 없는 포로가 세계 최고의 나라 바벨론왕의 음식과 술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꿈도 꾸어 볼 수 없는 분에 넘치는 은총인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최고의 영광을 거절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하려고 그 음식을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목표를 정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목표는 바벨론 왕궁에서 출세해 보겠다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으며 잘 살아보겠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왕이 준 음식일지라도, 영양이 있고 맛이 있을지라도, 왕의 선물을 거절하는 자에게 무시무시한 벌이 준비되어 있을지라도, 환관장이 자기를 좀 살려달라고 간청할지라도 그 일이 자기가 세운 목표에 어긋나는 일일 때 그는 한치도 양보하지 아니하고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음식을 왕을 기쁘게 하기 위해 먹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일은 그 어느 일이라도 단호히 거절하겠다는 다니엘의 목표가 분명히 정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정한 목표는 결코 흔들릴 수 없는 목표입니다. 그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바라보고 살아갔기 때문에 다니엘은 이런 멋쟁이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결국 다니엘은 세계 제일의 나라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되기까지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3. 맺 음 말
여러분은 목표가 있습니까? 대통령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까? 아니면 가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까? 그러나, 그런 것 자체가 우리를 멋지고 곧고 바른 삶을 살게 하는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그런 것은 목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목표를 향하여 살아가는 몇 가지 방법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목표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목표가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대통령이 되고, 왜 가수가 되려하고, 왜 변호사가 되려 합니까? 왜 사장이 되려 합니까? 바로 그 ‘왜’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이 여러분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였지만 돈을 목표로 했던 가롯 유다는 어떤 인생을 살았습니까? 초대교회에 성도들이 똑같이 하나님께 헌금을 바쳤지만 사람들의 인기와 칭찬을 자기 목표로 삼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값어치를 아세요?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값싸고 볼품엇는 목표를 위해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비록 어리지만 우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만을 높이고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소년부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도 다니엘처럼 하나님만을 기쁘게 하는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헛된 것을 추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쇼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내삶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포에 따른 삶의 옮김이 있어야 삶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기에.
제 목 |
조심조심 말조심 |
말 씀 |
야고보서 3장 2-6절 |
주 제 |
절제 ; 말은 곧 인격이다 |
사람은 누구나 인격이라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격이라는 것은 오직 두가지 방식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는 행동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 들어납니다. 겸손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그 행동에서 자기를 낮추는 행동을 합니다. 잘난척을 하지 않지요. 또, 남을 섬기는 인격의 소유자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청하여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한답니다. 그러나, 나쁜 인격을 가진 사람, 예를 들면 이기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곤경에 빠졌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매일 매일 지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전도사님이 고등학교 3학년 다닐 때, 반 친구중에 매일 매일 지각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고3학때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 했는데, 30분씩 꼭 늦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한달에 한번씩 치는 시험인 모의고사 때도 30분을 늦는 것이었어요. 선생님이 아무리 꾸지람을 쥐도 고쳐지질 않았어요. 그러더니, 급기야는 대입학력고사를 보는 날에도 30분 지각했습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살아갈때도, 남들보다 30분 늦은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일컬어 ‘지각하는 인생’이라고 말하겠지요.
인격이 나타나는 방식은 행동 이외에도 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묘해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나쁜 인격을 소유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말을 끝내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인격은 욕쟁이입니다. 욕을 많이 한 사람은 그 만큼 나중에 남들로부터 욕을 얻어 먹습니다. 욕하는 사람은 스스로 ‘나는 욕쟁이입니다’ 라는 것을 떠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말을 하면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온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며, 이 혀는 온 몸의 부분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는 악” 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혀 곧,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말 속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멋있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말, 정직한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사님이 지난 여름 수련회때 보니깐, 우리 친구들 욕을 아주 많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욕을 많이 해서 전도사님이나, 선생님들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욕을 많이 하면 여러분의 인격은 욕쟁이가 되어버립니다.
또 항상 ‘나는 않되’ 하고 말하는 친구는 뭐든지 해도 잘 않됩니다. 왜냐하면, 말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나는 할 수 있어’ 하는 친구들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전도사님이 고등학교때 좌우명이 있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였습니다. 그리고 대학교때는 “노력하지 않고 어찌 큰 일을 이룰 수 있는가?” 였습니다. 전도사님은 이 말을 매일매일 반복해서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이 좌우명은 전도사님 앞으로 인생 전체의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소년부 친구들,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세요? 매일매일 욕만 하세요? 아니면, 남을 헐뜯는 말만 하세요? 아니면, 불평불만만 하세요? 그런 친구들은 욕쟁이요,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친구들이예요. 우리의 혀는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데에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말하는 입술은 입술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도 사랑하는 인격으로 변합니다. 남을 칭찬하는 입술은 그 인격도 항상 결점보다도 칭찬하는 인격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입술은 그 인격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 집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에 대한 사랑만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인격은 오직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말은 곧 인격입니다.” 여러분은 입술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친구들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격도 아름다워져서 사랑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308, 248장
·공과공부 : 5학년-학개 1:1-11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성전을 건축한 이스라엘 백 성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었음을 깨닫게 한 다. 우선순위 정하기]
6학년-누가복음 2:40-52 어린 시절에 사랑받으신 예수님 [예수님이 사랑받으신 이유를 깨닫게 한다. 사랑받는 생활]
·알 림 :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추석명절을 즐겁게 보내 시기 바랍니다. 오가는 발걸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오늘 빠진 선생님 파악 - 황진순 선생님
·다음주 설교 : 제목-창조주를 기억하라, 말씀-전도서 12:1, 주제-참 소망[헛된 것을 쫓지 말 아라!],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0번, 감사찬송-230장.
제 목 |
창조주를 기억하라! |
말 씀 |
전도서 12장 1절 |
주 제 |
참 소망 :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다 |
소년부 여러분, 옛날 서양 중세시대때 젊은이들이 불렀던 노래 하나를 소개해 드릴께요. “gaudeamus igitur iuvenes dum sumus”(*2) 이 노래의 의미와 꼭맞는 노래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들어보셨을 텐데, “노새노새 젊어서 노새 늙어지면 못노나니”입니다. 이 노래는 무엇을 말하고 있지요? 맞습니다. 젊어서 마음껏 놀라는 얘기입니다. 늙으면 힘도없고 시간도 없어서 놀지도 못한다는 얘기지요. 성경에서도 우리에게 “젊은이여, 젊은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우리 친구들이 열심히 노는 것은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만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네가 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표현하자면, “젊은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고 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데로 하되 너는 너의 하나님이 네가 한 모든 행위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은밀한 일을 다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사님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옛날에 알고 있었던 친구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 친구는 우리 반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고등학교쯤 되면 주먹깨나 쓰는 친구들은 학교 밖에서도 이상한 조직을 만들어서 소위 건달노릇을 할 때입니다. 그 친구가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조직의 왕초였지요. 반 친구들이 그에게 제대로 대들지를 못했습니다. 전도사님도 그 친구가 무서워서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다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친구가 갑자기 전도사님에게 찾아와 불쑥 말을 걸었습니다. 전도사님은 당황하기도 하고, 약간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너무도 예상외였씁니다. “너 교회 다니지. 나도 데려가 줄래? 나도 사실은 옛날에 교회에 다녔는데 고등학교를 제수해서 들어오면서 다니지 않았거든” 이 말에 전도사님은 얼떨결에 “응”하고 대답했습니다. 전도사님은 전도사님이 다니는 교회의 약도를 그려주었으며, 또 마침 교회 고등부에서 문학제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학제에도 데려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와 여러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친구가 얘기를 하더군요. 자신이 이렇게 싸움쟁이가 된 것은 중학교때, 가정문제로 고민하면서 였다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입시에 떨어지면서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점점 교회에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때는 착실했던 아이였는데, 한 순간 그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후회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외로웠던 것입니다. 그는 싸움을 너무 잘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를 멀리했습니다. 그나마 그 친구 주위에 있던 친구들은 못된 짓만 일삼던 친구들이었기에, 이 친구는 그 친구들과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하질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더니 우연치않게 전도사님이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다가와 말을 걸었던 것입니다.
전도사님은 그 때에 그 친구가 왜 전도사님에게 다가왔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 친구를 더 이상 볼 수 없게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바로 오늘 전도서 말씀 “젊은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의 의미를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본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느 것에서도 그 친구는 만족을 얻지 못하고 기쁨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외로웠고 마음에 진정한 평화를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친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젊은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 진정한 만족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진정한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소년부 친구들, 여러분은 맘껏 즐기시고 맘껏 노새요.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계명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주시고 우리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308, 248장
·공과공부 : 5학년-예루살렘성을 쌓다 : 나라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깨 닫게 한다 [느헤미야의 지도력]
6학년-하나님의 아들 예수 :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님 [나는 예수를 어떻게 생 각하는지 발표]
·알 림 : 추석명절을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보내셨는지?
다음주 월례회가 있습니다.
·다음주 설교 : 말씀-사무엘 상 16장 11-13절, 제목-하나님의 사람, 주제-하나님은 성실한자를 택하신다. [정직과 성실],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1번, 감사찬송-253장.
제 목 |
하나님의 사람 |
말 씀 |
사무엘상 16장 11-13절 |
주 제 |
하나님은 올곧은자를 택하신다 |
소년부 여러분은 혹시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본적 없습니까? 왜 하필이면 다윗이 선택되었을까? 다윗이 뭐가 잘났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았을까? 그는 태어날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것입니까?
전도사님은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고, 어떤 사람은 인정을 받지 못할까? 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을까? 다윗은 태어날때부터 천재였을까? 아니면, 그는 좋은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랬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성경말씀을 읽어보면 이런 종류의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윗의 가정환경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또한 그는 태어날때부터 천재였다는 말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았을까요? 성경은 어째서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을 오늘 말씀속에서 우리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그의 빛이 붉다’는 말은 다윗의 얼굴이 붉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얼굴이 붉다는 것은 겉과 속이 거짓이 없다는 말입니다. 순수하다는 말이지요. 이런 사람은 만일 거짓을 말하면 그것이 얼굴에 ‘나는 지금 거짓말을 했습니다’ 는 것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눈이 빼어나다’는 말은 눈이 맑다는 것 곧, 마음이 진실하는 말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그 사람의 속 마음을 알려면 눈을 보라고 했습니다. 눈속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얼굴이 아름답다’는 말은 원래의 의미는 ‘자비롭고 선하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 왠지 기쁘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사랑이 넘쳐 흐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보면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다윗은 빛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얼굴과 마음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마음에 거짓이 없고, 진실된 사람이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겉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순수하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 마음의 눈이 맑지 않은 사람은 항상 거짓만을 일삼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잠언 4:23 말씀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깨끗하여 빛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윗처럼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 교사 경건회 *
·찬송 : 364, 347
·공과공부 : 5학년-느헤미야 8:1-12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가르친 에스라]
6학년-요한복음 1:29-36 [ Jesus Christ came to us as the Mediator between God and man]
·알림 : 오늘 점심식사후 김혜종 선생님 할머님 문상가겠습니다.
오후예배후 이순자 권사님댁에서 월례회가 있습니다.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주 설교 : 말씀-디모데후서 4장 6-8, 제목-겨울이 오기전에, 주제-미래를 준비하는 자, 처음찬송-9장, 성시읽기-12번, 감사찬송-275장.
* 월 례 회 *
·설교
|| 잠언 8:6-9 = ‘올곧음’
·안건 : 10월-노방전도(4일), 음식만들기 대회(2반이 한 조가 되어서 아이들이 손수 만들기)
황진순 선생님 결혼 선물
소예배실·교사실 환경정리
제 목 |
겨울이 오기전에 |
말 씀 |
디모데후서 4장 6-8절 |
주 제 |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꼭 지키는 어린이 |
소년부 친구들, 여러분은 ‘개미와 배짱이’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개미는 여름 내내 열심히 일을 하였는데, 그 이유인즉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배짱이는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겨울이 오자 춥고 배고프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지런함’입니다. 개미의 부지런함이 춥고 배고픈 겨울을 따뜻하고 배부르게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춥고 배고픈 겨울이 머지 않아 다가올 것입니다. 어느덧 올해도 2/3는 다 지나가고 이제 10·11·12월 석달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1월달에 하나님과 세웠던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까? 이 말을 하고 있는 전도사님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분이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다는 말은 곧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한 평생 살아온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믿음으로 낳은 디모데에게 권면의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도사님이 다시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처럼 바쳐질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월계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만이 아니라 주께서 나타나실 것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만을 전하며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기쁨과 감사의 말씀만을 합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분명히 지켰습니다. 바울도 사람이기에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다가 죽을 고비를 3번씩이나 당한 적도 있었고, 심하게 매질을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믿음과 소망가운데서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올 상급은 오늘 말씀속에 나와 있듯이, ‘생명의 면류관’일 것입니다.
소년부 친구들, 이제 머지 않아 겨울이 다가옵니다. 10월이 지나면 육체적으로 겨울을 느낄 뿐 아니라, 한해를 마감하게 됩니다. 그 때 가서 후회하면 늦습니다. 이제 3개월 남았습니다. 연초에 새워 놓았던 하나님과 나만의 약속, 혹시 아직도 지키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약속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올해에는 내가 저친구를 꼭 전도하려 했는데, 아직도 말한번 제대로 못끄내는 사람은 없습니까? 올해는 성경책을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완전히 한번 읽겠습니다하고 하나님과 약속한 친구는 그 약속을 지켰습니까? 아직 못지켰다면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올해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매일 매일 하나님께 기도해야지 했는데 아직도 늦잠자만 자는 친구들 있습니까?
소년부 친구들, 오늘 말씀처럼 최선을 다하여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여러분 모두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모두 눈을 감으시기 바랍니다. 전도사님이 서정주 시인의 대표시인 [국화옆에서]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꽂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내게 주소서’, 469장
·말 씀 : 사무엘상 17:48-49 ‘신앙의 물매돌’ [우리가 신앙적으로 침체의 순간을 맞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냐? 다들 각자 ‘신앙의 물매돌’ 이라는 것이 있다]
·알 림 : 월례회때 결의된 사항 - 10월 25일 [노방전도], 10월 26일 [음식만들기 대회]
예배 인도자는 정장차림, 성경·찬송가 지참하도록 유도.
소예배실, 교사실 환경정리.
교사 동정사항 - 지난주 김혜종 선생님 할머님 문상을 함께 해 주신 것 감사함.
10월 11일 황진순 선생님 결혼 [축하해주시기 바람]
·다음주 설교 : 말씀-고린도후서 3:17, 제목-자유의 기쁨, 주제-자유함,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3번, 감사찬송-161장.
제 목 |
자유의 기쁨 |
말 씀 |
고린도후서 3:17, 로마서 12:21 |
주 제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성경에는 마귀의 얘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꿰어서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의 경우, 욥을 시험한 사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들려 있는 사람의 이야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악마가 사람을 괴롭힌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악마의 꿰임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지요.
그러나, 이런 악마말고 다른 종류의 악마가 또 있습니다. 그 악마는 오늘 우리들 가까이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커다란 악마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눈만 뜨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욕밖에 없는 사람, 시험을 보면 눈이 옆짝꿍에게로 돌아가는 사람, 먹을 것을 보면 남이 먹기전에 먼저 먹어야지하는 사람, 숙제는 스스로 하기 보다는 친구것을 뺏기는 사람, 부모님께서는 학원에 간다고 하면서 오락실에 가는 사람, 교회에 헌금한다고 돈을 받아가지고서는 반은 과자 사먹고 반만 내는 사람, 돈만 주면 부모도 속이는 사람, ‘나는 할 수 없어’ 하고 체념하는 사람, ‘나는 왜이리 못났지?’ 하고 비관하는 사람, ‘나는 너무 못생겼어’ 하고 비관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자신도 모르게 악마에게 속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돈만 있으면 최고라는 악이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나는 않되! 라고 체념하는 악이 있습니다. ‘나는 못해, 나같이 공부도 못하고 부모님 말씀을 듣지도 않는 어린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어?’ 라는 식의 자기를 절망으로 빠뜨리는 식의 생각을 하게 하는것도 바로 악마의 생각입니다. ‘않되, 어쩔수 없어, 뭐 다그렇지, 아무리 해도 소용없어’ 이런 말도 악마가 주는 생각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악마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이런 악마에 시달려 있기에 언제나 마음이 무겁고, 우리 영혼에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악마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속에 나와 있는 ‘수건을 벗는다’는 말은 바로 이런 세상적인 생각을 내려 놓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현실이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악마를 못이긴다는 생각만 하고 치부하는 것은 악마에게 지는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말씀처럼,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의 힘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평생 사랑을 실천한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모든 악을 이긴 것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자기를 조롱하고 비웃는 모든 사람들을 처벌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끝까지 우리에게 자신을 내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악을 사랑으로 이기셨습니다.
여러분이 등을 돌려 저 세상의 가치관 곧, 나의 이기적인 욕심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선다면 거기에서는 샘솟는 기쁨과 평화가 다가올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409, 29장
·공과공부 : 5학년-감옥에서 놓여 난 바울, 사도행전 16:16-40 [사람이 위기에 놓이면 더욱더 신앙적이게 됩니다. 김진홍 목사, 사람이 삶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삶에 치이면 않됩니다. 때로는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삶을 돌아볼줄 알아야 합니다. || 신앙적인 행동과 인간적인 행동의 차이점,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생각하든지, 무엇을 말하든지 우리는 신앙적으로 해야 합니다.]
6학년-제자를 택하셨다, 누가복음 5:1-11 [제자를 선택하시고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예수님 || 누가 예수를 따를 것인가? 오늘날의 시대는 행동의 시대입니다.]
·알 림 : 어제 황진순 선생님께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결혼식을 하셨습니다. 보시는대로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달 10월 25일[토요일]에는 노방전도가 있습니다. 26일에는 음식만들기 대회가 있습니다. 시간은 오전 11:00-12:00까지입니다. 장소는 중등부실입니다. 오늘중에 각 반은 무엇을 만들것인가를 아이들과 정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어려운 것은 피하시고, 무엇보다도 모든 반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지원금을 드리겠습니다.(회계와 상의), 아이들 관리를 조금 신경써 주시기 바랍니다. [총무선생님은 주보에 ‘예배인도’라고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소년부 교사실 청소를 점심식사후 하겠습니다.
·다음주 설교 : 제목-예수님의 향기를 내는 사람, 말씀-고린도후서 2:15-16, 주제-예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예수의 냄새가 나야 한다.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4번, 감사찬송-282장.
제 목 |
예수님의 향기를 내는 사람 |
말 씀 |
고린도후서 2:15-16 |
주 제 |
예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예수의 냄새가 나야 한다. |
오늘 말씀은 예전에 한번 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냄새가 나야합니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종류의 냄새를 내야하는가의 문제보다는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어제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축구경기를 보았습니까? 전도사님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너무 잘해 주었습니다. 누가 제일 먼저 골을 넣었습니까? 그래요. 최용수입니다. 한국축구의 감독이 누구입니까? 그래요. 차범근 감독입니다. 차범근 감독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은 잘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항상 경기를 시작할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골을 넣을 때도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언제나 먼저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을 합니다.
소년부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의 집사닙입니다. 그가 어떤 다른 방법으로 “여러분 교회 다니세요!” 하고 외친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그가 몸에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하며 여자들이 몸에 바르는 향수같은 것을 뿌리고 다닙니까? 아닙니다. 그는 다만 축구선수로서, 또 축구감독으로서 언제나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차범근 감독에게서 나는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의 삶과 교회 밖에서의 삶이 일치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몸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향기가 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도독놈이 도둑질하다가 붙잡히자, 도둑놈이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니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하는 것은 결코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마귀의 냄새를 풍기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왜 저래?” 이런 말을 듣는 친구들은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냄새를 풍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엮시 교회 다니는 사람은 뭔가 다르구만!” 이런 말을 듣는 친구들이 정말로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합니까? 마귀의 냄새를 풍깁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향기를 풍깁니까?
알버트 슈바이쳐 의사라는 사람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오르간 연주라로서, 당대 최고의 신학 교수로서 주목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서 말씀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아 신학 교수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의학공부를 다시하여 아프리카 땅으로 가서 평생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을 실천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입니다. 또,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흑인과 백인 사이의 갈등이 매우 심했습니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예배드리는 곳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변화시킨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킹 목사’ 였습니다. 그는 결국 백인에 의해서 총에 맞아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결국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의 불평등 관계를 끝맺게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모습입니다. 저마다들 각각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살고 있고 살았습니다. 차범근 감독, 알버트 슈바이쳐, 마틴 루터킹 목사. 여러분들도 이런 사람들 처럼 예수님의 향기를 몸으로 풍기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478, 495
·공과공부 : 5학년-죄수의 몸으로 이웃을 구한 바울 [행27:14-25, 어려움 속에서도 이웃을 도운 바울]
6학년-배고프신 예수님 [눅 4:1-13, 배고픔을 느끼셨던 예수님, 단원 || 인간이 신 예수님]
·알 림 : 오는 토요일 11:00에 노방전도를 하겠습니다. 11:00 소년부실에서 모여 기도하고 준비하고 나가겠습니다. 준비물은 총무선생님께서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장소는 금성 초등학교와 이전의 하교길입니다. 총무선생님은 교사실 사용 청원서를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중으로 반별 음식만들기 식단표를 총무선생님께 알려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준비물은 선생님들께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비용은 회계 선생님께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비용은 자비입니다. 총무·회계 선생님은 저와 얘기좀 하죠. 오늘 중으로 조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장소는 중등부실입니다. 다음주는 1부 예배를 드리시고, 11:00-12:30까지 중등부실에서 음식만들기 대회를 하겠습니다. 총무선생님은 중등부 총무 선생님께 말씀 드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에는 월례회가 있습니다. 한분도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주 교사실 청소를 해주신 총무 선생님과 도와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다음주 설교 : 제목-진정한 사랑, 말씀-요한1서 3장 18절, 주제-코이노니아,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5번, 감사찬송-285장.
제 목 |
영 웅 [찬송 253장] |
말 씀 |
이사야 6장 8절 |
주 제 |
꿈을 가진자가 영웅이다 |
오늘은 종교개혁 480주년 되는 주일입니다. 부패한 천주교를 개혁시킨 사람이 바로 루터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주교의 부패앞에서 루터는 참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천주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참 뜻을 왜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당당히 성경의 참 뜻을 외쳤습니다. 루터는 시대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한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 냅니까? 아니면, 영웅이 새 시대를 만들어 냅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답이 뭔지 전도사님은 알지 못합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 내는지 영웅이 새 시대를 만들어 내는지 전도사님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시대를 열때에는 거기에 합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이 예전에 말한 로마시대에 새 시대를 열렸을 때, 가이사랴(시이저)라는 영웅이 있었습니다. 제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윈스턴 처어칠 대통령이라는 영웅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어려운 시대에는 그 시대를 책임질 영웅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시대에는 지금 영웅이 없습니다. 시대가 요청하는데도 영웅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 마지막 영웅이라고, 아니 마지막 민족의 지도자라고 일컫는 분은 오직 ‘김구’선생님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지금은 없습니다. 이 시대는 지금 영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존경하는 지도자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나도 저런 사람처럼 되어야 겠다” 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영화배우나, 텔런트 같은 사람은 참다운 영웅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오늘 성경말씀 이사야 6장 8절 말씀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한 이사야는 멸망해가는 이스라엘 조국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이라는 엄청나게 큰 제국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된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부르짖습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이사야는 진정 영웅이었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 스스로가 존경받는 사람, 곧 영웅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가 영웅이 되고 싶습니까? 소년부 여러분, 누가 영웅이 되고 싶습니까? 누구에게 영웅이 될 자격이 주어집니까? 그것은 꿈을 품은자에게 주어집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소년부 친구들은 꿈이 있다고 전도사님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정말 이 나라와 하나님을 위한 꿈인지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영웅은 바로 꿈을 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응답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이사야를 부른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응답한 이사야처럼,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에 우리 친구들에게 영웅이 되라고 부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신 영웅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이 나라의 정말 훌륭한 일꾼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465, 384장
·말 씀 : 마가복음 2:14 [종교개혁주일에 “값싼 은혜”에 놓인 우리의 신앙을 반성]
“값싼 은혜는 오늘날 우리들 교회의 불구대천의 원수이다” 이 말의 의미는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그대로 적용된다. 은혜는 실로 귀중한 것이다. 행함이 아닌, 거져 주시는 은혜로 주어진 구원이야말로 얼마나 귀중한가! 그런데, 우리의 믿음 생활은 이 귀중한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고 있다. 은혜에 걸맞는 삶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의 생각을 나의 정신적 지주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은가? 신태수 형제는 자신의 삶의 정신적 지주로 혁명적 그리스도의 상을 가지고 있다. 최보은 형제는 “이 길이 아니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말속에서 자신의 삶의 목표를 확고히 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인생의 전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신태수형제나 최보은 형제 모두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분명한 것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 또한 이런 모습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본회퍼의 「옥중서간」에서 발췌한 내용]
“그리스도는 자기의 때가 올 때까지는 고난을 피하셨다. 그러나 그때가 왔을 때에는 자유롭게 고통을 맞이했으며 이것을 포착하여 극복했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모든 고난을 자기의 고난으로 몸소 체험하셨다고 성서는 말한다. 즉,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아들이고 자유로유셨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스스로지지 말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불가능한 것을 스스로 질수 없음을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역사의 주인은 아니지만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우둔한 방관은 결코 기독교적인 태도가 아니다.”
·알 림 : 주님의 은혜로 ‘노방전도’ 가 무사히 마쳤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참석해 주신 이희정 선생님과 김수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기도하여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배후 11:00-12:30 음식 만들기 대회가 있습니다. [순서|| 찬양, 말씀, 음식 만들기, 심사, 만찬, 기도] -> 준비물 : 음식만들 때 필요한 준비물은 각 반별로 준비, 전체 : 주전자, 종이컵, 은박지 접시, 나무 젖가락. 심사는 부장 집사님과 제가 하겠습니다.
·음식 만들기 말 씀 : 사도행전 4장 32-35절 - 우리가 정성드려 만든 음식을 서로 나누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는 우리들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굶주리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것을 실천해야 한다.
오후 1:30-2:30에는 월례회가 있습니다. [방장로님 어머님 문상, 고가을 어머님 병문안]
※ 11월 준비 사항 : 추수 감사의 달 [환경 꾸미기, 시낭송 할 어린이 1명, 편지낭송할 어린이 1명, 반별 바구니 준비, 특별찬양(총무, 서기, 회계, 보조선생)] || 떡을 준비하든지, 아니면, 그 외 다른 것을 준비하든지.
11월 28일 (금) 기도원 방문.
·다음주 설교 : 말씀-시편 46편 1-5절, 제목-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주제-위로와 소망,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6번, 감사찬송-246장.
제 목 |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
말 씀 |
시편 46편 1-5절 |
주 제 |
위로와 소망 |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46편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누굴 제일 먼저 찾습니까? 어머님이겠지요. 다른 사람은 모두 내가 잘못했다고 비난할지라도 어머님만 내 편을 들어주면 왠지 마음이 든든할 것입니다. 어머님이 내 편이 되셔서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도와 주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러분은 불안한 마음이 모두 사라지게 되지요.
옛날에 수사반장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나온 얘기인데, 전도사님이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떤 시골 집에 아들하나와 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달랑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들은 자라서 소매치기가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결국 형사들이 집에 찾아오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들이 붙잡히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아들을 변호하면서 아들을 살리고 어머님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들이 잘못한 것이 뻔한데도 어머님은 끝내 자식 편을 들어주면서 어머님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형사들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것이 어머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것이 어머님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경우에 하나님은 여러분 편을 들어주십니다. 설령 여러분들이 잘못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다가오셔서 여러분들을 위로하시고 여러분들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억울하게 버림받고 소외당하고 괴롭힘을 당할때는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위로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 그 어느 누구가 여러분들을 비난한다 하더라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절대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비난한 사람들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여러분 곁에 다가 오셔서 여러분들을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지하여서 여러분은 어머님을 마음에 품으듯이, 하나님을 마음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어려움을 당할때에 여러분들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17, 364장
·공과공부 : 5학년-“안디옥에 옮겨 간 교회”, 행11:19-26, [핍박 가운데 세워진 안디옥 교회]
6학년-“고독하신 예수님”, 마8:18-22, [인간이기 때문에 고독하셨던 예수님-예수 를 따르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알 림 : 추수 감사의 달 [환경 꾸미기, 시낭송 할 어린이 1명, 편지낭송할 어린이 1명, 반별 바구니 준비, 특별찬양(총무, 서기, 회계, 보조선생)] || 떡을 준비하든지, 아니면, 그 외 다른 것을 준비하든지. 11월 28일 (금) 기도원 방문. [고가을 어머님 병문안]
·다음주 설교 : 제목-생각을 바꿉시다, 말씀-마가복음 2:17, 주제-하나님의 가치관을 이 땅에 심자,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0번, 감사찬송-162장.
[썩어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오늘 말씀속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모든 가치관을 변화시킨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입니다. 사기와 속임수로 돈을 벌어도 환영을 받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의 가치관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많이만 벌면 된다는 식. 그러나 오늘 “아버지는 환경 미화원”의 주인공처럼, 작지만 정직하게 번 돈이 오히려 소중하고 값진 것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으로.]
제 목 |
생각을 바꿉시다 |
말 씀 |
마가복음 2:17 |
주 제 |
하나님의 가치관을 이땅에 심자 |
소년부 여러분, 오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볼까요? 마가복음 2:17절.
소년부 여러분, 텔레비전 광고중에서 어떤 청소부 아저씨와 아들이 새벽에 나와서 함께 손수레를 끌고가는 선전을 아세요? 전도사님이 그 청소부 아저씨와 아들 이야기를 잠깐 해드릴께요. 그 아저씨는 서울 강동 구청에 근무하는 박선치 아저씨인데, 그는 여러 사업에 실패하고 마땅한 일자리를 찾다가 강동 구청 환경미화원으로 취직했습니다. 자녀들에게는 그냥 구청에서 일한다고만 했을 뿐 자신이 환경미화원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답니다. 혹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걱정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는 매번 아이들의 등하교길을 피해 작업 구역을 맡아 가며 십 년 동안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994년, 고등학생이었던 큰아들 상호 군이 공부를 뒤로 하고 놀기에만 열중하자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그는 어느 날 큰마음을 먹고 식구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작정한 듯 말을 꺼냈답니다.
“아버지는 강동 구청 환경미화원이란다. 이 아비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라.”
그의 말이 끝나자 자녀들은 조용히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그날 밤 박선치 아저씨의 집은 눈물 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뒤 상호 군은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늘 아버지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는 대학에 들어갔지요.
그런데, 지난 1997년 4월 MBC 애드컴이라는 광고회사에서는 환경미화원 부자가 등장하는 광고를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모델이 나서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각 구청을 통해 환경미화원 아버지를 둔 대학생 아들들에게 출연을 의뢰했지만 응하는 학생이 없어 광고 제작을 거의 포기했을 즈음, 박선치 아저씨의 아들 상호 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저희 집은 어느 집보다 행복합니다. 땀 흘려 번 정직한 돈으로 저를 키워 주신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하며 출연에 응했습니다. 곧 박선치 아저씨 부자는 나란히 광고에 출연해 아버지와 아들의 돈독한 정을 보여 주었다. 어스름한 새벽녘 아버지가 끌고 가는 손수레를 뒤에서 밀며 힘들지 않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상호 군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뭘요, 어버지는 매일 하시는 일인 걸요.”
잘못된 세상의 가치관에 의해서 메말라가던 사랑이 모처럼 피어나는 광고였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세상적인 가치관에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최고라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청소부의 일을 하면 그 사람의 인격까지 깔보고 천하게 여기고, 아무리 못된 짓을 한 사람이라도 돈많고 권력있는 국회의원이나 장관은 귀중하게 여기며 아부하는 잘못된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진실은 보지 않고 그저 인기만 있으면 영웅으로 만드는 잘못된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이런 가치관에 얽매여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또 자기자신을 평가합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바로 이런 우리의 모습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함께 죄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합니까?” “어째서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한다고 합니까?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죄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의인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아닙니까?”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저런 녀석이 교회에 다녀? 매일 매일 친구들을 때리기만 하는 녀석인데?” 하는 친구들 있습니까?
이런 질문에 예수님은 오늘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착하고 의로운 사람들을 위해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를 너무 많이져서, 이제는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당시 가치관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오늘날 썩어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오늘 말씀속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모든 가치관을 변화시킨 말씀이었습니다.
환경미화원인 아버지를 존경하는 아들 상호군의 생각과 행동은 분명 이 시대의 가치관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말씀도 엮시 분명 그 시대의 생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잘못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의 생각에 전염되지 말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돈이나 직업에 의해서 사람을 평가하거나, 겉모양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들을 사랑하셨듯이, 여러분도 예수님의 사랑의 가치관으로 잘못되어가고 있는 이 세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17장
·공과공부 : 5학년-“유럽으로 건너간 교회”, 행16:6-15,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함께하시는 하나님]. 6학년-“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요6:22-59,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신 예수님]
·알 림 : 추수 감사의 달 [환경 꾸미기, 시낭송 할 어린이 1명, 반별 바구니 준비, 특별찬양(총무, 서기, 회계, 보조선생)] || 떡을 준비하든지, 아니면, 그 외 다른 것을 준비하든지.
11월 28일 (금) 기도원 방문.
*교사 경건회*
·찬 송 : 308, 311
·말 씀 : 창세기 12:1-2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질문들은 우리들 인생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이런 철학적인 질문들에 빠져들때가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알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자신의 고향을 떠나라고 명하십니다. 왜 떠나야 하는지도, 어디로 가라는지도 아무런 지시도 없이 그저 가라고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단하나의 것 “소망”만을 갖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소망”이라는 단어 하나만을 부여잡고 살아갈 뿐입니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에서 천계의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주자, 신중의 신인 제우스신이 화가 나서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 모든 죄악, 재화를 상자속에 넣고 이것을 흙으로 만든 인류 최초의 여자, 즉 판도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는데, 호기심에 가득찬 판도라가 이 상자를 열자 상자속에 있던 모든 불행이 세상속으로 다 빠져 나갔으나, 소망만은 남아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을 때, 그에게는 단 하나의 소망,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 소망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아브람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과감히 떠났습니다. 인생을 사는데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의 날입니다. 사실 모든 것이 감사할 것이지만, 때때로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할지 모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을 봐서는 도저히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이 안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할 것은 옛 과거를 돌아보며 감사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그 역사를 바라보며, 소망하며, 지금은 내가 사는 것이 낙이 없고 소망이 안보여도 하나님께서 나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소망을 갖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민족의 아버지가 될것이라는 소망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 제단을 쌓았던 것 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알 림 : 추수 감사의 날 [시낭송 할 어린이 1명, 반별 바구니 준비, 특별찬양(총무, 서기, 회계, 보조선생)] || 교회에서 초코파이를 준비했습니다.]
11월 28일 (금) 기도원 방문.
크리스마스때 성극(에피파니-10명)할 어린이들과 찬양(케롤 메들리)할 어린이들을 모집.
·조용한 분위기에서 찬양단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른다.
·점점 밝은 분위기의 케롤을 부른다(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부를 노래도 포함).
·성극 “에피파니”를 공연
·케롤 메들리를 부른다.
·전도사님의 기도로 마무리한다.
·산타아저씨의 선물나누어 주기.
·다음주 설교 : 처음찬송 9장, 성시교독 11번, 말씀-로마서 12장 21절, 제목-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주제-올곧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감사찬송-427장.
제 목 |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말 씀 |
로마서 12장 21절 |
주 제 |
올곧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
여러분들, 혹시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을 들어본적 있습니까? 세계의 4대 성인이라고 일컬음을 받고 있는 사람中 한명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세계 4대 성인(훌륭한 분)으로 석가모니, 공자, 예수님,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말합니다. 석가모니는 불교를 만든사람이고, 공자는 유교를 만든 사람이고 예수님은 기독교를 만든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어떤 종교도 만들지 않았는데 어째서 훌륭한 성인이라고 불리워질까요?
소크라테스는 옛날 올림픽이 생겼던 그리스의 아테네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특별히 부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뛰어난 정치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남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자기가 살고 있던 도시인 아테네의 젊은 청년들이 술만 먹고, 바르게 살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젊은 청년들을 바른길로 인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거짓말을 하여 백성들을 속이는 정치가에게는 백성들 앞에서 그 정치가가 백성들을 속였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잘못된 미신에 빠진 청년들에게는 바른 깨달음을 가르쳐 주어 잘못된 길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소크라테스는 신성모독죄와 젊은 청년들을 잘못 가르친 죄로 고발을 당했습니다. 고발한 사람은 소크라테스로인해 정치적으로 손해를 당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소크라테스는 사형이라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날밤, 소크라테스를 존경하던 많은 제자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와서는 자신들이 준비를 다해 놓았으니 탈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탈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내 죽음을 택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세계 4대 聖人中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죽음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비록 그 죽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사랑하던 많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살아 있는 동안 했던 말과 행동을 되새기면서 글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지 2500년이 지난 지금에는 서양인들의 사상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동양에서는 공자를 모르면 안되듯이,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이라는 것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탄입니다. 이 악을 이기는 방법이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보통 나를 때린 친구를 이기기 위해서는 그 친구와 싸워서 그 친구를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생각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의 식으로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는 나도 똑같이 손해를 입히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곧 이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나를 때린 친구를 이기고 싶으면 때린 친구와 싸워서 이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왼뺨을 때린 친구에게는 오른뺨까지 대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 바로 앞에 보면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실례가 전도사님이 앞에서 말한 소크라테스입니다. 그는 비록 누명을 쓰고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한 말과 행동은 그 뒤 2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좋은 귀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를 죽게 만든 사람들을 이겼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결코 악에게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오히려 자신이 죽음으로 자기를 미워했던 사람들까지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긴 것입니다.
소년부 여러분들, 나에게 잘못했다고 해서, 나를 때렸다고해서, 내가 손해를 보았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다른 사람을 때리고,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나를 때린 친구들이나, 나에게 손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억울함을 갚아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447, 411장
·공과공부 : 5학년-마태복음 28:19-20, 선교사들과 신앙의 선배들로 인해 세워진 한국교회 [오늘날의 ‘선교’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입으로 외치면서 하는 선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선교’는 이제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녀본적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a little christ로서의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6학년-고린도전서 12:12-31, 서로 다른 사명과 기능으로 조화하여 한 몸인 교회를 이루는 우리 [31절-‘사랑’ : 사랑을 받아보지 않은 자는 사랑할줄 모릅니다.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체험하고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십시오]
·알 림 : 다음주부터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공과공부를 준비할 때 이에 맞추어 주십시오.
11월 28일 (금) 기도원 방문. 밤 9:00에 교회에서 모여서 가겠습니다.
* 크리스마스때 성극(에피파니-10명)할 어린이들과 찬양(케롤 메들리)할 어린이들을 모집 *
·조용한 분위기에서 찬양단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른다.
·점점 밝은 분위기의 케롤을 부른다(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부를 노래도 포함).
·성극 “에피파니”를 공연
·케롤 메들리를 부른다.
·전도사님의 기도로 마무리한다.
·산타아저씨의 선물나누어 주기.
·다음주 설교 : 처음찬송 9장, 성시교독 12번, 말씀-민수기 17:8, 제목-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감사찬송-246장
소년부 교사 기도회
1. 일 시 : 1997년 11월 28일(금) 오후 9:00
2. 장 소 : 미금선교원
3. 예배 및 기도회
㉠ 찬 양 : 복음성가, 349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364장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 말 씀 : 누가복음 14:7-27 [제목: 제자와 무리, 주제:무리가 되지 말고, 제자가 되라!]
동양의 성인이라고 일컬어지는 공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朝聞道면 夕死라도 可矣니라”(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니라). 공자의 사상은 ‘知行合一’입니다. 알고 깨달은 것을 그대로 행하는 삶을 공자는 지향했습니다(깨달은 만큰 그대로 실천으로 옮긴 삶을 지향했습니다). 따라서 위의 ‘조문도면 석사라도 가의니라’ 이 말은 “아침에 우리가 당연히 행하지 않으면 안 될 도리를 들어 깨친다고 하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으로서 저녁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만족할 만한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깨달음은 곧 ‘생명’과 바꿀만한 것입니다. 따라서 깨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마음에 감동을 느끼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이란 목숨을 내놓을 만큼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 깨닫기 위해서는 그 만큼 고통과 아픔의 과정을 겪어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바리새파 사람의 지도자중 어떤 사람의 집에 초청받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기를 쓰고 윗자리를 골라 잡는지를 보시고, 비유를 하나 들어 말씀하십니다.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 윗자리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는 비유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마치자, 초대를 받은 사람중 한명이 예수님의 말씀에 맞장구를 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15절)하고.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사람에게 다음의 비유(16-24절)를 듭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막상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핑계, 저핑계를 대면서 모두들 초대에 응하질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 사람에게 이런 비유를 든 것일까요? 예수님과 함께 초대받은 사람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그 의미를 옳게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은 마음으로도 충분히 동감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혜롭고, 똑똑하여 무엇이 진실인지를 정확히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자신더러 말석에 가 앉으라면 결코 앉지 않을 사람이었습니다. [예화 : 명성교회의 안기부 방문]
그 사람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알고 마음으로 깊은 감동은 받았지만, 깨달음의 경지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25절에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무리와 제자’의 차이가 있습니다. 무리란 알긴 알지만, 느끼긴 느끼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이고, 제자는 깨달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무리는 어려운 환란이나 시련이 오면 도망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대부분의 무리들은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결국 자신의 목숨을 내 놓았습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올 때, 제자가 되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둔 지금 저의 모습을 돌아보면 제자가 아닌, 무리의 한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적어도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보다는 훨씬 많이 알았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있습니다. 전에는 이것이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현실을 직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교사라는 직분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리의 한 사람으로서 그 직분에 봉사하는 것과 제자로서 봉사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일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자신을 보여드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찬 송 : 415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복음성가 2곡정도
㉣ 짝기도 : 초를 가지고 두명씩 짝을 이루어 상대방의 기도제목을 듣고 함께 소리를 내어서 기도한다. [소요시간 : 1시간] => 마무리 : 복음성가.
㉤ 합심기도 : 409장 ‘목마른 내 영혼’ =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이듯이, 소년부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부분입니다. 이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전도사입니다. 그 중에서 먼저 선생님들이 사랑안에서 소년부를 사랑할 수 있도록. 아울러 98년도 소년부 교사확보를 위해서 기도. = 대표기도 - ?
: 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 교회가 변합니다. 새롭게 변하려는 흰돌교회를 위해서, 특히 교역자들이 많이 바뀌고 예배 체제가 바뀝니다. 교회와 교역자들을 위해서 기도. 아울러 새로오실 소년부 전도사님과 저를 위해서. = 대표기도 - ?
: 172장 ‘빈 들에 마른 풀같이’ = 국가를 위해서 기도. = 대표기도 - ?
㉥ 마무리 찬양 : 복음성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주기도
㉧ 간 식 시 간
제 목 |
아론의 싹난 지팡이 |
말 씀 |
민수기 17장 8절 |
주 제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
민수기 17:8
“이틑날이 되어, 모세가 증거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레위 집안 아론의 지팡이에는 움이 돋았을 뿐 아니라, 싹이 나고, 꽃이 피고, 감복숭아 열매까지 맺은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두명의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누구누구죠? 모세와 아론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였고, 아론은 제사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애굽)으로부터 나와서 홍해를 건너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매일매일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가나안 땅에 못들어가고 사막과 모래뿐인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하고 있던 어느날 드디어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아론의 제사장직을 넘보려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고라라는 사람과 몇몇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였습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아론이 행했던 제사장의 일을 자기들이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든 사람들을 역병에 걸려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고라와 그 자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 몇몇은 여전히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고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우겨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각각 한 지파씩 지팡이 하나씩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12지파의 지팡이를 가져오자, 하나님은 그것을 증거궤 앞에다 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보니, 땅에 심지도 않은 막대기에 불과한 12개의 막대기중 오직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지요.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증거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자기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겠나고 해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도 모르고 지도자의 자리가 탐나서 인간적인 욕심으로 그 지도자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우겨댔던 것입니다. 12개의 막대기중 오직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꽃이 피고 싹이 난 것은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택하셨다는 증거였습니다. 다른 누가 택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욕심으로 로마를 지배하려 했던 시이저는 자신이 그토록 믿고 있던 충성스런 부하인 부르투스에게 칼에 찔려 어이없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흑인과 백인 사이의 갈등을 없앤 미국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차이는 한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인간적인 욕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욕심으로 지도자가 되려했던 고라와 몇몇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지도자로 세웠던 것 처럼, 여러분들을 이 나라의 지도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495-‘내 영혼이 은총 입어’, 409-‘목마른 내 영혼’
·공과공부 : 5학년-이사야 60:1, 7:14, 희망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어두움 가운데 희망의 빛을 비추러 오신 예수님]
6학년-이사야 9:7, “왕으로 오신 예수” [공평과 정의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
[눅13:31-33]
“오늘부터 대강절이 시작되었습니다. 5학년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 6학년은 ‘왕으로 오신 예수’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눅13:31-33을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이 어울릴 것입니다. 대강절이 되고,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마음이 들뜨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갖가지 축하잔치를 준비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는 기쁨이 아니라,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자 헤롯왕은 베들레헴과 그 지역에 사는 두 살이하의 어린 아이들 모두를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때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장성하여 공생애를 시작하실때도 예수님은 죽음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만 생각하고 그 뒷면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독교의 신학을 일컬어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이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아 우리의 구원자로, 왕이 되시기 전에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했듯이, 우리의 신앙도 기쁨과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지기 전에 먼저 십자가의 고통과 자아를 죽이는 관문을 통과해야함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 우리의 교회는 ‘십자가의 신학’의 의미를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기 극복에 기독교인들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옛날 고통의 시절을 망각했습니다. 신앙도 고통의 시절, 곧 ‘십자가의 고통과 아픔’을 망각한다면 신앙적인 위기와 어려움에 처합니다. 대강절의 시작은 우리에게 예수님이라는 구원자의 탄생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위한 시작인 동시에, 신앙적인 고통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고통이 없으면 성숙도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알 림 : 교사 기도회에 참석하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개근교사 파악, 졸업자 명단 파악(선물what), 교적부 정리, 공과책 주문,
98년도 교사봉사 자원서 제출, 오후 1:00-2:00 교사월례회(시간엄수).
크리스마스때 성극(에피파니-10명)할 어린이들과 찬양할 어린이들 모집.
·다음주 설교 : 말씀-딤후 3:5, 제목-겉과 속이 다른 사람, 주제-참된 경건의 삶,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13번, 감사찬송-“주여 진실하게 하소서”.
*교사 월례회*
·찬 송 : 364장 or 복음성가
·말 씀 : 사무엘하 12:11-13
오늘 말씀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후 나단이 그 죄를 폭로한 내용입니다. 전에 한번 말씀드린 본회퍼의 글을 잠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본회퍼는 독일 히틀러에 의해서 교수형을 당한 독일의 양심적인 목사이자, 신학자였습니다. 본회퍼는 감옥에 갇혔었도 절대로 흔들림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거의 동일한 경우입니다. 다음은 본회퍼의 「옥중서간」中에 나오는 말입니다.
“어떠한 인생의 과정도 거침없이 조용하게 흐르는 일이란 없다. 그것은 둑에 부딪치기도 하고, 우회하며 흐른다. 혹은 맑은 수면에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각자의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써야할 것은 인생의 수면이 맑아 하늘과 땅이 거기에 비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마지막 구절, “우리가 마음을 써야할 것은 인생의 수면이 맑아 하늘과 땅이 거기에 비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는 말에 주목해 봅시다. 인생의 과정은 언제나 조용하게 흐르지만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수면이 맑아야 즉, 마음이 깨끗하여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동일합니다. 언제나 순탄할수 만은 없습니다. 또 언제나 정결되게 죄짓지 않고는 살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죄는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맑아서 죄를 죄로 깨닫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는 마음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다윗은 적어도 자신의 죄를 죄로 정직하게 고백한 사람입니다.
항상 이맘때면 지난 1년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언제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올해도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구나! 하며 숙연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후회는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후회를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한번 도전하는데 있습니다. 이때의 후회는 오히려 약이 됩니다. 그러나, 후회만 하고 낙담하면 그때의 후회는 약이 아니라, 절망이라는 굴레만을 남깁니다. 약이 되는 후회를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12월 행사
㉠ 오늘중으로 개근교사 파악, 졸업자 명단 파악(선물what), 교적부 정리, 공과책 주문, 98년도 교사봉사 자원서 제출.
㉡ 크리스마스때 성극(에피파니-10명)할 어린이들과 찬양할 어린이들 모집.
담당자 : 성극-류연준, 최진선, 김묘경 찬양-박민희, 유근영
순 서 : 크리스마스때 성극(에피파니-10명)과 찬양
·조용한 분위기에서 찬양단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른다.
·점점 밝은 분위기의 케롤을 부른다(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부를 노래도 포함).
·성극 “에피파니”를 공연
·케롤 메들리를 부른다.
·전도사님의 기도로 마무리한다.
·산타아저씨의 선물나누어 주기.
장 소 : 지하 중등부실
시 간 : 9:00-10:20
㉢ 12월 21일-성가대 찬양, 28일-진급예배 및 졸업시상.
제 목 |
겉과 속이 다른 사람 |
말 씀 |
딤후 3장 5절 |
주 제 |
참된 경건의 삶 |
12월이 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래요. 성탄절이 생각날 것입니다. 성탄절에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사랑을 전해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친구들이 없는 사람들은 더욱 쓸쓸해하고 더욱 추위에 떨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12월이 되고 연말연시가 되면 ‘불우이웃을 도웁시다’는 구호를 여기저기서 듣게 됩니다. 거리에서는 구세군 아저씨들이 종소리를 울리며 우리들의 작은 사랑의 표현을 기다립니다. 바로 사랑이 필요한 곳에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올해도 이런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 진정 사랑을 표현하는 것인지. 연말연시, 12월만 되면 으레 ‘불우이웃을 돕웁시다’는 외침에 마지못해 동전 몇푼을 댕그랑 넣고는 ‘나는 할만큼 다했어. 내 양심은 떳떳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기는 싫지만 그래서 양심에 찔리니 약간의 동전을 주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까?
한자에 ‘愼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독’이란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삼간다는 말입니다. 남이 보지 않아도 정직하며, 바른 행실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연말연시가 되었다고 해서, 주위에서 불우이웃을 돕자고 해서 하는 사랑의 표현은 ‘신독’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 디모데후서 3:5에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라는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겉으로는 불쌍한 사람을 돕는 행위를 하지만 속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 아닙니다. 경건이란 남이 보든 보지 않든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 때문에 마지 못해 불우이웃을 돕는 것은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겉으로도 불우이웃을 도울뿐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진정으로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사랑할 줄 아는 친구들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십니다. 구약 신명기 말씀에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마음에서부터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참된 경건의 모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364
·말 씀 : 이사야 60:1 [교회는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인재는 교회학교에서 키우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도자를 잘만나야 하고 또 지도자를 양성해야 합니다]
·알 림 : 개근교사 파악, 졸업자 명단 파악(선물what), 교적부 정리, 공과책 주문, 98년도 교사봉사 자원서 제출, 오후 1:00-2:00 교사월례회(시간엄수). 크리스마스때 성극(에피파니-10명)할 어린이들과 찬양할 어린이들 모집.
·다음주 설교 : 말씀-약 1:2-3, 제목-고생하며 웃는 사람들, 성시교독-14, 감사찬송-269.
제 목 |
고생하며 웃는 사람들 |
말 씀 |
야고보서 1:2-3 |
주 제 |
Ad astra per aspera |
소년부 친구들, 「탈무드」라는 책을 아세요? 그래요.「탈무드」는 이스라엘인들이 수백년동안 살면서 터득한 지혜들을 모아놓은 지혜의 책입니다. 그 속에는 갖가지 많은 지혜로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즐겨 읽는 그「탈무드」라는 책에 보면 이런 수수께끼가 쓰여져 있습니다. “인간의 눈동자는 흰부분과 검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검은 부분으로만 물체를 보도록 만든 것일까?” 하는 물음입니다. 왜그럴까요? 그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은 어두운 것을 통해서만 밝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풍요로운 가을이 올 것을 믿
고 기다립니다. 눈보라치는 겨울이 지나가면 따스한 봄이 올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폭풍우 후에는 반드시 찬란한 무지개가 뜰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고생을 싫어하고 평안함과 행복만을 찾습니다. 서양 속담에 “고생을 모르는 사람보다 이 세상에 더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해지려면 먼저 고생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옛날 로마의 유명한 휴양소인 ‘폼페이’라 도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주후 79년에 갑작스런 화산 폭발로 완전히 페허가 돼버린 도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폼페이 도시의 유물들을 전시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이 도시에는 두 개의 극장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비극만 상영하는 슬픔과 눈물의 극장이요, 또 다른 극장은 희극만 상여하는 기쁨과 웃음의 극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었답니다. 인생은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더욱 크다는 말이요, 인생을 살아가는 날 중에서 슬프고 마음 아픈 고생의 순간들을 탄식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생활 공간속에 없어서는 안될 전구 등 1000여 가지를 발명한 발명왕 에디슨이라는 사람의 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학교를 다니다 말고 열차 안에서 신문을 팔면서 연구를 계속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화학약품을 잘못 관리하여 불이나게 되었고 차장이 에디슨을 밀어내자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진 에디슨은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오히려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연구에만 전념하게 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인생들에게 고생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친구들에게 고생살이를 허락하시는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을 통하여 여러분들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소년부 여러분! 좋은 날을 보시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고생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적을 본 자가 있습니까? 몸부림치는 기도 없이 응답을 받은자는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음 없이 부활의 영광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목 마르고 베고픈 광야를 지나야 합니다.
소년부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는 몇몇 욕심많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잘못하면 가난한 나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최소한 10년 정도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생고생하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친구들은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저 부모님께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는데로 모두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습니다. 갖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친구들은 ‘고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피부로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고생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역사의 개척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자는 고행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오히려 이런 고생을 통하여서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소년부 친구들, 이 믿음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123장
·말 씀 : 사무엘하 12:11-13
오늘 말씀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후 나단이 그 죄를 폭로한 내용입니다. 전에 한번 말씀드린 본회퍼의 글을 잠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본회퍼는 독일 히틀러에 의해서 교수형을 당한 독일의 양심적인 목사이자, 신학자였습니다. 본회퍼는 감옥에 갇혔었도 절대로 흔들림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거의 동일한 경우입니다. 다음은 본회퍼의 「옥중서간」中에 나오는 말입니다.
“어떠한 인생의 과정도 거침없이 조용하게 흐르는 일이란 없다. 그것은 둑에 부딪치기도 하고, 우회하며 흐른다. 혹은 맑은 수면에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각자의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써야할 것은 인생의 수면이 맑아 하늘과 땅이 거기에 비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마지막 구절, “우리가 마음을 써야할 것은 인생의 수면이 맑아 하늘과 땅이 거기에 비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는 말에 주목해 봅시다. 인생의 과정은 언제나 조용하게 흐르지만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수면이 맑아야 즉, 마음이 깨끗하여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동일합니다. 언제나 순탄할 수 만은 없습니다. 또 언제나 정결되게 죄짓지 않고 살 수 만은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죄는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맑아서 죄를 죄로 깨닫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바위처럼 딱딱해지고 흑암처럼 어두워진 것입니다. 다윗은 적어도 자신의 죄를 죄로 정직하게 고백한 사람입니다.
항상 이맘때면 지난 1년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언제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올해도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구나! 하며 숙연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후회는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후회를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한번 도전하는데 있습니다. 이때의 후회는 오히려 약이 됩니다. 그러나, 후회만 하고 낙담하면 그때의 후회는 약이 아니라, 절망이라는 굴레만을 남깁니다. 약이 되는 후회를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알 림 : 교적부 정리, 98년도 교사봉사 자원서 제출, 오후 1:00-2:00 성탄절 장식
성탄절 연습 담당자 : 성극-최진선, 찬양-박민희, 유근영
[장소 : 중등부실, 시간 : 9:20-10:20]
21일-성가대 찬양, 28일-교사 총회(총무와 회계, 서기) 및 진급예배 졸업시상.
·다음주 설교 : 말씀-눅2:14, 제목-‘성탄’의 참된 의미, 성시-26번, 감사찬송-어른찬송125장.
제 목 |
‘성탄’의 참된 의미 |
말 씀 |
누가복음 2:14 |
주 제 |
성탄절을 바르게 보내자! |
소년부 여러분, 다가오는 목요일이 무슨 날이죠? 그래요.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무슨날이예요? 그래요.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과 전도사님은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달을 매우 좋아합니다. 왠지 기쁨이 넘치고, 즐겁고, 기다려지는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년 중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달도 12월달이랍니다. 그리고 12월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날이 바로 25일 성탄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크리스마스를 제일 좋아하는데, 예수님을 가장 싫어하는 마귀도 어째서 크리스마스를 좋아할까요? 크리스마스가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크리스마스를 ‘기쁨의 크리스마스, 즐거운 크리스마스, 평화의 크리스마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는 평화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죽을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기쁨의 배후에 숨어 있는 예수님의 숭고한 슬픔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 오신 예수님으로서는 이 크리스마스가 고난의 시작이요 출발인 것입니다.
이날로부터 시작된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고난은 험난한 가시밭의 연속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의 기쁨을 노래할 때 그 분은 고난의 눈물로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날때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으셨습니다. 끝내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날때부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승천하실때까지 슬픔과 죽음의 위협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슬픔을 깨닫지 못하고 마냥 즐겁기만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크리스마스는 있을 수 없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이 땅위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태어나신 예수님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전도사님이 다니는 학교에 2학년 전도사님중에 딱한분 말못하고 듣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예전에 대학교에 다닐 때 갑자기 아무것도 들을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예배실에서 매일매일 예배를 드리는데, 그 전도사님은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어떤 전도사님이 어느날부터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수화를 통해서 예배시간마다 말못하고 듣지 못하는 그 전도사님을 위해서 봉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는 수화뿐 아니라, 옆에 있는 친구 전도사님이 예배 설교의 내용을 노트북을 이용해서 타자를 쳐 주었습니다. 모두들 그 한사람을 위해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랑을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시간, 자신의 노력을 다해 한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가 바로 사랑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한 평화는 ‘사랑의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사랑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 오시고 희생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크리스마스는 그저 웃고 즐기는 날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의 길을 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소년부 여러분, 예수님께서 희생의 길에 오심으로써 하나님의 평화가 사람에게 임한 것처럼, 사람과 사람의 평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크리스마스를 통하여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진 것 처럼, 이제 우리도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희생과 사랑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거기에 참다운 성탄의 의미가 있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는 즐거운 날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예수님의 슬픔과 희생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순종과 희생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결심으로 참다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113, 125장
·말 씀 : 민수기 14장 6-8절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11월 28일 박창원 전도사와 이야기를 마치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을때의 푸근함.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소중한 마음이다. 그의 순수함과 깨끗함. 이것은 순진함과는 다르다. 그는 분명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삶에 대한 태도는 여유로왔고, 순수했다. 그리고 맑았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이었다.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그 무엇을 그는 간직하고 있었다. 너무 늦게 만난 것이 아쉽다. 학문적인 견해도 지향하는 바도 거의 동일하다. 그와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결혼을 했고 자신의 가야할 길에 대해서 더욱 분명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굳게 서 있다는 것이다. 상조는 분명 현실을 직시했다. 그도 느꼈고 알았다. 차이점은 그는 그 현실을 가볍게 극복하고 여유있는 삶의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꿈은 있으나, 욕심이 없는 모습. 확고하나 여유있는 모습. 상조가 본받아야할 삶의 태도이다.”
·알 림 : 성탄절 연습 담당자 : 성극-최진선, 찬양-박민희, 유근영
[장소 : 중등부실, 시간 : 9:20-10:20]
21일-성가대 찬양, 28일-교사 총회(총무와 회계, 서기) 및 진급예배 졸업시상.
·다음주설교 : 제목-꿈을 이루자! 말씀-마태복음 4:17, 주제-vision, 처음찬송-9장,
성시교독-27번, 감사찬송-246장.
제 목 |
꿈을 이루자! |
말 씀 |
마태복음 4장 17절 |
주 제 |
vision |
소년부 여러분, 벌써 한해가 다 지나갔습니다. 오늘이 1997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2주전에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었지요? 여러분은 누가 되길 바랬어요? 모두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길 기대했을 겁니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요? 그래요.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오늘은 ‘김대중’ 이라는 사람을 잠시 얘기하려 합니다. ‘김대중’이라는 사람을 칭찬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 3번 출마했는데, 모두 떨어지고 4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옛말에 ‘7전8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여러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서 도전하여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말이지요. 대통령 선거에 한번 출마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김대중이라는 사람은 4번씩이나 출마했습니다. 떨어지면 또 다시 일어나서 도전했고 결국에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한 가지 질문하겠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다시 일어나게 만들었을까요? 실패와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힘때문이었을까요? 바로 “꿈”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한평생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때로는 좌절과 아픔이 있었지만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어 꿈을 이루었습니다.
꿈이 없는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쓸모가 없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꿈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꿈이 없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죽은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십시오. 꿈 중에서도 지도자가 되려는 꿈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바른 지도자만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남자만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지도자는 키 큰 사람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은 키가 150㎝ 정도밖에 않됬는데도 전유럽을 지배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또 옛날 프랑스와 영국이 100년동안 싸움을 했는데, 영국이 점차 프랑스와의 싸움에서 이겨 프랑스가 궁지에 몰렸을 때 ‘잔다르크’라는 시골 농부의 딸이 나타나서 영국을 무찔렀습니다. 시골 농부의 딸 ‘잔다르크’는 어느 누구도 이길수 없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나는 여자이니까, 나는 키도 작도 별 능력도 없으니까’ 생각하는 친구들 있습니까? 또는 ‘내가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어?’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지도자는 꿈꾸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예수님도 꿈을 꾼 분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고 하셨는데, 바로 예수님은 ‘천국’ 곧 ‘하늘나라’를 꿈꾼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를 이땅에 건설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시다가 결국은 “내가 죽어야 하늘나라가 이 땅위에 세워지겠구나” 생각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이 땅위에 ‘하늘나라’를 건설하시고 모든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꿈이 이루셨습니다.
소년부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 나라를 이끌 지도자가 되라는 꿈을 주셨습니다. 정치에서 지도자가 되십시오. 경제에서 지도자가 되십시오. 체육에서 지도자가 되십시오. 음악에서 지도자가 되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꿈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꿈이 없는 친구들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살아서 꿈을 이루어 가시는 소년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교사 경건회*
·찬 송 : 495, 542장
·말 씀 : 마가복음 8장 27-29절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우리들 스스로에게 다시한번 물어볼 질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는가?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의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고백과는 다르지 않는가? 입술로는 나의 구원자이시며 내 인생을 이끄시는 분이라고 고백하지만,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고 가장자리에 놓고 내게 필요할때만 이용하는 그런 존재로밖에 여겨지지 않는지. 벌써 한해가 다 지나갔습니다. 연초에는 모두들 나름대로 하나님앞에서 계획을 세워놓고 금식기도를 하며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께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는 한해를 마무리할때쯤이면 다시금 숙연해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노력을 덜해서 그랬을수 있습니다. 아니면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랬을수 있습니다. 갖가지 변명을 댈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늘 베도로의 고백처럼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느냐입니다. 새해는 또다시 옵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또다시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께 약속을 할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을 지켜나갈 때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느냐입니다. 우리가 약속을 못지키고 우리의 의지대로, 인간적인 생각에 좌우되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있지 않고 변두리에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있다가도 가장 중요하고 정작 중요할때는 인간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새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