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방법 3
사랑의 방법 3
고전13:4-7
지난 시간에 이어 사랑의 방법에 대해서 계속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고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배움에 있어서 사랑의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를 이해하면 쉽게 깨달아집니다.
8.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이 성내지 않는다는 이 문구 속에는 사람을 무시한다든가 조롱한다든가 괴롭힌다든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태가 전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 한 사람을 전도하여 낸다는 것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가운데 있어도 성내서는 안 됩니다. 교육자의 자세도 그렇지요? 학생들을 체벌하더라도 감정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에 대한 체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약1:20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는 말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하셨지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내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일을 망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 된 일을 성내는 것 하나 때문에 그르치게 됩니다. 우리의 몹쓸 성미가 일을 그르칩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 중요한 자세가 핍박을 받아도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의 일 하다가 받는 핍박은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애매한 고난도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참으로 그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9.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다란 받은 피해를 복수하기 위해서 하나하나 장부에 기록하듯이 헤아리면서 원망하고 비판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 반응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성내는 것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성내는 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이것은 마음 가운데 자리 잡는 계획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일 하다보면 헤아릴 수 없는 배신이나 충격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바울도 얼마나 핍박을 받았습니까? 행 23장을 보면 바울을 죽이지 않고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바울을 죽이려고 숨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냥 핍박도 괴롭지만 거짓으로 누명 씌우고 모함하고 선동할 때는 참으로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고 성내지 않았으며 악한 것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바울에게 힘이 되었던 분은 첫째는 하나님이시고 다음은 사랑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해하 주고 기도해 줄 때 주의 일에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마음이셨습니다. 마12:19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같이 잠잠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10.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고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해서도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처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책망만 일삼거나 칭찬만 일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의를 보고도 기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을 잘못되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잘한 것을 보고도 가만있으면 좋게 키우기를 포기한 것이 됩니다. 책망도 필요하고 칭찬도 필요합니다.
적절한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 칭찬이 좋은 30가지 이유라는 글의 일부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 칭찬을 하면 꼭 칭찬들을 일을 한다. 칭찬을 받으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입에서 노래가 나온다. 본인도 모르고 있는 부분을 찾아 칭찬하면 그 기쁨은 10배, 100배로 증폭된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칭찬거리를 찾다보면 무수한 칭찬거리가 나타난다. 칭찬은 자신과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는 공동 승리를 안겨준다. 운동선수는 응원 소리에서 힘을 되찾고 사람은 칭찬을 들으며 자신감을 갖는다. 미운 사람일수록 칭찬을 해 주어라. 언젠가 나를 위해 큰일을 해 줄 것이다. 칭찬하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칭찬은 보물찾기와 같다. 보물은 많이 찾을수록 좋은 것이다. 칭찬은 사랑하는 마음의 결정체이다. 한 방울의 꿀이 수많은 벌을 끌어 모으지만 1만 톤의 가시는 벌을 모을 수 없다. 칭찬은 적군을 아군으로 만들고 원수도 은인으로 만든다. 사람은 너나없이 칭찬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 칭찬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어떤 것으로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칭찬은 불가능의 벽을 깨뜨리는 놀라운 힘이 있다. 사랑의 눈에는 좋은 점만 보이는 것이다. 칭찬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마음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바꿔준다. 내가 말하는 한마디 칭찬이 의식개혁의 시작이다. 내가 칭찬을 하면 상대방도 칭찬을 되돌려 준다. 칭찬을 주고받는 세상이 지상천국이다. 칭찬을 받으면 마음을 열고 활력 있게 행동을 하게 되고 불가능도 가능으로 바뀐다. 칭찬을 하다 보면 모두 하나가 된다.” 는 등등의 내용입니다. 이처럼 진실로 사랑한다면 늘 좋은 점을 발굴하여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11.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 것입니다.
여기 참는다는 것은 지붕이라는 뜻의 ‘스테게’에서 온 말입니다. 이 낱말은 지붕과 같이 상대방의 모든 불의한 행동과 허물을 덮고 가려준다는 뜻입니다. 지붕이 아니더라도 덮어지는데 지붕이라면 아주 크게 덮음입니다. 그러나 불의를 묵과한다는 뜻은 아니고 그에게 관용하고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노아의 두 아들처럼 노아의 실수를 가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함은 아버지가 노망했나봐 아마 이렇게 그 허물을 비웃으며 유포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귀한 일에 쓸 수 없는 재목입니다. 큰 재목은 사랑으로 이해하고 덮어주고 배려하고 이끌어주고 그래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이끌고 크게 일하려면 이것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마치 어머니와 같아야 합니다. 덮고 다독거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작은 일도 커집니다. 사랑이 없으면 소란이 일어날 때 무슨 일로 그렇게 큰 소란이 일어났는가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그 소란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큰일도 적어지고 적어지다가 아주 사라집니다. 이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요 성숙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배웁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랑의 마음이 있으시기에 우리가 그 앞에서 존재합니다. 사43:25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미7:19에도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하였습니다.
12.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란 끝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잘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한 번 넘어졌다고 몇 번 실수했다고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보세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나를 사랑하느냐 나이 양을 먹이라 다시 맡기셨습니다. 베드로가 뭐 대단한 것 있다고 그러셨을까요?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이고 그래서 예수님이 크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너무 처음부터 완전한 것만 추구하는데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매님들 완전한 남자 고르려고 하면 있습니까? 요즘 30세 전후에 결혼을 하는데 30세 전후에 완전한 남자가 어디 있습니까? 완전한 남자를 고르려면 40대가 더 낫지 않을까요? 제 말은 완성된 사람을 고르지 말고 불완전하더라도 만들어 가시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이게 많은 것 같으면 저게 부족하고 저게 많은 것 같으면 이게 부족하고 그게 정상입니다. 좀 부족하더라도 사랑으로 밀어주고 길러주면 큰 사람이 됩니다. 호기심 많고 엉뚱한 질문을 잘하는 에디슨을 사람들은 버렸으나 사랑하는 어머니는 버리지 않고 그의 가능성을 믿고 공부시켰습니다. 못해도 믿어주고 길러주시기 바랍니다.
13.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은 소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셨는가 보세요. 마12:20-21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정말 우리가 상한 갈대 같이 약하고 꺼져가는 심지 같이 미약해도 주님은 해봐라 될거다 된다 할 수 있다 내가 돕겠다 하시면서 우리가 이길 때까지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본 받아 늘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일은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일만 나타나게 되고 된다고 보면 될 방법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늘 희망을 심어야 하고 젊은이들에게도 늘 비전을 주어야 합니다. 늘 좋은 말을 해 주세요. 그러므로 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은 희망과 비전을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14.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여기 견딘다는 용어는 참을성이란 의미를 넘어 용감한 군인과 같이 담대한 마음으로 인내하며 미래를 향하여 진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참으로 용감하게 세상에 오시고 또 잡히시려 용감하게 앞장 서서 올라가시고 십자가를 용감하게 지셨던 것과 같습니다. 사63:1에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이 용감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자기를 잊으셨습니다.
우리도 사랑에는 자기를 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 어느 어머니 보니까 아들이 폐결핵을 앓았는데 과거인지라 특별한 약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뱀이 좋다고 하니까 이 어머니는 뱀 무서운 줄을 모르고 뱀을 손으로 잡아다가 자루에 담아가지고 와서 아들에게 뱀탕을 먹였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가냘픈 여인의 마음도 강하게 만듭니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심리가 다르다고 합니다. 2차대전시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명령이라 하면 갑자기 용감해졌습니다. 일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천황폐하의 명령이다 하면 죽음도 불사합니다. 그런데 블란서 사람들은 유행과 스타일에 목숨을 건다고 합니다. 요즘 여성들이 미를 위해서 죽을 일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미국인들은 민주주의와 나라를 위한다면 피를 흘리는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럼 한국인이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는 일은 무엇일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마 돈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 버는 것이라면 주야를 막론하고 살지 죽을지 모르게 일합니다. 그럼 우리들이 생명 바칠 말씀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님과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거기에 내 생명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을 본 받아 모든 것을 사랑으로 잘 감당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