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방법
사랑의 방법
고전13:4-7
이 시간에 함께 나눌 말씀은 사랑론 두 번째 시간으로 「사랑의 방법」이라는 제목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랑의 중요성을 말씀드렸습니다. 즉 아무리 귀한 은사도 사랑으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의 방언처럼 알아듣기 쉽고 천사의 말처럼 귀한 진리일지라도 울리는 소리에 불과할 뿐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또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귀한 능력도 부작용 있게 되고 또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받으나 마나 무가치합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억지로 하다가 시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말씀에 이어 이제는 사랑의 방법론입니다. 본문도 역시 은사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은사 감당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은 먼저 내 신앙 지킴을 위함이요, 나아가 죄인들을 전도하고 권면하고 도와서 온전한 사람 만들라고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은사를 사랑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사랑의 방법을 4-7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기 나오는 15가지 말씀이 바로 그 방법입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보여주신 본입니다. 어떻게 본을 보이셨습니까? 벧후3:9에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홍수로서 죄인들을 멸하실 때도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한 사람도 제외 되지 않고 다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벧전3:20).
바울도 그랬지요? 딤전1:16에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이 예수 이름을 핍박한 죄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참된 선지자들이 보여준 본이기도 합니다. 이 오래 참으라는 말에는 끝까지 기다리라는 뜻도 있고, 낙심하거나 화내지 말라는 뜻도 있고, 그런데 무엇보다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뜻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2. 사랑은 온유합니다.
이 온유라는 말은 ‘유용한, 은혜로운, 친절한’ 등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입니다. 도저히 온유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친절하고 은혜롭고 유용하게 대하고 도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직분 감당법이고 은사 감당법이예요.
그래서 딤후2:24에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또 딤후2:25에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본을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큰 소리 들레는 소리조차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도 얼마나 온유했습니까? 모세가 구스 여자와 혼인할 때 그 누이와 형이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너와고만 말씀했느냐고 하면서 비방할 때 그래도 모세는 온유했습니다. 얼마나 온유했든지 민12:3을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습니다. 그러나 대신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두 사람을 혼내주셨잖습니까?
3.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 투기는 “끓는다”는 뜻을 가진 ‘제오’에서 나온 말로 상대방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속이 끓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남 잘되는 것을 못 봐주는 악한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 가지고 는 주의 일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하라고 귀한 직분과 은사 주었더니 시기 질투 때문에 남 잘되는 것 싫어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보다 더 잘되라고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막10:45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다면 우리는 물론입니다. 우리는 섬기는 종이 된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과 같이 저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 마음이 없이는 남을 축복할 수 없습니다. 되긴 되되 나보다는 덜 되고 나의 자손들보다는 덜 되고 나의 교인들보다 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일 못합니다. 혹은 내 교회는 잘되고 남의 교회는 못 되도 좋다는 마음이어도 안 됩니다. 어찌 내 교회 네 교회입니까? 모두 주님의 교회가 아닙니까?
4.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 자랑한다는 것은 자만하고 허세를 부리며 실재보다 부풀리는 것입니다. 귀한 직분과 은사를 받을수록 자기를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허세 부리면 안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 왜 자랑하지 않아야 할까요? 자랑할 때 남이 낙심하고 시험 들거나 남에게 시기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람을 숭배하려는 시험에 빠집니다. 자랑해서 도움이 될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랑하면 하나님께 상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왜 또 자랑해서는 안 될까요? 예수님만 자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3-5) 했습니다. 내가 나타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는 방법입니다.
5.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랑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랑이 겉으로 떠벌리는 것이라면 교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로를 세웠어도 내 공로가 아니니 겸손해야 합니다. 어떤 할머니는 천문학적인 자기 재산을 바치고 그 교인들이 자기를 지나치게 떠받들까 봐서 교회를 옮기고 아무도 모르게 개척교회를 다닌다는 간증을 그 교회 목사님에게 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은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시험 들게 됩니다. 우리는 수십 년이 지나도 어떤 자리에 있든지 어떤 일을 했든지 한결 같이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사역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족하지 않습니다. 이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고서 주의 일한다고 하다가 얼마나 큰 시험에 듭니까? 그러므로 남도 그렇지만 자기를 실족시켜 연자 맷돌 목에 달고 깊은 수렁에 빠지듯 시험에서 헤어 나올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의 사역자들은 이 겸손의 자세를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6.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입니다.
이 무례히 행치 않는다는 것은 맵시가 없다는 말입니다. 즉 ‘교양이 없다, 오만불손하다, 예를 갖추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내가 바른 몸가짐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역은 예절을 다해 해야 합니다. 이 예절에는 인사의 예절, 언어의 예절 등 여러 가지 예절이 있습니다.
과거 어둠의 세계에서 회개했다는 사람들이 강단을 추한 언어로 더럽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절 있는 말이 자기들에게 안 어울리며 자기 같은 악한 사람을 꺾으려면 그래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새 것으로 변화 받은 성도가 예절이 안 어울릴 것이 무엇입니까? 탁소장님 간증을 들어보니까 어느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이 말하기를 욕 잘하는 아무개가 설교할 때 들어왔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의 예절을 말씀합니다. 롬16:2에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우리는 서로 예절 가운데서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의 일하는 사랑의 방법입니다.
7.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 것입니다.
살전2:7-8에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진정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질이 부족했을 때는 장막을 만들어 팔며 자기 생계비를 스스로 벌기도 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였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였습니다. 마치 유모처럼 어머니처럼 그렇게 했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사랑으로 주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직분과 은사를 사랑으로 감당하십시다. 그리고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 하신 이 말씀 붙들고 사명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면 주님께 칭찬 받는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