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어떻게 하나? (행 13:1-3)
선교는 어떻게 하나? (행 13:1-3)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이 시간 “선교는 어떻게 하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걸 말씀드리기 전에 선교란 무엇인가부터 정의하고 들어가고자 합니다. 선교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을 선교라고 합니다. 이 일에 기도와 물질로 동참하는 것도 선교입니다.
본론으로, 선교는 어떻게 하는가? 초대교회의 선교의 대표적인 교회인 안디옥교회를 통해서 그 방법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1. 선교는 희생으로 하는 것입니다.
2-3절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교회 중심지도자들입니다. 안디옥교회에서 보배처럼 생각하는 일군들입니다. 바나바 얼마나 인품 좋고 사랑 많고 덕있는 목회자입니까? 또 사울만큼 잘 가르치는 사람 있겠습니까? 아무리 다른 곳에서 모셔갈려고 해도 내놓을 수 없는 교회지도자들입니다. 더구나 일한지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교를 위해서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을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이처럼 선교는 희생입니다. 할 일 없어 여력 있어 하는 것 아닙니다. 선교는 예배와 함께 교회의 가장 귀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여력이 있어야 한다면 흉내만 내지 선교다운 선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마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주안디옥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교회 재정의 대부분을 선교에 쓰면서 불편하게 살자는 이색적인 교회 표어를 정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생활을 한 단계 낮추어 살면서 일했습니다. 이런 개인적 교회적 희생이 있었기에 선교가 가능했습니다.
2. 선교는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어떤 교회였습니까? 1절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은 동서양이 만나는 헬라문화의 중심지로 다국적인이 사는 곳입니다. 지도자만 대충 살펴봐도 바나바와 사울이니 유대인입니다. 니게르는 ‘흑인’이란 뜻으로 아프리카사람입니다. 루기오도 구레네 리비아사람입니다. 마나엔은 여성이요 왕가의 귀족입니다. 이렇게 안디옥교회 구성은 백인 흑인 황인 유대인 이방인 남녀노소 빈부귀천 총망라해 있었습니다. 이걸 볼 때 얼마나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런 정신으로 선교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교는 사랑으로 합니다. 세상을 품어야 합니다.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보면 선교하는 교회나 선교하는 사람은 그 특징이 마음이 넓습니다. 인종과 신분과 빈부와 국경과 언어와 사상과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일본에 한국선교사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해친 원수의 나라에도 선교해야 합니다.
3. 선교는 기도로 하는 것입니다.
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그랬습니다. 안디옥교회는 기도하다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했다면 일반 기도는 얼마나 했겠는지 추측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교회적으로 함께 금식하며 기도했다면 기도 적게 하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선교의 알파와 오메가는 기도입니다. 선교의 시작은 기도입니다. 선교의 방법도 기도입니다. 기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물질이 없어 선교 못한다고요? 기도가 선교입니다.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선교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면 그보다 더 귀한 선교는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성령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안디옥교회는 기도하다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선교지는 영적 전쟁터와 같습니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관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행 16장 보면 바울도 환상에 마케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암담하기만 선교사역에 기도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음성이 있습니다.
4. 선교는 순종으로 하는 것입니다.
3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는 음성을 듣자마자 순종하였습니다. 3절에 “보내니라” 4절에 “두 사람이 - 가서” 보내고 가고, 이처럼 간 것도 선교이고 보낸 것도 선교입니다. 안디옥교인들은 보냈고, 바나바와 바울은 순종의 발걸음으로 선교의 현장으로 떠났습니다. 이렇게 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선교는 명령이니 아니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교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는 선교사고, 또 하나는 보내는 선교사입니다. 가는 선교사보다 보내는 선교사가 많지만 보내는 선교도 그만큼 귀합니다. 복음 전파의 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영원한 복을 주십니다. 성경은 사람을 옳은 대로 인도한 자는 궁창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비취고 물질로 흩어 나누는 자도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라 했습니다.
앞으로 시급한 것이 남북통일을 대비하는 일입니다. 통일이 이루어지면 남쪽의 많은 사상과 이방종교 사이비종파들도 물밀듯이 북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 때 다른 사상이 뿌려지기 전에 먼저 들어가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성도들도 북한 전역에 구름떼 같이 파송되어야 합니다. 교회마다 한 동네씩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메마르고 굶주림으로 가족을 잃어버린 동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하면서 강력한 성령님이 역사하는 나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안디옥이 더 전도할 사람이 없어서 선교하러 간 것 아니란 사실입니다. 안디옥은 당시 3대 대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안디옥에 불신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은 도덕적으로 문란한 아데미와 아폴로신을 섬기는 유명한 신전이 있어서 매우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도시는 크고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명령 따라 선교했습니다. 이 명령을 소홀히 한 예루살렘교회 얼마나 혼났습니까? 선교하지 않고 평안하길 바란다면 착각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선교에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먼저 성도들이 그 타락한 도시에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선교했더니 영적으로 자라더라는 말입니다. 일해야 성숙해집니다. 선교하면 특별은총이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선교하는 나라가 타국의 압제를 받거나 멸망한 예가 없습니다. 그 나라를 부강하게 하십니다. 그 일에 동참한 성도에게 복을 주십니다. 선교하는 교회를 지켜 주시고 부흥되게 하시며 일군을 붙여 주십니다. 교회의 일군이 나가기만 한다면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걸 알고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하자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안디옥교회를 모든 세대에 교회의 모델로 삼아주셨습니다. 안디옥교회에서 배우십시다. 선교는 희생으로 합니다. 선교는 사랑으로 합니다. 선교는 기도로 합니다. 선교는 순종으로 합니다. 우리 모두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 땅 끝까지 예수 복음 전하는 사랑 받고 복 받는 귀한 선교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