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축복의 백성 (민 23:7~12)
성도는 축복의 백성 (민 23:7~12)
이 시간 “성도는 축복의 백성”이라는 제목입니다. 설날이기도 해서 축복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좋아하는 찬양 중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 받는 것만이 신앙의 전부는 아니지만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살 때 부모의 마음이 기쁘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잘 경외해서 사랑과 은혜와 복을 받아 마음껏 누리세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성도는 아무도 저주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이 가르쳐줍니다. 모압의 발락 왕이 가나안을 향해 전진하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발람을 매수하지만 발람이 아무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해도 저주할 입은 봉해져버리고 계속하여 축복만 나오게 됩니다. 세 번이나 장소를 바꾸어 가며 시도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멀어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축복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불신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입에서 축복 축복만 나오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보는 이마다 축복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세요. 이왕 축복설교하는 것 많이 축복을 하고 싶습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11절에 온전히 축복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왜 축복의 백성일까요? 그것을 발람선지자의 예언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성도가 축복의 백성인 것은?
1. 다시 저주가 없기 때문입니다.
민23:8에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했습니다. 계22:3-4에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높이 달리셔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예수 안에는 저주가 없습니다.
원수 사탄은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할 궁리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복 주신 자들이기에 저주하지 못합니다. 사탄은 성도의 약점을 잡아 밀까부르듯이 청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눅22:31-32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첫 순서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고 축복만 실컨 하고 맙니다. 3차에 걸쳐 축복하는데 본문은 1차 축복입니다.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사분지 일을 뉘 능히 계수할꼬 -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라고 축복했습니다. 결코 계산할 수 없는 큰 복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2. 축복만 명하시기 때문입니다.
민23:20에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발람이 발락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해도 하나님의 명령은 “축복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명령이 내려졌으니 어떻게 저주할 수 있겠습니까? 저주를 해도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마5:11-12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하셨습니다.
발람이 하나님의 선지자냐 논란이 많습니다. 물질의 종도 같고 이방 복술자도 같고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민23:4에 “하나님이”라는 구절을 보아 이 순간만은 하나님의 도구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장하시면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체험을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성령께서 우리의 입술을 바꾸어 완전히 다른 기도를 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입술이 바뀌어 축복만 나오더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축복하라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12:14에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민6:27에도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셨습니다. 축복 경히 여기지 마세요. 축복하면 복을 주리라 하셨어요. 시133:3에도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했습니다. 축복은 명령입니다. 악인에게도 축복만하라 하셨는데 하나님 백성이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현대인에게 가장 귀한 것은 축복이랍니다. 명절에 설물 고르는 것 때문에 힘들지요. 부자에게 선물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값진 선물도 부자들에게 귀찮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있어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들은 가장 좋아합니다. 내가 그 기업의 사목이라 생각하고 날마다 축복하고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명령을 누구에게나 잘 수행해야 합니다.
3. 저주가 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23:23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하나님 백성을 해할 다른 방법이 없어요. 당시 이방신을 섬기는 세계에서는 원수를 해하는 사술이 시행됐습니다. 예를 들면 원수의 인형을 만들어 놓고 칼로 찔러놓든지 화살로 눈을 찔러놓습니다. 그렇게 하면 원수가 저주 받아 망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어떤 사술과 복술도 통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발람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축복됨은 이방신 섬기는 사람들이 더 잘 알아요. 그들이 받은 영은 악령이지만 진짜 무당은 그걸 알아요. 하나님은 크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당이었다가 회개하고 예수 믿은 성도 이야기입니다. 악신이 떠나가고 기적이 일어난다는 소문에 교회를 찾아갔는데 무당들이 돌아가면서 이구동성으로 밷은 말이 "허참 지독하게도 쎄네 그려" 그들의 표현이지만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하나님께서 위하시는 백성입니다.
그래서 롬8:31-34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10:19) 하셨습니다. 욕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 잘되고 더 복을 받습니다.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번성하고 창대하고 강성해집니다. 430년간 무려 70명이 200만으로 번성했습니다. 이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신28:2-6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발람도 축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예수 안의 큰 복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발람이 세 번째 축복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민24:5 이하를 보면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의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이처럼 성도는 예수 안에서 이미 복을 받았고 또 더욱 큰 복을 누릴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복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나는 복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 나는 복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은혜와 복을 누리기를 기뻐하신다.”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가 예수 안에서 받지 못한 복이 없습니다. 이제는 이 복을 믿음으로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 믿어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자녀일까요? 직분 있다고 다 하나님 백성일까요? 그리스도를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마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을 입으로만 불러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진정 예수를 나의 주로 믿고 그 앞에 순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라는 말은 주인 혹은 임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오 다스리시는 임금으로 믿고 높이고 그 앞에 절대 순복해야 합니다. 내 주장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을 진실로 나의 생명의 주로 믿고 그 앞에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자녀의 모습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복을 누립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는 못했지만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계2:14에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이 저주하지 못하게 되자 발락 왕에게 이스라엘이 멸망할 방법을 가만히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미인계를 써서 모압의 우상을 숭배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모압 여인들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하지 않고 음란한 잔치에 초대한 후 우상숭배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도록 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우상숭배는 대개 성행위를 동반하는 제의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많은 백성들이 걸려들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신 소속이 되고 염병으로 2만 4천명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복의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자녀의 모습으로 살지 않으면 복을 누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날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변화만 되면 그만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의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 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잠3:1-4에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아름다운 복을 가득히 주셨습니다. 우리는 복을 받고 그 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발락과 발람처럼 우리를 온갖 것으로 꾀이지만 말씀에 견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믿고 순복하며 날마다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예비하신 복을 다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