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설교

왕으로 나신 그리스도

공 상희 2009. 12. 9. 16:26

왕으로 나신 그리스도
                                    마2:1-12절, 112.109.115장.

 


  우리에게 구세주를 보내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돌립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의 기쁨과 즐거움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태어난 장소와 시간이 있습니다.

 

  생일은 축하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탄은 우리 자신의 생일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예수님의 생일축하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들의 탄생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오늘날 한 아기의 출생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일 축하예배도 아니고 생일 축하파티는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너무도 독특하고 신비로운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본문에 있는 내용대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우선 예수님의 탄생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이 본문의 줄거리는 동방박사에 있는 것이 아니고 헤롯이나 제사장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직접 개입하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방의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인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로 되어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의 역사는 인간이 타락한 후에 인간을 구원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중보자이신 메시야를 보내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어떤 때는 상징적으로 또는 비유를 통해서 수도 없이 말씀했습니다.

 


  구약성경은 바로 한 아이의 출생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야곱은 창세기 49:10절에서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말씀은 유다지파에서 한 다스리는 자 곧 왕이신 메시야가 오실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민수기 24:17절말씀 중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그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라" 하신,

 


  말씀을 믿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큰 별을 따라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구약성경 전체는 한 분 메시야가 올 것을 내다보고 움직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골격은 그저 한 아이의 생일을 축하한 것이 아니고 메시야의 오심을 만방에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서기관들도 메시야가 어디서 날 것이라는 구약의 진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즉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너에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미가 5:2)라고 한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아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메시야를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은 이 하나님의 놀랍고 위대한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을 믿을 때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우리가 아니라도 T. V. 에서, 신문에서, 백화점에서 야단들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예수의 나심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메시야가 오시겠다고 수천 년 동안, 예언하던 선지자들의 말을 믿고, 그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계획된 하나님의 구속의 절정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인류역사에 단 한 번 있는 우주적 사건이며, 역사의 전환점입니다. 이 사건이 없었던들 인류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한 아이의 출생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화이트 크리스마스, 자선남비, 성탄추리, 썰매, 싼타클로스 할아버지 등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하나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하늘 영광의 보좌를 비우시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이상으로 베들레헴의 말구유도 고난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말구유에 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절) 하신 말씀이,

 

  예수님의 성탄을 가장 명쾌하게 가르칩니다. 천사가 두려워하는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한 아이의 생일파티에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악을 내어놓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통회하며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성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즉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립보서 2:6, 7)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그냥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보다 날 위해서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에게 오신 구속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주님을 믿어야 하겠고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2005년 전에 구체적인 역사 속에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역사적 예수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속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성탄을 맞이해야 하겠고 성탄에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지키고 순종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 또 하나 살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초자연적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은 자연적 생리법칙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갑작스런 임신에 당황하고 배신감을 느껴 파혼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임신은 초자연적이었고, 요셉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초자연을 믿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미 창세기 21장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임신과 출산이 있었습니다. 나뭇잎과 같은 늙은 부부에게 하나님은 장차 메시야의 출생을 예고하는 이적적인 사건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이 출생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의 탄생만이 이적이 아니라, 별을 움직이시고 동방의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끌어들인 하나님의 권능도 이적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기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별을 지은 분이기에 별을 움직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초자연을 믿을 때 예수의 탄생이 나와 상관이 있습니다. 이 진리를 믿을 때만이 예수님의 성탄이 내 심령 속에 놀라운 메시지로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예루살렘 도착성명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태복음 2:2)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도착성명은 옳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십니다. 경배와 찬양을 당연히 받으셔야 합니다. 예언대로 유다지파의 뿌리, 다윗의 왕통으로 나셨습니다. 그래서 마1:1절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천지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가 나신 곳은 말구유였습니다. 이 곳은 왕이 태어날 장소로는 적절치 못합니다.

 

  왕이 말구유에 나셨을 때, 그 왕을 경배하기 위해서 그 나라 백성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데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하러 온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나실 때는 방 한 칸도 빌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필이면 가이사 아구스도가 마리아의 출산 전에 호적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까? 사실 이런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 중에 되어진 일이며, 구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왕으로 오신 이가 말구유에 누워 있는 바로 그 모습이 중보자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파라독스(paradox)입니다. 왕이 어떻게 말구유에 누웠을까? 이것이 메시야이신 구주의 참 모습입니다. 그는 왕은 왕이로되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평화와 겸손의 왕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 왕에는 문턱이 없습니다. 그 왕을 만나기 위해서 아무런 행정적 절차나 까다로운 의전절차가 없습니다. 그 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말구유를 찾는 마음, 낮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라고 했습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곧 누구든지 란 말도 왕을 만나기 위한 문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왕을 만나려는 사람이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이든,

 


  이방인 박사이든, 세리이든, 창녀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자든 관계가 없습니다. 이 왕을 만나기 위해서 문은 개방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그는 왕이시므로 경배와 찬양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말구유에 가야 합니다. 그분은 누구와도 만나주시는 왕이십니다. 특히 환난과 아픔을 당하는 자, 가난한 자들이 더욱 쉽게 찾을 수 있는 마굿간에서 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탄생은 결국 우리를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참 뜻을 바로 깨달고 소외계층을 찾아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