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주님을 슬프게 하지 말라 (마 23:37-39)

공 상희 2009. 12. 9. 15:38

주님을 슬프게 하지 말라 (마 23:37-39)

 

 

이 시간에 “주님을 슬프게 하지 말라”는 제목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말씀이 세 번 나옵니다. 먼저 나사로가 죽은 것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다음은 죄로 멸망할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고, 다음은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아뢰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모두가 다 우리 불쌍한 인간들을 위한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릴지언정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 슬퍼하실까요?


1. 믿지 않을 때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 대한 주님의 슬픔은 큽니다. 그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막9:48-49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지옥의 불구덩이를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의 최후는 영원한 비극입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진노가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요3:36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 하에 있습니다. 요3:18에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사형수를 면회했는데 그는 30일 후에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당할 청년이었습니다. 22살밖에 안 된 청년인데도 이미 정죄 받은 사람이고 독방에 가두어 둔 신세라 노인같이 얼굴과 손이 창백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더랍니다. 이미 재판이 끝나서 처형당할 사람은 모두 이 청년과 같은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길은 예수 믿을 기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무디(Moody) 선생이 하루는 무신론자들,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들 5,000여명을 초대해놓고 설교하다가 “예수님 안 믿고 지옥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손들라”고 했더니 아무도 손을 들지 못하더랍니다. 그다음에 예수님께 와서 영생 얻기를 원하는 사람 손들라고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I will, I will” 하면서 손을 들더랍니다. 그래서 그날 2,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은 죄인들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것입니다. 나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랑의 백성이 되도록 기도와 전도를 아끼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2. 어두움을 사랑할 때입니다.


빛은 의로움이지만 어둠은 죄를 가리킵니다. 요12:43에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했습니다. 어둠 속에는 생명도 행복도 희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빛을 떠나 어두움으로 갈 때 하나님께서 슬퍼하십니다. 그를 도우러 왔던 천사들도 슬퍼하며 떠나게 됩니다.

 

이를 두고 잠언 기자는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짐승들도 도살장 앞에서는 죽는 줄 알고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달려갑니다. 버릴 것을 버리면 내 영혼이 살고 내 가정이 형통하고 더 귀히 쓰일텐데 그것을 모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이 제거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거침없이 임할텐데 그것을 모르니 주님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구할 때도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개선부터 하면서 하세요. 하나님 마음을 서운하게 해드린 것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아오면 받아 주시고 죄의 사슬을 끊게 해주시고 변화시켜 주시고 온갖 권리를 다 회복시켜 주십니다. 


3. 사랑을 거절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거절한다면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주님의 탄식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그들은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주후 70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전국에서 모여든 청년들과 함께 로마군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면 100만이 넘는 젊은이들이 죽음을 당하고 성 내부에서도 서로 살려고 온갖 악행을 자행했습니다. 이렇게 전멸 당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로마군대는 유대인들에게 항복하면 살려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유대의 관리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잘 알기에 항복해도 잡혀 죽을 줄 알고 끝까지 투쟁하다가 전멸 당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돌로 쳐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래도 기회를 주시고 기회를 주시며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마치 암탉이 그 새끼를 품으려 한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이신 구주 예수를 배척하고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자신의 고통이요 하나님의 고통입니다.


4. 종교적 형식만 붙잡고 있을 때입니다.


우리 신앙을 돌아보아야 할 중대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종교적 형식이 전부가 아닙니다. 당시 바리새인들,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존경했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껍데기였습니다. 안식일 잘 지키고 십일조도 잘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금식도 하며 봉사도 하는 모범적인 교인 같았지만 내용은 없고 외식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신앙생활의 내용이지만 중요한 것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그는 버린 영혼입니다. 그래서 고후13:5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습니다. 정말 나를 위해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했습니까? 그 분이 내 안에 계심을 느끼고 있습니까?


큰 직분 가지고 존경 받고 기적을 행하고 이적을 행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 예수님이 없으면 주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교적 형식에 만족하지 말고 깊은 신앙으로 예수님을 깊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5. 주님의 왼편에 설 때입니다.


요즘 좌경화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것은 왼쪽으로 기울어진다는 뜻입니다. 흔히 공산주의나 우리의 적인 원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좌경화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영적세계에도 좌경이 있습니다. 마25:41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좌경하는 사람을 왜 염소에 비유했을까요? 염소는 고집이 센 동물입니다. 주인의 말에 고분고분함이 없어요.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습니다. 천상에서 루시퍼가 타락한 이후 지금은 천사가 타락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타락하면 마귀가 된다는 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이처럼 천사처럼 일해야 할 사람들이 좌경을 택하면 마귀처럼 됩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돕다가 한 순간 인간의 생각이 틈타 사단이 되었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다 천사들입니다. 주님을 돕고 주의 일군들을 도우라고 세운 천사들입니다. 서로 견제하라고 세운 것이 아닙니다. 천사와 같이 도와서 일하라고 세운 것입니다. 천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천사는 돕습니다. 천사는 덮어줍니다. 천사는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천사는 기도합니다. 천사는 사랑합니다. 천사는 희생합니다. 예수 앞에 설 때 오른편에 설지언정 왼편에는 서지 말기 바랍니다.

 

6. 유리방황할 때입니다.

 

마9:36에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하셨습니다. 참된 천국의 진리로 인도해주어야 할텐데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타락하고 진리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복음의 일군입니다. 성령의 일군입니다.

 

율법적인 생활이 아니라 생명적인 생활에 관심을 가지세요. 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지 말고 더 온전한 데로 나아가세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일하는 동거 동행 동역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영혼들을 향해 사랑의 탄식을 하고 계십니다. 저들의 앞날이 어떤 것인지 아시기에 얼마나 불행할 것인지 아시기에 탄식하십니다.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주님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가 보여주었던 그 신앙을 가지십니다. 우리 모두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순종하여 예수 만나 변화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