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설교

기쁨의 좋은 소식(성탄설교)

공 상희 2009. 12. 7. 17:08

기쁨의 좋은 소식(성탄설교)
강정태 목사 [성경본문] 눅 2:8-14

8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오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탄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가 축하하는 귀한 날입니다. 이 날을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미사(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는 날로 생각합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아이들에게 주게 된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되어집니다. 그 사랑 가운데 하나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주었던 선물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당시 목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밤을 세우면서 주인의 양들을 지켰습니다. 유대나라의 백성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대부분의 백성들이 가난했습니다. 나라가 어렵다는 것은 가난한 자에게는 치명적인 환경입니다. 선진국일수록 가난한 자들에게 혜택이 많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복지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백성들이 무거운 세금으로 말미암아 고통가운데 있는 그 때에 그들 중에도 더 소외된 목자들에게는 삶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절망적인 환경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소망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들의 그 사모함으로 말미암아 메시아오심을 큰 기쁨의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메시야오심의 임박함을 느꼈던 사람들은 시므온과 안나였습니다. 시므온은 기도하는 가운데 죽기 전에 메시아를 볼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안나 선지자는 결혼한 지 7년만에 과부가 되어 84년을 성전에서 기도하며 주님오심이 임박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또 동방 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면서 신기한 큰 별을 보고 특별한 왕이 태어날 것을 암시했습니다. 목자들 역시 메시아오심을 사모하며 기다렸을 것입니다. 어느 날 밤을 세워 양을 지키고 있는데 하늘에서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 천사들의 메시지는 당시 목자들과 가난한 백성들뿐만 아니라 구약을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과 오늘 우리들과 앞으로 예수를 믿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되는 소식입니다. 세상의 어떤 뉴스보다 큰 기쁨의 소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큰 기쁨의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성탄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성탄의 참된 기쁨을 나누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소망이 있는 구원입니다.

소망이라는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상의 삶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의 종착은 절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죽음이후에 주 어질 삶에 대하여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느누구도 여기에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악한 영들의 지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의 소망이 상실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실된 소망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이 땅에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소망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구원의 빛이 밝혀집니다. 절망적인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도 복음이 들어가면 그에게는 소망이 싹트게 됩니다.


행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에서 전도하다가 귀신들린 여종이 점을 쳐서 주인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이 여종은 귀신과 자신을 고용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유함이 없는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소망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루 하루 귀신의 조종에 의해 살아야 했으며 수고하여 얻은 수입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갔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보니 참으로 딱하고 불쌍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그 여종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자유와 함께 소망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바울과 실라는 주인들에 의해 고소를 당해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찬송하였습니다. 밤중에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옥문을 열게 했습니다. 모든 죄수들의 쇠사슬을 풀려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지진으로 감옥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깜작 놀라게 됩니다. 당시 로마의 법에 의하여 죄수가 탈옥하게 되면 간수가 되신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희망이 상실된 간수가 순간적으로 자결을 하려고 칼을 빼들었을 때 바울이 큰 소리로 외칩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가 자세히 보니까 문은 열려있는데 죄수들은 한 명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순간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의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 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면서 그와 그의 온 식구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망을 상실한 간수를 소망의 구원을 얻게 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소망의 구원을 주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이 기쁨의 소식은 주님을 나의 구주로 인정하고 주님을 내 마음속으로 모시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14절에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외쳤습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것은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여러분에게 소망의 구원이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가족과 친척과 이웃에게도 이 귀한 소식을 전하여 그들도 소망의 구원의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나눔이 있는 사랑입니다.

큰 기쁨의 소식은 소망이 있는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소망이 있는 구원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나눔입니다. 나눔이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눔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섬김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요 그 사랑의 극치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 사랑을 우리의 가슴에 소중하게 간직하기를 원합니다. 이 사랑을 간직한다는 것은 곧 이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말할 때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사랑은 움켜잡을 때에는 생명력이 없지만 나누어줄 때에는 풍성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고 연약하며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참된 구원과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줄 수 있습니다.


사회시설기관의 6-70%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기독교의 정신을 가진 자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세군을 비롯해서 많은 교회와 신실한 신앙인들이 불우한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름도 빛도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수많은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데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소년소녀가장들이 있습니다. 실직하여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도 있습니다. 누가 그들의 참된 이웃이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진정 이웃을 돌보고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사랑이 동반되지 않으면 생명력을 상실합니다. 기독교가 세상에서 지탄받는 원인은 실천이 없는 사랑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에 목자들에게 전해주었던 천사들의 큰 기쁨의 소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실천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말로만 끝난 사랑이 아니라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고 나누어주어 그들도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004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