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설교

기쁨의 좋은 소식

공 상희 2009. 12. 7. 16:48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1-14


오늘은 성탄절을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생각하면서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에 세상에는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한 별이  나타나서 동방의 박사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으며, 그들을  인도하여 예수님이 나신 곳을 찾아가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게  하였습니다(마2:2,9-12).

또 베들레헴 지방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한 천사가 영광 가운데 나타났고, 목자들은 크게 무서워하였습니다(눅2:8-9). 천사는 무서워하는 목자들에게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니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말씀하였으며, 이 때에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노래하여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눅2:10-14).

예수님의 탄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의  된다는  말씀이며, 하나님께서는 영광이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1. 인생에게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이나, 라디오나, 텔리비젼에서 새로운 소식을 찾고 있으며, 밤에도 뉴우스 보도에 관심을 모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소식을 기다리되, 특별히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서 듣게 되는 많은 기쁜 소식들은 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소식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굉장한 기쁜 소식이지만, 수많은 민족에게 그다지 기쁜 소식이 아닐 것입니다. 중병에 시달리고, 사경에서 헤메다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건강이 회복되었을 때, 그 고침 받은 환자와 그  가족과 친지에게는 큰 기쁜 소식이겠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렵고 중요한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게는 그 합격의 소식이 다시없을 만큼의 기쁜 소식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 소식이 그렇게 기쁜 소식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들에게 나타난 처사는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은 우주가 생긴 후에 들려온 가장 크고 복된  소식입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쁘고 복된 소식입니다. 한량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 소식은 지역의 제한이 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동양인에게도, 서양인에게도 다 기쁜 소식입니다. 인종의 차별도 없고 남녀노유의 차이가 없고, 빈부귀천의 차이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도  항상,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어떠한 때에라도 항상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왜 예수님의 탄생이 기쁜 소식입니까?

목자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 천사는 허다한 천군과  더불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므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피조물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셨으며,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설하신 에덴동산에서 평화를 누리면서 복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므로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한 후에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입니다(창2:17,3:6).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며(창3:22). 생명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단절되었으며, 인생의 본성이 전반적으로 타락하여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큼 선이나 의를 행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지은 죄 때문에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가련한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인생의 범죄로 자연계도 크게 변하여 사람이 고생하면서 살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죄악의 씨를 뿌려  놓고 전쟁, 재난, 곤고, 질병, 사망 등 그 열매를 슬프게 거두는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범죄 한 인생의 현실상황입니다.  인생은 행복을 잃어 버렸으며, 평화를 잃어버렸으며,  기쁨을  잃어 버렸으며,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인생은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으며,  축복을  되찾으며, 평화를 되찾으며, 기쁨을 되찾으며, 소망을 되찾으려고 힘쓰며 애써 보았습니다. 그러나 헛수고였습니다. 좋은 정치로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과학과 물질문명의 발달로도 해결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술의 발달로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도덕훈련으로도  되지  아니하였습니다. 마치 바벨탑이 무너지듯 인생의 기대는 번 번히 부서지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기대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인생이 행복과 축복과 평화와 기쁨과 소망을 잃어버린 근본원인이  인생이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이 잃어버린 하나님을  되찾기까지는 잃어버린 행복도, 축복도 평화도 기쁨도, 소망도 되찾을 길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탄생하여 오신 것입니다. 범죄 하여 하나님을 잃어버렸으며,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원수의 자리에 있는 인생들을 그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게 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을  되찾으므로, 상실했던 행복, 축복, 평화, 기쁨, 소망 등을 되찾게  하여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이야말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으며,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원래 평화와 자유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자유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으며, 자유가 없는 곳에는 평화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기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시며(갈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말씀하십니다(롬5:1).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범죄 한 인생에게 참 자유를 주시고 참 평화를 주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를 얻어야 평화를 얻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죄에서의 자유를 주십시다.

죄의 속박 아래 사는 것은 독생자의 속박 아래 사는 것보다도 더  괴롭고 비참한 것입니다. 양심의 고통이 따릅니다.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에 형벌의 고통이 따릅니다. 여기에는  영과 육이 아울러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죄에서의 자유가 없이는 참 평화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이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길은 평화의  상징으로 알려진 유엔(UN)에 있지 아니합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범죄 하여 죄의 속박 아래 있는 인생에게 죄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죄의 정죄와 형벌에서의  자유를  주시며, 죄의 세력에서의 자유를 주시며, 죄의 결과에서의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요. 여기에 진정한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공포와 불안에서의 자유를 주십니다.

오늘의 세대적인 현저한 특징은 공포와 불안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안정제라는 약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한 자 마귀가 주장하는 세상에서, 악한 자 마귀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살기 때문입니다 (요일 5:19). 악한 자 마귀가 인생의  모든 분야를 뒤흔들어서 인생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말씀하셨으며 (시118:6). 바울 사도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롬8:35,37).


(3) 예수님은 죽음에서의 자유를 주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하여도 죽음이 선고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업에 대성한 한 젊은이가 치명적인 암으로 사형이  선고 되었을 때 모든 것은 즉시 다 변하고 말았다. 이제까지 내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던 모든 것은 다 가치 없는 것이 되어 버렸고, 내가 가치 있게 여겼던 일들이 가장 가치 있는 일들이 되어버렸다"고 하면서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들을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죽음에서의 자유의 보장이 없는 한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도 참 평안을 가지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무엇도 인생에게 죽음에서의 자유를  보장하여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죽음에서의 자유를 주실 수 있고,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영적사망, 육적사망, 영원한 사망을 포함한 모든 죽음에서의  자유를 주십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을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바울 사도는 말씀하였습니다(고전 15:55-57). 죄의 권세를 이기시고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예수님은 진정  우리에게 사망에서의 자유를 주시는 분이시며, 예수님만이 인생에게 사망에서의 자유를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추방에서의 자유를 주십니다.

인생은 하나님께 범죄 하므로 하나님이 창설하신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므로 모든 불행과 비참한 정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창3:23).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리고 하나님의 에덴에서 추방당한 인생을 다시 하나님의 품안으로 이끄시며, 하나님의 에덴에 회복시킬 분은 역시 예수님이시요. 예수님뿐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배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요14:1-3).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여 오셨습니다.  하나님께 범죄 하여 하나님을 잃어버리므로 행복도, 축복도, 평안도,  기쁨도 소망도 다 잃어버리고 슬픈 자가 된 인생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죄에서의 자유를 주시고, 공포와 불안에서의 자유를 주시고, 사망에서의 자유를 주시고, 추방에서의 자유를 주시므로 인생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은 기쁨의 좋은 소식이며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어디에서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을 믿으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현실적으로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죄에서의 자유도, 공포와 불안에서의 자유도 사망에서의 자유도 추방에서의 자유도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참 평안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탄의 절기를 맞이하여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오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회개하는 믿음으로 영접하여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죄에서의 자유, 공포와 불안에서의 자유, 사망에서의 자유, 추방에서의 자유를 누려, 큰 행복과 축복과 평화와 기쁨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탄절의 참된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