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교훈 (창 6:16) (방주론)
창의 교훈 (창 6:16)
오늘은 방주에 낸 창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집념의 건축가 네덜란드의 요한 하위베르스가 2007년에 노아의 방주를 실재 크기의 1/5 크기로 완성해 길이 70m 높이 14m의 거대한 나무배를 만들었는데 실재 방주와 얼마나 흡사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형이 교육상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 아래에 내라고 하셨습니다. 창의 크기와 수효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배의 상부가 삥 둘러서 모두 창이었다고 짐작됩니다. 요즘 예배당 건축에도 벽 위의 슬래브 상부에서 빛이 벽을 타고 내려와 밝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봅니다. 노아의 방주가 그런 모습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방주의 창은 위에 열린 하늘의 창이었습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이 창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기도의 창을 의미합니다. 방주의 창은 생명처럼 귀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창은 생명처럼 귀중한 것입니다. 기도의 창을 가진 성도는 노아의 방주처럼 아름답고 쾌적하고 즐거운 구원의 기쁨을 항상 누리며 살게 됩니다.
기도의 창이 생명처럼 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노아 방주의 유일한 환기구는 이 창이었습니다. 사람만 해도 하루 동안 호흡하는 공기의 양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창을 통해 안에서 발생한 더러운 가스들은 나가고 새 공기가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 안의 사람들이 살고 짐승들이 숨을 쉬었습니다. 창은 바로 생명의 숨통입니다. 이 창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는 별명이 있어요. 우리가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것과 같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심령도 죽게 됩니다. 호흡이 얼마나 중요하면 하나님께서 인체를 만드실 때 코에 구멍을 두 개 뚫어놓으시고 아래도 크게 또 뚫어놓으셨을까요? 그것도 부족할까봐서 피부로도 호흡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2:22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했습니다. 호흡을 멈추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호흡을 멈추면 몇 분만 지나면 사망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우리 영혼이 살고 내 가족이 살고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살고 인류가 삽니다.
2. 죄악이 틈타지 않습니다.
여기 창은 히브리어로 "초하르"라고 합니다. 이 초하르의 뜻은 빛이라는 말인데 창문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용어로 볼 때 방주에서 창의 채광 문제가 얼마나 중요했던가는 알 수 있습니다. 방주 안을 밝게 하기 위해서 창을 만들었습니다.
방주의 안팎은 검은 역청을 발랐기 때문에 방주 안은 캄캄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 창이 없다면 당장에 우울증과 질병이 엄습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고 불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역청을 발랐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방주 안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서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자연광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어둠이 죄악이요, 빛은 의로움입니다. 엡5:8-9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죄의 어둠을 몰아내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합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눅22:46) 하셨습니다. 베드로도 벧전5:8-9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했습니다. 벧전4:7에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살려면 기도하고 죽으려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귀를 이기려면 기도하고 잡히고 싶으면 하지 마세요.
그런데 창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둘이 기도하는 것이 낫고 둘보다 셋 넷 여럿이 기도하는 것이 더 역사하는 힘이 강합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이 모두 120명이었습니다. 모두 더불어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때 하늘의 창이 열리고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3. 성령의 지도를 받게 됩니다.
방주에 낸 창의 또 다른 기능은 바깥사정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창을 보면 비가 오는지 갰는지 눈이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해가 떴는지 날이 샜는지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있습니다. 창이 없으면 밖의 사정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 징조가 창을 통해 나타납니다.
이처럼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보혜사 성령님의 지도를 받게 합니다. 에디오피아 국고를 맡은 재무장관 간다게가 수레에서 성경을 읽었지만 지도하는 자가 없어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성령님의 지도하심이 없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늘 기도하는 사람만이 성령의 지도하심을 받습니다.
롬12:1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 성경을 해석하다가는 이단이 됩니다.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는 것은 이방종교인들이 더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을 모르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맙니다.
그래서 고전2:12-13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충분히 여쭈어서 하시면 실패가 없습니다. 한 번 응답 받았다고 즉시 실행에 옮기지 마시고 더 기도하세요. 천지를 창조하실 때 날이 갈수록 창조하심이 세분화된 것처럼 더 기도하고 더 기도하면 더 완성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안식하신 것처럼 마음에 안심이 오면 그 때 하세요. 그러면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4.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방주의 창의 위치는 위에 있었습니다. 위에만 있으니 위만 바라보았습니다. 방주는 검은 역청이 발라져 있으니 아래를 보면 어두운 구덩이입니다. 그래서 위만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다른 곳을 바라보면 절망이지만 위를 쳐다보면 희망입니다. 그래서 건축물의 천정을 밝게 하는 것이 정서적으로도 좋습니다.
이처럼 기도하면 절망을 극복합니다. 기도하면 소망을 성취합니다. 이리보아도 절망 저리보아도 절망일지라도 기도로서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기도하면 하나님의 소원과 꿈을 이룹니다. 내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소원 이루려는 그런 기도는 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자아만 더 키울 뿐입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으면 감사와 찬양만 하고 계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도의 소원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도 최고의 복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려면 하늘의 창이 열려야 합니다. 하늘의 창이 열리면 땅의 창도 열립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구렁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세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죄악의 담이 있다면 회개하세요. 하늘 창고의 복의 문이 닫혀 있다면 마음을 다해 복 받을 일을 해보세요. 무엇보다 기도의 창부터 여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그 어려운 포로 생활 속에서도 기도의 창을 닫지 않았기 때문에 승리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언제나 기도의 창을 열고 일생을 사셨습니다. 낮에는 말씀을 전하시고 밤에는 기도하시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도 없는 삶은 절망 중의 절망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하면 시험 들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성령의 지도를 받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귀히 쓰임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창문을 활짝 열고 날마다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