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방법설교5편
감사의 방법
(본문:시9:1)
솔로몬 왕은 등극했을 때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사업으로 세계 최대의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 때 솔로몬 왕은 성전 낙성식 기도 때 고백하기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치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까"(왕상8:27)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 말씀처럼 감사드리는 성도의 마음자세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한다면 감사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감사를 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헌신을 통해 감사드림(롬12:1)
1) 단 하나를 원하시는 하나님
마태복음에는 의미 심장한 주님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명 진주 보물의 비유입니다(마13:46). 어떤 보석 장사꾼이 자신이 본 것 중 최고의 보석을 발견한 후 그것을 손에 넣고자 자신이 지금까지 모아왔던 재산과 보석을 다 팔아 단 하나의 진주 보석을 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의 해석은 천국 진리를 발견한 성도라고도 할 수 있지만,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도 풀이할 수 있습니다. 천하 만물보다 한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천하 만물보다 단 한 사람의 성도 자신을 예물로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12:1)고 권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것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2) 부분보다 전부를 원하시는 하나님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고 선언했습니다. 성도의 생명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주의 것이 되도록 헌신해야 마땅하다는 말씀입니다. 성도의 어떤 부분만이 아니라 그 모든 전체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살아서 헌신할 뿐만 아니라 '죽도록 충성'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계2:10). 초대 교회 성도들은 생전에 온갖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 헌신하는 생활을 했으며, 로마의 핍박으로 인해 화형과 사자의 먹이로 순교하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음 진리를 적대자들에게 전하며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 죽음을 보고 로마제국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기독교에 귀의하는 예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그 몸과 삶 전체로 헌신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순종을 통해 감사드림(롬6:17,18)
1) 순종은 최선의 예물임
선지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기만한 사울 왕에게 다음과 같은 유명한 직언을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라고 한 것입니다. 인격을 지닌 존재끼리의 교제 중 상대를 가장 기쁘게 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상대의 생각과 뜻과 사상에 대한 '동의'입니다. 글쓰는 사람은 독자가 자신이 쓴 글에 호감을 표시할 때 가장 보람을 느끼고, 엿장수는 자신의 엿이 맛좋다고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으며, 목사는 자신의 설교 내용에 성도들이 '아멘'하고 화답하며 은혜를 받을 때 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어떤 예물로 감사하는 것보다 그 말씀에 진실로 순종하는 성도를 기뻐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과 진리와 섭리에 대한 '인격적 동의'입니다. 이 인격적 동의 없이 다른 아무 것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2) 순종은 충성의 지표임
창세기에는 하나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했으며 하나님은 그 순종을 보신 후에야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노라"(창22:12)고 하시며 온갖 축복의 언약을 주셨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의 제사를 통해 성도들은 그 믿음과 충성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사랑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인정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요15:21_23).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성도를 '친구"(요15:15)로 인정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 역시 어떤 곡식보다 어떤 가축 예물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공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구하시는 감사 예물임을 역설한 적이 있습니다(마6:6-8). 여러분! 풍성한 물질은 부자라면 누구나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진실한 성도뿐입니다. 그 순종의 제사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예물로서 최선의 것임을 기억합시다.
3. 물질을 통해 감사드림(고후9:11,12)
1) 물질은 감사의 표현임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러 오는 백성에게 '빈 손'으로 오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출23:15). 형편대로 주신 축복의 분량에 따라 부자는 좋은 소나 곡식의 첫 열매를, 빈한 자는 비둘기 한 쌍 또는 그것도 낼 수 없으면 곡식 한 줌이라도 감사의 예물로 제사장을 통해 바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물질은 그 마음과 정성의 표현입니다. 그 물질 안에는 그 사람의 땀과 눈물과 시간이 용해되어 있는 것입니다. 노력의 대가로 얻어진 물질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은 아름다운 또 하나의 헌신 행위입니다.
2) 하나님의 섭리를 돕는 물질
하나님의 섭리는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이 땅에 복음전파, 구제, 기독교 문화 창달 등의 사업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업에는 물질이 뒷받침됩니다.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시작된 일이 바로 물질 모금 사업이었으며, 초대교회의 첫 사업이 온 성도의 물질 헌신 사업이었습니다. 물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으며 말씀과 진리를 구체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도의 감사 표시로 드린 물질은 그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돕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빌4:18)이라고 성경은 증언해 줍니다.
결론
감사의 방법은 온 마음과 몸과 물질로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 모든 것이 감사의 수단인 것입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의 제물임을 알았습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더러운 이기심과 탐심 대신 주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성의와 정열이 뜨겁게 불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물질을 통한 감사
(본문:고후9:5)
우리 한국 교회 성도님들 중에는 교회에서 드리는 물질 봉헌에 대해 극단적인 인식을 지닌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물질 봉헌을 경시하고 그저 마음으로만 감사드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어떤 분들은 물질 감사에 신앙생활의 큰 비중을 두고 물질 축복에 연연하는 자세를 지니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자세는 다 물질을 통한 감사 생활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질을 통한 감사 생활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충성과 봉사 내용 중 한 가지이며 결코 인간의 판단과 욕심에 좌우될 내용은 아닙니다. 이제 물질을 통한 감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물질 감사의 가치(고후9:13)
1) 충성의 중요한 표현임
현대에서 물질은 화폐, 즉 돈으로 상징됩니다. 돈은 물질의 상징이요,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돈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악과 불의의 열매와 수단으로 돈이 악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히 교회와 돈을 연관짓기를 싫어합니다. 교회에서 감사 예물을 연보로 받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영혼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함만 원하시지 물질은 필요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돈 그 자체는 선도 아니요 악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구약시대부터 감사 예물로 물질을 드릴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가축이나 곡식 예물이 그것이요, 초대교회도 화폐, 즉 돈으로 "풍성한 연보"(고후8:2)를 드렸던 것입니다. 돈에는 그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한 성도가 헌금을 할 때에는 그만한 노력과 의지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물질 봉헌은 곧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심의 중요한 표현인 것입니다. 결코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볼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2) 교회와 이웃에 대한 현실적인 사랑의 수단임
초대교회에 성도들이 드렸던 감사 물질들은 선교와 구제의 자원으로 선용되었습니다. 현대 교회에 드려진 헌금도 마찬가지 용도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몇몇 그릇된 교회, 또는 큰 교회가 드려진 물질을 남용하거나 혹은 교회당 위주로 사용하여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수의 교회에서는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선교와 이웃에 대한 구제의 자원으로 교회 재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드리는 물질은 곧 하나님 나라의 선교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열매맺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입니다. 사랑도 충성도 정신만으로는 실천하기가 불가능합니다. 현실적인 물질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물질 감사의 가치는 중대하고 필수적입니다.
2. 물질 감사의 자세(고후8:3)
1) 순수한 마음으로 감사함
물질 감사는 순수한 신앙에서 우러난 감사의 마음, 충성의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드려야 참된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 일각에서는 성도의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장사꾼의 욕심으로 예물을 드리는 이들이 없지 않습니다. 즉 내가 만원을 드리면 십만원을 주시겠지라는 물질적인 이익과 욕심으로 드리는 자세가 바로 장사꾼의 자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에 엄청난 예물을 드린 후에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대상29:17)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진정 하나님의 모든 은혜에 감사함과 이 봉헌 물질이 선교와 구제에 쓰이게 됨을 기쁘게 여기고 드려야 합니다. 더 무엇을 받아내겠다는 사욕을 버려야 합니다.
2) 자원하여 감사함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고후9:7)라고 하나님은 교훈하십니다. 물질을 풍성하게 받은 축복을 얻었음에도 어울리지 않게 드리거나, 혹은 형편과 분수에 걸맞지 않게 체면 때문에 과하게 드리는 자세들은 그릇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하튼 조금이라도 위선적인 요인이 끼어들지 않도록 성도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형편껏,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물질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약에서부터 그 제사장들에게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출25:2)고 하신 것입니다. 형편껏 진실한 감사함으로 드린 물질은 과부의 동전 하나라도 주 하나님은 귀한 것으로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물질 감사에 따르는 축복(고후9:8)
1) 더욱 증가되는 축복을 받음
"심는 자에게…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고후9:10)라고 했습니다. 창고에 그냥 저장해 둔 곡식은 소멸되고 썩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을 땅에 심으면 몇 백 배의 결과를 얻습니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성도가 물질을 드리면 반드시 증가되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11:24)고 했습니다. 물질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성도는 물질 축복을, 몸으로 봉사하는 성도는 건강 축복을, 마음으로 힘쓰는 분들은 진리의 풍성함을 맛보는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축복 공유의 축복이 됨
우리 기독교는 개인보다 천국 공동체를 도모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을 모든 사람과 공유하게 하는 일이 천국에서는 가장 귀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드린 물질은 궁핍하고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 데 쓰이며 이는 축복의 공유라는 가치를 지닙니다. 이는 참으로 기쁘고 귀한 열매입니다(고후8:14,15).
결론
물질은 최악의 주인 노릇도 하고 최선의 종노릇도 한다고 어떤 이가 말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지는 물질 봉헌은 성도의 신앙과 충성심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수단이 될 것입니다.
기도
만물의 주인 되시는 주 하나님, 우리는 때로 물질 감사에 대해 그릇된 인식과 자세를 지녔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물질 감사의 가치에 대해 올바로 알았사오니 말씀과 성령 안에서 진실한 감사 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되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욱 풍성하게 하나님께 봉헌하고 이웃에게 덕을 베풀 수 있도록 물질을 공급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니다. 아멘.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생활
(본문: 살전5:16-18)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불만과 불평만 앞세운다면 그런 사람은 자기의 마음과 영혼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주위에서도 기피당하는 인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생활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 감사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위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위에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아름다운 생활이어야 하겠습니다. 조그만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큰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1.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엡5:20)
1) 감사는 하나님의 뜻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살전5:18)고 증거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란 말은,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감사 생활을 하라고 요청하신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 생활을 기뻐하십니다. 바른 감사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생활입니다. 입으로는 '내 주여 행하시옵소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감사 생활 그것은 하나님 뜻대로 하는 생활입니다. 더 나아가 감사 생활은 하나님이 즐겨 받으시는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받으시되 즐겨 내는 자들의 제물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 생활이요, 감사의 예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입니다.
2)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은 성도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욥과 같이 고난의 연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때가 있는가 하면 배나 더 풍성한 축복을 누릴 때가 있습니다. 어떤 처지든지 원망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고, 바로 이렇게 사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요셉이나 욥은 어떤 때에든지 입술로도 범죄치 아니했습니다. 순경에만 감사하고 역경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언제 어디서나 역경이나 순경에나 감사 생활을 할 수 있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왜 감사해야 하는가(골1:12)
1) 감사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욥의 고백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욥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은즉 또한 적신으로 돌아갈지라' 했습니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 올 때 적신으로 왔고, 또 돌아갈 때 또한 적신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오 만물은 그의 소유임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이요, 하나님 사랑하는 자의 태도요, 우리의 본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 생활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2) 감사할 줄 아는 자의 특징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자는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이 즐겨 받으시는 제물인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으니 이는 분명히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자는 신의가 있는 자입니다. 또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 본분을 다하는 생활을 합니다. 감사 생활하는 사람은 사람구실을 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적 인격이나 인간의 도덕적 인격은 물론하고 감사생활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인격적인 사람이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감사할 줄 아는 생활이 바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임을 잘 기억하여 사람다운 사람, 신자다운 신자가 되셔야 합니다.
3. 무엇으로 감사해야 하는가(신16:10)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물이 그러하겠지만 맥추절의 제물은 특히 소산에 대한 감사 제물이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힘 자라는 만큼 제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힘대로라는 말은 자원하는 심정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자원하는 심정이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함을 일컫습니다. 이와 같이 자원하는 심령으로 봉사한 신앙의 위인의 모습을 성경에서는 예를 들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가난한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신 롯에게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리사 부자인 보아스와 맺어지게 하심으로 다윗 왕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함께 하는 영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마1:5).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가난한 과부가 자원하여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을 칭찬하셨는데 그것은 그녀가 돈의 양보다 그 간절한 심령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예물을 드렸음에도 그 행위가 가증스러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명을 거두어 버리신 것입니다(행5:1-11).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그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그분의 요구하시고 기뻐 받으시는 감사의 생활을 힘있게 이끌어 가는 것이 바로 신앙 생활입니다. 만일 감사 생활을 하지 않거나 감사를 거부하는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그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동시에 그의 생활은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배은 망덕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감사하는 생활이 되어야 겠습니다.
기도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감사는 순간에 그칠 때가 많고 역경이 닥칠 때는 불평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는 어떤 순간에라도 감사드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종을 통한 감사
(본문:행5:29-31)
감사란 단순한 입술의 표현만으로 완전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조치가 가시화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령 누가 부모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을 공경하지도, 필요를 공급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은 참된 감사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도 마찬가집니다. 고백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라면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의 방법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을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1. 죄를 사하시는 주의 은총을 인하여(벧전1:18,19)
1) 인간의 죄와 망령된 행실
커다란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이를 베푼 이에게 감사하게 마련이며,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은 주의 은혜와 올바른 자아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증거 했듯이 우리는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습니다.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이란 말속에는 인간이 처해 있었던 절망의 상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류의 실상과 개인적인 절망을 잘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이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의를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타당한 평가가 아닙니다. 인간은 아무도 의롭지 못합니다. 선하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기대하기가 불가능한 한낱 죄인일 뿐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구속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고 있다면 하나님의 존재는 전혀 무의미하고, 우리의 감사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감사하고 힘써 순종함을 보이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죄를 속하사 우리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짐승의 피를 뿌려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했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은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과거 예루살렘 주변에서 발생했던 이 긴박했던 사건들이 갖는 의미를 축소시키거나 왜곡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주의 죽으심은 인류에게 소망을 주었고, 우리는 이를 인해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2. 선택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요15:16)
1) 그리스도인의 활동의 근거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특별한 명함을 가진 성도들의 활동 근거는 아주 독특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두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분이 우리를 선택하셨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사실만을 믿을 뿐입니다. 모든 것을 그분이 친히 계획하셨고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와 순종뿐입니다. 둘째는 소명에 대한 응답입니다. 주께서 부르실 때에 우리가 믿음으로 이를 수용했으므로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귀히 여기고, 믿음을 좇아 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순종이란 믿음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2) 세상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소속
성도인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반응과 무관하게 하나님을 순종해야 하는 까닭은 우리의 소속이 특별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들은 다 세상에 속한자들로서 마귀의 지배를 받습니다. 단 한 사람도 이 사실에서는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인격이 훌륭한 사람도, 세계적인 저명 인사도, 평화주의자도, 박애주의자도 모두가 똑같습니다. 반대로 성도는 그리스도께 속하여 그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달음질의 목표나 방법, 이에 임하는 자세도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명령권자도 다릅니다. 우리가 충성해야 할 대상도 다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서슬이 퍼런 공회 앞에서 보여준 용기 있는 행동은 우리의 소속과 취해야 할 행동의 방향을 알게 해줍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3. 구원의 보증이신 성령을 인하여(고후5:5)
1)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는데,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첫째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일의 중요성입니다. 요한은 그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는 말로 이를 표현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둘째는 학문이나 지식 등이 우리의 경건 생활을 위해 성령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므로 힘써서 좇아야 목적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능력 있는 주의 증인이 되게 하심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일을 한다고 모두가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동일한 여건 속에서 같은 내용을 가지고 같은 시간의 일을 할지라도 효과적인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역할도 다를 바 없습니다. 혹자는 부지런히 열심을 내는데도 열매를 얻지 못하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사람은 많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성령과의 관계 여하에 따라서 이러한 차이가 생깁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 성령과 함께 하는 사람은 후자에 속하고, 성령과 무관한 사람은 전자에 속합니다. 그분의 인도를 따르고서도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론
순종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분은 순종을 제사보다도 더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 여건이 열악할지라도 우리가 받은 바 은혜와 본분을 생각하여 순종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용기와 담대함이 없는 성도들은 주의 은혜를 알지 못하거나 감사에 인색한 사람들입니다.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의 그 많은 죄를 사하시고 주의 증인이 되게 하신 은총을 감사드립니다. 성도라는 우리의 이 신분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잊지 말게 하시고 늘 순종하게 하시옵소서. 주의 인도하심을 좇을 때 우리의 삶이 풍성해지고 완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헌신을 통한 감사
(본문:고전6:19,20)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특히 자신의 몸을 드려 헌신하는 것 이상 고귀하고 진실 된 감사는 없을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몸을 드려 헌신한다는 것은 그 삶 전체를 하나님을 위해 드린다는 뜻입니다. 이 헌신을 통한 감사가 가장 고귀하고 진실 된 감사라고 하는 것은 그 생명 자체, 그 생명 활동 전부를 그가 이 세상에 사는 생애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영광과 그 사업을 위하여 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충성스러워야하며, 고도의 인내력과 희생정신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성도의 헌신(롬12:1)
1) 그리스도의 피로 산 성도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이 말씀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그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했을 때 이미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소유물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2) 헌신의 의미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의미는 첫째,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자신을 제물로 바쳤다는 것을 나타냅니다(롬12:1). 이제는 자기 주체적인 삶은 죽고 객체적인 삶, 즉 종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는 사명자로서의 삶을 가리킵니다. 셋째로, 헌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산다는 뜻입니다(롬15:5,6). 헌신한 자의 삶의 본질적 성격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헌신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도구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3) 헌신과 영광의 삶
성도가 하나님께 헌신된 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삶을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썩어지고 욕되고 더러운 인간적 삶이 거룩하고 영광에 가득찬 하나님을 위한 삶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의 변화이고 전환이며 승화입니다.
2. 헌신을 통한 감사(딤전1:12-14)
1)보답으로서의 헌신
성도들은 그들의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의 일부라도 보답하기 위한 감격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근원적으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절대적인 것이고, 인간의 보답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란 자신을 드리는 방법밖에는 달리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헌신하는 것으로 이를 가상히 여기시는 것입니다(고전6:20).
2) 감사로서의 헌신
성도가 참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이유는 그 받은 바 은혜가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존재를 독생자를 희생시켜서가지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격한 바 되어 감사로서 그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 이상 절실한 감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기독교의 모든 위대한 역사는 이 속죄와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 생애를 감사로서 헌신한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딤전1:12-14).
3) 봉헌된 성도의 삶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 봉헌됨으로써 그 삶이 가장 복된 궤도에 들어선 것이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봉헌된 삶을 통하여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능가하는 가치와 의미가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입니다(빌3:7-9). 성도는 하나님께 봉헌된 삶을 통하여 가장 지혜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이 허무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소망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 가장 위대한 감소로서의 헌신(골1:24,25)
1) 가장 진실 된 감사로서의 헌신
헌신은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가장 진실 된 응답입니다. 오직 한 번만 주어진 그의 인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 이상 진실 된 일은 없습니다. 단회적인 인생을 거짓으로 헌신할 사람은 전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재물이나 재능이나 그 밖의 것들을 하나님께 드려 감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사는 부분적이고 때로는 형식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 자체, 인생 자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진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감사는 헌신입니다.
2) 가장 고귀한 감사로서의 헌신
인간이 일평생 동안 하나님께 그 자신을 헌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것은 고귀한 일입니다.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인생, 그것처럼 거룩하고 고결한 인생은 달리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헌신된 삶은 땅에서의 삶을 하늘로 연결하는 삶이기 때문에 고귀한 삶이고, 또한 항상 감사에 넘치는 삶이기 때문에 고귀한 삶입니다.
3) 가장 위대한 감사로서의 헌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은 위대한 삶입니다. 그의 봉사 영역은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초월합니다. 하나님께 헌신된 자의 삶은 모든 이웃을 그의 봉사 영역으로 삼습니다. 민족이 그의 봉사 영역이고, 인류가 그의 봉사 영역입니다. 그의 봉사는 지역을 뛰어넘고 국경과 인종을 뛰어 넘습니다. 베드로, 바울, 다미엔, 윌리암 케리 등 수많은 빛나는 영혼들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뛰어 넘어 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그들의 위대한 감사의 생애를 구축했습니다. 헌신은 가장 위대한 기쁨이고 감사입니다(골1:24,25).
결론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진 성도의 삶은 헌신하는 삶이고, 그것은 가장 진실되고 위대한 감사의 삶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가치를 위하여 투자하는 삶이며, 영원한 삶을 얻는 가장 지혜로운 삶입니다.
기도
성도의 헌신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헌신하는 생애를 통하여 가장 아름다운 감사를 당신께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