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서신

주님의 음성 (요일 4:5-6)

공 상희 2009. 11. 9. 12:59

주님의 음성 (요일 4:5-6)

 


이 시간 “주님의 음성”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이 누구의 음성을 듣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은 180도 달라집니다. 그 예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산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또 늘 하나님께 물으며 하나님의 음성 듣고 순종한 다윗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위대한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많이 들었던 사람은 모세입니다. 출33:11에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생각을 품었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고 결국은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대로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번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단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면 이렇게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음성만 듣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불신자는 물론 신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음성을 알지 못하고 자기소리 세상소리 사단의 소리를 듣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없어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19:3-4에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했습니다. 지금 우주에 하나님의 말씀이 꽉차있어요. 하나님의 음성으로 가득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성령이 거하시는 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면 항상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데 우리가 성전입니다. 그럼에도 듣지 못하거나 다른 음성이 들린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음성인지 몰라서입니다.


사무엘은 처음 자기를 부르는 여호와의 음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제사장이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달려가곤 했습니다. 우리들도 그러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만 그 음성을 잘 모르고 있어요. 성경도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설교도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사람을 통해서 혹은 꿈이나 여러 은사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14:26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했습니다. 생각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이렇게 생각을 통해 나타나고  마음에서 우러나 떠오릅니다. 마음에서 강하게 나타날 때는 나도 움칠거릴 만큼 크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잠1:20-21에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과 생각으로 나타나니까 사람들이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청년 시절에 기도 많이 하시는 어느 권사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도사님, 하나님께서 전도사님께 늘 음성을 들려주고 계신다는데 무엇이라 말씀하셨어요?” “예? 제게 음성을요? 못 들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음성 같은 것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권사님께서 제가 듣고도 안 들었다고 한 줄 알고 “그래요? 하나님께서 늘 들려주셨다고 하시는데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저는 꿈에라도 하나님의 음성 한 번 들어보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권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사무엘을 부르신 것처럼 저를 불러주시는 그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음성을 주셨다면 들을 수 있게 주시지 왜 이렇게 듣지도 못하게 주시는 건가? 그러나 저는 그 때 이후로 하나님이 제게 들려주신다는 음성이 과연 무엇인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양상은 여러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는 번개와 같이 아이디어를 생각나게 하시거나 어떤 때는 점진적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벧후1:19에 그 말씀이 있지요.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성경은 샛별이 떠오르는 것처럼 묵상하면 할수록 더 밝게 해주십니다.


경험을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개는 생각으로 떠오릅니다. 기도할 사람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어느 사모님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그 사모님 어머니 같이 좋은 사모님이셨지요.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하시고 사랑해 주셨어요. 그 사모님이 떠오르네요. 너무 오래 돼서 어디 계신지 모르겠네요. 하나님, 그 사모님 어떤 형편에 계시든지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전화가 왔는데 그 사모님이 운명하셨다는 전화였습니다. 아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생각나게 하셔서 기도하게 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라고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나쁜 생각이라면 용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용기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큰일을 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관리를 잘했습니다. 항상 믿음의 생각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만 용납하고 자기 생각이나 사단이 주는 생각은 배격했습니다.


두려움의 생각, 절망적인 생각, 우울한 생각, 증오를 품는 생각, 낙심하는 생각, 탐욕의 생각, 더러운 생각, 혼란한 생각, 교만한 생각, 나약한 생각, 기분 나쁜 생각,,, 이런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분별하지 못한 체 그 생각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밥퍼 목사로 잘 알려져 있는 최일도 목사님도 그가 처음부터 빈민구제나 사회정의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88년 초겨울 어느 날 청량리역 광장을 지나다 한 할아버지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지만 도와드릴 생각을 못하고 춘천행 기차를 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최목사는 놀랐습니다. 자신의 앞에서 쓰러진 그 할아버지가 한밤이 될 때까지 그대로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언제까지 나를 차가운 길바닥에 눕혀 놓을 테냐." 하는 마음에 주님의 소리가 강하게 들렸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그는  주체할 수 없이 무너졌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2. 자기 소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변함없지만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주장이나 고정관념 선지식 이런 것이 강하면 그 소리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주장이나 고정관념 선지식 이런 것은 특성상 너무 강해 다른 생각을 용납할 틈조차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택을 황토집으로 짓는데 저는 평소 황토집은 도배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게 오리지널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도배하라고 합니다. 흙이 보이는 것은 못살 때 그렇게 하고 살던 것인데 왜 도배하지 않느냐 한지로 도배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것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이 꿈꾸는 황토집에 대한 개념을 너무 모르는 말만 하는 것입니다. 아내도 1, 2층 관리 자신 없다고 자꾸만 말합니다. 저에게는 조금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주장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고 중립에 섰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날마다 황토집만 관리하고 있을래?” 날마다 황토집만 관리하고 있겠느냐는 음성이었습니다. 그 소리가 상당히 컸어요. 그래서 당장 계획을 변동시켜 관리하기 어려운 방은 도배하겠다고 했더니 마음에 평안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황토가 좋지만 날마다 목회는 않고 관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공간 6곳 중에서 3곳만 남기고 나머지는 도배를 했습니다. 그러면 왜 저에게 그동안 하나님의 음성이 없었을까요? 음성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들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제 주장과 고정관념이 너무나 컸던 것입니다.


3. 하나님께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하5:19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항상 여호와께 여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쭈라고 하면 들려야 묻는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가 할 일은 여쭈는 일입니다. 묻는 일만 충실히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응답해 주십니다.


저는 호기심이 많아서 하나님께 묻는 것이 많았습니다. 전에 교회 난공사 시에도 하나님께 여쭐 때 아이디어를 주셔서 잘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과학전람회 시에도 하나님께 여쭈어 에너지 부문에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아가서는 해석하기 어려운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도 감탄할 정도로 잘 만들어 처음에는 책으로 보급하다가 지금은 이윤을 생각하지 않고 사이버 공간을 통해 세계적으로 보급하고 있습니다. 저의 인터넷 설교회원들이 15,000명이 넘습니다.


병들었을 때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평소에 관리를 잘해 혈압이 높지 않은데도 중풍전조증이 옵니다. 병원에 가도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쭈었더니 어느 날 소금을 먹어라 하십니다. 소금을 먹었더니 점점 좋아져서 130에도 마비가 되려던 것이 180이 되어도 끄떡없게 되었습니다. 소금에는 마그네슘이 있는데 저염식을 하니 마그네슘 결핍증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전조증이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여쭈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는 무슨 일입니까?” 그랬더니 이번에는 고기를 먹었느냐 물으시는 감동이 밀려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고기를 먹지 않고 살았습니다. 콜레스테롤은 높아도 나쁘지만 낮아도 혈관은 피부와 같아서 콜레스테롤 성분이기 때문에 부족하면 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했더니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무슨 일로 췌장이 약해져서 인슐린 공급이 안 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몸이 아파 식사도 못하고 몸의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비위가 약해지니 우울증도 심하게 왔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췌장 치료처럼 어렵고 복잡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췌장암에 걸리면 한 달 살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좋다는 음식도 거의 췌장에 고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 고약한 병에 걸렸느냐고 한 마디씩 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뭔가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뭘 어떻게 할까요? 그랬더니 참외가 생각이 납니다. 꿈에 다시 참외가 보이며 참외만 먹으면 좋아질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참외를 몇 상자 먹었더니 참외가 췌장을 얼마나 돕는지 점점 좋아지고 인슐린 생산이 잘되어 영양을 얼마나 잘 처리하는지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잘 익은 참외여야 합니다. 잘 익은 참외는 비위에도 좋을 뿐 아니라 신장에도 간장에도 무리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여쭈어서 손해 볼 것이 어디 있습니까? 여쭙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요즘 사람들 웰빙식품이라 하여 채식 많이 하는데 과일이나 채식에 다량 포함되어 있는 칼륨 성분이 나트륨을 대량 배설시키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채식을 합니다. 싱겁게 먹어야 좋다는 말만 듣고 싱겁게 먹는데 그것은 채식인들에게는 자살행위입니다. 나트륨이 부족하게 되면 장기의 기능이 약해지고 세포에 에너지가 흡수 되지 못하고 배설되기 때문에 신장병과 골다공증과 암을 비롯한 온갖 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웰빙식품만 먹고 사는 농촌 사람들이 도리어 도리어 치아가 더 약하고 병도 많은데 영양의 불균형 때문입니다. 생식이나 과일이나 채식 섭취가 많은 사람들은 하루 소금 20미리가 많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먹어야 합니다. 이것 다 하나님께 여쭐 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들입니다. 믿거나 말거나는 여러분이 선택하세요. 하나님께 여쭈어서 손해 볼 것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탁인데 예언하는 사람에게 무슨 사업을 하면 좋겠느냐, 대학은 어디로, 사업은 잘 풀리겠느냐 등등 이런 점치는 예언 부탁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은 자신이 직접 물어야 할 것이고 예언자는 영적인 지도 외에는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것은 자신이 기도하고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하나님께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언은사로 점치다가 사단이 틈타 시험 든 적이 많았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4. 하나님께 속한 생활을 하지 않을 때입니다.


오늘 본문에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어느 편에 속했느냐에 따라 음성이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언자의 마음은 항상 깨끗해야 합니다.


요10:25-27에도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양에게만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잘 경외해 보세요. 마음이 가을 날씨처럼 쾌청하고 무엇을 생각해도 긍정적이고 관용하고 온유하고 욕심도 없어지고 좋은 생각이 가득찹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면 온갖 염려와 근심과 걱정, 미움과 상처 받은 것들, 지난 일들이 생각나고 두려움 의심 낙심 욕심 노함 억울함 같은 온갖 죄악들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왜 사단의 소리가 들립니까? 하나님께 속한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에 분주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생활이 부족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다면 회개하세요. 엘리 제사장 시절 여호와의 음성이 휘귀했던 것은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다가 하나님의 음성이 13년이나 끊겼습니다. 회복의 길은 회개밖에는 없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을 보면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들었을 때와 거짓선지자나 이방선지자들의 말을 들었을 때의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항상 흥왕했지만 사탄의 말을 들었을 때는 항상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잠4:23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우리 생각 관리에 달렸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언제나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사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음성 들려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은사를 통해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지금도 나타나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음성이 들립니까? 하나님의 음성만 들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삼고 매사에 분별하여 주님의 음성만 취하는 가장 현명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