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세 기

방주에서 본 교회론 (창 6:13-16)

공 상희 2009. 10. 23. 13:57

방주에서 본 교회론 (창 6:13-16)


이 시간에 “방주에서 본 교회론”이라는 제목입니다. 말씀을 시작하면서 드리고 싶은 부탁은 방주에 대한 말씀이 방대하기 때문에 본문 중심으로만 설교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성경을 떠나지 않고 성경 안에서 강해하게 됩니다.


1. 방주의 설계자는 누구실까요?


과연 누가 설계한 배이기에 그 극한 홍수에서도 견딜 수 있었을까요? 13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방주에 대한 설계를 주셨습니다. 당시 수많은 배가 있었지만 이 배만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방주의 안정성은 어느 정도였을까? 한국창조과학회가 1993년 한국의 해사기술연구소에 의뢰하여 노아방주의 안정성을 확인한 결과 안정성이 매우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동일한 부피로 길이 넓이 높이만 다르게 50분의 1로 축소하여 13척의 다양한 배를 만들어 실험해본 결과 다른 배들은 다 파선되었지만 방주만은 파고 43m에서도 안정성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구 역사 이래 최고의 파도 높이는 30m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파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것입니다.


방주의 설계자가 하나님이듯 교회를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떤 세파 속에서도 믿음만 가지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가 보여주었듯 교회다운 교회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은 몰론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는 시간문제입니다.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 이것이 중요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을 잃어버린 교회는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교회를 만드셨으니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헌금해서 세웠다고 내 교회가 아니며 내 땅에다 세웠다고 내 교회가 아닙니다. 내가 직분자라고 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충성하다가 복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반대로 교회를 해롭게 하다가 변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못마땅해도 교회를 혼란시키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바울도 전에 교회를 핍박했는데 용서를 받은 것은 알지 못하고 행했기 때문입니다. 딤전1:13에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알고서도 행하면 그 죄는 상상할 수 없게 큽니다. 그 생명을 하나님이 속히 불러가 버리심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 생명이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모릅니다. 교회는 인간의 모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방주는 몇 개일까요?


방주는 하나입니다. 성경을 봐도 방주가 두 개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처럼 보이는 유형교회는 많아도 보이지 않는 주님의 몸 된 무형교회는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 무형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란 주님의 몸인데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주님을 떠난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보이는 교회를 떠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것은 신앙을 떠나는 효과가 있습니다. 교회 멀리하면 하나님도 멀어집니다. 교회 출석하지 않으면서 나도 교인이요 하는 사람들 보면 대개 영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불신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돕는 목자와 지체들을 주셨는데 그 축복을 떠나서 어떻게 성장과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방주가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개교회주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타 교회를 시기하거나 우리 교회만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해서는 안 됩니다. 전도도 불신자를 전도하는 수직이동에 힘써야지 타 교회 다니는 사람 끌어오는 수평이동에 힘써서는 안 됩니다. 타 교회 교인 빼앗아 오는 것은 부흥이 아닙니다.


내가 몸 담은 교회가 잘되기를 기도해야 하지만 또 우리 교회가 하지 못한 일 다른 교회가 할 수 있으니 다른 교회도 잘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감당할 수준 이상이 되면 교회를 세워 분립시켜야 하고 교회 없는 곳에 교회를 설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부요와 힘을 약한 교회에 나누어야 합니다. 예배당을 지어준다든지 생활비를 보조한다든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국내 국외 선교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단일성 때문입니다.


3. 방주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창6:20에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하셨습니다. 즉 구원에 있습니다. 홍수에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목적 역시 구원에 있습니다. 교회는 교육도 합니다. 구제도 합니다. 봉사도 합니다. 친교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궁극적인  목적이 구원에 있습니다. 전도와 양육이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방주가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방주의 크기는 길이 약 135m, 폭23m, 높이 14m로 그래서 현대의 축구장의 길이보다 더 길며 면적으로는 20개의 농구장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큽니다. 배수량으로 보면 약 20,000t여 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 덩치가 커다란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는 종으로 따지면 약 17,600종이  있는 데 이 종류의 각각이 쌍쌍으로 실렸다면 35,200마리가 방주에 실렸다는 계산입니다. 양으로 환산해 보면 양 125,280마리를 실을 수 있는 방주입니다. 그래서 당시 방주는 그때 당시 방주에 들어간 동물의 서너 배나 더  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고 합니다.


더 작아도 되는데 그렇게 크게 지으신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품 안에 안길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와도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법이 없습니다. 뭐 14만 4천명이 찼으니 더는 안 되다는 그런 주장은 다 이단의 주장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가능하다면 온 세상 백성을 다 구원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절대 비좁은 법이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많은 교회를 세우심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되어져 가는 것으로는 주님께서 벌써 오셔야 하는데 오시지 않는 것도 그렇습니다. 벧후3:9을 보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비어 있는 방주에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 말씀하신대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 집을 채워야 할 것입니다.


4. 방주는 예배처소였습니다.


노아의 일곱 식구들은 방주에서 안식일을 기억하며 예배를 드렸고 날마다 예배하는 삶이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긴 방주생활이었지만 구원의 감격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들의 예배의 내용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였을 것입니다. 아무 공로 없는 죄인을 홍수로 죽어가는 사람들 중에서 이렇게 구원해 주시다니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들은 방주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구원의  방주인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택해주신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늘 찬양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상한 심령이 위로받고 용기와 소망을 얻습니다.
교회는 예배만 드리면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개의 교회는 예배 말고 다른 일은 서투른 것 같아요. 하나님의 일이라면 다른 일도


잘해야 하는데 일할 때 인간의 약점이 너무나도 쉽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영적으로 어리든 장성했든 항상 일치를 줍니다. 은혜를 줍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사신 소중한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교회 즉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교회를 귀히 여기고 교회 출석 잘하고 교회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