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장성하자 (히11:23~27)
믿음에 장성하자 (히11:23~27)
지금 인도네시아에서는 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사람들의 사상자를 내고 재산에도 큰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몇 개의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가 하면 결혼식 하객 400여명이 생매장되기도 한 가슴 아픈 소식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더 가까웠으니 더 열심히 신앙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믿음에 장성하자”라는 제목입니다. 데이비드 바움(David Baum)이라는 사람은 '바보는 변했다고 하고 현자는 변하자고 한다(Lightning in a Bottle)'는 말을 했습니다. 바보는 변했으니 더 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현명한 사람은 더 변화되고 더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데이비드 바움의 의도대로 표현한다면 변화를 모르면 그것은 바보라는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0년대에 스위스가 세계 시계 시장의 90%를 장악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두 명의 스위스 시계기술자가 세계 최초로 디지털시계를 발명해 냈습니다. 그런데 스위스사람들은 "지금 우리의 시계만으로도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데 무슨 디지털시계냐?" 면서 그들의 발명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좌절을 거듭한 그들은 자신들의 신기술을 미국의 인스트루먼트와 일본의 세이코에 팔아버렸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스위스는 시계시장의 8%만을 점유하고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달라져야 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는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태어나서 자라지 못하고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장성할 때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뿐 아니라 귀한 것으로 복 주시고 귀히 써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24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라는 구절을 통해 장성한 모세를 강조합니다. 일차적 의미는 모세가 성인이 되었다는 말이겠지만 문맥을 보면 믿음도 장성했음을 보여줍니다. 모세의 믿음이야말로 장성한 믿음이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믿음이었기에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위대한 기적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장성' 은 헬라어로 '텔레이오이'인데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엡4:13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자라야 합니다. 그럼 장성한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그것을 모세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장성한 믿음이란?
1. 거절하는 것입니다.
24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모세는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공주의 아들 됨을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 공주의 아들을 거절한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권세와 부귀와 영화를 거절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십시오. 그들은 금신상 앞에 절하라고 강요받았을 때 '아니요' 라고 분명히 대답하였습니다. 요셉도 유혹 앞에서 '아니오' 하며 거절하였습니다. 어떤 것이 보장된 제안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니오' 라고 거절할 수 있는 장성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운송 회사 사장이 사원들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선박이 토요일 밤늦게 도착하기 때문에 일요일에도 나와 선박의 짐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한 청년이 "사장님! 내일은 주일이기 때문에 저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장은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면서 회사를 그만두든지, 내일 나와서 일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해야 할 처지지만 주일을 범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와 3주 동안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했으나 얻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시중의 모 은행 총재가 운송 회사 사장에게 쓸 만한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지점을 하나 열어야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사장은 자신이 해고했던 청년을 추천했습니다. 총재가 추천하는 이유를 묻자 사장은 "내가 그 청년을 해고했었네. 일요일에는 절대로 일할 수 없다고 해서 그렇게 했던 것일세. 하지만 자신이 처한 형편에 따라 신념과 원칙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라야 돈을 맡길 수 있지 않겠나?" 결국 그 청년은 이전의 직장보다 더 좋은 곳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2.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탁구선수 양영자(梁英子)를 기억하십니까? 그녀는 매달 백만 원씩 나오는 체육연금을 어려운 시골교회 앞으로 돌려놓고 자신은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몽골에 선교사로 파송 되었습니다. 몽골에 도착한 그녀는 전염병에 걸리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것도 알아주지 않고 한국음식도 없는 등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몽골의 삶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어떻게 고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하는 기자들에게 양영자 선교사는 대답합니다. "저는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다들 어리석게 산다고 걱정하지만 예수님만이 저의 소망이시고, 기쁨이요, 힘이요, 능력이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가치는 금메달이 아니라 천국의 면류관입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본문 25절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 했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장성한 사람은 하나님의 가치를 더 좋아하고 그것을 택합니다. 장성하지 못할 때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가치를 모릅니다. 썩고 없어지는 육신에 속한 것을 위해 사활을 겁니다.
모세가 장성하지 못할 때는 공주의 아들로 있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그녀가 먹여주는 음식, 입혀주는 옷, 궁궐, 애굽에서 배운 지식과 문화들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장성하게 되니 이런 것들은 너무나 무가치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악의 낙보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장성한 모세의 모습입니다. 더 이상 어리석게 썩어질 것에 소망 삼지 말고 영원한 것에 소망 삼기를 바랍니다.
3. 바라보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가 바라본 것은 세상의 보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상주시는 보화였습니다.
주님도 고난의 십자가보다 그 너머 하나님 보좌 우편의 영광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랬기에 고난도 죽음도 능욕도 수치도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라고 말했습니다.
지상의 것만 제일인 줄 아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 관심 기울이지 마세요. 사람을 의식하고 일하지 마세요. 그러면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합니다. 저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그 때 받을 상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모세는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이 장성한 자의 모습입니다.
4. 보이는 대로 행치 않는 것입니다.
27절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애굽의 바로 왕 얼마나 대단한 권력자입니까? 그러나 모세는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환경에 압도당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믿었던 것입니다. 대학 나오고 군 전역하고 직장이 염려 되십니까? 최선을 다하세요. 그러면서 여호와이레를 믿으세요. 믿는 것 편법 아닙니다. 믿는 것도 일종의 실력입니다.
1846년에 목사를 지원한 젊은이에게 의사는 "이런 병약한 몸으로 목회를 하면 일 년 후 죽고 말 것입니다. 포기하십시오." 라며 휴식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일 년이라도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순교한다는 각오로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불우한 이웃을 위한 구제사업에 힘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일을 계속하며 일 년이 아니라 84세에 이르도록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1878년에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 대장입니다. 그는 말년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젊었을 때 의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의사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셨습니다."
전족(纏足)이라고 아시지요? 옛날 중국에서 어린 소녀나 여성의 발을 인위적으로 묶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풍속으로 3-4세 이하 여자아이의 발을 붕대로 감아 가죽신을 신겨 성장을 저지시키는 풍속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발이 변형되고 작아 잘 걷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혹시 우리의 믿음이 전족 상태에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믿음이라면 속히 불신과 안일과 자만의 전족을 풀고 자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가 자라갈 믿음의 목표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될 수는 없지만 예수님처럼 자라야 합니다. 항상 그 상태에 있는 신앙의 어린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모세와 같이 세상 것을 거절하고 세상 낙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하고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믿음에 장성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