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주님이 감탄하시는 믿음 (눅 7:2-10)

공 상희 2009. 10. 16. 13:33

주님이 감탄하시는 믿음 (눅 7:2-10)


이 시간에 "주님이 감탄하시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제목이 참 은혜롭습니다. 이왕 믿을 바엔 주님이 감탄하시는 믿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대학교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는 질문입니다. 교수는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돈, 건강, 핸드폰, 엔죠이......’ 그러나 의외로 대학생들은 의미 있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감동이라는 대답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감동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동할 수 있는 일도 가치 있지만 하나님이 감동하실 일이라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케 할 것은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한다 하신 말씀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선물 중에 부자에게 선물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소중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는 물질보다 사랑하며 기도해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감동케 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그리고 온전히 믿어드리고 순종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보다 더 기뻐하실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되는 기적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믿음을 감탄하신 사람이 나옵니다.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이면 100명을 거느린 하급 장교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믿음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감탄하시고 말았습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 로마군으로 파송된 백부장은 지배자로서 포학이 아니라 온갖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위하여 회당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소문 듣고 안 그는 유대인 장로 몇 명을 예수님께 보내어 자기 종을 고쳐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가서 고쳐주려 하실 때 백부장이 친구들을 보내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9절)고 칭찬하셨습니다. 그의 믿음에 무엇이 있었기에 주님께서 그렇게 감탄하시고 큰 칭찬을 하셨을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이 감탄하실 믿음의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이 감탄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사랑이 많은 믿음입니다.


백부장은 사랑이 많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2절에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당시 종은 재산의 가치 정도로 생각하던 대접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사랑했다면 아주 사랑한 것입니다. 종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5절에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해 회당을 지었나이다.” 백부장은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도 종교도 사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나라였으니 얼마나 백부장으로서 다행한 일입니까? 그가 어떻게 결신하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잘했으면 유대의 장로들이 그의 친구가 되었겠습니까?


이 사실이 보여주듯 백부장의 믿음이 위대한 것은 사랑이 많은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에 사랑을 더하면 그것이 온전입니다. 그래서 골3:14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믿음에서 출발하여 사랑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자기만 위하는 이기적인 수준에 머무르면 아무리 기도해도 아래에서 맴돌 뿐입니다. 그래서 벧후1:5-7에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사랑으로 감동시키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많은 발명품들이 사랑 때문에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주전자 뚜껑에 난 구멍이 난 사연도 그렇습니다. 환자가 주전자에 물 끓는 소리에 잠을 자지 못하자 환자를 간호하던 이가 주전자 뚜껑에 구멍을 뚫었다가 발명한 아이디어입니다. 주름 빨대도 그렇습니다. 어느 병원에서는 환자가 일어나지 않고 누워서 물을 마실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만들어 낸 것이 주름 빨대입니다.


어느 모임에서 이런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무엇일까요?’그러자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왕따 당한 고라니입니다. 고라니는 초식동물로 순한 동물이지만 일단 왕따를 당하면 반감으로 맹수로 돌변하여 어떤 맹수와 싸워도 지지 않습니다.”


그러자 문제를 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랑을 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떠나 악한 마음을 먹으면 어떤 맹수보다도 더 악해집니다. 그 악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요.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맹수보다 악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많은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우리 믿음에도 사랑만 더하면 그 믿음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사람을 믿지는 못한다 해도 사랑할 수는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합니까? 완악한 사람도 사랑하면 변화됩니다. 그래서 전도의 최고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주님이 에베소교회에 사랑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 하셨는데 사랑은 남만 사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살고 교회가 사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이 분야에 많은 것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사람이 감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사람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백부장의 주님을 향한 덕스럽고 지혜로운 사랑을 봅니다. 6-7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백부장이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집도 멀지않다면서 왜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을까요? 더구나 자기는 나와 보지 않고 남을 보내 예수님 오심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주님을 향한 사랑을 봅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예수님과 상종함이 알려지면 자기는 괜찮지만 예수님이 핍박을 받게 되시기 때문입니다. 아주 세심하고 배려 깊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작용을 줄이려고 이방인 대신 유대의 장로들을 보내고 자기 또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 일로 바쁘신 주님을 더 이상 수고스럽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데 이렇게 깊이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만 아니라 둘 셋 넷까지도 생각하는 주님 사랑입니다. 사랑은 가깝게 사랑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멀리서 사랑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예수님께도 좌우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깝게 오른팔 왼팔처럼 하는 사랑도 필요하고 멀리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랑도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에 유학을 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월 1000만원을 받는 카이스트에 취직이 되어 35세까지 봉사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만 두고 해외로 선교사로 떠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물었습니다. “너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니?”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35년간 나를 위해 살았으니 나머지 30년은 주님을 위해 살아야지요.” 그리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입니다. 물론 내 뜻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 속에서만 하세요.


2. 확신이 있는 믿음입니다.


백부장의 믿음 정말 확신이 넘치는 군인다운 믿음입니다. 7-8절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나 같은 하급 장교의 말에도 군인들이 움직이는데 하물며 우주의 총사령관 되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한 마디에 그까짓 질병 하나 못 고치겠느냐는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생각이 나왔는지 이렇게 믿음을 잘 설명한 사람 보셨습니까? 그의 믿음에 조금의 불신도 약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조금의 의심도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했습니다. 이런 믿음이었기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칭찬하셨고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습니다.


이처럼 확신 있는 믿음만이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가를 안다면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믿는 것이 근거 없이 믿는 것인 줄 알아요? 신실하신 하나님을 알기에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근거가 충분해요. 또 믿음의 근거는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이 근거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의심 가지면 믿음은 송두리 체 무너집니다.


거미줄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지옥에서 다른 죄인들과 함께 고통으로 신음하는 한 사나이의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는 이전에 살인 강도 방화 등 온갖 나쁜 짓만을 일삼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시니까 그도 생전에 꼭 한번 좋은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길바닥에 기어가는 거미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밟아 죽이려다가 문득 가련한 생각이 들어 그 거미를 죽이지 않고 살려 준 일이 한번 있었습니다. 가련한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어떻게든지 살려 주고 싶어 어떻게 살려 줄까 궁리하시다가 그 거미를 발견하시고는 슬그머니 그 거미를 잡아 지옥 밑바닥으로 던졌습니다. 천국부터 지옥까지 거미줄이 연결되었습니다.


그 죄인은 천국으로부터 거미줄이 내려 온 것을 보고 거미줄을 타고 천국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 사이는 워낙 거리가 멀어 올라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신없이 거미줄을 기어오르던 그 죄인은 한참을 오르다가 밑을 내려다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혼자 오르고 있는 줄 알았던 그 거미줄에 수십 명이 줄줄이 타고 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가는 거미줄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매달려 있으면 곧 끊어지겠다. 만일 거미줄이 끊어지면 나도 같이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조바심하던 그는 밑을 향해 소리 질렀습니다. “야! 어서 썩 내려가지 못하겠느냐? 이 거미줄은 내 것이란 말이야. 누구의 허락을 받고 올라오는 거야?” 그러면서 열심히 자기 아래 붙어있는 사람들을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거미줄이 뚝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영영 나올 수 없는 어두운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훈적인 이야기이지만 혼자만 살겠다는 이기주의 속에는 천국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 확신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사랑과 믿음은 결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크기가 믿음의 크기이고 믿음의 크기가 사랑의 크기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6:23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축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풍성한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계십니다. 그 믿음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리는 이 악한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고 백부장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과 확신을 겸한 참된 믿음을 가져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