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세 기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다 (창 12:1-9)

공 상희 2009. 10. 1. 12:53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다 (창 12:1-9)


이 시간에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다”라는 제목입니다. 구약에서 존경하는 믿음의 사람을 들라하면 아브라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우리 믿음의 표본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온갖 아름다운 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돌아가리라(창15:15) 하신 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175세까지 살았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낙심하거나 아브라함을 너무 부러워하지 마시란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갈3:9에도 말씀하셨듯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복을 받은 것 같이 우리들도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함께 동일한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럼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의롭다 함을 받고 복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당시 노아의 자손들이 열국 백성으로 나뉘어지면서 절대권력의 폭정이 있었고 도덕적 타락, 전쟁의 공포, 물질만능, 우상숭배, 영적무지로 가득 찬 시대였습니다. 이리 보아도 불신앙 저리 보아도 불신앙이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더구나 가정까지 수24:2에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이런 우상단지 속에 살던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큰 민족을 만드시고 복의 사람 만들어주신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처럼 죄악 가운데 살던 우리를 복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불러주셔서 구원해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1. 철저한 분리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제일 먼저 분리를 요구하셨습니다.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복을 받으려면 떠나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은 우리로 말하면 죄악 세상입니다. 철저히 회개하여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붙들면 결코 형통이 없습니다. 잠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대하7:14에도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했습니다.


냉전시대에 소련의 3대 기적이 있었습니다. 나무는 많은데 종이가 없었고, 원유는 많은데 휘발유가 없었고, 땅은 넓은데 식량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소련인들 외모가 얼마나 출중합니까? 그러나 행복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못된 무신론 공산혁명으로 교회를 파괴하고 주의 종들을 시베리아로 유배시키고 하나님을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땅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그 땅에는 하나님의 복의 문이 닫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북한이 다른 종교는 놔두고 기독교만 핍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같은 한반도이지만 남쪽은 해마다 풍년이 들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북한 땅은 황무하여 해마다 흉년들어 세계 최고의 빈국이 되었습니다. 사는 길은 공산 독재가 무너지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심령이 깨끗하면 깨끗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더욱 복을 주시고 귀히 써주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나 비록 약해도 늘 기도하면 이기게 해주십니다.


뉴욕 허드슨 강 하류에 쏠트라인이 있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소금물과 상류에서 내려오는 민물이 만나는 선을 말합니다. 날이 가물어서 강물이 약해지면 바닷물이 역류해서 허드슨 강으로 올라옵니다. 그러면 식수를 공급하는 수원지가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비가 내려서 물이 흐르면 민물이 바닷물의 세력을 계속 밀어내어 수원지가 안전해집니다. 그래서 이 허드슨강의 쏠트라인은 끊임없이 당기고 미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영력 따라 세상 유혹을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예배하며 하나님 잘 경외하세요.


2. 믿음과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사람이 된 것은 말씀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을 때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르에서 가나안까지는 서쪽으로 1,200km 정도를 가야 합니다. 몇 개의 국가를 뛰어넘어야 하는 먼 길입니다. 히11:8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씀합니다. 창15:5-6에 하나님이 복 주실 때도 아브라함이 믿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이런 믿음의 아브라함도 시험은 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가나안을 가려면 아라비아 사막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북서쪽으로 돌아가다가 머문 곳이 하란입니다. 하란은 우르와 같은 문화권에 있는 우상지역입니다. 그곳이 너무 좋아 머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창11:31에 하란에 거하였다는 말의 원뜻은 잠시 머무른 것이 아니고 아예 거기서 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므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란이 있습니다. 이 정도 수준에서 신앙생활을 하자고 더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것이 하란입니다. 아무리 설교해도 난 이 정도로 만족할거야 이것이 하란입니다. 이처럼 복의 사람 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를 그물 가득히 잡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해 보세요. 왜 복이 없습니까? 제자교육이란 지식의 증가에 있지 않고 한 말씀이라도 그것을 내게 적용하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찬송하라는 말씀 한 가지를 온전히 적용하기까지 힘써 노력하는 것이 제자교육입니다.


3. 봉사의 삶입니다.


3절에 “땅의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복의 통로로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기도하면 더 이상 발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이기적인 사람에게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훨씬 복이 있습니다. 더 풍성한 기적이 나타납니다. 나도 살고 남도 삽니다.


역사 속에 가장 행복하고 가장 신령한 사람 중 하나 프란시스, 그의 일생이 봉사하는 일생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미국에 존즈 홉킨스 대학에 한 사회학 교수가 미국에서 가장 열악한 뉴욕의 빈민굴에 사는 청소년 200명을 조사했습니다. 그들의 부모들은 거의 마약을 하고 있고 폭력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동네는 윤락가였고 알코올 중독자들이 우글거렸습니다. 사회학과 교수와 학생들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들 청소년들은 90% 정도는 훗날 범죄자가 되어 형무소를 제 집 같이 드나들 것이다.’


그로부터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노교수는 은퇴를 앞두고 서재를 정리하다가 옛날 학생들과 같이 환경 조사하여 발표했던 글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때 만났던 아이들의 이름과 주소며 설문 내용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학문적인 호기심이 나서 당시에 설문에 응했던 그들을 다시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미국 전역을 뒤져 200명 중에 180명을 찾아냈는데 웬 일입니까? 단 4명만이 단 한번 감옥에 간 적이 있었고 모든 사람이 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예상을 뒤엎는 일이었습니다.


교수님은 그들을 만나 어떻게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 심도 있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같은 공통적인 말을 하는데 자기 동네에 한 여전도사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전도사님이 자기들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20년 전 한 여자 전도인이 자기들이 사는 동네에 들어와 주일학교를 했습니다. 우리의 헌신으로 많은 영혼들이 행복할 때 우리는 더욱 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예배의 삶입니다.


7, 8절에 아브람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로 말하면 예배드렸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발붙일 곳도 없는 나그네 생활이었지만 그가 열심히 한 것은 예배였습니다. 예배가 복입니다. 복이 임합니다. 복의 사람이 됩니다.


충남 부여에 사는 어느 장로님이 수박농사를 짓는데 한번은 교회 가기 전에 수박밭을 돌아보니 수박 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이럴 때 인공수정을 시켜야 하는데 교회는 가야 되겠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님은 집사 시절에 “나는 꼭 주일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장로가 되었으니 교인들에게 더욱 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주일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수박농사를 망친다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내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교회로 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부랴부랴 수박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박밭에 웬 개미떼가 그렇게 많은지 사방이 다 개미떼였습니다. 동태를 가만히 살펴보니 개미가 수박 꽃에 붙어서 수정을 시켜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미를 통해서 수정시켜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더 귀한 일은 그 일로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오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여러 교회에서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예배하는 삶이 있다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예배에 충실하십시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고 그 힘으로 세상을 이겼으며 복의 근원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일은 예배와 기도에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예배만 잘 드려도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교회 정규예배 중요합니다. 그것과 함께 중요한 것이 가정예배입니다. 가정예배만 회복하면 개인의 영성과 민족복음화와 기독교교육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복의 사람이 되십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갖 아름다운 복을 가득하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철저히 죄와 분리되고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봉사와 예배에 열심하여 하나님께 가장 사랑 받고 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