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선지서

은혜로운 심판 (말 2:17-3:6)

공 상희 2009. 9. 18. 17:00

은혜로운 심판 (말 2:17-3:6)


이 시간에 “은혜로운 심판”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심판주의 강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과 같이 은혜로운 심판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본래 심판이란 상선 벌악의 행위입니다. 선한 자에게는 상을 주지만 악한 자에게는 벌을 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심판은 상은 없고 벌만 주지요. 그래서 심판 받으라는 말은 벌 받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장차 올 최후의 심판만은 상선벌악이 동시에 그리고 가장 공정하게 집행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특이한 심판이 나옵니다. 은혜를 강조하는 심판입니다. 세례요한이 나타남과 그리스도의 초림과 성령 강림에 대한 예언이 극렬한 불같은 심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이 때 심판이 있었나요? 은혜만 몽땅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은혜 받은 사람마다 악이 제거되고 새롭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될 뿐 아니라 위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심판은 백 번 받아도 감사한 심판입니다. 이런 심판은 받으면 받을 수록 좋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런 심판을 받기 위해 사모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 은혜로운 심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1. 은혜로운 심판은 공의의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임합니다.


2장 17절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이스라엘이 이런 헛소리를 한 이유는 악인들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악이 이렇게 번성하고 악인이 잘되고 있는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무시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하나님은 행악하는 자를 좋아하시나봐' 하면서 하나님을 말로 비꼬고 개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말이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했는데 과연 그럴까요? 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광야 이스라엘처럼 보이는 상황이나 상태대로 말하면 하나님 괴로워하십니다. 없으면 주실 줄 믿습니다 해야지 왜 상태만 보고 원망합니까? 믿음이 없으면 기쁘시게 못합니다. 공의를 말하기 전에 공의의 하나님을 믿어야 공의의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불신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악이 성할 때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악도 하나님이 처리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은혜로운 심판은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3장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여기 예수님 앞서 보내기로 한 하나님의 사자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인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의 사명은 영벌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의 거울로 자기를 비쳐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거울로 자기 죄가 얼마나 흉악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심판 받아 마땅한 인간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 복을 받지 못합니다. 악은 물론 선까지도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라면 다 처리되어야 합니다. 나로 말미암은 것은 그 무엇도 아담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로운 심판은 임하게 됩니다.


3. 은혜로운 심판은 주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다시 1절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여기 언약의 사자는 우리 예수님입니다. 주님이 임하시면 모든 죄가 끝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단9:24에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그랬습니다.


이 시대의 문제의 해결은 주님이 오심에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이 세상의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됩니다. 주님의 재림만 우리에게 완전함을 주는 것 아닙니다. 지금도 임하시는 그 임재도 우리에게 완전함을 줍니다. 그 임재하심만큼 그만큼 우리에게 변화가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에 대한 시제를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미 오셨고 오시고 계시며 온전히 오실 것입니다. 오시고 계신다는 말은 지금도 영으로 임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이 오시고 계신 주님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것을 모르니까 복음의 현실감이 없어요. 우리는 장차 오실 예수님도 믿어야 하지만 현재에 임하시는 예수님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이 임하시면 죄인이 회개하여 구원 받고 죄가 처리되어 의로워지고 우리의 모든 삶이 평강으로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재림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아멘 주 예수여 지금 이 시간에도 임하시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4. 은혜로운 심판은 성령의 열매를 맺히게 합니다.


2절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주님이 나타나실 때 누구도 당할 수 없다는 말씀은 성령이 임하시면 아무도 그 법을 막을 자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모두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갈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응답보다 변화되는데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내가 변화되면 나의 모든 삶도 변화되어 복으로 가득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결케 하시는 은혜는 불과 같아서 악한 것을 다 소멸하실 것이고 또 잿물과도 같아서 우리 마음을 희고 희게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나 깨나 성령을 대망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성령을 받았으나 더욱 충만히 받기 위해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5. 은혜로운 심판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3-4절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여기 “앉아서”는 그리스도께서 심판주가 되어 보좌에 앉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의로운 제물을 드린다는 것은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옛날과 고대와 같이”란 아벨의 제사와 같이, 모세와 다윗시대와 같은 예배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본래 심판은 죄인을 사회에서 격리 즉 모든 자유와 행복에서 격리를 가리키지만 이 심판은 은혜로운 것이라 도리어 회복시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한없는 복입니다.


경주에 최부자라는 부자 이야기입니다. 최부자는 12대 300년을 이어온 부자 명문가입니다. "삼대 가는 부자 없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최 부자 가문만큼은 예외입니다. 이렇게 최 씨 집안이 오랫동안 부자 명문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6가훈(家訓)과 6연(然)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경주 최 부잣집의 6개조 가훈). 다 설명 할 수는 없고 간략히 말하면 부자여도 바로 살라는 내용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바로 살 때 대대로 복을 누리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6. 은혜로운 심판은 온전하게 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5-6절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여기 여러 죄악을 열거하고 있는데 감추거나 속이거나 약자여서 호소할 수 없는 그런 죄들입니다. 이 구절에 죄를 아무리 숨겨도 끝까지 찾아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죄를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무엇이 악하고 무엇이 잘못인지 다 아십니다. 영적 처리를 받다보면 우리 속에 감추어진 흉악한 죄악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때 자신의 무능함과 악함을 볼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속에 잠재한 악을 다 들추시고 찾아내셔서 낱낱이 처리하시는 과정입니다. 욥에게도 흠이 있었습니다. 고난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지 못했던 곳 들 수 있습니다. 자기 의, 완전주의도 있는 것 같고요.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죄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흉악한 죄가 나타나면 무엇보다 엎드려 주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변역치 아니하시는 주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승천하신 주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심판주로 임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비추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며 우리 주님을 온전히 사모하셔서 가장 온전하고 가장 복되고 은혜로운 심판을 받아 가장 깨끗하고 가장 아름다운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