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전-계시록

풍성한 은사를 부어주시는 이유 (행 2:14-21)

공 상희 2009. 6. 9. 15:33

풍성한 은사를 부어주시는 이유 (행 2:14-21)

풍성한 은사를 부어주시는 이유라는 제목입니다. 은사가 무엇일까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은사라고 합니다. 우리가 선물할 때 가장 귀하고 좋은 것으로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가장 귀하고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것이 성령의 은사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사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내용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성령 강림사건으로 나타난 만국 방언에 대해 조롱하는 무리들에게 베드로가 이것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의 예언 성취임을 증거하는 장면입니다. 또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이렇게 능력 있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내 양을 먹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성령 받으면 실의에 빠진 사람도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분문에는 여러 교훈이 담겨 있지만 중요한 한 가지는 육체에도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전인데 영혼만 성전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가 함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체에도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 육체에 부어주시는 성령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구원과는 직접적인 상관은 없습니다. 은사 받지 못했다고 구원 받지 못한다거나 은사 받았다고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은사는 우리에게 다른 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부어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우리의 우둔한 눈을 열어주시기 위함입니다.

17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기 예언이나 환상이나 꿈은 양상은 다르지만 무엇을 보여주신다는 점에서 같은 것입니다. 영이 둔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우리 육신의 생각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예언은 생각 속에 나타난 말씀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우리 속에서 성령의 생각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예언입니다. 그래서 예언사역을 훈련 받을 때 남을 위해 방언을 한 다음에 무슨 생각이 나든지 그대로 말하는 훈련을 합니다. 이 때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이 나도 내 생각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주신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마귀가 주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런 훈련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소홀히 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도구라는 믿음을 가지고 생각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더욱 뚜렷한 생각으로 우리를 쓰시게 됩니다.

다음에 환상은 역시 생각 속에 나타나는 그림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친구를 생각하면 친구 얼굴이 떠오르는 것과 같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떤 것이 생각 속에서 보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내 생각인 줄 알고 무시하지만 보이는 생각조차도 쓰신다고 믿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생각을 환상의 채널로 사용하시게 됩니다. 물론 사단이 주는 생각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환상은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죄악의 환상 같은 것은 마음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데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꿈,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꿈은 다 꾸니까요. 꿈은 자면서 무의식중에 움직이는 활동사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 정확히 혹은 비유나 상징적으로 보여주십니다. 꿈 속에서 추한 꿈을 꾸셨다면 회개하라는 메시지인 줄 아시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 꿈에도 꾸고 사라지는 꿈이 아닌 나의 비전의 꿈이 있습니다. 꿈속에서 꾼 꿈은 아닌데도 내 마음에 꿈이 생겨 나의 미래의 꿈이 되고 희망이 되고 비전이 되는 꿈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비전입니다. 이때부터 사람은 미래에 대해서 소망을 갖고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2. 은사를 부어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종들을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18절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여기 남종과 여종이라는 말은 넓게는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좁게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려고 헌신하는 종의 자세를 가진 자들을 의미합니다. 즉 은사를 부어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일하는 종들을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남종과 여종이라고 했어요.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남자든 여자든 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도구가 됩니다. 여 목사제도가 성경적이냐는 토론이 분분하지만 그것을 논하기 전에 우선은 각 교단의 법대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질서를 존중하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강단에 서든 서지 않던 온전히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로 입혀 주시고 귀하게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종의 마음을 가져 보세요.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사로 입혀주실 것입니다. 진정한 남종과 여종이 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종들에게 은사 부어주십니다. 이것이 남종과 여종이 갖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부리는 듯이 사역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건 종이 아니라 주인입니다. 주인이 되는 교만한 사람은 열매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로 충만은 해야 합니다.

일을 할 때 기구 없이 할 수 없듯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은사로 충만할수록 크게 쓰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은사도 충만하시고 세상의 도구로도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자격증도 지혜입니다.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후회할 날이 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학력이든 기술이든 경력이든 어떤 면으로든 구비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보다 평탄하게 쓰임 받는 날이 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도 성령의 은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도구 되려는 마음으로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3. 육체에 성령을 부으시는 것은 회개시키기 위함입니다.

19-20절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이 말씀 그대로 보면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러나 여기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은 첫째는 예수님의 초림의 날이요, 또 재림의 날입니다. 또 이 날은 성령 강림의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아기로 나실 때 보기에는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악과 원수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이 두렵고 타격을 입힌 날이었습니다. 말4:1에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악의 세력이 초개와 같이 불타고 심판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영적으로는 전쟁 그 자체입니다. 19절의 피와 불과 연기는 전쟁터를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그리고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것은 전쟁터의 처절한 참상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해가 빛을 잃었듯 이것이 아버지의 심정이라면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것은 전쟁의 참혹함을 당한 자의 심정입니다.

이처럼 성령 강림은 악에 대해 엄청난 심판과 파괴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에게는 엄청난 심판이지만 우리 편에서는 놀라운 구원과 회개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말4:5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하심으로 악에게 타격을 입힐수록 그것은 우리에게 이익입니다. 그 때 진정으로 회개하고 구원 받고 온전한 믿음 갖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첫째가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대개 유명할 만큼 악한 사람들이 큰 체험을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체험했다고 교만하고 날뛰어서는 안 됩니다. 회개가 먼저입니다. 변화 되는 것이 먼저예요. 그런데 성령의 도움이 없을 만큼 선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은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체험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더 진리에 서야 합니다. 더 온전한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결론의 말씀이 21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진실로 예수를 나의 주로 섬기고 부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제자들 앞에서 온갖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신 것을 믿어 영생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임과 같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 계시지만 성령께서 지금 우리 곁에 내려오셔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도구 없이 살기 어렵듯 성령의 은사 없이 세상 살아가기도 신앙생활도 하나님의 사역도 어렵니다. 성령 은사의 도움의 필요성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초대교회처럼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육체에 부어주시는 은사로 우리 우둔한 눈을 열고 회개하여 새 사람 되고 하나님의 일군 되어 충성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