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증거를 돕는 하나님의 은사 (행 3:11-26)
말씀증거를 돕는 하나님의 은사 (행 3:11-26)
이 시간에는 “말씀증거를 돕는 하나님의 은사”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솔로몬 행각에서 행한 제 2차 설교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거지가 예수의 이름으로 나은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서 놀란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장면입니다.
솔로몬 행각에서 행한 이 설교에 몇 가지 내용이 나타납니다. ① 먼저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생명의 구주되심을 선포합니다(12-16절). ② 다음은 유대인들이 예수 죽인 것은 잘못이지만 구약 예언의 성취이므로 회개하고 구원을 얻으라고 강조합니다(17-19절). ③ 그리고 유대인들이 무고하게 죽인 예수가 바로 아브라함을 통하여 약속된 언약의 자손이며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임을 말씀하면서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였습니다(20-26절).
베드로의 설교 어떻습니까? 성경이니까 훌륭하다고 해야 하겠지만 만약 이 같은 설교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했다면 관심 가질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메시야가 뭔지, 아브라함이 누군지, 모세가 누군지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 말씀을 듣는 대상은 구약 성경의 배경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는 참으로 호소력 있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말씀의 호소력을 위한 하나님의 은사를 보게 됩니다.
1. 이적이 함께 할 때 말씀이 강하게 됩니다.
11절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이 사건의 시각은 성전에서 기도가 끝나고 나오는 때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였다가 나은 사람이 기뻐서 성전의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차츰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기도가 끝날 즈음 자기를 고쳐준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그 사람이 베드로를 붙잡았다는 사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말씀과 이적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이적을 만나면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막16:20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복음전파가 그토록 호소력이 있었던 것은 이적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오고 용신조차 할 수 없도록 찾아왔습니다. 이적이 이렇게 중요한 하나님의 일에 도구입니다.
이적을 주시는 목적인 하나님 살아계심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하며, 예수님이 우리 구주이심을 확증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예수님 앞에 돌아오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적을 주시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나아가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돕는 은사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악과 불신과 우상에 사로잡힌 완악한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적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사람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전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풍성한 기사와 이적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2. 또한 말씀의 메시지를 강하게 하는 것은 상황입니다.
12절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했습니다. 베드로가 복음 전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씀을 전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놀라운 이적이 나타났으니 복음 전할 황금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전도를 보면 언제나 어떤 배경과 상황을 만나면 그것을 놓치지 않고 거기에 적절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주님은 광야에서 백성들에게 떡을 먹이신 후에 하늘의 생명의 떡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을 보면 초막절 행사가 끝나는 날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러와 성전 제단에 붓는 행사가 있을 때 주님은 배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의 생수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도 주님은 회개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되리라. 얼마나 지혜로운 일입니까?
이적과 상황은 말씀 전할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적과 상황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말씀을 전할 귀한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황금 기회는 항상 오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는 것을 알아야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동역을 함께 하십니다. 흔히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도 손발이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동역자로 삼으시고 역사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상황과 이적은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주실 수도 있고 아니 주실 수도 있는데 우리가 이적이 목적이 되어 이적만 추구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전도에 이적이 아주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적을 위한 하나님의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이적이 나타나도 말씀이 없으면 그것은 쭉정이에 불과한 농사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이가 달콤한 쨈을 좋아하지만 쨈보다 빵을 먹어야 건강하듯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쨈만 빨아먹고 빵을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말씀보다는 이적에 관심 갖는 것은 그만큼 어리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병든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죄로 인해 고통 당하는 자를 찾아가셨습니다. 말씀을 강하게 하는 상황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 상황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됩니다. 의료선교, 병원전도가 그래서 황금어장입니다. 그러나 건강하고 잘 살며 평안하면 복음 귀한 줄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되 하나님이 주시는 황금어장을 찾아 그 기회를 선용할 때 우리의 메시지는 가장 아름다운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말씀의 메시지를 강하게 하는 것은 성경입니다.
18절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즉 너희들이 예수를 죽게 내어 준 것은 사실은 성경의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여러 군데 성경의 근거를 말씀합니다. 즉 그들이 가장 믿는 성경을 그들에게 증거한 것입니다.
아무리 누가 천사 같은 말을 해도 성경을 말씀하지 않으면 믿음이 오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영적으로 성장한 분들은 세상 이야기보다 성경 말씀이 더 좋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성경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성숙할수록 성경을 더 깊이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제목설교보다 강해설교를 더 좋아하게 됩니다. 축복설교보다 영적설교를 더 사모합니다. 그러나 초신자들은 성경 말씀보다 예화가 더 은혜롭게 다가옵니다. 성경만 이야기하면 잠을 잡니다. 성장한 성도에게도 예화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믿음에 서기 위해서는 성경의 근거가 무엇보다 요구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약성경도 알아야 하나 구약성경도 많이 보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을 그냥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영의 눈을 막고 있는 수건을 벗고 신령한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우리 신앙의 원리가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잘 나타나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새벽마다 레위기를 마치고 민수기를 읽고 있지만 영적 생활에 얼마나 귀한 가르침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성경을 말씀한 것입니다. 거기에 결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5-17)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별명이 많아요. 불과 같다, 몽둥이 같다, 씨와 같다, 물과 같다, 정금과 같다, 꿀과 같다, 날선 검과 같다. 젖과 같다, 양식과 같다, 등불과 같다, 채찍과 같고, 못과 같다. 반석과 같다는 등등의 별명이 있습니다. 그만큼 성경은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성경은 베드로의 메시지는 듣는 자로 하여금 진실로 회개토록 했다는데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회개 없는 말씀은 허공을 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말씀과 이적이 충만하신 권능 있는 전도자이셨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을 향한 능력의 전도자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이적과 상황과 성경에 근거하여 전도하는 능력 있는 전도자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