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큰 죄 (행 22:22-29)
보다 큰 죄 (행 22:22-29)
본문은 바울의 간증을 들은 유대 군중들의 반응과 위기에서 벗어나는 바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안토니오 요새의 돌계단에서 유대 군중들에게 간증했지만 그들은 말을 막고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일순간에 그들의 본성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7:6)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본문에서 윤리적인 죄보다 더 큰 죄들을 많이 발견합니다.
1. 복음을 받지 않는 죄입니다.
22절에 “이 말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 질러 가로되” 더 이상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복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은혜의 말씀을 전했지만 배척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았습니다. 그들의 교만과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바울이 이방인의 일군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니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8:37에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하셨어요. 불신자일지라도 온갖 고난과 경험을 하고 나면 인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어 복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리가 생깁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토록 율법 안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마음에 복음을 받아들일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하는데 자기 사고의 틀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으려고 하니 담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 배척은 곧 예수 배척입니다. 우리 생각이 얼마나 더 깨어지고 부서져야 할지 모릅니다.
2. 불신앙의 죄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복음을 배척했습니다. 불신앙의 죄입니다. 불신의 죄는 천국도 갈 수 없는 큰 죄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 안 믿는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습니다. 이때 아하시야 왕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알세붑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하시면서 아하시야가 정녕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아하시야 같지는 않습니까? 믿음의 중심부에 와서 살지 않고 위험한 세상 난간 가장자리에서만 살지 않습니까? 그렇게 살면 떨어질 때가 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세상 말을 더 듣습니다. 그러면 그 심령은 죽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어려운 일 당하면 자기 잘못은 모르고 하나님 탓 만합니다. 그래서 아하시야가 군대를 보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자기가 죽습니다. 불신의 죄가 큰 죄입니다.
3. 복음 방해죄입니다.
유대인들의 바울 핍박은 곧 복음 방해죄입니다. 마태 1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을 때 사함 받지 못할 성령훼방죄를 말씀하셨어요. 인간 예수를 거역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가령 주님 대접에 분주한 마르다에게 한 가지만으로도 좋다 하신 주님의 말씀에 거역하고 많이 준비했다고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를 부정하고 복음전도를 방해한다면 그것은 기름부음에 도전하는 죄가 됩니다. 이단의 교주들을 위해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4. 무지의 죄입니다.
24절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 대” 히브리말은 모르고 헬라말만 아는 천부장은 무리의 떠드는 것만 보고 바울이 무슨 큰 중죄라도 지은 줄 알고 바울을 심문하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무식한지 모릅니다.
이처럼 무지가 큰 죄입니다. 무지가 큰 죄인 것은 아무 가책도 없이 죄를 저지를 수 있고 저질러도 회개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만 잘못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알지 못했을 때는 긍휼함이 있습니다. 바울이 사울일 때 예수를 핍박한 것도 알지 못해서였습니다.
5. 편견의 죄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할 자라는 편견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이방 전도 사명에 대해서 분개했습니다. 로마인들도 편견이 있었습니다. 로마인이 아니면 인권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로마인 아니고는 모두 야만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수준이 그러하기에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순간 그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편견입니다. 편견은 사람을 잘못 판단하고 또 많은 상처를 입힙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귀한 존재입니다. 약한 사람 무시하고 유력한 사람 존중 이건 편견입니다. 편견은 주님을 냉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한 것입니다.
6. 심판의 죄입니다.
25절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던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여기 무고죄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혐의가 없는데 처벌하고 있으니 무고죄보다 더 큰 죄입니다. 심판하는 죄입니다. 우리나라 형법에 무고죄란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게 허위의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라고 되어 있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무거운 죄에 속하는데 천부장은 권력을 이용하여 바울을 채찍질하였습니다.
이런 죄가 흔합니다. 알지 못하고 비난하고 알지 못하고 오해하고 심판하는데 그런 일도 무고요 심판죄입니다.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조심해야 할 죄입니다. 추측성 유언비어가 큰 혼란과 피해를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롬14:10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했습니다.
약4:11-12에도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했습니다. 알지 못하고 비판하는 일이 많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비판합니다. 개혁자라면 더욱 잘 알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7. 비열함의 죄입니다.
29절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이 얼마나 비열합니까? 바울의 신분이 밝혀짐에 따라 천부장의 바울에 대한 마음이 달라집니다. 약자에게는 냉혹하고 강자에게는 비열한 마음입니다. 만약 바울에게 로마 시민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강자에게는 아첨하고 약자는 짓밟는 것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짓밟는 큰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윗 사람에게도 인정 받고 아랫 사람에게도 존중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인죄 간음죄도 큽니다. 도적질과 거짓 증거도 큰 죄입니다. 그러나 더 큰 죄는 말씀을 받지 않는 죄요, 불신의 죄요, 복음 방해하는 죄요, 무지와 편견의 죄입니다. 주님을 사랑치 않는 죄도 큰 죄입니다. 이런 큰 죄 짓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